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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력을 장착하는 법

LNCK 2023. 4. 26. 10:46

추진력을 장착하는 법_ - YouTube

◈추진력을 장착하는 법                 창42:18~25

1981년에 12살된 한 한국인 소녀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하고 둘이서 미국 하와이로 이민을 갑니다. 

12 살의 나이로 학교를 불쑥 들어가고 나면 
우선 영어가 안 되지요.

그러니까 학교에서 얼마나 애가 차별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고 
그리고 어떤 인종차별까지 경험을 하면서 모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모멸감이.. 한국인의 특이한 오기로 발동을 해요. 
그리고 그 오기를 다시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가지고 
뉴욕대학의 정치학과 동아시아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국제법과 외교학 전문대학원>이 있거든요. 아주 유명한 곳인가 봐요. 터프츠대 플레처 스쿨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습니다. 
Fletcher School of Law and Diplomacy, Tufts University, MA

그러고 나서 이 한국 여성이, 미국에서 뭐 했는지 아십니까?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1기때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담당 국장을 역임합니다. 

그 전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두 번 집권을 했는데, 
부시 대통령 집권 2기 때, 마찬가지로 국가안전보장회의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담당 국장을 역임하게 됩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미 중앙정보국 CIA 에서
북한 문제 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콜롬비아 대학의 동아시아 웨더헤드 동아시아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주인공이 누구냐 하면 한국 이름으로 김수미 씨인데 
미국 명으로 수미 테리 라고 하는 여성이에요. 지금은 50대지요.

대단하지요.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하고 둘이 12살에 미국에 건너가서 
백악관에서 보좌관으로서 일을 하고, CIA에서도 활약을 하고, 
지금 또 유명한 콜롬비아 대학 Whetherhead 동아시아 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을 지내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이 이분이, 어느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어떻게 어려움을 뚫고 미국 사회 내에서 주류사회로 진입을 해가지고 
지도자로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느냐?' 라고 물으니까 

그때 이분이 얘기하는 것이 바로 3P 입니다. 
Passion, Persistence, Push  열정, 끈기, 추진력 세 가지를 얘기했어요.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3P의 원칙으로 
자기를 채찍질해야 된다.. 라는 것입니다. 대단해요. 

근데 사실 이 열정과 끈기.. 이게 다 추진력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겁니다. 
추진력이란, 목표를 향해서 밀고 나가는 힘입니다. 
그러니까 열정과 끈기가 없으면, 추진력이 생길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그 어렸을 때 미국 아이들로부터 받는 어떤 모멸감,
이걸 오기로 발전시키고 
그 오기를 다시 더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켜 
열정과 끈기와 추진력으로 바꿨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끊임없이 강력한 추진력으로 몰아간 거예요. 

그래서 뭐 30대 후반~40대 초반부터 벌써 백악관에 들어가서 
동아시아 지역을 담당하는 아주담당국장 으로서 활동을 한 것이지요. 

▲본문 창42장에, 요셉이 20년 만에 형들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심해서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까 
아버지 야곱이 형들을 애굽으로 보내서, 곡식을 사오게 하는데 
그 곡식을 주관하고 파는 사람의 우두머리가 요셉이니까 
자연스럽게 형들과 대면하게 됩니다. 

요셉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는 거예요. 
20년이면 좀 더 늙었겠지만 뭐 크게 달라진 게 있겠습니까? 

그리고 2년 정도 기근이 지난 뒤니까, 그 행색이 조금 남루했겠죠. 
오죽했으면 여기까지 왔겠어요. 먹을 게 다 떨어지고 
도무지 살 방법이 없으니까 애굽까지 왔겠죠. 

요셉은 히브리 말을 다 알아들으니까, 자기 형들이라는 거 단박에 알았겠죠.
그 형들 10 명이 자기 앞에 나타나서 곡식을 사려고 부탁을 할 때 
요셉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근데 요셉이 형들을 맨 처음에 딱 보자마자 뭘 생각하느냐 하면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42:9

요셉이 17 살 때, 자기가 꾸었던 꿈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마음속에 만감이 교차됐을 것입니다.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10 명은 누구냐면 
20 년 전에 도단에서, 양치던 형들이 자기를 팔아버리지 않습니까? 
자기를 팔아버렸던 그 현장에 있던 자들이, 다같이 모여 서 있는 거예요. 

그때 베냐민이 그 자리에 없었거든요. 
지금도 베냐민은 빠져있죠. 
그렇게 요셉하고 10 명의 형들이 함께 딱 한 자리에 모인 거죠. 

그런데 20년 만에 자기는 총리가 된 겁니다. 
왜 그 꿈을 생각하느냐 하면 
이 형들이 뭐라고 하면서 요셉을 팔았습니까? 

저기서 요셉이 자기들을 향해서 걸어오니까 
'꿈꾸는 자가 온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를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고 하자' 

그런 다음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37:20
이러면서 요셉을 팔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형들이 너무 너무 요셉만 편애하는 아버지를 원망하다가 
그 편애를 받는 요셉이, 이런 꿈들을 두 번이나 얘기하니까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동생에 대한 미움으로 발전해 버린 겁니다. 
방향을 바꿔버린 거에요. 

그리고 이 요셉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면서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유다의 설득을 통해서 
이스마엘 대상들에게 팔아가지고... 지금 여기까지 온 거 아닙니까. 

17 살 때 꾸었던 요셉의 꿈대로 이루어진 현실을, 요셉은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 이게 묘한 것이죠. 

형들은 그 꿈 때문에 증오심이 발동돼 가지고 
그 꿈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애썼고,  
혹시나 만에 하나라도 그 꿈이 이루어지면 안 되니까 
요셉을 아주 먼 나라로 종으로 팔아버렸는데 
결과적으로 팔아버렸기 때문에 그 꿈이 이루어졌다는 얘기입니다.

요셉과 수미 테리라고 하는 이 여성을 한번 비교를 해봐요. 
그 당시에 애굽이 요즘의 미국과 같죠.

-애굽 총리가 된 요셉,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의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담당국장 

그러니까 한반도 일본 오세아니아 쪽에 대통령이 정책을 세우려고 할 때는 
수미 테리와 의논을 한 거에요. 
애굽전역을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요셉을 앉힌 것과 비슷하죠. 
물론 직위 차이가 좀 다르긴 하지만요.

두 사람 다 대단해요. 
그럼 어떻게 그 자리에 올라갔느냐? 

이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자기가 말한 대로 
열정과 끈기와 추진력이 발동된 거죠. passion, persistence, Push

그것이 발동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에 차별 대우와 
영어를 못함으로써 느껴지는 모멸감, 이것이 오기로 발전하고 
그 오기가 잘 승화되어 가지고.. 열정, 끈기, 추진력이란 에너지로 발전을 한 겁니다. 

그러면 요셉의 성장 동력은 뭘까요?  *문제 제기 

수미 테리가 미국에서 오른 그 자리와 
요셉이 애굽에서 오른 자리를 비교하면 
그 자리 자체만으로는 비교가 안 돼요. 

수미 테리가 그 자리까지 오른 자리가, 6백 마력 슈퍼카의 추진력이라고 하면 
요셉이 총리에 오른 것은, 자리만 놓고 볼 때는 
600마력 슈퍼카가 아니라, 점보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위해 이륙할 때의 추진력,
또는 대기권 밖의 우주선을 쏴올리는 추진력에 비교되겠지요.

근데 요셉에게서는.. 열정, 끈기, 추진력.. 이런 게 나타나는 게 보이질 않습니다. 
열정? 요셉에게 무슨 목표를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까?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지는 바, 요셉에게는 목표나 열정이 없었어요.

어떤 목표를 향한 것이기에, 요셉이 끈기를 갖고 일을 추진했습니까? 
어떤 목표를 향해 요셉이 이런 불굴의 끈기와 열정을 갖고 추진해 나갔던가요?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근데 수미 테리가 열정과 끈기와 추진력으로 자가발전한 그 에너지들을 가지고 
마침내 도착한 그 자리와는.. 요셉이 오른 자리가,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요셉은 그 총리의 자리에 오르기만 한 게 아니라 
오르기만 한 것은 또 혹시 그럴 수 있다고 쳐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계시니까요. 

우리나라 말에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 못한다' 는 말이 있죠. 
그런데 요셉은 이집트 전역과, 근동지역 전역에 
7년 대 기근을 혼자의 지혜로 담당해 냅니다. 다 구제를 해냅니다. 

그 총리의 자리에 오른 것만 아니라  
총리의 역할까지 아주 훌륭하게 수행했다는 거죠.

도대체 이런 추진력은, 어떻게 요셉에게 장착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수미 테리.. 대단한 여성이에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 이런 길을 가기를 원해요. 

근데 하나님의 자녀는, 이런 식으로 생의 추진력을 장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12 살짜리 한국 소녀가, 엄마 하고 둘이 이민가서
백악관의 그러한 직위에 올랐는가?... 거기서 작용하는 추진력과 

요셉이 히브리 족속의 아들로서 
미국 같은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는데 까지 가는 그 추진력은... 살펴보면

도대체 이 요셉의 추진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수미 테리처럼 요셉도 모멸감을 받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오기를 발동한 것인가요?
'아이 씨, 내가 못 할거 뭐 있어? 나를 우습게 봤지?' 
요셉이 이런 오기로 생의 추진력을 삼은 건가요?

세상 사람들은, 거기서 추진력을 얻지요. 연속극 같은데 보면,
회사에서나, 시댁에서나
신입사원이나 며느리가 무시를 당하면, 
자기 안에 잠재되어 있던 에너지가 발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에너지가 나타나고, 에너지가 불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오기로 발전을 해요. 

그래서 수미 테리를 우습게 봤던 백인이나 미국 아이들이 
아무도 백악관에 못 들어갈 때 
수미 테리는 들어갔잖아요. 본 때를 보여준 거죠.
거기서 어떤 굉장한 추진력이 나온 거에요. 

그래서 사람이 어떤 증오심을 갖거나, 그 외에도 분노나 모멸감을 느낄 때 
좌절하지 않고, 굳건하고 용감하게 맞대응 해 나갈 때 
이때 보통 사람이 가지지 못하는 강한 추진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열정이 생길 수 있고, 끈기가 생길 수 있고, 그리고 추진력이 생깁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안 한 거에요. 
그런 것으로만 말할 것 같으면 요셉이 느끼는 모멸감과 분노와 억울함은 
수미 테리가 느낀 것과 비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배반을 당해서 인신매매로 팔려갔어요. 노예로 삽니다. 
사랑받던 아들이 갑자기 노예로 전락을 해버립니다. 

자, 요셉은 어떻게 한 겁니까? 
그 형들의 미움의 에너지, 증오의 에너지가 자기 삶에 뚫고 들어왔을 때 

씨름선수가 서로 샅바를 맞잡고 씨름하듯이 
요셉은 그 미움과 증오의 에너지를 맞잡고 씨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요셉의 에너지는 어디에다 투여하냐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자기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들려주는 음성을 듣고 
지금 할 일(사명)을 찾느라고... 자기 모든 신경을 거기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꿈도 해석을 했던 거고 
그래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가지고 총리까지 된 겁니다. 

끊임없이 지금 현재 내가 할 일에 대해서, 내가 알아야 될 것에 대해서 
지금 살아계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는 겁니다. 
자기 온 힘을 거기에다 다 쓴 겁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돼요? 
요셉의 생애를 뚫고 들어온 형들의 미움 에너지가 
잉여 에너지가 되어 버립니다. 

누가 나를 미워하면, 그 미워하는 게 에너지 거든요. 
그래서 그 미워하는 에너지가 나를 뚫고 들어와서 내게 닿으면 
그 에너지를 붙잡고 
내가 또 그를 미워할 때, 억울해하고 분해할 때... 이게 씨름이 되는 겁니다. 
그의 미움 에너지와, 나의 미움 에너지가 서로 싸우는 씨름이 되는 거죠.

거기선 나의 에너지가 발동이 되고 
/내가 저 사람을 이겨야지' 라고 하는 결심에 의해서 
추진력도 생길 수도 있고 그래요. 

근데 요셉은 형들 10 명의 미움 에너지가 들어왔을 때 
그 에너지를 맞대응해 싸우지 않고, 
대신에 하늘을 붙잡습니다. 하나님께로 마음을 돌려버립니다. 

억울하다는 느낌에 빠져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지금 노예로 팔려있는 이 보디발의 집에서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좋아하실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통의 대상자로 생각하고 
온 마음과 에너지를 거기에다 다 쏟습니다. 

그러니까 요셉의 생에 뚫고 들어왔던 형들의 '미움 에너지'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요셉이 받는 잉여분이 되는 거예요. 요셉이 에너지를 비축하게 되는 거죠.

나를 미워하면서 내 생애에 뚫고 들어온 모든 '미움 에너지'들을.. 
내가 그걸 붙잡고 상대하고 씨름하지 않을 때 
내가 붙잡고 씨름해버리면 다 타버린 거에요, 
나도 타버리고, 그것도 타버리고... 

그러니까 원수가 생길 때, 원수와 마음으로 미워하고 씨름하면서 
내가 소진돼 버려요. 

그렇게 나를 태워가면서 나의 에너지를 자가발전하면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끝이 어떤가는 두고 봐야 돼요. 
잘못 되라고 악담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허무해집니다. 
'그게 별거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와요. 

내 안의 것이 다 소진돼 버렸어요. 공허할 때가 옵니다.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그 외부로부터 내 인생에 들어오는 모든 에너지를 받을 때, 
이 땅 위에서 주어진 에너지와 맞대응하지 않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려버립니다. 

그러니까 땅에서부터 내 인생으로 뚫고 들어오는 모든 에너지가 
잉여 에너지가 되면서 
그 에너지가 추진력으로 발동되는데 
이거는 수퍼카의 추진력이 아니라 로켓의 추진력으로 돼버립니다. 

노예로 팔린 히브리 부족의 아들이 
어떻게 애굽의 바로 왕의 모든 권한을 대행하는
그 바로의 인장반지를 끼워주잖아요. 
이게 바로 요셉이 장착한 추진력의 실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예요. 

어떻게 갈릴리 나사렛의 한 목수 청년이 인류를 구원하십니까? 
가룟유다가 있었어요. 내버려 둡니다. 상대하지 않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칩니다. 
상대하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재판합니다. 상대하지 않습니다. 
억울하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오직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데로만 가겠다는 결심을 하시고 
예수님께서 그 길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만큼 미워했던 그 모든 에너지가 
잉여(남는)에너지가 되면서 
예수님이 맞붙잡고 싸우는 에너지가 아니라  
모든 에너지를 총 동원해서, 로켓의 추진력으로, 인류를 구원하시는거에요. 

이게 꼭 미움같은 것만 그런 에너지가 되는게 아니고, 
우리 삶에서 느끼는 모든 중압감, 무게감... 이게 다 에너지에요. 

'먹고 살아야 되는데.. 돈 벌어야 되는데.. 자식 키워야 되는데..'  
이 모든 중압감을 지금 우리가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가 소모되고 소진되는 거에요. 

그 소진되고 남은 추진력이라고 해봐야 너무 보잘 것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까 조금 추진해 나가다가도 곧 힘이 빠지니까 그냥 끝나버려요. 

그러나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 만한 자가 없으나 
천국에서는 아무리 못한 자도 세례보다 낫다'는 주님의 말씀처럼 

성도가 누굽니까? 
십자가를 통해서 이 삶의 중압감이 에너지로 내 인생을 뚫고 들어올 때 
-너 직장 구해야 돼 
-너 결혼생활 잘 해야 돼 
-너 아이 잘 키워야 돼 
-너 건강 보살펴야 돼 
이 모든 게 중압감으로 에너지로 작용할 때 
그걸 맞붙잡고 싸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성도는, 자기 마음을 하늘에 있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들입니다. 
그 길을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주님께서 열어 놓으신 거에요. 

그러므로 십자가의 자리는 어떤 자리냐? 
어마어마한 상상도 못하는 우리 인생의 추진력이 장착되는 자리입니다. 

모든 이 세상에서의 중압감이 나를 내리누를 때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걸 맞붙잡고 씨름하려고 애를 쓰고 있을 때 
오기를 발동하고, 억울함에 호소하고, 분을 내고, 증오하고, 
아니면 두려움에 쫓겨서 그걸 붙잡고 씨름을 하던지 이럴 때 

우리는 십자가에서 내 모든 삶의 중압감에 대해서 죽어버리고 
내 마음이 그것들을 붙잡는 대신에 
내 마음이 하늘의 하나님을 붙잡는 겁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을 따라서!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그거에요. 
'주님 지금 내가 먹고 살아야 된다는 중압감이 제 마음에 느껴집니다. 
그러나 먼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 중압감에 대해 죽게 하시고  갈2:20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같이 부활해서 
승천하신 주님따라 하늘에 올라가 보좌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 안에서 
내 마음이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우리 기도가 이렇게 되어야 해요. 
중압감이 느껴질 때마다, 힘든 일이 느껴질 때마다, 
외부의 에너지가 나를 뚫고 들어와서 억누를 때마다 
그걸 막 붙잡고 싸우지 말고 
열정과 끈기와 추진력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어버리고, 
내 마음을 온전히 하나님께 돌리면 
나를 내리 누르는 모든 이 세상의 에너지가 
잉여에너지가 되면서... 

한마디로 폭탄은 땅에 떨어졌는데, 터지지 않은 폭탄이 되면서 
그게 하나님 손에 (또는 내 손에) 다시 장착될 때 어떻게 됩니까? 
다른 차원의 에너지가 나타나고, 내 인생에 추진력이 된다는 겁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것도 또 억울한 감정에 휩싸여서 억울함을 붙잡고 싸운게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을 드림으로 그 감옥에서도 형통했어요. 

그 감옥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내게 어떤 것을 하기 원하셔서 
지시하시는 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았던 거죠. 
그래서 감옥에서 총리 자리로 추진되어 간 거 아닙니까. 

지금 너무 내 인생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까? 맨날 십자가만 붙잡고 있어요?
그래도 추진되고 있는 중입니다. 뭔가가 추진되고 있는 중이에요. 
계속해서 내가 매일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상상도 할 수 없는 추진력이 여러분 생애에 장착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경직을 벗어난 놀이, 경직을 벗어난 신앙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가 말했다.
“놀이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요소이다.
이것은 인간의 신체 기능도 높이고(신체 건강에 좋고)
내적인 고통과 괴로움도 해소하는 중요한 도구이다.(정신 건강에도 좋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놀지 못한다.
삶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늘 경직되어 산다.

심지어는 놀아야 하는 시간에,
놀이 자체도 어떤 의무감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산책을 즐기는 것은 ‘놀이’다.
그런데 ‘나는 건강 때문에 산책을 해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을 갖다보니
몸에서 좋은 분비물(호르몬)이 나오지 않는다.
산책마저도 의무감에서 행하는 일(↔놀이)이 되어 버렸다.”

진정한 놀이의 핵심은 무엇인가?
계산은 모두 뒤로 하고, 힘을 빼고 몸과 마음이 자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책을 하면서도 자기 패션(옷맵시)에 신경 쓰고
주변을 의식하며 걸음걸이를 가져간다면(폼 잡기)... 경직된 것이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교회 봉사를 할 때에도, 너무 잘 하려다 보니 긴장하고 애를 과도하게 쓴다.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강요)하다보니 불필요하게 자꾸 부딪히게 된다.
그러다보니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면서 스스로 탈진하게 된다.

이때 혹시 자기가 가진 힘이나 지위가 높지 않아서
사람들이 자기를 안 따라 준다고 불만을 품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좀 더 힘을 길러야지, 두고 보자’는 엉뚱한 생각을 품기도 한다.

실상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잘 안 되는 것이다.
혈기, 공명심, 뭔가 보여주고서 우쭐해지고자 하는 마음...
이런 ‘힘’들을 다 빼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신앙이 성장한 사람은, 일단 자기 생각과 고집이 거의 사라진다.
물 흐르듯이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버린다.
일을 하지만, 자유함과 즐거움으로 수고한다...
일하는 주체는 주님이 되시고, 자기는 종으로 봉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