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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장 절별 주석 및 해석

LNCK 2023. 4. 11. 18:31

◈삼하2장 절별 주석 및 해석

1 그 후에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아뢰되 내가 유다 한 성읍으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올라가라 다윗이 아뢰되 어디로 가리이까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그 후에' 본장과 전장(前章)사이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였음을 나타내 주는 관용적 표현이다. 역대상의 기록에 의하면 다윗은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도 얼마 동안은 블레셋 땅 시글락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삼상 25:5-7). 그리고 이때 더욱더 많은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몰려왔기 때문에 그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진 듯하다(대상 12:1-22). 이는 곧 이제 다윗이 전사한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할 때가 이르렀음을 시사해 준다.

'여호와께 물어' 
아마도 이때 다윗은 우림과 둠밈(Urim and Thummim)으로 여호와께 물었을 것이다. 그 근거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 수 있다. 첫째,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아비아달 대제사장이 입고 있었는데, 당시 그가 다윗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23:6). 
둘째, 다윗은 과거에도 아비아달의 아버지 아히멜렉에게 우림과 둠밈을 사용, 하나님의 뜻을 물어봐 달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삼상 22:10). 
한편 이처럼 다윗은 사울의 사후(死後)자기에게 유리하게 전개되는 정세(政勢)속에서도 자기의 기분에 따라 행동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다. 이러한 다윗의 행동은 중요한 일에 부딪칠 때마다 취한 행동으로서(5:19, 삼상 22:10), 이는 그가 그만큼 자기의 앞길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헤브론' 
예루살렘 남서쪽 약 40km 지점에 위치한 고성(古城)이다. 옛 이름은 기럇 아르바(Kirjath-Arba)이며(수 15:13, 삿 1:10) '헤브론'(Hebron)의 뜻은 '연합', '친교'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는 다윗에게 헤브론으로 가라고 명하신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헤브론은 유다 지파의 성읍이며 유다 지파 지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서 다윗이 유다 지파의 세력을 업고 왕이 될 정치적인 거점으로 알맞은 곳이었기 때문이다(4절). 
(2)헤브론은 여호수아 시대에 갈렙에게 패퇴당한 아낙 자손들이 차지했던 요새로서(수 15:13-17) 산지가 성읍으로 둘러싸인 군사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3)그리고 무엇보다도 헤브론에는 다윗과 친분이 두터운 유다의 장로들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삼상 30:26, 30).

2 다윗이 그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을 데리고 그리로 올라갈 때에 

'이스라엘 여인 아히노암' 
'아히노암'의 뜻은 '호감가는 형제'이다. 그녀는 다윗이 자신의 첫번째 아내 미갈을 발디에게 빼앗긴 후 새로이 취한 또 다른 아내이다. 삼상 25:43 주석 참조. 그녀는 다윗에게 한 아들을 낳았는데 곧 장자(長子) 암논이다(3:2).

'갈멜 사람... 아비가일' 
'아비가일'의 뜻은 '아버지가 기뻐하심'이다. 아름답고 지혜로운 여인으로 본남편 나발 사후(死後) 다윗에게로 개가(改嫁)하였다. 삼상 25:39-42주석 참조. 그녀 역시 다윗에게 아들을 낳았는데 일명 '다니엘'(대상 3:1)이라고도 하는 '길르압'이다(3:3).

3 또 자기와 함께 한 추종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다윗이 다 데리고 올라가서 헤브론 각 성읍에 살게 하니라 

삼상 27:2에는 당시 다윗을 추종하던 자들의 수가 600인 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권속(眷屬)들, 즉 딸린 식구들이 있었다 하니 적어도 그 수는 2~3배 이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이들에게는 아말렉족에게서 탈취한 무수한 양떼와 소떼도 있었다(삼상 30:18-20). 따라서 아마 다윗은 이들을 헤브론에 다 수용치 못하고 헤브론 및 그 인접한 성읍들에 분산 수용하였을 것이다.

15 그들이 일어나 그 수대로 나아가니 베냐민과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편에 열두 명이요 다윗의 신복 중에 열두 명이라 

이처럼 이스보셋과 다윗 측에서 각각 열 두 명의 군사를 출전시킨 것은 온 이스라엘, 즉 이스라엘 12지파 전체의 지배권을 걸고서 싸운다는 의미에서였을 것이다.

17 그 날에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아브넬과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의 신복들 앞에서 패하니라 

'싸움이 심히 맹렬하더니' 선택된 24명의 용사들이 승부를 가리지도 못한 채 모두 죽자(16절)피를 본 양측의 군사들이 자극을 받아 전면전(全面戰)에 돌입하게 된 것을 가리킨다. 특히 여기서 '맹렬하다'에 해당하는 '카솨' 는 '잔혹하다', '단단하다'는 뜻으로 전쟁의 참혹성을 증거해 준다.

18 그 곳에 스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의 발은 들노루 같이 빠르더라 

'스루야' 
이름의 뜻은 '분열됨'으로 다윗의 누이이다(대상 2:16). 유대인의 관습에 따르면,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그 계대(係代)를 말하게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본절에서 요압, 아비새, 아사헬이 '스루야의 아들'로 기록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든 듯하다. (1)스루야가 특별히 뛰어난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2)스루야가 일찍 남편을 사별(死別)했기 때문이다. (3)요압, 아비새, 아사헬과 다윗과의 친분 관계를 보다 강조하기 위함이다.

'요압'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아버지이심'이다. 이러한 요압은 다윗 왕조의 중심 인물이며 또한 본서에 빈번히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다윗을 추종했으며, 이스라엘의 통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10:6-19, 11:1, 12:26, 왕상 11:15, 16). 
그러나 그는 이중 인격자의 근성을 가진 자로서 한편으로는 다윗을 심히 괴롭힌 장본인이었다. 즉, 그는 다윗을 위해 시온 성을 쌓는 데 협력하는(대상 11:8)등 많은 충성을 하였으면서도(14:23, 31-33, 18:14-33), 한편으로는 다윗이 죽이지 말라고 부탁, 또는 명령한 압살롬, 아마사, 아브넬 등을 교묘한 꾀를 써서 살해하였다(3:27, 18:14, 20:10). 이러한 사실은 그가 진정으로 다윗 왕조를 위하는 진실된 마음으로 충성했던 것이 아니라 다분히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야망으로 행동했음을 나타낸다. 이러한 까닭에 다윗은 그를 미워하고 경계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요압은 이러한 자기의 기질로 인해 솔로몬의 군대 장관 브나야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왕상 2:31-35). 우리는 요압의 이와 같은 행동을 통해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그것은 곧, 참된 충성이란 많은 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기질과 욕망을 버리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아비새' 
'선물의 아비'란 뜻이다. 아비새 역시 형 요압과 함께 일생 동안 다윗 왕조에 충성을 다한 자이다(17:25, 대상 2:16). 그는 요압과 더불어 다윗 군대의 유력한 장군이 되어(10:9, 10) 압살롬의 반역을 평정하며(18:1-15) 다윗의 목숨을 구하는 등(21:15-17)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그는 혼자서 창으로 삼백 명의 적군을 무찌른 일로 유명하다(23:18, 대상 11:20).

'아사헬' 
'하나님께서 만드심'이란 뜻이다. 요압과 아비새의 동생으로서 다윗의 30용사 중 한 사람이다(23:24). 다윗의 군대 장관이었기도 한 그는(대상 27:7) 특히 발 빠르기로 유명하였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이스보셋의 군장(軍長) 아브넬에게 살해당하고 마는 불운을 격는다(23절).

19 아사헬이 아브넬을 쫓아 달려가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아브넬의 뒤를 쫓으니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이 말은 '한눈 한번 팔지 아니하고', '오직'이란 뜻이다. 후퇴하는 적의 패장(敗將)을 처치한다는 것은 용사로서 매우 큰 공을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아사헬은 다른 데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아니하고 오직 아브넬의 뒤만을 쫓았던 것이다.

22 아브넬이 다시 아사헬에게 이르되 너는 나 쫓기를 그치라 내가 너를 쳐서 땅에 엎드러지게 할 까닭이 무엇이냐 그렇게 하면 내가 어떻게 네 형 요압을 대면하겠느냐 하되 

아브넬의 이같은 말은 아사헬과의 싸움을 피하기 위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즉 아브넬은 행여라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아사헬이 다치거나 죽는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와 관련 아브넬이 굳이 요압을 들먹거린 이유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때문에 학자들마다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전에 아브넬과 요압은 친구 관계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다윗이 사울왕의 핍박으로 인해 도피하기 이전에는 이들이 서로 군대의 동료로서 우정을 나누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2)아브넬이 대세가 다윗측에게로 기우는 것을 확인한 후 앞으로 자신이 요압의 세력하에 들어가게 될 때 그 후환을 염려하여 이 같은 말을 하였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3)아브넬이 요압의 사나운 성질을 잘 알고 있어서 그의 복수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이같이 말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들은 어디까지나 확실한 증거를 댈 수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이 추측들 모두가 가능성이 없는 것들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가지 견해들을 종합하여 본절을 해석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23 그가 물러가기를 거절하매 아브넬이 창 뒤 끝으로 그의 배를 찌르니 창이 그의 등을 꿰뚫고 나간지라 곧 그 곳에 엎드러져 죽으매 아사헬이 엎드러져 죽은 곳에 이르는 자마다 머물러 섰더라 

'저가 치우치기를 싫어하매' 이로 보아 아사헬은 자신의 빠른 걸음만을 믿고서 무모할 정도로 만용(蠻勇)을 부렸음에 분명하다. 만일 그가 겸손하고 사리를 분별할 줄만 알았더라면 아브넬이 자신보다 뛰어난 백전 노장임을 깨닫고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결단코 어리석은 죽음의 자리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 뒤 끝으로... 찌르니' 이것을 보아 아브넬이 아사헬을 고의(故意)로 죽일 마음은 없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그저 아사헬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하려고 창 뒤끝으로 찔렀던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사헬이 죽은 것은 아마(1) 창의 뒤끝에 금속의 일종이 부착되어 있었거나, (2)아사헬의 달려듬이 너무나 빨랐기 때문일 것이다.

'엎드러져 죽으매' 이처럼 18절에서부터 본절에 이르기까지 아사헬의 죽음이 상세히 묘사되고 있다. 아마 이는 훗날 요압에 의해 아브넬이 살해당한 이유가 바로 이 아사헬의 죽음 탓이었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함인 듯하다(3:27, 30).

24 요압과 아비새가 아브넬의 뒤를 쫓아 기브온 거친 땅의 길 가 기아 맞은쪽 암마 산에 이를 때에 해가 졌고

'기아 맞은편 암마 산' 
'기아'(Giah)의 뜻은 '폭포'또는 '솟는 샘'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고 있지 않다. 다만 베냐민 땅, 기브온 광야의 어느 한 지점인 것으로 추측되는데 사람들이 쉬면서 목을 축일 수 있는 샘이나 개울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암마 산'(the hill of Ammah)역시 기브온 광야에서 요단 강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으로만 추정될 뿐 더 이상 알려진 점이 없다.

25 베냐민 족속은 함께 모여 아브넬을 따라 한 무리를 이루고 작은 산 꼭대기에 섰더라 

'베냐민 족속' 당시 기브온에 정착하고 있던 베냐민 지파로서 이스보셋을 추종하던 세력이다(9절). 이들은 마침 기브온 못을 확보하기 위하여 군사를 이끌고 나아왔던 아브넬과 합세하였을 것이다(12, 15절). 그런데 이처럼 이들이 그 어느 지파보다도 적극적으로 이스보셋과 아브넬을 추종하였던 까닭은 아마 사울 가문이 자신과 같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삼상 10:17-24).

26 아브넬이 요압에게 외쳐 이르되 칼이 영원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언제 무리에게 그의 형제 쫓기를 그치라 명령하겠느냐 

'칼이 영영히 사람을 상하겠느냐' 이 말은 '계속해서 칼로 죽여야만 하겠느냐'는 뜻이다. 즉 아브넬은 '이제 피흘리는 싸움을 그만 두자'고 휴전 제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참혹한 일'에 해당하는 '마라' 는 '괴로움', '불미스러움', '쓴맛'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양측 모두 전멸하고 마는 '비극'을 의미한다. 때문에 벌게이트역(Vulgate)은 이를 '목숨걸고 싸우는 일이 얼마나 절망적인 것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로 번역하고 있다.

'형제 쫓기를... 명하겠느냐' 지금 대진해 있는 군사들이 형제들, 곧 같은 민족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브넬의 간교성(奸巧性)과 다급함을 엿볼 수 있다. 즉 먼저 동족간의 싸움을 제의하고 피흘리기를 좋아하였던 그가(14절)이제 전세(戰勢)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동족애에 호소하여 휴전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이로서 휴전이 성립되게 된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는 곧 장차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려 계획하고 계신 하나님(5:1-5)의 간섭하심의 결과가 분명하다.

28 요압이 나팔을 불매 온 무리가 머물러 서고 다시는 이스라엘을 쫓아가지 아니하고 다시는 싸우지도 아니하니라

요압이 아브넬의 휴전 제의를 받아들여 퇴각(退却)나팔을 불고 싸움을 중지시킨 것은 아마 다윗을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즉 동족간의 무모한 피흘림을 계속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한을 초래하는 것은 분명 장차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여야 할 다윗에게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것이었다. 그러므로 비록 성질 급한 요압이었기는 하지만 이를 고려, 일단 싸움을 중지시켰을 것이다.

29 아브넬과 그의 부하들이 밤새도록 걸어서 아라바를 지나 요단을 건너 비드론 온 땅을 지나 마하나임에 이르니라 

'아라바' 본래는 요단 강 상류의 헤르몬 산으로부터 갈릴리 호수, 요단 계곡, 사해를 통하여 아카바 만에까지 이르는 광범위한 침식지(浸蝕地)를 가리킨다. 그러나 여기서는 얍복 강이 흘러들어 오는 요단 강 일대의 계곡 지대를 가리킨다.

'비드론 온 땅' '비드론'(bithron)의 뜻은 '협곡'또는 '갈라진 틈'이다. 이로 보아 '비드론 온 땅'이란 요단 강 동편의 한 골짜기 일대를 가리키는 듯하다.

31 다윗의 신복들이 베냐민과 아브넬에게 속한 자들을 쳐서 삼백육십 명을 죽였더라 

'삼백 육십 명을 죽였더라' 다윗측의 전사자 수가 12명인 것에 비교하면 엄청난 수이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요압의 뛰어난 전술과 그 휘하 용사들의 용맹성에서 기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아브넬 휘하의 베냐민인들 역시 호전적(好戰的)이고 싸움에 능한 자들이었던 점(창 49:27)에 비추어 볼 때 이 역시 이스보셋 왕가(8-10절)를 쇠퇴하게 하고 대신 다윗 왕조를 굳건케 하시려 한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임에 분명하다.

32 무리가 아사헬을 들어올려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조상 묘에 장사하고 요압과 그의 부하들이 밤새도록 걸어서 헤브론에 이른 때에 날이 밝았더라

'베들레헴에... 장사하고' 베들레헴은 기브온에서 남쪽으로 약 20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압은 헤브론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사헬의 시신(屍身)을 거두어 장사지내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12-32절 지도 참조.

'그 아비 묘' 요압, 아비새, 아사헬의 아비 곧 스루야의 남편이 젊은 나이에 죽었음을 증거해 주는 구절이다. 18절 주석 참조. 그런데 그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음은 별다른 명성을 얻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