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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7장 나단이 하나님께 받아서 전한 계시 (나단의 신탁)

LNCK 2023. 4. 21. 09:03

◈나단이 하나님께 받아서 전한 계시 (나탄의 신탁)    삼하7:1~17

왕권과 신권 사이에서 어떻게 바람직한 관계를 세울 것인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사무엘하>의 다윗 이야기를 함께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왕이 된 후 그의 행동을 잘 관찰해보면 
그는 하나님을 앞세우는 순수한 신앙적 동기에서 행동합니다. 
그래서 방치되었던 법궤를 모셔오고, 다윗 성에 안치하며
또한 (허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으려 했습니다.

이런 것은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합하고 
자신의 통치력을 강화하는 매우 뛰어난 정치적 행동이었습니다. 
다윗은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행동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본문 가운데 삼하7:4~17절까지는 <나단이 받은 계시>입니다. 
예언자 나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다윗에게 전달한 내용입니다. 

다윗은 통합 왕국을 세운 후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언자 나단을 통해 그것을 만류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 하나님은 다윗 가문을 왕조로 삼아 
이스라엘 나라와 왕조를 영원토록 튼튼히 지켜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에 재미있는 워드플레이가 있는데요. 
5절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________냐가 살집

하나님께서 성전을 가리켜 '내가 살 집', 이렇게 하나님의 '집'이라 하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을 가리켜 '그 집 the house'이라고 부릅니다. 
'그 집' 그러면 성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1b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5절에 '집'이 성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면,
11절의 '집'은 다윗의 왕조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동일한 '집'이라는 단어가 5절에서는 '성전'으로
11절에서는 '왕조'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제가 하나님의 집을 세워드리겠습니다' 하니까 
하나님이 '그것 됐고, 내가 네 집을 세워주마!' 이렇게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단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의 주된 내용이죠. 

사울은 아들에게 왕위를 계승하지 못하고 죽었지만 
다윗의 아들들은 대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이 돼요. 
그 왕위가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나단이 받은 계시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비판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스라엘 역사에서 
'나단이 받은 계시'는 왕실을 비판하는 예언자들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왕권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습니다. 

다윗 왕조를 이어 간 대부분의 왕들은, 하나님과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왕들이 '나단이 받은 계시'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악용하여 권력을 위한 도구로 삼았을 것을 
우리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하고 논쟁할 때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 중에서 나에게 유리한 말씀만 빼내서 
들이대곤 하지 않습니까.

다윗 가의 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많은 왕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조를 영원히 세우시겠다'고 하신 
그 약속에 안주하여, 신권을 왕권에 이용하기를 계속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나단이 받은 계시'에는 이런 측면 외에도 
우리가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다른 측면이 있는데요. 

그것은 이 본문이 나중에 모든 유대인들이 함께 공유한 
'메시아 대망 신앙'의 근거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조를 위한 약속과 아울러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약속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위한 약속을 보시지요. 
7:10~11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
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이주민 노동자로, 노예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한 후 40년 동안은 광야의 난민 이었습니다. 

가나안에 정착한 후에도 아직 거기가 내 땅이라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약소민족으로서, 블레셋 같은 주변국들의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려야 했고 
그래서 그 땅에서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통해 이스라엘을 튼튼히 세우셔서 
다시는 여기저기 옮겨다니지 않고, 자기 땅에 자리 잡은 채 
주변국에 시달리지 않고 평안하게 살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부강한 나라에 대한 약속은 
다윗왕조에 대한 약속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11b절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집안을 한 왕조로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아들과 손자들이 대를 이어 왕이 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리고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그 뒤에 이어집니다. 

11b~13절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여기에 '네 씨'(다윗의 자식)이라는 말이 단수형 으로 나오는데요. 
이것은 아들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고 
그의 모든 후손들을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들 한 사람이라면 솔로몬을 가리키겠지요. 

13절은, 그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집을 지을 것이라 하는데 
이것은 솔로몬의 성전을 말하겠고요. 
그러나 동시에 이 약속은 다윗의 모든 후손들, 곧 다윗 왕조의 
모든 왕들을 향한 것일 수 있습니다. 

15~16절 '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사울은 그의 대에서 왕위가 끝났지만 
하나님께서 다윗의 자손에게서는 은총을 거두지 않으시고 
그 왕위가 영원히 이어지게 할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사실 이 약속은 다윗과 솔로몬 때에 이미 이루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다윗과 솔로몬시절에 
이미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고요. 
지중해 남동부의 강국으로서, 주변국를 호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기도 했고요. 

그러나 그것도 잠깐 이었을 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 후 
유대인들은 수백년간 여러 제국의 연이은 지배를 받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하신 계시의 말씀은 너무나도 먼 현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나단을 통해 주셨던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다윗 왕조의 다시 다윗과 같이 뛰어난 왕이 일어나게 하셔서 
이스라엘을 다시 부강한 나라로 만들어주시기를 고대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메시아 대망 신앙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메시아 대망의 근거가 된 나단이 방은 계시가운데는 
신약성경에 담겨 있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기초로 사용된 
중요한 용어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2절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두어 (후계자로 세워서)' 
여기에서 '다윗의 씨'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때부터 '다윗의 씨'라는 말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되었습니다. 

롬1:2~4절은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정의하는 부분이지요.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하나님 나라의 복음으'로 정의하고 있는 구절인데요. 
그 가운데 3절에서 '그의 아들'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롬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여기서 '다윗의 혈통'으로 번역된 말이, 원래 '다윗의 씨'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는 다윗의 씨로 태어나셨다' 이 말은 
바로 유대인들이 기다려오던 그 메시아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라는 뜻입니다. 
삼하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다윗을 잇는 왕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라는 뜻이죠. 

구약성경과 유대교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시2: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2편은 제왕시입니다. 왕의 대관식, 즉위식에서 노래한 내용이죠.
왕의 즉위식에서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시89:27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같은 내용이죠. '왕을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음성이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고 말씀하셨죠.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번에 로마서 1:4절로 가보겠습니다. 
롬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
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 는 말은 '왕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대행하는 왕이 되셨다.. 는 듯이죠. 
하나님 나라의 주님이 되셨다.. 하는 뜻입니다. 


앞에서 나단이 받은 계시에는 양면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판적으로 보면 나단의 신탁은 
왕권의 정당성을 합리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으나 

다른 면으로 보면 '메시아 대망 신앙'의 근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나단이 받은 계시는, 왜 이런 양면성을 대조적인 양면성을 가지게 된 걸까요? 

이 두 측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윗왕조가 신실한 청지기 로서 하나님의 주되심의 언약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나단이 받은 계시에 담긴 약속의 실현은 미루어 지고 미루어져서 
결국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야 그 약속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단지 나단이 받은 계시를 위해서만 오신 것은 아닙니다. 
나단의 신탁은 온 인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니까요.

예수님은 단지 이스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셨지요. 
이스라엘의 왕들은 '나단이 받은 계시'(=나단의 신탁)을 붙들고 그것에만 의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 왕조를 영원히 튼튼하게 세워주신다고 했으니 
왕의 통치를 어떻게 하든, 왕이 신실하든 불신실하든
하나님께서 왕조를 지켜 주실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값싼 은혜'에 빠진 것이지요. 

그것은 매우 편의주의적인 생각입니다. 
1) 나단의 신탁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2)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어진 언약 
3) 그리고 다윗이 왕이 될 때 다윗과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하나님 앞에서 맺은 그 언약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1+2+3

나단의 신탁이 포함되어 있는 신명기 역사는 
왕들을 신명기의 언약에 따라 평가하지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신실하면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리실 것이고 
그 언약의 불신실하면 저주를 내리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말씀입니다. 

언약에 신실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자녀와 토지와 가축들이 복을 받고 광주리와 떡반죽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지만 
언약에 신실하지 않으면.. 들어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고 
자녀와 토지와 가축들이 저주를 받고 광주리와 떡반죽그릇 저주를 받을 것이다.. 
하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 언약안에 나단의 신탁이 있는 것이지 
나단의 신탁만 똑 떨어져서 
왕들이 무슨 짓을 하든 하나님께서 그 왕조를 지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잘 읽어보면 나단의 신탁(나단이 하나님께 받은 계시)안에
이미 그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7: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그가 죄를 지으면 사람들이 자식을 매로 때리거나 채찍으로 치듯이 
나도 그를 징계하겠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신명기) 언약 안에 
나단의 신탁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왕들이 이 말씀만 제쳐 놓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말씀만 쏙 빼어서 이용한 것이죠. 


혹시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두 그런 습성이 있기 때문에, 더 깨어서 말씀에 직면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앞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인정하시고 왕의 표상으로 삼으시는 것은 
그가 완전히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신 것입니다. 
그가 가진 분명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 한계 내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진실하심을 보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