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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0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5. 1. 05:05

◈삼하20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마침 거기에 불량배 하나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세바인데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이었더라 그가 나팔을 불며 이르되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유산이 우리에게 없도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하매 

'거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솽' 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먼저 이 말은 장소적(場所的)인 의미로서 '거기서'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은 세바가 지파 간의 다툼이 벌어지고 있던 길갈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2) 또한 이 말은 시간적인 의미로서 '그 후에' 또는 '그 일로부터'를 뜻한다(왕상 17:13). 따라서 이 용어에서 우리는 결국 다윗 왕의 환궁(還宮)을 둘러싼 지파간의 다툼(19:41-43)이 원인이 되어 세바의 난이 일어났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베냐민 지파의 족장급 인물로서 사울가를 지지하는 과격한 선동가적 인물임은 분명하다.

'우리는 다윗과 나눌 분깃이 없으며' 
이스라엘이 다윗으로부터 독립하여 새로운 나라를 세움으로써, 그들의 토지나 백성들이 다윗의 간섭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세바의 반역적인 언사였다.

'이새의 아들' 세바는 '다윗왕'이라고 하는 명예로운 호칭 대신 '이새의 아들'이라고 호칭하고 있다. 이러한 호칭은 다윗을 일개 필부(匹夫)의 아들로 격하(格下)시키는 호칭으로서, 곧 다윗을 모욕하는 것이었으며(삼상 20:27, 22:7, 25:10),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적인 표현이었다.

'이스라엘아 각각 장막으로 돌아가라' 
이때 세바가 반란의 격문으로 외친 이 말은, 후일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리워질 때 여로보암에 의해 재주창된 말이라는 점에서 그 시사하는 바가 크다. 즉 "우리가 다윗과 무슨 관계가 있느뇨 이새의 아들에게서 업(業)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왕상 12:16).

2 이에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윗 따르기를 그치고 올라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따르나 유다 사람들은 그들의 왕과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따르니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올라가' 이는 세바의 반역적인 말에 동감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갈'에서 길을 돌이켜 세바를 따라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갔음을 보여 주는 구절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파 간의 감정 때문에, 자기들이 기름 부어 세운 다윗 왕을 또 다시 배반하는 이스라엘 지파의 반역적 행위를 발견할 수 있다.

'유다 사람들은... 합하여 요단에서 예루살렘까지 좇으니라' 세바의 반란이 시작된 길갈은 요단 강가에 위치해 있었다. 따라서 저자는 길갈을 넓은 의미에서 요단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한편, '합하여... 좇으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다바크' 는 '들어붙다', '연합하다'는 뜻을 가진다(창 2:24, 신 28:60, 욥 19:20, 29:10, 시102:5, 119:25, 31). 따라서 이 말은 유다 사람들이 다윗 왕을 철저하게 호위하는 가운데 길갈로부터 예루살렘 성까지 모시고 왔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3 다윗이 예루살렘 본궁에 이르러 전에 머물러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 열 명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먹을 것만 주고 그들에게 관계하지 아니하니 그들이 죽는 날까지 갇혀서 생과부로 지내니라 

'후궁 열 명... 생과부로 지내니라' 여기서 열 명의 후궁(後宮)은 예루살렘 성에 남겨졌던 후궁들로서(15:16),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백주에 강간했던 후궁들이었다(16:21, 22). 따라서 다윗 왕이 이들을 별실에다 가두어 격리시켜 놓은 것은 이들의 불결함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윗 왕은 수치를 범한 여인에 관한 하나님의 율법 조항(신 9:1-4)을 따라 이와 같이 조치한 것이었다. 즉, 모세 율법은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아내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신 24:4). 더군다나 아들과 동침한 여인과 다시 동침하는 행위는 가증한 근친상간죄에 해당되기 때문에(레 18:6-8), 다윗은 더더욱 받아들일 수 없었다. 따라서 다윗 왕은 이들을 성밖으로 내어 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윗 왕은 이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고, 그들을 죽이거나 내어 쫓는 가혹한 형벌만은 삼가했던 것이다.

4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너는 나를 위하여 삼일 내로 유다 사람을 큰 소리로 불러 모으고 너도 여기 있으라 하니라 

'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소집하고' 다윗 왕은 세바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아마사를 국민병 모집의 책임자로 임명한다. 이러한 조치는 지난번 아마사에게 제의한 약속(19:13)을 이행하기 위한 예비 조치였다. 즉 아마사의 등용 기회를 찾고 있던 다윗은 세바 반란 진압을 아마사에게 맡김으로써, 반란군을 진압하고 요압의 기(氣)를 꺾는 동시에 아마사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3중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너도 여기 있으라' 이는 국민병을 소집하고 아마사도 그곳에 함께 있으라는 말이다. 다윗 왕이 이러한 명령을 내린 것은 세바의 난을 진압할 군대의 사령관으로 아마사를 임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다윗의 이와 같은 조치는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즉 
(1) 다윗은 무엇보다도 아마사를 군대의 총사령관에 임명함으로써, 거칠고 반항적인 요압의 세력을 꺾으려 했으며, 
(2) 또한 압살롬 반군의 총사령관이었던 아마사를 내세움으로써, 압살롬의 난에 선봉장(先鋒長) 역할을 한 유다 지파의 사기를 북돋아 주려 했던 것이다(19:13). 그러나 이와 같은 다윗 왕의 의도는 군대 소집의 지체와 요압의 반발로 인하여 실패하고 만다.

5 아마사가 유다 사람을 모으러 가더니 왕이 정한 기일에 지체된지라 

'아마사가... 왕의 정한 기한에 지체된지라' 아마사가 군대의 소집을 기한내에 완료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아마사의 무능력에 있었던 것 같다. 즉, 다윗 왕은 요압에게 하듯이 아마사에게 명령을 내렸으나, 아마사는 경험많고 노련한 요압에 비해 실무(實務) 능력이 현저하게 뒤떨어졌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마사는 마하나임 전투에서 압살롬의 대군을 이끌고도 요압의 소수 정예병력에 의해 격파당했던 것이다(17:25, 18:6-8). (2) 유다 사람들의 비협조(非協調)에 었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마사는 반군의 지도자였다는 이유로 유다 백성들로부터 의혹과 불신임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까닭에 유다 백성들은 아마사의 모병(募兵)에 응하지 아니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19:13)이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즉 다윗의 아마사 등용 정책을 탐탁치 않게 여겨왔던 유다 사람들은 반역자요 변절자인 아마사 휘하에 들어가기롤 꺼려함으로써, 아마사의 등용을 방해하였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아비새에게 반란군 진압을 명함으로써 사태를 일단 수습하였다(6절). 
그러나 다윗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백성들과 측근을 무시한 행동으로, 특히 그의 측근들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기는 일이었다. 결국 과격하고 정치욕이 강했던 요압은(3:27, 18:14) 질투심과 원한에 의해 반역자 아마사를 살해하고 말았다(10절).

6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우리들을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아마사의 지체에 불안을 느낀 다윗 왕이 아비새에게 기습적인 군사 행동을 명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다윗 왕이 아비새를 세바 진압의 지휘자로 임명하는 것이 흥미롭다. 다시 말해서 평소 같으면 그동안 이스라엘의 군장(軍長)으로 계속 활약해 왔던 요압에게 명령했을 것이나 이례적으로 동생인 아비새에게 지휘권(指揮權)을 준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보아, 다윗 왕은 자신의 명을 어기고 압살롬을 죽인(18:14) 난폭한 성미의 요압을 상당히 못마땅해 했음을 알 수 있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세바의 난이 압살롬의 난보다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다윗 왕의 예상이다. 그 근거로서 다윗 왕은 세바의 난과 압살롬의 난 사이의 근본적인 성격 차이를 생각한 듯 하다. 즉, 압살롬의 난은 압살롬 개인의 야욕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세바의 난은 오래 묵은 지파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이번 세바의 난을 초기에 진압하지 못할 경우, 그 피해는 압살롬의 난 보다도 더욱 심각하게 온 나라에 미치게 될 것이라고 다윗은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다윗의 판단은 매우 정확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지파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결국 그 세(勢)가 약화된 르호보암 때에는 세바의 주창과 같은 구호를 내건 여로보암에 의해 나라가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이다(왕상 12:16, 17).

'네 주의 신복들을 거느리고' 여기서 '네 주의 신복들'이란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왕의 시위병들과 정예 군사들을 가리킨다(7절). 한편 여기서 다윗 왕은 지난번 압살롬을 피하여 도망갔을 때 아히도벨이 베푼 모략과 똑같은 지시를 여기서 내리고 있다(17:1-3). 즉, 일단 반기의 기치를 든 세바가 자기의 세력을 키워 대항해 오지 못하도록 그에게 시간적인 여유를 전혀 주지 않고 즉각적인 공격을 가할 것을 지시하였던 것이다.

'우리들을 피할까'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히칠 에네누' 를 직역하면, '우리의 눈을 빼앗을까'란 뜻이다. 즉, 여기서 '히칠' 의 기본형 '나찰' 은 '빼앗다', '찾다'는 뜻이며(창 31:16, 삼상 7:14, 삼상 30:8, 18, 호 2:9), 그리고 '눈'(아인)은 신 32:10, 슥 2:10에 관련시켜 볼 때 '가장 가치있는 것' 또는 '중요한 소유물'을 상징하는 말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다윗 왕국의 중요한 소유물들, 그것이 백성이든 아니면 토지이든 성읍이든, 그러한 것들을 세바가 빼앗아 가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다윗 왕의 말이라고 볼 수있다.

7 요압을 따르는 자들과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과 모든 용사들이 다 아비새를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 

'요압을 좇는 자들' 그동안 요압의 통솔을 받아왔던 요압의 정예 군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렛 사람들과 블렛 사람들' 이들은 왕의 근위병들이었다. 이들의 업무 분담에 대해서는 8:18을 참조하라. 다윗 왕이 이들을 파견할 경우 다윗 궁은 완전히 무방비(無防備)상태가 될 것이었지만, 다윗은 사태의 긴박성을 깨닫고 이들까지 파송하였다.

'모든 용사들' 여기서 '용사들'이란 히브리어로 '깁보림' 인데, 이들은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하여 유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다윗 왕을 추종한 다윗의 용사들을 의미한다(삼상 23:13, 27:2). 이들은 압살롬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한결같이 다윗 왕을 보좌하였던 충성된 일꾼들이었다(15:18). 다윗 왕은 이들까지 파견함으로써, 성중에 있는 모든 병력을 세바의 반란 진압에 투입하게 되었다.

8 기브온 큰 바위 곁에 이르매 아마사가 맞으러 오니 그 때에 요압이 군복을 입고 띠를 띠고 칼집에 꽂은 칼을 허리에 맸는데 그가 나아갈 때에 칼이 빠져 떨어졌더라 

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10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 요압과 그의 동생 아비새가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을새 

'아마사가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치 아니한지라' (1) 혹자는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요압이 떨어뜨렸다가 다시 주운 칼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그러했다면 아마사는 분명히 요압의 그 칼을 주의했을 것이다. (2) 이렇게 볼 때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요압이 자기의 품속 어디엔가에 숨겨놓은 '단검'(短劍)이었다고 우리는 볼 수 있다. 즉 요압은 자기의 칼을 떨어뜨림으로써 아마사를 안심케 한 후,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입마추는 순간 왼손으로 품 속에 있는 단검을 꺼내어 세게 찌른 것이다. 
이처럼 요압은 정치적인 원한과 질투로 인해 세번째의 살인(3:27, 18:14)을 하고 말았다. 물론 아마사의 죽음이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요압의 살인은 변명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살해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인 분노와 질투심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변명될 수 없는 죄악이다(마 5:22)). 
요압이 진정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였다면, 그의 원통함을 자신이 해결하려 들지 않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의탁하였을 것이다(롬 12:19). 결국 이러한 요압의 방자하고 난폭한 행동은 다윗의 분노를 더욱 사게 되고, 후일 요압을 제거하라는 다윗의 유언(왕상 2:5, 6)을 받은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반역에 가담한 요압을 마침내 죽이고 만다(왕상 2:28-35).

'요압과 그 동생 아비새가... 좇을새' 이는 요압이 아마사를 살해한 후 아비새와 더불어 스스로 군대의 지휘자로 나선 것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11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아마사 곁에 서서 이르되 요압을 좋아하는 자가 누구이며 요압을 따라 다윗을 위하는 자는 누구냐 하니 

‘요압의 청년 중 하나가’
그 순간의 중요한 과업은 세바를 신속히 추격하여 반란을 진압하는 일이었다. 일단 그 목적이 달성되자 요압은 자기가 다윗과 화해해야 할 입장에 놓였다고 느꼈다. 그러나 한편 피투성이가 되어 땅 바닥에 나뒹굴며 쓰러져 있는 아마사의 문제가 남아 있었다(12절). 요압은 자기가 신임하는 부하들 중 한 사람을 그 자리에 배치하고, 마치 아마사는 다윗의 사업을 배반했기 때문에 살해되었으며, 이제는 요압이 다윗의 왕권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반란군을 추격하는 일을 이끌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도록 했다. 지금 전쟁터에 있는 병사들에게 다윗에 대한 요압의 충성은 잘 알려져 있었고, 그들은 또한 아마사를 자기들이 최근까지도 대적하여 싸웠던 압살롬 군대의 지휘관으로 기억하였다. 
이 병사들은 아마사(압살롬 반란군 수장)를 거의 신뢰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가 제거된 것을 좋아했을 것이다. 물론 요압이 아마사를 죽인 것은, 경쟁자로서 그를 용납할 수 없어 자기의 옛 지위를 유지하고자 결심했기 때문이다.

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
13 아마사를 큰길에서 옮겨가매 사람들이 다 요압을 따라 비그리의 아들 세바를 뒤쫓아가니라 

‘그 청년이…보고’
세바를 추격 중이던 병사들이 죽어 있는 아마사를 보고 멈추어 서서 질문한 것은 당연했다. 추격하는 일에 지장을 주었으므로, 아마사의 시체를 길에서 치워버렸다. 그 지점에 도달한 병사들이 그들 앞에 가는 군인들을 따라 그냥 그들의 길을 계속하여 나아갔다.

14 요압이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 두루 다녀서 아벨과 벧마아가와 베림 온 땅에 이르니 그 무리도 다 모여 그를 따르더라 

'요압이'
제임스왕역」에는 단순히 “그가”로 되어 있음-역자 주). 세바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어지는 문맥으로 보면 '세바'가 더 적절하다.

‘아벨과 벧마아가’
이곳은 아마도 멀리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납달리 지파 내의 한 요새화된 성읍인 아벨-벧-마아가였을 것이다(왕상 15:20; 왕하 15:29). 그곳은 오늘날의 텔 아빌(Tell Abil)로 여겨지며, 단(Dan) 근처의 훌레(Huleh)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19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요단강 상류 서쪽의 한 야산에 위치했다.

‘베림 온 땅에’
이것은 아마도 아벨-벧-마아가 근처에 살고 있던 한 족속의 이름일 것이다. 그들에 대하여 알려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언급된 사람들이 세바 족속의 구성원인 비그리 사람들일 것이라고 믿는다. 세바는 비그리의 아들이었다(1절).

15 이에 그들이 벧마아가 아벨로 가서 세바를 에우고(포위하고) 그 성읍을 향한 지역 언덕 위에 토성을 쌓고 요압과 함께 한 모든 백성이 성벽을 쳐서 헐고자 하더니 

16 그 성읍에서 지혜로운 여인 한 사람이 외쳐 이르되 들을지어다 들을지어다 청하건대 너희는 요압에게 이르기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네게 말하려 하노라 한다 하라 

17 요압이 그 여인에게 가까이 가니 여인이 이르되 당신이 요압이니이까 하니 대답하되 그러하다 하니라 여인이 그에게 이르되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대답하되 내가 들으리라 하니라 

18 여인이 말하여 이르되 옛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아벨에게 가서 물을 것이라 하고 그 일을 끝내었나이다 

아벨은.. 사람 아벨이 아니라, 아벨 성을 가리킨다.
옛적부터 아벨 성에는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이 살았던 것 같다.

재판을 걸고 싸우던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고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아벨 성의 장로들에게 나아가 말했을 때 그 장로들의 중재안을 들으면 그 말에 대부분 수긍하고 순종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아벨은 지성인들이 있었고 권위와 존경을 받는 성읍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19 나는 이스라엘의 화평하고 충성된 자 중 하나이거늘 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머니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어찌하여 당신이 여호와의 기업을 삼키고자 하시나이까 하니

세바에 대한 요압의 전쟁은 아벨 성과 전쟁이 되었으며, 이제 그 고도(古都)는 평화를 사랑하는 그곳 거민들과 함께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여인은 아벨 성을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호와의 기업으로 보고 있다. 여호와의 기업이기에 누구도 손 댈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압은 반란자인 세바를 잡기 위해 여호와의 기업인 아벨 성을 쳐서 허물겠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로 요압을 책망하고 있다.

20 요압이 대답하여 이르되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다 삼키거나 멸하거나 하려 함이 아니니 

21 그 일이 그러한 것이 아니니라 에브라임 산지 사람 비그리의 아들 그의 이름을 세바라 하는 자가 손을 들어 왕 다윗을 대적하였나니 너희가 그만 내주면 내가 이 성벽에서 떠나가리라 하니라 여인이 요압에게 이르되 그의 머리를 성벽에서 당신에게 내어던지리이다 하고 

22 이에 여인이 그의 지혜를 가지고 모든 백성에게 나아가매 그들이 비그리의 아들 세바의 머리를 베어 요압에게 던진지라 이에 요압이 나팔을 불매 무리가 흩어져 성읍에서 물러나 각기 장막으로 돌아가고 요압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에게 나아가니라 

‘모든 백성에게’
그 여인은 참으로 현명함을 입증했다. 그녀는 이해 관계와 생존이 위기에 처한 백성들에게 가서 함께 그 문제를 의논했다. 만약 그녀가 세바에게 갔었다면 그녀는 틀림없이 백성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다만 자신에게 재난만을 초래했을 것이었다. 만일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아벨의 거민들은 세바의 이기심과 야망 때문에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었다.

23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24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25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26 야일 사람 이라는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23~ 26절에는 다윗의 신하들이 열거되어 있다. 
이보다 앞서 열거된 신하들의 명단(8:16~18)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세바의 반란이 진압된 후 요압은 군대장관으로서 자기의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23절의 브나야는 계속해서 다윗의 시위대장직을 유지했다(참조 삼하 8:18; 대상 18:17). 그는 다윗의 용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사자와 같은 모압 사람 둘”(23:20)을 죽임으로써 용맹을 떨쳤다(「개역한글판」에는 23:20이 “모압 사람 아리엘의 아들 둘을 죽였고”라고 되어 있으나, 「제임스왕역」에는 “사자와 같은 모압 사람 둘을 죽였고”라고 되어 있음-역자 주).

24절, 감역관이 되고.
문자적으로 “노동자 집단의 우두머리”(참조 왕상 5:14; 여기서 “감역관”이라고 번역한 것과 똑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왕상 5:14에서는 “감독”으로 번역했다). 이 관직은 삼하 8:16~18이나 대상 18:14~17에 나오는 초기 목록에는 언급되지 않았는데, 그것은 다윗의 통치 말기에 가서야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같은 관직을 솔로몬의 통치기간에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왕상 4:6)이, 르호보암의 통치 초기에는 “아도람”이 보유했다(왕상 12:18; 「제임스왕역」에는 왕상 12:18의 인물이 “아도람”으로 되어 있으나, 「개역한글판」에는 “아도니람”으로 되어 있음). 이 상이한 성경절들은 동일한 인물을 가리킬 가능성이 있다. 솔로몬의 치세에 강제 노역 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육체의 가시가 될 지경이었으므로, 북방의 지파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르호보암 통치 초기의 난국(難局)에는 아도람이 돌에 맞아 죽었다(왕상 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