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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1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4. 25. 20:50

◈삼하11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해가 돌아와서 왕들의 출전 때가 되매' 
여기서 '해가 돌아서'란 말은 유대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1월(아빕월). 곧 태양력으로 3, 4월이 다시 돌아왔음을 의미한다. 
때문에 Living Bible은 이를 '다음해 봄이 되어'(in the spring of the following year)로 번역하고 있다. 
한편 팔레스틴에서 겨울은 우기(雨期)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쟁의 시기가 아니나, 봄은 건기(乾期)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쟁에 적합한 시기이다. 
따라서 지난번 암몬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대는 승기(勝機)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계절 문제로 회군하였으나, 이제 다시 건기인 봄이 돌아와 제 2차 출정이 가능해진 것이다(10:14 주석 참조). 

'암몬 자손을 멸하고 에워쌌고' 10:6-14의 랍바 전투에 이어 랍바 제 2전투가 재개된 것을 가리킨다. 이 전세(戰勢)는 이스라엘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여, 이제 적의 수도인 랍바 성 함락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12:27-31).

'랍바' '큰 성'이란 뜻으로 암몬 족속의 수도이다(10:3 주석 참조). 얍복 강, 곧 현재의 와디 암만(Wady Amman)의 상류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데, 요단 강에서부터 동쪽으로 약 37Km정도 떨어진 지점이다. 
한편 이 도시는 두 견고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첫째는 물들의 성이다(12:27). 즉, 이 성은 이 도시에 물을 공급해 주는 큰 수원지(水源池)를 지키던 성이다. 
다음으로 둘째는 왕성(王城)이다(12:26). 이는 와디 암만의 북쪽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고원 지대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매우 가파른 곳으로서 그야말로 난공 불락의 요새를 이루었다. 한편 이같은 랍바(Rabbah)는 오늘날 요르단의 수도가 되어 있는데, 곧 현재의 암만(Amman)이다.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저녁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다윗이 낮잠을 자고 일어난 사실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물론 이러한 낮잠은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풍습이긴 하였다. 그러나 국가적으로 초긴장 상태에 있던 당시의 상황으로는 용납하기 힘든 자세이다. 즉 다윗은 낮잠을 잘 것이 아니라 쉬지 말고 기도하여야 마땅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 다윗은 영적으로 나태한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나태하고 게으른 자의 낮잠은 비극을 부르기 마련이다(4:5, 6). 한편, 여기서 '저녁때'는 늦은 오후를 의미한다(삼상30:17). 랑게는 대략 이때를 오후 3시경부터 해가 완전히 어두워진 때까지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잠에서 깬 다윗이 저녁녘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즐기기 위해 지붕 위를 산책한 것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는 다윗의 일상적인 습관이었을 것이다.

'그 곳에서 보니' 당시 다윗 궁은 높은 시온 산에 위치하고 있었으므로 그 인근 주민의 집 안마당을 잘 내려다 볼 수 있었다. 5:7 주석 참조.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혹자는 밧세바의 이러한 목욕 행위가 다윗 왕을 유혹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은 고대 근동 지방에서의 주거 형태를 살펴볼 때 지나친 억측이다. 왜냐하면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집 안마당의 우물에서 목욕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그럴 경우 지붕 위에서 이웃집을 내려다 보는 행위는 금기 사항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윗 왕의 간음 사건(3, 4절)은 밧세바의 유혹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한 다윗 자신의 범죄 행위였음을 알 수 있다.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다윗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다윗이 점점 더 악의 구렁텅이로 빠지고 있음을 역력히 증거해 주는 구절이다. 즉 처음에 시각적으로 미혹받은 다윗(2절)은 자제력을 상실한 채 밧세바의 신분을 알아보았으며, 마침내는 정욕에 굴복하여 간음을 자행하고 만 것이다(4절). 이는 곧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리라"(약 1:15)는 말씀에 가장 부합되는 경우인 바 '악의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함'(살전 5:22)을 절감(切感)케 해준다.

'엘리암의 딸이요' 같은 내용의 기록인 대상 3:5에서는 '암미엘의 딸'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엘리암(Eliam)과 암미엘(Ammiel)은 모두 '하나님'이란 뜻의 '엘'과 '백성'이란 뜻의 '암'이 합성된 칭호로서, 의미상 큰 차이는 없다. 즉 이는 모두 '하나님은 동족이심'이란 뜻으로 결국 같은 이름인 것이다. 
한편, 23:34절에서 엘리암은 아히도벨의 아들로 소개되었는데, 아히도벨은 한때 다윗의 모사로 중용(重用)되었다가 압살롬의 난 때에 다윗을 배반한 자의 이름과 똑같다(15:12, 16:20-23). 따라서 혹자는 이둘을 동일 인물로 보고 밧세바의 조부(祖父)인 아히도벨이 본장에 기록된 다윗 와의 파렴치한 행동 때문에 훗날 압살롬의 난에서 다윗을 배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밧세바의 조부인 아히도벨과 다윗의 모사(謀士)인 아히도벨이 동일 인물임이 분명하다면 이 같은 주장은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헷 사람 우리아' 그는 다윗의 삼십 칠 인 용사들 중 하나였다(23:39). 그의 이름 우리아(Uriah)는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뜻으로, 우리는 그의 이름 가운데서 그가 비록 이방인인 헷족속이긴 하나 여호와의 종교로 개종한 신앙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헷 족속(Hittites)은 원래 가나안의 둘째 아들인 헷의 후손으로(창10:15)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이전부터 팔레스틴에 거주하던 가나안 후기 원주민이다.

4 다윗이 전령을 보래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여 그 여자와 동침하고 그가 그 여자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다윗이 데려오게 하고' 다윗의 이러한 행위는 한 가정과 하나님의 율법을 파괴하는 행동으로서, 극형인 사형(死刑)에 해당하는 범죄였다(출 20:17, 레 20:10). 따라서 다윗이 이처럼 자신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크게 어기는 죄였임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의 속에서 일어나는 정욕을 다스리지 못하므로 결국 이렇게 엄청난 죄를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다(약1:15, 렘5:8). 
한편, 혹자들은 다윗 왕이 이러한 죄를 쉽게 저지를 수 있었던 하나의 원인으로 밧세바의 방조(幇助)를 지적한다. 즉, 본절에는 다윗의 범죄 행위에 대하여 밧세바가 반항했다고 하는 아무런 언급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건의 모든 책임은 다윗에게 있다 하더라도 한 남편의 아내(3절)로서 그녀의 태도만은 결코 면책(免責)받을 수없는 것이다.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히브리 성경의 원문에 따르면, 밧세바가 자신의 부정함을 깨끗케 한 일은 다윗과 동침한 후에 행한 것으로 나와있다. 따라서 본절의 정확한 번역은 '저가 그녀와 동침한 후 그녀는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다'이다(RSV. NIV, NASB, Jerusalem Bible). (*KJV는 개역과 같이 번역)
한편 여기서 밧세바가 '그 부정함을 깨끗케 하였다'는 말은 남녀가 서로 동침한 후에는 그 몸을 씻도록 되어 있는 하나님의 율례를 그대로 지킨 것을 의미한다(레 15:18). 
이로 보아 밧세바는 다윗과 간음하고서도 그에 대한 참된 회개는 결여한 채 의식적(儀式的)정결에만 신경을 썼던 것 같다.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여인이 잉태하매' 마침내 다윗이 뿌린 죄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이처럼 인간이 범한 죄는 자생력과 번식력이 강하여 반드시 그 열매를 맺고 만다. 따라서 범죄한 인간마다 그 결과로 인하여 육체적 , 정신적 고통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윗에게 고하여' 하나님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는 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야만 했다(레 20:10). 따라서 우리아는 이 율법의 규정에 따라 자기 아내를 돌로 쳐서 죽일 것이 틀림 없다. 그러므로 이에 겁이 난 밧세바는 왕의 해결책을 기대하며 그에게 자신이 잉태한 사실을 알렸던 것이다.

6 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밧세바가 잉태한 자신의 아이를 마치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꾸미기 위한 다윗의 간계(奸計)의 첫 단계이다. 즉 다윗은 우리아와 밧세바를 동침케 함으로서 밧세바의 잉태가 우리아로 말미암은 것처럼 위장하려고 전쟁터에 나가 있던 우리아를 급히 소환한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에 급급한 다윗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떠났음을 시사해 준다.

7 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의 어떠한 것을 묻고 

'다윗이 어떠한 것을 묻고' 자신의 속사정을 위장하기 위한 다윗의 거짓된 물음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점점 더 죄악을 쌓고 있음을 보게 된다. 즉 처음에 탐욕죄(출 20:17)로부터 시작하여 간음죄(출 20:14)를 범한 그는, 이제 그 죄를 은폐하기 위하여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죄(출 20:16)를 또하나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8 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발을 씻으라' 이는 히브리인의 관용적 표현으로 '휴식을 취하라'는 말이다. 즉, 사막 지역인 팔레스틴 지방에서는 하루의 일이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무엇보다 먼저 발을 씻고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창 18:4, 눅 7:44). 그렇지만 여기서 다윗 와의 이러한 배려는 우리아로 하여금 밧세바와 동침케 하려는 간교한 음모에 다름 아니다. 

9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 

'왕궁 문에서 잔지라' 여기서 '왕궁문'이란 보다 구체적으로 얘기해 왕궁 문을 지키던 시위병들이 거처하던 숙소(왕상 14:27, 28)를 의미한다. 즉 우리아는 다윗 왕의 호의를 사양하고 왕궁의 시위병들과 함께 밤을 지새운 것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와 같이 행한 이유는 아마 그의 충성심에서였을 것이다. 즉 그는 자기 혼자서만 집에서 편안히 쉬는 것을 사양할 정도로 자기 직무에 대한 충성심으로 불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다윗과의 대화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11절). 한편 혹자는 이리하여 왕궁 시위병들과 함께 잠을 잔 우리아는, 그들로부터 밧세바가 다윗의 총애를 받고 궁전에 출입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는 우리아가 결국 밧세바의 부정(不貞)을 알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다윗에 대한 우리아의 계속된 이러한 주장은 단지 있음직한 추측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0 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혹이 다윗에게 고하여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사람을 시켜 우리아를 미행케 했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아니면 다윗의 선물을 우리아의 집에 배달해 주었던 자(8절)가 우리아의 부재(不在)사실을 확인하고 다윗에게 일러주었을런지도 모른다.

11 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언약궤 영채 가운데 유하고 내가 어찌 자리이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전쟁이 곧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라는 의미에서 종종 언약궤를 동뱐하여 전쟁터에 나아갔다(민10:35, 36, 14:44, 수 3:6). 따라서 우리아의 이와 같은 진술은 '하나님께서도 현재 싸우고 계시거늘 어찌 나같은 존재가 편히 쉴 수 있겠습니까'라는 뜻의 말이다. 아마도 우리아의 이러한 충성된 대답은 평소에는 다윗 왕을 충분히 감동시키고도 남을만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범죄한 다윗에게는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지금 다윗에게 있어서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은폐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 주 요압과 신복들이 바깥 들에 유진하였거늘' 이는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신앙심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상관에 대한 우리아의 충성심과 동료에 대한 사랑, 따스한 인간애가 담겨있는 진솔(眞率)한 말이다. 따라서 다윗은 이러한 말을 듣는 중에도 양심에 가책을 받고 회개할 수 있어야 했다. 즉 자신이 우리아와 같은 충직한 신하의 아내를 탐한 것이 얼마나 괴악한 죄악인지를 깨닫고 이제라도 그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회개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죄에 사로잡혀 올바른 판단력을 상실한 다윗은 그러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우리아와 밧세바를 동침시키려는 계락이 수포로 돌아가자 급기야 그토록 충성스런 우리아를 살해까지 하고 만다(12-25절). 이는 기어이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 오고야 마는 죄의 특성(약 1:15)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나이다' 여기서 '왕의 사심'과 '왕의 혼의 사심'은 사실 다윗의 전인격과 존재를 가리키는 동일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아가 이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여 맹세한 것은 자신의 굳은 결심을 다윗 왕에게 확고하게 보이고자 함이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여기서 우리아가 '여호와의 사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않고 '왕의 사심'으로 맹세한 것은 그당시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다. 즉 히브리인들은 대개 자신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에게는 '여호와의 사심'이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 했으나(4:9, 12:5, 삿 8:19, 룻 3:13, 삼상 14:39, 왕하 2:2, 6), 자신과 동등한 계층이나 자신보다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의 이름으로 맹세하였던 것이다(삼상2:26, 17:55, 20:3, 왕하2:2, 4, 6, 4:30).

12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오늘도 여기 있으라 이튿날' 본절로부터 14절을 읽어 보면, 다윗이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한 본절의 약속을 어기고 우리아를 하루 더 묵게 한 것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하반부에 언급된 '이튿날'에 다윗이 우리아를 궁정으로 불러들여 저녁까지 술에 취하게 하는 장면(13절)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우리아를 되돌려 보낸 것처럼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14절). 
그러나 실상 13절의 기록은 본절의 '그 날에 예루살렘에 유하니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다. 그리고 14절은 본절의 '이튿날'에 있은 일에 대한 설명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한 사건을 기술함에 있어서 중복적(重複的)인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즉, 그들은 처음 구절에서는 한사건에 대해 간결히 진술한 다음 구절에서 그 사건을 보다 상세히 기술하는 점진적, 중복적 표현법을 즐겨 사용하였다(4:7 주석 참조). 
결론적으로 다시 한번 언급하자면13, 14절은 본절의 간결한 기술에 대한 보다 상세한 설명 구절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사실을 좀더 명확히 이해하려면 본절의 '이튿날'이란 말 다음에 '우리아가 예루살렘을 떠나 전쟁터로 되돌아가니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13 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 

'취하게 하니' 다윗이 사람의 정신을 혼란케 하고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술의 힘을 빌어 우리아의 성적(性的) 충동을 유발시키려 한 것을 가리킨다. 이는 자신의 악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다윗의 비열한 행동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금껏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양심과 고결함을 잃지 않았던 다윗(1:14-16, 4:5-12, 6:21, 삼상24:4-7, 26:6-12) 조차도 순간적으로 가장 비열하게 만드는 죄의 놀라운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

14 아침이 되매 다윗이 편지를 써서 우리아의 손에 들려 요압에게 보내니 

'다윗이 편지를 우리아의 손에 부쳐' 우리아는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는 편지(15절)를 자신이 배달하리라고는 전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바로 이같은 사실을 역이용, 우리아를 죽이는 도구를 이용하였다. 이는 사전에 치밀히 계산하지 아니하고서는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는 교묘함이었다. 따라서 바로 여기에 다윗의 배가(倍加)된 가증스러움과 사악함이 담겨 있는 것이다.

15 그 편지에 써서 이르기를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 하였더라 

'너희가 우리아를 죽게 하라' 우리아는 다윗의 37인 용사 중 한 사람이었다(23:39). 따라서 그가 일단 싸움에 임하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다윗은 바로 이런 점을 이용하여 우리아를 전쟁의 선봉장(先鋒將)이 되게 하여 전사(戰死)당하도록 꾀하였던 것이다. 
아무튼 다윗은 일단 우리아를 제거하기만 하면 자신의 부정 행위(4절)가 영원히 감추어지고, 또한 밧세바까지도 자신의 아내로 삼을 수 있을 것(27절)이라는 생각 하에 이같은 죄악을 저질렀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악을 반드시 적발해 내시므로(합 1:13) 다윗의 죄악 역시 결국 낱낱이 드러나고 말지 않았는가(12:1-23)!

16 요압이 그 성을 살펴 용사들이 있는 것을 아는 그 곳에 우리아를 두니 

17 그 성 사람들이 나와서 요압과 더불어 싸울 때에 다윗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다윗의 신복 중 몇 사람이 엎드러지고' 여기서 '다윗의 신복'이란 다윗의 군사 고문들을 의미한다(1절 주석 참조). 따라서 이들의 죽음은 이스라엘 군의 막대한 손실이었다. 즉 우리아 한 사람을 죽이려던 다윗은 자신의 불의의 계략으로 말미암아 결국 유능한 많은 신하들을 잃고 만 것이다.

'헷 사람 우리아도 죽으니라' 요압의 맹목적인 순종으로 말미암은 비극이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요압의 비정함을 볼 수 있다. 즉, 우리아는 다윗의 서른 일곱 용사 중 한 명이며 요압의 직속 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은 우리아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이 오직 권력에 아부하는 자세로 다윗의 명령만을 준행했던 것이다. 사실, 만일에 요압에게 진정한 충성심과 또한 부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더라면 그는 일의 자초지종을 알아본 후 최소한 아무런 죄없는 우리아를 위해 다윗에게 탄원 정도는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압은 하나님의 공의보다는 자기의 출세를 위해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였으며(10:12),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는 현실 타협적 행동을 한 것이다.

18 요압이 사람을 보내 그 전쟁의 모든 일을 다윗에게 보고할새 
19 그 전령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전쟁의 모든 일을 네가 왕께 보고하기를 마친 후에 

'요압이 그 사자에게 명하여 가로되' 요압은 다윗에게 전쟁의 결과를 보고할 사자(使者)을 불러 전에 없던 특별한 명령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번 전쟁에서 예상 외로 많은 손실을 보았기 때문이다(17절). 즉 이로 인해 왕의 문책을 두려워한 요압(20절)은 이번의 패배를 무마시키는 방편으로 우리아의 죽음을 보고하도록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21절).

20 혹시 왕이 노하여 네게 말씀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에 그처럼 가까이 가서 싸웠느냐 그들이 성 위에서 쏠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 
21 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죽인 자가 누구냐 여인 하나가 성에서 맷돌 위짝을 그 위에 던지매 그가 데벳스에서 죽지 아니하였느냐 어찌하여 성에 가까이 갔더냐 하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라 

'여룹벳세' 이는 기드온(Gideon)의 별명이다. 본래 기드온의 별명은 여룹바알(Jerubbaal)이었으나(삿 8:35), 후대에 '바알'이란 명칭이 이방신의 이름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미움을 받아 그것이 베셋(besheth)으로 바뀌어진 것이다. 2:8 주석 참조.

'아비멜렉' 기드온이 세겜의 첩을 통해 낳은 이들이다(삿8:31). 그는 부친의 사후(死後) 자기 형제 70인을 모두 죽이고 므낫세 족속에 대한 모든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이에 반발한 세겜 사람들은 '가알'(Gaal)을 지도자로 하여 아비멜렉(Abimelech)을 대항하였으나, 아비멜렉은 오히려 그들을 물리치고 성을 헐며 세겜 망대에 있는 사람 천 명을 불살라 죽였다(삿 9:46-49). 그리고 이러한 여파를 몰아 아비멜렉은 데메스마저 치려 하였는데, 그때 도리어 한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맞아 죽었다(삿 9:50-57). 그러므로 아비멜렉의 이와같은 역사는 전쟁에 능한 다윗 왕과 요압 이외에도 많은 군지휘관들에게 전쟁에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 전술을 깨우쳐 주었을 것이다. 그것은 곧 수세(守勢)에 몰린 적의 성에 가까이 가는 것은 우발적인 죽음을 초래하기 쉬운 위험스런 일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군대 내에서도 이러한 역사는 다윗 뿐만 아니라 많은 지휘관들에게도 널리 읽혀지고 알려졌을 것이다(Lange).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 익숙해 있던 요압이 암몬의 랍바 성 근처에서 이스라엘의 귀중한 인재들을 많이 잃었다고 하는 사실은 다윗 왕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왕의 진노가 있을 것을 예상한 요압은 전령(傳令)에게 보고(報告) 내용을 특별히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아비멜렉의 역사를 요압이 언급한 사실에 대해 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서로 다른 역사들을 피력하고 있다. 즉 (1) 구전(口傳)으로 내려온 사사기의 역사가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라는 견해(Lange)와 (2) 아마도 사사기가 그 당시에 사람들에게 이미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그런데 사사기에 '여부스족(Jebusites)이 아직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삿1:21), 사사기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여부스족을 몰아내기(5:6-9) 이전에 기록되었음이 확실하다. 다라서 아비멜렉의 역사는 그 당시 이미 성문화(成文化)된 사사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이는 성 가까이에서 많은 인재를 잃은 요압(17절)이 자기의 실수를 무마시키기 위한 자구책(自救策)이었다. 즉, 이 말은 이번의 실수가 다윗 와의 명령(15절)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필연적인 불상사(不祥事)였다는 요압의 그럴듯한 해명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는 요압은 병법에 능한 자였으나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성 밑 가까이에 군대를 투입하였던 것이다(16절).

22 전령이 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요압이 그를 보낸 모든 일을 다윗에게 아뢰어 
23 이르되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우세하여 우리를 향하여 들로 나오므로 우리가 그들을 쳐서 성문 어귀까지 미쳤더니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승하여' 이는 수세(守勢)에 몰리고 있던 암몬 사람들 중 힘센 용사들(아네쉐 하일)이 랍바성을 포위하고 있던 이스라엘군 중 가장 취약한 지역을 골라 집중적으로 공격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곳은 요압이 의도적으로 우리아를 배치한 선진(先陣)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 우리아의 군사들은 성에서 후퇴하여 들로 나올 수 밖에 없었으며, 다른 진의 군사들의 지원을 받아 반격하여 다시금 성문 어귀까지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24 활 쏘는 자들이 성 위에서 왕의 부하들을 향하여 쏘매 왕의 부하 중 몇 사람이 죽고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하니 

'왕의 종 헷 사람 우리아도 죽었나이다' 여기서 우리아를 가리켜 '왕의 종'이라 함은 그가 다윗에게 마치 노예와 같이 헌신적으로 충성을 다한 신하였음(11절)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는 말이다. 그러나 아마도 다윗은 우리아의 전사(戰死)보고를 받고선 속으로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쾌재(快哉)를 불렀을 것이다. 즉 다윗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불의한 죄악을 감추려 한 계략(15절)이 마침내 성공을 거두자, 우리아가 자신의 충직한 신하였다는 사실은 전혀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아의 충성과 대비되는 다윗의 폭정(暴政), 배은(背恩) 행위가 아닐 수 없다.

25 다윗이 전령에게 이르되 너는 요압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이 일로 걱정하지 말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삼키느니라 그 성을 향하여 더욱 힘써 싸워 함락시키라 하여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하니라 

'칼은 이 사람이나 저 사람이나 죽이느니라' 신하들의 전사(戰死)소식에 대하여 다윗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장면이다.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반응은 평상시에 보여 주던 그의 자애로운 모습과는 완전히 대조적이다(1:12, 3:31, 32, 18:33). 이는 그가 우리아의 전사 소식을 듣고서도 쾌재를 감추기 위해 태연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다윗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웠던 신하들의 아까운 죽음(17, 24절) 보다도 자신의 은밀한 죄를 감추기 위해 오직 한 사람 우리아의 죽음 여부에만 온 관심을 쏟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자신의 한 번 실수(4절)로 말미암아 올바른 사고력과 판단력을 잃음은 물론 그 심령 또한 완전히 메말라 있는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다.

26 우리아의 아내는 그 남편 우리아가 죽었음을 듣고 그의 남편을 위하며 소리내어 우니라 

'우리아의 처' 이처럼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였음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1) 밧세바가 우리아의 아내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과 부정한 관계를 나누었음(4절)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2)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여인의 이름을 들먹이지 아니하던 히브리인들의 관습때문이다 (30 억울한 죽임을 당한 우리아에 대하여 조의(弔意)를 표하기 위함이다.

27 그 장례를 마치매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를 왕궁으로 데려오니 그가 그의 아내가 되어 그에게 아들을 낳으니라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더라 

'그 장사를 마치매 데려오니' 다윗왕은 우리아의 장례식을 마치자 곧바로 밧세바를 궁으로 데려왔다. 다윗의 이러한 처사는 밧세바의 임신을 백성들로부터 은폐시키기 위한 재빠른 행동이었음에 분명하다. 즉 다윗은 밧세바가 아이(5절)를 낳기 전에 얼른 궁으로 데려와 자신의 아내로 삼으려 한 것이다.

'저가 아들을 낳으니라' 이처럼 밧세바가 낳은 아들은 다윗과의 부정한 관계에서 출생한 죄악의 씨앗이다(4, 5절). 따라서 12장에 의거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죄악을 징치(懲治)하시는 차원에서 그 아이의 생명을 거두어 가심을 볼 수 있다. 한편 이 아이 외에도 밧세바는 이후 다윗에게서 네명의 아들을 더 낳았는데 곧 시므아, 소밥, 나단, 솔로몬이다(대상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