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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3장, 다윗 가문의 몰락이 시작되다

LNCK 2023. 4. 26. 16:35

◈삼상13장, 다윗 가문의 몰락이 시작되다         여러 설교 정리

*밧세바 사건으로 '다윗의 가문의 몰락'에 대한 나단의 예언이 주어졌는데,
본문은 실제로 다윗의 장남인 암논이, 이복동생 다말을 범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다윗의 실패가 다윗의 성공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교훈이다!

삼하12장에서 나단이, 밧세바 사건으로 다윗에게 이렇게 예언하죠.

12:11 '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그 예언 때문에 다윗은 늘 고민이 됐겠죠.
'내 집에서 일어날 재앙은 과연 무엇일까?' 
내 아내들을 데려다 대낮에 동침할 그 '이웃'이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계속 걱정하고 불안해 했을 거예요. 

여기서 '이웃'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 레아
'가까운 사람, 친한 사람' 그런 뜻이거든요. 
나중에 결국은 그가 압살롬으로 드러났죠. 그 외에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단의 예언대로) 다윗의 인생 후반부에 
사실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데 
하나님께서 '내가 다윗을 징계하겠다..' 라고 예언하시고 
그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다윗의 아들들에게 죄를 짓게 하시는 건 아니에요. 

예언하시고 '내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야 되겠다' 이래가지고 
다윗의 아들들(암논, 압살롬)에게 강팍한 마음을 집어넣으셔서 
고의로 죄를 짓게 하시는 게 아니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에게 죄를 짓도록 유도하지 않으십니다. 

▲이 단락은 중요한 내용인데, 오해가 없게 들으셔야 돼요. 

삼하10장까지만 하더라도 <왕으로서의 다윗> 이야기가 중심이었다면 
11장부터는 그 초점이 <죄인 다윗>으로 초점이 옮겨져요.

'밧세바 통간 사건'을 기점으로 해서
그 이전까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종 다윗 이야기를 서술했다면,
그 대표적 사건 중 하나가 골리앗을 무찌른 일이었죠.

그 후로는, 찌질하고 깨지고 못난 죄인 다윗 이야기를.. 성경은 풀어나갑니다.
유부녀와의 간통과 
충신을 살해하는 사건을 통해서 이미 시작이 되었어요. 

사람들은 어쩌면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보좌를 약속받는(삼하7장) 다윗에 환호할지 몰라요. 

그러면서 '나도 다윗처럼 살고 싶다. 내 자식도 다윗처럼 됐으면 좋겠다'
그래가지고 자녀의 이름을 데이빗 으로 짓는 부모도 많죠.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는 시각을 좀 교정해야 되는데,
어쩌면 그렇게 성공하는 다윗보다
실패하는 내리막 길의 다윗이.. 우리 죄인들에게는 더 어필 될 수 있어요.

이름 없는 한 목동이 왕이 되는 이야기가 얼마나 큰 감동이에요? 
그것도 정말 감동이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지만

오히려 그보다 더 큰 감동, 그보다 더 큰 감격, 또는 깨달음이
삼하11장부터 연속되는 '다윗의 실패' 속에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죄인이 구원받는 대표자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다윗!'
 
사실 우리는 다윗처럼 목동이 왕이 되기는 어려워요. 어쩌다 한 사람은 되겠죠.
그러나 우리는, 다윗같은 죄인이 구원 받기는.. 모든 사람에게 그 길이 열려 있죠.

그러므로 '다윗의 실패'의 모습과, 그 가운데서 구원받는 모습이
어쩌면 '왕이 된 다윗'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더 큰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오죠!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사무엘하 후반부를 보게 됩니다.

-한 인생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 성취되는 것도 참으로 감격이지만 
-그 사람이 죄로부터 구원받는 그 감격보다 더 크지는 않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나를 '죄로부터의 구원' 하시기 위함이죠.

그래서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렸던 그 감격보다,
사실 이 '죄로부터 구원되는 다윗' 이야기가,
훨씬 더 큰 스케일의, 훨씬 더 중요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다윗의 성공 이야기에 환호하고 '와~ 재밌다!' 이러다가 

삼하11장부터 다윗과 그의 집안이 무너지는 이야기에서 혹시 실망하셨다면, 
그럴 필요 없어요. 이것이 사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하나님의 메시지 거든요. 

살인, 강간, 반란 등으로 얼룩진...
아주 죄악으로 가득 차 버린 다윗과 다윗 집안의 이야기를 보면서 
우리는 눈살 찌푸릴 게 아니라 
그 죄악된 모습의 죄인으로 태어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 구원의 하나님을 발견해야 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말씀을 통해 주시는 사랑의 경고를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거예요. 

◑ <암논과 압살롬의 경쟁 구도, 갈등 관점>에서 풀어보는 '다말 이야기'
221113 사무엘하(10) 왕이 되려 한 사람들 (삼하 13:1-22) - YouTube

<사무엘하>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다윗입니다. 
다윗의 전임자인 사울 왕의 죽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무엘하는 다윗이 이스라엘을 왕으로 재임하던 시절에 일어난 일들을 주로 
서술하고 있어서, 책 전체가 거의 <다윗의 전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요. 

사무엘하에서 다윗 만큼은 아니지만 
매우 이례적으로 긴 지면을 차지하며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또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압살롬입니다.    *'평화의 아버지'란 뜻

압살롬이 다윗 왕에 대항하여 일으킨 반란에 관련된 기록이 
그 발단부터 종결까지 상세하게 삼하13~19장까지 무려 8장에 걸쳐 담겨있죠.

압살롬의 반란에 얽힌 이야기를, 역사책이나 사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반 사건, 또는 왕자의 난 정도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하에서 이 사건들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모범적으로 실천한 이스라엘 왕의 직무, 
곧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고 
왕은 그분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왕 되심을 온 나라의 실현하는 책임을 맡은 
존재라는 점과 관련 있습니다. 

사무엘서는 다윗을, 이런 왕의 직무에 충실했던 사람으로 보여 주죠. 
그것은 무엇보다도 다윗이 스스로 왕이 되려 하지 않는 모습에서 잘 드러나죠.

그는 사울이 하나님께 세움 받은 왕이기에 그를 존중했고 
다윗 자신이 왕으로 즉위하는 과정에서도 매우 신중했습니다. 

그러나 13장 이후에 등장하는 다윗의 아들들은 
스스로 왕이 되려 하며, 그로 인해 서로 갈등을 일으킵니다. 

다윗을 통해 비로소 바로 세워진 '하나님의 왕 되심'이 흔들리며 
이스라엘은 다윗의 아들들로 인해, 다시 수많은 이방 나라들과 다름없는 나라
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사무엘하>의 말씀을 읽어 보려고 하는데 
압살롬의 반란의 발단이 되는 한 사건을 서술하고 있는 
13장의 내용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삼하13장 본문에서 우리는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고 수치스럽게 내쫓아버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암논이 다말을 짝사랑 했습니다. 
2절을 보면, 암논은 다말이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 양반집 처녀들은 집안에만 머물게하고 
밖으로 내보내지를 않았죠. 

당시 이스라엘도 공주들은,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집밖을 다닐 수 없었죠.

그러니 암논이 다말을 자주 만날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암논이 다말에게 반하여 연모하면서도 
그녀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으니 
혼자 속앓이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고대사회에서 흔하게 일어날 법한 러브스토리도 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이후 사건은 매우 비극적이고 추악한 모습으로 전개됩니다. 

암논의 친구 가운데 요나답 이라는 교활한 인물이 있었습니다. 
암논이 혼자서 끙끙 앓고 있는 모습을 보고.. 요나답이 사유를 묻습니다. 
암논은 자기가 다말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요나답은 암논에게 다말을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암논은 병이든 것처럼 앓아눕고, 
아버지 다윗이 문병하러 오자 
다말을 보내서 자신을 간호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당시 공주의 출입은 철저히 아버지, 왕의 통제 하에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죠)

다윗은 다말에게 지시하여, 암논의 집에 가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게 합니다.
다말은 암논이 요구하는 대로, 그가 보는 앞에서 빵을 구워 대접합니다. 

그러나 암논은 다말을 억지로 침상으로 불러들여 겁탈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마음이 바뀌어, 그녀를 자기 집에서 내쫓아 버립니다. 

삼하13장에 담긴 이 장면은 너무 충격적이고 
무고한 희생자가 된 다말에 대한 감정이입이 강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이야기의 몰입하다 보면, 사무엘서 저자의 의도를 못 읽어 지나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사무엘서는 이 사건을 '암논과 다말 사이에 일어난 사건' 이기 전에 
"암논과 압살롬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서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3: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본문에 누구 이름이 가장 먼저 언급 되나요? 
'압살롬'입니다. 
다말보다 압살롬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오죠. 그 뒤에 다말이 소개됩니다. 

13장의 스토리가 '암논-다말의 사건'이 아니라,
'압살롬-암논 사이의 이야기'라는 큰 그림 속에서, 진행되는 사건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말하자면 '암논은, 압살롬의 여동생을 사랑했고 
압살롬의 여동생을 성폭행했다'는 이야기를 본문이 하고 있는 거죠.

삼하3:2~3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셋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암논이 다윗의 첫째 아들이고 
길르압이 둘째,
압살롬은 셋째 아들 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 길르압은 이후 성경역사에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일찍 죽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암논과 압살롬은 
왕위계승권 에서 각각 서열 1위 와 2위였죠. 

그런 점에서 암논과 압살롬의 갈등의 배경에는 
왕위계승을 두고 벌어지고 있었던, 두 왕자 사이에 알력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삼하13장에 나오는 모습에 비추어 볼 때 
암논은 단순하고 충동적인 사람으로 보입니다. 

다말을 연모하면서도 어찌할 줄 모르고 쩔쩔매는 것이나 
교활한 친구 요나답에게 휘둘리는 것이나 
다말을 범한 후에 비정하게 내쫓아버리는 것이나 
어느 모습으로 보아도, 그가 총명하고나 신중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암논보다는 오히려 압살롬이 
그 당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던 왕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삼하14:25~26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 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

이스라엘이나 한국이나 옛날 사람들은 '인물은 타고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타고 나는 조건들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가 외모 였습니다. 
왕이 될 사람은 '왕의 풍모를 타고난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압살롬은 암논보다 외모에서 더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서에 후반부의 내용들을 보면 
압살롬은 총명하고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암논의 성폭행 사건 후 절치부심하며 2년을 기다려 암논에게 복수합니다. 
그리고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자신에게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수년간 성문 앞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런 모습에서 압살롬의 신중함과 치밀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을 좋아했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 암논은 합법적인 왕위계승자 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울이 다윗을 시기했던 것처럼 
'압살롬을 시기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본문의 사건은 <암논과 압살롬의 왕위 계승권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사무엘서가 왜 이 대목에서 
이 내용을 이렇게 자세하게 서술하는지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다면, 다말과 혼인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지 않았을까요? 
그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겁탈 하려할 때, 다말이 만류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13:12~13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다말의 말에 비추어 볼 때, 다윗시대에는 근친결혼이 허용되었던 것 같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사랑한다면, 다윗에게 청하여, 
자기와 결혼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다말의 위 말은, 지금 처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말로 봅니다.
즉 다윗이 허락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 급하니까 그렇게 말한 것으로 보죠)

그렇게 하는 것이, 요나답의 꾀를 따라
무리한 방법으로 다말에게 욕을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그럴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다말이 압살롬의 여동생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게 전부는 아니더라도, 다말을 내쫓은 상당수 %의 이유가 압살롬 때문이었을 겁니다.

단순하고 충동적인 암논의 성격으로 볼 때
정적의 가족과 혼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겠지요. 

13: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암논은 다말을 범한 후에, 바로 마음이 돌변하여 그녀를 쫓아내 버립니다. 

그러자 16절에서 다말이 암논에게 애원합니다.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명예가 중요한 고대사회에서, 이 일은 씻을 수 없는 수치가 될 것이고 
그 일로 인해 다말은, 평생 죽음보다 더 괴로운 치욕을 당하며 살아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암논은 하인을 불러서 다말을 집밖으로 내쫓고 빗장을 질러버립니다. :17 
이에 다말은 머리에 재를 끼얹고 색동소매 긴 옷을 찢고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싼채 목놓아 울며 집으로 돌아옵니다. :19

암논이 다말에게 한 행동은, 사실은 압살롬에게 한 것이었습니다.
암논은 압살롬을 경쟁자로 여기고 시기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그의 여동생 다말에게 반하여, 그녀를 연모했습니다. 

감정이 이성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다말을 향한 욕망을 해소한 후에는 달라집니다. 

이제는 다말이 연모의 대상이 아니라, 압살롬의 여동생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자 압살롬을 향한 증오의 감정이 다시 그를 지배하여 
다말을 매정하고 잔인하게 내쫓아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암논은 그렇게 압살롬에게 수치를 안겨주어 
경쟁자 압살롬의 기선을 완전히 꺾어버리고 
왕위계승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견고하게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어찌보면 암논 이라는 인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치게 도를 넘은 행동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의 사람들은 명예를 중시했습니다. 
수치스럽게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면 고대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수치를 안기는 것은 
그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심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삼하10장에서 다윗이 암몬 왕 하눈에게 조문 사절단을 보냈을 때 
하눈은 사절단의 옷을 베어, 엉덩이가 드러나게 한 채로 돌려보냅니다. 
(고대 사회에 속옷을 입지 않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적에게나 하는 극단적인 모욕적 행위입니다. 
암논이 적에게 할 만한 치욕스러운 행동(즉 모욕)을 
자신의 핏줄인 압살롬의 여동생 다말에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암논이 압살롬을 전혀 형제로 생각지 않고 
오히려 정적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가능한 행동이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그런 수치를 씻고, 명예를 회복할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13:23절 이하를 보면, 그후 압살롬은 2년간 절치부심 하다가 
적절한 기회를 틈타 암몬을 보복 살해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압살롬의 반란으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 왕위계승을 두고, 다윗 왕의 아들 암논과 압살롬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이 초래한 한 사건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이렇게 "암놈과 압살롬의 이야기"로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본문은 압살롬보다, 다말의 모습을 서술하는데 
훨씬 더 많은 지면을 할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이야기를, 압살롬의 이야기보다는 
다말의 이야기로 읽게됩니다. 왜 그럴까요? 

역사를 읽을 때 우리의 관심은 주로 '누가 왕이 되느냐?'에 맞추어 집니다. 
그러나 사무엘서의 관심은 '누가 왕이 되느냐?' 보다는 

'하나님의 왕 되심이 어떻게 실현되느냐?' 또는 
'하나님의 왕 되심이 어떻게 손상되느냐?'에 있습니다. 

암논은, 하나님이 왕이 되시게 하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려고 무리한 행동을 했습니다. 
그의 무리한 행동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냈습니다. 

사무엘서는 그 희생자의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왕이 되려 하면,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본문 삼하13장은, 그 희생자의 대표로 다말을 집중 조명 합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대개 딸들을 아주 이른 나이에 
많은 경우 10대 중반에 약속시킵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다말은 아직 미혼이었으므로 
아마 10대 중반의 어린 나이였을 것입니다. 

다말은 그 꽃다운 나이에, 죽음보다 더한 수치를 당하고 
평생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다말은 이 사건이 있기 전에, 미혼의 처녀로서 베일에 가려져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일어난 후에는, 수치스러운 존재로서 
스스로 베일을 가리고 살아야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전과 이후 다말의 모습을 성경에서 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말이 자신의 일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잠시 베일 밖으로 나왔을 때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서는 그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을 
가급적 상세하게 그리고 길게 묘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다말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합니다.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들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읽으며, 수많은 영웅들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 영웅들보다, 
역사의 뒷면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들을 함께 기억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은,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책은, 사람의 역사책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책과는 다른.. 
그 역사책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둘 중 어느 역사에 있습니까? 
우리 인생의 승패는, 내가 하나님의 역사책에 어떻게 기록 되느냐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추억 관심사가 되고 
그 역사에 진정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