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가수들에게 두 부류가 있다 그래요. -가창력이 좋은 부류가 있고 -가사 전달력이 좋은 부류가 있대요.
가사 전달에 집중하는 패턴의 가수들을, 보통 '발라드 가수'라 그래요. 또 가창력으로 승부를 하는 가수가 있고요...
설교자로서, 설교자는 가창력으로 승부를 해야 되나요, 발라드로 승부를 해야 되나요?
설교자는 발라드 가수가 돼야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언어적 스킬.. 이런 걸로 설교가 전달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뜻, 성경본문에 나타난 진의.. 그거를 순전하게 청중들에게 잘 전달 하는 역할이 설교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그게 좀 어렵고, 쉽지 않은 고민이에요. 우리 성도들에게, 이 어마어마한 거대한 성경 역사의 넓이를, 또 그 속에 담아진 깊이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되는가 하는 것은 평생 과제인 것 같습니다. 그게 쉽지가 않아요.
평생 하는 설교 인데도, 앞으로도 쉬울 것 같지 않고.. 지금도 오리무중 속에 올라왔어요.
근데 정말 설교자가 설교하는 것이 아닌 것이 설교를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 끌고가시는 줄기가 보여요. '아 이게 정말 내가 하는 게 아니구나..' 깨닫죠.
사실 본문 사무엘하 7장은 그런 의미에서 여기에 담겨진 하나님의 언약의 크기를 어떻게 설명을 할까요?
말하면 이런 거죠. 제가 세계 몇 나라를 다녀봤지만 안 가본 데가 더 많단 말이에요. 많이 다니긴 다녔는데 뭐 한 5% 다녔나요? 그 정도도 안 될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지구촌이란 어떻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나와서 설명을 하자니 답답한 노릇이죠.
오늘 본문 삼하7장 한 장만 놓고 볼 때도, 하나님의 언약의 크기가 너무 커요. *'다윗 언약'이라 부르죠(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
너무 큰데 이거를 성도들에게 어떻게 1/10 이라도 잘 전달하고 내려갔으면 좋겠는데... 고민고민 하다가 설교단에 올라왔어요.
◑다윗이 평안히 살게 된 때에
7: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아~ 나에게도 이런 평안히 살게 되는 날이 올까?' 한 번 상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평안이 살게 하실 날이 올까요?' 옵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 분명 그 시간은 옵니다. 이 자리에, 지금 이 시간에 오기까지 다윗은 하루 하루가 전쟁이었어요.
정말 매일이 전쟁 같은 살벌한 살얼음판을 걸으면서, 죽을지 살지 모르는 삶의 기로를 통과하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복 중에 최고의 복은 '평안의 복' 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아 보면.. '평안히 사는 복'이 최고로 가장 큰 복입니다.
뭐 '은행에 몇 백 억 쌓아놓고 산다' ... 다 쓸데 없어요. 그거 뭐 이고 갈 겁니까? 씹어 먹을 겁니까? '그냥 은행에 몇 백억 있다'는 느낌과 푸근함 ..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나중에 그거 엉뚱한 사람들이 다 갖다 써요.
'어디에 땅이 몇 천 평 있다' ... 그게 실생활에 도움 되는 거는 사실 없어요. 거기 가서 뒹굴면서 잠을 잘 겁니까? 아무 쓸 데 없어요. 세금 내느라 정신 없죠.
그냥 하루하루 주 안에서 '평안한 복'이 최고의 복입니다. 근데 그렇게 사는 게 쉽지가 않아요. 정말이에요.
오늘 다윗에게 이런 꿈같은 날이 오네요. 삼하7:1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꿈 같은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이 이런 편안한 시간, 삶에 넉넉한 여유가 생길 때 항상 잘 될까요. 잘못 될까요?
그 생각이 늘 삐뚤어지는 게 인간의 문제에요.
그래서 사람은.. 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인 것이, 사람은 가만히 두면 저절로 잡초가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들들 볶는 거예요. 병들까봐!
정말입니다. 사람은 결국 고단해야 늘 긴장을 하고 궤도를 이탈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과 돈이 남고 여유가 생길 때 항상 옳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제가 경험 하기로 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아요. 다들 딴 짓을 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합니다.
▲근데 오늘 여기 다윗이 '평안한 때에' 어떤 생각을 했나요?
2절'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그러자 나단이 왕의 이야기를 듣고 3절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3절 '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
이 두 사람의 대화가 굉장히 심상치 않아요. 뭔가 중요한 게 하나 빠진 듯한 허전함이 있어요. *하나님 뜻을 안 물었죠
다윗은 이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이렇게 좋은 집, 백향목 궁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아직도 휘장 가운데 있다'는 말은 장막 속에 있다는 말이에요.
'이거는 말이 안 된다...' 근데 기특한 생각입니다. 지극정성 가득한 생각이죠. 다윗에게 하늘 아버지께 대한 효성 지극한, 기특한 마음이 생겼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나단 선지자에게, 다윗은 자기 속내를 털어놓았어요. 그러자 나단 선지자도 '왕의 마음 속에 기쁘신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3
이건 상식적인 사고입니다. 다윗이 무슨 자기가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얘기를 꺼내놓은 것도 아니고
나단도 선지자 입장에서 '왕이 그래도 평안한 때, 하나님이 이런 모든 여건을 허락해 주실 때.. 왕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조언한 거죠.
그런데 본문에 밝혀지지 않은 행간 사이의 기록이 역대상에 이렇게 나옵니다. 역대상17:1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기를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 하였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 있도다. 나단이 다윗에게 아뢰되,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
그날 밤에 하나님의 말씀이 (급히)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 하지 말라' :5
정황이 이렇게 된 겁니다. 다윗과 나단의 대화는, 누구도 이론의 여지 없이 상식적이고, 굉장히 하나님 입장에서는 기특한 대화였어요.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자기 의와 열심으로 기특한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런데 여기에 신앙이 열심이고 좋다는 사람들의 오류와 함정이 있습니다. 늘 신앙 좋은 사람들은 기특한 생각을 해요. 근데 그 기특한 생각이, 늘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것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게 문제에요. 기도 안 해보고 결정하는 인간적인 생각인 거죠!
기특한 생각이 우선일까요? 하나님의 합당한 계획이 우선일까요?
근데 우리가 살다 보면,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의에 북받쳐서, 하나님의 뜻을 깔아뭉개고 자기 의지와 자기 의로운 열심으로, 모든 일을 주장해 나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돈이 여유가 없고 늘 빠듯한 게 은혜일 수 있죠)
지금 나단과 다윗은 그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단에게 정확하게 지적을 해주십니다.
'다윗에게 가서 말해라. 너는 나의 전을 지을 수 없다!' 이게 웬 말입니까?
다윗이 평안한 때 얼마나 기특한 생각을 했나요? 어느 누구도 평안한 시간에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할 사람이 많지 않은데 다윗이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을 위하여, 그런 기특한 생각을 내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일언지하에 그것(성전건축)을 거절하십니다.
◑그러면서 그가 했던 기특한 생각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래 하고 싶었던 계획을 계시하는 내용이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또한 모세가) 위대한 이유는 분주하게 활동하지 않고도, 움직이지 않고도..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는 것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더 큰 일을 했다는 겁니다. 엄청난 약속을 얻어낸 것입니다.
그럼 나단에게 무슨 말씀을 계시하셨는가요?
삼하7:4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하나님의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뭐라고? 다윗 네가 내 집을 짓겠다고? 다윗은 아직 뭘 모르는구나. 나는 지금까지도 인간이 만들어 놓은, 손으로 만들어진 집에 거했던 적이 없다.'
하나님이 '장막과 성막안에서 다녔다'는 말은 :6 백성들 가운데 머물렀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양떼 틈에 머물러 있던 다윗을 :8 그 어린 목동을 들어서 일찍이 기름부으신 겁니다.
왜요? 하나님의 목양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인생이기 때문에! 다윗이 잘 나서가 아닙니다.
근데 지금 다윗이 지금 자리도 잡고 모든 환경이 평안해 지니까 하나님의 집을 짓겠다고 나선 겁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웃으심이여' 뭐 이렇게 된 거죠.
▲근데 여기에 굉장히 신학적 실마리가 풀어줍니다. 지금부터 이 다윗의 과욕을 통해서 하나님은 뭘 설명해 나가시냐면 '손으로 짓지 않은 그리스도의 집, 영원한 하나님의 집이 무엇인가?'를 지금부터 설명하고자 하는 내용이에요.
이것이 사무엘하 7장에 빼곡히 숨겨져 있었던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7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내가 언제 집 지어 달라고 말했냐?' 라는 뜻입니다.
8절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절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절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절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하나님이 오히려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짓는답니다. 지금 나단 선지자에게 계시하고 있어요.
12절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절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에게 '다윗에게 전하라'고 하시며 계시를 주셨는데, 결론은 이겁니다.
'다윗이 나를 위해 집을 짓는다고? 아니야, 나는 그런 집을 요구한 적도 없어!
여전히 나는 너희들의 목자다. 그래서 목동 다윗을 택했는데... 그럼 내가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 주겠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백향목 궁에 살고 있잖아요. 근데 하나님이 무슨 집을 짓겠다는 겁니까?
11b~12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네 씨'는 오실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솔로몬을 통해서 오실 그리스도!
그래서 솔로몬은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예표죠. 솔로몬의 또 다른 별명은 '여디디야'인데, '사랑하는 자' 라는 뜻이죠.
그런데 '사랑하는 자'라고 명명되어진 인물이 신약에 나오는데,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며 소리가 있어 가로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사랑하는 자(여디디아)'의 대표적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 그리스도의 예표적 그림을 솔로몬이 담고 있는 겁니다.
그가 다윗의 몸에서 납니다. 그래서 여기 보시면 12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견고하게 하시는 나라'는 영원한 나라를 얘기합니다. 모든 세상 정권은 권불십년 다 한시적 입니다.
그런데 역사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무너지지 않는 나라, 손으로 짓지 않는 나라, 영원한 나라는 하나님의 왕국인데... 다윗의 왕국 속에 그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감춰놓은 거지요.
결국 이 계시는,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내다보라'는 중요한 메시아적 계시입니다. 그래서 이 계시가 어떻게 끝이 나는가 보십시오.
13절,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이 집을 건축 아는 분은 누굽니까? 그리스도입니다. 다윗의 씨, 예수님이 집을 지어요.
그래서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건축자들의 버린돌이 됐어요. 그 버린돌이 교회를 만드는 기초석이 되죠.
14절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징계하는 아들이 참 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인생의 실수와 범죄와 악한 것에 대한 모든 징계를 주님이 오셔서 다 받으신 거예요.
▲그런데 오늘 여기서 이 계시를 통해 약속하는 내용을 잘 보세요.
14절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무슨 얘기입니까? '네가 실패해도 완성하겠다!' 그 뜻입니다.
사울은 실패함으로 폐기 처분 했어요. 그런데 '네 나라는, 너에게서 세워질 그 나라는 혹시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완성하겠다!'
하나님의 입장에서의 선언입니다. 어떻게요? 마지막 그 결실과 열매에 해당하는 마태복음 1장을 한번 보자고요.
마1장에 보시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여기 히브리 족보에 들어가서는 안 되는 여인네들이 모두 네 사람 등장합니다. 족보에 여인들이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히브리 사람들 문화에!
그런데 여인들이 이 위대한 다윗의 왕가의 족보인데, 네 사람이 들어갑니다.
다말.. 시아버지를 속여서 그에게 들어가 대를 잇게 한 며느리 입니다. 라합.. 여리고 성의 기생 룻 .. 이방 모압 여인이죠. 히브리인이 아닙니다. 밧세바 .. 원래 우리아의 아내입니다.
이게 지금 그리스도의 족보이에요. 마1:16절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이것이 다윗 왕의 족보요, 다윗의 집안에서 오시기로 된 '다윗의 씨'인 그리스도의 족보입니다.
근데 그 족보가 어떻게 끊어질 이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질 듯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근친혼, 불륜, 이방여인, 살인, 이게 모두 인간 역사의 얼룩들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역사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이루시고자 하는 열심을 쉬거나, 포기 하셨나요? 포기하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구원 계획'은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신 것'입니다. 나는 비록 약할지라도, 나는 자격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그 약속을 지금 다윗에게 하고 계신 겁니다. :15
'사울은 내가 폐기 처분 했지만 다윗의 집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로 오셔야 되기 때문에,
그리고 그 구원의 성격을 역사 속에 드러내시고 설명해야 되기 때문에 너희들이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적용 여러분, 이런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이걸 어떻게 표현을 해야 될까요. 이런 걸 표현을 못 하겠어요.
정말 감격이 일어나면서도, 마음이 점점 저미면서도 그 무지랭이 같은 내게 임했던 이 구원이, 얼마나 하나님의 포기할 수 없는 애정과 사랑에 기초해서 내게로까지 흘러 왔는가?
나를 향하여 절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 자기를 근거로, 자기 수준을 근거로 좌절한다는 것은 지독한 교만이에요. 어디 감히 (구원 여정에서) 좌절을 해요?
우리는 좌절 할 수 없어요. 왜요? 어떻게 구속하신 사랑인데... 감히 어떻게 우리가 내 수준과 내 처지를 보고 좌절을 해요?
그건 큰 죄입니다. 우린 좌절할 수 없어요. 그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하신 구원에 우리가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삼하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
그러자 다윗이 이 계시를 알아들었어요. 깨달았어요. 이 어마어마한 인간 역사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구원의 큰 그림을 다윗이 보게 된 겁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서!
이 하나님의 언약의 크기 앞에 다윗은 지금 압도되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자기의 평안함, 자기의 고난도, 눈물도 기쁨도 다 날라갔어요.
▲이제 '오직 주만 보이는' 상태에서 다윗이 기도를 드립니다. 어마어마한 기도를 드려요. 그 기도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18절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앉아서 이르되' 앉았다는 많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얘기합니다.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이것은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다윗이 시어로 표현을 한 겁니다. '제가 누굽니까?'
'나 같은 것이 무엇이기에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습니까?' 그 심령이 어마어마하게 가난해집니다.
이 하나님의 언약 앞에, 그 언약의 크기가 가늠되어지자, 다 언약을 이해한 건 아니지만 그 언약의 크기가 어렴풋이나마 가늠되어지자
다윗이 그 언약의 크기 앞에, 너무 너무 가난한 자가 되어 버렸어요. 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구원 받아야 될 성도로 앉아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성도로 성공합니다.
여러분들도 이 땅의 스펙으로 성공자가 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구속받은 성도로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믿습니까?
역사의 평가보다는, 하나님의 평가에 귀기울이는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절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20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된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을 알면, 대박이 나는 거예요. (어디 어디 개발 계획만 알아도 한 세상 팔자 고쳐요. 하하)
예를 들면, 이 청파동 밑에 유전이 감춰져 있대요. 어디 이사가지 마세요. 우리나라가 400년을 쓸 수 있는 유전이 감춰져 있대요. 이게 사실이라고 해 봅시다.
이 계획을 우리 교회 성도들만 알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아침에 눈이 저절로 떨어질 거예요. 여기에 땅 갖고 집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여기 이 땅 대박 난다. 대박 난다' 그래서 다윗이, 모세가 위대한 이유는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는 것으로.. 더 큰 일을 했다는 겁니다.
그것이 계획을 공유하는 자의 복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끝납니다. 29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그렇다면 여기서 이 계시를 깨닫고 언약의 말씀의 크기에 압도당한 다윗이 달라는 복은 무슨 복이었을까요?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공유하고 소망하는 하늘의 복이요, 계획입니다.
오늘도 이 비전에 눈이 열리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서 이 악하고 한숨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인생들을 향해서 하늘의 계획을 입에 입을 통해 나누고 전해서 슬픔을 당한 자들이 기쁨의 길로 그리스도 앞으로 돌아오는 역사를 목도하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