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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6:1~16 남은 건 십자가뿐

LNCK 2023. 4. 2. 17:55

◈남은 건 십자가뿐          마26:1~16         인터넷 설교녹취, 정리    

우리는 누구나 '반복되는 말'에 대한 스트레스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반복되는 잔소리는 (그 말은 맞지만, 그 말이 반복된다면)
그게 아무리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라 할지라도 
자녀가 있는 그대로 부모의 마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죠. 

친구가 '내 이야기 좀 들어줘' 하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연거푸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하면, 
듣는 친구는 금방 지루하기 십상입니다. 

여러분 지금은 좀 줄어들었지만, 코로나 팬데믹 으로 인해 매일 반복되는 
확진자 소식, 백신 개발 뉴스 이런 정보들이 
처음엔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뉴스 였으나
나중에는, 반복되는 주제를 듣다 보니, 무의미할 정도로 지겹게 다가왔었죠.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반복되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마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고난주간을 지키지 못했던 12제자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은 이 중요하고 엄청난 소식, 
즉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다'는 이 말씀을 
처음 남기신 건 아니셨죠. 

이미 마태복음만 봐도, 또한 복음서 전체를 살펴봐도 
이전에 세 번이나 반복하셨다는 걸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죽게 될 것이라는 이 믿기 힘든 이야기,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죽게 될 거란 충격적인 소식을, 
이미 제자들에게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본문 마26장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이틀 전입니다. 

왜냐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2

그 힘든 이야기를 앞서 세 번이나 꺼내신 예수님께서 
한번 더 네 번째 자기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마26:2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하시더라'
  
삼 년이나 동거동락 했던 스승이 죽는 소식을 
네 번이나 반복해서 듣게 된다면... 
우리들이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그들은 아무런 경각심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주님의 십자가를 맞이하고 말았죠...

그래서 그들은, 다들 주님을 부인하고, 배반하고, 뿔뿔이 흩어졌죠.

오늘날 우리들이 그들과 같을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그 인류 역사에 가장 중요한 사건을 맞이하면서  *고난주간

-나와는 아무 관련 없는 일로
-혹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라는 영안이 가려진 사람처럼,
-혹은 구속사의 완성, 구원 계획의 완성 같은 하나님의 관심에는
 나는 전혀 무관심하고, 그저 나의 관심사에만 오직 몰두하고,

-주님의 답답하고 마음이 힘드신 일에, 전혀 동참하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그런 미성숙한 신자, 주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신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런 사람을 바라보시며 주님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죠. 
'쟤는 아직 아니야.. 쟤는 더 성숙되어져야 해!'

유월절 이틀 전, 
예수님이 죽게 된다는 소식을 네 번째나 제자들이 접하게 되었을 때 
아직까지도 이 제자들이 지루했던 것 같습니다. 무의미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고난주간, 주님과 마지막 1주일.. 
그들은 그 최초의 고난주간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죠. 

그냥 예수님 혼자만 먼저 십자가를 앞두고 마음 고생을 엄청 하시고, 
또한 육체적으로도 십자가의 고통을 격하게 당하셨는데,  

가장 가까이에서 힘과 위로가 되어주고, 
고난에 동참하는 형제애를 보여주어야 할 제자들은.. 
아쉽고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천연덕스럽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세 살, 네 살 어린아이들처럼요! 너무 철이 없고 아직 미성숙된 상태였던 거죠.
물론 본문은 이 네 번째 소식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을 
자세히 기록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흐름, 곧 이어지는 옥합을 깨뜨린 이 여인의 행위 사건과 26:6~ 
그 후에 가룟 유다의 배신사건을 우리가 볼 때에 
네 번이나 반복해서 예수님의 수난 소식을 들었던 제자들의 마음에는 
어째서인지 어떠한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언어

마26: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마24~25장은 종말에 관한 말씀이죠. '그 종말에 관한 말씀을 다 마치신 후에' 라고 이해될 수 있지만,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죠.

여기에 '다 마치시고' 라는 단어를 한번 좀 깊이 묵상해보겠습니다.  :1

마태복음만 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선포하셨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언어로 직접 표현해 주셨습니다. 

가령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병에 걸린 자들을 고쳐 주셨고 
말씀을 가르치신 후에, 귀신 들린 자의 귀신을 내쫓아 주셨죠.

복음을 가르치신 후에, 실제로 복음을 전하러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셨어요. 막1:38  

이렇게 예수님은, 자신의 오신 목적대로, 하나님 나라를 먼저 선포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맞는 행동으로 귀결시키셨어요. 

그런데 본문 마26:1절을 보니까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시고, 아무 것도 안 하시는 것처럼 얼핏 보입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아무 '행동언어'로도,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시기 때문인 거죠. 십자가가 행동언어 였던 거죠.

특히 이 '마치시고' 앞에 '다 all' 란 단어가 있습니다. 
'다 마시치고'란.. '이제 이후로 아무것도 없어, 
이 다음에 오는 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아!' 라는 의미죠.

이게 바로 '다 all' 가 주는 의미거든요. 
그동안에 예수님은 말씀을 마치셨지만 '다' 마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성경의 저자들이 예수님이 '말씀을 마치셨다'고 증거했지만 
'모든 말씀을 다 마치셨다'고 증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본문 마26:1절만 있죠.

▲구약의 신명기 말씀을 보면, 신31장에 모세가 고별설교를 합니다. 
그 설교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여러분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은 참 많이 불의했고, 저도 주님 앞에 많이 죄를 지었죠. 

그리고 이제 저 요단강 너머에 가나안 땅이 보이는데 
나는 그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나는 그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고 
여호수아라는 이 청년이 제 뒤를 이어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교하는 모세가 신31: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히브리 본문에 '다' 라는 말은 없지만, 유사하게 '끝까지' 라는 말이 있죠)  *카타브

 

오늘 본문 26:1절에 '예수님께서 다 마치신 후에'와 유사합니다.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끝까지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그렇다면 모세는, 그 이후로 '말씀을 끝까지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어떻게

되나요? 모세는 느보 산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님도 '말씀을 다 마치신 후에' 남은 건 십자가뿐이었죠.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 마지막 십자가 하나만 남아 있다는 것을,
본문에서 보여줍니다.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도 (말씀을 다 가르치신 후에) 십자가만 남았습니다. 
그동안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이제 마지막 십자가로, 행동복음으로 보여주실 차례가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대하는 자세의 모범을 보여준 여인

그러므로 본문 말씀 다음으로 이어지는 '여인의 옥합을 깨뜨리는 사건'은 
그 속에 어떤 메시지가 있다는 걸 추측할 수 있을까요?     마26:6~
십자가에요.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을 동원해, 행동언어, 행동복음을 보여주시죠.

-남은 건 십자가이고, 그 남은 십자가를 대하는 여인의 자세,
-그 남은 십자가를 대하는 제자들의 무관심, 무책임함을 우리는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잡힐 시기 이틀 전, 
대제사장가야바의 관정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예수를 잡아 죽일 궤계를 모의하기 위해 이들이 관정에 모였습니다. 

26:5절에 나오는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제일 엄청난 명절이죠. 
독립기념일, 광복절과 같은 민족의 재 시작을 알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런 말을 해요. '민란이 날 수 있으니까 
우리가 명절에는 예수를 잡아 죽이는 건 하지 말자' 어떤 뉘앙스일까요?  :5

유월절 명절이 되면, 유월절 전부터 동서남북으로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방문하죠. 
수십만 명의 군중들이 예루살렘 성을 둘러싸고 운집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잡아 죽이는 이 행동을 했을 때 
예수님을 따르는 자, 따르지 않는 자들 모두 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기에  
이들은 '예수를 잡는 걸 명절 이후에 하자'라고 계획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어떻게 됐나요?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 기간에 잡히셨어요. 그리고 유월절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죠!

예수님이 잡히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유월절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셔서 약속하신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 오기까지 
50 일이 명절 안에 (유월절~오순절이 50일)
예수님의 모든 십자가 사건이 다 들어가 있어요. 뭘 의미할까요? 

부활하신 주님이 40일간 계셨고, 제자들이 10일간 기도에 힘쓴 후에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죠.

악한 백성들과, 바리새인, 유대의 지도자들의 악랄한 연대로 인해
예수님을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할 때,

그들은 "유월절 만큼은 피해서 하자"라고 모의했지만 

이건 인간의 궤계로 인해 일어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 안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작정하시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유월절 날에 예수님이 죽으신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대속적 죽음을 예표하시는 죽음이었죠. 

▲따라서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벌어진 향유옥합사건은 
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준비하는 한 여인의 헌신이었죠. 

다른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말씀을 다 마치시고' 
결국 남은 건 십자가 하나, 
그 십자가를 대하는 자세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지금 예수님은 베다니 시몬의 집에 계십니다. 
과거에 나병 환자였다기 지금은 치료를 받은 시몬의 집에 방문하신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한 여인이 옥합을 가지고 예수님앞으로 나왔습니다. 
그걸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 위에 부었죠.  :7

막14:5절에는, 이 물건은 3백 데나리온이나 된다고 이야기하죠. 
노동자 1년치 연봉과 맞먹을 만한 엄청난 값어치라고 소개합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행동을 제자들이 봤습니다. 
어느 하나 할 것 없이 제자들은 똑같은 반응을 했죠. 

26:8 '제자들이 보고 분개하여 이르되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네 번이나 죽음을 앞두고 있는 예수님의 예고를 들은 제자들이에요.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고, 기적도 눈앞에서 보았고 
그 십자가 수난을 준비해야만 했던 그 제자들에게 

이 여인이 3백 데나리온 정도 되는 값어치를 희생한 모습을 보며 
어떤 가치도 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그 정서속에 환대(명절 손님 접대)문화가 있었죠. 
여러분 근데 이 환대문화를 우리가 정확히 해석해야 됩니다. 

이 환대문화는 자발적인 사람도 많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환대했습니다. 관습, 풍습이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율법에서 그렇게 하라고 지정했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을 담아 
고아와 과부와 객에게 자기 소유를 흘려보내는 걸 법으로 지정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환대문화를 (특히 명절에는 접대를 많이 했죠)
책임과 의무로 해석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지금 여인의 행동을 '명절 환대 문화' 정도로만 이해한 것입니다. 그 환대 문화치고는 너무 돈을 많이 허비했다는 거죠.
값비싼 물건이 눈앞에서 사라지는데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여인의 이 행동을 더 무가치하게 평가절하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지금 중요한 것 하나를 놓치고 있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구속사건의 중대성을 놓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관심을 놓치고 있었죠. 사실 그들이 관심가지고 있었던 것은, 주님의 나라가 임했을 때 좌우에 누가 앉게 될 것이냐? 정도였죠. 정말 의리도 없고, 사랑도 없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26:10~11 '예수께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여기 보십시오. 10절에 '예수님이 (그들의 분개함을) 아시고라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아시고' (기노스코)는.. 깊이 꿰뚫어 안다는 뜻입니다.
피상적인 앎이 아니죠.

마12:14~15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예수께서 아시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곁에 있다가 밖으로 나가서 
'저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의논했습니다. 
예수님이 그걸 기노스코 하셨어요. '아셨어요'. 

귀로 그들의 말을 들어서 그랬을까요? 아니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것이죠. 오늘날에도 주님은 우리 마음을 꿰뚤어 보시고 '아십니다.' 고난주간을 대하는, 즉 골고다 십자가를 대하는 제자들의 자세, 즉 우리들의 마음 자세를요!

▲그런데 십자가에 달리기 전, 이틀이 남은 이 시점에, 
정작 제자들은 그걸 몰랐습니다. 

이제 남은 게 십자가 지시는 일 하나 뿐이어서 
그 십자가에만 집착하고, 그 예수님의 죽음에만 모든 심혈을 다 쏟아부어야 해도 부족할 판에 

그 십자가 복음에 온 신경을 몰두해야 하는 제자들의 마땅한 심경은 온데간데없고 
이 여인의 행위, 오히려 정당한 십자가 복음만 생각하고 헌신했던 
이 여인의 행동을 정죄하고 비난했던 것이죠. 

여러분 우리는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죠. 
지금 이 시점에, 아니 우리의 일평생에 단 하나 기억하고 집착해야 할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여러분, 옥합을 드린 여인처럼 깊이 묵상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제자들처럼, 뭔가를 허비하는 것쯤으로 격하시키고 계십니까?
사실 우리가 고난주간을 의미있게 보내려면, 시간을 내야 됩니다. 고통에 동참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그냥 고난주간이 눈앞에 있어서 
내가 이때 지금은 십자가가 필요해' 

'고난주간이 왔으니까
하나님의 은혜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좀 묵상해야 되겠어..' 
내가 할 수 있으면 금식도 하고, 미디어도 절제하고.. 이렇게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 믿고 사랑하는 제자는, 그 마음을 '행동언어'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자기도 모르게 복음전파 사역에 동참한 여인

더욱 중요한 사실은, 그렇게 3백 데나리온 데는 값어치 있는 물건인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위를 예수님이 어떻게 평가하셨나요?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인이 행한 일이 회자될 것이다'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 여인의 행위도 복음의 한복판에 끼어넣어져서 
복음의 소식에 함께 전달될 것이다!' 

여러분, 이 칭찬이 가슴에 와 닿으십니까?' 
성경은 이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 때문에 
옥합을 깨뜨렸다고 먼저 설명한 적이 없습니다. 

이 여인이 옥합을 가져오기까지 어떤 심경을 담았는지도 증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을 향해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여자는 내 십자가 장례를 기념하고 준비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우리 마음속에 동기와 목적을 단단하게 붙잡지 않고도 
예배드릴 수 있고 헌신할 수 있죠. 

'내가 그리스도의 군사여서, 내가 하는 일이 
십자가 복음에 혁혁한 공을 세울 거야!' 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심정 하지 않아도.. 주님이 우리에게 칭찬하실 수 있는 거예요. 
'이 여인이 내 십자가 복음과 장례에 참여했다!' 

어쩌면 이 칭찬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겠습니다. 
동기와 목적이 흐릿할지라도,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사역과 헌신과 선교와 교제가 
주님의 복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할지라도 

그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묵상하며 
예배에 자리로 나오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게 바로 복음과 십자가를 묵상하는 성도가 얻는 영광입니다. 

'복음이 전하는 소식에 아무개의 헌신도 기억될 것이다.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는 일에 그 헌신자의 노고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