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말씀대로면, 하나님이 베드로를 통해 사고 하셨는데 그 직후에 마귀가 베드로를 통해 사고했다는 겁니다.
베드로의 사고기능이, 더 높은 차원의 영적인 힘들에 의해 사용된 것입니다.
이 대화는 흥미롭게도 예수님의 이 호칭을 시작합니다. '바요나 시몬아' 이건 베드로의 본명입니다.
'시몬'이란 말은 갈대를 의미합니다. 갈대는 바람이 불면, 이리 눕고, 저리 눕는 게 갈대입니다.
예수님 말씀은 '아까는 하나님의 영이 너의 생각을 주도했으나, 지금은 악한 영이 너의 생각을 주도한다.' 라는 것을 예수께서 이 말씀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시면서 이 대화의 시작을 뭐라고 해요. '너는 갈대(시몬)다' 이렇게 시작하신 거에요.
갈대는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누워요.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눕습니다. '영'이라는 말은, '바람'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루아흐, 프뉴마 동일 그리고 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은 영향을 미칩니다.
어떤 방식으로요? 영은 인간의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면요. 우리의 생각이 그리스도께 엎드려 집니다. 우리의 생각이 '그리스도의 길'에 엎드러집니다. 우리의 생각들이 그리스도의 역사와 그리스도의 방법 앞에 엎드러진다는 겁니다.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신은 뭡니까?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향해 저항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생각에, 그리스도의 방식에 대해 저항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통로에 대해 항거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뻣뻣해지는 겁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실체 안에 살고 있다는 걸 알라'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너희가 갈대임을 알아라. 너희 생각이 갈대임을 알아라. 너희 생각은 너희 안에 부는 바람을 보여주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 선한 영에 감동안에 살고 계십니까, 아니면 악신의 책동안에서 사십니까?
우리가 그걸 알기 위해서 뭐 이상한 영계를 알 필요 없습니다. 내 생각의 길을 보면 압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길과, 그분의 통로와, 그분의 역사의 방식에 대해 엎드러지십니까, 아니면 저항하고 항거하십니까?
▲롬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는 우리가 종교적인 행위를 하냐/안 하냐..에 있지 않습니다.
즉 주일예배 나오고, 조금 더 해서 셀 모임도 하고.. 이게 귀중한 일입니다만 거기에 기독교의 본질이 있다는 건 아닙니다.
당연히 주일 예배에 오세요. 당연히 모임을 사모하세요. 그런데 여기서 얘기하려는 포인트는 이겁니다.
기독교는 바로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현존'이라고 말합니다. 즉 '내 안에 생각의 흐름'이 기독교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말은 아까 말씀드렸죠. 그리스도와 그분의 길에 대해 기울어지는 생각의 흐름을 일으키는 바람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은, 내 안에 '영의 생각'이 길처럼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생각입니다!
제가 사역하면서, 성경에 하나님과 명확한 하나님의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그분의 역사에 대해서, 권하고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주 몇 년에 한 번 정도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내 생각은 다릅니다!'
때로는 다양성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종종 그 생각의 출처와 방향 자체가 다른 경우가 많아요.
여러분 기독교는 외형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소속도 아니고, 종교적 행위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 안에 생각의 방향과, 생각의 출처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 되게 하는 내용입니다.
때로는 참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자신의 생각과, 생각의 출처, 생각의 방향에 대해, 조사하려 하지 않습니다.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자신의 생각임을 바람에 따라 굽어지는 것이, 자신의 생각임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렇다'는 겁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니까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버리는 것입니다.
이러면 거듭난 사람조차도, 육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전혀 기독교의 은혜와 복과 영광과 관계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 우리 정말 중심의 흐름에 대해 출처와 방향이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10:5
우리 안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지를 봐야 합니다. 육신의 바람, 악신이 책동이 역사하는지 파악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종교인인지, 거듭난 사람인지 시금석은 내 안에 있는 '생각의 방향' 입니다.
내가 거듭났더라도, 내가 그리스도와 동행하고 있는지 마귀에게 미혹당하여 덫에 빠졌는지.. 시금석은 '생각의 방향'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혀 생각하십니까, 내 생각에 사로잡혀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생각입니까, 마귀의 생각입니까? 영의 생각입니까, 육의 생각입니까?
▲하나님의 생각으로 갈아타라
사55:7~11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여기서 말하는 '악인, 악한 자'는 누굽니까? 악한 자는 도박, 사기 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순히 부도덕을 얘기하는 게 절대 아닙니다.
위 구절에서 말하는 '악한 자'는 뭡니까?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로마서는 말합니다. '육의 생각은 사망이요' 사망이란 말은 단절입니다. 즉 하나님의 생각과 단절된 채로, 자기 본위적인 생각으로 그냥 사는 상태입니다.
'악한 자는 자기 생각을 버리고'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55:7
사망은 단절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꽃병에 물을 채우고 꽃을 꽂아도, 그게 조화라면 물을 빨아올리지 못합니다. 색깔도 예쁘고 짱짱해 보이지만, 그 속에 생명의 진액이 올라오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꽃은, 그 물을 끌어올려 진액을 만들어 그 생기를 모든 곳에 공급합니다.
죽은 기독교, 육의 기독교는 종교적 행위는 가졌으나, 그 속에 하나님의 생각이 흐르지 않아요.
겉으로는 종교적 행위를 해도 결국 내 생각 내 느낌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느낌으로부터 단절된 자로 사는 상태! 이 상태로부터 회개하라고 말하는 겁니다.
조화와 생화를 구별하는 것은, 언뜻 보면 보이지 않지만, 자세히 보면, 분명히 다르고, 본질자체가 다릅니다.
종교 와 거듭남은.. 여러분 다른 겁니다. 영의 기독교 와 육의 기독교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그분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습니다.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처럼 높습니다.
여기서 감사한 게 뭔지 아세요?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라고 말씀하시고 끝나면, 이건 그림의 떡입니다.
그 좋은 생각, 그 열매 맺는 생각, 그 형통하는 생각, 그 생각이 우리한테 활용 가능해야.. 이게 좋은 얘기 아닙니까?
'내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 하고 끝난다면.. 그건 그림의 떡이죠.
'내 God 생각을 비처럼 내려주시겠대요.' 사55:10
하나님의 생각과 단절됐던 메마른 내 생각 안에 비처럼 하나님의 생각이 내려오게 한다는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