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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살라

LNCK 2023. 4. 6. 17:59

2015.04.05 부활을 살라! (눅 24:25~35) - YouTube
◈부활을 살라        눅24:25~35       2015.04.05.

오늘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부활의 아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때가 되면 지키고 끝내는 절기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매일 삶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일상에서 살아내야 하는 현실입니다. 

우리 중에서 부활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거기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고 
우리의 믿음의 중심이 되고 
우리 매일매일의 삶 속에 역사하는 현실이 되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만이 아니라 
우리의 부활이요, 우리의 삶 속에 
지금 이 시간에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만난 이들을 보면 
모두가 다 한결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던 원수들에게도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게도 나타나지 않으셨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의 어떤 인간적인 정에 의해서 
그 만나는 대상이 결정된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모두가 다 특별한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깊은 사랑과 헌신을 가진 분입니다. 

도마는,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내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지 못했다고 하는 의심과 회의에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제자였습니다. 

이렇게 특별한 사연,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들을 개인적으로 만나심으로써 
회복시키시는 어떤 이유가 있었던 거죠.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말씀에 나오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그들을 예수님께서 특별히 만나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를 
예수님께서 만나주신 사건은 <매우 특이>합니다. 

첫째로 특이한 점은, 이들은 알려지지 않은 두 제자였습니다. 
분명 12제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본문에 '글로바' 라는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만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 글로바는 아닙니다.  *요19:25

이름도 알려지지 않는, 당시 예수님과 함께 중심이 되어서 일했던 제자가 아닌 
평범한 제자들에게도 예수님은 나타나셨다는 거죠. 

두 번째로 특이한 점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까지 여행하는 거리가 약11 킬로미터 정도 되는데 
걸으면 2~3시간 정도는 걸리겠죠. 

몇 시간 정도 걸리는 이 거리를, 예수님께서 함께 걸어가시면서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오래 만나 주셨다는 거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시려면 
잠시 가는 여정에 잠깐 나타났다가, 금방 사라지셔도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정을, 함께 걸어가시면서 
대화하시고, 때로 설명해 주시고, 때로 책망하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그런 여정을 통해서 나타나셨습니다. 

얼마나 자상하신 예수님, 얼마나 인내심이 많으시고 
얼마나 따뜻하신 예수님이신가... 라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는 거죠. 

예수님은 각자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그들의 문제에 따라서 
때로는 잠깐 나타나시기도 하고, 때로는 오랜 시간 함께 동행하시면서 
그들과 함께 만나 주시기도 하셨다는 거예요. 
여기 예수님의 아름다우심이 나타나는 거죠. 

세 번째로 특이한 점은, 이렇게 예수님께서 몇 시간 오랫동안 대화하시면서 
만나주심에도 불구하고 
이 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거죠. 

잠시만 나타나셔도 '아~ 예수님이시구나!' 
그렇게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던 반면에, 

어쩌면 이렇게 몇 시간 동안 함께 대화하고, 걸어가는 중에도 
오래 동안 예수님인 줄 몰랐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이들은 예수님을 몰라 봤다는 거죠. 

이것이 오늘 본문의 특별한 점입니다. 

◑눈이 가려져 예수님인줄 알아보지 못했던 제자들

이 두 사람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면서 
그동안 일어났던 일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와중에, 예수님이 낯선 이로서, 그 두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듭니다. 
예수님이 질문합니다. 
'당신들이 걸어가면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그 내용이 무슨 이야기요?'

글로바가 대답했습니다. 
'아니 예루살렘에서 있으면서, 최근 일어난 이 엄청난 일을 
혼자만 모르신단 말이오?' 이라고 반문했습니다. 

이분의 말은 아이러니를 품고 있죠. 
진짜 일어난 일을 모르는 사람은, 정작 자기 자신이죠. 

예수님은 모르는척 하고 다시 질문합니다. 
'내가 부활한 예수다!' 이렇게 말씀하셨으면 될걸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도대체 그럼 무슨 일이요?' 라고 다시 질문합니다. 

동행이 예수님인 줄 모르는 이들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눅24:19~24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글로바의 말을 세 가지 내용으로 요약하면, 

1) 첫째 예수님은 그 말과 행동에 능력이 있는 선지자 이셨습니다. 

2) 둘째 그분은 대제사장과 지도자들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3) 셋째  여인들이 무덤이 비었다고 하고, 천사를 보았다고 하고.. 
사람들이 확인해보니 진짜 무덤이 비어있었습니다. 

자 무덤이 비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 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빈 무덤'이라는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한 증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라는 그 사실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그들은 절망했습니다. 그들은 슬퍼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서 

그 민족을 애굽에서, 바로로부터 건져낸 모세처럼 
그들을 로마로부터 구원해줄 구세주로, 그들은 생각했던 거에요. 

그들이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허망하게 끝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했고, 그들은 슬픔에 빠져 
터벅터벅 슬픈 모습으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절망, 그들의 슬픔의 원인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지만 
'살아나셨다' 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죠. 
그 원인을, 본문에는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그들은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못 보았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본다'라는 것은, 꼭 육신의 눈만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 봐도, 못 보는 것이 많아요. 

예수님을 눈으로 보았지만, 육신의 눈으로 봐도 
그분이 그리스도 이심을 보지 못하는 거에요. 

▲이 눈은 어떤 눈입니까? 
요즘 말로 표현하면 '세계관'이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죠. 

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눈이 있습니다. 
어떤 안경을 쓰고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다 그 색으로 보이는 거에요. 

노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다 노랗게 보이고 
빨간 안경을 쓰면 세상이 다 빨갛게 보이는 거죠. 

그런데 그 '보이지 않는 안경'이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생길까요! 바로 세계관입니다. 

여러분,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세계관 속에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눈이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만일 그들의 세계관 속에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그런 세계관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빈 무덤은 곧 예수님이 부활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결됐을 거에요. 

그러나 그들의 세계관 속에는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다'는 게 있었죠. 
왜 그런 세계관이 생겨났을까요?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없기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으면, 기적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죽은 자의 부활은 있을 수 없는 거예요. 

이 세상의 세계관에 의해, 그렇게 자기 눈이 가려져 있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은, 죽음 너머의 부활을 믿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믿지 않았던 것은 
지금 이 곳에서, 이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죽은 자의 부활'은 
받아들이지 않았던 거에요. 

예수님의 부활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이에요. 
그리고 그 분은 지금도 살아계신 것입니다. 

이 세상의 닫혀있는 세계관,
이 세상의 닫혀있는 눈으로는 
'어떻게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데 살아계신가?' 의문을 품지만

우리 눈에 보인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고 믿지 않습니까? 
우리 육신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상 속에 너무나 분명히 존재하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으면 
그분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이 세상의 닫힌 세계관 속에, 자기 눈이 가려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영혼들... 

어쩌면 예배에 출석하면서도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동행하지 못하는 그런 영혼들이 있다면, 
'내 눈을 열어주소서' 라고 기도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이 특이한 거에요. 
예수님께서 눈이 가려져서 보지 못하는 그들과 동행하시면서 
몇 시간 함께 걸어가주시면서 
그들 옆에 계셔 주셨다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세계관 안에 갇혀서, 자기 눈이 가려져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곁에, 지금 계셔서.. 더 가까이 계셔서.. 

그들이 믿지 않을수록.. 보지 못할수록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그들을 만나 주시는 
아름다우신 주님이십니다. 

이 시대의 세속적 세계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부활의 아침에 찾아왔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슬픔과 절망속에 갇혀 있습니다. 

◑금요일이지만, 주일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갈보리 침례교회에서 사역하셨던 
S. M. 락릿지 라는 목사님이 계셨어요.  *S.M. Lockridge (1913-2000)
S. M.은 '사드락' '메삭'을 뜻합니다.  *다니엘의 친구들

이 목사님의 설교가운데 알려진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정교한 시는 아니지만, 너무나 감동적인 시라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서 
요즘도 유튜브에 보면, 그 시를 이분의 음성으로 만든 영상이 있습니다. 
제목은 It's Friday but Sunday is coming 이라는 제목의 시입니다. 

<금요일입니다 그러나 주일은 다가오고 있습니다> *맨 아래에 영문 있음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하시고 베드로는 잠을 자며 
유다는 배신을 하게 되는데 
하지만 주일은 옵니다. 

금요일입니다. 
빌라도는 갈등을 하고 
지도자들은 음모를 꾸미며 
군중들은 비난을 하는데 
그들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입니다. 
제자들은 우왕좌왕 합니다. 마치 목자 없는 양 처럼! 
마리아는 울고 있고, 베드로는 부인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들은 모릅니다.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입니다. 로마인들은 예수님을 때렸고 
그에게 주홍색 가운을 입혔고 가시면류관을 씌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릅니다.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금요일입니다. 
갈보리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피를 흘리며 온몸이 비틀거리고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그의 영혼을 짓누르는데 
하지만 지금은 단지 금요일 일뿐 
주일은 오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세상은 승리하고 있고, 사람들은 죄를 짓고 있고 
그리고 악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군병들은 나의 구세주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았고 
나의 구세주의 발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는 십자가를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범죄자들 사이에! 

금요일입니다. 
하지만 제가 한 말씀 드리지요. 
주일은 옵니다. 

금요일입니다. 
제자들은 의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들의 왕에게 이런 일이 닥칠 수 있었을까?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작전이 드디어 성공했다고 
하지만 그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은 
지금은 단지 금요일일 뿐이에요. 
주일은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버림받음을 느끼며 
죽도록 내버려져
그 누가 그를 살릴 수 있을까? 
오~ 금요일입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일은 오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온 땅이 흔들리고 하늘은 흑암으로 덥히며 
나의 왕이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금요일입니다. 
소망은 온전히 없어졌고 
죽음은 이겼고 
죄가 승리함으로 사단이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은 묻혔고 군인이 보초를 서 있고 
돌은 무덤 입구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하지만 금요일 일뿐입니다. 
단지 금요일 일뿐입니다. 
(부활의) 주일은 옵니다.」 

부활의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몰라 
금요일에 멈춰 사는 세상입니다. 

오늘은 주일 입니다. 부활의 아침입니다. 
왜 안식일이 주일로 변했습니까? 

부활의 아침을 기념하며 
그들은 수 천년 내려오던 안식일을, 주일 Sunday 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의 모든 날을 
금요일에 갇혀 사는 인생이 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일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금요일에 참혹한 버림받은 십자가의 고통,
죽음의 권세에 눌려있는 그 세계에 멈춰사는 인생이 되지 아니하고 

주일의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어떻게 열어 주셨어요?

1) 첫째로 예수님의 죽음이 왜 절대적으로 필요한지를 깨닫게 하셨죠. 

25~26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나는 왕관을 쓰러 온 것이 아니라 
십자가 가시면류관을 씀으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너희를 구원하러 왔다!' 

십자가가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왜 필요했는지를 깨닫지 못해서인 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도'의 완성인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우리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이, 곧 부활로 가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셨는가를 깨닫는 사람은,  
예수님은 부활하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예수님은, 성경을 풀어서
성경 전체를 풀어주심으로 
십자가와 부활이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셨어요.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성경전체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고 있음을 설명해 주셨어요. 
저자 직강을 들은 거죠. 
그럴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여러분 어릴 때 퍼즐맞추기 해보셨잖아요. 
몇십개 퍼즐을 이렇게 풀어서 펼쳐놓으면 답답합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지 몰라요. 

막 열심히 퍼즐을 맞춰 보려고 합니다. 
근데 아무리 맞춰도 맞춰지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완성된 그림을 봐야 되죠. 

지혜로운 사람은 먼저 퍼즐을 맞추려고 하지 않고 
이 퍼즐 박스에 있는 전체 그림을 명확하게 보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전체 그림을 더 뚜렷히 보면 볼수록, 퍼즐은 쉽게 맞추죠. 

맞추다가 또 벽에 부딪히면, 또 완성된 그림을 보고 다시 맞추는 거죠.

여러분, 성경은 우리의 인생이라는 퍼즐을 맞춰가는 '전체 그림'이에요. 
그래서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거에요. 
수많은 기록을 우리에게 남겨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이 성경에 있는 내용을, 
퍼즐을 맞춰주시는 거예요. 
전체 그림을 이들에게 보여주신 거에요. 

여러분 인생에 고통이라는 퍼즐,
맞춰지지 않는.. 내 인생에 뭔가 어긋난 것 같은 그런 퍼즐들이 
하나님의 역사의 전체 그림에서 보면 
다 맞춰지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두 제자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마음이 왜 뜨거워지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3) 그런데 세 번째로 예수님께서 
엠마오에 도착해서, 예수님은 그냥 가시려고 했지만 
그들이 붙잡고 함께 식사하는 중에 
예수님이 이상한 행동을 하십니다. 

분명히 예수님이 손님이고 이들이 주인인데 
예수님이 주인처럼 떡을 떼어 감사하시고, 이들에게 나눠 주셨어요. 
그때 그들의 눈이 열렸어요. 

30~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여러분, 눈이 열리는 것은 때로 이렇게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순간의 체험으로.. 한순간의 성경공부로..
한순간의 예배출석으로 눈이 열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함께 예배하는 중에, 함께 교제하는 중에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눈이 온전히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믿지 않는 영혼을 위해서도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들의 가는 인생 여정의 길을 함께 걸어주십시오. 

그런 중에 그들이 때로 식사하던 중에라도 
성령님이 온전히 역사 하실 줄로 믿습니다. 

식사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매일매일 평범한 일상이라는 거에요. 

매일매일 평범한 일상이 
우리가 부활을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은 이후의 사건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체험해야 될.. 
식사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단순한 평범한 일상 속에서 
우리의 삶에서 경험해야 될 능력이라는 거에요. 

이 부활의 능력으로,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 모두가 날마다 부활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눈이 닫혀있는 영혼이 열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아직도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하는 영혼들도 
그들의 눈이 열려지는 일에 우리 모두가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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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Friday but Sunday is coming 

It’s Friday
Jesus is praying
Peter’s a sleeping
Judas is betraying
But Sunday’s comin’

It’s Friday
Pilate’s struggling
The council is conspiring
The crowd is vilifying
They don’t even know
That Sunday’s comin’

It’s Friday
The disciples are running
Like sheep without a shepherd
Mary’s crying
Peter is denying
But they don’t know
That Sunday’s a comin’

It’s Friday
The Romans beat my Jesus
They robe him in scarlet
They crown him with thorns
But they don’t know
That Sunday’s comin’

It’s Friday
See Jesus walking to Calvary
His blood dripping
His body stumbling
And his spirit’s burdened
But you see, it’s only Friday
Sunday’s comin’

It’s Friday
The world’s winning
People are sinning
And evil’s grinning

It’s Friday
The soldiers nail my Savior’s hands
To the cross
They nail my Savior’s feet
To the cross
And then they raise him up
Next to criminals

It’s Friday
But let me tell you something
Sunday’s comin’

It’s Friday
The disciples are questioning
What has happened to their King
And the Pharisees are celebrating
That their scheming
Has been achieved
But they don’t know
It’s only Friday
Sunday’s comin’

It’s Friday
He’s hanging on the cross
Feeling forsaken by his Father
Left alone and dying
Can nobody save him?
Ooooh
It’s Friday
But Sunday’s comin’

It’s Friday
The earth trembles
The sky grows dark
My King yields his spirit

It’s Friday
Hope is lost
Death has won
Sin has conquered
and Satan’s just a laughin’

It’s Friday
Jesus is buried
A soldier stands guard
And a rock is rolled into place

But it’s Friday
It is only Friday
Sunday is a co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