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카테고리 없음

삼하21장 하나님의 등불

LNCK 2023. 5. 9. 15:58

사무엘하 강해 30강 / 하나님의 등불 / 삼하 21:15-22:7 - YouTube

◈하나님의 등불            삼하21:15~22              사무엘하 설교모음

◑서론

여러분께는 제법 오래된 적이 있으십니까? 
'숙적'이라고 그러죠. 그런 분이 혹시 과거에 있었던 적이 있으세요?

이스라엘은 숙적이 있었는데, 바로 블레셋 이었어요.
삼하5장에서 블레셋을 이스라엘이 무찌른 이후에, 그 뒤로는 블레셋이 
그동안 21장까지 등장하지 않았어요.

사무엘상 전체는 블레셋이 거의 붙박이로 등장했거든요.
그러다가 사무엘하 5장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미미합니다. 

왜냐면 다윗이 통치 초기에, 블레셋을 거의 살수대첩 처럼 완전히 쓸어버렸기 
때문이에요. 
그때 바알브라심 이란 말이 나왔죠. '여호와께서 물처럼 흩으셨다'  삼하5:20

완전히 무찔러 졌기 때문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고, 
블레셋은 그 후로도 아주 가끔 등장해도, 위협적인 존재로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역사에서 존재감이 사라져버렸어요. (*완전 패망은 앗수르 침공 때, 대하21:16)

 

본문의 사건은, 아마 다윗 재위 초기의 사건인 것 같아요.
뭔가 발생 연대가 명확하지 않은 사건이, 또 한 번 사무엘하 마무리에서 소개되고 있어요.

21:15~22절 본문에 블레셋과의 전쟁 이야기가 2번 나옵니다.

◑1. 블레셋과의 첫번째 전쟁       삼하21:15~17

15 블레셋 사람이 다시 이스라엘을 치거늘 다윗이 그의 부하들과 함께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더니 다윗이 피곤하매
  
16 거인족의 아들 중에 무게가 삼백 세겔 되는 놋 창을 들고 
새 칼을 찬 이스비브놉이 다윗을 죽이려 하므로

17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 그 블레셋 사람들을 쳐죽이니 
그 때에 다윗의 추종자들이 그에게 맹세하여 이르되 왕은 다시 우리와 함께 
전장에 나가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지 말게 하옵소서 하니라

블레셋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다윗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기 위해 내려갔다가 
몹시 지쳤습니다. 그때 거인의 후손인 이스비브놉이 
큰 창과 새 칼로 무장하고 다윗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 때 아비새가 다윗을 도와서 그 거인을 쳐죽이고 다윗을 구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의 부하들은 부탁했습니다. 
'다시는 저희와 함께 싸움터에 나가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다윗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는 것을 다시는 두고 볼 수는 없다는 거예요.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을 진정으로 아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면 안 되기 때문'이래요. 
부하들은 지금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 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성소의 등불

성경에서는 종종 '등불' 이야기가 나오는데 
'등불이 꺼지는 것'을 죽는 것으로 표현하는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본문의 '등불'은
성소의 등불이 꺼지지 않게 관리했던, 그 장면을 그리면서 했던 말 같아요.

이스라엘에서는 성막에 등불을 켜 놓았죠. (성소에 떡상, 향단, 등대 즉 등불이 있었죠)
낮에는 밝아서 켤 필요가 없었지만 
저녁이 되어서 해 질 무렵이 되면 등불을 반드시 켰어요. 
그리고 나서 다시 해가 뜰 때까지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관리했습니다.
출27:20~21절에 그 내용이 나오죠.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등불을 켜 놓아야 한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성소에 등불이 항상 켜 있게 율법으로 정하셨어요. 

그 등불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뭔가 꺼지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빛으로 살아서 유지되고 있다는 그런 상징이었죠. 
(지금도 외국에 가면, 승전기념비, 전몰군인묘지 이런 데 가면
가스불 같은 것을 24시간 켜 놓는 것을 보게 되죠)

근데 이스라엘의 등불이 거의 꺼질뻔 했던 그런 위태로운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어요. 하나님의 잘못은 아니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 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면서 
그 등불이 꺼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사무엘서가 시작될 때, 그때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땠는지 한번 보세요. 
이스라엘의 등불이 어땠는지 보시면 

삼상3:2~3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위 구절은 사사기 말기에 이스라엘의 영적상태가 어땠는지를 잘 보여주죠.
'하나님의 등불은 꺼질 것 같았으나, 아직 꺼지지 않았대요.'

또한 엘리 제사장은 눈이 어두워져 잘 보지 못하고 있었대요. 

엘리는 당시 이스라엘에서 최고 권력자였어요.
그는 '눈이 어두웠어요.'
나이가 들어서 노안이 왔다는 뜻은 아닐 거예요. 
이거는 바로 당시 이스라엘 지도층의 영적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지도층이 그렇다면, 백성들은 보나마나 일 것입니다.
백성들의 영적인 상태는 더 심했을 거예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민족인데 
지금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민족이 되어버렸고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 같은.. 그런 어두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3절을 보니까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처참한 영적 상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죄많은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겠죠. 

하나님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대요. 소망이 있었다는 겁니다. 3:3
그 이유는 사무엘 때문이었죠.

그래서 사무엘상 3장 3절은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누워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눈이 어두워져서, 모두가 영적인 맹인 상태에 있었는데 
한 소년은 하나님의 등불이 켜져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누워서 
잠을 자고 있었어요. 빛이 아직 남아 있었어요. 

나무가 잘려나가도 밑둥이 남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싹이 나고 새 순이 자라나는 거예요. 

모든 것이 다 무너진 거 같아도 
끝까지 버티고 있는 기둥이 하나는 꼭 있어요. 

온 세상이 칠흑같은 어둠 같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고 타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 등불은, 오직 사무엘처럼, 그 성소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만 볼 수 있는 거예요. 
그 성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 참 어둡다'고 계속 불평만 하고 있겠지만

그 성소 안에서 등불을 보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그 성소 안에 있는 '하나님의 등불'로 인해서
결코 소망을 잃지 않는 거예요. 

삼상3:3에서,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등불은.. 하나님의 임재를,
성소 안에 있는 사무엘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사람을 말해요. 

그런데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등불'만 소망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그 등불 앞에 있는 어린 소년 사무엘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에 대해서도 기대를 하게 되죠. 

등불이 홀로 타고 있는 게 아니라 
그 등불을 반영하는.. 순종하는 예배자가 있는 거에요. 
그 등불을 반영하는.. 그러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깨어있는 
예배자가 있는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 몰락해가는 이스라엘을 보면서도 
결코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거예요. 

하나님의 등불을 반영하는.. 순종하는 참다운 예배자 한 명이 있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나, 어느 공동체에나 소망이 있는 거예요. 

▲근데 우리는 '또 하나의 등불'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하나님의 등불을 반영하는 사무엘이
나중에 나이 들어서, 기름 부어 세운 다윗이.. 
본문에 '이스라엘의 등불'이라고 해요. 

이렇게 '이스라엘의 등불'은
성소의 사무엘에서 → 다윗으로 → 나중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옮겨져요.

본문 삼하21:17절에 보면, 다윗을 돕는 다윗의 용사들의 입에서
'이스라엘의 등불'이 나오고 있죠.
그들은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말을 하죠.

성소에서 비취기 시작했던 '하나님의 등불'은
성소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사무엘에서 → 다윗으로 → 나중에는 그리스도 예수님으로 옮겨져요.

그 영원한 언약을 받은 다윗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그 하나님의 등불을 송구스럽게도 나의 등불로 받아들이게 된 거예요.   

자신을 누군가가 '등불' 이라고 말했는데, 그걸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거예요. 
그건 교만이 아니었어요. 

중요한데요. 하나님께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기 위해서 
자신을 사용하고 계신다.. 는 것을 다윗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삼하7장 다윗 언약을 통해서
'등불'과 같은 이 엄청난 표현을 자신에게 썼을 때에도 
다윗은 놀라거나, 교만해지거나, 또는 거부하거나 .. 이러지 않았어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위해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거를 알고 있었어요. 

특별히 작은 일도 아니고,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 
지금 자신을 사용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다고요. 

물론 그것이 1천년 후에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오가며 
한 분이 구원사역을 하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다시 살리시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그분이 하늘에 오르셨다가 다시 오심으로 완성된다는... 
이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세세하게 몰랐을 수 있어요. 

그러나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네 보좌가 영원히 서 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삼하7장
라는 이 하나님의 언약이 
단순히 '다윗의 왕권이 몇 대 더 유지될 것이다'... 
이 정도의 약속이 아니라는 걸 다윗은 알고 있었단 말이에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는 다윗 
그래서 그런 면에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 라고 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제 다윗은 자신의 할 일을 알았어요. 
'근데 그럼 내가 뭘 해야 되지?'  
'이 영원한 약속, 다윗의 후손에서 누군가 오신다는 약속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뭘 해야 되지?' 하던 다윗은
이제 뭘 해야 되는지 알았어요. 

다윗은 뭘 해야 되었을까요? 
이건 다윗뿐만 아니라 사역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되는 건데요. 

'내가 너를 사용하겠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때부터 뭘 해야 되냐고요? 

만약에 '내가 너를 베트남 선교사로 세우겠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베트남어를 공부하는 게, 먼저 할 일인 것인가요? 
그것도 뭐 하면 좋겠죠. 그러나 언어 몰라도, 급하면 손짓 발짓으로 다 전도 하더라고요. 

'내가 너를 사용 하겠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다윗은 자신이 할 일을 확실히 알았어요. 

다윗이 할 일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 있는 것'이었어요. 

(*혹시 밧세바 사건을 하나님이 방관하신 것도, 어쩌면 자기 의를 버리고 철저한 회개로 나아가도록 다윗을 섭리하신 것일수도 있어요. 이 관점 논란 있음)

다윗은 바로 이 근본적인 이것을
자신이 해야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런 다윗은 자신을 '이스라엘의 등불' 이라고 표현한 부하들의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지도, 교만하지도 않았어요. 

다윗이라는 등불이 꺼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러는 이유가 명확히 했어요. 
그 등불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등불이기 때문이에요. 

그때 사람이 경솔하게 '제가 무슨 등불입니까?' 이렇게 무조건 겸손(여기서는 안 좋은 뜻)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삼하22:29 '여호와여 주는 나의 등불이시니 여호와께서 나의 어둠을 밝히시리이다;

'주께서 내 등불을 켜 주시고, 여호와께서 나를 둘러싼 어둠을 밝혀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자기가 등불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성소의 '하나님의 등불'에서  → 그것을 반영한 사무엘의 (등불) 믿음으로 →
또 다윗에게로 이어지는 이 등불은 

그 이후로도 세상의 수많은 하나님의 도구들을 통해서 이어지고 이어져서 
복음서의 표현대로 한다면 
'잠시동안 불타는 등불' 이었던 세례요한을 거쳐서 
참 빛이신 예수님께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사야서와 계시록에서는, 
주님으로 인해서 완전히 회복될 그런 세상에는 
더 이상의 햇빛도, 등불도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해요. 계21:23

왜냐면 그 완전히 회복된 그곳에서는 
바로 우리 주님이, 그 분이 바로 등불이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해요. 

그러나 이제 중요한 것은, 그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까지는 
또는 우리가 죽어서 주님곁에 가기 전까지는 
우리 각자가 등불이 되어서 타오르고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5:15 

다윗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신다.. 라는 이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면 
우리 각자도 잘 타오르는 등불 이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하늘나라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10명의 처녀와 같다'고 말해요. 마25:1

5명의 처녀는 어리석어서, 등잔만 가져오고 기름은 여유있게 챙기지 않았지만 
5명의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그릇에 기름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죠. 
어리석은 처녀들이, 모자란 기름을 구하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을 했어요. 
결혼 잔치집의 문이 굳게 닫혀 버려서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어요. 

다윗의 부하들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등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을 했는데요. 

이거는 성경이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외치는 소리이기도 해요.
"등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라고 말하는 거에요. 미련한 5명의 처녀는 꺼져버렸죠!

'너의 등불이 꺼지면 안 된다. 
그것은 너만을 위한 등불이 아니라, 주님을 맞이하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기름이 모자라지 않게 잘 채워 놓고, 주님을 맞이하라!' - 이게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다윗에게 한 말을 
다윗이 듣기 좋은 미사여구로 우리가 읽을 게 아니라 
'다윗도, 나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니 잘 서 있어야겠다'
'예배와 기도로 성령 충만 해져서, 성소의 등불이 꺼지지 않듯이
내 안에 성령께서 충분히 일하실 수 있게 해 드려야 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면 좋겠어요. 분명히 그러라고 주신 말씀이에요. 

등불을 가진 그 사람이 바로 등불입니다. 
하나님의 등불이 사무엘에게는 비춰졌지만, 

이제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내 안에 등불을 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그 속에 성령의 기름을 계속 부어서, 그 등불이 꺼지지 않게 하시고 
이 어두운 세상에서도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블레셋과 두 번째 전쟁   삼하21:18~22

18 그 후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후사 사람 
십브개는 거인족의 아들 중의 삽을 쳐죽였고
19 또 다시 블레셋 사람과 곱에서 전쟁할 때에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
20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21 그가 이스라엘 사람을 능욕하므로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이 그를 죽이니라
22 이 네 사람 가드의 거인족의 소생이 다윗의 손과 그의 부하들의 손에 다 넘어졌더라

위 구절 모두는, 다윗의 부하들이 골리앗 같은 거인과 싸워서 이겼다는 내용이에요. 

다윗의 부하인 십브개는.. 거인인 삽을
엘하난은.. 골리앗의 아우인 라흐미를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24개인 거인족을 죽였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본문의 이야기가 끝나는데요. 
왜 다윗의 용사들이, 거인을 죽인 이야기를
사무엘서를 마무리하면서 적어 두었을까요?

지금 다윗의 용사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들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는 사람이 만든 어떤 장애물도 
또 어떤 거인도 당해 낼 수가 없다.. 라는 것을, 저자는 지금 말하고 싶은 거예요.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무너뜨리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여기에 거인 이야기가 나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