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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8:34 오늘날 십자가 신앙에 최대 도전은?

LNCK 2023. 4. 3. 15:55

◈오늘날 십자가 신앙에 최대 도전은?          막8:34          편집장 글

◑서론

과거에 '앙꼬 없는 찐빵' 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앙꼬 : 팥소
십자가를 빼버리면.. 기독교도, 성경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수밖에 없는.. 
그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십자가 신앙이라는 거죠.

우리가 매주 십자가를 묵상하며, 십자가 신앙으로 사는 것이 
기독교인의 본분입니다만, 
이번 주간은 특별히 고난주간을 당하여, 
매일 '십자가 찬송'도 부르시고, 

또한 금식이 어려운 분들은, 
적어도 성금요일 오전 9시~오후 3시까지
즉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시간 동안 만이라도
최소한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그 고난과 그 은혜에 동참해서 금식하는
저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이죠.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분량으로 볼 때, 사복음서의 1/3~1/2 분량이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반 기간 중, 마지막 일주일 동안은 기록해놓고 있죠.

그만큼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사복음서의 저자는, 
결국 예수님의 생애를,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십자가와 부활'로 결론 짓고, 수렴해 감을 알 수 있습니다.

◑본론 / 그럼 십자가 신앙의 정반대는 무엇일까요?
십자가 신앙의 최대 도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기복주의 와 성공주의, 물질주의 입니다.

▲기복주의 와 성공주의가 '십자가 신앙'의 정반대가 되는 이유는,
자명합니다. 

기복주의 와 성공주의, 물질주의 (이하 성공주의)는..

예수님 믿어서, 복을 받겠다는 것이고
십자가 신앙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가 감사해서, 내가 희생하고 
사명 감당하며 살겠다는 것이죠.

전자는, 젊은이들 표현으로, 빨대 꽂고 예수님께 뭘 받아내겠다는 것이고
후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감동 받아서, 내가 예수님께 뭘 드리겠다는 것이죠.
둘은 정반대가 될 수밖에 없죠.

그러므로 성공주의를 추구하는 신앙인은.. 십자가 신앙을 버리게 되고 
십자가 신앙을 추구하는 신앙인은.. 성공주의를 버리게 되죠.

오늘날 만약 개인이나 공동체가 '십자가 신앙'을 놓치고 
오래도록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가 아니라

예수님은 자기를 위해서, 뭔가를 끊임없이 해 주셔야 하는
자기 시녀, 자기 하인 부리듯 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죠.

▲십자가 신앙을 버리고, 성공주의를 추구한 폐해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 눈에 드러나고 있는 가장 극심한 폐해는
성공주의를 추구한 결과 .. "다음 세대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교회에 가서 늘 성공한 몇 사람 (성경에 성공한 사람 다 합쳐서 몇 명 안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다윗, 사무엘, 기드온, 
다니엘, 에스더... 아주 범위를 넓혀도 약 20명도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 안에서 성공한 사람들 만으로 부족하니, 기업인들 예를 듭니다.
카네기, 록펠러, 워너메이커, 헨리 포드, 무슨 대통령, 무슨 노벨상 수상자...

이게 다 좋은 말인데, 어릴 적부터 우리가 위인 전기를 많이 읽으면서 자랐고,
심지어 나폴레옹같이, 칭기즈칸, 알렉산더 같이(엄청난 살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하면.. 무조건 선한 사람이라는 거죠. 

이걸 강조하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는 이유는
요즘 아이들이 집에서 한 두 명 낳아 키우다보니 다 귀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가서, 취직도 하고 하는데..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처럼, 자기가 해보니까 세상에서 "성공"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 뭔가 다니엘처럼 자기가 승승장구 할 것 같은데...
현실은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거죠. 반에서 1~2등 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 뭔가 기독교가 요구하는 '표준, 목표'에 자신이 미달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요셉, 다윗, 다니엘은.. 롯데 월드 꼭대기 층처럼, 100층처럼 높은데,
자기는 고작 3~4층에서 지내고 있으니... '나는 하나님 은총을 덜 받았나봐?'
하든지 아니면 '기독교 신앙은 나와 맞지 않나봐?' 한다는 거죠.

요즘은 '아래 떨어져 나갈 청년들도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 30년 전에 그랬습니다.
대학입시를 보면, SKY같은 명문대에 합격하는 학생들은
교회 중고등부 입시생 중에 확률적으로 10% 안 될 겁니다. 

지금 지방대 간 학생들, 또는 재수생들은.. 교회가 부담스러워 집니다. 
교회 장로님, 권사님 시선은.. 언제나 명문대 합격생에게 주목되어 있고,
언제나 그들 등만 두드려줍니다. '참 잘 했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었어!'

그럼 지방대나 재수생들은, 하나님 영광 가린 것입니까?

그런데 가정에 가면, 부모님들도.. (속은 어떤지 모르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것처럼.. 말은 안 해도, 그런 시선으로 자기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도, '그들만의 리그'인 것처럼
명문대생이 되어야, 교회에서 자기를 뿌듯하게 쳐다보는 것 같습니다.
'쟤는 우리 교회의 자랑이야!'

이런 성공주의적 가치관에 깊이 물들어있는 부모세대는
가정에서.. 청년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으며 (넌 성공하지 못했잖아!)
교회에서도.. 청년들에게 스트레스를 줍니다. (성공한 사람이 잘 믿는 사람!)

저는 이 사실을 아주 무겁게 받아들입니다. 
교회에서는 다음 세대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고 아우성이지만,

그들이 마음놓고 교회를 다닐 수 없는 환경을,
어쩌면 교회와 어른들이 조성했을 수도 있습니다. 성공주의 때문에!

세상에 성공한 사람은 1%나 아니면 0.1%밖에 안 되는데,
나머지 성공하지 못한 99%의 사람은
'신앙심이 깊지 못하거나'
'하나님께 별로 영광이 안 되는, 별 도움이 안 되는 인물'로

자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고, 
그런 풍토가 가정에서나/교회에 조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청년들을 교회에 등지게 만든.. 주요 요인이었다고 봅니다.

물론 넉살이나 사교성이 좋아서, 재수생/취준생/무직자도 
교회생활 열심히 하는 청년도 있죠.
그러나 대부분의 청년들은 '자기 현재 상태'에 매우 예민해져 살고 있습니다.

65세 넘은 노인들은 괜찮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성공'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열외니까요.

◑십자가 신앙에는 "영광, 권위"가 있습니다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는 이유가.. 그게 무조건 고난이다, 그래서 손해다..
라는 생각에만 빠지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십자가를 지는 성도에게는 '영광과 권세'가 있습니다.
마치 성자의 뒷머리에 보인다는 동그란 띠(헤일로)처럼
아무도 십자가를 지기 싫어하는 세상에서
홀로 십자가를 지고 묵묵히 주님의 길을 따르는 성도에게는
세상이 범접할 수 없는 영광과, 권세가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값비싼 자동차와 고가의 명품 브렌드 옷과 가방으로 치장해서
자기의 영광과 권세를 얻으려고 합니다. 
그것도 영광과 권세가 없지 않아 조금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약속하신 권세가 아니요, 세상 권세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성도가 가지 영광 glory 이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가지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빽이 되어주신다는 영광입니다. 

-그의 가정도 (경제 형편과 관계 없이) 안정적이고, 평안합니다. 

-그의 기도가 잘 응답되고, 늘 얼굴이 온화하며,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해 주신다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즉 주님 주신 사명을 따라 기꺼이 희생하는 

성도의 삶에는 '권위, 권세 authority'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권세가 있었듯이, 그의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그의 사회적 지위에 관계 없이, 가끔씩 그가 하는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핍박했다가는.. 주님이 함께하셔서
 그들은 큰 코를 다치거나 혼줄이 나게 됩니다. 주님의 징계를 받죠.
 직장에서나 군대에서나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의 권세를 가진 사람!

-그의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그가 없으면 직장이 마비되다시피 합니다.
 그가 있어야 사무실이 별 탈 없이 잘 돌아갑니다. 
 왜냐면 그가 늘 사무실과 그 인원들을 위해서 중보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나 경조사 때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도
 예수님의 권세가 있는 참 성도가 그 자리에 끼일 때는.. 모임이 화목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만 모인 자리는.. 서로 자랑하고, 서로 깔보다가.. 
 참석자들이 스트레스만 가득 받고 각자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돈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반 세겔 성전세를 못 내서, 
베드로가 낚시해서, 물고기를 잡아서, 그 입에서 한 세겔을 꺼내서 세금을 낼 정도 였죠.

또 제자들도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다가, 이삭을 손으로 비벼 먹은 일로 인해
바리새인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평소에 좀 잘 먹고 다녔더라면.. 그런 해프닝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에 삶 자체가 '십자가의 삶'이었죠.
그 예수님의 삶에는 '권세, 능력, 영광'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권세, 능력, 영광이 없었다면..
정말 불쌍하게 이 세상에 오셔서, 가련하게 사시다가, 저주스럽게 생을 마감하셨을 것입니다.

결코 그렇지 않죠. 예수님은 공생애 첫 시간부터 영광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7

우리도 비슷한 체험을 만약 한다면, 그 감격이 적어도 20년은 갈 겁니다.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나를 기뻐하시네?'
그 영광으로 적어도 20년은 우려먹고 살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영광'을 누린 적이 있었죠.
마16:18~19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과거에는 이런 예가 많았지만, 오늘날에도 드물게 있습니다.
심방오신 목사님, 전도사님이 우리 집 사정을 훤히 꿰고 있으신 겁니다.
그 분의 설교를 들어보면, 그 분의 기도를 들어보면
정말 누가 우리 집 사정을 그분께 고자질 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죠.

그게 아니라, 하나님이 기도하는 종들에게 주시는 '권세와 영광'인 것입니다. 
그들은 나라의 운명을 예언하기도 하는데, 고작 누구 집안 사정을 왜 모르겠습니까?

(여기서 조금만 더 나가면 위험하지만)
그래서 기도의 권세가 있는 주의 종들은, 
과거에 성도들에게 뭔가 선물을 받기를 기뻐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그 가정을 위해서 기도해 주면,
그 성도의 가정, 직장, 자녀가 이상하게 잘 되는 것입니다. 
그 권세 있는 주의 종이, 매일 아침마다 그 가정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주기 때문인 거죠.

▲지금 주제는 '십자가를 지는 성도가 가지는 권세 와 영광'입니다. 

오늘날 이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마저도, 자기 고유의 권세와 영광에는 별 관심 없고,
세상 사람들과 같은 권세와 영광을 가지려고, 그들과 경쟁하고 있습니다. 

좋은 차 타고.. 명품 몸에 두르고.. 사업과 직장에서 성공해서
에헴! 하고 살려고 합니다.

그런 '성공'을 추구하는 성도 백명 모인 교회보다
'십자가 신앙'을 지향하는 성도 열명 모인 교회가.. 훨씬 더 강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그 성도의 영광과 권세를 보고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존경해야 될 터인데.. 

거꾸로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이 가진 영광과 권세를 보고
부러워하고, 동경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이게 성공주의 신앙인 거죠.

성도의 권세와 영광이 어디서 나온다고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에서 나오죠!

그런 자부심이 성도에게 가득 넘쳐야 될 터인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지 않다 보니까
성도가 자기 영광과 권세, 하나님 자녀로서, 천국 백성으로서의 영광과 권세를
다 자진해서 반납해 버리고... 세상에 성공하고 출세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렇지 못한 젊은 세대를 보고서 못 마땅해 하고, 스트레스를 주니까,
청년들이 집을 떠나서 혼자 살고, 교회를 떠나서 자신은 '무교'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교회에서 식당 봉사를 하는 사람도.. 용역을 사서 한다고 하죠.
물론 일자리 창출하는 게, 그들을 돕는 길이기도 하지만, 
아무도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니까.. '십자가 없는 교회'가 되고 마는 거죠.

여러분, 부모가 자녀를 키울 때.. 의무감에서 키웁니까? 그렇지 않죠.
내가 낳은 자녀니까, 정말 본능적으로.. 무서운 사랑과 헌신으로 키우죠.

십자가 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무감으로 지는 게 아닙니다. 
진정 예수님이 자기 피와 생명을 다 드려서, 나를 구원하셨다고 믿으면
정말 본능적으로, 무서운 사랑과 헌신으로 주님을 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를 가급적 지지 않으려고 하는 성도는,
정말 예수를 믿는 것인지... 복음의 A B C 부터, 기초부터 다시 따져봐야 됩니다.
'예수를 믿는데, 십자가 신앙으로 살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인으로 태어났는데, 김치는 싫고 치즈가 좋다'는 사람처럼.. 말이 안 되는 거죠.

그렇지만 오늘날에도 십자가를 지는 성도들이,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교도소 선교하시는 분들은, 몇 시간씩 차를 타고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상담해 줍니다. 서신교환을 하기도 합니다. 

교도소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가는 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거기 갈 때는, 자기 지갑을 열어서, 과일과 빵이라도 사가야 됩니다. 

군선교 하시는 분들도 먼 길을 다니신다 하더라고요.

해외 오지에서 선교하시는 분들은 더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다니십니다.
이틀 사흘 걸려서 찾아가서 기도해주는 원주민들도 있습니다. 
정작 원주민들 중에는, 절반 이상이 바라지도 않는데,
선교사가 일방적으로 가서 사랑해주고, 친구가 되어주고, 기도해주곤 하죠.

탈북민 선교하시는 분들도, 제일 난관이 '십자가 신앙'을 어떻게 심느냐 입니다.
정말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들어온 탈북민들이 제일 원하는 것은
십자가 신앙이 아니라, 안정된 직장과 고소득 직장입니다. 
상대적으로 기반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탈북민들은, 돈벌이에 몰두하게 됩니다. 

해외에 나가서 선교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주민들 중에, 젊은 청년들은 다들 돈벌이와 직장을 원합니다.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에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먹고 살고, 돈 모아야 된다고들 하죠.

이렇듯 '십자가 신앙'은 오늘날 교회에 엄청난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주의' 와 '맘몬 신앙'과 정면으로 부딪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연로한 분들만 넘쳐나는 이유가,
직장에서, 돈벌이에서, 그런 경제활동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퇴직 후 세대가
시간이 많으니까 하는 게 '교회 활동, 신앙 생활' 이렇게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이 성공주의, 맘몬주의의 도전을 어떻게 뚫고 나갈 것이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오늘날에도 돈벌이 이런 것 우선하지 않고,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청년, 젊은이들이 소수 있기는 합니다.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감소하는 신학교 지원률에서 보듯이
대다수는 물질과 성공을 원한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도전이죠!

일단 "십자가의 영광, 십자가의 권세, 십자가 지는 삶의 복"
이런 것에 대한 사례 발굴과, 가르침과, 본보기가 많이 되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게 뭔지 전혀 몰라서, 세상 사람들처럼 넓은 길로 따라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존 뉴턴의 통찰력

하늘에 있는 두 천사가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임무를 부여 받았다.

한 천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 가서 통치하라는 것이었고,

다른 천사는, 가장 더러운 마을에 가서 그 거리를 청소하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 임무만 알뿐, 상대가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는 전혀 몰랐다.

사실 그 문제 즉, 두 천사의 임지가 하늘과 땅처럼 완전히 다른 그 차이는, 

두 천사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 그런가?

 

그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나라에 가서 통치하는 것이 꼭 위대한 명령이라 할 수 없고,

가장 더러운 마을에 가서 청소하는 것이 덜 중요한 명령이 아니다.

둘은 하나님의 명령, 사명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제자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맡기셨는가?’ 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이 맡기신 그 일 순종, 수행하고 있는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