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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세상을 바로 잡으시다

LNCK 2023. 4. 12. 11:48

부활, 세상을 바로 잡으시다  : 갓피플TV  - YouTube

◈부활, 세상을 바로 잡으시다   고전15:20~28    23.04.09 
*부활에 대한 신학적 해석입니다! 즉 '개인적 부활'이 아니라 '우주적 부활'을 강론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 신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부활은 온 세상의 중심이 되는 사건입니다. 

온 세상의 미래를 결정짓는 사건입니다.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바로잡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활을 통해 세상을 바로잡으신다'는 의미는 
이 세상이 하나님 나라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상식처럼 여기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욕하는..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는 그러한 세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 의미의 상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바를 거역하는, 반역의 흐름이 있는 세상입니다. 

예수님께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그 주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회복되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래서 <순전한 기독교> 를 쓴 C S 루이스는, 예수님을 가리켜서 
'군사령관으로 반역의 세상에 와서 참된 왕권 통치를 회복하기 위해 
그 반역의 무리들 틈에 뚫고 들어온 군사령관과 같은 분이다...'  

그래서 그 책의 두 번째 쳅터에는 '하나님의 침공' INVASION 이라는 
타이틀을 써서 예수님을 소개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올바른 세계관이요, 성경에서 보여주는 올바른 세계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키시고, 온 세상을 바로 잡으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미를 설명할 때 
그것이 온 우주적인 사건이며 
온 세상에 중심이 되며, 온 세상에 미래가 달려 있으며 
온 세상을 바로잡은 사건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3가지 설명을 통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아니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때문에 생겨난.. 인간이 자초한 결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의미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으로만 끝났다면, 
그 죽음의 의미는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계속하신 예수님의 죽음이, 죄의 대속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와 부활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뗄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이 십자가는 의미가 없는 것이고 
십자가 없이 부활은 있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오늘 본문에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고 말합니다.  고전15:20
'첫 열매'라는 것은, 추수 때에 장차 많은 열매가 있을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절기 가운데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대의 마지막 10재앙으로부터 건짐을 받는 
어린 양의 그 피의 약속을 통해서 구원받았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이후에 다가오는 절기가 "초실절"이라는 절기가 있습니다. 
첫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거죠. 
그때는 보리 추수의 기간인데 
보리 한 단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절기인 초실절은

그것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유월절의 성취라면 
부활은 초실절의 성취로서, 

장차 하나님께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추수를 이루실 때에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첫 열매가 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의 부활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모두의 부활)
예수님의 부활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까 부활할 수 있었지' 
라고 끝나서는 안 된다는 거죠. 

예수님의 부활이, 곧 그를 믿는.. 그래서 그에게 속한 모든 이들의 부활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그것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는 뜻입니다. 

'죽음'을 잠이라고 말했습니다. 
잠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힘을 얻습니다. 새로운 에너지를 회복합니다. 
그처럼 우리가 죽음이라는 상태를 통과하여 
(잠을 자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회복'으로 들어갑니다. 
영원한 생명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 안에서 생명을 얻습니다. 

첫 사람인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아담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죽음의 DNA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린 시절 태어나서부터 자라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겁니다.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겁니다. 
그 이유는, 아담 안에서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담에게 속하지 아니한 새로운 사람, 둘째 아담,
새창조의 사람이 오셔야만 했던 겁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이 동정녀로부터 태어나신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아담 안에 속하지 아니한 새로운 인류의 시작의 사람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사람을 개조하거나, 바뀌게 하거나,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이 다른 분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둘째 아담으로 세상에 오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음에 처한 것처럼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두가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부활을 통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성령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인류의 인구는 수십 억명 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전 인류의 인구는 단 두 사람뿐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

하나님은 이 두 사람으로 세상을 보십니다. 
아담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이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그것은 아담의 몸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음이 실제인 것처럼, 생명 또한 실제 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가 죄와 죽음과 싸우며 살아가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와 생명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5:22~23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첫 창조 때,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죄와 사망이 이 땅을 주관하게 되었지만 
둘째 아담, 새 아담이신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에게 의로움과 영원한 생명이 주어짐으로써 
그에게 속한 모든 이들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 
이 사건 이야말로 역사의 중심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생명으로 들어갈 수 이 부활의 사건이야말로 
온 세상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2.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모든 권세를 멸하시고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치게 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5:24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때에 권세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세입니다. 
이 세상이 왜 혼란스럽습니까, 왜 세상이 고통스럽습니까? 
왜 세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절망합니까?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는 타락한 권세 때문입니다. 
그 권세를 통해, 자기만 잘 살겠다고 하는 악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권력자들은, 그 권세가 자기 것인양 착각합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한 권세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권세입니다. 

시간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질도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 또한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의 청지기, 물질의 청지기, 건강의 청지기
우리 인생의 청지기입니다. 

그런데 권세 AUTHORITY 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겁니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위치에 있든지 
그 권세, 그 오소리티 는 바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권세의 청지기' 입니다. 

그런데 타락한 죄 가운데 있는 인간들은 
모든 종류의 권세를 자기의 것으로 여깁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권세의 청지기'가 된 사람은, 자신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그 위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권세가 자기의 것이라고 알게 될 때는 
불의와 타협하게 되고, 탐욕스럽게 되고, 다른 사람을 억압하게 되고 
이기적인 지도자가 되어버립니다. 

엡6:12절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권력 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될 대상을.. '권세, 권력,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이게 뭡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력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거에요. 
(엡6:12절은 원래 악한 영적 세력을 뜻하는 말이지만, 그 영적 세력이 
실제로 세속 권력에 침투해서 역사할 때.. 똑같은 거죠)

사단이 왜 인간을 타락시켰을까요? 
사단이 인간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은, 인간의 영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만물의 통치자 하나님을 대비하여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권세를 부여받은 인간이 타락할 때 
그 영향력이 엄청나게 세상에 미쳐지는 거죠. 

다른 어떤 동물의 타락에 그런 영향력이 있습니까? No
그저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그런 동물들이 타락함으로 어떤 세상에 영향력을 미칩니까? No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대리자로 지음받은 인간이 
그 권세를, 타락해서 잘못 사용할 때 
세상은 엄청나게 사단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단은, 인간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세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무너뜨리며 
'인간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든다'고 하지만 
실상은 인간이 주인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이 되는 거에요.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주인되는 세상 이라 말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인간 안에 있는 죄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세상이 될 위험이 있어요. 
(제가 민주주의를 부정한다는 게 아니라, 잘못 이해할 경우에 그렇다는 거죠)

그래서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근본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고 
자유라는 이름으로, 창조 질서를 무너뜨리는 그런 세상이 될 때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권세가 주관하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왜 죽으셨습니까? 

우리는 사회학적으로 당시에 불의한 권력자들이 
의로운 한 사람을 죽인 사건으로만 여기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악한 권세를 드러내시고 
그 권세의 악함을 드러내시고 십자가에 못 박은 사건이며 
부활을 통해, 그 권세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사건이라고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4444444

고린도전서 뿐만 아니라 골로새서에서도 
2:14~15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과거에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십자가가 어떻게 승리입니까? 십자가는 연약함 아닙니까? 
십자가는 힘 있는 자들에 의하여 죽임당하는 그런 패배 아닙니까?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 십자가는 패배요, 연약함이요, 나약함으로 끝나는 겁니다. 

힘센 불의한 권력에 의해서 의로운 한 분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십자가는 끝나는 겁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말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골2:15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불의한 권세의 정체를 드러내시고 
이제 부활하심으로 
그 권세의 주인되신 하나님께 
모든 권세와, 권력과, 큰 나라를 하나님 앞에 바치시는 
부활하신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 세상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한 이 세상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사건이 되었다는 거에요. 

그런 의미에서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사건이 되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3. 부활을 통해 모든 원수들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실 때까지 다스리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지금 현재 하고 계신 일입니다. 

고전15:25~27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지금 현재,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완전히 정복되지 않은 까닭은 
여전히 있고 원수들을 정복하는 일을, 지금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원수들을 다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둘 때까지 
그분은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셔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시110:1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렇게 이어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
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보좌우편에 앉으셔서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두고 계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아직 죽음은 완전히 정복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부활로 죽음을 정복하셨기에 
확실히 정복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죽음이 있지만, 죽음은 이미 정복되었고 
장차 완전히 그 마지막 원수가 정복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꿈꾸던 이 세상에 대한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오심으로, 옛 세상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을 생각했죠. 

'옛 세상이 끝나고 메시아의 오심으로 이제 새로운 세상이 온다' 맞는 말같죠. 
그런데 예수님이 오심(초림)으로 그러한 세상이 완전히 성취되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이 때 오시는 (초림의) 메시아는 
그러므로 옛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능력의 메시아, 
그리고 전지전능한 메시아의 능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줄 것을 생각했죠. 

그런데 예수님의 모습은 고난받으시고 죽임당하시고 
그런 모습에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했던 메시아가 아니구나! 라고 생각해서' 
예수님을 떠나고 배신하고 그랬던 겁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서 
그분은 세상에 오심으로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어요. 
그 죽으심으로 첫째 아담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치러야 될 대가를 치르시고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셨어요. 

이것이 예수님의 초림 때 일어난 일이에요. 
그런데 옛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죽음이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세상이 도래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옛 세상이 겹치는 기간 동안에 살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은 두 차례 오시는 겁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 거에요. 
'근데 한번에 오셔서 끝내지, 왜 두 번에 걸쳐 오시는가?' 

실력과 능력이 부족해서 두 번 오시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이며, 이 세상을 바로잡으실 때 
한번에 오심으로 세상을 끝내시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안 하시고, 이런 (두 번 오시는) 과정을 거치십니까? 
왜 십자가를 지키고, 부활하시고, 다시 온다고 말합니까? 
왜 이런 기간이 필요합니까? 

만일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세상을 그저 시작하셨다면 
악에 속한 모든 사람들은, 그저 사단과 함께 멸망하는 거에요. 
우리는 구원받지 못하는 겁니다. 

바로 이 기간을 주심으로써, 우리가 구원받게 하시고, 은혜받게 하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밝혀보여주시는 겁니다. 

D-Day, V-Day는 2 차대전 이후의 역사가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2차대전이 연합군이 점점 승리해 가고 있을 때 
1944년  월에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서 연합군이 승리한 사건을 가리켜 
역사가들은  '이것은 결정적인 날이다' 이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그때 D-Day 라는 말이 나왔죠.  *Decision  day, 결정적 승기를 잡은 날 

그런데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지만, 독일군은 여전히 저항했습니다. 
독일군이 완전히 항복한 때는 1945년 5월 경 베를린이 함락됐을 때 
그 때가 2차대전이 확실히 끝난 날이고, 연합군의 승리의 날이 되었죠. 
이 날을 V-Day, Victory day 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 사례의 요지는, D-Day 와 V-Day 사이에 시간의 간극이 있다는 것입니다.
D-Day는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십자가로 승리하는 날이고 
V-Day는 예수님이 장차 재림하셔서, 완전히 마귀와 사망을 끝장 내실 날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D-Day 와 V-Day 사이, 중간이라는 거죠.
그래서 이미 승리했지만, 아직 완전한 승리는 하지 못하고 있는 거죠. already not yet

일본군도 마찬가지죠.
일본군이 결정적으로 패색이 짙은 것은 D-Day, 원자탄을 맞은 때였죠.
그런데  V-Day, 일본이 완전히 패망한 것은 1945.08.15. 항복문서에 싸인한 날이죠.

이것을 예수님의 두 차례 오심에 적용시켜보면 
예수님이 땅에 처음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부활 승천하신 것은 
결정적으로 세상을 바로잡으신 사건이에요. D-Day

그리스도의 승리로 인해서, 죽음이 왕 노릇하는 세상은 끝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세상은 이미 온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세상에 죽음이 존재하는 것은 
V-Day, 완전한 사단의 항복의 날,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완전히 정복되는 날이 아직 남아 있는 겁니다. 

그 V-Day는 는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거에요. 
지금 우리는 D-Day 와 V-Day 사이에 살고 있어요. 

왜 D-Day 와 V-Day 사이를 허락하셨습니까? 앞서 말한 대로 
'보라 지금은 구원얻을 때요,  은혜받을 만한 때라' 
하나님 우리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이 타락한 인류 가운데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구원을 증거해야되는 선교와 전도의 기간이기도 한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에 마지막 원수인 죽음이 정복될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단지 미래를 위한, 미래를 향한 소망만이 아니에요. Hope for the future
미래로부터 오는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거에요. Hope from the future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단지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이 아니라는 거죠. 
세상의 모든 소망은, 막연한 미래를 꿈꾸고 잘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라는 거죠. 
우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바라보며 
'그저 잘 됐으면 좋겠다' 라는 바람의 소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D-Day가 이미 주어졌고, V-Day가 다가오고 있기에 
확실한 승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보장된) 미래로부터 우리는 소망을 얻는 거에요. 
Hope from the future 인 소망이에요. 

세상의 소망과 비전은, 현재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소망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비전은 
미래로부터 현재를 바라보는 거에요. 

왜요? 장차 승리의 날이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아담안의 모든 자들이 죽음에 처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이들이 다시 사는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권세를 멸하시고 
모든 나라를 아버지께로 바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원수가 정복될 때까지, 보좌우편에서 통치하고 계십니다. 

이제 다시 오시는 그 V-Day에는 더 이상의 은혜는 없습니다. 
더 이상의 인내는 없습니다. 

다시 오실 때는, 영원한 멸망과 심판 
아니면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구분만 있을 겁니다. 

그때도 여전히 아담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멸망밖에 주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새하늘과 새땅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자연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반역한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결정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오실 그 때에 
완전히 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는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상의 미래가 궁극적으로 소망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우리가 기뻐하며 
그 부활에 날마다 참여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