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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9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5. 1. 05:05

◈삼하19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어떤 사람이 요압에게 아뢰되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슬퍼하시나이다 하니 

'혹이 요압에게 고하되' 이는 성내에 있던 한 사람이 이제 막 전쟁터로부터 회군(回軍)하여 돌아오는 요압에게 달려가 다윗 왕의 동정을 보고한 사실을 의미한다. 이 사람이 이처럼 요압에게 달려가 왕의 슬픔을 알린 이유는, 개선하는 군사들을 맞이하는 대대적인 환영식이 없는 데 대하여 요압과 군사 들의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왕이 압살롬을 위하여 울며' 여기서 `울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카' 는 `애곡하다', `호곡하다'는 뜻으로 곧 `소리내어 크게 우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13:36, 창 45:14, 신 21:13, 스 10:1, 왕하 20:3, 22:19, 애1:2).

2 왕이 그 아들을 위하여 슬퍼한다 함이 그 날에 백성들에게 들리매 그 날의 승리가 모든 백성에게 슬픔이 된지라 

'그 날에 백성들 에게 들리매' 압살롬의 군대를 쳐부수고 돌아오는 그 날 요압에게 보고된 사실이 개선(凱旋)하는 군사들에게 소문으로 널리 알려졌다는 말이다.

'그 날의 이김이...슬픔이 된지라' 이는 승전한 다윗의 군사들이 매우 처량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지도자 한사람의 절제되지 못한 감정 처리가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편, 여기서 `이김'에 해당하는 `테슈아' 란 말은 어떤 고통이나 속박 또는 멍에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구원' 또는 `구출'을 가리키는 전쟁 용어이다.

3 그 날에 백성들이 싸움에 쫓겨 부끄러워 도망함 같이 가만히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부끄러워...가만히 성으로 들어가니라' 이는 승전한 군사들이 마치 패잔병(敗殘兵)들처럼 슬며시 입성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여기서 `부끄러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칼람' 은 더러운 죄를 범한 사람이 자기의 죄를 부끄러워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겔 16:27, 61, 43:11, 사45:16).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군사들이 승전한 군사들의 떳떳하고 당당한 모습과는 정반대로 크게 죄를 지은 자들과 같이 초라하고 처량한 모습으로 입성하였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서 우리는 개선하는 군사들을 맞이하는 대대적인 입성식 또는 환영식이 전혀 없었뿐만 아니라 군사들 조차도 대오(隊伍)를 맞추어 의기 양양하게 입성하지 않고 개인적로 뿔뿔이 흩어져 입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4 왕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큰 소리로 부르되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니 

'왕이 엎굴을 가리우고 큰 소리로 부르되' 이는 승전의 소식(18:28-32)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압살롬의 죽음만을 생각하는 다윗 왕의 비통한 심경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즉 여기서 얼굴을 가리운 것은 왕의 극한 슬픔을 나타내는 표시였으며(사 53:3). 또한 큰 소리로 부르짖은 것은 도저히 억누를 수 없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터뜨린 행위였다.

'내 아들 압살롬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성경 문학상 감정을 점층적으로 고양시키는 반복법적(反復法的) 표현으로, 다윗의 호곡(號哭)이 지금도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이토록 다윗이 압살롬의 죽음에 대해 절규한 이유는 자신의 양심에 저리도록 사무치는 회한(悔恨)이 있기 때문이다. 즉 다윗의 처절한 애곡 속에는 단순히 아비로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혈육의 정 뿐만 아니라 과거 자신이 지은 죄악의 보응이라는 심한 자책감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5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왕께서 오늘 왕의 생명과 왕의 자녀의 생명과 처첩과 비빈들의 생명을 구원한 모든 부하들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요압이 집에 들어가서 왕께 말씀하되' 업무를 전폐하고 압살롬의 죽음만을 비통해하는 다윗의 행동에 대해 정치적 불안을 느낀 요압은, 민심의 동요를 우려하여 백성들의 대변인으로 자처하였던 것이다. 비록 요압이 다윗의 깊은 심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약간 무례하고 강경한 어조로 항변한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요압의 이러한 행동은 다윗 왕으로 하여금 그의 걷잡을 수 없었던 감정을 정리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적절한 직언(直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왕의 생명과...자녀의 생명과 처첩들의 생명을 구원함' 여기서 요압은 이번 전쟁의 승리로 말미암아 왕과 그 전 가족의 생명이 구출되었다고 말하고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요압의 말은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만일 압살롬이 이번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정권을 완전히 장악했더라면, 그는 고대 근동 지방의 관습에 따라 선왕(先王)과 선왕의 전 가족들을 몰살시키고야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신복의 얼굴을 부끄럽게 하시니' 이는 아낌없는 칭찬과 대대적인 환영을 받아야 될 모든 군사들에게 오히려 수치를 안겨 준 다윗 왕의 처사를 책망하는 요압의 말이다. 즉, 여기서 요압은 승전한 군사들을 기쁘게 영접하고 칭찬하는 것이 왕의 중요한 임무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감정에 매여 오히려 군사들의 사기만 저하시킨 왕의 무책임한 처사를 날카롭게 지적하였던 것이다.

6 이는 왕께서 미워하는 자는 사랑하시며 사랑하는 자는 미워하시고 오늘 지휘관들과 부하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오늘 내가 깨달으니 만일 압살롬이 살고 오늘 우리가 다 죽었다면 왕이 마땅히 여기실 뻔하였나이다 

'미워하는 자' 곧 다윗 왕을 거스려 반역을 일으킨 아들 `압살롬'을 가리킨다.

'사랑하는 자' 곧 다윗 왕을 위하여 목숨 걸고 싸워 압살롬의 군대를 쳐부순 `다윗 왕의 신하들'을 가리킨다.

'오늘 장관들과 신복들을 멸시하심을 나타내심이라' 이 구절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은 `오늘 당신은 당신에게 장관들과 신복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하셨나이다'이다. 즉 장관들과 신복들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는 자들처럼, 다윗 왕은 그들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는 말이다.

7 이제 곧 일어나 나가 왕의 부하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내가 여호와를 두고 맹세하옵나니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오늘 밤에 한 사람도 왕과 함께 머물지 아니할지라 그리하면 그 화가 왕이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당하신 모든 화보다 더욱 심하리이다 하니 

'신복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말씀하옵소서' 이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신복들의 마음에 말씀하소서'가 된다. 이는 곧 신복들의 불평을 달래면서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해주라는 권면이다.

'왕이 만일 나가지 아니하시면... 모든 화보다 더욱심하리이다' 혹자들(Josephus, Matthew Henry)의 주장처럼, 이는 요압이 자신의 반역 의사를 내비친 말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요압은 여기서 다윗왕이 계속해서 자기의 슬픈 감정에만 휘말려 있으면, 자연적으로 민심이 동요하게 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반란이 이어지게 될 것이고, 이제 또다시 반란이 일어나게 되면 사태는 것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도 높게 경고한 것이다.

8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어떤 사람이 모든 백성에게 말하되 왕이 문에 앉아 계신다 하니 모든 백성이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스라엘은 이미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더라 

'왕이 일어나 성문에 앉으매' 고대 사회에서 성문(城門)은 매매, 행정, 집회 등의 주무대였다(룻4:1, 2 삼상 9:18 , 욥29:7 , 암 5:10, 12). 아울러 성문은 왕이 백성들과 만나는 장소였으며 왕의 재판 장소였다(15:2). 따라서 다윗 왕이 이곳(마하나임의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자신의 임무를 다시 수행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여기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사들을 치하 격려하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 왕의 올바른 깨우침을 볼수 있다. 즉 요압의 권고가 비륵 거칠고 무정한 점은 있었으나, 다윗 왕은 그 말의 옳음을 인정하고 요압의 권면을 그대로 따랐던 것이다. 

'모든 백성이 왕의 앞으로 나아오니라' 이 말은 왕 앞에서 군대의 개선 행진이 있었으며, 또한 승리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왕과 백성들 간에 즐거운 대면이 있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9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이르되 왕이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셨고 또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이제 압살롬을 피하여 그 땅에서 나가셨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백성들이 변론하여' 여기서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리고 '변론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둔' 은 `다투다', `정죄하다'는 뜻이다(창 15:14, 욥 36:31, 시 110:6, 전 6:10). 따라서 이 구절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사람들이 다윗 왕 복권의 지체(遲滯)에 대하여 서로를 책망하였다는 내용의 말이다. 이러한 움직임이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난 것은 지난날 압살롬을 지지했던 자기들의 행동이 크게 잘못된 것이었음을 스스로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원수의 손에서...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나' 압살롬의 반란이 진압된 후 백성들이, 과거 다윗 왕이 자기들을 위해 세운 큰 공적을 회상하는 말이다. 즉, 다윗 왕의 순간적인 실수에 대한 반발과 압살롬의 수려한 외모에 반하여 압살롬의 반란에 참여했던 백성들이, 이제 상황이 달라지자 다윗 왕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평가했던 것이다.

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제 너희가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올 일에 잠잠하고 있느냐 하니라 

'우리가 기름을 부어...압살롬은 싸움에 죽었거늘' 우리는 이 구절에서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공식적인 행사, 곧 기름 부음 받는 의식(儀式)이 분명히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압살롬의 공식적인 즉위식(卽位式)은 다윗 왕의 복권(復權)에 다소 장애가 되는 것이었다. 다시말해서 다윗 왕이 복권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 선언이 그에게 또다시 필요했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윗 왕은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예루살렘으로 곧 돌아가지 아니하고, 마하나임 성에 그대로 남아 백성들의 대대적인 지지선언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한편,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 왕의 복권 이유로 압살롬의 전사(戰死)를 들고 있다. 즉, 그들이 지지했던 압살롬이 이제는 죽고 없으니, 다윗 왕을 복권시키자는 논리였다. 우리는 여기서 만일 압살롬이 살았더라면 그들이 압살롬을 계속 지지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R. Payne Smith). 따라서 다윗 왕을 복권시키자는 그들의 소리는 다분히 이해 타산적이며 현실적인 것이었다(Herzberg). 우리는 이와 같은 움직임 속에서 당시 백성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즉, 한편에서는 지난날 압살롬을 지지했던 자기들의 과오를 인정함과 동시에 다윗 왕을 다시금 존경하면서 그의 복권을 주장하는 참신한 무리들이 있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아직껏 압살롬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지만 그가 죽었으므로 나라의 안정을 위해 다윗 왕의 복권을 주장한 현실주의자(現實主義者)들도 있었으며, 또는 이미 대세(大勢)가 다윗 왕에게로 기운 것을 파악하고 재빨리 친(親) 다윗계로 처신하는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들도 있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이와같은 당시의 상황 속에서 다윗 왕에 대한 또 하나의 반란을 예상할수 있다(20:1-26).

11 다윗 왕이 사독과 아비아달 두 제사장에게 소식을 전하여 이르되 너희는 유다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왕의 말씀이 온 이스라엘이 왕을 왕궁으로 도로 모셔오자 하는 말이 왕께 들렸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궁으로 모시는 일에 나중이 되느냐 

'다윗 왕이...두 제사장에게 기별하여' 이는 다윗 왕이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위해 당시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두 제사장, 곧 사독과 아비아달을 교섭의 실무자(實務者)로 임명하는 장면이다. 다윗 왕이 이처럼 유다 지파와의 교섭을 시도하게 된 동기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내에서 일어났던 다윗 왕의 복권 추진 움직임 때문이었다(9, 10절). 
즉 만일 이스라엘 지파들만이 다윗 왕을 지지하는 가운데 그가 꼭 복권된다면, 다윗 왕과 유다 지파 사이는 대단히 소원(疏遠)한 관계에 놓이게 될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유다 지파가 다윗 왕을 지지하지 않을 경우, 다윗 왕을 복권시키겠다고 나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은 그들의 왕을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 다시 말해서 자기들의 성읍 으로 모실 위험성까지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윗 왕은 자기가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서만 복권될 경우, 자기의 통치력이 심히 약화될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유다 지파출신으로서, 만일 타 지파에서 반란을 일으킬 경우 그를 지지할 지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다윗 왕은 자신이 복권하는데 유다 지파도 적극 참여시킴으로써, 과거 압살롬의 반역을 주도했던 유다 지파의 죄를 용서하고 온 나라의 총화 단결을 도모하고자 했던것이다.

'유다 장로들' 이들은 유다지파를 다윗 왕에게로 돌릴 수 있는 실제적인 인물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이들이 압살롬의 반란에서 주동적인 역할을 해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들 다윗 왕이 복권된 후 자기들에게 미칠 후환(後患)을 우려하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

12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거늘 너희는 어찌하여 왕을 도로 모셔 오는 일에 나중이 되리요 하셨다 하고 

'너희는 내 형제요 내 골육이어늘' 여기서 다윗 왕은 자기가 유다 지파 출신이므로 유다 지파 바로 그들이 자기의 복권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말은 자기를 반역한 유다 지파에 대해 유화정책적(宥和政策的) 발언을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제안은 유다와 이스라엘을 분열시키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다윗 왕의 제안을 받아들인 유다 지파 다윗 왕의 복권에 적극 앞장서게 되었으며, 이에 대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이 불평하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40-43절).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이스라엘은 세바(Sheba)의 난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13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압살롬의 군장(軍長)이었던 아마사(Amasa)는 실제로 다윗 왕의 조카였으며, 요압과는 사촌지간이었다(17:25, 대상 22:16, 17).

'요압을 대신하여...군장이 되지 아니하면' 여기서 다윗 왕은 요압(Joab)을 축출하고 새로이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으려 한다. 이처럼 다윗 왕이 요압을 축출하려 한 이유는 요압에 대한 그의 좋지 못한 인상 때문이었다. 즉 요압은 다윗 왕이 죽이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압살롬을 죽인 장본인이었으며(18:14), 또한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다윗 왕이 깊은 슬픔에 잠겨 있을 때 사납고 거친 비난을 서슴치 않았던 자였고(5-7절), 그리고 요압은 다윗 왕의 집권 초기에 사울의 군장 아브넬을 부당하게 죽인 난폭자였다(3:27, 39). 
그러나 이러한 요압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 외에 또 다른 측면에서 다윗 왕은 아마사와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즉 다윗 왕은 당시 반란군의 군장이었던 아마사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모두 규합(糾合)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이유로서, 다윗 왕은 아마사를 자기의 군장으로 삼음으로써 자기를 반역했던 모든 압살롬의 추종자들에게 자기는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은 불공평하고 현명치 못한 처사였다. 즉 다윗은 화합이라는 대전제 아래 무모한 관용과 앞뒤를 가늠하지 않은 결단함으로써 재난의 불씨를 만들고 말았던 것이다(20:10). 특히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살해한 요압(4:14, 15)에 대한 개인적 원한이 있었다 하더라도 요압은 반란군 진압의 공헌자였다. 그런데 그러한 요압을 제쳐놓고 반역의 최일선에 섰던 자를 군대의 통솔자로 삼은 것은 다윗의 실수로 밖에 볼 수 없다. 
즉 그때 다윗은 공의로운 통치 원리보다 인간의 이해를 우선 순위에 두었던 것이다. 이처럼 인간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면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거나 실수를 범하게 마련이다(마 26:69-75). 결국 이러한 다윗의 처사에 앙심을 품은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점(20:8-13)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의 다윗의 처사는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현명한 처사는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 

'모든 유다 사람들로 마음을 일제히 돌리게 히매' 여기서 `돌리게 하매'의 주체는 아마사나 대제사장들 (사독과 아비아달)이 아니라 바로 다윗 왕이다. 즉, 본 구절에서 저자는 유다 지파에 대한 다윗 왕의 지혜로운 정책(11, 12절)이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음을 묘사하고 있다.

15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유다 족속이 왕을 맞아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길갈로 오니라 

'왕이 돌아와 요단에 이르매' 압살롬의 추격을 피해 급히 요단 강을 건널 때(17:22)와는 정반대의 상황 속에서, 다윗은 자신의 권속과 승전한 군대를 거느리고 위풍 당당하게 요단 강에 이르렀다.

'요단을 건네려 하여' 이는 `다윗 왕을 호위하여 무사히 요단강을 건너도록 하기 위하여'란 뜻이다. 길갈 엘리사의 길갈(왕하 2:1-4), 갈릴리에 있는 길갈(수12:23), 유다의 경계 지역에 있는 길갈(수 15:7), 에발 산 근처에 있는 길갈(신 11:30) 등이 있으나, 여기의 길갈은 여리고 근처, 곧 요단강가의 길갈을 의미한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요단을 긴넌 후 진을 치고 12지파의 기념비를 세운 곳이다(수 4:19, 20절). 한편 이곳은 바로 요단 강가에 위치했으므로, 유다의 장로들이 다윗 왕을 맞이하는 이 편리한 곳이었다.

16 바후림에 있는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급히 유다 사람과 함께 다윗 왕을 맞으러 내려올 때에 

'바후림' 베냐민 지파의 성읍이다(16:5).
'게라의 아들 시므이' 시므이는는 베냐민 사람이며, 자기 지파에 상당한 자부심을 가진 자이다. 또한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압살롬 난을 피하여 도망갈 때 왕에게 돌 던지며 혹독하게 저주했던 사람이다. 

17 베냐민 사람 천 명이 그와 함께 하고 사울 집안의 종 시바도 그의 아들 열다섯과 종 스무 명과 더불어 그와 함께 하여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왕 앞으로 나아오니라 

'베냐민 사람 일천 명이 저와 함께하고.' `길갈'은 베냐민 지파의 경내에 있는 지역이었다(수 4:19). 그리고 예루살렘 성(城)또한 이 지파의 경계에 위치했다. 따라서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왕을 영접하기 위해 성의를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 왕을 마중나온 일천 명의 사람들은 시므이가 왕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데리고 온 자들이었다. 즉, 지난번의 큰 과오(16:5-8)를 용서해 달라는 표시로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왕의 환궁(還宮)을 환영함으로써 왕에게 아첨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베냐민 지파 내에서의 시므이의 실권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시므이는 일천 명의 사람들을 능히 동원할 수있는 지파 내의 실력자였던 것이다.

'시바도 그 아들 열 다섯과 종 스무 명으로 더불어' 시바는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의 종으로서, 사울의 유산을 관리하던 자였다. 그는 지난번 다윗 왕이 난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자기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여 므비보셋의 재산을 착복한 자였다(16:3, 4). 그런데 이제 다윗 왕이 복권하여 다시 돌아오자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다윗 왕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으로 마중나온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시바가 자기의 여러 식솔들을 데리고 온 것은 다윗 왕에게 잘 보이기 위한 아첨의 행동이었다.

'요단 강을 밟고 건너' 여기서 `밟고 건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 동사 `찰레아흐' 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듯 `급히 임하는 것'을 뜻하는 말이다(삼상 10:6, 삿 14:19, 15:14). 따라서 이 말은 시므이와 시바가 요단 강을 급히 건너 요단 동편에 있는 왕 앞에 당도한 것을 묘사하는 말이다. 이처럼 저들이 다윗 왕을 제일 먼저 맞이하고자 애쓴 까닭은 왕에 대한 충성심을 보임으로써, 지난 날의 과오에 대한 형벌을 면해보고자 함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시대의 조류에 재빠르게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두 인물을 본다. 즉 이들은 이제 정국이 다시 다윗의 시대로 복귀되자 자신들의 생명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누구보다 먼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다윗을 맞으러 발벗고 나섰던 것이다.

18 왕의 가족을 건너가게 하며 왕이 좋게 여기는 대로 쓰게 하려 하여 나룻배로 건너가니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할 때에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왕 앞에 엎드려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시므이가 왕의 앞에 엎드려' 여기서 `왕이 요단을 건너려 할 때에'란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베아브로 바야르덴' 을 직역하면 `그가 요단을 건넜을 때에'(as he crossed the Jordan)이란 뜻으로, 사실상 주어가 구체적로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혹자는 이 구절의 주어를 다윗 왕으로 본다. 그리하여 `다윗 왕이 건넜을 때에'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시므이와 시바일행이 황급히 요단 강을 건넜다고 한 17절의 기록과 어울리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서의 주어는 시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 구절에서는 황급히 다윗 왕에게 사과하는 시므이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은 '시므이가 요단을 건너자마자 곧(as soon as) 왕의 앞에 엎드려'라고 해석할 수 있다. 즉, 이 구절에서 우리는 다윗 왕이 아직 요단 동편에 있을 때에 시므이가 황급히 요단 강을 건넜고, 또한 요단 강을 건넘과 동시에 왕 앞에 무릎 꿇는 시므이의 즉각적(卽刻的)인 행동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가 왕 앞에서 즉각적인 굴복과 사죄의 행동을 취한 것은 지난날 그가 다윗 왕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던 큰 과오(16:5-8) 때문이었다.

19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이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내게 죄 주지 마옵소서...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이는 시므이가 구차하게 자기의 지난 날의 과오를 변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솔직히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다. 아울러 용서를 구하는 시기도 매우 시의(時宜) 적절했다. 그러나 시므이는 자기의 죄를 참으로 회개한 것은 아니었으며, 다만 자신이 무사하기만을 위해 빌었던 것이다.

20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 와서' 여기서 `요셉의 온 족속'은 다윗이 속해 있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를 가리킨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요셉 족속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 중 에브라임 지파를 의미한다(삿 1:22, 35, 시 78:67). 즉 에브라임 지파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 지파에 대한 지배권(支配權)을 갖고 있던 가장 강력한 지파였기 때문에, 흔히 `에브라임 지파'는 유다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이스라엘 온 지파를 통칭하는 말이었다. 결국 여기서도 요셉의 온 족속이란 말은 유다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총칭하는 말이다(왕상 11:28, 대상 5:1, 2, 암 5:6). 

이렇게 볼 때 베냐민 지파 소속인(4절) 시므이의 이와 같은 말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 자기가 제일 먼저 요단 강을 건너 왕을 영접한다는 아부의 말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이스라엘 온 지파의 `첫 사람'(The first Israelite)이라고 자처하면서 왕 앞에 절함으로써, 이제 온 이스라엘이 왕의 지배권 하에 있게 됐음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이스라엘이 다시금 다윗 왕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된 최초의 순간에 사죄함으로써 왕의 무서운 형벌을 피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므이의 처신은 비록 교활하고 가증스럽기는 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매우 대담하면서도 지혜로운 처신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므이의 이러한 처신속에는 진실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왕상 2:46).

2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대답하여 이르되 시므이가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를 저주하였으니 그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하지 아니하니이까 하니라 

'아비새가...가로되...죽어야 마땅치 아니하니이까' 일찍이 아비새는 시므이가 피난 중의 다윗 왕을 저주할 당시에도 의분을 터뜨리고 그를 죽이려 했었다(16:9). 지금 아비새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다시금 시므이를 죽일 것을 주장한다. 사실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저주한 자는 마땅히 처형시켜야 한다는 아비새의 말은 옳다(출 22:28). 
그리고 다윗도 아비새의 말에 감정적으로는 동의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피난의 긴 여정을 마감하고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는 것은 시기적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했다. 따라서 다윗은 아비새의 진언을 거절하고 시므이의 사면(辭免)을 허락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즉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16:5-13)를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도전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기름 부음 받은 자는 하나님의 대권을 위임받은 자라는 인식에 근거, 삼상 26:9-11)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비록 현실적인 문제(민심 수습)로 그를 당장에 처단하지는 않았지만 끝내는 처형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왕상 2:8, 9)
인간이 범하는 실수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과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그 주권적 사역을 방해하는 자에게는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22 다윗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너희가 오늘 나의 원수가 되느냐 오늘 어찌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겠느냐 내가 오늘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을 내가 알지 못하리요 하고 

'너희가 오늘 나의 대적이 되느냐' 여기서 `대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탄' 은 본래 '사단', 또는 '대적'을 의미한다(대상 21:1, 욥 1:6-9, 2:1, 시 109:6). 그러나 여기서는 `중간에서 길을 막는 방해자(妨害者)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민 22:22). 즉 다윗 왕은 지금 왕위(王位)를 회복하는 순간을 맞이하고 있으며, 온 나라는 새로운 태평시대를 앞두고 있었다. 이러한 마당에 선왕(先王) 사울의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실권자 시므이를 죽이는 처사는 아직껏 사울 왕가에 미련을 가지고 있는 베냐민 사람들의 원성을 사는 일로서, 곧 나라의 평화를 깨뜨리고 마는 치명적인 행동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시므이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아비새를 나라의 평화를 방해하는 방해자로 규정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개인적인 감정의 차원을 초월하여 나라의 안정을 내다보는 다윗 왕의 폭넓은 지도력을 볼 수 있다. 한편, 여기서 다윗왕이 아비새를 가리켜 `스루야의 아들들'이라고 복수(plural)로 칭한 것에 대해 반드시 아비새의 형 요압이 아비새의 주장에 협조한 것이라고 볼수는 없고(Smith), 다만 아비새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미리 경고를 주기 위하여 스루야의 아들들로 통칭 표현하며 책망할 듯하다. 
한편, 본절에서 시므이의 사면을 허락하는 다윗의 말 속에 `오늘'이라는 말이 세번씩이나 반복 언급되는 것은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에 `모든 지파의 화합'이라는 당시의 정치적 목적이 강하게 깃들어 있음을 은연 중 시사한다.

23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저에게 맹세하니라' 다윗 왕이 시므이를 사면(赦免)해준 것은 주로 정치적인 의도에서였다. 즉 다윗은 반대파인 시므이를 사면해 줌으로써. 이스라엘 지파 특히 베냐민 지파의 감정을 건드리지 아니하고 온 지파의 화합을 도모하려 했던 것이다. 즉 이러한 차원에서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한 다윗의 맹세는 온 나라의 화합을 추진하는 왕의 의도를 백성들에게 자연히 보여주는 일종의 제스쳐였다. 
그러나 후일 다윗 왕은 그의 임종시에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도록 명하였다(왕상 2:8, 9). 그리고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좇아 결국 시므이를 처형시켰다(왕상 2:46). 그런데 여기에 대하여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다윗은 결국 자신의 맹세를 지키지 않은 셈이다. 즉 다윗은 자신의 인간적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마침내 복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해야 한다'(시 15:4)고 읊은 사람은 바로 누구였던가?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벌하라고 부탁한 것은 자신의 맹세와 모순되지 아니한다. 
즉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사면 맹세는 자신의 집권 당대에만 유효한 것일 뿐, 이후의 왕에 대해서까지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윗은 솔로몬 치세 때의 번영과 안정을 위하여 암적 존재요 상습적 모반자인 시므이를 경계 처벌토록 부탁했던 것으로, 오히려 현명한 조처라고 볼 수 있다.

24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내려와 왕을 맞으니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그의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 그의 수염을 깎지 아니하며 옷을 빨지 아니하였더라 

'므비보셋이 내려와서 왕을 맞으니' 여기서 `내려와서'란 말은 므비보셋이 높은 고지에 있던 예루살렘에서 낮은 지대인 요단 강가의 계곡으로 내려왔다는 의미이다.

'그 발을 맵시 내지 아니하며...옷을 빨지 아니 하였더라' 이러한 므비보셋의 행동은 마치 부모의 상(喪)을 당한 자식처럼, 왕위를 찬탈당한 다윗 왕의 고통에 적극 동참한다는 의도에서 보여준 깊은 애도의 표현이었다(겔 24:17). 그러므로 이와 같은 므비보셋의 자세는 다윗 왕에 대한 그의 변치않는 충성심을 보여준 것이었다. 더욱이 새로운 집권자인 압살롬의 주변에서 다윗 왕을 위해 애도의 표시를 나타낸 것은 어떠한 환경 속에서라도 오직 다윗 왕만을 섬기겠다고 하는 그의 굳은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므비보셋의 모습은 말 많고 변덕스런 악인들(16절)의 자기 변호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는 화려한 언변보다 투박하고 진실된 삶이 더욱 가치있게 드러난다 (잠 11:20, 마 25:40). 그런 점에서, 비록 여기서 다윗이 그를 올바로 판단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보고 계셨을 것이다(빌 4:7).

25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예루살렘에서 와서' 이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와서'(Dathe, Thenius)란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석할 경우 24절의 `내려와서'(야라드)란 말과 중복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는 `예루살렘에 왔을 때'(LXX, Luther, Michaelis, Maurer)란 뜻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므비보셋이 이미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16:3의 내용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한편.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문은 `예루살렘이 왔을 때'(키 바 예루솰람)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거민의 대표자들, 또는 그 주민들을 의미하는 말이다(Keil, Lange). 즉 므비보셋은 다윗 왕을 맞이하도록 파견된 예루살렘 주민 대표단 가운데 끼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다윗 왕과 므비보셋의 만남은 요단 강변에서 있었다.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이는 다윗 왕의 책망조의 질문이다. 이처럼 다윗이 모처럼 만난 므비보셋에게 책망조로 말한것은 다윗 왕이 기왕에 므비보셋을 모함한 시바의 말(16:3)을 염두에 둔 까닭이었다.

26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실제로 절뚝발이는 나귀에 안장을 지을 수 없다. 따라서 본 구절의 실제의 뜻은 므비보셋이 그의 종 시바에게 나귀에 안장을 지우라고 명령한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기가 직집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자신이 한 것처럼 기록하는 것은 성경 기록의 문학적 특징이다. 우리는 그러한 예를 창22:3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종이 나를 속이고' 여기서 `속이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마' 는 우연한 거짓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빼앗기 위해 고의적으로 속이는 악한 행동'을 묘사하는 말이다(창 29:25, 수 9:22, 삼상 19:17, 28:12, 잠 26:19, 애 1:19). 따라서 이러한 용어를 사용한 사실로 보아 므비보셋은 여기서 시바를 정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므비보셋이 다윗 왕앞에서 시바를 거리낌 없이 정죄할 수 있었던 요인은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시바는 주인을 태우고 가야할 나귀에, 대신 자신의 이기적 목적을 위해 예물을 가지고 혼자 갔다(16:4). 즉 시바는 주인을 버리고 혼자서 다윗 왕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시바는 주인 집으로 돌아온 직후 곧 바로 다윗 왕의 명령대로(16:4) 므비보셋의 재산을 가로챘던 것이다.

27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참소하였나이다' 기본동사 `라갈' 은 '험담하다', '물어뜯다', '비방하다', 란 뜻으로, 곧 자신의 유익 또는 어떤 목적을 노리고 상대방을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중상하고 모략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이는 사단의 대표적인 속성이요, 악인의 가장 큰 특징이다(계 12:10).

'처분대로 하옵소서' 처음 다윗은 므비보셋을 의심했다(25절). 이에 므비보셋은 자신의 불편한 몸과 시바의 죄악에 관해 언급하고, 오직 다윗의 공의로운 판단에 맡길 뿐이라고 했다. 이처럼 므비보셋은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로 다윗의 인격을 인정하고 그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고자 했던 것이다.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여기서 므비보셋은 자기가 사울 가(家)의 사람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당시의 관례 대로라면 사울의 직계 혈통인 므비보셋은 새로운왕 다윗에게 죽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다윗 왕으로부터 어떠한 처분을 받더라도, 그저 지금까지 받은 은혜에 감사할 뿐 그외 다른 어떤 소원도 전혀 없음을 겸손히 말하고 있는것이다.

29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사울 왕가의 므비보셋에게 자신이 베푼 은혜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는 다윗의 말이다.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다윗 왕은 므비보셋의 재산중 절반만을 그에게 다시 환수시킨다. 이처럼 다윗이 절반만을 므비보셋에게 환수시킨 것은 분명히 므비보셋에 대해 불공평한 처사였다. 즉 다윗은 마땅히 므비보셋에게 모든 재산을 되돌려주어야만 공평했다(9:7-11). 
그러나 다윗이 시바의 참소와 므비보셋의 결백성(潔白性)을 확인하고서도 이같이 행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 듯하다. 다윗은 아마도 전 재산을 므비보셋에게 되돌려 줄 경우 16:4에서 내린 그의 결정이 경솔한 것으로 판명되므로, 자기의 약점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또한 다윗은 어쨌든 피난 시절에 시바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라 시바와 일단 약속한 내용(16:1-4)을 완전히 저버릴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다윗이 이러한 판정을 내릴 수 밖에 없도록 작용한 것은 당시 다윗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통치 원리이다. 즉, 이스라엘 왕위에 복권하는 마당에 있어서 다윗은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곧 원만한 탕평(蕩平) 정책을 실시하려고 했던 것이다. 더욱이 므비보셋이나 시바는 모두 사울가와 관련된 인물로서, 이들 중 어느 누구에게 일방적로 불이익이 돌아감으로써 사울가와 관련된 무리들 가운데 불만의 원인이 싹트는 것을 다윗은 원하지 아니하였던 것이다.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혹자는 이러한 므비보셋의 말이 왕의 처분에 어떠한 불만을 은연 중 표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윗의 인격을 진심으로 존경한 므비보셋의 언행(24, 27, 28절)을 살펴볼 때, 그가 이러한 처분에 대하여 다윗 왕에게 불만을 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구절을 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므비보셋의 이와같은 말은 재산 때문에 다윗 왕과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말이었다. 
즉 이번 일은 재산 때문에 벌어진 일로서, 이것으로 인해 므비보셋은 다윗 왕에게 오해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자기는 오직 다윗 왕으로부터 은혜를 받는 것, 곧 왕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며, 그러므로 재산은 없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므비보셋은 재물보다 다윗과의 관계 정상화를 더 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31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길르앗 사람 바실래' '길르앗'(Gilead)은 요단강 동북쪽이며, '바실래'(Barzillai)는 이곳의 대부호(大富濠)였다(17:27). 그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겨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소비와 마길과 더불어 다윗 왕을 후원한 사람이었다(17:27-29).

'함께 요단에 이르니' 여기서 '이르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바르' 는 '건너다', '통과하다'란 뜻이다(18:9, 창 15:17, 32:10, 민 32:21, 신 29:16, 욥 17:11, 잠 24:30, 렘 48:32). 따라서 본 구절은 바실래가 다윗 왕을 전송하는 과정에서,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넜음을 미리 보여주는 말이다(36절).

32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33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마하나임에 유할 때에 왕을 공궤하였더라' 여기서 '공궤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쿨' 은 `떠받치다', `유지하다', '제공하다' 등의 뜻으로, 특별히 물질적인 필요를 제공해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즉 이는 길르앗의 거부 바실래가 다윗 왕이 마하나임에 피신해 있는 동안 내내 왕과 그의 일행들을 공궤하였다는 말이다.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그동안 자기를 공궤해 준 바실래에게 보답하겠다는 다윗 왕의 말이다.

34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삽관대...올라가리이까' 이는 노령(老齡)을 이유로 다윗의 보은(報恩)을 겸손히 사양하는 바실래의 대답이다. 이처럼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겸손하며, 결코 모남이 없는 성숙한 인격의 소유자는 나이에 구애됨 없이 그 삶이 향기롭다. 특히 여기 등장한 바르실래는 부자들이 흔히 범하는 교만(삼상 25:9-38)과 무관한 자로서, 곤경에 처해 있던 다윗을 위문한 일이있다(17:27-29). 
더욱이 그때의 선행은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단지 도움이 필요한 자를 도운 순수한 행위였다(전 11:1). 한편 바실래의 거절을 통해 우리는 늙음과 죽음이 가져다 주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배우게 된다. 인간의 생명에는 그 연한이 있으며(시90:10), 기력은 반드시 쇠할 수 밖에 없다(전12: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겸손하며 온전한 인격을 지닌 자의 늙음과 죽음은 결코 추하지 않다(욥 12:12, 시 92:14, 15, 잠 16:31, 20:29)

35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흥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이는 선악(善惡) 간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말이다(왕상 3:9, 겔 44:23, 사 59:2, 욘4:11). 즉, 여기서 바실래는 자기는 이미 노령으로 판단력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에, 다윗 왕의 유능한 모사(謨士)가 될 수없는 처지임을 말씀드린 것이다.

'음식의 맛을...여인의 소리를 알아 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여기서 바르실래는 화려한 궁중 생활이 육체적 감각이 둔한 늙은이인 자신에게는 맞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36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어늘' 바실래는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넌 목적에 대하여 분명히 밝힌다. 즉, 그 목적은 왕의 상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배웅하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바르실래나 이러한 그의 목적을 `작은 일'(메아트)이라고 표현하였다(한글 개역 성경에는 그 뜻이 명확하게 번역되지 아니하였다). 
한편 혹자들은 바실래가 왕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지 않고 요단동편에서 왕과 헤어졌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주장은 본 구절의 내용과 상반되므로 지지할 수 없다(Lange).

37 청하건대 당신의 종을 돌려보내옵소서 내가 내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그러나 왕의 종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청하건대 그가 내 주 왕과 함께 건너가게 하시옵고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하니라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즉 고향에서 여생을 살다가, 가족의 장지(葬地)에 묻히고 싶다는 노거부(老巨富)의 바램이다. 이처럼 히브리인들은 특히 열조의 묘를 중시했다(창 49:29-31, 50:25). 즉 히브리인들은 조상의 묘 곁에 함께 묻힘으로써, 사후에도 조상들과 연관 되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바실래도 자신의 최후 안식처가 부모의 묘 곁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김함' 본 구절에서는 `김함'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없으나, 왕상2:7로 추추컨대 아마도 그는 다윗 왕을 전송하기 위해 부친 바르실래와 함께 내려온 바르실래의 아들인 듯하다(Josephus, 70인역). 그렇다면 여기서 바실르래는 다윗 왕의 호의에 감사하여 자신의 삶을 계속 이어나갈 아들 `김함'을 대신 다윗 왕에게 부탁함으로써, 다윗의 따뜻한 배려를 받아들인 것이다.

38 왕이 대답하되 김함이 나와 함께 건너가리니 나는 네가 좋아하는 대로 그에게 베풀겠고 또 네가 내게 구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하여 시행하리라 하니라 

'내가 너의 좋아하는대로 저에게 베풀겠고' 다윗 왕은 다른 왕자들에게 하듯이, 바르실래의 호의(17:27-20)를 생각하여 김함에게도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토지를 선사하였던 것 같다. 
한편 렘41:17을 보면, 베들레헴 근처에 `게롯김함', 곧 '김함의 숙소'가 있었는데, 이곳은 애굽으로 가는 여행객이나 또는 대상(隊商)들이 잠시 묵고 가는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후일 바로 이러한 여관에 요셉과 마리아가 일시 지냈다고 한다(눅2:7, Stanley, Jewish church, 2.201). 
이외에도 다윗 왕은 임종 시에 김함의 안전을 특별히 솔로몬에게 부탁함으로써, 바실래의 호의에 대한 보답을 끝까지 잊지 않았다(왕상 2:7).

39 백성이 다 요단을 건너매 왕도 건너가서 왕이 바르실래에게 입을 맞추고 그에게 복을 비니 그가 자기 곳으로 돌아가니라 

'입을 맞추고' 이는 다윗 왕과 바르실래가 아쉬운 석별(惜別)의 정을 나누었음을 보여 준다(룻 1:9).

40 왕이 길갈로 건너오고 김함도 함께 건너오니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왕과 함께 건너니라 

길갈로 건너오고 '길갈'(Gilgal)은 여리고 근처이며 요단 강변에 위치했다(19:15). 이곳은 역사적 유적지일 뿐만 아니라, 강변이었으므로 많은 무리의 집합이 가능하였다(수 4:19, 5:10-12, 9:6, 10:6, 14:6, 삼상 7:16, 11:14, 1513:7-9).

'온 유다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 여기서 유다 백성은 모두 모인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절반 밖에 모이지 못한 까닭은, 유다 백성이 다윗 왕의 예루살렘 귀환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윗 왕이 요단 건널 때에 그 황궁 행사의 주도권은 유다 지파가 행사하였다. 반면,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는 단지 그 주변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모일수 있었던 것이다.

41 온 이스라엘 사람이 왕께 나아와 왕께 아뢰되 우리 형제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둑하여 왕과 왕의 집안과 왕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가게 하였나이까 하매 

'온 이스라엘 사람' 이는 뒤늦게 왕의 귀환 소식을 듣고, 급히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과 합류한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킨다.

'유다 사람들이 어찌 왕을 도적하여' 뒤늦게 길갈에 도착한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은 유다 지파 단독으로 왕의 귀환을 주도했음을 알게 된다. 이처럼 유다 지파의 단독적인 행사가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왜냐하면 왕의 환궁(還宮) 문제는 온 나라의 협의하에 이루어져야 했으며. 이미 이스라엘 각 지파는 이 문제를 놓고 의논하고 있는중이었기 때문에(9, 10절), 유다 지파는 그 결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의 불평은 유다 지파와의 경쟁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에브라임 지파를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지파는 사사 시대 때부터 주도권을 장악했던 지파로서, 다윗 시대에 나라의 주도권이 유다 지파에게로 넘어가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삿8:1, 12:1). 또한 이들이 유다 지파소속인 다윗 왕 앞에서 유다 지파를 정면으로 불평한 것으로 보아, 유다 지파를 특별히 배려 하고 있는(11-15절) 다윗 왕에 대한 불만도 가진듯하다. 결국 이러한 이스라엘 지파의 불평은 수그러들지 아니하고, 곧 세바의 반란에 동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20:1, 2).

'왕을 좇는 모든 사람' 이는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쫓기어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갈 때, 왕과 함께 동행했던 무리들을 의미한다(15:17, 18).

42 모든 유다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라 너희가 어찌 이 일에 대하여 분 내느냐 우리가 왕의 것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었느냐 왕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 있느냐

'유다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에게 대답하되' 
다윗 환궁에 관련된 사건은 드러난 이유에 불과하며, 분규의 근본원인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 계속적으로 팽배해 있던 시기심과 경쟁심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긴장은 솔로몬 사후(死後) 남 북이 분열하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43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우리는 왕에 대하여 십분을 가졌으니' 다윗 왕이 자기 지파 소속이라고 주장한 유다 지파의 말(42절)을 반박하기 위해 이스라엘지파 사람들은 자기 지파의 숫자의 우월성(優越性)을 강조한다. 즉, 다윗 왕은 다른 모든 왕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의 왕이며 어떤 특정한 지파의 왕이 아니므로, 다윗왕은 유다 지파보다 훨씬 많은 열 지파나 되는 자기들과 더욱 관계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자신들은 다윗 왕의 귀환 계획에 마땅히 참여했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것이다. 한편,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 사람은 자기들이 열 지파라고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자기들로부터 두 지파를 제외시켰다. 이에 대해 혹자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레위 지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 문맥의 내용상 레위 지파가 유다 지파와 더불어 이스라엘 열 지파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다. 따라서 이 주장은 애매하다. 혹자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시므온 지파라고 주장한다. 그 이유로서 스미드 박사는 시므온 지파의 미미한 영향력과 유다 지파에 복속된 그 지파의 지역적 특수성을 든다. 
그러나 다윗 왕의 귀환 문제라는 첨예한 문제를 놓고 혈연의 우위성을 주장하는 유다 지파에 대해 숫적 우위성의 공동전선을 펴야 할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기서 구태여 약한 지파라고 해서 시므온 지파를 제외시킬 리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지파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열 한지파 중 유일하게 베냐민 지파가 유다 지파의 단독적인 행사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즉, 베냐민 지파의 실력자인 시므이는 일천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제일 먼저 왕 앞에 배알(拜謁)했던 것이다(16-20절). 따라서 이러한 베냐민 지파의 움직임은 분명히 다른 열 지파에게 불쾌감을 주었을 것이다. 결국 베냐민 지파는 이스라엘 왕국이 여로보암에 의해 돌로 쪼개질 때 유다 왕국에 속하게 된다(왕상 12:21).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이스라옐 열 지파는 다윗 왕의 귀환 계획에 자신들이 참여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 것이다.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 여기서 `강경하였더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솨' 는 `완강하다', `거칠다'. `격렬하다'. `날카롭다', `쓰리다', `고집이 세다'는 뜻이다(창 49:7, 출 13:15, 32:9, 33:3). 따라서 이 구절은 유다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욱 큰목소리로 감정을 섞어 격렬하게 말하였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이러한 감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스라엘 지파들에 의해 저질러질 새로운 반역의 조짐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