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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5:17~20 부활

LNCK 2023. 4. 4. 10:55

기독교의 핵심단어들6 부활 -  - YouTube

◈ 부활           고전15:17~20, 롬1:4, 7:4             ☞   부활절 설교모음 
[기독교의 핵심 단어 #6]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라고 보통 말합니다. 
'부활의 종교'라고 하는 얘기는 '부활'이 기독교 안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거예요. 

'부활'이라는 것을 빼버리고 나면, 기독교는 기초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에 
그 위에 세워진 수많은 진리들이 다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가 '부활의 종교'라고 하는 이야기는 
기독교는 부활이라고 하는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져 있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부활'이라는 요소는 기독교의 초석과 토대를 이루고 있는 
아주 중요한 믿음인데, 이것이 단순히 기독교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저와 여러분의 삶의 기초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면서 
부활이 우리 삶 가운데 어떤 의미가 있는가?  
부활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믿고 취해야 하는가? 
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가 부활절 메시지를 준비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찾아봤습니다. 
책도 뒤져보고, 인터넷에서 부활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이것 저것 조사해보고 찾아보다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건 뭐냐면 '사람들이 부활에 대해서 굉장히 복잡하게 얘기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터넷 같은데 찾아보면 
부활에 대해서 참 복잡한 얘기들을 많이 합니다. 

뭐 부활의 모티브가 어떻고.. 하여간 복잡한 얘기를 하는데 
신학적으로, 또 철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어떤 메시지들은 너무 복잡하고 심오해서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얘기인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읽어봐도 잘 이해되지 않는 굉장히 복잡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런데 제가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성경을 읽어보면서 
'성경은 부활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살펴보니,

특별히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부활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는가? 
바울이 갖고 있던 부활에 대한 신학은 뭔가? 

그걸 제가 살펴보면서 아주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는데 
예수님의 부활은.. 세상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복잡하지 않다는 거예요. 
굉장히 단순하다는 거에요.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활'에 대한 사실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 사실을 얘기하고 있는데 

1)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는 거에요. 
신학자들이 설명하는 바, 부활은 무슨 모티브고.. 종교적 어쩌고 이런 게 아니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게 사실 FACT 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어보시면, 부활에 대해서 얘기할 때 보면 
부활이 주는 의미가 어쩌고.. 부활의 철학적인 의미가 어쩌고.. 
이런 얘기 별로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얘기가 뭐냐면 '예수가 부활한 게 사실이다.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 못 믿겠으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들한테
물어봐라' 성경은 대부분 이런 얘기들이에요.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성경의 첫번째 메시지입니다. 

2) 두 번째 메시지는 "그렇기 때문에 너희도 부활할 것이다" 라는 거에요. 
너희도 부활 할 것이고, 이 부활에는 실질적인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우리가 사망을 극복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아주 단순한 부활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을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면 아주 단순한 사실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는데 다시 살아나셨다는 거예요. 
이걸 뭐 복잡하게 설명할 겁니까?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셨다는데.. 그냥 그거죠. 

그런데 부활에 대한 논증 이야기들이 복잡해지는 것은 
부활을.. 능력이 아닌 이론으로 이해하고 설명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이 전하고 있는 부활은, 그렇게 복잡한 메시지가 아니에요. 
물론 성경에는 우리가 파고 파도 그 깊이의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영적인 깊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기본적인 목적은, 신학자들의 지적 탐구를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에요. 
성경의 기본적인 취지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책이라는 거에요. 

그 얘기는 메시지가 쉬워야 된다는 거죠. 
우리 하나님은 위대한 신학자들 만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생각하기 좋아하는 머리 좋은 사람들만 하나님이 아니시고 

 

우리 하나님은 짐승을 좇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프리카 마사이 족의 하나님도 되시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도 이 말씀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자들의 하나님이시라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얘기하고 있는 진리는, 복잡한 진리가 아닙니다. 
깊게 생각하고 머리가 좋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한 거예요. 
즉 '예수가 살아나셨다'는 거에요.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거 이해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성경은 너무 단순한 거예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분이 우리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그분이 죽고 나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거에요. 

아주 단순한 진리인데, 이것을 믿는 순간 우리 삶에 능력으로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의 내용 자체가 복잡한 게 아니라는 거에요. 

아주 단순한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뭐가 있어요.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그 말씀을 믿는 순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지금도 살아 계시고 
그분이 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믿는 순간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거예요. 

진리를 통해서 깨어진 가정의 회복되기도 하고 
내 안에 무너졌던 자아가 다시 살아나기도 하고 
또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는 실질적인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부활의 이론이 아닌 부활의 능력을 
여러분의 것으로 취하시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부활의 능력'이라는 것은, 기독교가 바로 능력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는 거에요. 
깊게 생각해야만 깨달을 수 있는 이론이 아니고... 

그러나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이 안에 복잡한 이론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깊이 있게 들어가면,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파고 파도 더 팔 수 밖에 없는 
그런 정말 지적인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안에 들어가게 되면 
이 안에 굉장한 지적인 즐거움을 맛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파도 파도 끝이 없어요. 
'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어떻게 이런 이런 사상들이 있을까?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할 정도로 
정말 깊이 있는 그런 지적인 보물들이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이걸 가지고 접근하는 사람들은 
거기서 굉장한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게 복음의 본질은 아니라는 거에요. 
그건 '하나님 이라는 그 자체'가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한 깊이를 가지신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지, 성경이 주고자 하는 메인 메시지는 아니라는 거에요. 

성경이 주고자 하는 메인 메시지는 
'예수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원하신다'는 거에요. 
이건 아주 단순하고 간단 명료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분이 하나님이신 걸 우리에게 증명하셨다는 거에요. 
그것을 믿으라는 거에요. 
이 단순한 메시지가 여러분들 가운데 능력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바울이 가르치는 부활>

자 그렇다면 성경이 이야기하고 있는 부활 
특별히 오늘은 바울이 쓴 글들을 살펴볼 텐데 
바울이 얘기하는 부활은 도대체 뭘까요? 
절대 어려운 가르침이 아니라고 했죠. 

바울이 얘기하는 부활에 대해서 
바울을 통해, 성경이 얘기하는 부활의 의미를 살펴봅시다. 

◑1. 첫번째, 성경이 얘기하는 부활의 메시지는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 입니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개역개정에서 '선포됐다'고 나오는데 
예전 성경에는 부활로 '인정되셨으니'..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이렇게 나옵니다. 

원어에 보면 '인정하다. 선포하다' 둘 다 나옵니다. 

자 부활의 첫번째 의미는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부활로 인정하게 됐다는 거에요. 

우리가 어떤 계약서를 쓸 때 공증 같은 거를 하죠. 
공증 사무실에 가면, 공증하는 사람이 도장을 꽉 찍어서 인증한다는 거예요.

공증한다는 의미는 '이것은 사실입니다!' 하고 보증 하는 거죠. 
부활이 그런 거라는 거에요. 

마치 공증하듯이, 
예수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도장을 꽝 찍어서 인증하는 이것이 
부활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선포)되셨으니' 롬1:4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부활이 주는 첫번째 가르침은 뭐냐면 
예수가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인증했다는 거에요.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했다는 거에요. 

나아가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수많은 말씀들도 사실이라는 거에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이 비진리를 가르치실 리 없죠. 하나님은 진리만 가르치시죠.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면 
성경에 기록된 다른 수많은 것들이, 수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근거가 있을까요?
부활도 역사적 사실이 아닌데.. 그분이 하나님이 아니신데...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었다면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진짜 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냐는 거에요. 

그분이 인간인데.. 자기 생각을 얘기한 건지..  
아니면 그분이 잠깐 정신이 나가서 이상한 얘기를 한 건지.. 
아니면 자아도취 돼 가지고 그냥 스스로도 착각해서 이상한 말씀을 하신 건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인증되시고,  
그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내가 생전에 했던 말들이 엉뚱한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내가 했던 얘기들이 진리'라는 거죠.

주님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했던 모든 얘기들이 사실, 복음서의 모든 내용들이 사실' 이라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거라는 거예요. 
이것이 부활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첫번째 메시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참 중요한 얘기에요. 
그래서 지난 2천 년 동안의 교회 역사를 보면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공격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몰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천 년 동안 교회가 지켜왔던 진리는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거에요. 진짜 역사에 있었던 일이라는 거죠.

이것은 단순히 어떤 상징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냥 부활했다고 믿자'
이렇게 단군신화나 삼국유사 식으로 믿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부활이 역사적 사실인 이야기가 중요한 것은 
그로 말미암아 다른 성경의 주장들도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때문에 그래요. 

만약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면 
공증서를 다 작성하고도, 도장을 안 찍어준 것과 마찬가지죠.

성경(공증서에 비유)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요?
도장(부활에 비유)을 찍어야 마무리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부활이 꼭 그런 거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모든 가르침을 다 가르치시고 
구원에 대해서 다 말씀하시고 마지막으로 도장 찍으신 게 부활인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굉장히 강조합니다. 

고전15:3~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여기 보면 여러분 예수님의 부활을 본 사람이 5백 명이 넘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하거든 가서 물어보라!' 는 거에요. 
5백 명한테 가서 물어보라는 거죠. 5백 명이나 봤다는 거죠. 

여러분, 바울이 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30~40년 안쪽 이에요. 그러니까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 

그 당시에, 부활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뭐였을까요? 
목격한 증인에게 가서 물어보는 거죠.
그래서 바울이 그 말을 하는 거예요. '가서 물어 봐!'
이거보다 확실한 방법이 어딨어요? 

그런데 반대로, 이것은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에요. 
'가서 물어봐!' 했다가, 사실이 아니라면 큰 일 나지요!

이게 만약 여러분, 부활의 목격자가 한두 명이었다면 짜고 칠 수 있어요. 
엉터리로 말을 만들어 내서 소문내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렇게 하시고 저렇게 하시고 저렇게 하셨다고 우리가 말을 맞추자... 
한 몇 명이라면, 서로 말을 맞출 수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 5백 명은 서로 말을 맞출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서로 말이 안 맞게 되어 있죠.
그래서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 고린도전서도 폐기되었을 거예요.
그당시 사람들이 가만 두지 않았을 겁니다.

▲여러분 어떤 한 역사적인 사실이, 이게 진짜로 있었던 얘기인지 
아니면 누가 지어낸 허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여러분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셰익스피어가 지은 소설이죠. 물론 역사를 배경으로 쓰긴 했지만 
실제 일어났던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이 역사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그런 툴(도구)들을 
이미 역사학에서 역사학자들이 많이 계발해 놨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도 <삼국사기, 삼국유사>이런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중에 과연 어떤 게 역사이고, 어떤 것이 허구일까? 
이런 걸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다 계발돼 있어요. 

1) 어떤 것이 정말 역사적 사실이라면 많은 사료들이 있어야 돼요. 
한 사람만 기록하면 안 된다는 거죠. 소설 쓸 수도 있으니까요.

많은 사료들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 사람만 그 얘기를 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도 그 이야기 하고 있어야 되고 
저기 어디 다른 데서도 그 이야기가 나와야 되고 
하여튼 중요한 사건이라면 여러 명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렇지 않고 '한 사람만 딱 이걸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지은 소설 인지/ 사실인지 알 수 없다는 거죠. 

2)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으면 반드시 흔적이 남아요. 
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에 어떤 결과들이 남는 거죠. 

예를 들면 세종대왕이 실존인물이다 그러면 
그 사실에 대한 흔적은 한글이 남아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뭔가 그 뒤에 남아 있는 물증들이나 2차 3차적 사건이 있다는 거죠.

그럼 부활에 대해서 이런 자료들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무지하게 많습니다. 
부활에 대한 사료들을 찾아보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보다 사료들이 더 많아요. 

만약 그게 궁금하시면 제가 2012년도에 설교했던 
'부활의 역사성'이란 설교를 다시 찾아보세요.     *복음 1: 부활의 역사성  YouTube
거기에 사료들을 쫙 정리해놨는데, 굉장히 많은 사료들이 있고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거들도, 성경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고 
세상 기록에도 몇 군데 남아 있어요. 세상 기록들, 세상 역사가들이 쓴 책에도 
'부활했다'라고 기록하지는 않는데 
'부활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그 당시에 썼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죠.

그러니까 이런 기록들이 사방에 남아 있단 말이에요. 
그 이야기는, 이것이 단순히 어떤 골방에서 이렇게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

누군가 목격한 사람들이 있고,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고, 오백 명이 봤고.. 
이 이야기는 부활이 사실이라는 거죠.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래서 따라오는 메시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실이다>는 거에요. 

부활로 인해, 예수님이 하나님으로 증명, 공증, 인정되었으니,
하나님이 틀린 말이나, 비진리를 말씀하시진 않죠.
그래서 공생애 동안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말씀이.. 진리 임이 인정된 겁니다.
즉 성경(복음서)의 메시지는 사실이요, 진리라는 것이.. 확증된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윤리적인 가르침에 주목해요. 
예수님께서 '오른뺨을 치면 왼뺨도 들이대라고 했다. 
뭐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랬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윤리적인 가르침에 주목하지만 
사실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장 핵심은 윤리적인 게 아니었어요. 
예수님의 가르침에 가장 핵심은 뭐냐하면 내가 하나님이라.. 는 거죠.
이게 가장 큰 주장이었어요. 

요한복음에 보면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데   *요10:30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이 이야기는 뭐냐면   :31

이게 번역되면서 우리말에는 약간 뉘앙스가 약한데 
히브리적 표현에 의하면 '내가 하나님이니라' 이 뜻이에요.
(예수님이 그런 의미로 말씀하셨고, 사람들이 그렇게 이해했다는 거죠. 당시 문화에서.
그러니까 히브리 사람들이 돌로 들어 치려고 했던 거죠.)  

'내가 아버지와 친하니라' 그런다고 왜 돌로 쳐서 죽일 이유가 없거든요. 
이거는 '내가 하나님이라!'고 얘기했으니까 신성모독으로 
예수님을 돌로 치려고 한 거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명확하게 뭐라고 주장하시냐면 
'내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세요. 
이게 예수님 주장의 가장 핵심이에요.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가르침들은 다 두번째, 세번째이고
예수님이 주장하셨던 가장 핵심은 '내가 하나님이다' 라는 거에요. 
그리고 이것을 뭘로 증명하신 거에요? 부활로 친히 증명하신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가장 핵심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의 기초에는 뭐가 있어요? 
부활이 사실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 것부터 시작돼요. 

엄격히 말하면, 부활이 사실이라는 건 
믿는 게 아니고, 확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돼요. 
부활이 사실이라고 하는 건 확인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나는 왜 그걸 몰랐지? 
안 찾아봤으니까 모르는 거예요. 

세종대왕이 실존 인물 임은 어떻게 확신하고 있죠? 
교과서에서 배웠으니까! 

사람들이 참 단순해요. 교과서에서 배우면 다 진리라고 믿어요.
근데 그 중에 상당수 진리가 아니거든요. 
그래서 역사교과서도 자꾸 바뀌기도 하고,
자연과학같은 경우에도 교과서가 틀린 게 많아요. 대표적으로 진화론 같은 거.

찾아보세요. 여러분, 실제로 시간을 내어서 찾아보시면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는 증거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아요. 
굉장히 많아요. 그리고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두 번째 메시지는 
<나도 예수님처럼 영생한다> 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면, 그 다음에 두번째 메시지는 
'그분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게 된다'는 거에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인치신 게 뭐냐 하면 
저와 여러분이 죽고 나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거에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거에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지 안 되는지는 지금 잘 모르죠. 
죽어봐야 알죠. 

그렇지만 부활이 사실이라면, 이 약속도 사실일 거에요. 
물론 우리가 죽어 보기 전에는, 영원히 사는지 안 사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어요. 
그렇지만 확인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단서들을 남겨주셨다는 거에요. 

 

'내가 죽었다가 살아나는 걸 보여줄 텐데 
내가 다시 부활하는 걸 보면 
너희도 이렇게 부활할 거라는 걸 믿어라!'
 
그리고 부활하신 거거든요. 증거를 보여주시는 거죠. 
그래서 이거를 보는 사람은 '아~ 내가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지만 
죽고 나서도 영원히 살게 될 거구나,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거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되고, 믿게 될 거라는 거에요. 

예수가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거라는 거에요. 
멸망치 않게 될 거라는 거에요. 
이것이 부활이 주는 두 번째 메시지입니다. 


◑3. 부활이 주는 세 번째 메시지는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는 거에요. 

막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거 말고도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는 말씀은 
성경을 찾아보면 굉장히 많습니다. 

행1:11 '너희가 왜 하늘을 쳐다보느냐 인자는 들리음을 받은 그대로 다시 오리라
이렇게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거라는 메시지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데 이것(재림)도 사실 일 거라는 거에요. 미래 일인데 어떻게 압니까? 
부활을 통해서 아는 거에요. 

부활도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잖아요?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거든요.
그러면 미래 일도, 과거의 데이터를 보고 예측할 수 있죠.
재림도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구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고 
심판하러 오신다는 거에요. 그때가 오기 전에 예수를 믿으라는 거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예수 믿고 구원받으셔야 됩니다. 
혹시 여러분의 가족 가운데 아직 구원받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구원받으셔야 돼요. 

우리가 살아 생전에 재림이 오지 않는다 해도,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는, 죽은 자들이 살아나서 예수님을 뵙게 됩니다.

그때 살아서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자들은
영원한 멸망으로 처할 거라는 거예요. 
이게 부활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몸의 부활을 입고서 깨어날 때.. 그 예수님의 재림 때, 그 심판의 날에 
반드시 구원 받아야 된다는 거죠.


◑4. 부활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주님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내 곁에 살아계신다> 입니다.

롬7: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여기보면 아주 재밌는 표현을 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가서 우리가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거에요. 

뭐냐면, 그분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거에요. 
살아계시니까 그분한테 가라 그러지요. 
죽어있는데 가서 어떻게 만나겠어요? 

이 본문 말고도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표현이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그 이야기는 뭐냐면, 부활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가르침은 
그분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다는 거에요. 

그분이 부활하셔서 지금도 (이를테면 2023년에도) 존재하신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로 열매 맺게 하신다는 거예요. 롬7:4 
그 뜻은, 우리 삶에 역사 하셔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신다는 거에요. 

 

바울의 논증은, 부활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보려면,
지금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보라는 거에요. 

'너희 삶 가운데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을 지금 만나보라'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더 확실한 증거 아닙니까? 

'예수님 살아계시니까 지금 만나봐!' 
기독교는 여러분, 아주 자신 있는 종교라는 거예요. 
'부활을 못 믿겠으면 직접 만나보라!'는 거예요. 

△인도의 유명한 성자로 알려진 썬다싱이라는 분이 계셨죠. 
그분이 영국에 갔을 때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질문을 했는데, 특별히 대학교수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의 오랫동안 젖은 전통종교인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썬다싱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어요. 
부활하신 예수가 지금도 살아 있기 때문이라는 거에요. 

여러분 기독교는 이론이나 종교가 아니라는 거에요. 
그건 지금도 부활하셔서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그분은 살아 계시기 때문에, 지금 현재도 경험되어질 수 있다는 거에요. 
물론 우리가 오늘날 몸을 입은 예수님을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거죠.

요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6: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정리하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건데 
승천하시고 나면, 성령 하나님이 예수님 대신에 세상에 오신다는 거죠.

성령님이 세상에 오셔야 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예수님은 육체, 몸을 입고 계셨기 때문에, 육체의 한계를 가지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분은 이스라엘 땅에 오셨지만 
평생을 사시면서 그 땅을 벗어나신 적이 없어요. 
그리고 동시에 두 곳, 세 곳에서 사람을 만나 실 수가 없으세요. 
몸의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근데 성령님은 이 육신의 제한을 벗어나신 분이세요. 
똑같은 하나님이시지만, 육신의 제한을 벗어나셔서 
모든 사람을 서울, 대전, 대구, 목포에서 동시에 만나실 수 있는 분이세요.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성령님을 대신 보내신 거예요.
그게 우리에게 유익이니까요.

그리고 그분이 오시면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걸 다 생각나게 하고, 
그분이 오시면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다 기억나게 하실 거라'는 거에요. 

그분이 오셔서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해주실 것이고 
예수님을 만나는 걸 그대로 경험하게 해줄 거라는 거죠.  주1)

그래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냐면 '성령을 받으라'는 거에요. 
이것은 여러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일이고요. 
누구든지 원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 그랬어요. 

여러분 성령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요. 

▲또한 그분은 부활해서 살아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도하면 응답하십니다. 
살아계시니까 응답하시는 거지요. 
살아계시지 않으시면, 우리 기도가 어떻게 응답이 되겠어요? 

기도가 응답된다고 하는 것은 
이분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내 기도를 듣고 계시다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기독교는 우리가 기도한 것이 응답받는 능력의 종교이지, 
그저 이론이 아니라는 거예요.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기도가 응답되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요16: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 해보세요. 기도 응답받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셀 수 없는 기도 응답을 받았어요. 

크고 작은 수많은 응답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기적도 있었고요. 
또 어떤 것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 아는 응답도 있었고 
'이게 어떻게 가능했지?' 응답을 받고도, 의아스러울 정도로 놀랄 때도 있죠.

기도 했을 때, 눈동자가 없던 소녀가 갑자기 눈동자가 생겨서 보게 되기도 했고, 기도했더니 귀머거리 소녀가 듣게 되기도 하고 

또 우리 교회에서도 기도했더니 
무릎을 쓸 수 없었던 체육대 여학생이 
무릎 인대가 끊어져서 운동선수 생활은 끝났다고 했는데 
이게 그냥 하루 아침에 나아서, 무사히 계속 운동을 하게 되기도 했고... 

기도했더니 불치병 이었던 사람이 낫기도 하고 
기도했더니 귀머거리 소년이 듣게 되기도 하고... 
다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얘기들이에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거에요. 
왜요? 예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이것이 여러분 부활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부활의 교혼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뭐라 그러냐면 
고전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기독교는 말이나 이론이 아니고 능력이라는 거에요. 

물론 어떤 지식이나 이론이 불필요 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에 강조하고 있는 건 뭐냐 하면 
모든 지식은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돼야지 
추상적인 지식이 돼서는 안 된다는 거죠. 


◑5. 부활이 주는 교훈은, 마지막으로 <우리도 부활한다>입니다. 

고전15:20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모든 사람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해요.
 
성경에 보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불멸의 존재라는 거에요. 소멸될 수 없는 존재라는 거에요. 

그래서 선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요5:29
선인도 부활하고, 악인까지도 다 부활한다는 거예요. 
악인까지도 부활해서 지옥에 들어가려고, 부활하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뭐에요.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심으로 첫 열매가 되셨어요. 
첫 열매 라는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열매의 예고라는 거죠.

'봐라 내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와서 똑같이 인간으로 살았는데 
결국 부활하는 것을 봤지? 너희도 부활 할 거야!' 

그래서 장례식에 가서 제가 설교를 하다보면 
정말 장례식은요 명확하게 두 종류로 갈라져요.  

고전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사망이 우리 인생을 파괴하는 권세가 있는데 
사망이 우리 인생을 고통 가운데 몰아넣는 권세가 있는데 
이것을 이기고 극복했다는 거에요. 뭐가?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됐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걸 아는 사람들이 모인 장례식장에 가잖아요. 
그러면 슬픔에도 불구하고 소망이 있어요. 제가 그걸 느껴요. 

장례식이라는 것은 항상 슬픈 일이지만, 
그런데도 그 안에 빛이 있는 것을 느껴요. 

그런데 어떤 장례식장에 가 보면, 정말 영원한 어둠같은 데가 있어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대체로 부활의 소망을 모르는 사람들이니까... 

부활의 소망을 모르니까, 이거는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슬픔은 어떻게 위로할 수가 없어요. 영원한 이별인데 
어떻게 위로를 해요? 

그런데 부활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요. 
슬픔이 물론 있어요.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소망이 있는 것을 보게 돼요. 

복음에는 이 부활 소망의 능력이 있어요. 
죽음을 뛰어넘는.. 사망의 쏘는 권세를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 이게 부활의 능력이에요.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서만 살 존재가 아니에요. 부활할 겁니다. 

△그런데 이 부활은, 꼭 우리가 그 죽음만을 극복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본문 말씀을 보시면 사망은 뭐냐 하면 '죄의 권능'이래요. 
그러니까 죄의 결과라는 거에요. 

죄는 반드시 뭐를 만들어 내요? 고통을 만들어 내요. 
죄는 반드시 저주를 만들어 내요. 이것은 과학(분명한 사실)이에요. 
죄는 반드시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고통스러운 결과들을 만들어 내요. 

그리고 누군가는 이 고통을 받아야만 돼요. 
그런데 부활이 뭐를 이겼다는 거에요?

사망은, 죄가 만들어내는 모든 고통의 클라이맥스 에요.
한 개인의 인생이 파괴되는 가장 클라이맥스가 죽음이죠. 

또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에 뭐에요?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거예요. 

그런데 부활이 뭐냐 하면, 이 죽음의 고통을 극복했다는 거에요.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죄야, 네가 만들어내는 고통이 어디 있느냐? 
죄가 가지고 있는 권세가 어디 있느냐? 
사람을 고통으로 옭아 매고 있는 권세가 있느냐?' 

부활이 이것을 극복했다는 거에요. 승리했다는 거예요. 
이걸 뛰어넘는 능력이 있다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이제 부활의 권능이라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써 
우리 삶 가운데 사망이 주는 고통을 물론 뛰어 넘으셨어요. 

그런데 사망의 고통만 뛰어 넘으신 것이 아니고 
사망보다 덜한 고통들도 당연히 뛰어 넘으셨다는 거에요. 

우리 삶의 모든 고통들, 죄의 권능들, 죄의 결과들... 
이것들을 뛰어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부활(의 능력)'이라는 거에요.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써 
인간에게 처해진 가장 큰 고통을 이기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이 사실(부활)을 믿고 
그 부활에 동참하는 자들은 
우리 삶 가운데 주어지는 사망의 고통들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거에요. 

할렐루야, 승리할 수 있다는 거에요. 
이것이 부활이 주는 메시지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부활할 텐데 
이 언젠가 를 믿음으로 취하는 자들은 
지금도 누릴 수 있다는 거에요. 

사망이 우리에게 언젠가 줄 고통,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부활이 있는데 
이것(부활)을 믿음으로 취하는 사람은 

 

언젠가 당하게 될 사망의 고통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사망이 주는 똑같은 종류의 고통들 
즉 우리가 오늘날 당하고 있는 고통들.. 예를 들면. 어떤 좌절, 실망,

어려운 관계에서 오는 고통, 재정적인 어려움, 건강
하여간 수많은 죄가 야기해 낸 그런 '죄의 결과 consequence of sin'들이 있는데 
이 고통을 지금도 극복하고 이길 수 있다는 거에요. 어떻게? 믿음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한 자 라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예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사셨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사망을 극복하신 분이 내 삶의 고통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사망 권세를 뛰어 넘으신 분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내 삶 속에 역사 하신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사망 권세를 이기신 분이 오늘도 내 삶 가운데 함께 하셔서 
우리의 고통을 이기신다고 하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이것이 여러분 부활을 주는 마지막 메시지에요.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삶 가운데 역사는 실질적인 내용이 있다..는 거에요. 

그것은 우리의 첫 열매가 되신 거라는 거에요. 
우리가 가야될 운명(사망)이 있는데, 그것에 첫 본보기가 되셨다는 거에요.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능력이에요. 
예수의 부활의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들은 그 부활의 능력이 내 능력이에요. 
여러분 부활할 거예요. 

믿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는 사람은   *미래
믿음으로 예수님의 삶에도 동참한다는 거죠.  *현재

그래서 우리 삶에 있는 수많은 고통과 우리 삶에 있는 수많은 문제들이 
예수 이름앞에서, 예수 부활의 능력 앞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거에요. 극복할 수 있다는 거에요. 
이것이 부활이 주는 메시지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 부활하신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이날 
단순히 예수님의 부활만을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그 부활의 능력 가운데 여러분 함께 서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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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정말로 정말로 제가 만난 분들 중에 그런 분들이 한 두 세분 계셨어요. 
그러니까 어떤 분들이냐면, 글을 읽을 줄 모르시는 들인데(외국인, 내국인 모두) 
글을 읽을 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 없는 분들이었어요. 

이분들이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어요. 그리고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무슨 말씀을 해주셨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뭐라고 줄줄줄 얘기를 하는데 
그게 요한복음 17장인가 그랬어요. 거의 똑같이
요한복음 17장을 외우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형제님 성경을 읽어보셨군요.' 
'목사님, 제가 글을 못 읽잖아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요.
글을 못 읽었는 분인데, 예수를 믿고 나니까 
성령님께서 성경에 나온 내용을 그대로 얘기해 주신 거예요. 
여러분 이게 가능합니까? 가능해요. 제가 만나봤어요. 제가 경험한 얘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