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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은 사람 오벧에돔

LNCK 2023. 4. 18. 11:16

◈복을 받은 사람 오벧에돔     삼하6:8~15           *2009년경 설교로 추정
*관련글 : 구약의 복과 신약의 복이 다른 이유 (tistory.com)

우리 모두가 매일 체험하는 일입니다만 세상살이가 점점 더 절박하고
또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빈부격차가 위험 수위에 도달하지 않았나? 하는 우려가 됩니다. 

최근에 우리 모두가 뉴스에서 들었습니다만, 
(경제위기로) 직장에서 명퇴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붙들고 생계를 유지하는 곳이 대부분 음식점인가 봐요.

그래서 전국에 음식점이 60만개인데, 
'이것은 인구 80 명당 음식점이 하나 꼴이다' 하는 말을 들으면서 
제가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경쟁이 과도하면 서로가 제 살을 깎아먹고 같이 망하는 거거든요.
나라가 이래서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요?

시장 개방 압력을 계속 받으니까, 농민들이 자살을 하고
거리로 뛰쳐 나오고.. 이런 현실을 보면서
참 '앞으로 우리가 세상을 사는 것도 보통 힘들지 않겠다'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많은 분들이 그런 불안을 갖고 미래를 내다봅니다.

우리 모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할 일이 하나 있어요. 
그것은 세상을 향해서 눈을 잠깐 감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눈을 좀 더 크게 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눈을 뜨는 이유는, 하나님은 복의 근원 이십니다. 

어려울 때, 우리가 고통스러운 때, 우리가 정말로 복이 없다고 탄식할 때 
도우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도할 때,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주기도문)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사도신경을 많이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런 기도와 고백을 할 때도
저는 그 기도와 고백이 제 마음에 확 닿아가지고 
정말 제 마음에 오직 하나님만 보이는 순간까지 
저는 그 기도를 반복할 때가 있어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니까 
좋은 것은 다 가지고 계시는 분 아닙니까. 
좋은 것을 다 갖고 계시는 그 분을 향해서
내가 눈을 활짝 뜨고, '아버지~' 하고 부를 때

그때 내가 은혜를 받고, 힘을 얻고, 소망을 갖지 못하면
내가 어디가서 힘을 얻겠습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습니다' 하고 사도신경을 
고백하면서.. 전능하셔서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시니까, 못 하실 일이 없죠.

자기가 원하시면 무엇이든지 다 해 주실 수 있는 분 아니에요. 
이런 분을 내가 가까이 모시고 
그 분 때문에 내가 다시 한 번 힘을 얻고 일어서지 않으면
하루하루를 무슨 힘으로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세상이 살기 어렵다는 것을 가지고 우리가 푸념하지 말고, 
세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계세요.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계세요. 그 분이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 분을 향해 우리 눈을 활짝 뜨는 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을 이렇게 관심을 갖고 우리가 보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오벧에돔 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우리가 갖게 됩니다. 

왜냐면 성경에 몇 번 나오지 않는 이름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벧에돔이 등장하는 곳마다 꼭 주석이 붙어다닙니다.

삼하6:11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12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대상13:14, 26:5에도 같은 내용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 이름이 잠깐 등장하는 자리에도, '하나님께서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더라'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참 별난 사람이다'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슨 재주로 그렇게 '그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복이 따라 다니냐?' 
이런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죠. 
그러니까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잠깐 제가 소개를 해드려야 되겠습니다. 
법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20년간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다윗이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제일 먼저 한 일이 
법궤를 다윗 성으로 모셔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1차시도는 실패했어요.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소들이 뛸 때,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댔다가, 즉사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 것이지요!

그러자 다윗은 법궤를 옮기던 일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고
법궤는 그때부터 오벧에돔의 집에 임시로 안치되었습니다. 

그런데 석달이 지나자 이상한 일이 생겼어요.
오벧에돔의 집이 복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삼하6: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그래서 다윗은, 법궤를 다시 다윗성으로 옮겨옵니다. 
이번에는 율례를 따라, 법궤를 레위인들이 채를 꿰어 어깨에 메었어요.
이제는 무사히 법궤를, 다윗 성으로 모시게 되고, 다윗은 기뻐서 춤을 추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진리 두 가지를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입니다. 

두 번째 진리는 "오벧에돔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정성을 다해서 모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얻을 수 있다"      *이 설교의 대지

이 두 가지를 놓고, 우리 함께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1. 먼저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시던 에덴동산으로 한 번 가 보자고요.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만드셨어요. 아담의 갈비뼈로 여자를 만드셨어요. 

자 아담과 하와가 눈을 뜨고 제일 먼저 본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두 손을 들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그들이 제일 먼저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아담과 하와를 향해서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 세상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면서 
큰 복으로 인생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제일 먼저 봤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어떻게 시작되었느냐? 
하나님은 복을 비는 자리에서, 인간은 복을 받는 자리에서 
이 관계가 시작이 됐어요. 

그러므로 우리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하나님!' 하면 
'복을 받고 싶다' 하는 본능적인 욕구가 생겨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는 '하나님 저에게 이런 이런 은혜를 주시옵소서, 
복을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가 나도 모르게 절로 나와버려요. 

그래서 그런지 성경에는 '복'이라는 단어가 4백 번 이상 기록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복'이라는 사실을 시편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16:2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네게 복이라' 

시65:4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이 하나님을 가까이 찾아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복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하나님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오벧에돔의 집에 하나님의 법궤를 모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가정에 모셨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그냥 갑자기 하나님이 복을 쏟아부어 주셨나봐요. 

요세푸스 라는 이스라엘 역사가가 있습니다. 참 저명한 역사가인데 
한 가지 단점은, 좀 표현이 과장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쓴 책들은 좀 감안하고 봐야지, 액면 그대로 이해했다가는 
잘못하면 좀 실수를 할 수 있어요. 

이 요세푸스가 오벧에돔의 가정에 대해 이런 말을 했어요.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처음에 들어갈 때는 
그 가정이 이스라엘 나라에서 제일 가난한 가정이었는데 
삼 개월 후에 하나님의 법궤가 그 가정을 떠날 때는 
이스라엘 나라 중에서 제일 큰 부자가 되었다' 그랬어요. 

그의 말은 잘 감안해서 들어야죠. 하여튼 표현이 과하죠.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법궤를 가정에 모시고 살지 않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우리 마음에 모시고, 우리 가정에 모시고 삽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 가정에서, 보좌에 앉으시고 
우리 가정을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우리 가정에 모시고 있으니까 
우리도 오벧에돔 처럼 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너희가 악한 부모라도 자식이 달라면 좋은 것을 주지 않느냐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어떻게 떡을 주지 돌을 주겠느냐? 
어떻게 생선을 주지 뱀을 주겠느냐? 

하나님을 우리가 가정에 모시고 살아요.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도 할 수 있고 
복을 달라는 기도도 할 수 있고 
복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도 가질 수 있음을 여러분이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가 있습니다. 
잘 들으세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잘못하면, '복'에 대해서 오해를 하기 쉽습니다. 
심지어 교역자들까지 오해를 하고 곡해를 해가지고 
교인들을 잘못 가르치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요.   *기복주의

우리는 '복'하면 구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복들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약에서 약속한 복들이 참 많아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얼마나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는지 
여러분이 신명기28장 같은 데 보면, 황홀해질 정도로 
하나님이 많은 복을 약속하셨잖아요. 

무병 장수, 부귀영화, 만사형통, 자손번창, 
세상에서 머리 되고 꼬리는 되지 않는다는 약속, 
이거 외에도 뭐 얼마나 대단한 약속들을 해주셨는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복' 하면, 그런 것을 생각하게 되어 있어요. 
이것은 절대 잘못된 거 아닙니다. 
그런 복들을 우리는 다 받고 싶어 합니다. 또 받을 수만 있으면 좋지요. 
받아서 누릴 수만 있으면 
그 사람이야 진짜 '복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죠. 
이런 복들을 하나님이 많이 약속을 하셨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후 일어났던 모든 일, 
주님이 말씀하신 내용들을 기록한 신약성경으로 오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시던 하나님은 보이지 않아요. 
신약성경 어디를 뒤져봐도, 만사형통 해주겠다는 말씀도 없고 
뭐 무병장수 해주겠다는 약속도 없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안 된다는 약속도 없어요. 
그런 하나님은 안 계세요. 

그리고 오히려 부자되려고 하지 말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날마다 기도해! 
도무지 더 이해가 안되는 말씀만 하시네요. 

가난한 자가 더 복이 있대요. 
왜냐하면 천국은 가난한 자의 것이래요. 참 이것도 이해가 안 되지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대요. 행20:35
그리고 오래 살 생각하지 말고, 주를 위하여 언제든지 생명 바칠 준비하래요. 

이런 말씀 보면, 그래서 환난과 핍박을 당하고 
남에게 욕을 들어도 그것이 복이니까 기뻐하라 그래요. 

이건 뭐 세상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변해버렸는지 
혼란을 일으킬 정도로 말씀이 달라지는 것을 우리가 봅니다. 

복을 보는 표준이, 신약에서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나라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이것은 여러분이 정확하게 알고 계셔야 돼요.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이 없었어요. 

그들은 메시아가 오시면 팔레스타인에 지상천국을 이루고 
온 세계를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세상적인 왕국은 그들이 꿈을 꿨지만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신약 시대에 하나님의 나라는 그들에게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자마자 
예수님의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온 말씀이 뭡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천국,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하였고 
이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주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가보면 
하나님 나라 혹은 하늘 나라 라는 말이 110번 이상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지금 지상천국을 꿈꾸는 구약시대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고,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마음에 꼭 담으셔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에서 무병장수가 무슨 그게 절대적인 복이 되겠어요?
하나님 나라에서 만사형통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의미가 있겠어요? 
하나님 나라에서 부귀영화 누리면 얼마나 누리겠습니까? 

이런 것들이 좋기는 합니다만, 
잘못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리를 해치는 잘못된 것이 될 수 있는 
이상한 상황으로 바뀐 거예요. 

그래서 롬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성령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니라' 고 했습니다.  

보세요. 하나님 나라에는 먹고 마시고 즐기고, 그냥 쌓아놓고 살고 
막 사람들로부터 그저 부러움을 받는 그게 아니고 
그게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백성들에게 있어서 진짜 복은 뭐냐?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의,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되는 축복,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의 평강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이런 것들이 진짜 복이지.. 다른 것이 복이 아니라는 말이에요. 

그만큼 하나님 나라로 인해서 복을 보는 기준이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세상을 보세요. 

진짜 구약에서 이야기하던 그 화려한 복들을 
지금 현실적으로 정말 받아서 누리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서 많아요, 안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 많아요? 

무병장수하는 사람들 가만히 보세요.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오복을) 받아서 누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그 말은 뭐냐하면 
(오복은) 하나님 하고는 관계가 없는 복일 수도 있고 
하나님이 없어도 누릴 수 있는 복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믿음 좋은 분들,
하나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면서 일생을 헌신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오복을 대체로) 안 주시더라고요. 잘 안 주세요. 

아마 주시면, 그에게 득보다 해가 더 많다고 하나님이 판단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보세요. 여러분, 바울 같은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해도 안 주시잖아요. 

제가 한 사람 예를 들게요. 
지금부터 4~5백년 전에 종교개혁이 한참 일어났을 때 
최고의 인물로 우리는 두 사람을 꼽습니다.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 입니다.

이 사람들은 세계 역사를 완전히 한 번 뒤집어 놓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계를 바꾼 열 사람을 뽑는다면, 반드시 칼빈은 들어가게 되어 있어요. 

그분의 신학사상이 워낙 논리적이고 탁월하기 때문에 
'칼빈주의'라고 하는 독특한 계보가 형성 되었습니다. 

칼빈의 개혁신학은 바로 장로교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청교도들의 청교도들의 사상의 뿌리가 되고 
오늘의 미국을 이루게 하는 자유주의 사상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칼빈을 논할 때마다 '그 신학자' 라고 그랬어요. 
앞에다 정관사를 붙여가지고 '그 신학자!' 이런 호칭을 받은 탁월한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로마 가톨릭의 탄압 밑에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 생을 불태우듯 헌신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만큼 대단하게 헌신한 사람이면, 
하나님이 정말로 많은 복을 주실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렇지 않아요. 
서른한 살 때 결혼했어요. 결혼할 때 
'어떤 여자가 나에게 가장 좋은 아내가 될 수 있을까?' 하고 조건을 따지다가 
'믿음 좋은 여자, 신실한 여자' 이것만 딱 조건을 걸고 찾다 보니까 

애가 2명이나 딸린 과부를 만나게 된 거예요. 
그 여자와 결혼했어요. 

그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아들이 태어났어요. 
그런데 불과 몇 년이 안 가서 아들이 죽었어요. 하나님이 데려가 버렸어요. 

그리고 부인도 몸이 약해가지고, 칼빈과 결혼해서 9년 밖에 살지 못했어요. 
그리고 자기가 데리고 온 두 자녀를 고스란히 내버려 두고 하나님 앞으로 갔어요. 
그래가지고 아내를 잃고 15년 동안 독신으로 살다가 천국으로 갔어요. 

독신으로 살면서도 칼빈 역시 너무 과로해서 몸이 약해져서 
두통, 천식, 소화불량.. 병이라는 병은 다 가지고 있었어요.
열병, 담석증, 통풍... 한 인간으로 보면 너무 너무 이해가 안되죠. 

이런 병을 끌어안고 살았어요. 한 십년 동안 위가 너무 안 좋아가지고 
하루 한 끼 먹고 살았어요. 그리고 나서 54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짧은 인생을 살면서도 
다른 수백 명의 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해도 못 할 일을 
혼자서 다 해놓고 간거에요. 

죽으면서 그가 유언했어요. '내 무덤에다가 묘비를 세우지 말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있으니까, 내 무덤의 묘비를 세우지 말라!' 

그러니까 자기 무덤에 묘비도 없어요. 그렇게 살다가 간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복을 그에게 안 주셨습니다.

명예 하나만 하나님이 주셨지, 그 외에 무슨 
건강, 장수, 가정의 복, 자식의 복... 아무것도 안 주셨잖아요. 

그러면 칼빈을 보고 '복을 못 받은 사람'이라고 우리가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죠. 천만이에요. 

그러므로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우리가 '복, 복' 하지만 
여러분 가운데서 장수의 복도 장담 못할 사람도 많죠. 

또 사랑하는 자를 먼저 세상에서 사별한 사람들도 있죠. 
아무리 노력해도 재물의 복이 없는 사람도 있죠. 

여러분 그런데 자기 형편을 놓고 '나는 복을 못 받았다'는 소리 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하나님께 주시는 복은, 그런 복이 아니에요. 그게 절대 복이 아니에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절대 복이 아니에요. 
그러므로 그런 것들이 없다고 해서 '나는 복을 못 받았다'는 소리 하지 말라.. 그 말입니다. 

그런 믿음, 그런 확신을 갖고 하나님을 보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진짜 필요한 복이 뭔가를 보여주십니다. 

▲제가 그저 오랜 목회생활하면서 깨닫고, 또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또 제가 그저 인생을 이만큼 살면서 여러가지 경험을 통해서 깨달으면서 
제가 얻은 결론이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 세 가지가 있구나!'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에게 
하나님이 특별히 주시기를 원하는 복이 세 가지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구원의 복,  영생의 복' 입니다. 

엡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 복의 내용을 보면, 
-흠 없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시는 구속의 복이요. 
-성령으로 우리를 도장 치듯이 인 쳐서 하나님의 소유로 만드신 복이에요. 
엄청난 복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모든 복이 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에게 값 없이 주어진 복인데 
이거야 말로 천상의 복이요, 영원한 복이에요. 
절대적인 복이요, 반드시 받아야 되는 복입니다. 

이 복을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복을 받았습니다.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행복과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이 세상 명예와 바꿀 수 없네' 

구약에 나오는 모든 복을 다 끌어다가 묶어서 바꾸자고 해도 
바꿀 수 없는 복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이 복을 우리가 받았어요. 

△얼마 전에 우리 교회 법조인선교회에서 새생명축제를 했습니다. 
판검사들, 변호사들, 연수원에 다니는 법대생들, 법무사들도 오시고요. 
이런 분들이 몇백명 모였어요. 

그래서 믿지 않는 친구들 데리고 와서 복음을 듣고 
예수 믿도록 하는 축제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날 복음을 전하는 순서를 맡았어요. 

그래 가지고 말씀을 전했는데, 한 60여 명 정도가 예수 믿기로 하고 
일어서고 결신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그 날 그 집회를 축하하기 위해서 
대법원장으로 계시는 이용훈 장로님이 오셨어요. 

오셔가지고 잠깐 축하하고 간증을 하셨는데 
그분 간증에 제가 참 감동을 받았어요. 

대법원장이 되고 나서 보니까 무슨 주문이 많대요. 
-예수 믿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리는 할 수 있으면 가지 마시라
-예수 믿는 티를 너무 내지 말라
뭐 이런 저런 주문들이 많더래요. 

그랬는데도 자기는 국회 청문회에 가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복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고  
큰 소리로 한마디 했대요. 

그리고 그런 '새생명축제' 같은 자리에 대법원장 신분으로 올 수도 없는데 
그냥 자기는 왔대요. 그런데 끝으로 한 말인데, 참 중요한 말을 하셨어요. 

'만일 누가 예수님과 대법원장 자리를 놓고,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내게 묻는다면 
나는 두말 안 하고,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 말에 제가 참 감동 받았어요. 얼마나 대단한 간증입니까! 

여러분, 왜 이런 간증을 할 수 있나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 때문에 받게 된 영생과 하늘의 모든 영광을
무엇을 가지고 바꿀 것입니까? 

세상에서 만사형통 한거 가지고 그것을 바꿀 것입니까? 천만에요. 
무엇을 가지고도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이에요. 

이걸 우리에게 하나님이 주셨어요. 
우리는 값없이 그 복을 받았어요. 

△그러므로 여러분, 지난 번에 신문에도 났습니다만 
캐나다의 모 일간지에서 소개한 북한의 참상을 이야기한 거 있죠. 
지하교회 지도자 5 명이 체포되었는데 어떻게 죽였느냐? 
도로공사 아스팔트 깔 때 쓰는 롤러 밑에 깔아뭉개서 죽였대요.

이런 지옥 같은 나라가 북한이잖아요. 
그런데 북한의 교회 지도자들이, 그런 참혹한 변을 당하면서도 
왜 예수님을 포기하지 않느냐? 

이 세상에서 모든 복을 다 누렸다고 해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놓치면 
모든 것을 다 놓치는 것이고, 가장 저주받은 존재가 된다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죠. 

2) 두 번째로 <자족하는 복>입니다. 
어떤 형편에서든지 감사하고 만족하는 거예요. 

자기 형편을 놓고 불평하지 않고, 팔자타령 하지 않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자족입니다. 

여러분, 온 세상을 다 얻어도, 자족 못 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못 되죠. 

평범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만족 하고, 자족하고 살면.. 그 사람은 행복자죠. 
아무리 화려한 명예를 가지고도, 불만을 가지고 사는 사람보다는 
무명한 자기 존재를 놓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훨씬 복 받은 사람이죠. 
이게 '자족' 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이 '자족의 복'을 주세요. 

가만히 교회 안에서도 보니까요.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자녀에게는 
주님이 이 '자족하는 복'을 많이 주세요. 

만사형통도 잘 안 주시고, 부귀영화도 잘 안 주시고, 무병 장수도 잘 안 주시지만 
자족하는 복을 주세요. 
자기 상황에 상황에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거예요. 

바울을 보면 알잖아요. 
빌4:11 '어떤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다'

'어떤 형편'이 뭡니까? 
배고플 때도/ 배부를 때도 
인기가 있을 때도/ 인기가 떨어졌을 때도 
몸이 건강할 때도/ 몸이 약할 때도 
'어떤 형편에서든지 나는 스스로 만족하고 주님께 감사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 
그 능력을 얻었다는 말이에요. 

누구한테? 예수님한테서! 
그래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 말은 '내게 능력 주시는 주님 때문에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이에요. 

이런 복을 바울이 받았어요. 
이런 복을 오늘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들에게 많이 주세요.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자족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나의 중요한 패러다임을 바꾸어주십니다.

자족하도록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시는데,
시간을 보는.. 기회를 보는.. 우리의 인생을 보는 눈을 바꾸어 주십니다. 

헬라어에서는 시간을 표현하는 단어가 두 개 있어요. 
-크로노스..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에요. 과거 현재 미래로 그냥 흘러가는 시간!
-카이로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특별한 뜻을 가지고 다루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한 생을 일컬어서 카이로스라고 해요.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도록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날마다 순간순간 경험하고 넘어가는 시간들을 볼 때 
카이로스로 볼 수 있도록 눈을 바꿔 주세요. 

'아 내가 이 순간순간도, 나를 위해서 복주시기 위하여 
선한 뜻을 가지고 내 시간을 다루시는 하나님이 계시구나!' 

그러므로 나의 시간은, 
내가 경험하는 순간, 내가 경험하는 인생은 
철저하게 복되신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고 
하나님의 손에서 모든 것이 좌우된다.. 하는 눈으로 내 시간을 보고 
내 기회를 보고, 내 인생을 보는 거예요. 

이게 카이로스로 눈이 변화된 겁니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를 우리에게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몸이 약해졌습니까? 
그러면 '아이고 재수 없어!' 이렇게 말하지 않고, 뭐라고 합니까? 
'아마 내가 건강할 때 제대로 못 해놓으니까 
하나님께서 내 몸을 좀 약하게 하셔서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훈련시키나보다..' 

그래서 몸이 약해서 고생하는 기간은 
'하나님이 나를 예수님처럼 다듬는 특별한 카이로스의 시간이구나' 
이렇게 보는 거예요.

갑자기 뭐 여러가지 어려움이 생겨서 가난해졌나요? 
그럴 때 가난을 푸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물질적으로 가난해지는 대신 
영적으로 부유함을 맛보게 하도록 나의 시간을 다루고 계시는구나' 이렇게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 또 한번 재기할 수 있도록 
영과 육을 철저하게 하나님께서 연단하는 기간이구나!'  
이렇게 딱 생각하는 거예요. 

갑자기 여러분, 성공하게 되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 뭔가 나를 사용하시려고 기회를 주시나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게 카이로스로 나의 시간을 보는 눈이에요. 

돈이 많이 생겼습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데가 있나보지?' 이렇게 생각하는 거에요. 

그래서 참존 화장품 회사 김광석 장로님의 간증에 보면 
그 빚더미에 앉아 가지고 고생하다가 
하나님이 갑자기 돈을 주셔서 막 사업이 잘되고 나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했나요? 
거액을 들여서 연변과학기술대학 공학관을 자기가 혼자 지어줬잖아요. 

'하나님이 필요하니까 나에게 돈을 주신 것이지 
내가 쌓아놓고 살라고 돈 주신 게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청지기 의식!
이것이 자기가 경험하는 모든 시간과 사건을 카이로스로 보는 사람이에요. 

훌륭한 자녀 주셨어요. 
'하나님이 뭔가 쓰시려나 보지?' 

어쩌다가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나요? 
'아~ 내가 주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데 
이런 기회에 내가 주님 앞에 얼마나 잘못된 것을 좀 깊이 회개해야지..' 
이런 생각으로 모든 생각을 돌려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시니까 
어떤 형편에 처해도 감사하고 만족하고 기뻐하는 거예요. 

△몇 주 전에 <제자훈련 지도자세미나>를 했을 때 
방지성 목사님을 우리가 초빙해서 간증을 들었어요. 

그분은 결손가정에서 가출해 가지고 돌아다니는 청소년들을 전도해서 
새사람 만들어야 되겠다는 푸른 꿈을 가지고 
아무것도 없이 지하 방에서 한 30 명 되는 그런 애들을 데리고 
청주에서 교회를 시작했어요. 

그래가지고 여러가지 희비 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는 애들이 20 명만 남았어요. 

그런데 3년 전에 20 명을 데리고 제자훈련을 했어요. 
그리고 아름답게 그 학생들이 변화를 받았어요. 

그 학생들이 변화받고 헌신하고 
그래서 은행 빚을 내가지고 교회당을 지었어요. 

거기에 감동된.. 그 자녀들의 배후에 있는 뭐 친척들, 부모들이 
다 교회에 나와가지고 지금은 2백명이 넘는 성인들이 모이는 교회로 발전했어요. 
그 부부가 앉아서 나하고 이야기했는데, 내가 놀란 거죠. 
여러분, 청주에서 한 2백 명 데리고 목회하는 사람하고 옥 목사하고 비교가 됩니까? 
같은 목사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자 그 말이에요. 

그러니까 조금 잘못하면 열등감 갖기 쉽고 
'너는 뭔데 그렇게 큰 교회 목회하고 
나는 왜 하나님께서 이 모양으로 일하게 하시나?' 
하고 뭐 자학을 하기도 쉽고, 그렇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요. 그 박목사님을 앞에 놓고 내가 머리를 숙였어요. 
청소년 몇 사람.. 그 애들은 과거에 혼숙하던 애들이에요. 
소망이 없던 애들, 예수때문에 새사람 되어서 
지금은 참 아름답게 인생을 설계하고 사는 것을 보고 
너무 행복해가지고 옥목사가 하나도 부러운 것이 없는 거예요. 

그냥 내 앞에서 '내 만큼 세상에서 행복한 사람 없다!' 이 표정이에요. 
'뭐 너는 큰 교회 한다고 뭐 대단하게 얘길 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거 눈에 안 들어와. 
나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이 사역이 너무 감사해!
한 생명, 한 생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고...' 
그 행복이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랬어요. 내가 아주 주눅이 들어가지고.. 말을 오래하지 못했어요. 
그냥 적당히 만나고 기도하고 끝났어요. 
그렇죠. 누구든지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만나면, 잠시 질투심이 나잖아요. 

우리 모두에게 이런 자족의 은혜를 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런 복을 주십니다. 이런 복을 주세요. 
우리 모두 이런 복을 받고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거에요. 

3) 수고의 대가를 받는 복입니다. 
시126: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연법칙입니다. 이 자연법칙에는 무임승차는 없습니다. 

가을의 추수는 뿌리는 자의 것입니다. 열매를 거두는 자는 
봄에 씨를 뿌려서 고생한 자들이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인생을 살 때,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됩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됩니다. 

자족하는 복이 중요하다고 해서 
날마다 소극적으로 '나는 이래도 행복해, 저래도 행복해.. 괜찮아!' 
이래가지고 그냥 뭐 노력도 안 하고, 남하고 경쟁도 안 하고 
뭐 그냥 뒷방에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는 이거,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 아니에요. 

 

그냥 열심을 다해서 노력해야 돼요. 수고해야 돼요. 
우리 가운데는 대통령도 나와야 되고, 우리 가운데는 재벌도 나와야 되고 
우리 가운데 훌륭한 과학자도 나와야 되고, 예술인도 나와야 되고 
목사, 선교사도 나와야 되고... 다 나와야 돼요. 훌륭한 분들이 많이 나와야 되는데 
이런 사람들이 되려면, 남다르게 피눈물을 쏟는 노력 안 하면, 안 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다 수고의 대가를 누리는 건 아니잖아요. 

수고의 대가는 누가 줍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수고가 헛되다' 시127:1

근데 얼마나 감사해요.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가 수고하기만 하면 30배, 60배, 백배로 쏟아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믿고 최선을 다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복을 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또 한 가지 오벧에돔이 가르쳐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2. 우리가 기쁘게 정성을 다해 그분을 모시면, 우리도 복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이 막 죽어버리자 전부 겁을 집어먹고 
다윗 왕도 법궤를 가져가려고 안 하고 
다른 신하들도 다 얼어 가지고 있을 때 
오벧에돔이 '우리 집에 모시지요!' 하고 하나님을 모셨잖아요. 
얼마나 지성껏 모셨겠어요? 

그랬더니 하나님 앞에 공짜가 있나요? 
그렇게 온 가정이 정성을 다해서 모시니까 
그냥 복을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어떤 식으로 쏟아주셨는지 모르지만 
소문이 날 정도로 쏟아부어 주셨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아비나답하고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아비나답은 그 직전에 20년을 하나님의 법궤를 모셨어요. 
그런데도 아비나답 이름에는 전혀 '복'자가 붙어서 나오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의 손자 웃사는 법궤 때문에 죽임을 당했어요)

우리가 가정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지만 
어떤 가정은 기쁨으로 하고요. 정성을 다해서 섬깁니다.

반대로 어떤 가정은 억지로.. 막 할 수 없어서.. 
가정예배를 드리자고 해도 억지로.. 기도를 해도 그냥 할 수 없이 하고.. 
하나님은 그냥 귀찮은 뒷발영감 신세로 모십니다. 테레비보다도 못해요. 

하나님을 그런 대접을 해가지고 복을 받겠어요? 생각을 한번 해보세요.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고, 기뻐하고, 
하나님 때문에 찬송하면... 하나님도 기쁘게 축복해 주십니다. 

시37:4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 
하나님을 섬기되, 기쁘게 섬기세요! 

오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대해서 
또 하나님을 기쁘게 생기면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그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험한 세상이지만 
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날마다 당당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 앞에 꿇리지 마세요. 
내 형편가지고 여러분이 염세주의에 빠지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은 복의 기준이 틀려요.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복이 있습니다. 
이 복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