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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31장 사울 왕의 죽음

LNCK 2023. 3. 31. 21:00

◈사울 왕의 죽음       삼상31장, 대상10장              설교 녹취
 
삼상31장, 대상10장은 병행 장입니다. 내용은 물론, 정말 워딩까지 비슷하죠.
그러나 사무엘상은 포로기 이전에 쓰였고, 역대상은 포로 귀환 후에 쓰였죠.
그러므로 대상 10장은, 삼상31장을 참고해서 쓰였다고 보면 됩니다. 
 
◑도입

언젠가 어떤 글에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여러분은 죽고 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라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죽고 나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고 나서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가 과연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면 
사람들에게서 존경받는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과 세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룹니다.
사울 왕의 죽음은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다윗의 기나긴 광야생활의 끝을 의미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으며 왕으로 등극해서 
이스라엘 최초의 왕으로 40년을 다스렸던 사울 리더십의 빛과 어둠을 통해서, 
그 죽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우리가 배워야 될 영적 교훈들이 많습니다. 

▲대상10:1절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그동안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수없이 많은 크고 작은 국지전이 있어 
왔습니다만, 이번에는 스케일에 있어서 그런 작은 전투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의 대규모 전면적인 침공입니다. 삼상29:1   

'블레셋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29:1 

실제로 다섯 방백이 모두 동원되었습니다.

이에 맞서는 이스라엘은, 12지파가 다 모이지 못했습니다. 요단 동편 세 지파도, 갈릴리 이북 지파도 빠졌고, (블레셋이 중간에 잘라 들어와서 못 내려옴) 그러니 유다, 베냐민 에브라임 위주로 구성된 군대였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이스라엘이 상대가 안됩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은 그 당시 유명한 철기문명 국가였고 
전차대와 능숙한 전투병들을 많이 가진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객관적인 전력이 항상 블레셋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때까지 최근 전면전의 전적에서는 
이스라엘이 블레셋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었어요. 희한한 일이에요.  주1)

 

군사강국 블레셋이 이스라엘만 만나면 
'그대 앞에만 서면 왜 이리 작아지는지' 
계속해서 패배하는 이런 미스테리한 상황은 
무장이나 병사 숫자로만 잴수 없는 
하나님의 기름부심이 이스라엘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최근 (사무엘 등장 이후) 역사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이 이번에는 무슨 배짱으로 
다시 이스라엘을 상대로 이런 전면전을 일으켰을까요?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두 가지 심각한 리더십의 공백의 빈틈을 
치고 들어온 것입니다

△먼저는, 이스라엘의 영적 대스승인 사무엘의 죽음이었습니다. 

삼상28:3~4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사무엘이 죽고 나서 그 다음에 블레셋의 대규모 침공이 시작됩니다. 
사무엘이 누굽니까? 그는 전투하는 장군은 아니었지만 
그는 존재감 자체로 엄청난 인물이었어요. 

60년 전 미스바의 기도 대성회를 기점으로 해서 
사무엘이 함께하는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은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무엘의 존재감 그 자체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안도감을, 
블레셋에게는 공포를 심었습니다. 

사울도 다윗도 다 사무엘이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무엘은 이스라엘 모두가 의지하는 정신적인 지주였고 
전설 같은 국가의 영적 대스승이었습니다. 
그가 존재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블레셋이 감히 함부로 이스라엘을 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무엘이 죽었습니다. 
블레셋은 쾌재를 부르면서 이스라엘을 침공할 준비를 시작합니다. 

사무엘이 죽고 나서 바로 전쟁이 난 것은 아닙니다. 
한 2년이 있다가 전쟁이 나지만, 
그 전부터 블레셋이 본격적인 전쟁준비를 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사람 사무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잘 보여주죠. 

△사무엘의 부재말고도, 또 한 명의 거대한 이스라엘의 리더가 
이스라엘에서 없어지죠. 그것은 바로 다윗이었습니다. 

사무엘 이후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를 주는 인물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스라엘 병사들에게는 같이 전장에 나가기만 해도 
가슴 든든한, 용기를 주는 인물이 있었다면 바로 다윗이죠.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그 뒤 블레셋과의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다윗이
이스라엘에 없는 거예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도끼로 제 발등 찍는다고.. 이스라엘의 사울 왕은 
다윗을 핍박해서 결국은 블레셋 땅에 망명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블레셋이 얼마나 든든했겠습니까? 다윗이 없는 이스라엘! 
사무엘의 기도가 없는 이스라엘은.. 이제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손발이 묶인 채로, 블레셋과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영적인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싸운다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인 일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영적 리더의 존재가 있을 때, 사람들이 별 감사함을 몰라요. 
별 티가 안 나지만.. 그가 없을 때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거예요.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영적인 리더십의 존재를 감사하셔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영적인 리더가 부재한 상태는, 
반드시 마귀의 침공 루트가 열리게 되기 때문이죠. 

여러분의 가정에서 부모님은 영적인 지도자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말씀과 기도로 굳건히 서있으면 
마귀가 여러분의 가정을 유린하지 못합니다. 

이 교회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주십시오. 
저를 비롯한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과 순장님들과 
교회를 지키는 영적인 리더들이 성령충만해서 제자리를 지키면 
마귀가 흔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영적 지도자들이 무너진 교회들을 보세요. 마귀가 유린하지 않습니까. 
국가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리더십의 중요성을 중시하고 
굉장히 좋은 리더들이 세워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설명

자 블레셋과 이스라엘 양국이 총력을 기울여서 부딪힌 전면전이었지만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너무 어이없이 승패가 갈려 버렸습니다. 

대상10:1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이 싸우더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다가 길보아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엎드려지니라'

(삼상31:1절과 아주 비슷하죠. 1~12절까지 계속 그렇습니다)

처음 양국은, 이스라엘에서 제일 넓은 이스르엘 평야에서 충돌했습니다. 
평야에서 전차대를 확보한 블레셋 과의 싸움은   
부딪치자마자 이스라엘은 붕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블레셋 사람들보다 더 잘 싸울 수 있는 
산지인 길보아 쪽으로 후퇴했는데.. 소용없었어요. 
블레셋은 길보아 산까지 좇아가서 이스라엘 군대를 궤멸시켰습니다. 

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추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고'

이 본문 성경이 설명하는 것을 딱 보면 
블레셋 군의 처음부터 전략이 무엇이었는지가 자명합니다. 

그냥 전투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블레셋 군의 목표도 처음부터 사울 왕을 비롯한 
톱 리더십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명령이 모든 블레셋 군대에게 내려져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승패에 상관없이 사울 왕과 그 왕자들을 둘러싸고 
블레셋의 결사대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난전 끝에 용감한 왕자 요나단 그 동생 아비나답, 말기수아 
이렇게 사울의 세 아들들이 차례로 전사합니다. 

아무리 객관적인 전력의 차이가 있다고 하지만 
원래 이스라엘 군대가 이렇게 약한 군대가 아닙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최근 역대 전적이 이스라엘이 훨씬 우위였잖아요. 
(사사기~삼상4장까지는 블레셋에 짓밟힘. 법궤를 빼앗긴 적도 있었음)

그리고 요나단이 누굽니까? 
혈혈단신으로 블레셋 진영을 뚫고 들어간 용맹한 용사였습니다.

그런 요나단도 이번에는 속수무책으로 죽습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미 이스라엘을 떠났기 때문이었어요.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한 지도자 사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울은, 자기 눈앞에서 자기의 세 아들들이 차례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에요. 

자기가 사랑했던 부하들이 수도 없이 쓰러져 죽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자기 때문에 죽는 거예요. 
그리고 사울 자신에게도 그 최후의 운명이 닥칩니다. 

3 '사울을 맹렬히 치며 활 쏘는 자가 사울에게 따라 미치매 
사울이 그 쏘는 자로 말미암아 심히 다급하여'

사울은 이제 더 이상 몸을 움직일 수가 없는데 
사방을 둘러싸도 벌떼처럼 몰려드는 블레셋 군대 뿐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이때 사울 왕의 마지막 유언이 무엇입니까?

4 '사울이 자기의 무기를 가진 자에게 이르되 너는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와서 나를 욕되게 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그의 무기를 가진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행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매 
사울이 자기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니'

사울의 자기 무기 든 자(수행 비서)한테 
자기는 이미 부상당에서 가망이 없으니 네가 나를 죽이라고 합니다. 
왜냐면 할례받지 못한 자, 블레셋 인의 손에 죽는 수치를 당하기 싫다는 거예요. 
사울은 끝까지,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 것만 신경 쓰고 있어요. 

 

지금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려서 
이렇게 모든 부하들을 잃고, 자기도 죽게 생긴 것에 대한 회개보다는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까? .. 그것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사울은 할 수 없이 자기가 자결을 하죠. 그 부하도 자결을 하고요. 
사십 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울 왕의 최후가 이렇게 허무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울의 죽음이, 그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죠. 
여러분 지도자는 영향력이 있어요. 그 사람 혼자 죽는 게 아니라 
그 때부터 그 패배의 파급효과가 엄청납니다. 

6 '이와 같이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그 온 집안이 함께 죽으니라'

아직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이 살아 있고 
사울의 친척 (아브넬 등) 들이 다 살아있는데도 
하나님은 그 온 집안이 끝났다고 말씀합니다. 사울의 왕조가 끝난 거예요.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게 아니에요. 

영적인 지도자가 무너질 때, 그 집안이 끝이나 버리는데 
또 그것으로 끝이 아니에요. 7절을 보세요.

7 '골짜기에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그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다 죽은 것을 보고 그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1) '골짜기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이란, 삼상31:7에는 '골짜기 저쪽'이라 했는데,
골짜기 저쪽이란, 잇사갈, 스불론, 납달리 지파 등의 주민들이 사는 
갈릴리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울의 군대와 합류치 못한 까닭은, 
바로 이같은 연합을 방지하기 위하여 
블레셋의 군대가 이곳 북쪽 사람들과 남쪽 사울의 군대 사이인 
'수넴'(28:4)사이에 진을 쳤기 때문이었죠. 남북을 갈라놓은 것이죠.
그리고 병행하는 삼상31장을 보면,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도, 이 전투에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사울의 군사들은, 
주로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 에브라임 지파 등에 속한 백성들일 것입니다.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이는 길보아 전투의 패배와 사울의 죽음이 
이스라엘 온 땅에 큰 공포의 분위기를 몰고왔음을 말해 줍니다. 피난민이 발생하고, 분배받은 기업인 땅이 점령당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구절은 
'백성들도 함께 집과 논밭, 목축지를 내려놓고 도망쳤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거기에 들어와서 거주했다는 거죠. 

여러분 이스라엘이 땀 흘려 일궈놓은 그 포도원과 목축지와 가축과 집을 
송두리째 다 빼앗겼고, 하나님을 모독하던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이걸 차지하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 사울의 몰락이 가져온 파급효과죠. 자기 한 사람의 몰락으로 끝나지 않죠.

이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무서운 교훈을 줍니까. 이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약속의 땅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차지했어요?

이 좋은 땅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자기 땅으로 만들어서 살고자 하는 거예요.

이게 사울의 죽음으로 인해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이, 
영적인 전쟁에서 패배해서 무너지고 나면, 혼자 죽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나에게 다스리라고 맡기셨던 가정과 기업과 교회와 영토가 
다 마귀에게 넘어가는 거라니까요. 

마귀는 빼앗은 것들을 비워두지 않습니다. 
자기 가족들을 이주시켜 가지고 사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를 비웃는 거죠. 

이걸 다시 찾으려면 훗날 다윗은 피비린내나는 전투를 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요. 우리의 무기력함으로 빼앗긴 땅은 
반드시 예수님의 보혈로 인해서, 다른 하나님의 사람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다시 찾을 수밖에 없어요.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영적 지도자가 처음부터 강하게 서서 
그 자리를 버텨 주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이, 기도와 말씀으로 굳건히 서서 지키기를 바랍니다. 
무너지고 나면.. 다 마귀에게 내 주는 거예요. 

이스라엘의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포악한 블레셋은 정말 비열하고 악한 모습으로 
패배한 이스라엘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를 안겨줍니다. 

8~10 '이튿날에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죽임을 당한 자의 옷을 벗기다가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길보아 산에 엎드러졌음을 보고
곧 사울의 옷을 벗기고 그의 머리와 갑옷을 가져다가 사람을 블레셋 땅 사방에 
보내 모든 이방 신전과 그 백성에게 소식을 전하고
사울의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고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

블레셋이 먼저 자기 나라 곳곳에 사자를 보내서
'우리가 이겼다' 그 소식을 알린 다음에 
그 다음부터 사울의 시신을 훼손합니다. 

'갑옷을 그들의 신전에 두었다'고 했죠. 갑옷은 무사히 명예이자 자존심입니다. 
또 사울 왕의 머리를 잘라서, 블레셋 사방에 보냈습니다. 
(삼손의 수치보다 훨씬 심합니다)

그리고 머리 없는 사울의 시신은 벳산 성벽에 못 박아서 전시했습니다. 
벳산은 전장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입니다.

모든 사람한테 이스라엘 왕의 수치를 보이면서 비웃으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리 전쟁에서 이겼다고는 하지만 
승자가 그래도 패자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는 해줘야 되잖아요. 

블레셋은 그런거 상관 안 해요. 끝까지 죽은 시신까지 모독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왕을 머리와 몸통을 다른 곳에 분리해서 전시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큰 승리감을 고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마귀는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아요. 
그 죽음을 끝까지 물고늘어지면서, 소문을 퍼뜨리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겁주고 
'교회는 죽었다. 하나님의 종들은 무기력하다'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시키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 마귀에게 패배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너무나 잔인하고, 너무나 비열한 적이기 때문에 
그 적에게 패했을 때는,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을 너무나 훼손시키게 돼요. 
그래서 절대 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삼하12:14 '훼방할 거리' 참조

사울의 비극적인 최후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돌이켜보면 그는 재위 초기에는 좋은 왕이었기 때문이에요. 

40년 전 사울은, 온 이스라엘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왕으로 세워졌었죠. 
그때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인 자기가 어떻게 왕이 되겠느냐?'고 
사울은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던 그 겸손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어여쁘게 보셨습니다. 
그래서 사울 왕에게 초기에 엄청난 외세의 침략군을 몰아내면서 
백성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사울 왕조가 수백 년은 갈 줄 다들 알았어요. 
위대한 나라를 세우고 인물이 될 줄 알았어요. 

훗날 다윗이 이루었던 그 많은 영광이 사실은 
사울이 이루고, 받아야 될 영광이었는데 
40년 만에 이렇게 비참하게 망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도대체 사울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오늘 본문은 정확히 그 원인을 짚어줍니다. 

13~14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분명히 블레셋이 사울을 죽였는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인데,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13

자 성경을 보면 어떤 일이 터질때 
우리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원인이 있어요. 즉 블레셋이 강했죠. 
그렇지만 본질적인 원인이 따로 있다는 거에요. 

블레셋이 군사적으로 강하고, 이스라엘이 약해서 진게 아니라 
하나님께 사울 왕이 범죄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죽게끔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불순종 
-둘째는 신접한 여인에게 가르치기를 청한 죄.. 라고 했습니다. 

1)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다.. 이것은 불순종의 죄죠. 
하나님의 말씀을 몰라서 저지른 죄는, 영적 무지입니다. 
그런데 '알고도 무시했다' .. 이건 불순종의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죄를, 영적인 무지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다루십니다. 
특히 사울 처럼 아무 배경도, 연줄도 없이 
백프로 하나님의 은혜로 왕이 된 지도자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죠. 

은혜로 왕이 됐기 때문에, 그 자리를 항상 기도하며 행했어야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자기의 경험과 실력을, 
또한 주변에 참모들의 의견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중하게 여기기 시작했어요. 

초반의 승리에 너무 도취된 거예요. 
그래서 이 사울의 불순종은, 처음엔 아주 작게 시작했다가 
나중에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졌어요. 

처음에 집권 1년이 지나고 나서, 그는 초기의 승리에 도취해서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블레셋과 전쟁을 벌여버렸죠. 

자기가 주도해서 제사를 지내는 일도 있었어요. 삼상13장
블레셋과 전쟁을 벌였는데, 압도적인 블레셋 군대를 보고 
이스라엘 병사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하나 둘씩 도망가니까 
사무엘이 도착하기도 전에,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주도해서 드려 버렸습니다. 계속해서 악수를 두는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계속 옐로카드를 주셨죠. 
'사울아, 너 조심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되는 거야!' 

그러나 사울은 깨닫지 못했어요. 그리고 마침내 대형사고가 터지죠. 
그는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반쪽짜리로 순종합니다. 
전부 다 진멸하라 그랬는데, 아각 왕도 살려주고 
제일 좋은 가축들을 살짝 살려놨습니다.  삼상15장

(나중에 그래서 에스더 시대에, 이 아말렉 자손의 후손인
아각 사람 하만에 의해서, 이스라엘이 인종 청소 당할 뻔 하다가
극적으로 되살아난 일이 있었죠. 만약 이때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아말렉 사람을 진멸했다면.. 그런 후환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걸 추궁하시니까 사울은 한다는 말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남겨 둔 거예요' 백프로 거짓말이죠. 
자기 욕심 때문이죠. 다 죽이기 아까우니까 살려둔 것입니다. 

아말렉 아각 왕을 살려두면, 아말렉 보물창고들의 위치도 다 알 수 있고 
그 왕을 앞세우고 승리의 퍼레이드를 하면, 개선 행사 때 얼마나 폼이 나겠어요. 
그 가축들 다 자기가 좀 가지고 있다가, 또 부하들에게 포상금으로 나누어 주면 
자기를 더욱 떠받들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 욕심때문에 불순종 했으면서도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그랬다' 
하나님은 그때 사울을 완전히 버리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때 사울에게 주신 유명한 말씀 기억하십니까? 
'사울아,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네가 그걸 몰랐단 말이냐?' 삼상15:22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이제부터 여호와께서 너를 버릴 것이다.' 

이미 그때 사울의 운명은 끝난 거예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불순종인 거 아시죠?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15:22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무시하는 불순종의 죄를 지으면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망가지지 않을 수가 없죠. 사울처럼 망하는 거죠.

사울의 불순종이 하루아침에 된 게 아니에요. 
큰 배가 항로를 이탈할 때, 처음부터 확 이탈하는 게 아니랍니다. 
처음에는 조금씩 조금씩 각도를 어긋나다가 
나중에는 엄청나게 목적지를 미스하는 것이죠. 

사울의 결정적인 죄는,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는 불순종이었지만 
이미 그 전에 많은 징조가 보였습니다. 

여러분이나, 여러분 주변에 어떤 분들이 
작은 불순종의 징조가 보일 때, 빨리 스톱시키셔야 돼요. 
나중에는 돌이킬 수가 없게 돼요. 

사울은 조금씩 조금씩 기도하는 시간이 줄고, 회의하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분노와 조급함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불순종하는 루트를 계속 밟아가면 
눈에 보이는 현실이 무너지기 전에 
그 사람의 내면세계가 서서히 붕괴되거든요. 
그래서 초기에 그걸 잡아야 되는 거였어요. 사울이 그걸 못한거죠. 

2) 두 번째는 결정적인 순간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한 죄였습니다. 
신접한 자는, 진짜 그 당시 우상 신들에게 접신해 가지고 
그 악령의 힘으로 사람들의 길흉화복을 점쳐주는 사람들인데 
사울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의 멘토링이 아닌,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했다는 것은 
마귀의 멘토링을 구한 거에요. 

왜 이렇게 되었는가요? 그 사건이 삼상28:4절 이하에 나옵니다. 
4 '블레셋 사람들이 모여 수넴에 이르러 진 치매 
사울이 온 이스라엘을 모아 길보아에 진 쳤더니
5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7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블레셋 과의 전면전을 하루 앞둔 날 일어난 거예요. 
사울은 너무 불안하니까 (어떤 예감이 있었겠죠. 자기 최후가 왔다는)
처음에는 하나님께 물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침묵하시니까 더욱 불안해져서 
신접한 여인, 악령의 접신한 자에게 물어보겠다고 찾아간 거예요. 

자 하나님이 침묵하시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하나님이 내 안에 기뻐하시지 않는 죄가 있나?' 하고 회개해야 되는데 
그는 하나님의 침묵앞에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바로 '그래? 그러면 신접한 여인에게라도 가서 물어보지 뭐!' 그렇게 된 거예요. 
사울이 그렇게 해서 자기 정체를 감추고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사무엘의 영혼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불러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나타난 사무엘은, 사울을 꾸짖고 그의 멸망을 예언해줍니다. 

일찍이 모세 때부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인생의 기로에서 미래의 길흉화복을 묻기위해서 
악령과 접신하는 자들을 찾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레19: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사울이 이 사실을 몰랐겠어요? No 
그는 임기 초기에는 이 말씀을 받들어 
나라의 신접한 자들을 다 없애기까지 한 사람이었죠.

▲사울의 장례를 치러 준 므낫세 반지파
11 '길르앗야베스 모든 사람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12 용사들이 다 일어나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거두어 야베스로 
가져다가 그 곳 상수리나무 아래에 그 해골을 장사하고 칠 일간 금식하였더라'

이스라엘의 기백이 아직도 살아 있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므낫세 반 지파)의 용사들이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요단강을 건너서 달려옵니다. 

사울의 시신이 블레셋에 의해서 못 박힌 벳산에서 
길르앗 야베스가 결코 가깝지 않아요. 요단강을 건너 와야 돼요.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군대가 모두 전멸당하고 
사방이 다 블레셋 군 천지거든요. 

강 나루턱도 다 블레셋 군이 지키고 있는데 
길르앗 야베스의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강을 건넙니다. 

천지에 깔린 블레셋 군대의 감시망을 뚫고 
사울 왕과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돌아오는 거에요. 
그리고 정중히 장례를 치러줍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모욕을 거기서 끝마쳐줬어요. 
승리에 도취되었던 블레셋 군이 허를 찔린 거죠. 

도대체 길르사람들은 왜 목숨을 걸고 이런 모험을 단행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사십 년 전에, 그들이 사울 왕에게 입은 은혜 때문이었어요. 

삼상11장에 보면, 처음 사울 왕이 즉위했을 때,
암몬의 대군이 길르앗을 침공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지역이 전멸당할 위기에 있었을 때 
사울 왕이 용기 있게 군대를 이끌고 나와서 길르앗을 구해 냈었어요. 

그 은혜를 사십년 동안 잊지 못하던 길르앗 사람들이 
사울의 처참한 죽음 소식을 듣고, 그 시체가 훼손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이 감시망을 뚫고 블레셋 진영으로 침입해서, 그 시신을 수습해 온 거예요. 
삼상31:12에 보면, 밤 중에 그 일을 했다고 했죠. 위험하니까 밤에 움직인 거죠.

저는 이걸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어요.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보여준 이 놀라운 용기와 충성은 
초기 사울이 하나님을 온전히 따를 때 보여주었던 선한 리더십의 열매에요. 

만약 사울이 집권 40년 내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섰더라면 
이스라엘 사람들 모두가 길르앗 야베스(므낫세 반 지파) 용사들처럼 
용맹하게 사울의 주위에서 지켜 섰을 거예요. 
그러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패할 리가 없어요. 

그런데 40년 후에 블레셋 과의 전쟁에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진 
이스라엘 군대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불순종하며 살아온, 사울의 집권 후반기 리더십의 열매죠. 

사람은 뿌린 대로 거두는 거거든요. 
그래서 길르앗 용사들의 용감한 모습은 
우리에게 안타까운 여운을 남기는 거예요. 

만약 사울이 제대로 하나님 앞에 섰었더라면 
사울은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의 훌륭한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차세대 지도자 다윗의 훌륭한 멘토가 될 수 있었는데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못난 선배로 전락하고 말았죠. 

용감한 아들 요나단의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었는데 
분노에 사로잡혀, 자기 아들과 딸까지도 저주하고 
마침내는 그 훌륭한 아들을 전쟁터에서 허무하게 잃는 원인 제공을 하고 말죠. 

 

블레셋을 무릎 꿇리는 영웅이 될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패배한 뒤 시체까지 블레셋에게 유린당하는 그런 모욕을 당합니다. 
백성을 보살피는 선정을 베푸는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를, 길르앗 야베스 백성들 같은 용사로 만들 수 있었는데 

 

임기 후반부에 그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광적인 폭군으로 전락해서 
백성들의 신망을 잃었습니다. 
용두사미 라고 하는 것은, 사울의 인생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사울처럼 아무리 스타트가 좋아도 끝이 나쁘면 다 망가집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그 수많은 재능과 가능성과 기회를 
하나님을 불순종함으로써 사울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죽었다고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사울이 죽고 이스라엘이 그렇게 처참하게 패배당했을 때 
절망했을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끝났구나. 이제 우리는 블레셋의 노예가 되겠지' 하는
캄캄한 암흑이었어요. 그래서 피난가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삼상31:7, 대상10:7

블레셋도 이제 사울 왕을 죽였으니
이스라엘 땅 전체를 자기들이 장악할 것이라고 자만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사울이 죽은 거지,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셨습니다.
다윗도 살아 있었고요.

인간이 잘못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지지는 않습니다. 

▲대상10:14절은 그래서 절망 끝에서 오는 새로운 소망을 보여주죠. 
14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이스라엘 나라는 블레셋 에게 넘어가지 않았어요. 
하나님의 사람 다윗에게 그 왕좌가 넘어간 거에요. 

사울의 후손들이 대대로 통치할 수 있었던 나라가 
이제 다윗의 후손에게 맡겨집니다. 

우리는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못해요. 
하나님이 아무것도 아닌 우리를 주인공으로 세우시고, 만들어 가십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우리는 교만해주기 쉽고 
초심을 잃고,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을 의지하다가.. 사울처럼 무너지는 거예요. 

나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주님과의 첫 사랑을 간직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자만이 
하나님 나라 역사의 주인공으로 별처럼 빛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끝이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사람들이 끝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하나님을 시작하십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처럼 
사울이 죽고 나서 다윗을 세우셔서 새 역사의 지평을 여십니다.

다윗은 제2의 사울이 되지 않았어요. 그도 실패와 실수를 많이 했지만 
그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통하여 새로운 이스라엘의 기반을 세우십니다. 

여러분도 평생 겸손히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이 시대에 다윗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

주1)
60 여년 전에 미스바 기도 대성회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별 무장도 하지 않은 채 기도하러 모였는데 
블레셋 사람들이 이때다 싶어서 전 병력을 동원해서 쳤거든요. 

그런데도 하나님의 은혜로 블레셋이 붕괴되었습니다. 
그때로부터 20 여년이 지나서  
사울 왕의 아들 요나단이 또 이번에는 앞장서서 
불리한 전세를 뒤집으면서 또 블레셋은 대패했습니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렀습니다. 
블레셋은 질 수 없는 용사 골리앗을 앞장세워서 진격해 왔습니다. 

알다시피 그 골리앗도 다윗에게 패해 쓰러지고 
그리고 그 뒤로 다윗이 장군이 된 뒤로는 
블레셋은 크고 작은 전쟁에서 전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