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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8

LNCK 2023. 4. 20. 10:02

[Ep8.오디오북]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실화 | 내래죽어도순종합네다 | - YouTube

◈<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8              <지난 호 보기>

◑2부 8장. 열린 마음을 만나다 

북한 선교를 오랫동안 해본 선교사들이나 목회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북한 사람들은 변화되기 힘들다. 정말 힘들다. 
아무리 오랫동안 섬겨주고 말씀을 가르쳐도 변화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세계관이 고정된 성인들은 아예 불가능하기에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사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소년들 역시도 쉽게 변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오랫동안 섬겨주고 가르쳐 주어야 아주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북한 사람들이 <은혜동산>같은 집회에서  *뜨레스디아스
은혜를 받으려면 적어도 일 년 이상 성경통독을 하고 
매일 수시간 이상의 기도 훈련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김광신 목사님은, 수많은 북한 선교사가 오랜 경험 속에서 내린 결론과 
이론들을 한 보자기에 담아서 팽개쳐 버리셨다.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다. 아무것도 몰라도 괜찮다. 다 데리고 오라. 
와서 어떤 것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사랑을 해보자. 
그들도 인간인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변화되지 않겠나? 
사랑을 받고 마음이 열리면, 그때부터 변화되고 
말씀도 받아들이고 믿게 될 것이 아닌가?' 

정말 그랬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북한선교사들의 예상을 깨고 
<은혜동산>에 와서 충격을 받고 돌아가서 변화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탈북민 교회들에서도 <은혜동산>을 
그저 그랬던 수많은 집회들 중 하나와 같을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은혜동산이 탈북자들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을 참가시켰다.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람을 채우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을 골라서 받아야 할 정도가 되었다. 

4기 <은혜동산> 집회가 시작되었다. 
지난 번에 억지로 끌려왔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큰 은혜를 받은 
통독반 학생들은, 이번에 또다시 간다고 좋아했다. 

유진이와 민혜는 춤추듯이 뛰어다녔다. 
그리고 집회 시작하기 며칠 전 홍호철 장로님이 오셔서 
통독반 학생들에게, 은혜동산에 가서 해야 할 일을 세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그런데 강의를 들으면서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 
처음에 갔던 것처럼, 섬김을 받고 은혜를 받으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가서 (스태프로서) 힘든 일들을 해야하고 
누군가를 섬겨주고, 발까지 씻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태껏 섬김을 받기만 했지 섬겨본 적이 없었기에, 다들 내키지 않아 했다. 
민혜는 얼굴이 비뚤어졌고, 유진이는 투덜거렸다. '에이 씨, 난 안 가, 안 갈 거야!' 

민혜는 식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나도 안 가요' 라는 노래를 부르며 팔랑거리듯이 뛰어다녔다. 

부산에서 사시는 에스더의 부모님들은 신앙이 없으시다. 
그분들은 에스더가 통독학교에 와서 성경공부하는 것을 못내 싫어하셨다. 

꼭 에스더가 은혜를 받고 기쁨으로 충만해질 때면 
꼭 기다리기라도 한듯 전화해서 야단을 쳤다. 
'야, 통독학교 그만 둬! 그딴 거 해서 뭐하냐? 차라리 나가서 돈이라도 벌어!' 

에스더는 그때마다 상처를 받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은혜동산>으로 가려고 하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로 성화를 해댔다. 
'지금 언니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독일로 이민 간대.
네가 빨리 와서 언니를 말려! 
이렇게 바쁜 때에 너는 거기서 도대체 뭘 한다는 거야? 빨리 내려와!' 

에스더가 아무리 엄마에게 사정하고 상황을 설명해도, 엄마는 막무가내였다. 
무조건 부산으로 내려오라고 했다. 
갈등하던 에스더는 은혜동산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들은 은혜동산 집회에 왔다. 
에스더는 데코레이션 팀에 배치되었고 
민혜는 식당 팀에 배치되었다. 유진히는 세팅 팀에 배치되었다. 

다들 각자 여러 팀에 분산 배치되어 초대된 이들을 섬기기 시작했다. 
은혜동산에 처음 오는 탈북민들은 왠지 하나같이 표정이 굳어있었다. 

다들 덤덤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모든 것을 시덥지 않은 태도로 대하고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절대로 웃지 않았다. 
다들 바위처럼 굳은 얼굴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다. 

섬김이로 온 통독반 학생들은, 그들에게서 몇 달 전 자신들의 모습을 보았다. 
'아 우리가 이런 모습이었구나!' 놀람과 함께 마음이 예리듯이 아파왔다. 

동시에 메마르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탈북민들의 마음이 
유리그릇처럼 들여다 보였다. 
'이렇게 밝은 세상을 모르고 살다니.. 그들이 정말 안타깝다.' 

유진이는 평소에 힘든 일이 나타나면 요리조리피해 도망다니고 
요령만 부리며 살았는데, 이런 유진이에 마음속에 따뜻한 무엇이 들어왔다. 
'전에는 내가 받았잖아.. 받았으면 주는 것도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유진이는 마음을 고쳐먹고, 자기 또래의 청소년들에게 다가가 웃으면서 말을 걸었다. 
'안녕!' 
(탈북) 청소년들이 픽하고 비웃으면서 돌아서버렸다. 

유진이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바로 몇 달 전에 자기 모습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다가가 웃고 말을 걸었다. 
'안녕! 식사하셨어요? 맛있는 것 준비했어요. 가서 식사하세요!' 

유진이는 거친 청소년들의 마음 속이 얼마나 외로운 지,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거칠게 반응할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기에 
아무 어려움도 부끄러움도 없이 막무가내로 다가갔다. 

밝게 웃으면서 다가가는 유진이 앞에서는 
거친 청소년들의 태도가 수그러들었다. 
처음엔 야유하고 삐쭉거리다가.. 금방 웃고 떠들면서 유진이의 친절을 받아들였다. 

나중에는 유난히 험상궂게 행동하던 청소년이 
유진이에게 커피를 뽑아들고 찾아와서 내밀었다. 
낯선 탈북 청소년들의 세계에서 이것이 얼마나 큰 예우인지.. 
유진이는 잘 알고 있었다. 

좋기는 한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두 청년은 어색하게 커피만 마셨다. 
유진이가 물었다. 
'아까 내가 너에게 다가갈 때, 내 모습이 어땠어? 그때도 되게 짜증 내던데..' 

그 청년이 솔직하게 이렇게 대답했다. 
'처음에는 무지 싫더라. 니 말투도 싫었고, 하는 행동들도 다 마음에 들지 않고 
간사하게만 보였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았어!' 

유진이가 다 안다는 듯이 빙긋 웃으면서 다시 물었다. 
'지금은 어때?' 

'지금은 네가 엄청 부럽다. 그리고 나도 기분이 되게 좋다. 고마워!' 

유진이의 마음속에 무엇인가 반짝 하고 스쳐고 지나갔다. 
'나는 받았기에 이렇게 돌려줄 수 있다!' 
울컥하는 마음과 함께 속에서 기쁨이 올라왔다. 

유진이는 살면서 이런 느낌을 처음 가져보았다. 
복잡하고 다양한 행사들이 차질없이 진행되려면 
섬기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일을 해야만 했다. 

참가자들이 다 자는 밤에도, 자지 못하고 선물들을 준비해 포장하고 
음식을 만들고, 강의실과 식당들을 매번 새롭게 바꾸어야 했다. 

새벽부터 일은 해도 해도 넘쳐났고, 산처럼 쌓여만 갔다. 피곤했고 힘들었다. 
몸들이 지쳐갔지만, 통독반 학생들은 신기한 것들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다른 때면 조금만 몸이 힘들고 지치면, 짜증내고 도망가고 서로 다투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힘든데도, 마음이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다. 

전도사들을 만나면 이렇게 투정 부렸다. 
'아이고 전도사님, 왜 이렇게 힘들고.. 왜 이렇게 행복해요?' 

식당에서 일하는 설경이, 민혜, 광철이의 얼굴들이 
집회 내내 웃음으로 활짝 열려 있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허리 깊이 숙여 인사를 했고 
음식들을 대접했다. 

▲그런가 하면 예지는 <은혜동산> 첫날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수많은 탈북자앞에서 간증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예지는 두 살 때부터 엄마를 잃고, 이집 저집 떠돌아 다니면서 눈치밥을 먹고 자랐다. 
그러다보니 심장이 약했다. 
이야기할 때도 사람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항상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이것이 너무 싫어 고치려고 해보았지만, 노력으로 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사람과의 이야기는 항상 피하고, 곰 인형과만 이야기했다. 

이 문제로 정말 많이 기도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하고 왔지만, 사람들 앞에서 설 일을 생각만 해도 계속 떨렸다. 

죄인이 재판받는 시간을 기다리듯이, 예지는 자기 간증 차례를 기다렸다. 
예지가 간증을 하는 날이 왔다. 
궁지에 몰린 예지는, 한 시간 전부터 울면서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얼굴도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제가 무엇을 보고 하나님을 믿습니까? 이건 제게 너무 중요합니다. 

저는 이번에 올라가서 만약 이 강의를 망치면, 하나님을 안 믿을 거고 
정말 떨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연습한 대로 할 수 있다면,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겠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비장한 각오를 한 예지는, 강대상으로 올라갔다. 
기적이 일어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하는 간증이었지만 
전혀 떨지도 않았고, 전문강사들처럼 원고도 별로 보지 않고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태연하게 할 말을 다 하고 내려왔다. 

강대상에서 내려온 예지는, 신기한 빛을 눈에 달고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어요. 앞에 섰더니 그냥 하나님이 제 옆에서 손 잡고 있는 
느낌이 확 들었어요. 준비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예지의 마음에서 마치 뚜껑이 열린 것처럼 무엇인가 확 열렸다. 
예지는 웃으면서 뛰어다녔고, 사람들과 마주보면서 깔깔거리고 장난을 쳤다. 

찬양시간에는 무대 위에서 춤까지 추었다. 
예지의 춤에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은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성근 선생이 춤추는 예지를 놀란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통독반 학생들에게 물었다. 
'예지가 언제부터 춤을 추었지? 어떻게 저렇게 잘 추지?' 

식사시간 후 간식타임이 되면, 로비 식탁에는 언제나 비싼 초콜릿, 사탕, 
말린 열대과일들이 아름다운 장식으로 뒤덮여 나왔다. 

탈북자들은 초콜릿과 사탕들을 별로 먹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초콜릿들이 신기해서 한 두알 입에 집어 넣었다가 
밖에 나가 뱉어버렸다. 

미국에서부터 간식들을 힘들게 많이 가져와도, 
그 정성이 탈북자들에게 느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 탈북자들의 문화와 식습관들을 잘 모르고 
간식을 준비하시다보니 
정작 그들에게는 그것들이 보기에만 좋은 간식일 뿐이었다. 

간식부의 배치되어 함께 섬기던 교회 집사님이 답답해서 한마디 했다. 
'우리 애들이 이런 거 안 좋아해요.' 

그렇지 않아도 탈북자들이 간식들을 별로 먹지 않아 의아해하던 분들이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어떤 걸 주면 좋아하나요?' 
'무 radish 를 좋아해요!' 

다들 난감해 했다. 
모든 장식품과 소비품들이 고관대작들의 수준에서 공급되는 이 우아한 집회에 
무를 간식으로 내어놓는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데다 
정성과 사랑도 느껴지지 않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교회 집사님이 간곡히 권해 결국 한번 해보기로 했다. 
로비 간식 판에는 무가 깔려 나오고, 옆에는 고추장까지 곁들여졌다. 

식사 후 '이번엔 또 어떤 간식이 나오나?' 궁금한 눈으로 나오던 탈북자들이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야~ 무다!' 
어른이고 아이고 다들 무을 뽑아 고추장에 찍어 먹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동이나 버렸다. 

미국에서 오신 분들이 신기하고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세상에 이런 거를 좋아하네요..' 

탈북자들은 오징어에도 사족을 못 썼다. 
황금종교회의 체육대회 우승상품을 오징어를 가져다 걸어 놓으면 
다들 신이 나서 뛰어다녔다. 

다음에는 마른 오징어포가 로비에 깔렸다. 
탈북자들은 오징어포를 보자, 간식들이 어떤 아름다운 장식이었는지 보지도 않고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집어가 버렸다. 

집회 마지막 날에는, 통독반 학생들이 식당 아줌마들을 내보내고 
직접 옥수수 국수를 삶아서 대접했다. 

탈북자들은 고향에서 먹던 음식이라고 좋아했고, 
미국에서 오신 분들은 신기해하면서 먹었다. 다들 맛있다고들 했다. 

▲한편 에스더는 고통스러웠다. 
언니가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남자친구와 독일로 이민간다고 대출까지 받았다고 했다. 

엄마는 '이렇게 다 키워놓으니 이제는 도망가려고 한다'고 
에스더에게 전화로 화를 내고 분풀이를 했다. 

1분에 한 번씩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부산으로 내려올 때까지 전화하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지금 당장 내려오라. 집안일이 이렇게 급한데, 너는 거기서 뭐하는 거야?' 
언니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데코레이션 팀에서 일하던 에쓰더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에스더는 주님께 기도했다. '주님 도와주세요!' 
그리고는 전화기를 꺼버리고, 계속해서 데코 팀에서 열심히 봉사했다. 

평소에 에스더가 아니었다. 에스더는 통독 학교 막내다. 
키도 작고 아직 19살밖에 안된 애기 티가 많이 나는 소녀였기에 
모든 학생의 귀여움을 받았다. 
항상 얌전했고, 언니 오빠들이 뭐든 시키면 그대로 했다. 
선생들이 뭔가 지시하면 말없이 순종했다. 

어디엔가 있으라하면, 다시 부르러 갈 때까지 그곳에 조용히 앉아서 
시킨 일을 했다. 
여태까지 살면서 에스더에게 '거역'이라는 것은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에스더는 엄마의 말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주님께 맡겨버렸다. 
에스더가 속한 데코 팀이 맡아하는 일들은 무척 힘든 일이었다. 

새벽에 제일 먼저 일어나서, 식탁과 강의실들을 온갖 꽃과 그림들로 장식하고 
시간마다 벽에 걸린 이름들과 그림들을 바꾸어 장식해야 했다. 
밤에도 제일 늦게 끝나는 일이었다. 

어린 에스더가 감당하기에 무리가 될 정도로 힘든 일이었지만 
에스더는 콩알이 튕겨다니듯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웃고 즐거워했다. 

'내가 한 일들을 보고 사람들이 기뻐하겠지?' 반짝이는 눈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에스더를 총무님이 엄한 태도로 붙잡았다. 

'남자 화장실 청소할 수 있어요?' 
'아니 왜 이런 일을 나에게 시키시지?' 
어리둥절해진 에스더는 잠시 서있다가, 냉큼 대답하고 
남자화장실로 뛰어들어가 청소하기 시작했다. 

뒤에서 총무님이 난감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날 총무님이 다시 와서 에스더에게 미안해하며 사과했다. 

'그때 너에게 정말 그 일을 시키고 싶어서 지시한 것이 아니었단다. 
사실 나는 너를 시험해 보았어. 네가 하도 즐겁게 일을 하니까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즐겁게 하는지, 원래 그런 성격인지 알고 싶어서 그랬단다. 
그런데도 네가 그 상황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하는 모습을 보곤 정말 감사했고 
그리고 또 정말 미안했어!' 

에스더는 그 말씀을 듣고 멍해져서 생각했다. '내가 정말 그랬나?' 
정말 그랬다. 분명히 평소에 에스더가 아니었다. 

얌전하게 눈을 내리깔고 소심하기만 하던 그가 
겁도 없이 남자화장실에 벌컥 뛰어 들어가 별 일을 다 한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엄마 전화도 생각났다. 아찔했다. 
'이 엄청난 거역을 이제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가?' 
전화기를 켜자마자 전화가 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누그러져 있었다. 

'얘 됐다. 안 내려와도 된다. 언니가 독일 안 간 댄다!' 
'이게 무슨 일인가?' 

에스더는 그 자리에 가만히 굳어졌다. 
'이게 하나님이 주신다는 새 힘이고, 도우심이구나! 
그래서 여기를 '은혜동산'이라고 했구나...' 

은혜동산에서의 섬김을 통해 통독반 학생들은 
자신들도 누군가를 섬길 때 행복해진다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이런 행복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정말 많은 일을 한다는 것도 체험했다. 

▲유진이는 이 행복함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예지는 억눌렸던 것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었다. 
에스더는 새로운 힘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했다. 

설경이는 <은혜동산> 섬김이로 왔다가 이렇게 고백했다. 
'정말 신기해요. 엄청 힘든데도 피곤한 것도 모르겠고 
그 후부터 지하철을 탔는데, 이유 없이 막 기쁘고 미워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예쁘게만 보이는 게 막 신기했어요. 내 눈에 뭐가 씌인것 같아요. 
사람이란 사람이 모조리 다 예쁘게만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전에는 사람을 보면 못생겼다, 잘 생겼다.. 하고 평가하고 다녔는데 
이제는 다 예쁘게 보여요!' 

설경이는 달라졌다. 통독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바뀌었고 
하나님이 왜 자기를 선택했는지 이해했다. 

그리고 자기가 걸어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는 것도 
스스럼없이 느끼게 되었다. 설경이에게 다른 세상이 열렸다. 

예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남에게 줄 수 있는 마음은, 필리핀에 가서 얻었고 
사람들을 섬길 수 있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능력은 은혜동산에 가서 얻었고 
인내할 수 있는 것은 통독하면서 얻었어요. 
그러고 보니 사방에서 다 얻은 것 뿐이네요. 

처음에는 왜 이렇게 많은 돈을 써가면서 
여러 곳에 다녀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이제는 왜 통독학교에서, 사방으로 우리를 보내셨는지 좀 알 것 같아요.' 

미국에서 오신 분들도, 북한 청소년들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총무 팀에서 일하던 요한이, 
대코 팀에서 일하던 애쓰던 철명이, 
그리고 지우, 광철, 민혜, 설경이가 즐겁게 봉사하고 
얼굴에 기쁨이 만개한 것들을 보고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 애들 때문에 여기 오는 것이 너무 기쁘고, 기대가 되고 행복해요. 
매번 올 때마다.. 이번에 가면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하는 기대가 생겨요. 

다음번에 올 때는, 각 부서 팀장들까지도 북한 청소년들에게 시키고 
우리는 부팀장으로 그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섬기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북한이 열리면, 거기 가서 
이들이 그대로 이 사역(은혜동산)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홍우철 장로님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 1기 때에는 한국 아이들 반, 북한 아이들 반으로 모집하여 진행했었는데 
그때 너무나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 사역이 과연 될지 걱정스럽고 자신이 없었는데 

통독반 청년들이 함께 와서 거듭 변화되고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팀 멤버들이 다 서로 오고 싶어 해요. 

많은 분이 돈도 내고, 휴가까지도 내면서 와요. 
이제는 누구나 다 확신하고 자신들이 있어요.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이 사역을 하는데, 이곳에서 하는 것을 제일 좋아해요.' 

▲나(최광 목사)의 마음속에 따뜻한 속삭임 같은 것이 느껴져왔다. 
'그렇구나, 북한은 국경이 닫힌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닫힌 나라 였구나!' 

북한 사람들은 가난과 폭력, 미사여구로 포장된 속임수,
인간에 대한 증오와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재앙들을 거쳐 오면서 
두려움에 마음을 꽁꽁 닫고, 모든 것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굳게 닫힌 저 나라를 열어가는 하나님의 방법은 
전쟁도 아니고 정치도 아니었다. 
바로 그곳에서 나온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여는 것이었다.

들의 마음을 여는 것을 배워야 
굳게 닫힌 저 나라의 문도 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하나님이 왜 남한 땅에 탈북자를 보내셨고 
이곳에서 북한 선교를 하라고 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음속에서 기쁨과 흥분이 마구 뒤엉켰다. 
오랜 세월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산같은 바위가 갈라지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을 보는 것 같은 희열이.. 내 마음을 온통 뒤덮었다. 

'그래 그거야! 이곳에 있는 탈북자들은 
바로 굳게 닫힌 저 나라를 열 수 있는 열쇠들이었어! 
그래서 주님은 저 아이들을 그토록 사랑하셨구나! 

두려움과 불신으로 굳게 닫힌 그들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돈도, 지식도, 기적도, 아닌..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었어!' 

나는 <은혜 동산>에서 탈북민들도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뜨레스디아스
처음 들어오는 날에는, 멸시하듯이 비웃는 표정들과 
모든 것을 관심 없다는 듯이 쳐다보던 무감각한 표정들이 점차 변했다. 

웃기 시작했고 울기 시작했다. 듣기 시작했다. 
이제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로비에서 마당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열렸구나 열렸어, 분명히 열렸어!' 
엘리야는 멀리서 일어나는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며 
삼년 육개월의 그 무서운 가뭄의 끝을 보았다. 
'그때 엘리아의 마음도, 지금 나의 이 마음 같지 않았을까?' 

한국에서 사역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 
이제는 좀 더 분명히 알 것 같았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그들을 신뢰한다는 것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그들이 사랑을 느끼게 해 주어야 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들이었다. 

통독 반 학생들은 이번 집회에서 그 역할들을 해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배웠다. 

'사랑을 받을 때는 인간의 기쁨을 누리지만 
사랑을 할 때에는 하늘의 기쁨을 누리는구나!' 

김광신 목사님이 자주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랑이라는 건 낭비야, 개선하지마, 그냥 줘! 
그들이 언젠가 사랑에 배가 부르면 
그때 가서는 우리가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이 그들을 변화시키게 되어 있어!' 

평범한 말을 하듯이 천천히 해주신 말씀이었지만 
그 말씀은, 마치 큰 물이 쏟아진 것 같이 
탈북자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져 스며들었다. 

탈북자들은 소중한 보물을 감춰가지고 가듯이 
마음속에 이 말을 품고 돌아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만져보았다. '사랑은 낭비래!' 


◑2부 9장. 가족이 되는 우리 

몇 달 동안 강도 높은 훈련만 했더니, 선생들과 학생들 모두 지쳐버렸다. 
나는 학생들을 데리고 강원도의 바닷가로 리트릿을 갔다. 

더운 여름날에는 지하실에서 성경만 읽다가 
쌀쌀한 초가을 날씨가 되어서야 바다에 가니,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오히려 조용해서 좋았다. 

금방 비가 올 것 같은 칙칙한 구름이, 하늘을 잔뜩 뒤덮고 있었다. 
그래도 다들 기분이 좋다고.. 파도를 따라 뛰어다니며 날뛰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놈 저놈 붙잡아 물속에 던져버렸다. 
여학생들이 비명을 지르다가 바닷속에 던져져선
약이 오르는지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정신놓고 웃으며 구경하다가, 나도 끌려들어가 옷이고 뭐고 다 젖어버렸다.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웠지만, 서로 물을 먹인다고 첨벙거렸다. 

그러다가 충혁이가 저만치 파도에 밀려 나가버렸다. 
젖은 옷이 몸에 들러붙어 있어 헤엄을 칠 수 없는지,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나 좀 도와줘, 나 죽을 것 같아, 살려줘 제발!' 

여학생들이 기회를 만났다고, 손뼉을 쳐대면서 좋아했다. 
남학생들은 오히려 그에게 물을 뿌려대면서 놀려댔다. 
'어이 충혁! 열심히 해봐, 조금만 있으면 몸이 가벼워질 거야!' 

불쌍한 충혁이는 혼자서 애를 쓰고 버둥거리다 
물을 먹고 혼절했는지 둥둥 떠버렸다. 

그제야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다들 진지해졌다. 
급하게 손에 손을 잡고 사람 띠를 만들어 충혁이가 있는 곳까지 들어가 건져냈다. 

충혁이는 삶은 시래기처럼 모래 바닥에 축 늘어졌다. 
남학생들이 발로 충혁이의 배를 밟고 몇 번 꾹꾹 눌러 버리니 
이내 물을 토하며 정신이 돌아왔고 다시 환성이 터졌다. 
'이야 살아났지롱!' 

충혁이는 모래바닥을 기어다니며 노발대발했다. 
'다 죽여버릴거야, 내 손에 잡히기만 해봐!' 

여학생들은 깔깔거리며 도망갔고, 남학생들은 손뼉을 치면서 좋아했다. 
충혁이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펜션으로 도망가버렸다. 

그제야 다들 물장난이 성이 찼는지, 다들 추위에 벌벌 떨며 펜션으로 몰려갔다. 
오후에는 비가 왔지만, 가까운 초등학교 운동장에 가서 축구를 했다. 

남자고 여자고 가리지 않고, 팀을 갈라 마구 몰려다녔다. 
여학생들은 공을 뺏기다가 약이 오른다고, 남자들을 발로 차버렸다. 

민혜는 남자들보다 축구를 더 잘했다. 받을 때에도 정확했고 
드리블하며 남자들을 제치다가, 패스하는 것도 정확했다. 

조금 후에는 남학생들이 모는 공을 쉽게 빼앗기까지 했다. 
남학생들이 약이 올라 물었다. 

'너 북한에 있을 때 축구선수했구나!' 
'아니야 동네에서 좀 찼을 뿐이야!' 

성근 선생은 몇 달 전 여의도공원에서 공을 찰 때 
5분만에 맥을 못추고 기절해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 시간이 지나도 씩씩하게 잘 뛰어다녔다. 

여학생들이 신기해서 물었다. '왜 이러세요? 약 했어요? ㅎㅎ' 
'아니야 이놈아, 그날 충격받고 꾸준히 운동을 했거든!'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다리 근육에 쥐가 올라 뻗어버리더니 
벌벌 기면서 운동장을 빠져 나갔다. 

나는 하루종일 학생들과 몸을 부대끼며 함께 굴렀다. 
저녁에는 회를 사왔다. 오랜만에 나온 여행이라 실컷 먹는다고 
오징어, 광어, 우럭 들을 넉넉히 사왔다. 

젖은 옷들을 갈아입고, 왁자지껄 떠들어되면서 회를 먹었다. 
그런데 유정이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에서부터 유정이를 본 기억이 없었다. 

이상한 생각에 여학생들에게 물었다. '유정이는 왜 없노?' 
숙소에서 이불 펴고 누워 있어요. 

녀석이 또 삐쳤다. 유정이는 어릴 적에 부모를 다 잃고 
친척 집들을 돌다가 한국으로 왔다. 그러다보니 생존에 대한 두려움도 많았고 
채워지지 않은 사랑에 대한 갈망도 컸다. 

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했고,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껴질 때를 못 견뎌하고, 감정기복이 심했다. 

좋을 때에는 세상을 다 얻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놀다가도 
조금만 기분이 상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오지 않았다. 

여학생들이 숙소로 올라가서 유정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유정아, 일어나! 목사님이 회를 이만큼 사왔어!' 

'안 먹어!' 
유정이는 이불을 뒤집어쓰곤 얼굴조차 내밀지 않았다. 
오징어회도 있고, 광어회도 있어. 그리고 너 좋아하는 빨간 고기도 있어!'

남학생 몇이 회를 들고 들어와, 이불 옆에 펼쳐놓고 달랬다. 
'그만 일어나! 안 그러면 이불 확 땡겨가지고 잡아먹고 말거야' 

유정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시큰둥한 얼굴로 일어나서 어색하게 말했다. 
'나 바다 보러 나갈 거야!'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보니 모든 것이 다 재미있었다. 
삐치고 심술부리는 녀석도 나쁘지 않았고 
그걸 달랜다고 낑낑거리는 녀석들도 보기 좋았다. 

사람은 잘 난면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기 보다는, 
서로의 부족한 점, 못난 점 때문에 친해지는 경우가 더 많다. 

잘난 면으로는 계산적으로 합쳐지지만 
못난 부분에서는 서로 마음으로 합쳐지는 것 같았다.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으면서도, 한 집안에서 같이 먹고 같이 자고 하면서 
학생들은 어느새 처음 만났을 때 품었던 경계심도 사라졌고 
한 집안 식솔처럼 친해져 가고 있었다. 

철명이는 다른 학생들과 함께 1 기생으로 시작했지만 
나갔다 들어오는 바람에 2기생이 되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1기생과 2기생의 훈련에 구별이 지어졌다. 
이어 1 기생들이 모든 예배를 주관해 나갔고 
강의들도 1기생들을 기준으로 진행했다. 

철명이는 마음이 상했다. 
거기에다 학생들끼리도 1 기생과 2 기생사이에 서로 차이가 생겼다. 
훈련에 임하는 태도와 비전, 마음가짐 등 모든 것들이 다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철명이는 화가 났지만 인정해야만 했다. 
'그래 내가 밖에서 돌다가 왔으니 내 잘못이 있다' 
철명이는 자기가 2 기생이라는 것을, 힘들었지만 받아들였다. 

그랬더니 더 좋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1 기생들이 훈련을 마무리 지으면서 듣는 모든 강의를 다 듣고 
다시 처음부터 훈련을 시작한다고 하니 
더 이상 흔들리지 않고, 모든 것을 알차게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오히려 좋았다. 

노상 작고 귀여운 깡패 노릇만 하던 민혜가, 어느 날부터 온순한 태도를 보였다. 
말할 때도 거친 말을 쓰지 않으려 애를 썼고, 행동도 상냥해졌다. 

아침이면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동료들을 위해 아침 죽을 끓였다. 
남학생들이 덜렁거리며 죽만 퍼먹고, 그릇을 씻지 않고 도망가도 
예쁘게 웃어주기만 했다. 

이제는 여자가 되고 싶은 모양이다.
가끔씩 고양이처럼 꼬리를 세우기도 했지만, 금방 풀어져 버리곤 했다. 

아침 죽을 먹으면서, 어제 생일을 보낸 영민이가 들떠가지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 어제 케이크를 네 개나 받았어! 학교에서 하나 받았고 
정오에 하나 더 받았어, 저녁 7시에 또 하나 받았어, 
그리고 새벽 4 시가 돼서 또 하나 받았어 (카톡으로 기프트 받은 듯)
꽃도 받고, 신발도 받고, 돈도 받았어! 그리고 또 뺨도 한 번 맞았어!' 

'왜? 누가?' 
죽을 먹던 학생들이 놀란 눈을 들었다. 

'아, 그게 어제 공을 찼잖아? 축구공 한테 맞았어!' 

그런데 죽을 먹던 유정이가 갑자기 눈에 눈물을 달고 말했다. 
'내 생일날에는 케이크를 하나밖에 못 받았어!' 

신나서 떠들어대던 영민이가 입을 꼭 다물어 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는 민혜의 생일이었다. 
그날 유정이는 새벽부터 부엌에 내려와, 정성스럽게 보쌈 도시락을 쌌다. 

점심에는 일부러 민혜를 위해 국수까지 따로 끓였다. 
유정이가 생일 때 섭섭했던 마음을, 민혜는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준 것이다. 

▲설경이가 며칠 전에 통독학교를 뛰쳐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붙잡아 놓고 왜 나갔는지 물어보니 
같이 지내는 애가 너무 싫어서 뛰쳐나갔다는 것이다. 

똑 부러지고 강하게 봤는데, 마음은 너무 연약했다. 
선생들은 설경이 때문에 다른 학생이 뛰쳐나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설경이가 먼저 뛰쳐나갔다고 놀라워했다. 

사람은 겉모습과 내면이 반대 되는 경우가 많다. 
강하게 보이려는 사람은, 연약한 내면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한다. 
그것이 습관이 되다 보면, 그것이 마치 자기 모습인 것처럼 생각한다. 

결국 원래 그대로의 자신을 느끼지 못하기에 
점점 외로워지고 표면적인 강함은 속이 점점 더 비어가면서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다. 

설경이는 집에 가서 빈둥거려보았지만, 이내 학교가 그리웠고 
지겹다고만 생각했던 통독이 그렇게 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다시 왔다. 

와서 보니, 또 마음 안 드는 애때문에 짜증이 나서 나가고 싶었다. 
자기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것이다. 

사모가 설경이를 붙들고 얘기했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통독해! 
하고 싶고 좋아하는 것만 붙잡아! 나머지는 그냥 못 본 척 해버려!' 

며칠 지켜보니 녀석도 어느새 변하고 있었다. 
항상 말씀을 배우면, 그 말씀을 가지고 옆에 있는 사람을 재보고 삐쭉거리더니 
이제는 배운 말씀을 가지고 자기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 
남만 보고 판단하던 눈이 자기를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은.. 은혜의 시작이다. 

▲은정이는 1 기생들의 훈련이 마무리되는 단계에 들어와 2기생이 되었다. 
모든 훈련과 관심이 1 기생들에게 집중되다보니 
금방 들어온 은정이는 소외감을 느꼈다. 

은정이도 어려서 부모를 잃고 친척집들을 떠돌다가 한국으로 왔기에 
관심과 사랑에 대한 갈망이 컸다. 
그가 보기에는 모든 사랑을 1 기생들이 독차지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기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저녁기도 시간, 주눅 들어 한켠에 앉아 기도하는 그의 마음에 
살면서 처음 경험해보는 따뜻한 마음이 조용히 일어났다. 

'내 Jesus 가 너를 사랑한다!' 
그 순간 서럽고 힘들던 모든 마음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한없이 평안해졌다. 
희미하지만 또렷한 느낌이 계속해서 그를 격려했다. '내가 너와 함께 있단다'

은정이는 눈물이 났다. 하나님에 대해서 배운 것이 많지 않았기에 
이 신비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처음 받아보는 사랑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았다. 그래서 더 많이 울었다. 

다음 날 은정이는 기분이 상쾌하고 날아갈 것 같았다. 
그때부터 어둡고 우울하던 그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모든 훈련의 적극적으로 참가했다. 
은정이는 예배 때마다 집회 때마다 대중들앞에 나서서 기뻐뛰며 춤추는 
1 기생들을 늘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기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뛰어나지 않은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걸렸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부끄러웠다. 

아파하는 은정이의 마음에 작고 밝은 빛이 임했다. 
'네가 나를 사랑해서 하는데, 왜 다른 사람을 보느냐? 
오직 나만 바라보고 해라!' 전에 없던 자신감이 생겼다. 

은정이는 다음날부터 3주간 열심히 연습하고 
예배시간에 앞에 나가 1 기생들과 함께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치유의 은혜가 임했다. 

은정이는 심장이 좋지 않아 자주 숨이 막혀 있고 
눈에 결막염이 생겨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심장수술과 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통독을 도중에 단념하기 싫어 돌아왔다. 

저녁기도 시간, 눈이 빨개지고 통증이 더 심해졌다. 숨도 막혀왔다. 
고통 때문에 울고 있는 은정이를 보고, 여전도사님들과 통독반 학생들이 함께 기도해 주었다. 

다음 날 가슴에 통증이 사라지고 눈도 깨끗해졌다. 은정이는 어리둥절했다. 
'혹시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 아닐까?'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확신하지는 못했다. 

은정이는 어려서부터 겨드랑이에 혹이 하나 있었다. 
이 혹은 은정이가 자라는 만큼 따라 컸다. 
늘 이것이 창피해서 여름에도 짧은 소매 옷을 입지 못했지만 
한 방에서 사는 여학생들은 다 알고 있었다. 

이것을 없애보려고 별 노력을 다해봤지만, 점점 더 커지고 아프기만 했다. 
거울을 보면서 '혹시?' 하는 마음에 이 문제를 가지고도 기도했다. 

통독 시간, 혹이 몹시 아파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보니 
큰 혹이 시커멓게 피멍이 져 있었고,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붙어 있었다. 

당겨보았더니 옷에 붙은 실밥처럼 뚝 떨어져버렸다. 
뿌리까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아~' 하나의 깨달음이 은정이의 마음을 스쳐지나갔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구나! 심장이랑 눈을 고쳐준 것도 다 하나님이 하신 것이구나! 
내가 그걸 모르니까 하나님이 다시 해주셨구나!' 

한방에 사는 여학생들도 놀라면서 기뻐했다. 
'와~ 대박이다. 대박이다!' 

은정이는 그때부터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다. 
은정이는 시간을 내어 드럼을 배우고 찬양팀으로 예배를 섬기면서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몸과 마음의 가득히 채워지는 사랑은 그를 변화시켰고 
기도를 통해 주님의 마음을 알아갔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속삭이셨다. 
'너는 나를 찬양하는데, 왜 자꾸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냐? 
내가 너를 사랑하지만, 그 애들도 내가 사랑한다. 
항상 네가 생각하는 것으로 애들을 보지 말고 
내 마음으로 애들을 보아라. 내가 십자가에 달리던 그 심정으로 보아라!' 

그 후로부터는 정말 그렇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도 밉지 않았다. 
누가 자기를 무시해도, 무례하게 대해도, 밉게 보이지 않았다. 

유정이도 자기의 감정 기복이 심한 모습 때문에 고민했다. 
기도 시간에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생떼 부리듯 울면서 기도했다. 

그래도 잘 안 고쳐지자, 그룹기도 시간에 부끄럼 없이 자기 모습을 담담하게 
다 말하고, 함께 기도해 달라.. 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다들 같이 눈물로 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해 주었고 
다들 자신의 기도제목을 솔직하게 내어놓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그룹기도 시간 기도제목들은 점점 바뀌어갔다. 
훈련에 제대로 임하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서 기도 했고 
도중에 포기하고 나간 친구들을 위한 기도제목들도 내놓았다. 

아이들은 점차 이제는 주님을 만나고 싶다고, 
통독과 말씀에만 집중하고 싶다고 기도 했다. 

졸업 때가 가까이 오자, 
오직 예수 외에는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 내가 되게 해달라며 
주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아이들이 되었고 
주님안에서의 비전을 발견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기도하는 아이들로 변화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