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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종류의 부활

LNCK 2023. 4. 9. 21:21

https://blog.naver.com/karamos/80053323973

 

◈두 종류의 부활               요5:28-29

 

요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서 론

 

우리가 드리는 모든 주일예배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입니다.

본래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주일에 부활하셨기 때문에 지금은 예배 날짜가 주일로 바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는 특별히 부활절기를 구별해서 지킵니다.

전 세계에 있는 교회가 오늘을 부활절이라는 구별된 절기로 지킬 정도로

부활은 우리에게 중요한 주제입니다.

 

부활 교리는 기독교의 기초이자 모퉁이돌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5:3~4절을

통해 부활의 교리가 복음의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바울은 복음을 받았고 이 복음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복음 중에 가장 중요한 내용이 바로 부활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못할 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것을 믿지 못할 일로 여깁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믿으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과

우리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을 못 믿을 일로 여기는 것이 도리어

비논리적입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사도들의 설교에서도 제일 중요한 구성요소가 바로 부활에 관한 진리입니다.

 

죽은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사도로 뽑을 때에도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행1:22 

 

사도는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도 베드로도 그의 첫 번째 설교에서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행 2:32)라는 사실을 최고로 강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비록 어려움을 당해도 사도들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은 그 당시에 부활을 믿지 않았던 사두개인들의 미움을 받아서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행 4:2).

 

또한 사도 바울은 벨릭스 총독 앞에 끌려나가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행 24:15)고 대답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도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 다시 살리심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행 26:8)라고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부활의 진리를 선포하는 것은

사도의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설교자들이 증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설교하는 사람들이 증거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리는 바로 부활의 교리입니다.

 

▲고대 헬라철학자들도 영혼불멸설 immortality of the soul 를 가르쳤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이데아’라고 부르는

세계에 먼저 존재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영혼선재설’이라고 합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이데아의 세계에 선재했다가

육신과 결합하여 출생이 시작되고,

육신 안에 있었던 영혼이 떠나가면 사망이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이데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갔다가 육신을 입고 다시 이 세상으로

온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윤회설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의 교리는 이와는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도 영혼의 불멸을 믿지만 인간 영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 육신과 결합됩니다.

이것이 탄생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바로 사망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기 때문에 육신을 떠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플라톤과 불교가 말하는 윤회설과

기독교의 부활 교리는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육신과 다시 한 번 결합하여 영혼과 육신이 함께

영생불멸(永生不滅)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리도 기독교는 영혼의 불멸보다 육신의 불멸을 더욱 강조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닌 육신이 불멸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영혼과 육신이 재결합되어 부활하는 그 때에는

육신과 영혼이 동시에 불멸하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부활의 진리입니다. 한 번 다시 살아서 영원히 삽니다.

 

◑1. 부활의 대상

 

‘무덤 속에 있는 자’(요5:28절)는 모두 부활의 대상이 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무덤 속에 있는 자라고 하면 매장된 사람들만을 말하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화장된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매장을 했든 화장을 했든 사람들은 모두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지칭하신 ‘무덤 속에 있는 자’란 사망한 사람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홍수 이전에 죽은 사람도 살려내시고

노아 홍수 이후에 죽은 사람도 살려내십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순간은 얼마나 기이한 순간이겠습니까?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인간들이 살아나고

또 그 당시에 살아 있는 인간들은 죽음을 보지 않고 부활의 몸으로 

변화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이합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시되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하나님께는

모든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이 결코 어렵거나 기이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는 부활을 못 믿을 일로 여기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부활시킬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두 하실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모두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부활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죽어서 시체가 되고 가루가 되어 산과 들로 뿌려진 사람들에게는 귀가 없을텐데

어떻게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이 질문은 죽은 나사로를 살려내신 사건에도 동일하게 던져볼 수 있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는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나오너라”고 하신 말씀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나사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기 5분 전에, 혹은 죽은 지 10분 정도 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면 의학적으로 볼 때 아직도 청각신경이 조금 남아

있으므로 나사로가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으니 그런 가능성은 0.0001%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나사로를 향해 명령하십니다.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고 부르시자 죽은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채로 살아 나왔습니다.

 

물론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영원한 부활이 아닙니다.

왜냐면 나사로는 다시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의 영혼에 말씀하셨고,

그때 그의 영혼은 죽은 육체와 다시 결합해서, 살아났던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이 때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이 때는 미래에 다가올 때이고

정해진 시간이며 반드시 오는 확실한 시간입니다.

 

또한 이 때는 엄숙한 시간이고 매우 중요한 시간이며 멀지 않은 시간입니다.

아마 이 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장엄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아담과 노아도 살아나고 므낫세 왕이 톱으로 죽인 이사야도

온전한 몸을 입고 살아날 것입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 바울도 만나게 될 것이며,

먼저 돌아가신 조상과 가족도 모두 만날 수 있는 인류 역사의 대 클라이맥스입니다.

 

성경은 믿는 자만의 부활을 말하지 않습니다. 신자든, 불신자든

죽었던 모든 사람은 다 부활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부활교리입니다.

 

▲살전4:16절을 보면 부활의 날에는 세 가지 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첫째는 주님의 호령소리입니다.

그 날에 주님께서 큰 소리로 명령하실 것입니다. “죽은 자여! 다 나오너라.”

그러면 이 소리를 듣고 본문 29절처럼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둘째는 천사장의 소리입니다. 천사장이 천사들을 모두 집합시킵니다.

그래서 부활한 인간들 중에서 염소와 양을 나눈 후에,

염소는 영벌에, 양은 영생에 들어가도록 수종들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팔소리입니다. 어떤 소리일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들려올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소리는 모두 중요한 소리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주 예수님께서 호령하시는 음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이요, 죽은 자의 부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3. 두 종류의 부활

 

죽은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에 두 가지 부류로 구분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life)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the resurrection of condemnation)로 나오게 됩니다.

 

생명의 부활이란 영원히 존재한다는 의미에서의 부활이 아닙니다.

심판의 부활도 영원히 존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부활은 행복한 부활이고,

주 예수님과 천국에서 영생하는 부활입니다.

 

이에 반해 심판의 부활이란 심판을 받고 영영히 타는 지옥불에 던져지기 위한

부활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선지자였던 다니엘도 두 가지 종류의 부활이 있다고 증거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단 12:2).

 

생명의 부활이란 영생의 부활이요,

심판의 부활이란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는 수욕의 부활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복음주의자인 존 스토트 목사는 훌륭한 서적을 많이

저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 가지 심각한 오류를 범했습니다.

바로 ‘문자적인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주1)

 

그러나 존 스토트가 아무리 유명한 신학자라고 해도

그의 말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30)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영혼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지옥은 온 몸이 던져지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 10:28)

 

하나님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서 멸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지옥은 몸과 영혼이 함께 영원토록 고통받는 곳입니다.

 

이 두 구절 외에도 성경은 수 없이 많은 구절들을 통해

지옥에서 몸과 영혼이 함께 고통 받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막9:28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영히 타는 불이 꺼지지도 않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불신자들은 심판의 부활을 통해 이곳에 던져질 것입니다.

저는 설교자로서 여러분에게 진실로 권고합니다.

심판의 부활에 참여하지 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부활심판의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이 사실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해석할 때 지극히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면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이

다른 성경의 진리들과 모순이 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그리스도인,

곧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성도들을 일반적으로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읽고 내가 오늘부터 선한 일을 행하면

생명의 부활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해해서 본질이 선한 사람이나

행위가 선한 사람만이 생명의 부활을 얻게 된다고 해석한다면

그 해석은 성경 전체와 명백하게 모순이 됩니다.

이런 해석에 만족하는 사람은 행위구원설을 주장하는 잘못된 사람입니다.

 

디도서 말씀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딛 3:5).

 

그러므로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결과로서

선을 행하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다시 말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구원받은 성도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선을 행한 결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결과로 선을 행합니다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한 자’는 구원받지 못하여 자신의 타락한 본성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따라 살아가는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사도바울도 행24:15절을 통해 “의인과 악인의 한 부활

(a resurrection of the righteous and the wicked)이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부활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을 당하여

영영히 타는 지옥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어느 누구나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반드시 옵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나는 그런 거 안 믿으니까 상관없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분이

계신다고 할지라도, 천국과 지옥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부정하고 부인한다고 해도 지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다만 믿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고,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뿐입니다.

 

결론

 

“죽은 자여! 나오너라!” 모든 사람들이 주의 음성을 들을 때가 다가옵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능력이 없어도 듣게 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반드시 들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날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의 날입니다.

 

그 날에 신자들은 생명의 부활을 통해 영원한 축복을 누릴 것이요,

불신자는 심판의 부활을 통해 영영히 타는 지옥불에 던져져서

육신과 영혼이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직 생명이 있는 사람만이 생명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70~80년에 지나는 ‘육체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 영생을 말합니다.

 

영생할 수 있는 생명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5:26절을 통해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영생의 생명이 은혜로 주어집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할까요? 복 받기 위해서입니까?

부자가 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착하게 살기 위해서 입니까?

 

물론 좋은 목적들이긴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 안에 영생의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생명의 부활을 잇는 복음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들 중에 혹시라도

영생의 생명을 발견하지 못한 분이 계시다면 지금 들으시고,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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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멸절설’(Annihilation Theory)은 성경적인가 : 칼럼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christianity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