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되자마자 전쟁이 시작되다 삼하5:17~25 여러설교정리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마자
‘그 소문을 듣고’, 블레셋이 다윗과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17
본문에는 그 두 번의 침공에 대한, 다윗의 방어와 승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왕이 되자마자 블레셋이 공격해 온
것은, (다윗에게 쉴 틈을 안 주시는 것은) ..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왜냐면 아브넬과 이스보셋이 암상당한 후, 11지파의 대표들이
다윗 왕을 찾아와서,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했는데.. 삼하5:1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블레셋의 침공 조짐이 보이니까
그리고 블레셋의 침략 루트는 항상 이스라엘 북부를 통해서 였습니다.
그러니까.. 11지파 장로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빨리 다윗을 왕으로 세워서, 블레셋의 침략에 대비해야 했던 것이죠...
하나님은 이렇게 대적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도 하십니다.
◑1. 블레셋이 ‘다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를 가득 채우다 (1차 침입)
17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8 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르바임 골짜기는 가로 세로가 3 X 5 km 가량이라고 합니다.
여기를 가득 채울 정도의 군대면.. 대단한 군사력을 동원한 것입니다.
▲중국의 손무가 쓴 『손자병법』 에 보면
군주가 전쟁에 승리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첫 번째로 생각해야 할 것은
싸워야 할 때와, 싸워서는 안 될 때를
분명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지만,
-적을 모르고 나를 알기만 한다면 이기고 질 확률은 절반이 되고,
-적도 모르고 나 자신도 모른다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모든 문제 앞에서 그 문제와 싸워야 할지,
싸워서는 안될 지를 알아야 인생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만약 싸워야 한다면 내 인생 앞에 닥친 문제의 핵심을 알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알려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앞에 닥친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아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가 시139:1절에서 고백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시고 여러분 앞에 닥친 모든 문제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아시고 여러분의 문제를 아시는 하나님과 늘 동행하십시오.
여러분의 문제를 늘 하나님께 여쭈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행 할지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 앞에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블레셋 군사들이 이스라엘을 쳐들어와
르바임 골짜기에 진을 치고 위협을 했습니다.
19절에 보시면 다윗 왕이 여호와께 여쭈며
블레셋 사람들에게 나가 전쟁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에서 전쟁을 했던 군인입니다.
그동안의 다윗은 많은 전쟁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기 판단으로 전쟁을 해야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자기의 지식을 의지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께 여쭈며 기도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판단보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더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귀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1. 늘 승리하고도 자만하지 않는 다윗
여러분 그런데 자신감이 문제입니다. 이런 이솝우화가 있습니다.
당나귀와 수탉이 마당에서 한가롭게 놀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자가 슬금슬금 다가와 당나귀를 잡아먹으려고 마당으로 들어왔습니다.
놀란 수탉은 목이 터져라 "꼬끼오! 꼬끼오!" 외쳤습니다.
수탉의 울음소리를 지독하게 싫어하는 사자는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당나귀는 기가 막힌 광경을 보았습니다.
사자가 수탉의 울음소리에 도망치는 겁니다. 당나귀는 생각했습니다.
“흠! 사자도 별거 아니군, 수탉 따위에게 놀라서 도망을 치다니!”
이때 당나귀가 자신감을 갖습니다.
용기가 난 당나귀는 우쭐거리며 사자를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사자를 쫓아가면 쫓아갈수록 수탉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을 가능성은
더욱 높아집니다. 수탉 울음소리가 안 들릴 거리가 되었는데도
당나귀는 전혀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쫓아오는 당나귀를 보게 된 사자는 얼른 돌아서서
“아니! 이게 웬 횡재냐!” 하면서 당나귀를 잡아먹어 버렸습니다.
잘못된 자신감의 결과입니다.
다윗은 얼마든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블레셋을 이긴 경험과 이스라엘 전역으로부터의 지지는
다윗에게 자신감을 갖기에 충분한 조건입니다.
왕위에 등극하여 멋지게 용기를 갖고 블레셋과 붙어서
백성들로부터 환호를 받고자 하는 욕심이 생길만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19
이것이 다윗입니다. 블레셋을 골리앗을 물매로 멋지게 쓰러뜨린 다윗이
다윗의 진면목이 아니라 최고의 영광의 순간에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굵고 머리를 조아리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라고 하나님께 묻는 것이 다윗의 참모습입니다.
다윗이 신앙의 참 기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언제나 물읍시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묻는 삶을 삽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아도 물읍시다. 내 생각이 있어도 물읍시다.
많은 해법을 알고 있어도 물읍시다.
하나님의 뜻이 내 맘에 전혀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어도 물읍시다.
이것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신앙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물읍시다.
이것이 신앙인의 마땅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인정해 드리는 고백입니다.
물었으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19절 하반 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19
블레셋 사람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습니다.
그런데 약속을 받은 다윗의 반응을 보십시오.
20절입니다. '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0
▲2. 승리의 공로를 하나님께 돌린 다윗
성경에는 전쟁의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단지 두 마디로 말씀합니다. “그들을 치고”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싸우시는 것은 아닙니다. 싸운 것은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이 군사들을 동원해서 전쟁을 한 것입니다.
여리고성 싸움처럼 전투 같지 않은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의 전의를 보면 간단한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블레셋이 ‘다 올라왔던’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긴 후 다윗의 반응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0
누가 싸웠습니까? 다윗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겼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기셨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항상 그랬습니다. 성전을 지을 모든 준비를 해 놓고
하나님께 다윗이 노래하는 내용 또한 참 놀랍습니다.
성전 지을 준비를 누가 했습니까? 다윗이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이 그랬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감사 기도를 보십시오. 누가 한 것으로 보이게 합니까?
대상29:10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이르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11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12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13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14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29:10-14
자신이 드렸으면서도 그렇게 자신이 드릴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주신 복과 은혜 때문이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비록 드렸지만 그것은 드림이라기보다는
돌려드림이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중요한 일을 할 때
늘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했고 그 일이 끝난 후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모든 것을 다루는 그의 기준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두 가지 실수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는 실수입니다.
많은 일들을 할 때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합니다.
자신이 원하면 그것이 다 하나님의 뜻인 줄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성공했을 때에는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는 실수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고 승리하고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럴 때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헌신했기 때문이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주어가 무엇입니까? ‘내가’입니다.
하나님의 자리가 없습니다. 기준미달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기준에 적합하게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블레셋의 2차 침압
21 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
그들의 1차 공격은 ‘물의 흩음’같이 흩어져 패하여 도주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부하들은, 그들이 버리고 간 우상을 치워버려야 했습니다. :21
그렇지만 블레셋은 곧 전열을 가다듬어 2차 공격을 감행합니다. :22
무기나, 병력 면에서.. 객관적으로 우세한 블레셋은
자기들이 1차전에서 패한 것을 우연으로 생각하고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 2차전을 시도했습니다.
22 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그러나 이번에도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23~25절
즉 그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도움을 힘입은 이스라엘에게
두번 씩이나 연속해서 대패하므로
팔레스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거의 상실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똑같은 블레셋 군대, 똑같은 장소인 르바임 골짜기였죠.
그렇지만 다윗은, 똑같이 대응하지 않고, 색다른 전술로 나아갔습니다.
적들이 혼비백산 당황해서, 또 패하여 물러가고 말았죠.
23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올라가지 말고'
이 말의 뜻은, 고지(高地)에 올라가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블레셋 군대와 정면으로 맞서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하나님께서 앞서와 달리(19, 20절)
이번에는 전면전을 피하고 기습전을 택하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블레셋 군은 지난번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스라엘 군의 정면 공격을 예상하여 만반의 대비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계획을 미리 아시고
이번에는 다윗에게, 뒤를 돌아서 기습 공격을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로 묻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행하는 성도는
그 방법이 항상 창의적입니다. 천편일률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시의적절하게 대처법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24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군대에게 보여 주는 공격 신호(attack sign)인데,
그러나 이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1) 이 공격 신호는 단지 강한 바람에 의해 나무 꼭대기가 흔들리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고
2) 또한 이 공격 신호를 '나무의 특이한 징조'로 보는 견해도 있어요.
즉, 나무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징조를 보고서, 그것을 공격 신호로 여겼다는 거죠.
3) 이 공격 신호는 여호와의 군대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소리였다는 견해도 있죠.
뽕나무 꼭대기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공격 신호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게 무엇인지 우리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신호를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신호를 듣고, 보고, 분별할 수 있는
영적 민감성이 깨어 있었다는 것이고요. 주1)
25 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
게셀은 블레셋 영토의 북동쪽 경계지이며
이번 전투 지점(르바임 골짜기)에서 최소한 24km나 떨어진 곳이었죠.
이로 보아 다윗 군대의 승리는 여호와께서 거두게 하신
광범위하고 완전한 승리였음을 시사하는 구절입니다.
▲그렇게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학벌이나 스펙은 남들에 비해 한참 뒤지는데,
업무 수행 능력은, 초호화 학벌과 스펙을 자랑하는 사람들보다 몇 배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이 성령의 신들린 능력을 발휘할 때입니다.
19세기 세계적인 부흥사였던 D L 무디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입니다.
무디는 초등학교 중퇴였지만
탁월한 복음증거자였고 조직의 귀재였어요.
무디는 '상식의 힘이 극대화된 케이스다' 이렇게 보통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은 상식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지혜의 근원이 되었다' 라고
이야기한 사람이었어요. 성령에 감동되니, 그 상식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한 거죠.
링컨도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는데, (나머지는 독학)
미국에서 제일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었고요.
다윗은 20년 전에 골리앗을 물리칠 때도,
전혀 전쟁교본, 전쟁의 정석, 손자병법.. 이런 책에 나오지 않는
기발한, 성령의 창의력으로.. 물맷돌로 그 거인을 제압했지요.
무조건 독학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 창의력, 이런 것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그것을 이길 수 없다는 거죠.
단1:20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적용 / 오늘날 우리에게도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의 배후에는 악한 영이 역사합니다.
인생은 영적전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으로 무장할 때
귀신이 멀리 떠나가고 영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을 블레셋이 이기지 못하고 멀리 떠나갔습니다.
여러분이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으로 무장하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문제도, 악한 영도 한 길로 왔다가 입곱 길로 멀리 떠나갑니다.
△제가 전방에서 군대 생활을 할 때 81미리 박격포 부대에 있었습니다.
훈련을 할 때 그 포를 메고 다녀야 했기 때문에 훈련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당시 우리 대대장님은 예수님을 잘 믿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이 분이 훈련을 나가기 전에 꼭 저에게 대표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훈련은 주로 밤에 나가는데, 캄캄한 밤에 연병장에 500명 정도의 대대원이
모여 있고, 저는 등에 포를 메고 단상으로 뛰어가 500명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훈련 나가서 사고없이 훈련을 하고 돌아오도록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대표기도까지 했기 때문에, 훈련중에 힘들어도 낙오를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 기도의 힘으로 훈련을 잘 감당했습니다.
물론 대표기도는 제가 했지만 실제로 진심어린 기도를 한 사람은 대대장이었습니다.
그분의 믿음이 얼마나 좋았던지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훈련을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약한 사람 같지만
기도하는 사람이 가장 강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인생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먼저 하나님께 여쭈며,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듣고
모든 문제를 판단하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
아는 선배 목사님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해인사 근처에
가야교회라는 곳에 부임해 갔습니다.
해인사 근처에는 무당들이 많아 어느 마을은
거의 주민 전체가 무당인 경우도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가야교회 근처에도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아 있었습니다.
어느날 그 마을에 주민이, 자기 제수씨가 귀신들려 이상해 졌다고 했습니다.
목사님은 교인들과 함께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귀신들린 여자는 목사님을 보자 한마디도 안하고 입을 꽉 다물고
한 마디도 안했습니다.
심방을 간 성도들이 함께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이 그 귀신들린 여자분의 머리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여자가 진동을 하면서 멈추지를 않았습니다.
(보통 귀신들린 사람에게 안수기도를 잘 안 합니다.
왜냐면 그 사람이 공격하면, 안수하던 분이 폭행을 당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담대하고, 평소에 기도하던 분은.. 무서워하지 않고 안수합니다)
계속 진동을 해서 목사님마저 몸이 같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굴하지 않고 계속 기도를 하자 어느 순간
진동이 멈추면서 귀신이 그 여자에게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김주철, 『가야교회 이야기』 pp.60-64
.................................
주1) 이 이야기를 여러분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홍수가 나서 집이 물에 잠겨, 지붕 위에 올라가서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이
헬리콥터가 와서 줄을 내려서 '빨리 줄을 붙잡고 올라오라' 했더니
'아닙니다. 나는 주님이 나를 구해주실 것을 기다립니다'
그 다음에 누가 배를 저어서 와서 '빨리 배에 타세요'
'아니에요. 나는 주님의 구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물에 빠져 죽었어요.
그가 천국에 가서 주님에게 여쭤봤습니다.
'제가 주님이 와서 구조해 주실 줄을 기다렸는데 왜 안 오셨습니까?' 그랬더니
'내가 두 번이나 갔다. 헬리콥터를 갔고, 배로 갔다!'
주님이 이미 돕고 계시는데, 말씀하고 계시는데,
우리가 못알아들을 수 있어요.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