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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9

LNCK 2023. 4. 27. 11:17

[Ep9.오디오북] 최광 선교사의 탈북자 선교 실화  | - YouTube

◈도서 <내래 죽어도 순종합네다> P9              <지난 글 보기 >

◑2부 10장. "너희(탈북청소년)는 영적 리더가 될 수 있어! "

1년 간의 기도 생활을 통해 통독반 학생들은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 
처음에는 하나님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던 통독반 학생들이 
찬양을 하다가 울었고, 기도하다가 방언을 받았다. 

기도하면서 질병들을 치유 받았다. 
울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변화를 받았다. 

나는 이들의 마음 속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거지 근성을 뽑아버리기 위해 
필리핀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에 
이제 우리는 줄 수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가 줄 때 진정으로 부유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이제 그들을 더 높은 곳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이들에게 우리는 경제적으로도 줄 수 있는 신분이 되었고 
영적으로도 놀라운 은혜를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을 체험시키고 싶었다. 

영적으로도 자기들이 얼마나 큰 부자들인지 알게 해 주고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 이들이, 자기들을 통해 은혜가 흘러 지나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자신도 충분히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고 싶었다. 

▲한국의 큰 교회에서 집회를 가지기로 했다. 
집회를 준비하던 중 여러가지 문제로 결국 추진이 중단되었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이번에도 아예 외국으로 가기로 했다.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한 일본사람들에게 가서 
은혜를 많이 나누어 주고 오자고 생각했다. 

가서 줄 때, 그들(일본인)이 얼마나 좋아하고 놀랐는지 경험하게 되면 
이들(탈북민)도 알게 될 것이다. 

'자기들이 받은 애들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들이고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들인지' 알게 될 것 같았다. 

일본 현지 교회와 협력해야 했다. 
나는 아내와 함께 기도하면서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있는 어떤 교회와도 약속이 없었고 
아는 사람은 김인주 집사님 한 분 뿐이었다. 

'내가 걸으면 하나님이 일을 하신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경험했기에 
이제는 익숙했다. 

일본으로 가는 날, 인천공항에서 갑자기 구토가 올라왔다. 
짐을 부치는데 수속이 잘 되지 않았다. 

맏딸 영미가 항공사에 일하는 덕에, 직원 가족 티켓을 발권 했는데 
그 티켓은 수속이 까다로운데다, 성과 이름이 거꾸로 기록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빈좌석이 있는 경우에만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라고 했다. 
힘들게 통과되어 일본에 무사히 왔지만 
숙소에 들어가서는 그대로 쓰러져 앓아누워 버렸다. 
크고 무거운 영적인 눌림이 왔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아내와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동경순복음교회를 방문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동경순복음교회는 여태껏 다른 단체에서 오는 개별 집회를 
받아 본 역사도 없고, 받지도 않는 교회였다. 

교회의 크기만큼 문턱이 높았다.
아내와 둘이서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동경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마침 기도 시간이었다. 나는 사모와 함께 뒷자리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우리 부부를 성도들이라고 생각했는지 
여전도사님이 다가와서 친절하게 당회장실까지 안내해 주었다. 

아내는 당회장실로 들어가기 싫어했다. 
약속한 걸음도 아니고, 안 된다는 것도 알면서도 
약장수처럼 막 밀고 들어간다는 것이 무안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언제 가능성이 있어서 일했는가? 
나는 무작정 아내를 이끌고 당회장실로 들어가 사연을 말씀드렸다. 

당회장이신 정목사님은 친절하셨고, 마음을 열고 들어주셨다. 
5분 정도 말씀드렸더니 정목사님은 화끈하게 허락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상해요. 내가 이런 적이 없었는데... 
동경에서 제일 큰 교회라 많은 사람이 와서 집회하자고 해도 
한 번도 선약이 없으면 만나 준 적도 없었어요. 
만났다고 해도 바로 이렇게 날짜를 허락한 적이 없었고 
두 분이 기도 참 많이 하시고 오셨나 봐요. 
아무래도 내가 이상해.. 마치 내가 지금 뭔가에 씐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도 기적이었다. 
동경순복음교회 일정상 우리 집회를 받아줄 상황도 아니었다. 

우리 집회가 있는 바로 전 주에 조목사님의 집회가 계획되어 있었고 
여러 가지 교회 행사들이 빈틈없이 계획된 상황에서 
무작정 허락해 주신 것이다. 

나는 고마워서 책 <내려 죽어도 좋습네다>를 드렸더니 
몇 주 내로 한국으로 가면 다시 만나자고 하셨다. 

하나님이 일본 집회를 원하신다는 것과 
일본 집회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여태까지는 집회나 여행을 갈 때마다, 모든 경비를 학교에서 부담했다. 
나는, 이번 일본집회는, 비행기 티켓을 각자가 부담하라고 했다. 

한 달 50만 원을 가지고 힘들게 살아가는 학생들에게 
비행기 티켓 25만원은 큰돈이었다. 그래도 나는 요구했다. 
이제는 요람에서 나올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걷고, 일을 하는 법도 배워야만 했다. 

예상외로 학생들은 다들 기쁨으로 동의했다. 다들 몇 개월 할부로 부담했다. 
기분이 좋았다. 이번 길에 학생들이 은혜를 많이 받을 것 같았다. 

마음이 열린 상태에서는, 힘들면 힘들수록 더 큰 은혜가 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기대를 가지고 일본으로 향했다. 

도착한 날 저녁에, 첫 저녁 예배를 드렸다. 
큰 교회 성도수에 비해서 적은 인원이 모였다. 

그러나 첫 시간 첫 예배에, 모두 진정을 담아 열정적으로 찬양하기 시작했고 
앞에 있는 찬양팀 싱어들의 눈에, 은혜의 눈물이 흘렀다. 

일본 (교포)성도님들의 눈에 놀라움이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저들이 북한 청소년들이 아닌가? 
저 사람들이 언제 예수를 만났다고?' 

앞에서 찬양하는 유진이에게 특별한 성령님의 은혜가 임했다. 
펄쩍펄쩍 뛰면서 찬양하던 유진이는, 어떤 힘에 의해 마이크를 팽개치고 
객석으로 뛰어 들어가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면서 찬양했다. 

일본 사람들은 잘 뛰지 않는다. 항상 차분하고 이성적인 것을 고집한다.
그런데 겁없는 유진이가 뛰어들어가, 기쁨으로 펄쩍 펄쩍 뛰며 찬양하자 
일본(교포)성도님들도 마음을 열고, 성령님의 이끄심에 함께 동참하여 
일어나 춤을 추면서 찬양하기 시작했다. 

유진이는 자기 몸을 거쳐서, 무엇인가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이 흘러나가는 것을 느꼈다. 
찬양하는 사람들의 눈속에서 눈부신 기쁨들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유진이는 흥분했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이 온 몸에 충만했다. 
유정이, 에스더, 설경이, 민혜 외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냥 서서 찬양하지 못했다. 울면서 뛰고 땀을 흘리면서 찬양했다. 

그 순간 성령님이 당회장 정목사님을 만지셨다. 
이제부터 목사님은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찬양했다. 
찬양이 끝나자 정목사님이 강대상에 올라가 울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나는 단순하게 여러분들이 탈북자들이기에
그냥 일본에 오면 맛있는 거 사 주고, 동경 시내 여기저기 구경시켜 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니까 
여러분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 용사들입니다. 
내가 지금 십수 년 만에 예배를 드리며, 처음 웁니다.' 

정목사님은 집회 모든 시간마다 전 교역자들이 다 참석하게 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했다. 

'놀랍다. 진짜 하나님이 놀랍다! 
이 사람들은 정말 귀하고 기대가 됩니다!' 

3박 4일 집회 내내, 탈북민 청년들은 일본 성도들과 스스럼없이 지냈고 
즐겁고 명랑했다. 

나중에는 정목사님이 이렇게 감탄했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으니까? 
탈북자들이 큰 교회에 왔으면, 주눅도 좀 들어야 하는데 너무 당당합니다!'

아이들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회장 인 것이 아니라, 너희가 당회장인 것 같다'

1년간의 다양한 훈련과 기도, 말씀 훈련을 통해 
그들의 내면에 있던 어둠이 많이 사라졌다. 
눌리고 기죽은 모습은 전혀 없었고 
밝고 명랑한 모습들이었다. 정목사님은 그것을 보셨다. 

일본 성도님들도 집회를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다. 
탈북 강사들이 전하는 북한의 영적인 실태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게 되었다고 놀라워했다. 

그리고 영적 사막과도 같은 일본사람의 마음에 던진 충격이 
신선하고 크다고 했다. 

유진이는 새로운 세상을 마음으로 누리기 시작했다. 
'은혜 받는 것도 너무 좋았는데, 이제 나도 은혜를 전할 수 있네! 
은혜를 전하는 일이, 받는 일보다 더 좋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전했더니, 내 안에 행복이 가득해졌어!' 

유진이의 얼굴 모습이 변했다. 
늘 불독 강아지처럼 찡그리고 다니던 그의 얼굴이 
금방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웃고 다니기 시작했다. 

늘 찡그리던 친구가 너무 웃고 다니니 좀 걱정이 되어 물었다. 
'왜 그렇게 항상 웃니? 항상 그렇게 좋니?' 

유진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침에 인상이 찌푸려질 때도 억지로 웃으려고 해요. 
내가 웃으니까 사람들이 좋아하잖아요. 그러면 나는 행복해져요.' 

'그러면 힘들지 않니?' 

'나는 자살로 죽으려고 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뭐가 힘들겠습니까?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진이는 어느새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유진이에게는 기쁨이 가득한 사람에게서만 나오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그와 대화하면 신선한 공기 같은 즐거움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웃으며 대화할 수 있었다. 

▲일본 집회에서 성경통독반 학생들은 확실히 자신감을 얻었다. 
자기들도 이제는 당당하게 영적인 은혜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학생들의 기도제목이 달라지기 시작했고 
또 다른 변화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민혜는 가슴을 치고 울면서 이렇게 기도했다. 
'하나님, 오직 예수님께만 미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 됩니다. 
하나님, 나 좀 도와주세요.' 

에스더는 돈을 내려놓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주님, 돈, 적금 모든 것을 버리게 해 주세요. 주님이면 됩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 항상 기쁘게 하는 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 기분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하고 사랑하게 해주세요.' 

유정이는 찬양할 때는 뛰면서 했고, 기도 할 때에는 율동을 했다.
참 보기 좋았다. 
기도 시간 그렇게 몇 시간을 춤을 추고 기도하면서, 땀으로 목욕했다. 

'좋아, 너무 좋아. 너무 행복해 
내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 이 늦은 밤에 뭐 하고 있었을까?' 

유정이는 춤을 추면서 땅밟기를 했다. 
성전 바닥에 표시를 해 놓고는,
'여기는 북한, 저기는 중국, 저기는 몽골. 
이 모든 곳이 내가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야!' 하면서 
한번은 북한 땅을 딛고 북한을 위해서 기도하고 
이어서 중국 땅을 딛고 중국을 위해서 기도했다. 

이번 일본 방문길에 함께 따라왔던 탈북민 유순이 자매가 은혜를 많이 받았다. 
전번에 [은혜동산]에 참여 했을 때부터, 통독반 학생들을 보고 
자기도 성경통독을 하고 싶은 마음을 품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다. 

'두고 보시오.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무조건 통독 학교를 할 겁니다.' 
은혜는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선교회 안에서 처음부터 서열을 없애 버렸다. 
모든 사람이 직분 때문에 사람위에 군림하지 못 하게 했다. 

전도사가 하는 일을 집사가 하고, 
때로는 집사가 하는 일을 전도사에게 시키기도 했다. 
이게 질서가 엄격한 한국교회 문화에 익숙했던 분들은, 많이 힘들어 했다. 

이 문제 때문에 적응이 안되어서 나간 분들도 더러 있었다. 
성근 선생도 신학대학원까지 졸업하고, 목회 경력도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신학대학교도 졸업 하지 못한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 했고 
똑같은 일을 했다. 이 때문에 성근 선생도 자주 항의했다. 

'서열을 좀 정해 주십시오. 각자의 영역도 분명하게 정해 주십시오. 
이거 혼란스럽고 화가 나서 어떻게 일을 합니까?' 

나는 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고, 다른 전도사들의 요구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의 힘과 인위적인 장치에 의해 정해지는 서열은 
반드시 강한 자와 약한 자를 갈라놓고, 약자는 순종만 요구받는다. 
이렇게 정해진 서열은, 계속해서 약자에게 아픔, 고통, 상처를 남기게 된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일이 중심인 조직에서는 
위계질서를 철저하고 분명하게 정해 놓는다. 
그러면 일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서열이라는 강자와 약자의 세계에는, 따뜻한 사랑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사랑과 배려는, 서로가 동등한 곳에서 싹이 트고 자라기 때문이다. 

서열이 없는 것은 우리 선교회의 특징이었다. 
예수님도 자기의 제자들 속에 서열을 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자주 서로 다퉜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섬기고 낮아지라고 했다. 
그렇게 할 때 인간의 서열은 하나님이 정하신다. 

정말 낮아지고 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높이신다.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영적 리더의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능력이나 스펙이나 경력에 의한 서열이 아니라 
계속해서 낮아지고 섬겨주면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이 
높아지는 풍토를 만들고 싶었다. 

나는 선생들과 학생들사이도 위계질서로 묶어 놓지 않았다. 
선생의 요구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옳은 요구이기 때문에 순종하도록 했다. 

학교가 지하실이나 보니, 겨울이면 바닥이 너무 차가워 다들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이곳에는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이, 마구 사용한다는 것을 알기에 
어떤 전도사들은 슬리퍼에 자기 이름을 써 놓았다. 그래도 상관이 없었다. 

눈에 보이면, 이름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놈 저놈이 막 신고 다녔다. 

약이 올라 성근 선생이, 통독 시간에 자기 슬리퍼를 높이 쳐들고 광고했다. 
'얘들아 봐봐, 이 슬리퍼는 내 것이거든. 이거는 내가 좀 신자!' 

그러나 다음 날 또 없어졌다. 새로 슬리퍼를 장만하고 
이번에는 진한 매직펜으로 자기 이름을 써 놨다. 역시 없어졌다. 

화가 난 성근 선생이 슬리퍼를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떤 놈이 내 슬리퍼를 신고 갔어? 내놓으라고!' 

저쪽에서 유진이가 놀란 듯이 말했다. 
'어, 이게 왜 내 발에 붙어있지?' 

성근 선생이 발칵해서 말했다.
'야 이놈아, 나는 발에 무좀있는 사람이야. 내 슬리퍼 신으면 무좀이 옮는다고!'

유진이가 신이 나서 대꾸했다. 
'무좀이라면 걱정 마십시오. 나도 무좀 많이 있으니까' 

성근 선생이 오히려 난감해졌다. 
유진이가 들고 온 슬리퍼를 그에게 도로 던져버리며 말했다. 
'나 이거 안 신어, 네가 신어!' 

공부하던 학생들이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아이고 선생님, 잔머리로 저 유진이를 이기겠다고 그럽니까? 
잔머리는 쟤가 항상 날아다닙니다.' 

성근 선생이 손을 들어 버렸다. 
'도대체 버르장머리가 없는 녀석들이라고' 속으로 욕을 했다. 

학생들은 내 슬리퍼를 제일 좋아했다.
'목사님, 사모님' 이라고 큼지막하게 써 놓으면, 제일 먼저 없어졌다. 

녀석들이 그것부터 신고 돌아다녔다.
학생들이 나와 선생들을 좋아하는 했지만, 전혀 어려워하지 않았다. 

영민이가 자주 사무실에 들어와서, 내 자리에 앉아 
자기 자리인 것처럼 컴퓨터를 했다. 

청소하시던 집사님이 보다 못해 잔소리를 하려고 하다가 
한숨만 쉬고 입을 닫아버렸다. 

△학생들 사이에도 서열이 없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민혜와 설경이가 제일 기가 쎘다. 

두 녀석을 한 방에 집어넣어 버렸다. 곧바로 서열 정리가 시작되었다. 
두 녀석이 맨날 성난 고양이들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손을 들고 저버리면 쉽게 끝나는데 
절대로 한 녀석도 지지 않으려고 하니 
오늘은 설경이가 울고불고 했다가 
다음날이면 민혜가 뒤집어져 뛰쳐나갔다. 

1년 내내 싸워도 결론이 나지 않으니 
두 녀석이 이제는 남과 북의 정치인들처럼 
싸우지도 않고, 화해하지도 않고..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지냈다. 

제일 사납고 드센 두 녀석들의 서열이 정리 안 되어 버리니
나머지 여학생들도 서열이 없어져 버렸다. 

남학생들도 그랬다. 모조리 한 방에 집어 넣고 함께 살게 했다. 
거칠게 살던 녀석들이 처음 만나서는, 서로 은근히 실력들을 가늠해 보면서 
으르렁 거리며 서열을 정하려 애를 썼다. 

아직도 정하는 중인지, 못 정했는지 딱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냥 그러고 잘 어울리면서 지내고 있다. 

△학생들의 말투가 변했다. 거칠고 공격적인 북한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정말 내가 바라던 바였다. 

그런데 이들이 엉뚱하게도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사는 녀석들이 왜 서울 말을 배우지 않고 경상도 말을 쓰지?' 
하고 봤더니.. 다들 내가 하는 말을 흉내내서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유정이가 기도할 때, 머리를 좌우로 획획 돌려 댔다. 
여학생에게 어울리는 행동이 아니었다. 

'왜 저러지?' 
재밌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지켜보았다. 

가만히 보았더니 기도할 때마다 종이컵을 앞에 가져다 놓고 기도하면서 
가끔 그 안에 침을 뱉어 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내가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가끔씩 목과 머리에 마비가 온다. 
그럴 때 나는 머리를 획획 돌리며 틀었다. 

성령이 충만할 때는, 몸 안에 있던 더러운 것이 자꾸 올라와 
사람들 몰래 종이컵에 뱉어냈다. 
그것을 언제 훔쳐봤는지, 따라 하고 있었다. 

둘러보니 사방에서 내 행동들을 따라하고 있었다. 
성근 선생은 자기를 잘 모르는 곳에 가면 
아예 경상도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닌다. *내가 경북사람이라 배운 것이다

오랫동안 그렇게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속상해했는데 
학생들은 나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동들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나의 거울이었다. 나는 갑자기 배가 불렀다. 만족했다. 
'그래 이거였구나! 내가 열심히 주님을 흉내내면, 학생들은 나를 흉내 내고 
이것이 교육이었구나!' 
'교육이란 함께 살면서 보여주는 것이로구나!' 

◑2부 11장. 설교하는 학생들 

이제 다들 신약 성경 50독, 구약성경 10독 이상 넘어서자 
김성근 선생이 1기생들을 대상으로 <성경큐티훈련>을 시작했다. 

성근 선생은 큐티를, 성경 본문을 읽고 묵상하는 방법이 아니라 
조금 색다른 방법으로 진행했다. 

먼저 1기생 모든 사람들에게, 신구약 성경의 중요한 책들을 안배해 주었다. 
요한은 마태복음, 유정은 마가복음, 
금란은 사사기, 에스더는 요한복음 
이런 식으로 연구범위를 지정해 주었다. 

각사람들은 자기가 맡은 책을, 한 주일 동안 연구해서 발표하고 
청중은 발표자 연구범위 안에 있는 말씀들 중에서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게 했다. 

발표자는 발표만을 위한 연구가 아니라 
제기될 수 있는 모든 질문에 대답을 준비해야만 했다. 
그러자면 성경을 정밀하게 연구하면서 발표를 준비해야 했다. 

큐티는 성경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자기가 아는 것을 표현하고 
질문을 찾아가는 훈련 과정이었다. 

또한 이 훈련을 통해서 학생들은, 대중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할 수 있는 
무대위에서의 담을 키울 수 있었다. 

성경 큐티는 설교 훈련의 전 단계였다. 
통독은 반복을 통해서 말씀을 익숙하게 하는 과정이라면 
여기서부터는 배우고 표현하는 훈련 과정이었다. 

여태껏 건성건성 통독하는 학생들도 
큐티가 시작되자 진지하게 통독에 임하기 시작했고 
짬나는 시간마다 성경을 연구하느라 바빠지기 시작했다. 

대충 연구했다가는, 발표시간부터 창피를 당하고 
수많은 질문공세에 진땀을 빼야 하기 때문이다. 

항상 발표자의 발표가 끝나면, 맹렬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논쟁이 혼란에 빠지면, 성근 선생이 개입해서 정리해 주었다. 

처음에는 다들 너무 힘들어 했다.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해 했고 
익숙하게 읽었던 성경 내용들을, 어떻게 분석하고 전달해야 하는지 몰라 쩔쩔맸다. 

쉬운 훈련이 아니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에게도 쉬운 과정이 아니었지만 
나는 밀고 나갔다.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여기로 데려오셨고,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기 때문에 
이미 그런 능력들을 넣어 주었거나, 
기도와 훈련을 통해서, 그 능력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나는 확신했다. 

성근 선생도 열심히 가르쳤다. 학생들은 개인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침 6시부터 일과가 시작되어, 12시에 오전 통독이 끝나고 
오후 2시반부터 다시 시작해서, 저녁 6시에 끝난 다음 다시 식사를 하고 
저녁 7시 부터 밤 12시까지는 기도 시간이었다. 

그래도 자유시간 이라고는, 밤 12시 이후 잠들기 전 시간과 
점심 식사 후에 조금 있는 시간 뿐이었다. 

그 시간마저도 성경말씀 암송을 해야만 했다. 
학생들은 성경을 따로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나는 시간을 따로 주지 않았다. 

밤잠을 자지 않고 시간을 더욱 쪼개서 연구하게 했다. 
학생들은 정신없이 바빠졌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엉성하게 발표했고, 질문에 대답하지 못해 쩔쩔맸다. 
하지만 한 주 한 주 과정이 반복될수록, 이들은 점점 숙련되어 갔다. 

성경 말씀도, 본문의 의도와 거의 일치하게 해석해 나가기 시작했고 
질문들도 깊어지고 날카로워졌다. 
이렇게 석달정도 하자, 큐티는 어느 정도 수준에까지 올라갔다. 

김성근 선생은 이번에는 설교 훈련을 시작했다. 
성근 선생은, 여러 가지 설교 방식중에서 '이야기식 설교'를 중점적으로 내밀었다. 

성근 선생은 학생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었기에 성경본문에 대해서 익숙하고 또 많이 알고 있어요. 
이것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큰 강점이에요. 

때문에 이미 알고 있는 성경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표현해서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가장 훌륭한 설교는, 하나님 말씀의 참 뜻을 잘 드러내서
알기 쉽게 전달해 주는 것이에요. 
이때문에 우리에게는 이야기식 설교가 많이 유리해요.' 

학생들도 처음에는 이야기식 설교를 힘들어했지만 
점점 이 방식의 설교를 선호했다. 

▲1기생들이 설교 훈련에 들어가자, 나는 다양한 강좌들을 만들었다. 
제일 먼저 김광신 목사님이 <성령론> 과 <율법과 복음> 강의를 해 주셨다. 

그리고 고원희 목사님이 <선지서 강의>를 통해 
선지서 들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잡아주셨다. 

다음은 이진행 목사님이 와서 <신구약 지리적 배경>을 통한 
성경맥잡기 를 해 주셨다. 

또한 서울은혜교회 김태규 목사님이 오셔서 
<영성의 실제와 은사>에 대해서 강의해 주셨다. 

이때 많은 학생이 방언을 받았다. 

유도순 목사님의 <구속사> 강의도 들려주셨다. 
김성근 선생도 <언약의 맥> 과 <메시아의 맥> 강의를 통해 
성경을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꿰뚫어 주었고 

<예정론>과 <성경의 정치적 배경사>도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성경 전체를 다양한 방법으로 개괄해 주면서 
큐티, 설교, 통독, 말씀암송, 기도 훈련들을 병행해 나갔다. 

신약 1백독, 구약 20독이 가까워지자 
다들 성경 전체를 통전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나중에는 강사들이 와서 처음 강의를 시작하면 
뒤에 가서 어떤 말이 나올지 미리 짐작하기도 했다. 

금요철야 예배시간에 에스더가 설교 했다. 
오랫동안 큐티와 설교 훈련을 통해 다듬어진 것을 바탕으로 
오늘은 정식으로 공식 예배를 주관하는 자리에 섰다.

올해 겨우 19살이 되는 에스더다. 
키가 작아서 발받침대를 하고 올라서야 겨우 마이크에 입이 닿았다. 

성도들이 웃으면서 조금 술렁거렸다. 예상하지 못했던 강사인 모양이다. 
다들 호기심으로 쳐다보았다. 설교 전 찬송을 불렀다. 

작은 소녀 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당찼다. 
강대상을 두드려 가면서 찬송가를 불렀고 
바닥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작지만 분명한 카리스마를 느끼며 따라 불렀다. 

에스더는 창39:19~23절 말씀으로 설교를 했다. 
웃으면서 마치 이야기를 들려주듯 말씀을 전했다. 그러나 해석은 깊었다. 

요셉의 성실한 삶 속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했다. 
그의 성실함은, 핍박과 고난 속에서 증명된 성실함 이라고 했다. 

이때문에 30살에 총리가 되는 자리에 서도 흔들리지 않았고 
교만하지 않고, 늘 성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첫 설교자 답지 않게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눈을 마주치고 웃으면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었다. 
원고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내며 전했다. 

다들 점점 입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이나 될까말까 한 여자애가 
당돌하게 또박또박 성경을 해석했고, 말씀도 차분하고 조리있게 전했다. 

누구도 머리를 떨어뜨리거나, 지루한 눈으로 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똑바로 에스더만 쳐다보면서, 그의 말에 나직이 '아멘, 아멘!' 하고 반응했다. 

어리고 작은 몸이지만, 믿음으로 증거하는 그 설교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에스더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철학이나 신학, 인문학 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그저 담담이 이야기식으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그대로 여과없이 전달했다. 그래서 담백하고 간결했다. 그런데 짧았다. 

설교를 마무리하고 기도하고 마치겠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시계를 보고 소리 없이 웃었다. 10분이 조금 넘은 것 같았다. 
보통 40분을 훨씬 넘어 끝나던 다른 설교에 비해 너무 짧았던 것이다. 

사람들은 놀랐고 나는 자랑스러웠다. 
에스더는 1년 전까지만 해도, 비천한 탈북 소녀였다. 

엄마 잃은 아기 참새처럼, 이 낯선 세상을 
불안하고 움츠러든 마음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통독 학교를 찾아 왔던 소녀가 

1년 만에, 어른들도 하기 힘들어 설교를 
지금 웃으면서 편안하게 하고 있었다. 

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요한, 유정, 인철, 민혜, 설경, 금란 등 
1기졸업생 모두가 도토리를 세워 놓은 듯이 고만고만하게 실력들이 비슷했다. 에스더가 제일 어렸기에 가장 도드라져 보였다. 

탈북청소년들이 비록 남한 청소년들처럼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이들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남다른 능력들이 있었다. 

보통 10년 이상 신학을 하고 훈련을 해도 
설교 하라고 하면 힘들어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모호하고 추상적으로만 이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달랐다. 1년 동안 통독과 기도로 훈련을 받고 나니 
마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은 설교를 한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처럼 세련되고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기도를 통해 만나고, 말씀을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분명하게 전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이 전하는 그 투박한 간증과 메시지를 듣고 
오랫동안 신앙 생활을 해 오던 남한 분들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는 요한, 에스더, 유정, 민혜, 설경, 금란이 
주일과 수요일, 금요일에 
예배 설교를 맡아 진행한다. 

나와 전도사들은 뒤로 물러나서 
이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듣고 은혜 받고 감동하기도 하고 행복해 했다. 

1기생으로 들어왔다가 2기생으로 밀려버린 철명이도 
이제는 많이 변화되었고,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진지하고 성실했다. 

속이 얼마만큼 찾는지 알고 싶어 
수요일에 설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철명이는 1기생들과 함께 큐티 훈련을 받지 않았기에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철명이의 설교는 훌륭했다. 여느 1기생들 못지 않았다. 

기분이 좋아 주일 오후에도 설교하게 했다. 
철명이는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이 보입니다. 
예전에도 많은 응답이 왔지만, 그것이 응답으로 보이지 않았고 
우연으로만 보였고,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음이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철명이는 주말이면 다른 학생들이 다 놀러 가고 혼자 지내는 것이 외로워 
여자친구를 사귀었다. 그러나 그 여자친구가 자꾸 의식되면서 
강의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시작했다. 

이어 예수님을 향하던 그의 마음도 점차 식어지기 시작했고 
마음속에 자리잡았던 비전들도 시들해지고, 증발하는 것처럼 사라져갔다. 

꿈이 사라지니, 현실의 모든 것들이 빛을 잃어가고 힘겨워 졌다. 
분명히 여자친구의 영향이었다. 

그의 여자친구는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세상여자 였던 것이다. 
철명이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해 주시든지 
저 여자 친구가 나처럼 변화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되게 해 주세요!'

다음 날 아침, 여자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가 아직은 사귈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양해해 달라'고 했다. 

철명이는 뛸 듯이 기뻤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힘을 얻은 철명이는 다시 오랫동안 시달리던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다. 
'하나님, 교회 문만 나가면, 술집 들에서 술 마시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술이 너무 마시고 싶습니다. 술을 끊게 해주세요!' 

다음 날부터 철명이는 온몸이 쑤시고 아프기 시작했다. 
참고 견뎠더니, 나중에는 오한이 나고 식은땀까지 났다. 
전혀 아플 이유가 없는데 아팠다. 

그러나 앓고난 후부터는, 그의 몸에서 신기한 일이 생겼다. 
술은 보기만 해도 막 싫어졌다. 왜 그런지 이유도 없었다. 
그냥 무턱대고 보기조차 싫어졌다. 

철명이는, 자기의 기도에 하나님이 너무나도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는데 
정작 자기는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한 적이 너무 없다고.. 미안하다고 기도했다. 

'이래서는 안 될 것 같다고.. 우리 다 함께 분발해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들이 되자'고.. 설교시간에 호소했다. 

다들 은혜를 받았다. 나도 그의 설교에 은혜 받고 자랑하고 싶어서 
홈페이지에도 올려 놓았다. 

자기 설교가 홈페이지에 올라가자, 철명이는 흡족해 했다. 
비록 2기생 이기는 하지만, 1기생들 앞에서도 당당해지는 것 같았다. 

유진이는 하도 엉망으로 살던 녀석이라, 설교에 관해서는 기대하지도 않았고 
크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랬더니 발끈해서 말했다. 

'에이 씨, 나도 설교 좀 해 봅시다!'
2기생 철명이도 하는데, 자기만 빼 놓는다고 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형평성 문제 때문에 유진이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그런데 그랬다가 유진이의 설교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것도 모를 줄 알았는데, 말씀을 너무 잘 전했다. 

유진이가 말씀을 전하는 날에는, 나만 놀란 것이 아니라 
선생들도, 집사님들도 입을 딱 벌렸다. 

나는 너무나 크게 자랑하고 싶은 놀라운 일들이고 
북한선교에 있어서도 놀라운 성과였지만 
정작 본인들은 심드렁 했다. 

이곳에서는 너도나도 하는 설교이고, 함께 경험하는 은혜들이라서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겪은 그 모질고 험난한 과정이 
탈북자라면 누구나 다 겪은 것이라,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자기들이 받은 은혜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들 덤덤 했고 '이게 뭐 별일이냐?'는 듯이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생활도 엉망인 면이 많았다. 

아직도 교회 생활을 힘들어하고, 통독하면 졸기도 하고 
선생들이 꾸지람 하면 볼이 부어서 투덜거리기도 한다. 

10년 이상씩 훈련받은 사역자들도 부담스러워하고 힘들어 쩔쩔매는 설교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데 
평소에는 아이들 모습 그대로였다. 

이제부터는 아이들이 예배를 주관하고 설교하는 학교가 되어 버렸다. 
학생들은, 신앙으로는 아직 갓난아이들이었지만 
어른들도 힘들어 쩔쩔매는 일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해치웠다. 

그리고 정작 자기들의 해야 하는 일에는 
힘들다고 앙앙거리면서 살아가는... 
교회 같기도 하고, 학교 같기도 한 집이 되어버렸다. 재미있었고 신기했다. 

△우연히 철명이의 옷속에서 담배를 발견했다. 
철명이는 총신대학교에 갓 입학했다가 휴학하고 
통독 훈련을 받고 있는 신학생이다. 

처음부터 신발을 단단히 신기려고 
다른 학생들보다는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눈물이 나게 혼을 내고, 벌칙으로 그의 설교를 홈페이지에서 내려버렸다. 
철명이는 혼이 난 것 까지는 참아냈지만 
자기 설교가 홈페이지에서 내려지자 마음이 상했다. 

밤에 자면서 식은땀을 흘리며 끙끙 앓았다. 
그러다가 담배를 끊기로 결단했다. 

혼자서 끊으면 힘들 것 같아서, 철명은 2기생들을 모아놓고 호소했다. 
'지금 우리 2기생 들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나? 
우리 다같이 금연을 시작하자!' 

2기생들도 그렇게 하자고 호응했다. 
철명이는 담배를 끊게 해 달라고 금식을 시작했다. 

나른해서 통독시간에 졸았더니 
1일 팀장을 하던 민혜가 커피를 타서 그에게 내밀었다. 

미안한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받아 마시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차 내가 지금 금식하고 있잖아?' 

조금만 더 참으면 하나님과 약속했던 대로 3일을 채우는데 
민혜 때문에 망친 것 같아 원망스러웠지만 
마음을 바꾸니 곧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구나!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신앙이 이렇게 주저 앉는구나! 
교회 안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세상에서 리더가 되는 것보다 몇 배로 힘들구나.
세상 리더는 실력만 있으면 되지만, 교회 리더는 생활도 거룩해야 하는 데다
실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기와의 싸움을 해야 하는구나!' 

통독반 학생들이 이제는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년에 신학대학에 갈 거야' 
'등록금은 누가 대주는데? 

'하나님이 대주셔!' 
'하나님이 너에게 돈 빌린 적 있니?' 

'아빠니까 대주시겠지 뭐, 
나를 죽일 거였다면, 북한에서 벌써 죽었겠지 
나를 여기로 데려왔으니, 여기서 할 것들을 보장해 줘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냐? 나는 신학교에 갈 거야.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될 거야!' 

이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것을 넘어 
벌써 그분께 기대어 살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교육과정이 아니었다. 
하나를 배우고 익힌 다음, 또 그 다음 하나를 익히는 방식이 
탈북 청소년들에게서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억지로 두들겨 깨워도 잘 안 일어나고, 
겨우 책상에 앉혀놓으면 졸면서 대충 대충 시간이나 때웠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억지로 건성건성 했다. 
선생들의 눈에도.. 이들이 도무지 변화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언젠가는.. 언젠가는..' 하는 마음으로 끌고 다녔다. 
그러다 한 순간에 일어났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선교의 비전을 붙잡았다. 
내면에서 천천히 익어가던 어떤 것이 
때가 되면 한 순간에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요한이는 통독학교에 오기 전에는,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생각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그가 필리핀으로 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다.
'너는 모든 열방을 다니면서, 이전에 너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라!'

요한이는 이 음성을 듣고, 더 확실한 비전을 달라고 기도했다. 
여태까지는 뚜렷한 꿈도 없었고 비전도 없었기에 
이제는 비전을 품고 사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하나님, 왜 나를 불러 주셨으며, 왜 한국으로 데려오셨고 
나를 어떻게 쓰시려고 합니까?' 
이 기도를 절절하게 하다가, 갑자기 혀가 꼬부라지면서 방언이 터졌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이제는 내가 왜 통독해야 하는지 
왜 내가 북한땅을 살려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한국에 왔는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알겠습니다. 
이스라엘까지 복음을 들고 나가야 하는 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나에게 통독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