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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5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4. 14. 17:34

한글 주석 - HANGL NOCR

◈삼하5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어떤 학자들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3절에 기록된 '이스라엘 모든 장로'와 같은 의미로 본다. 
즉, 이들은 20세 이상의 모든 지파의 인구가 헤브론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 지파의 모든 장로들이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대표하여 왔기 때문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온 것처럼 저자가 기록한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대상 12:23-40에 비추어 볼 때 옳지 않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다윗을 위해 헤브론으로 나아온 인구가 무려 약 35만명에 이르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이스라엘 모든 지파'와 3절의 '이스라엘 모든 장로'는 같은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볼 때, 1, 2절은 이스라엘 온 지파가 다윗을 자기들의 왕으로 삼으려는 장면이며 3절은 그 결과 이스라엘을 대표한 장로들이 다윗을 공식적으로 왕으로 삼는 장면이라 하겠다. 즉 1-3절은 한 사건을 중복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과정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왕의 골육' 직역하면 '당신의 뼈 그리고 당신의 살'(thy bone and thy flesh, KJV)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상호간의 혈육 관계를 나타내는 관용어이다(창 2:23, 29:14, 37:27, 삿 9:2). 따라서 이는 결국 다윗에 대하여 백성들이 전적인 신뢰를 표한 말임을 알 수 있다.

2 전에 곧 사울과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출입하게 한 자'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모치 웨하메비' 는 문자적으로 '나오고 들어감'을 의미하나, 주로 이 용어는 '군대를 지휘하기 위해 출입하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다(삼상 29:6, 왕상 3:7, 대하 23:7, 수 14:11). 
따라서 여기서는 사울 휘하에서 이스라엘 군대를 잘 이끌어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던 다윗의 지도력(삼상 18:6, 7)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목자... 주권자가 되리라' 
여기서 '목자'란 백성들에 대한 봉사의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신정 왕국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그분의 뜻대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보호하고 먹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반면 '주권자'란 백성들에 대하여 강한 지도력, 통치권을 행사하는 측면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왕은 비상시에 군 최고의 통수권자로서 백성을 효율적으로 관리, 적의 위협을 분쇄해야 할 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능률적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에 입각하여 국정을 이끌어 갈 의무가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직접 본절에 언급된 것과 같은 말을 하셨다고 하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3:9, 10, 18, 삼상 13:14, 15:23, 26, 28, 25:30등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이같은 신탁(信託)은 이미 그 당시 백성들간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던 것이다.

3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언약을 세우매' 왕위 즉위식 이전에 행하는 공식적인 행사였던 이 언약은 쌍방간의 합의에 의한 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사실을 '다윗 왕이... 저희와 언약을 세우매'라는 본 구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본 구절의 주어는 '저희'가 아니고 '다윗'이다. 따라서 언약의 주체는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었고 다윗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 언약이 쌍방적인 성격이 아니라 일방적인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하나님의 언약(삼상 13:14, 15:23, 26, 28)과 관련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시며 왕으로 삼으시겠다고 하신 언약은 다윗이나 기타 모든 백성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결정하신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다윗 왕을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겠다고 하는 서약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지 결코 군주와 국민들간의 어떠한 이해 관계를 따져 협상하는 것이 아니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다윗을 왕으로 삼겠다고 맹세하므로, 그 나라에 큰 복을 베푸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언약의 내용은 다윗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 아니었고 그 반대로 백성들이 다윗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서약이었다

따라서 이 언약을 통해 본 신정 국가의 국가관은, 군주와 국민의 계약 관계를 국가 성립의 근본으로 본 근대의 국가관과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신정 국가의 왕이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독재자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가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뜻할 뿐이다.

'저희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이 사무엘 당시(삼상 16:13), 그리고 유다 지파의 왕으로 세움 받을 당시(2:4)에 이어 마지막 세번째로 기름 부음을 받는 장면이다. 그런데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대상 11:3에는 '여호와께서 사무엘로 전하신 말씀대로 되었더라'는 말이 덧붙여 있다. 이와 같이 다윗의 세번째의 기름 부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다윗과 맺으신 그 언약(삼상 16:1)을 어김없이 이루신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2:4 주석 참조.

'이스라엘 왕을 삼으니라' 이로써 이제 유다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다시금 사울 통치 때와 마찬가지로 한 왕 아래 통일 되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 아래에서 최초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루었다는 의의를 지닌다. 

4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삼십 세'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다윗왕의 나이인 삼십 세는 성경상으로 볼 때 하나님의 공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최소한의 나이였다. 즉, 이 나이는 (1) 레위인이 성전에서 봉사를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으며(민 4:3, 대상 23:3), (2)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던 나이였으며(창 41:46), (3)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나이였다(눅 3:21-23). 
이와 같은 사실은 적어도 성도는 이 나이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공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암시적 메시지를 제공해 준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이와 학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당신의 사람을 적재 적시(適材 適時)에 들어 쓰신다(삼상 17:41-54). 그러나 인격적 성숙은 나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도 사실인 것이다.

5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 

'헤브론에서 ... 예루살렘에서 ... 다스렸더라'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시점에서 그의 통치 연대를 개괄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는 성경 기자들이 왕조(王朝)의 역사를 기술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서술 양식 중 하나이다(왕상 15:9, 10, 16:29, 왕하 3:1, 12:1, 13:1, 14:2, 23, 15:27).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그 부하들이' 
여기서 가리키는 다윗의 부하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서는 두 가지 그럴듯한 견해가 있다. 
(1) 다윗에게 서약하기 위해 온 '온 이스라엘의 군대'(1-3절)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대상 11:4의 내용과 일치한다. 
(2)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이 종자들이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윗과 행동을 함께 해온 그 정예병들 (삼상22:4, 23:13)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근거로서, 만일 온 이스라엘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정복했다면 구태여 본서 저자가 '다윗의 종자들'이란 말을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세운다. 

그런데 (1)번의 견해는 평행 구절(대상 11:4)과 일치하며 
(2)번의 견해는 문자 해석상 그럴 듯하므로, 따라서 이 두 견해는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충적인 견해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즉 다시 말해서,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 가까이까지는 나아갔으나, 실제로 지형적으로 험난한 예루살렘을 공략한 자들은 다윗의 종자들, 곧 요압과 그 정예 군사들이었다고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예루살렘' 다윗이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천도(遷都)하려 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은 정치적, 지형적, 종교적인 이점들 때문이었다. 
(1) 헤브론은 유다에서 볼때는 중심 지역이었지만 온 이스라엘로 볼 때는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었다. 2:1 주석 참조. 그러나 예루살렘(Jerusalem)은 온 이스라엘을 치리하기에 아주 좋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었다. 
(2) 예루살렘은 주위가 깊은 골짜기로 형성되었고 성읍 자체가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천혜(天惠)의 방어 요새였다. 
(3) 예루살렘 동쪽 기드론 골짜기에는 기혼 샘이 있어 충분한 수원(水源)을 확보하고 있었다. 
(4) 예루살렘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경계지였다(수 15:7, 8, 18:6). 따라서 예루살렘은 두 지파 간의 심각한 갈등을 해소시키며, 더 나아가 온 나라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는 적합한 도읍지였다. 
(5) 예루살렘은 온 이스라엘의 중심부로서 중앙 성소를 짓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실 수 있는 성전 건축의 최적소(최적소)로 예루살렘을 지목하였던 것이다. 

'여부스 사람' 
여부스 족속(Jebusites)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예루살렘과 그 주변 산간 지역에 계속 정주(定住)해 왔던 족속이다(민 13:29, 수 15:8, 18:16). 
이들은 여호수아 당시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아 일시적으로 패주하기도 했으나(수 10:23, 26)완전히 정복당하지는 않았다. 
그 후 사사 시대에 이르러 유다 및(삿 1:8)베냐민 지파의 자손들(삿 1:21)도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한고로 그들은 점차 세력을 확보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그들의 방어 기지로 삼게 되었다. 
그러다가 이제 다윗에 의해서야 비로소 완전히 정복당하고 만 것이다(7-9절). 한편, 여부스(Jebus)는 한때 예루살렘의 다른 이름으로도 사용되었다(수18:16, 28, 삿 19:10, 대상 11:4).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여부스 족속이 쳐들어 오는 다윗에게 큰소리 치는 장면이다. 지리적으로 여부스 족속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독립한 나라로서 이와 같이 큰 소리를 칠 수 있었던 까닭은 다음과 같은 예루살렘의 지형적인 이점 때문이었다. 
(1) 예루살렘은 당시 가나안을 남북으로 연결시켜 주던 주요 도로인 '왕의 대로'(King's Highway, 민 20:17, 21:22, 신 2:27)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2) 예루살렘 남쪽과 동쪽의 성벽은 절벽과도 같은 가파른 언덕에 세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3) 예루살렘 주변에는 외적의 침입을 막아 주는 기드론(동), 힌놈(서), 두로베온(남쪽)과 같은 깊은 골짜기가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천혜의 방어 기지를 가지고 있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자신 만만하게 다윗을 향해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고 큰 소리 쳤던 것이다.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메튜 헨리는 이와 관련, 여부스족들이 다윗을 조롱하기 위해 실제로 예루살렘 성벽에 소경과 절뚝발이들을 세워놓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 사실 여부는 오늘날 확인할 수 없지만, 아무튼 본절은 당시 예루살렘 성을 과신(過信)했던 여부스인들의 자만을 충분히 증거해 준다. 하지만 그들은 과거 철옹성 여리고도 함락시킨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권능(수 6:1-20)을 기억해야만 했다.

7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시온 산성' 시온(Zion)은 '요새'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구릉(丘陵)의 이름이다. 그런데 이곳에 세워진 산성을 다윗이 빼앗아 다윗 성(the city of David)이라 이름하였다. 그러나 '시온'은 광의적으로 예루살렘 전체를 묘사하는 말로 곧잘 사용되었는데(왕하 19:21, 사 3:16, 슥 2:10),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하여 자주 언급되었다(사 24:23, 옵 1:17).

8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이 천혜의 요새 시온 산성을 어떻게 빼앗을 수 있었는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구절이다. ‘물 긷는 데’의 '친누르' 는 '하수도', '배수로', '지하 통로'따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는 곧 예루살렘 남동쪽에 있는 기혼 샘에서 남쪽 저수지로 흘러 들어온 물을 끌어 올리기 위해 수직으로 파놓은 갱도(坑道)를 의미한다. 이 갱도는 성 안에서 성 밖으로 연결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예루살렘 성안으로 군사들이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따라서 다윗이 이곳을 통해 적 진지에 들어가 공을 세우는 자에게 푸짐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하자 요압과 그 군사들이 이에 응하였던 것이다(대상 11:6). 

한편 이 수갱(水坑)은 1886년 그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1967년 워렌(Charles Warren)이 재차 발견하여 현재 '워렌 수갱'이라 불리워지고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이 수갱이 B.C. 2000년 경에 예루살렘 거민들에 의해 건설되었음도 밝혀내었다.

'절뚝발이와 소경' 여기서는 다윗이 당시 지형적인 이점을 의지하고 교만하게 말했던 여부스 사람들(6절)을 비꼬는 말이다. 즉 저들은 불구자가 아니었지만 이제 다윗의 공격 앞에 꼼짝 못하고 그대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절뚝발이와 소경이 된 셈이다. 그런데 이는 훗날 속담이 되어 '미운 사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여부스인들처럼 자기의 힘만 믿고 교만하여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은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사게 된다. 그리하여 결국 어떠한 집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9 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밀로' 채우다(말레아)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이 '밀로'(Millo)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학자들은 이것이 흙이나 돌로 쌓아 올린 성채(城砦)를 의미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다. 이 성채는 아마도 여부스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읍에서 가장 취약 지구인 북방의 방어를 위해 북동쪽이나 북서쪽 한쪽 모퉁이에 세워 놓았던 것일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이 밀로를 기점으로 하여 예루살렘에 성벽을 둘러 쌓음으로써 외세 확장의 기틀과 여호와 종교를 위한 중앙 성소의 기초(대하 3:1)를 마련하게 되었다. 한편, 솔로몬과 히스기야는 이 밀로를 증축, 또는 수축한 바 있다(왕상 11:27, 대하 32:5).

10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에 해당하는 '야웨 엘로헤 체바오트' 는 '천군 천사(天軍 天使)의 하나님 여호와'로도 번역될 수 있는 말이다. 왜냐하면 '체바오트'의 기본형 '체바아' 는 본래 '군대', '무리'란 뜻으로,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거느리고 계시는 수많은 하늘 군대인 천사들(욥 33:23, 느 9:6, 시 103:21, 마 10:27, 히 12:22)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란 하나님의 큰 권능과 위엄을 강조하는 신명(神名)으로서, 약칭 '야웨 체바오트'로 종종 표기된다(6:2, 삼상 15:2, 왕하 3:14, 대상 17:24, 시 24:10, 사 1:9).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하심의 결과이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늘 군대를 인솔하시어 다윗의 대적을 물리쳐 주시니(6-9, 17-25절)그의 왕국이 안으로는 물론 대외적으로 인정받게 될 정도로(11절)강성해진 것이다. 12절 주석 참조.

11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본절은 다윗 왕과 히람왕 간의 화친장면이다. 그런데 이는 17절 이하에 나오는 블레셋 정복 사건 이전에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블레셋 정복이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보다 시간상으로 빨랐을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가 가능한 것은 성경이 반드시 연대순으로만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도(topically) 배열되어 있는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견해가 가능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들 때문이다
(1) 결정적으로 본문의 내용 자체가 이를 뒷받침 해주기 때문이다. 즉 17절에 보면,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은 직후에 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며(17-25절)성벽을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었던(9절) 다윗 초기에 그가 거할 궁궐을 지었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2)또한 다윗이 즉위하던 때에는 히람(Hiram)왕이 분명히 왕위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왕상 9:10에 의하면, 히람 왕은 최소한 솔로몬 통치 20년까지는 생존하였다고 하였으니, 그가 다윗의 즉위 초기부터 왕위에 있었다고 보기에는 너무 무리이다. 이에 대하여 고대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우리에게 간접적인 증언을 해주고 있다. 즉 그의 [고대사 Antiquities]에 보면, 히람 왕은 그의 부왕 아비바알을 계승하여 34년간을 통치하다가 그의 나이 53세에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증거에 의하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할 때(1-3절)그는 왕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따라서 다윗과 히람의 화친은 다윗의 초기가 아니라 말기에 이루어진 사건임이 분명하다. 
(3) 또한 히람이 아무런 연고도 없이 다윗에게 사절단을 파견하였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즉 이는 분명 다윗이 블레셋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을 보기좋게 제압하자(17-25절) 다윗의 큰 세력을 인식한 히람 왕이 화친의 제스처로 사자들과 백향목 등을 보내온 것으로 사료(思料)되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증거들로 미루어 볼 때, 다윗과 히람 왕의 화친은 다윗의 블레셋 정복 사업보다 훨씬 이후에 일어난 사건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본절은 저자가 다윗의 흥왕(10절)의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해 앞당겨 기록한 내용일 것이다. 

'두로' 두로(Tyre)는 시돈(Sidon)과 함께 B. C. 8-10세기경 베니게(Phoenicia)의 중심적인 도시 국가였다. 이스라엘 최북단 국경에서 약 24km 서북쪽에 위치해 있던 이 도시 국가는 지중해 연안 국가로서 일찍부터 목재, 밀기름, 포도주, 금속, 노예, 말 등을 수출하는 무역 국가였다. 한편 B. C. 10세기 경에는 두로가 시돈을 압도한 듯 했으나 얼마 후에 두로는 시돈의 지배를 받은것 같다(사 23:2, 12). 하지만 그들의 전성 시기에 두로의 상선들은 애굽과 스페인까지도 진출했었다.

'히람' 일명 '후람'(Huram)이라고도 하며, 이름의 뜻은'고귀한 자'이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두로를 다스리던 왕으로서, 다윗은 물론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적극 조력한 것으로 유명하다(왕상 5:1-12).
히람 왕이 이렇게 좋은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었다는 사실은 그 당시 다윗이 다스리던 신정 국가의 위세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12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본절에서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을 왕을 삼으신 것'을 알았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한 사건(3절)을 기억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와는 달리, 이 말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정복(6-10절), 블레셋 정복(17-25절), 히람 왕과의 화친(11절)등 만사 형통하는 여러 사건들을 통해 여호와께서 자기를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그 본질을 확실히 파악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편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 후반부에서 여호와께서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다윗이 알았다는 말도 같은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사 그 나라를 열방 중에 높이신 것은 다윗 개인에게 탁월한 지도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복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는 여러 차례 경험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13 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취하였으므로' 그당시 동양적인 관습에 따르면, 처첩의 수는 곧 권세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다윗도 그당시 보편화된 관습에 따라 많은 처첩을 거느렸는데 이제는 예루살렘에서 유다 지파 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되었으므로(1-5절) 더욱 그러하였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애기해 다윗이 하나님의 율법(신 17:17)을 어기고 취한 많은 처첩들은 그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수치를 안겨 주고 말았다. 
그리고 훗날 아비 다윗의 영향을 받은 솔로몬 역시 다윗보다 더 많은 처첩을 거느린 결과(왕상 11:3) 나라 안에는 각종 이방 우상 숭배 풍조가 만연하였고(왕상 11:4-8) 외환(外患)이 끊이지를 않았다(왕상 11:14-15). 
따라서 우리는 이상과 같은 사례만 보더라도 일부 다처주의, 축첩 행위가 명백히 하나님의 뜻(창 2:24)에 위배되는 것이며 또한 그에 따르는 불행 역시 엄청난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다. 

14 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 이들은 모두 밧세바의 소생이다. 그런데 12:24에는 이들 중 마치 솔로몬이 밧세바의 첫 아들인 양 기록되어 있다. 아마 그 까닭은 솔로몬을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부각시키려는 목적에서 기록한 탓일 것이다.

15 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 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 

'엘리벧렛'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이심'이다. 그런데 대상 3:6, 8에는 이 이름으로 불리우는 다윗의 아들이 두 명 나온다. 본절의 '엘리벧렛'은 이 중 대상 3:8에 나오는 '엘리벧렛'이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대상 3:6에 나오는 '엘리벧렛'을 '엘벧렛'(Elpalet, 대상 14:5)으로, 본절의 '엘리벧렛'(Eliphalet)은 그냥 그대로 표기함으로써(대상 14:7) 양자를 구분하고 있다.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대부분의 역사가들과 주석가들은 본절 이하에서 보여 주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가 실제로는 다윗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사건(6-10절) 이전에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저들은 그 증거로서 몇가지 점을 들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직후에 다윗과 전쟁을 벌이려 쳐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즉 다윗 왕은 즉위하자마자 블레셋의 대침공을 막아내야 했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점령할 여유(6-10절)가 없었을 것이다. 
(2)블레셋 군대가 예루살렘을 직접 공략하지 아니하고 르바임을 공격했다는 사실이다(18, 22절). 이와 같은 사실은 아직껏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증거이다. 
(3)본 절의 '블레셋 사람이 다윗을 찾았다'는 말은 다윗이 아직 예루살렘에 그의 거처를 정하지 않았음을 강력히 시사해 준다(9절). 
(4)더욱이 본문의 평행 구절에 해당되는 23:13, 14에서는 다윗이 블레셋의 침공을 맞이하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 준다. 이는 그가 아직도 예루살렘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즉, 그가 이미 예루살렘을 정복했었더라면, 구태여 아둘람 굴에 진영을 설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이상과 같은 여러 증거들로 볼 때 다윗의 블레셋과의 전투는 예루살렘 정복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임에 틀림 없다.

'블레셋 사람이 듣고 다윗을 찾으러다 올라오매' 블레셋 군대가 전에는 다윗을 죽이려 하지 않다가 그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곧 그를 죽이려 한 것은 그들의 얄퍅한 정치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즉,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에 그를 죽일 수 있는 처지에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다(삼상 27:1-12). 그 이유는 다윗을 당시 이스라엘이 왕 사울의 견제 세력으로 키워 이스라엘이 통일 국가가 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계산 때문이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1-3절)길보아 전투(삼상 31장)이후 북방 이스라엘 지경에서 크게 세력을 확보한 그들은 위협을 느끼게 되었다. 2:10 주석 참조.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의 확장된 세력을 굳히기 위해 이제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이다.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르바임 골짜기(the valley of Rephaim)는 그 뜻이 '거인의 골짜기'인 것으로 보아 이는 아마 그 골짜기 부근에 살았던 거인족 '르바임'(신 2:11)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인 듯하다. 실제로 그 지명처럼 르바임 골짜기는 길이가 약 5km, 폭이 약 3km 정도나 되었으니 엄청난 수의 병력이 그곳에 포진(布陣)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서남쪽에 위치한 골짜기다. 이 골짜기의 북쪽 끝은 유다 지파의 북쪽 접경지인 동시에 또한 베냐민 지파의 남쪽 경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블레셋 군대가 이곳을 먼저 점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과 유다의 경계지인 이곳을 차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을 남북으로 분단시키고자 함이었다(Leon Wood). 그런데 이들이 이처럼 엄청난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아마 다음과 같은 요인 때문이었을 것이다. 
(1)르바임 골짜기 바로 남쪽에 그들의 요새인 베들레헴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23:14). 아마도 이 베들레헴은 길보아 전투 때에(삼상 31:1)그들의 손 안에 들어갔을 것이다. 
(2)또한 그들은 아직껏 유다와 베냐민의 경계지인 예루살렘 요새가 다윗의 손에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다. 17절 주석 참조.

19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여호와께 물어 가로되' 이말은 다윗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당시 다윗과 함께 했던 제사장 아비아달은 우림과 둠밈을 단 에봇을 소유하고 있었다. 2:1 주석 참조. 아무튼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중요한 일을 당할 때마다 먼저 여호와의 뜻을 구한 다음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그의 훌륭한 신앙을 엿볼 수 있다(2:1, 삼상 23:9, 30:7).

'네 손에 붙이리라'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개인의 생명이나 국가의 장래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음을 나타내 준다(16:8, 창 14:20, 신 2:30, 수 10:8, 왕상 20:13). 신 1:2 주석 참조.

20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 이라 부르니라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칭하니라'는 말은 이 지명이 옛부터 내려온 고유의 지명이 아니라 다윗의 대첩(大捷)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이 붙여진 이름임을 보여 준다. 
한편 바알브라심은 '주'(Lord)라는 뜻의 '바알' 과 '터치고 나옴', '부숴뜨림', 또는 '흩음'을 의미하는 페라침 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복합어이다. 따라서 이 말의 의미는 '흩으심의 주'이다. 즉, 이는 블레셋 대군을 물을 흩어버림과 같이 쉽게 물리쳐 주신 여호와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다윗이 만들어 붙인 신지명(新地名)이다. 

'여호와께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다윗은 이처럼 블레셋을 격파시킨 일이 자신의 지략, 용맹성, 군사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즉 그는 어떤 중요한 일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19절) 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이는 참으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빌 1:20)하여야 할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있어서 귀감(龜鑑)이 아닐 수 없다.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그 우상을 버렸으므로' 본절은 (1) 당시 르바임 골짜기에 편만에 있던 블레셋 대군(18절)이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얼마나 혼비 백산하게 후퇴했는가를 보여 주며, (2) 또한 다윗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능력(20절)이 얼마나 강력했는가를 보여준다. 
한편, 블레셋인들이 전쟁터에 그들의 우상을 가져온 것은 그들의 신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당시 고대 근동 국가의 미신적 관습 때문이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이 법궤를 메고 전쟁터에 나갔던 사실(삼상 4:3, 4)과 외형상 일치한다.

'다윗과 그 종자들이 치우니라' 같은 내용의 기사인 대상 14:12에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우상을 불태운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처럼 다윗이 우상을 불태운 것은 우상에 대한 여호와의 율법대로 순종한 행위였다(신 7:5, 25). 

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블레셋 사람이 다시 올라와서' 다윗의 정예 부대 앞에 혼비 백산하여 도망갔던 블레셋 군대(17-21절)가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제 2차 공격을 해오는 장면이다. 아마도 그들은 이스라엘을 선제 공격하기는 커녕 도리어 예기치 않은 역습을 받아 뿔뿔히 도망쳐야 했던 첫번째의 실패를 만회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23-25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을 힘입은 이스라엘에게 두번 씩이나 연속해서 대패하므로 팔레스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올라가지 말고... 엄습하되' 여기서 '올라가지 말라'는 말은 고지(高地)에 올라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블레셋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앞서와 달리(19, 20절)이번에는 전면전을 피하고 기습전을 택하라고 하심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즉 당시 (1) 긴장하고 있는 블레셋 군사들의 사기를 완전히 꺽어놓고 (2) 그들을 이스라엘 지경에서 아주 멀리 쫓아 내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의 일환 때문이었다. 

아마도 블레셋군은 지난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군의 정면 공격을 예상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아시고 이번에는 다윗에게 기습 공격을 명하셨던 것이다.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보여 주는 공격 신호(attack sign)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다음과 같이 의견이 분분하다. 
(1) 이 공격 신호는 단지 강한 바람에 의해 나무 꼭대기가 흔들리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주장은 바람이 곧 여호와의 영(靈)을 상징하며, 그 움직임은 여호와의 임재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고대의 관념에 기초한다. 그러나 이 견해는 하나님의 공격 신호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 중 하나였으며 나무 흔들리는 소리가 아닌 걸음 걷는 소리였다는 점에서 적합하지 못하다. 
(2) 또한 이 공격 신호를 '나무의 신탁'(tree oracles)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즉, 다윗은 나무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징조를 가지고 점을 쳐서 하나님의 공격 신호를 찾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너무나도 미신적이다. 당시 참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신앙하던 다윗(19, 23절)이 이처럼 어리석은 미신적 행위에 탐닉하였을리 만무하다. 

(3) 이 공격 신호는 여호와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소리였다는 견해이다. 즉, 이러한 현상은 야곱과 엘리사에게 보였던 하나님의 군대의 진군을 의미한다는 주장이다(창 32:2, 3, 왕하 6:17). 이 견해는 '걸음 걷는'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체아다' 가 '행군하다', '전진하다'는 뜻이며 이번 전쟁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성전(聖戰)이었다는 점에 의거할 때 비교적 타당하다.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대상 14:16에는 '기브온에서부터 게셀까지 이르렀더니'라고 되어있다. 즉 본절의 게바(Geba)가 대상 14:16에는 기브온(Gibeon)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심각한 차이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해석들을 가하고 있다. (1) 본절의 게바는 본래 기브온이었으나 이 두 지명의 세 '자음' 이 똑같기 때문에 필사자가 실수하여 기브온을 게바라고 오기(誤記)했다는 해석이다.
이 해석은 게바의 위치가 예루살렘 북동쪽인 반면 게셀(Gezer)의 위치는 정반대인 예루살렘 서북쪽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즉, 정신없이 도망치는 블레셋 패잔병들이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갔다가 다시 정반대인 서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는 사실은 어쩐지 석연치 않다는 주장이다. 
반면,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게셀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게바보다는 기브온이 더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다음에 제시되는 견해에 비추어 볼 때 분명히 옳지 않다. 

(2) 삼상 13:3에 의하면, 게바는 블레셋군의 강력한 수비대가 있었던 곳이다. 한때 요나단에게 이곳을 뻬앗겼던(삼상 13:1-4) 블레셋 군대는 길보아 전투(삼상 31장)때 이곳을 다시 재탈환 하여 전보다 강력한 진지를 구축하였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본문에서 물처럼 흩어진 패잔병들이 그들의 강력한 수비대가 있는 게바로 일단 후퇴했다가 그곳에서도 이스라엘군을 막아낼 수 없게 되므로 그들의 본토인 게셀로 후퇴했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블레셋군이 제 1차로 후퇴했던 곳은 기브온이 아니라 게바임이 분명하다. 

(3) 그렇다면 이번엔 대상 14:16의 기브온이 또 다른 필사자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그렇다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게바로 후퇴했던 블레셋군이 게셀로 도망갈 때 기브온을 거쳐 도망갔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편, 블레셋군의 최종 도착지인 게셀은 블레셋 영토의 북동쪽 경계지이며 이번 전투 지점(르바임 골짜기)에서 최소한 24km나 떨어진 곳이었다. 이로 보아 다윗 군대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거두게 하신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