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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19장 왕의 귀환을 맞이하는 사람들

LNCK 2023. 5. 5. 11:37

◈(다윗) 왕의 귀환을 맞이하는 사람들    삼하20장   여러설교정리

◑압살롬이 죽었지만, 12지파의 지지를 받아서 왕이 된 다윗

이제 반란의 주축인 아들 압살롬이 죽었어요.   삼하18장  
반란자의 수괴 압살롬이 죽었고 쿠데타는 진압이 됐습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압살롬이 죽었다고, 하루 아침에 문제가 말끔히 정리된 것은 아니었어요.

반역자가 왕이 되었고, 그는 왕으로 정식으로 추대를 받은 상태였어요.
원래 왕 다윗은, 실각하고, 멀리 어디로 도망 가 있었던 거예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대표들이 말하기를
19:10 '우리가 기름을 부어 우리를 다스리게 한 압살롬은 싸움에서 죽었거늘’

이 구절은 압살롬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는 공식적인 행사, 
곧 기름 부음 받는 의식이 분명히 행해졌음을 알 수 있죠. 
12지파 장로들이, ‘우리가 압살롬에게 기름을 부었다’고 이실직고 합니다. :10

압살롬의 공식적인 즉위는 다윗 왕의 복권에 다소 장애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다윗 왕이 복권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절대적인 지지 선언이 그에게 또다시 필요했던 것이죠.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다윗 왕은 압살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에도
백성들의 대대적인 지지선언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압살롬은 죽은 상태이지만, 
지금 제도적으로는, 전체 이스라엘이 압살롬을 지지 선언한 상태입니다. :10

그러니 (마치 민주주의처럼) 12지파의 대표들이
압살롬 지지를 철회하고, 다시 다윗 왕 옹립을 선언하는 공식 절차가 있어야만
다윗 왕이 예루살렘에 왕으로 당당하게 귀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지금 칼과 창으로, 그들을 억압해서 왕이 되려는 게 아니잖아요.
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될 때 그랬던 것처럼, *5:1
다시 한 번 12지파의 대표들이 나아와서, 
‘우리의 왕이 되어주소서’ 하고 지지선언을 받아야 했습니다. 

본문에 다윗은 그 과정을 또다시 통과합니다

-이에 가장 먼저 유다지파가 다윗 왕을 다시 왕으로 청빙합니다. :14~15
-다음엔 시므이와 베냐민 지파 1천명이 다윗을 왕으로 지지합니다. :16~17
-나머지 10지파의 다윗 왕 지지는, 43절에 이렇게 나타나 있습니다.

43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우리는 나머지 열 지파’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10지파는, 유다지파가 다윗을 왕으로 모셔오는 일에 독단적으로 처리했다고,
그 일을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합니다. :43
 
이 말은, 10지파도 다윗 왕을 지지하는 선언을 일단 천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12지파 모두의 지지 선언을 받고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왕의 귀환’을 하게 됩니다. 

물론 다윗이 왕으로 재추대 되는데, 모두가 다 동의한 것은 아닙니다. 
베냐민 지파 세바가 또 난을 일으킵니다. 20:1 다음 장에서 살펴보고요.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 왕의 예표인 다윗 왕의 모습을 봅니다. 
다윗은 처음 왕이 될 때도 그랬듯이,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지 않습니다.
칼과 창으로 백성들을 윽박질러서 왕으로 군림하려고 하지도 않았죠.

다윗은, 무슨 20세기 민주주의 제도를 보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유다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지지를 얻고,
다음에는 나머지 10지파의 지지를 얻어서
‘국민이 추대한 왕’이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게 바로 ‘그리스도-왕’의 모습입니다. 
그분은 ‘만왕의 왕’이시지만, 백성들의 지지가 있을 때만
비로소 당신의 왕권을 행사하십니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는 백성들에게는
그분은 강압적으로 ‘왕’이 되지 않으십니다. 

오직 부드럽고 잰틀하게, 백성들이 자신을 ‘왕’으로 영접해 주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의 지지가 있을 때.. 그는 교회의 지도자가 됩니다. 
만약 교인들의 지지가 없다면.. 조용히 물러나서, 다시 지지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본문에 의외의 사건이 하나 불거집니다. 
그것은 10지파가, 다윗 왕과 유다지파에게 불친절한 것입니다. :43
결국 그들은 나중에 여로보암 때 독립해서 ‘북이스라엘’을 세우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신약 복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수천 년이 지난 지금이나
대부분 사람들은 넓은 길로 갑니다.
좁은 길을 찾는 사람은, 적습니다.

하나님은 ‘다윗 언약’을 통해, 그들에게 왕을 세워주시고
그 왕의 통치가 영구할 것을 약속하셨지만  *삼하7장
10지파 majority 가 거기에 적극 응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약시대엔, 오히려 그리스도-왕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왕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왕의 통치를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그래서 구원 받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수에 비해서 소수이며
10지파에 비해서 두 지파만 왕을 따르며   *10지파 속에 알곡, 2지파에도 가라지 있음

마치 노아홍수 때 구원받은 사람들이 소수이듯이
언제나 모든 시대에 ‘남은 자’만 구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패턴을 본문 삼하19장에서도 보게 되는 거죠. *진짜 분열은 솔로몬 때 일어남, 조짐 시작

반란 수괴 압살롬이 죽임을 당하고, 
요압이 나팔을 불자.. 전쟁은 그쳤습니다. 
압살롬의 군대는 2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살아남은 자들은 뿔뿔이 집으로 돌아갔죠. 18:7

그렇다고 모든 사건이 깨끗이 완결지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에 대한 반대 세력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윗은 정신 차려야 되는 그런 상황이었고 
끝까지 자신을 따랐던 사람들을 잘 추스려야 되는 그런 상황이 되었어요.

다윗이 그렇지 못하고, 아들의 죽음을 놓고 슬퍼만 하다가
요압에게 쓴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요압의 말이 옳았죠. 19:5~7

그런 다윗의 잘못이 있지만, 리더십의 부족함이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진정한 왕을 거부하는'
못된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창세기~계시록까지 매 시대 나타납니다.
나는 오늘 하나님, 그리스도 왕께 진정 복종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죄악의 본성을 따라 왕을 거부합니까?.

 

◑환궁하는 다윗을 맞이하는 세 사람, 시므이 - 므비보셋 - 바르실래

오늘 본문은 반역을 당했지만, 그러나 압살롬의 죽음으로 인하여 
승리를 얻은 다윗 왕이, 드디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환궁하는 장면입니다. 

또 이제 그 왕을 영접하여 맞이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이제 왕과 마주하게 되었는데요. 
본문은 이제 이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왕이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또 왕은 그들에게 무엇을 베풀어 주고 있는지 
이것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첫번째는 왕께 범죄한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었다.. 라는 것입니다. 

환궁하는 다윗을 첫번째 맞이한 사람은 시므이입니다. 19:16
시므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시므이는 다윗이 기드론 시내를 건너 피난 갈 때,
그에게 돌을 던지고, 흙을 던지고, 침을 뱉고 저주하고 조롱했습니다.  
왕에게 큰 죄를 범했던 자입니다. 16:5

그런데 19~20절에, 시므이가 다윗 앞에 제일 먼저 나아와, 회개하고 있습니다. 
'왕께 아뢰되 내 주여 원하건대 내게 죄를 돌리지 마옵소서 내 주 왕께서 
예루살렘에서 나오시던 날에 종의 패역한 일을 기억하지 마시오며 
왕의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
왕의 종 내가 범죄한 줄 아옵기에 오늘 요셉의 온 족속 중 내가 먼저 내려와서 
내 주 왕을 영접하나이다 하니'

그는 다윗 왕께 크게 범죄한 자였어요. 
그러나 지금 베냐민 지파 사람 1천 명을 데리고 영접 나왔어요. :17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베냐민 지파의 지도자 급입니다.
이것이 환궁하는 다윗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1)

어쨌든 공적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기가 왕에게 죄를 범했다 라는 것을 시인하고 인정하고 
그리고 용서를 구하고 있는 자가 바로 시므이 임을 보게 됩니다. 

이러한 시므이에게 다윗은 어떻게 합니까?

21절에 아비새는, 시므이는 당연히 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23절 '왕이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에게 맹세하니라'

다윗 왕은, 마땅히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될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긍휼은 뭘 더해주는 거예요. 플러스
자격이 없는 자에게 뭘 더 해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는 거예요. 

자비는 뭘 주지 않는 거예요.  마이너스
마땅히 받아야 될 벌이 있는데, 그걸 주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시므이는 마땅히 죽어야 하는데 
다윗 왕이, 공적으로 자기의 죄를 뉘우치고 또 그것을 시인하고 회개한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라는 것을 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로 
왕께 범죄한 자가 회개하면,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우리가 범한 하루하루의 죄에 합당하게 
하나님께서 만약 벌을 내리셨다면,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은 범죄한 자가 회개하고 주께 돌아와 용서를 구할 때마다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처음에, 하나님 없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갈 때도 
'주여, 내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근거로 해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예수님께 내리신 그 벌로 인해서 우리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자비를 베풀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우리는 범죄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를 자비로 대해주십니다. 

본문은, 범죄한 자가 회개하면.. 자비를 베풀어 준다.; 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 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자족함, 만족함'을 베풀어 주십니다. 

본문에 두 번째로 환궁하는 왕을 마주하는 사람이 있는데 
24절에 므비보셋입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의 아들, 사울의 손자입니다. 
혼란 중에 유모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두 다리를 다 절게된 그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되었어요.

그는 다윗 왕이 피난갈 때,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여차여차 해서

29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30절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그는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예루살렘 성으로 불림 받아서 
왕자 중의 하나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 :28

그러니 지금 므비보셋은, 자기 재산을 절반을 시바와 나누라고 
다윗이 명령했지만.. 전혀 불만이 없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의 관심은, 왕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그는 족하다는 것입니다. 시23:1

그는 부친 요나단과 맺었던 언약때문에 
다윗의 아들처럼 대우를 받는 큰 은혜를 입었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이 떠난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24
그의 발에 맵시를 내지 않았고, 그의 수염을 깎지 않았고 옷을 빨지 않았어요.'

다윗이 쫓겨나간 날부터, 평안히 돌아오는 날까지 이렇게 했다는 것은 
그가 받은 은혜에 감복해서, 다윗을 실제로 사모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거예요. 
진짜로 다윗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재산이 절반이 깎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지요.  :29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시바와 재산을 반반 나누라고 한 것은,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주2)를 꼭 참조해 보세요.

졸지에 자기 재산의 절반을 뺏기게 된 므비보셋 입장에서는 어떨까요?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시바의 고소에 대해, 자기가 충분히 이유를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네 재산을 시바와 반반 나누라' 라는 처분을 주었던 것입니다. 

엄청 억울하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므비보셋은 어떻게 말하냐면,
27 '왕의 처분대로 하소서.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당신의 내리는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이니 당신이 처분대로 하십시오!' 
라고 말하면서 

왕을 사랑했던 이 므비보셋은
왕이 어떤 처분을 내리든지, 그걸 그대로 수용합니다.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
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신약적으로 말하면 '구원 받은 은혜' 그것 하나 만으로도 족하다는 것이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은혜! 그것 하나 만으로도 만족하다는 뜻입니다.

근데 더 놀라운 것은 30절입니다.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재산의)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신약적으로 말하면 어떤 형편에서든지 '자족하는 은혜'입니다. 
그러니 재산을 시므이에게 다 줘도 상관없다는 거죠.

'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왕이 조금 불의하게 대하는 것 같고, 불리하게 대하는 것 같고, 
억울하게 대하는 것 같아도.. 
그 속에 넘치는 만족, 자족함이 있다'는 거죠.

신약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왕을 따르다 보면 (내 연약한 믿음 때문에)
왕이 나를 조금 불의하게, 불리하게, 억울하게 대하시는 것 같아도,
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므비모셋처럼, 
자족하는 은혜가 있어서.. 족하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에 만족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자족하는 가장 큰 은혜,
자족하는 은혜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빌4:11~13

오늘 우리는 '자족하는 은혜, 만족하는 은혜'를 받으셨나요?
그럼 당신은 '왕을 사랑하는 성도'가 맞습니다. 

빌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3. 세 번째는, 왕께 선을 행한 자에게는 상급을 주십니다 

다윗이 요단 동편에서 도피 생활을 이어갈 때
그를 도와주었던 바르실래에게, 환궁하여 왕이 된 다윗은 큰 상을 내립니다.

31~33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바르실래는 17:27에 보면,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다윗이 아주 절박한 상황이었죠. 새벽까지 요단 강을 건너서
겨우 요단 동편 마하나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때 다윗 일행의 생필품을 도운 세 사람이 소비, 마길, 바르실래 입니다.

17:27~29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소비와, 마길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팔십이 넘은 노인이지만, 가장 어려운 시기를 지나던 왕에게
그는 선을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그를 왕궁에 초대해서 같이 살기 원했으나
바르실래는 너무 늙어서, 같이 갈 수 없다고 말하고,
대신 자기 아들(또는 손자) 김함을 대신 데려가 달라고 부탁합니다. 

렘41:17 '애굽으로 가려고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

한편 렘41:17을 보면, 베들레헴 근처에 `게롯김함', 곧 '김함의 숙소'가 있었는데, 
이곳은 애굽으로 가는 여행객이나 또는 대상(隊商)들이 잠시 묵고 가는 
여관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후일 바로 이러한 여관에 요셉과 마리아가 일시 지냈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때 요단강을 건너왔던 김함은, 요단 서편에서 그 후로 계속 살았다는 거죠,
다윗이 베풀었던 은혜가 대대손손 계속 흐르고 있었다는 거죠. 

이외에도 다윗 왕은 임종 시에 김함의 안전을 특별히 솔로몬에게 부탁함으로써, 
바르실래의 호의에 대한 보답을 끝까지 잊지 않았습니다. (왕상 2:7)

이와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왕 예수 그리스도도, 왕께 선을 베풀고 
그가 기뻐하시는 행동을 하는 자에게 상급을 베풀되 
현세에도 상급을 베풀어 주시고, 내세에도 영생을 주십니다. 막10:29~30 

근데 100배로 갚아 주신다는 위 막10:29~30절 말씀을
오늘날 현실에서, 성도들은 잘 믿지 않습니다. '해 봐도 안 되던데..' 라고 하죠.
  
그것은, 정말 하나님이 갚아 주시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하여 내놓았거나, 
-잘못 내놓았거나, 나쁜 마음으로 내놓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모르고 있거나... 가 될 것입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왕에게 선을 행한 자에게 
반드시 현세에도 축복하시고 상금을 주신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마25:36참조

나는 시므이 같은 사람입니까,
므비보셋 같은 사람입니까,
바르실래 같은 사람입니까?
셋 다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

주1)
앞서 위에서도 설명했지만, 다윗은 지금 12지파에게
왕으로 재추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죠.
왜냐면 압살롬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고 옹립을 받았기 때문에요. :10

이를 테면,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해야지, 
또 정식으로 결혼식(왕 즉위식)을 치러야지, 
압살롬만 죽었다고, 자동 다시 왕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12지파의 재추대를 받게 되는데,
제일 먼저는 유다지파의 추대를 받고
이어서 지금 베냐민 지파의 추대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주2) 시바와 므비보셋에 관한 다윗의 판결

25~27 ‘예루살렘에서 와서 왕을 맞을 때에 왕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냐 하니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인 나는 다리를 절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그 위에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내 종이 나를 속이고
종인 나를 내 주 왕께 모함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므비보셋은 시바가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이 피난갈 때, 자기도 함께 다윗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자기 종인 시바가 거동하지 못하는 자기를 속이고 혼자만 나갔고, 
다윗 왕에게 자기를 모험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지요.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요?

먼저 시바의 말을 검증해 봅시다
시바가 다윗을 찾아왔을 때, 다윗은모든 권력을 잃고
쫓겨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지파가 모두
압살롬의 반란군에 가담해 있었고 
다윗이 왕권을 회복할 가능성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많은 음식을 가지고
다윗을 찾아와 도운 시바의 행위는
진심에서 나온 가능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일 시바가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은 난세를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기 위한 음모였을 텐데요.

지금 다윗은 권력을 잃고 쫓겨가는 상황인데, 
그런 '지는 해'와 같은 다윗을 찾아가
시바가 어떤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것은 잘 납득되지 않습니다.

다윗이 시바에게 ‘므비보셋의 모든 재산을 다 주었습니다'만, 
지금 그 말은 아무 보장이 없죠.. 몰락하는 권력자의 말에는 힘이 없죠..

그것은 시바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다윗의 은혜를 갚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에게 찾아온 것에    *다윗을 도우면 위험해지죠..
더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바가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시바는, '므비보셋이 압살롬의 반란을 
사울의 왕권을 회복할 기회로 삼으려고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물론 므비보셋 자신은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에 왕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미가, 삼하9:12
므비보셋이 반란을 직접 주도하지 않더라도

사울 왕가의 회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므비보셋을 찾아와서 그의 아들,
그러니까 사울의 증손자 미가를
왕으로 세우자고 부추겼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므비보셋의 말을 검증해 봅시다.
24절에 의하면
므비보셋은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떠난 날부터 돌아오는 날까지
발도 씻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옷도 빨아 입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므비보셋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사무엘기를 저술한 역사가가, 사실로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실각에 대한 애도의 표시이고
므비보셋의 진심을 보여주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므비보셋이 정말 자기 아들 미가를 왕으로 내세우고자 했다면
그 사실은 곧 만천하에 드러났겠지요.
그런 사실을 감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정황들은
므비보셋이 반란의 음모에 가담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므비보셋의 말과 시바의 말, 
두 사람의 말 모두를 신뢰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쪽도 거짓말이라는 분명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 걸까요?

그런데 이렇게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다윗은
누구의 말이 옳은지 가려내지 않은 채
사건을 덮어버립니다.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하니' :29

이 다윗의 판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느 쪽에 말이 맞고, 어느 쪽에 말이 틀린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성급하게 판결을 내린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쌍방의 의견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판결하기 전에 먼저 자세히 조사를 해보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킬 때 중심이 되었던 이슈가 
‘공정한 판결’이었습니다. *공정한 판결을 못 해서 민심이 이반되었음.

그런데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시바-므비보셋 건 
다시 공정하지 못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이 사건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윗의 판단이 내려진 맥락과
문제의 성격을 주의 깊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시바-므비보셋) 양측이 불일치하는 점의 핵심은
'므비보셋이 사울 왕가를 재건하려는 반란의 시도에 참여했느냐..'
하는 여부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다윗이 진상을 정확히 가려나기 가려내기 위한 조사에
들어갔다면, 그것은 ‘므비보셋의 반란 가담’ 혐의에 대한
수사가 되었을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주도했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가의 재건을 꿈꾸는 세력이 
므비보셋을 찾아와, 반란에 참여를
종용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습니다.

그렇다면 므비보셋에 대한 조사는
므비보셋 개인뿐만 아니라 
‘사울 왕가의 반란 음모’에 대한 대규모 수사로 확대되겠죠.

(*지금 반란의 주체는 압살롬이지만, 혼란을 틈타 사울 왕가로 번질 수 있는 거죠)

자칫하다가는 선을 넘어 
사울가, 베냐민 지파에 대한 정치보복 수사가 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이 선에서 선을 그은 것입니다. 일단락 지어버린 것이죠. 지금 시점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 통합'으로 본 것입니다.

본문 삼하19장은, 압살롬의 반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다윗이, ‘사울 왕가의 지지자들’과
화해하고자 하는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고 
또 그렇게 노력했음을 보여줍니다.

(므비보셋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지 않고 매듭지으며,
사울의 재산을 시바에게 절반 나눠줌으로써, 아마 시바가 동원한
1천 명도 얼마씩 나눠 받았을 것으로 예상함)
즉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시바와 재산 절반을 나누라'고 한 것은, 사울 왕가와 나아가 베냐민 지파를 두루 생각해서 안배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시바가 1천명의 베냐민 지파를 이끌고 왔잖아요. 다윗은 그 1천명, 즉 베냐민 지파의 대표들을 흡수하고, 통합하는 과정에서.. 므비보셋의 희생을 요구한 것입니다.

 
지금 다윗은, 베냐민 지파를 흡수하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화합” 차원에서 말이죠.

그런 다윗의 노력과 성의는, 열매가 있었는데
나중에 솔로몬 때, 나라가 둘로 쪼개지는데,
베냐민 지파는 유다지파와 운명을 같이 합니다. 

말하자면, 다윗 왕가와 사울 왕가가 합쳐진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인데, 
그건 다윗의 이런 국민 화합, 12지파 화해의 노력이,
소기의 결실을 맺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