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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하21장 절별 해석 및 주석

LNCK 2023. 5. 6. 08:33

◈삼하22장 절별 해석 및 주석

1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다윗의 시대에' 이 말은 정확한 연대를 말해 주지 않는 포괄적인 용어이다. 또한 본문에 나타나 있는 기브온 거민 학살 사건은 성경의 다른 부분 어느 곳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사건이 다윗 시대의 어느 때에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7-9절에 기록된 내용으로 볼 때 사건은 다윗왕이 므비보셋을 찾은 얼마 후에 발생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본 사건은 분명 압살롬의 반란 이전에 발생하였을 것이다.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기근은 단순히 자연적인 재해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기근은 칼(전쟁), 사나운 짐승, 온역 등과 더불어 하나님께서 범죄한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시는 일종의 심판이었다(겔 14:21, 왕상 8:35). 특히 건조 지대인 팔레스틴 땅에서 3년 연속 기근이 계속되었다는 것은 그들에게 치명적인 심판이었다(왕상 17:1-7, 왕하 25:1-7, 느 5:3, 애 4:4)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이는 연속적인 기근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한 사실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께 그 진상을 알아보는 다윗의 신앙적 행동이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란 말을 직역하며, '여호와의 얼굴을 찾으매'란 뜻이다.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의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갔다는 말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다윗이 대제사장에게 있는 '우림과 둠밈'(출 28:30)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았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기브온 거민 학살 사건이 사울 시대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다윗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징벌이 가해진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 행위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내포하고 있다. 

(1)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서 시간과 인격을 초월한 단일 공동체이며, 
(2) 아비의 허물이 자손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는 율법의 성취인 동시에(출 34:7), 
(3) 징계를 통하여 당신 백성의 범죄를 방지하고 성숙한 신앙 인격을 갖추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악 1:2-4) 
(4) 인간의 죄는 언젠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부르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전 12:14, 고후 5:10).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여기서 기브온 사람은 가나안 땅의 기브온 성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본래 진멸의 대상이었으나(신 7:1-5),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과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당시 이스라엘과 '여호와의 이름으로'(수 9:15, 18-20) 화친 조약을 맺고 이스라엘의 종, 곧 여호와의 단을 위해 나무를 패고 물을 긷는 자가 되었다(수 9:3-27). 그 약조의 내용은 이스라엘이 기브온 사람들을 해하지 않고 살릴 것이라는 언약이었다(수 9:15). 따라서 사울 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브온 거민과 맺은 약조를 무시하고, 이들을 죽인 행위는 하나님의 성호를 가볍게 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실추시킨 변명할 여지없는 살인죄였다.

2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기브온 사람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본래 기브온 사람은 히위 족속이었다(수 11:19). 그러나 구약 성경의 용례상 아모리 족속은 일반적으로 남쪽의 수리아와 팔레스틴 지역을 대표하였다(창 15:16). 즉,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땅의 이방 민족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기브온 사람이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고 불리웠던 것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맹세하였거늘' 가나안 정복 시대 당시, 여호수아 군대의 승승 장구에 생명의 위협을 느낀 기브온 거민들은 마치 먼 나라 족속인양 위장하고 사신(使臣)을 보내어 이스라엘과 화친 조약 맺기를 원하였다. 이때 이스라엘은 확인함도 없이 섣불리 그들과 화친 조약을 맺었다. 이유야 어떻든 이스라엘은 당시 그들을 해하지 않고 살릴 것이라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면서 약조를 맺었던 것이다. 수9:3-27
맹세나 화친조약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동기가 본 구절에 나타나 있다. 즉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라는 말은 사울이 자기 민족에 대한 애족심(愛族心)에서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음을 나타낸다. 곧 사울 왕은 순수한 단일 민족을 구축하고자 하는 열심으로 이방 족속 축출 정책을 시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울의 열심은 원칙상 율법의 조항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신 7:2, 24, 출 34:11).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율법의 조항은 이방 민족과 약조를 맺기 이전에 관한 것이며, 사울의 학살 행위는 약조 이후의 일이기 때문에 사울의 행위는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율법 정신에서 벗어난 그릇되고 편협한 민족애의 한 예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저희 죽이기를 꾀하였더라' 기브온 거민 학살 사건이 언제 발생했는지는 기록이 없으므로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혹자는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살해할 때(삼상 22:18, 19) 기브온 사람들도 함께 살해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혹자는 사울이 그의 통치 초기에 율법에 근거하여(출 22:18, 레 20:6) 가나안 땅의 신접한 자와 박수를 쫓아낼 때, 기브온 거민들도 학살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미흡하다.

3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여기서 '속죄하여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기본동사 '카파르' 는 문자적으로 '덮다', '가리다'는 뜻이다(창 6:14). 그러므로 다윗의 이 물음은 어떻게 하면 기브온 사람들에게 행한 이스라엘의 죄가 여호와 앞에서 가리워질 수 있겠는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말은 피해를 입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사실상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연약한 거류민들이었기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보상을 요구할 길을 찾지 못했으나 이번의 기근을 통하여 보상을 약속받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죄 없이 학대 당한 자들을 마침내 신원(伸寃)해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발견하게 된다(시 10:17, 18).  

'여호와의 기업' 열조와 맺은 언약에 따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해 주신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20:19).

4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 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나' 고대 근동 지방에서 살인죄에 대한 보상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속전(贖錢)을 내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 살인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모세 율법에서는 부요한 자의 횡포를 막기 위해 고살자(故殺者)에 대해서는 속전 내는 것을 금하고 반드시 죽일 것을 명하였다(민 35:31). 이렇게 볼 때 기브온 사람들의 대답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즉,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과 그 집이 고의로 자기들을 살해하였으므로, 반드시 죽음으로 보상해야 한다고 율법의 규정대로 주장했던 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즉 사람을 처형시키는 것은 자신들의 권한 밖의 일이라는 뜻이다. 더군다나 이스라엘 본토인도 아니며 거류민들인 기브온 거민들로서는 다윗 왕의 허락이 없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5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여기서 '학살하였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칼라' 나 '멸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드' 는 모두 '진멸하다', '멸망시키다'는 뜻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기브온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사울이 그들을 가나안 땅에서 완전히 진멸하려 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즉 사울은 '이방 세력 멸절'이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공명심과 명예욕을 충족시키고자 기브온 사람들을 전부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울의 인간적인 정책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으며, 오히려 보복의 화를 자초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참으로 여호와를 위하는 일은 그 목적과 실행 방법 및 실행 원칙이 공명 정대하고 선해야 한다.

6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 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자손 일곱을 내어 주소서' 여기서 일곱 명의 자손들은 사울의 기브온 거민 학살 행위에 동참한 사울 가문의 자손들이다. 그 근거로 우리는 사울의 친척들(사울의 집)이 이일에 깊이 관여했음을 1, 4절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일곱'이란 숫자는 여기서 신성한 의미의 숫자(a sacred umber)이다. 즉 일곱은 하나님의 숫자로서, 이번에 사울 집안에 속한 일곱 명의 자손들이 처형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또한 일곱 명의 자손은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는 속 제물의 의미도 있었다.

'여호와의 택하신 사울' 
실제 사울은 기름 부음 받아 세워진 이스라엘의 선택된 왕이었다(10:1). 그러나 여기서 이 말은 풍자적인 의미를 띤다. 왜냐하면 사울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로서 마땅히 여호와의 뜻을 성실히 좇았어야 했으나, 그렇지 못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화친 조약을 맺은 기브온 거민들을 대량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Vol. II-ii, p. 461).

'사울의 고을 기브아' 지난번 기브온 사람 학살 사건의 책임은 누구보다도 사울에게 있었다. 따라서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 집에 속한 일곱 명의 자손들을 처형할 장소로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삼상 10:26)를 지정한 것이다.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여기서 '여호와 앞에서'란 말은 정확히 '여호와를 위하여'란 뜻이다. 즉, 이 말로써 기브온 사람들은 사울의 일곱 자손들을 처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기 위한 공의적 차원의 일임을 강조했던 것이다. 한편 '목매어 달겠나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카' 는 '매달다'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이 말은 목매어 교수형(絞首刑)에 처하겠다는 의미 보다는, 죽이기 위해 매달거나 또는 죽인 후 시체를 매어 달겠다는 의미이다. 

7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왕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본 구절의 배경은 9장에 잘 나타나 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던 요나단과의 우정의 언약(삼상 18:3, 20:16, 42, 23:18)을 지키는 뜻에서 일곱 명의 명단에서 므비보셋을 제외시킨 것이다.

8 왕이 이에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 붙잡아 

'아야의 딸 리스바' 리스바(Rizpah)는 사울의 첩이었으며, 사울 사후 아브넬과 이스보셋 간에 불화의 요인이 되었던 장본인이었다(3:7).

'사울의 딸 메랍' 메랍(Merab)은 사울의 장녀였으며, 사울이 다윗에게 주기로 하였다가 그 약속을 어기고 아드리엘에게 시집보낸 여인이었다(삼상 18:17-19). 

9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기니 기브온 사람이 그들을 산 위에서 여호와 앞에 목 매어 달매 그들 일곱 사람이 동시에 죽으니 죽은 때는 곡식 베는 첫날 곧 보리를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산 위에서'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 근처의 산을 의미한다(6절).

'함께 죽으니' 이는 사울의 일곱 자손들이 모두 '같은 날에 같은 방식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말이다.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더라' 이 때는 히브리 종교력으로 니산(Nisan)월 중순이며, 오늘날의 태양력으로 말하자면 4월 경이다.

10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바위 위에 펴고 곡식 베기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굵은 베' '굵은 베'는 슬픔과 비탄을 상징하는 애곡자의 옷이었다(3:31, 왕하 19:1, 2, 에 4:1-4, 욥 16:15, 시 30:11). 반석 위에 펴고' 시체에는 사나운 짐승과 새들이 몰려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이러한 맹수나 맹조에 의하여 뜯기우는 것을 최대의 수치요 모욕이라고 생각했다(삼상 17:44). 따라서 리스바는 시체에 이러한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굵은 베옷을 반석에다 깐 후, 시체 곁에 계속 머물면서 밤낮으로 시체를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모세 율법에 따르면, 사람이 죽을 죄를 짓고 나무 위에 달려 죽더라도 그 시체를 당일에 내려 장사(葬事) 지내도록 규정하였다(신 21:22, 23). 그러나 이번에 나무 위에 달려 죽은 사울의 일곱 후손의 시체들은 사건의 성격상 예외에 해당되기 때문에 율법의 규정대로 당일에 장사되지 아니했던 것이다. 즉, 사울의 일곱 후손들은 3년 연속 기근을 내리신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기 위한 속죄 제물의 의미로 처형당한 것이다. 때문에 이들의 시체는 하나님의 진노가 풀려 기근이 끝나는 순간, 곧 비가 내리기까지 나무 위에 그대로 방치되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시체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때는 우기인 10월 경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따라서 리스바는 4월부터 10월까지 곧 6개월 동안이나 시체를 보호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무리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본절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졌다고 하는 표현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졌다고 하는 표시였기 때문이다. 
즉, 본절의 비는 우기에 내린 자연스런 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악인의 형벌당함을 보시고 이제 당신의 진노를 풀었다는 표시(sign)로서 내리신 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비가 언제 시체 위에 쏟아졌는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리스바가 얼마나 오랫동안 시체를 지켰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비가 즉시로 시체에 쏟아지지 않은 것 만큼은 문맥의 흐름상 확실한 것 같다.

11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가 행한 일이 다윗에게 알려지매 

'리스바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 당시 시체가 정식 장례 절차에 의해 무덤에 안치되지 않고 방치되어 짐승에게 손상당하는 것을 큰 수치로 여겼던 사실로 미뤄 보건대(삼상 17:44), 리스바의 행동은 칭찬받을 만하다. 그녀는 하나님의 진노가 풀려 비가 시체 위에 쏟아질 때까지 오랫동안 시체 주위에 몰려드는 짐승의 온갖 위협을 막아내는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그녀의 이러한 정성과 사랑에 감동한 다윗은 그들의 뼈를 사울가의 가족 묘지에 합장(合葬)하였다(14절). 이렇게 하여 실추되었던 사울가의 명예는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고 리스바의 슬픔 역시 약간은 가실 수 있었다. 이처럼 자기 희생은 허물을 덮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며 모든 이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제공해 준다(마 26:13, 벧전 4:8).

12 다윗이 가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서 가져가니 이는 전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을 길보아에서 죽여 블레셋 사람들이 벳산 거리에 매단 것을 그들이 가만히 가져온 것이라 

'사울의 뼈와 그 아들 요나단의 뼈를... 취하니'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는 지난번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에 의해 야베스 땅의 에셀 나무 아래에 장사되었다(삼상 31:11-13, 삼하 2:4, 5). 그런데 이번에 다윗 왕은 이들의 뼈를 가져다가, 베냐민 땅의 이들의 가족 묘에 묻어준 것이다. 이와 같은 다윗 왕의 배려는 (1) 사울의 첩 리스바의 지극한 모성애(母性愛)에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요, (2) 또한 자신이 사울가에 악의가 없다는 사실을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13 다윗이 그 곳에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가지고 올라오매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사람들이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를 거두어다가' 여기서 '그 달려 죽은 자들의 뼈'는 사울의 일곱 후손들의 뼈이다. 혹자는 이들의 뼈가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가족의 묘에 합장(合葬)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주장하나, 본절에서 보듯 사울과 요나단의 뼈가 이장(移葬)될 때에 사람들이 이들의 뼈를 거두었다는 기록은 합장(合葬)을 암시해 준다.

14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셀라' 베냐민 지파의 땅이나(수 18:28), 그 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 후에야 하나님이... 들으시니라' 사울가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진정되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구체적으로는 3년 기근이 종식되고, 비가 그 땅에 내렸음을 가리킨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로막고 있는 방해물을 적극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시 66:18, 사 59:2, 요일 3:21, 22).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본 구절로부터 본장 마지막 절(22절)까지는 다윗 왕을 도와 큰 전공을 쌓은 영웅들의 위업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오드' 는 시기적으로 앞의 사건과 연관된 말이 아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블레셋과의 전투는 오직 다윗 왕의 즉위 초기에만 있었기 때문이다(5:17-25, 8:1). 또한 '오드' 는 '다시'라는 뜻 이외에도 '그 외에'라는 뜻으로도 사용되었다(신 4:35, 34:10, 왕상 22:7). 따라서 본 구절의 배경이 되고 있는 블레셋과의 전투는 다윗 왕의 즉위 초기에 있었던 전투들(5:17-25)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여기(15-22절)에 나타난 영웅들의 이야기들은 '여호와의 전쟁기'(Book of the Wars of Yaweh)에서 본서 저자가 인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내려가서' 이는 유다 산지에서 블레셋 평지로 내려갔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장대한 자의 아들' 여기서 '장대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라파'  이다. 이 '라파'는 거인족(巨人族)이었던 르바임의 원주민들을 가리킨다(신 2:11, 3:11, 13, 창 14:5). 그리고 이들의 명칭 때문에 그들이 살던 근처 계곡을 '르바임 골짜기'라 부른 듯하다.

'삼백세겔 중 되는 놋창' 1세겔(Shekel)이 11. 4g이므로, 삼백 세겔은 약 3. 4kg에 해당한다. 새 칼을 찬' 여기서 '새 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다솨' 는 형용사형으로 '새 것'이란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비브놉이 허리에 찬 무기가 칼(Vulgate)인지 철퇴(LXX)인지 단정지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이 말은 '새 무기를 찬'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스비브놉'은 '고지대의 거주자'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스비브놉'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라 후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에게 이러한 별명이 붙여진 까닭은, 아마도 그가 아무도 접근할 수 없는 고지대의 성(城) 또는 바위 틈에서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 '아비새'는 다윗 왕의 조카이자 요압의 동생이다(2:18, 10:10, 18:2, 20:6).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여기서 '등불'은 타오르는 '생명'과 '번영' 및 '영광'을 상징한다. 따라서 다윗 신하들의 이 말은 이스라엘의 번영과 안정 및 영광의 핵(核)이신 다윗 왕이 위험과 죽음이 도사리고 있는 전쟁터에 참전하는 것을 막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욥 18:5, 6에서는 '등불의 꺼짐'이 곧 '죽음'과 '파멸'을 상징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한편, 그런데 다윗왕이 이스라엘의 등불이 된 것은 여호와께서 그의 등불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즉, 다윗은 본서 22:29과 시 18:28에서 여호와께서 나의 등불이시며 나의 흑암을 밝히시리라고 고백했던 것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비천한 곳에서 존귀와 영광의 자리로 높여주셨음을 고백한 말이다.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곱- '곱'에 대하여는 성경 전체에서 본 구절과 19절에만 언급되어 있을 뿐이며,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서 (1) 혹자는 곱을 '게셀'이라고 주장하며(Thenius) (2) 어떤 번역본은 '가드'라고 번역하였다(LXX). (3) 그러나 '곱'이 18절과 19절에 연이어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이를 다른 지명으로 볼 수 없으며, 아마도 게셀 근처의 작은 소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후사 사람 십브개' '십브개'는 다윗의 30인 용사 중 한 사람이다(대상 20:4). 그는 23:27절에 등장하는 후사 사람 '므분내'와 동일 인물이다. 따라서 '므분내'는 '십브개'의 오기(誤記)임이 분명하다. 즉, 필사자의 착오로 십브개를 므분내로 잘못 기록한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철자상 '십브개' 와 '므분내' 는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한편 '십브개'는 대상 27:11에 따르면, 이만 사천 명을 지휘하는 제 8부대의 지휘관이었다. 또한, '후사 사람'이란 말은 유다의 족속인 후사의 자손이란 의미이다(대상 4:4)

'삽' 은 '이스비브놉'과 마찬가지로 거인족인 르바임 족속의 용사로, 대상 20:4에는 '십배' 라고 소개되어 있다.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골리앗... 죽였는데' 같은 내용을 기록한 대상 20:5에는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라고 되어 있다. 즉 본 구절의 '야레오르김'은 역대기에서는 '야일'로, 그리고 대상 20:5과는 달리 본 구절의 원문에는 '... 의 아우 라흐미'란 말이 빠져 있다(한글 개역 성경에 있는 이 말은 첨가된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두 구절의 상이한 기록이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1)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역대기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그리고 본서(삼하)의 기록을 오기(誤記)로 본다. (2) 반면, 다른 소수의 학자들은 본서의 기록을 옳은 것으로, 그리고 역대기의 기록을 오기라고 주장한다. 즉 이들은 골리앗이란 이름의 사람이 실제로 둘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억측이다. (3) 혹자는 다윗과 엘하난을 동일 인물로 본다. 

즉 '다윗'이란 이름은 본래 이름이 아니라 왕명(throne name)이었으며, 그의 본래 이름은 '엘하난'이었다는 주장이다. 특히 '엘하난'(Elhanan)이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다'란 뜻을 지닌다는 사실은 이같은 주장을 입중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본 구절의 배경이 되는 장소, 곧 엘하난이 골리앗을 죽였다고 하는 곳은 '곱'이지만,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장소는 엘라 골짜기이기 때문이다(삼상 17:19). 이상과 같은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본 구절이 잘못된 오기(誤記)이며, 역대기의 기록이 원문에 일치하는 올바른 기록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역대기의 기록에 맞추어 '... 의 아우 라흐미'를 첨가하여 읽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다윗은 '골리앗'을 죽였고, 엘하난은 '골리앗의 아우'를 죽인 것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삼상 서론, No. 7. 사무엘서에 대한 고등 비평 비판' 부분을 참조하라. 한편, 본 구절의 '엘하난'은 다윗의 30인 용사 중의 한 사람인 도도의 아들 '엘하난'(23:24)과는 다른 인물이다.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삼마의 아들 요나단' '요나단'은 암논의 교활한 모사(謀士) '요나답'의 형제이다(13:3). 한편 '삼마'는 다른 곳에서 '시므아'라고 기록되기도 하였다(13:3, 대상 2:13).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이 네 사람 가드의 장대한 자의 소생이... 다 죽었더라' 본 구절은 앞의 기록(15-21절)을 한 마디로 요약해 주는 후기(後記)에 해당한다. 여기서 '장대한 자의 소생'이란 가나안의 거인족(巨人族) 원주민 '라파' 의 후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21:16>. 따라서 이 네 사람은 라파 족속의 남은 생존자들로서, '가드'(수 11:22, 13:3)에서 태어나 블레셋의 용병(傭兵)으로 활약해 왔던 자들이었다. 한편, 
'다윗의 손... 에... '란 말은 (1) 다윗이 이스비브놉과 맞서 싸웠던 사실을 내포하고 있으며(Keil), (2) 또한 다윗 신하들의 승리가 곧 다윗의 승리임을 나타내 주는 말이다(Smith). 그리고 더 나아가 다윗의 이러한 승리의 개가는 다윗의 치적과 영광을 돋보이게 하기 보다는, 다윗 왕국의 승리와 번영을 주도하셨던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22장에 나타나고 있는 구원을 감사하는 다윗의 노래가 바로 이같은 사실을 증명해 준다. 따라서 여기 나타난 함축된 승리의 전쟁 기사(15-22절)는 22장의 감사와 찬미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해 주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