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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9장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므로, 사울 가가 두렵지 않은 다윗

LNCK 2023. 4. 23. 20:54

221023 사무엘하(8) 나를 위하여 (삼하 9장)  - YouTube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므로, 사울 가가 두렵지 않은 다윗    삼하9장      설교정리

지난 시간에는 다윗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에시온 게벨까지 이르는 
넓은 지역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관한 기록이 삼하8, 10, 12장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8~12장에 이르는 "다윗의 정복전쟁 이야기" 사이에 
9장과 11장의 다른 이야기들이 (삽입 형식으로) 끼워져 있는데요. 

이 9장과 11장의 두 이야기는, 
다윗전쟁이 계속되고 이스라엘의 영토가 확장되어 가던 중에 

다시 말해서 다윗이 한참 잘 나가던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두 가지 사례를 들어서 보여줍니다. 

- 9장 사건은, 다윗이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불러들인 것이고
- 11장 사건은, 다윗의 밧세바 사건입니다. 
오늘은 9장 사건만 다룹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을 돌보게 된 배경은, 요나단 때문

본문 삼상9장에서, 다윗은 사울 집안의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내어 
배려하고 보살피는 이야기가 전개 됩니다. 

이것은 바로 이어지는 10:2절에도 나오는 주제, 
곧 다윗이 사울을 피해 쫓겨나니던 암울한 시절에 
그를 도왔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중에 왕이 된 후에 
그들을 기억하며 은혜를 갚았다는 사실과 연결됩니다. 

다윗의 도망자 시절, 그를 도와준 사람이 많이 있었지만 
누구보다도 요나단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삼상23:14~15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
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다윗이 사울이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나온 것을 보았으므로 그가 십 광야 
수풀에 있었더니' 

위 개역개정은, 새번역 본문과 다릅니다. 
그러나 새번역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     주1)

새번역을 따르자면, 사울은 왕이 가진 뛰어난 정보력을 활용하여 
다윗이 은신처를 옮길 때마다, 그것을 알아내고 병력을 출동시켰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때마다 그것을 미리 알고 피하곤 했습니다. 
사울이 출동하는 것을 다윗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새번역 본문은 바로 이어 16절에서 카메라를 요나단 에게로 돌려서 
요나단이 광야로 다윗을 찾아가 격려하는 모습을 비추어 줍니다. 

사울에 관한 정보를, 다윗에게 전해준 사람이 바로 요나단임을 암시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새번역에서만 이러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도 그랬을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요? 
요나단이 사울의 지근거리에서 사울의 움직임을 다 알고 
그때마다 다윗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사울이 다윗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도 물론 있었겠습니다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또 성령의 지시하심도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사례가 많이 나오죠.)

이렇게 요나단이 다윗에게 큰 도움이 된 것은 
그가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역시 요나단을 사랑했습니다. 요나단이 전사한 후에 
다윗이 부른 애가인 삼하1:17절 이하에, 그 마음이 잘 드러나 있는데요. 

그 가운데 26절에서 다윗은 '요나단의 사랑이 여인의 사랑보다 더한 것이었다'
고 노래하죠. (*애가는 시라서, 시적인 표현 즉 과장법을 썼으리라 봅니다.
액면가 그대로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무리죠)

요나단이 다윗을 처음 만난 것은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긴 직후였습니다. 
삼상18:1절은 '요나단이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다윗을 마치 제 목숨처럼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합니다. 

삼상18:3절 이하를 보면 '요나단은 다윗과 가까운 친구로서 지내기로 
굳게 언약을 맺고, 그에게 자기 겉옷을 벗어주며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주면서' 그를 향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만일 다윗이 없었다면,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을 이어 왕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그것을 알면서도, 다윗을 사랑하고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혹시 요나단이 얌전하고 글이나 읽기를 좋아할뿐 
세상 일에는 소극적이고, 관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서를 자세히 읽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요나단은 다윗이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용맹한 장수였습니다. 

삼상14장을 보면 요나단이 블레셋의 전초부대로 잠입하기 위해 
자기 무기를 든 병사와 함께 두 높은 바위 사이를 손과 발로 기어올라가서 
20명의 병사들을 격퇴하는 장면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요나단의 급습으로 인해 당황하고 혼동한 나머지 
저희들끼리 싸움을 벌이게 되고, 그 덕에 사울의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물리치게 됩니다. 

요나단은 무엇보다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무엘서의 묘사되어 있는 요나단의 모습, 그리고 다윗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이상적인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왕의 역할은 

하나님의 왕되심을 실현하는 것임을, 다윗이 분명히 알고 또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단도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이 그러한 믿음으로, 사울에게 손을 대지 않은 것처럼 
요나단 역시 그러한 믿음으로 다윗을 인정하고 지지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가질 수 없는 태도이고,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우리의 영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드러납니다. 
요나단의 믿음은, 그가 다윗과 맺는 관계 속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기에, 다윗에게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믿음과 다윗을 향한 그의 사랑은, 죽는 순간까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요나단은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지지자라는 것은 
사울의 입장에서는 배신자가 됨을 의미했습니다. 

그로 인해 요나단은 왕궁의 아버지 옆에 머물면서, 많은 괴로움을 겪었을 것입니다. 
사울은 심지어 아들 요나단을 죽이려 하기까지 하지요.  삼상10:33
무엇보다도 요나단은, 다윗에게 왕위를 양보했습니다. 

왕정시대의 왕의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그것으로 간단히 끝나지 않습니다.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 왕이 되지 않은 채 살아있다는 것은 
현재 왕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치사는, 수많은 배신과 살육의 이야기들로 가득하지요. 
그러나 요나단은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다윗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다윗과 요나단이 언약을 맺었습니다. 
사무엘서에는 두 사람이 언약을 맺었다는 말이 세 번 나옵니다. 

삼상18장에서 처음 만났을 때 우정의 언약을 맺었고 
20:11절 이하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의 집안을 지켜주기로 
굳은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언약은 23:18절에서 다시 확인됩니다. 

그 후 다윗은 요나단의 집안을 지켜주겠다는 언약을 충실히 지키고자 애썼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손을 대지 않은 이유는,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지만, 
그가 '요나단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함께 작용했을 것입니다. 

또 사울이 전사한 후에, 
자기 손으로 그를 죽였다고 자처하는 아말렉 사람을 다윗이 처형한 일이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암살하고 다윗을 찾아온 레갑과 바아나를 처형한 
배경에도, '요나단의 집안을 지켜주겠다'는 언약이 있었을 것입니다. 

◑본문 해석

그리고 무엇보다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을 찾아서 보호해주게 되는데요. 
오늘의 본문인 삼하9장이 바로 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본문 배경은, 이스라엘 12지파를 통합하는 새로운 왕정국가의 토대가 세워지고 
블레셋 을 포함한 주변 국가들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
이제 다윗 왕국이 영토를 사방으로 확장해 가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의 왕권이 절정에 이르렀을 즈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때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혹시 사울 집안에 살아남은 사람이 있으면 잘 챙겨서 보살펴야겠다고 
마음 먹고는 신하들에게 알아보게 합니다. 

9:2절에서 신하들은, 사울 집안의 종인 시바를 다윗에게 데려옵니다. 
다윗이 묻습니다. '사울의 집안에 남은 사람이 없느냐? 
있다면 내가 하나님의 은총(헷세드)을 그에게 베풀어 주고 싶다'  :1

시바가 대답하죠. '요나단의 아들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두 다리를 접니다.' :3 

살아있는 요나단의 아들의 이름은 므비보셋입니다. 
그러나 시바는, 므비보셋의 이름은 말하지도 않은 채 
그가 중증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립니다. 

아마도 시바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앞에서도 짧게 말씀 드렸습니다만, 사울의 가문에 아들이 있다면 
그는 언제든 반란의 소지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으로서 정통성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왕정시대에 종종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반란을 일으키더라도 
아무나 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왕으로서 정통성을 가진 인물이 필요했지요. 

그러므로 만일 반란이 일어난다면 
므비보셋이 원하든/ 원하지 않던, 그들은 므비보셋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왕정시대의 상식을 따르자면 
요나단의 아들은 우선적인 제거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바는, 그가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다윗에게 가장 먼저 알리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는 다리 저는 자니이다' :3

그가 왜 장애를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삼하4:4 '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 (블레셋이 요나단의 아들까지 찾아내 죽일 것을 염려했던 거죠. 그래서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간 겁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므비보셋을 데려옵니다. 
9:5 '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로드발은 아주 시골 외딴 곳입니다. 
므비보셋은 사실 거기에 숨어서 은거해 있었던 것입니다.
시바나 므비보셋 자신이나, 그게 오히려 생명 부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겠죠.  

그리고 다윗은 사울 왕의 토지를 모두 므비보셋에게 돌려줍니다. 9:7, 9
그리고 므비보셋을 왕궁으로 데려와 다윗의 식탁에서 함께 먹게 합니다. 

 

이것을 므비보셋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볼모로 잡았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그런 측면도 있을 것입니다. 신하들은 마음이 다르니까요. 

그러나 그보다는 사랑하는 친구의 아들이 
장애인으로서 홀대 당하지 않고 왕궁에서 최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다윗의 배려가 더 컸다고 생각됩니다. 

사울과의 관계가 좋았을 때, 다윗은 사울 왕의 식탁에 
요나단과 나란히 앉아서 함께 먹었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므비보셋과 한 식탁에서 먹으며, 요나단을 기억했을 것입니다. 
9:6절에서 사람들이 므비보셋을 다윗에게 데려왔을 때 다윗이 그에게 묻습니다. 
'네가 므비보셋이냐?' 

그 순간 다윗의 뇌리에는, 요나단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겠지요. 
요나단과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 함께 싸웠던 전투들, 
격의없이 즐겁게 지냈던 시간들, 
그리고 사울의 위협을 피해 메마른 광야를 전전하던 시절, 
요나단의 도움으로 죽음의 위기를 모면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올랐을 것입니다. 
'친구 요나단이여, 내가 이제야 자네와의 약속을 지키게 되는군요!' 

아마도 다윗은 이렇게 속으로 되뇌이며 
자신 앞에 엎드린 므비보셋의 얼굴에서 
친구의 모습을 찾기 위해 유심히 살폈을 것입니다. 

울컥하며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므비보셋을 받아들인 것은 
단지 우정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왕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았기에 
사울 왕가의 자손인 므비보셋을 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친구의 아들로 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설교의 주제         

그가 비록 위협의 요소가 될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사람과도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9장의 삽입 목적?

본문 삼하9:9절 이하를 보면, 다윗은 시바를 불러서 
므비보셋에게 돌려준 모든 토지를 관리하게 합니다. 

시바에게는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명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시바의 집에 모든 사람은, 므비보셋의 종이 됩니다. 


다윗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고 
자신이 여기에 오기까지, 그를 위해 수고한 많은 사람들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다윗은 그 은혜가 아니고서는 
자신의 결코 이 자리에 올 수 없었음을 잘 알고 있었고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가 여기에 오기까지 
나를 위해 존재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수고의 땀을 흘리고, 자신의 권리를 양보하기도 하고 
자기 소유를 내주기도 하고, 나의 잘못을 용서하기도 하고, 
나를 지켜주기도 하고, 나를 칭찬하고 격려해 주기도 했으며 
나를 위해 기도하기도 했습니다. 

그 은혜로 인해, 오늘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을 사용 하셨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 사람들은, 나를 지으시는 하나님의 창조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머니의 몸을 통해 태어나게 하시고 
부모를 통해 양육받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어른이 되고 
이 사회에 생존하여 주님 나라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또 우리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며 살아갑니다. 
부모가 되고, 선생이 되고, 친구가 되고, 배우자가 되고, 
동지가 되고,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사람이 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되며, 그 사람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빚어가십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며 보답하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사람들이 됩시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드러납니다. 
나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다윗처럼)
우리는 우리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가 나를 배신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가 나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그 사람에게 진실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창조의 협력자가 되어, 은혜로 살아가는 교우들에게 
다윗을 바라보는 요나단의 기쁨, 
그리고 요나단의 자녀들을 돌보는 다윗의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드리겠습니다. 
..............................................

주1) 삼상23:14~15절의
개역개정은, 새번역 본문과 다릅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구두점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뜻이 아주 달라집니다. 
마침표를 어디에 찍느냐, 쉼표를 찍느냐, 마침표를 찍느냐에 따라 
뜻이 전혀 달라집니다. 

개역개정판은 15절부터 새 문장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새번역은 15절 전반부를 14절과 연결하고 
15절 후반부에서 새 문단이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그렇게 문단을 나누면, 뜻이 많이 달라집니다. 

개역개정판이 더 일반적인 번역입니다. 
그리고 영어 성경들을 보더라도, 개역개정판에 가까운 번역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새번역의 해석도 충분히 가능한 해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