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의 백성들과 반역자들 삼하16장 2022.10.16.
우리가 지금 살펴보고 있는 삼하16장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나
다윗의 개인적인 삶의 관점에서 보나,
매우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왕위를 빼앗기 위한 반역 사건,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그 자리 차지하려고 했던 사건은
세상 역사가운데도 간혹 있었던 이야기이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압살롬이라는 아들이
다윗이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반역하는 이 반역 사건을
매우 특별하게 우리에게 제시해 주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 사건은 세상 역사 가운데서 가끔씩 일어나고 있었던,
즉 왕위를 차지하기 위하여 배반을 하고
그리고 아버지를 죽여서라도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그런 일들이 있었던
그런 사건들과는 구별되어, 우리에게 다른 것을 전해 주는지
우리는 오늘 그것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뭘 보여주려고 하시는 것인지..
우리는 '압살롬의 아들'의 반역 사건을 통해서 뭘 배워야 하는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쫓겨나는 다윗 왕은,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우리는 이 아들의 반역 사건을 겪고 있는 다윗을 지금 보고 있잖아요.
근데 그 다윗을 보면 누가 보이십니까?
이 다윗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를 명확하게 보게 됩니다.
▲삼하15:23 '온 사람이 큰 소리로 울며, 모든 백성이 앞서 건너가매
왕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니
건너간 모든 백성이 광야길로 향하니라'
다윗이 지금 기드론 시내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왜 건너갑니까?
아들의 죄 때문에!
반역한 백성들의 죄 때문에!
지금 그는 왕궁에서 나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살리기 위하여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전면전을 피함)
△그런데 이렇게, 아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 때문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고 있는 다윗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아들 되고 백성된 우리의 죄 때문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요18:1 '그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를 건너니라'
그래서 우리는 아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 때문에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다윗을 통해서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기드론 시내를 건넜다' 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하15:30 '다윗이 감람산 길로 올라 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예루살렘 성에 있었던 다윗이, 아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 때문에
기드론 시내를 건넜어요. 그리고 감람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올라갈 때, 머리롤 가리고, 발에 신을 벗고
울며 통곡하며 기도하며 그렇게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며
감람산을 올라가고 있다 라고, 본문 삼하16장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다윗을 통해서 누구를 보게 됩니까?
그 이후에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눅22:39 '그가 습관을 좇아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그 감람산의 겟세마네 라는 동산에 이르러서
땀이 피가 되기까지 기도하셨어요.
맨발로 눈물을 흘리며 갔던 다윗의 모습에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위하여서
땀이 피가 되기까지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삼하16:5~7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지금 감람산에서 울며 기도하며 갔던 그 다윗이
지금 수치와 조롱을 당하고, 특별히 (시므이에게) 저주를 당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 나를 저주하게 하셨는데
내가 듣지 않겠느냐?'
그래서 다윗은, 이 저주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시는 저주라고 생각하며
지금 저주를 수치와 조롱을 받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수치를 당하시고
조롱과 침뱉음을 당하시고, 저주를 당하셨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삼하16:9~1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아비새가 '저 죽은 개만도 못한 자의 저주를
내가 그치게 하겠습니다' 하며 칼을 빼들었습니다.
다윗은 그의 칼을 거두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오늘 이 수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저주다' 라고 하면서
그 저주를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근데 이것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게 됩니까?
그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의 종들이 와서 잡고자 했을 때,
베드로는 칼을 빼들고 그 종 말고의 귀를 자르면서 나섰고,
예수님은 그 베드로의 칼을 거두게 하시고
'내가 지금도 12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 동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죄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너희는 어떻게 되며
너희를 살리겠다고 기록되어 있는 말씀은 어떻게 되겠느냐?' 라고 말씀하면서
이 모든 저주는,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저주며
'이것을 내가 고스란히 받겠다'라고
수동형으로 자기 자신을 그들에게 내어주시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스란히 보게 되는 것입니다.
▲삼16:15절에 아히도벨이 등장하고 있는데요.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이르고
아히도벨도 그와 함께 이른지라'
아히도벨은, 그가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받아들여질 정도로 지혜로웠던..
압살롬이든, 다윗이든
'그는 하나님을 말을 전한다' 라고 말했던 삼하16:23
다윗의 가장 가까운 자요, 모사였던 아히도벨이 배반해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고통을
더 무겁고, 더 고통스럽게 했던
가장 가까운 모사이며, 가장 사랑했던 측근의 배신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봅니다.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3년 반이나 주님을 따라다녔던 가룟유다,
그에게 발까지 씻어주시면서 주님은 그를 섬겼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하셨던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유다에 의하여
배신을 당하시고 고통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아히도벨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또한 보게 되는 것입니다.
▲16:21~22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왕의 아버지가 남겨 두어
왕궁을 지키게 한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소서
그리하면 왕께서 왕의 아버지가 미워하는 바 됨을 온 이스라엘이 들으리니
왕과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의 힘이 더욱 강하여지리이다 하니라
22 이에 사람들이 압살롬을 위하여 옥상에 장막을 치니 압살롬이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니라'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말합니다.
'다윗의 후궁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십시오.
백성들이 다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십시오.'
당시 문화로 그런 행동은, 그 앞의 왕을 정복했다는 의미이기도 하지요.
사자들도 보면, 세력 싸움을 하다가 젊은 사자가 이기면, 이전 리더의 암컷들을 다 차지하는 것처럼,
압살롬은 다윗의 후궁들을 차지함으로써
다윗의 왕위를 계승하고 승리했다는 걸 드러내 보여주기도 했고
또 하나,이제 넘지 못할 선을 넘었다는 거죠.
이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윗이 더 이상 용서할 수없는 위치로 가게 만듦으로써
압살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와~ 이번 반역은, 우리가 승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겠다.'
이렇게 더 이상 협상의 여지가 없게 만들어 버리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압살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생명 걸고 모반을 완성하도록 하는 효과가 있었던 거죠.
다윗이 밧세바를 내려다보았던 그 옥상에서,
천막을 치고 침실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예루살렘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사무엘하 12:11~12절에 나타났던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였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1년이 지나도 회개하지 않고 있었을 때
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셨던 말씀입니다.
삼하12:11'여호와께서 또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보라 내가 너와 네 집에 재앙을
일으키고 내가 네 눈 앞에서 네 아내를 빼앗아 네 이웃들에게 주리니
그 사람들이 네 아내들과 더불어 백주에 동침하리라
12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지금 다윗에게 일어난 이 수치스러운 일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 수치와 조롱과 고통을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통하여서 받고 있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이 모든 것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계획해 놓은 그것을,
구약 성경에 있는 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알고 있던 대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짐으로써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느 일반 역사에 일어났던 반역 사건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거기에 특별한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아들의 반역을 통과하고 있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우리의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보게 되기 때문에
이 사건이 그렇게 중요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하는가요?
이 압살롬의 반역 사건, 우리는 또 무엇을 봐야 되고
하나님은 이 사건을 왜 특별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가요?
◑2.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체 하지만, 실상은 배신자가 누군지도
이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압살롬의 반역 사건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눈 사건이기도 하지만
백성들이 전체로 다윗 왕에게 등을 돌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기에게 등을 돌린 반역한 백성들,
그 짙은 어둠 가운데 둘러싸여져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았어요.
다윗의 통치 아래 있었으니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았는데
그 다윗을 반역한 이 짙은 어둠의 세력들 가운데
그 반역한 자들의 특징들을 보여주는 몇 사람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 반역한 백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첫 번째 사람은
이 반역의 주역인 압살롬 입니다.
압살롬을 어떤 사람인가요?
15:2 '압살롬이 일찍이 일어나 성문 길 곁에 서서 어떤 사람이든지 송사가 있어 왕에게 재판을 청하러 올 때에 그 사람을 불러 이르되 너는 어느 성읍 사람이냐
하니 그 사람의 대답이 종은 이스라엘 아무 지파에 속하였나이다 하면
:3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기를 보라 네 일이 옳고 바르다마는
네 송사를 들을 사람을 왕께서 세우지 아니하셨다 하고
:4 또 압살롬이 이르기를 내가 이 땅에서 재판관이 되고 누구든지 송사나
재판할 일이 있어 내게로 오는 자에게 내가 정의 베풀기를 원하노라 하고'
압살롬이 이렇게 했던 모습때문에,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았어요.
압살롬의 이 이야기 속에는, 압살롬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가를 보게 돼요.
아마 자기의 여동생 다말이 그 수치를 당했을 때
자기 형 암논 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2년 동안 시간이 지났는데도, 하나님도 다윗도
그 더러운 짓을 한 암논에게, 어떤 말도 한 마디 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아마 압살롬은 '와 이 나라는.. 그리고 내 아버지는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구나' 라고 생각했던 것 같고
그 마음 때문에 '내가 정의를 실현해야 되겠다'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암논을 죽이고 난 다음에도, 그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정의를 실행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사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아버지에게 호소하든지, 하나님께 구하든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내 여동생게게 일어났습니다'
'하나님 정의를 시행해 주십시오. 아버지, 공의를 시행해 주십시오' 라고
요청했어야 되는데
그는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로 올라가고,
자기가 왕의 자리에 올라가고,
자기가 공의를 시행하려고 하는 자기 의에 빠져있으며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하는 교만한 자입니다.
그가 바로 압살롬이고,
지금 이 압살롬의 반역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가 그 어둠 가운데서 특별히 드러나면서
압살롬 이라는 사람은 교만하고 '자기 의'에 빠진 자가
하나님의 나라, 교회 안에 있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또 이 짙은 어둠을 보여주는 특징을 가진 사람은 '시바'입니다.
16:1 '다윗이 마루턱을 조금 지나니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안장 지운 두 나귀에
떡 이백 개와 건포도 백 송이와 여름 과일 백 개와 포도주 한 가죽부대를 싣고
다윗을 맞는지라
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시바가, 다윗이 도피해 가는 곤고한 때에 찾아왔는데
어마어마한 물질과 또 도울 수 있는 물품들을 가지고 찾아온 거에요.
그는 므비보셋의 시종 이었어요.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이고 사울의 손자입니다.
근데 그가 두 다리를 절었어요.
그런데 다윗이, 자기에게 선을 베풀었던 요나단 때문에
므비보셋을 보호해 주고 있었죠.
그의 종 시바가, 다윗이 곤고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에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시바는, 반역 사건이 일어나고 나니까
"내 주인은 '이제 하나님께서 내게 다시 왕위를 주시려나 보다' 라고 말하면서
다윗 당신을 배신했습니다." 라고 다윗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시바는, 만약에 다윗이 이 사건을 진압하고 다시 왕이 되었을 때
'므비보셋만 떨어뜨리면, 내가 위로 올라가겠다..' 그는 시세를 잘 읽었어요.
지금 다윗이 피난가지만, 그가 다시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올 것을 정확히 내다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다윗을 이용해 먹기 위해서
피난가는 다윗에게 선을 베풀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시바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바 같은 사람이 있죠.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있더라는 거죠.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았어요. 헌금도 열심히 하고, 헌신도 열심히 하고
다윗을 잘 섬기는 것 같은데
결국은 내 유익을 위해서, 뭐 하나 얻어 보겠다고 왕을 이용하려고 하는
시바와 같은 사람이 거기 있다.. 라는 것을 또 보게 됩니다.
▲이 짙은 어두움 가운데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시므이 입니다.
시므이는 정말 선을 넘어버린 사람입니다.
16: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친족 한 사람이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그가 나오면서 계속하여 저주하고'
지금까지는 조용히 살다가,
다윗의 힘이 빠지니까 본색을 드러내는 거예요.
시므이는 사울 집안 사람이에요.
몰락한 왕가의 집안 사람이었죠.
사울이 권좌에 있었을 때는 뭔가 혜택을 받았겠죠.
그런데 다윗이 왕이 되고 나니까, 잃어버린 것들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다윗이 힘이 있을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다가
지금 다윗이 힘을 잃어버린 거 같을 때,
돌을 던지면서 다윗을 향해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 시므이는 다윗의 나라 안에 있는 거 같았지만
다윗의 주권이나 왕권이나, 자기의 주인됨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던 자죠.
다윗의 백성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도 다윗을 왕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 그가 바로 시므이고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것 같은데
한 번도 자기 자신이나, 자기가 가진 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한 번도 그 분이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
그가 바로 시므이 같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아히도벨 입니다.
그냥 하나님이 주신 큰 지혜를 가지고, 다윗 왕국에서 유력한 자였습니다.
그는 다윗과 함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라를 섬긴 다윗의 모사였습니다.
근데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을 해 버림으로써
다윗에게 큰 어려움과 고통을 가져다준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서도 있었죠.
항상 예수님의 오른편이나 왼편에 있었던..
돈궤를 맡을 만큼 예수님이 신뢰해 주었던..
끝까지 그가 예수님을 버릴 것을 알면서도
발을 씻겨 주셨던 가룟유다!
잘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신, 배교해 버리는
아히도벨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거죠.
◑3. 바로 하나님 나라의 진정한 백성이 누군지도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통해서 보게 됩니다.
사실 오늘 이 본문에서는
우리의 진정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별빛이 더 반짝이는 것처럼
이런 사람들은,
진짜 하나님의 백성을 더 빛나게 하는 빛이었어요.
어둠이 더 짙을수록, 진짜 빛이 무엇인지가 더 잘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이런 짙은 어둠 가운데서도
다윗의 진짜 백성이 누군지를 보여 주는 사람들!
본문의 압살롬의 반역 사건을 통해서
진정한 하나님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그 왕의 진짜 백성이 누군지를
이 어둠 가운데서 보여 주는데
▲첫 번째 사람은 잇대와 같은 사람입니다.
15:19~21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20 너는 어제 왔고 나는 정처 없이 가니 오늘 어찌 너를 우리와 함께 떠돌아
다니게 하리요 너도 돌아가고 네 동포들도 데려가라
은혜와 진리가 너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1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
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참 감동적인 대사입니다.
잇대는 블레셋 가드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것도 다윗과 처음부터 함께 했던 사람도 아니고
아마 다윗이 블레셋에 망명했을 때,
다윗의 소문을 듣고 그때부터 따라나섰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가 와서 다윗을 따라가겠다고
그것도 기드론 시내를 건너 광야길, 고생길, 돌아올 수 있을지/없을지도 모르는
그 길을 가는데, 잇대가 따라나서려고 했을때
다윗은 '압살롬에게 가라. 그러면 네 삶은 편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돌려 보내는데도 잇대가 뭐라고 말합니까?
짙은 어둠 가운데서, 보석같이 빛나는 사람입니다.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잇대는 왕이 주는 혜택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왕 자신을 사랑했던 자이고,
왕을 따라감으로써, 자기에게 무엇이 주어지던지
왕과 함께 있는 것을 가장 기뻐했던 사람이었죠.
△우리는, 예수님 잘 믿으면, 그리고 사역 열심히 하고, 기도 열심히 하고 하면,
물론 고난도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지만
주님이 좋은 것만 주실 거라고...
우리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그런 (기복주의) 의식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 대부분을 보면,
기쁨,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많은 고통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돼요.
그러면 그 순간에 '돌아가라!' 라고 말하면 *다윗이 잇대에게 '돌아가라'고 했죠
정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요.
좀 더 편안한 곳으로, 좀 더 리스크 없는 곳으로!
근데 잇대는, 다윗 왕과 함께 있으면
얻을 수 있는 것 때문에 다윗 옆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왕을 사랑했던 자입니다.
그리고 왕과 함께 함으로 인해서 지금 큰 고난이나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어요.
그런데도 '그 고난도, 왕과 함께라면 나는 걸어가겠습니다.
혹 내 이름 한번 내지 못한 채, 이 전쟁에서 내가 압살롬에게 죽어서
제가 그냥 괜히 이스라엘로 귀화해서
나를 따라왔던 자들 6백인까지 몰살당하는 그런 일이 있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과 함께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던 그 사람이
이 짙은 어둠 가운데서 이 사람이
진짜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이다.. 라고 잇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아비새
16:9~11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10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아비새는 시므이가 하는 저주로 들었을 때
그 말이 자기에게 거슬리는 것이 아니라,
감히 왕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마치 울분에 차서 베드로가 칼을 빼들고 말고의 귀를 잘랐던 것처럼
그렇게 충성스러운 자였어요.
'내가 건너 가서 그(시므이)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얼마나 열받았겠습니까.
이때 다윗은 16:10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이때 아비새는 그의 감정이 그의 주인이 되거나
그의 생각이 그의 주인이 되거나
그의 충성심이나 공명심이 주인이 되지 않고
다윗의 말에 칼을 내려놓습니다.
이 아비새가 같은 사람.. 그가 바로 진정한 백성이다.. 라고
본문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살다보면, 감정이 내 주인이 될 때가 있죠.
하지 말아야 되는데, 입으로 확 험한 말을 뱉어 버립니다.
그리고 내 생각이, 나의 주인이 될 때가 있고
생각 하기도 전에, 느끼기도 전에
벌써 행동부터 하는 분들도 있어요.
어떻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존재인데..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 가운데서 칼을 땅에 던지더라도
내려놓을 수 있는 자,
욱 할 수도 있고, 범죄 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잘못 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그때 '그렇게 하지 말라' 말씀하시면
그 말씀에 내 삶을 조정할 수 있는 자!
그가 바로 이 짙은 어둠 가운데서
아비새를 통해 드러난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죠.
▲사독과 아비아달 제사장
15:24 '보라 사독과 그와 함께 한 모든 레위 사람도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어다가 하나님의 궤를 내려놓고
아비아달도 올라와서 모든 백성이 성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도다'
이 두 사람은 제사장입니다.
사독의 아들은 아히마아스, 아비아달의 아들은 요나단입니다.
27 '왕이 또 제사장 사독에게 이르되 네가 선견자가 아니냐
너는 너희의 두 아들 곧 네 아들 아히마아스와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을 데리고 평안히 성읍으로 돌아가라
28 너희에게서 내게 알리는 소식이 올 때까지
내가 광야 나루터에서 기다리리라 하니라'
28절에 '너희는 내 정보통이 좀 되어 달라'
사독과 아비아달, 그리고 아히마아스, 요나단은
같이 있고 싶었지만 '너희는 성읍에 들어가 있거라.
그리고 거기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게 알려다오'
이거 생명 걸어야 되는 일이거든요.
그리고 내가 있고 싶은 곳이 아니라
다읫이 있으라고 한 곳에 있게 된 거에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안전한 일이 아니라
왕이 하라고 한 일을 하게 되는 거죠.
▲아렉 사람 후새
압살롬의 말에 의하면, 후새는 '다윗의 친구'입니다.
최측근이란 말이죠. 16:17
다윗이 도망갈 때, 그가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왔죠.
다윗은 그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압살롬 편에 (스파이처럼) 심어 놓습니다.
그래서 압살롬에게 가게 됩니다.
16:17 '압살롬이 후새에게 이르되 이것이 네가 친구를 후대하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네 친구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6:18 '후새가 압살롬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에게 속하여 그와 함께 있을 것이니이다'
'여호와와 이 백성 모든 이스라엘의 택한 자'는 압살롬을 가리킵니다.
후새는, 압살롬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이런 아부성 발언을 했던 것이죠.
19 또 내가 이제 누구를 섬기리이까 그의 아들이 아니니이까
내가 전에 왕의 아버지를 섬긴 것 같이 왕을 섬기리이다 하니라'
다윗의 친구로 알려졌던 후새가,
압살롬의 추종자들이 '왕 만세, 만세!' 할 때
자존심이 얼마나 상했을까요.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맡긴 그 사명 때문에..
17절에 보면 압살롬이 후벼 파죠.
'이것이 네가 친구(다윗)를 후대하는 것이냐?'
'너는 지금까지 다윗 옆에서 다윗의 친구로 여겨지면서
그렇게 가깝게 지내다가,
이제 나한테 와서 나보고 왕이라고?' 이렇게 후새를 조롱했습니다.
그렇지만 후새는 꿋꿋이 참고 견디며, 왕을 위해서 자기 사명을 다합니다.
이렇게 사독, 아히마아스, 아비아달, 요나단, 후새 같은 사람은
왕이 준 사명을 위하여 자기 삶을 드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누가 진짜 왕의 백성이냐?'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명,
-내가 있고 싶은 곳이 아니라 그 분이 있게 한 곳,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그 분이 하라고 하신 일,
-내 자존심과 내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명예와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자,
이 사람들이, 이 짙은 어둠 가운데서
진짜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삼하15:15 '왕의 신하들이 왕께 이르되 우리 주 왕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리이다 보소서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하더라'
15:30 '다윗이 감람 산 길로 올라갈 때에 그의 머리를 그가 가리고
맨 발로 울며 가고 그와 함께 가는 모든 백성들도
각각 자기의 머리를 가리고 울며 올라가니라'
'당신이 행하시는 대로 우리도 행하리이다'
하고 왕을 따라갔던 것입니다.
다윗만 머리를 풀고 맨발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곁의 모든 사람들이 다윗과 같은 모습니다.
그 왕을 닮은 자, 그 왕과 같이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에도 동행하는 자,
그들이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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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이 이 이야기를 통해서 경험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경험하신 것을 1000년 전에 경험함으로써
그가 메시야를 예언하고 있고
주님이 하셔야 하는 고백을 삶을 통해서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압살롬에게 쫓겨 기드론 시내를 건너 감람산으로 올라갑니다.
울면서 맨 발로 갔다고 했습니다(15:23, 30).
1000년 후에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려고 가셨던 바로 그 길입니다.
그가 아히도벨에게 배신을 당하고 쓴 시편은
우리 주님께서 제자 가룟 유다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을 언급하실 때
인용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시 41:9; 요 13:18).
다윗은 주님께서 경험하실 일들을 놀랍게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인생을 통해서 그런 일을 겪게 하심으로써
메시야를 놀랍게 예언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의 그 고통 속에서 지은 시들과 기도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아들에게 쫓겨 광야로 도피하는 다윗의 모습은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인생의 광야에서
모든 조롱과 비참을 경험하신 주님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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