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0년 동안 개신교 교회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불교도도 숫자가 늘어나고 있고 가톨릭교도도 숫자가 늘어나고 심지어는, 이슬람교도도 한국 내에서 숫자가 늘어나는 반면에, 개신교 교인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뭔가 교회 내의 유통구조가 잘못 되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 유통구조를 알기 위해서 한번 비교를 해 봅니다. 백화점(쇼핑몰)이 있습니다. 대형 마트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엔 물건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생산자들이, 상점(코너)을 얻어서 들어와 있습니다. 가구점이 들어와 있고, 구두점이 들어와 있고, 화장품 파는 회사들이 백화점 안에 들어와 있는데, 그걸 입점이라 그래요. 백화점 안에 들어와서, 자기들의 물건을 파는 가게를 만들어 놓습니다.
그러니까 생산자들은 물건을 팔 때마다 쇼핑몰에 얼마씩, 물건 하나당 얼마씩을 커미션으로 넘겨 줄 것입니다.
그런데 유통과정에서, 유통업자만 너무 이익을 과다하게 취한다고 생각할 때, 소비자나 생산자가 서로 직거래를 추진하게 됩니다.
이 설교문의 주제는, 복음과 신앙생활은 ‘예수님과 신자 사이에 직거래로’ 거래되어야지, 복음이 ‘예수님과 신자 사이에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칠수록’ 오히려 그 본래 정신을 훼손하기 쉽다.. 는 우려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이름을 유통시키는 단체입니다. 그 최초의 형태가, 공생애 때, 예수님과 12제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본문의 내용은, 제자들이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으로 쫓는 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자가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12제자로 이루어진 이 그룹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기 독자적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리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함께했던 제자들이, 그 사람에게, 하지 말라고,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귀신을 쫓는 일을 하지 말라, 네가 왜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하느냐.. 라면서 그에게 핀잔을 주고,
‘도대체 네가 예수님의 이름을 어떻게 입에 올릴 수가 있느냐? 12제자 그룹, 우리 그룹과 함께하지 않고, 우리 그룹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네가 어떻게 직접 우리를 통하지 않은 채 예수님의 이름을 입에 올릴 수가 있느냐?’ 라고 따지고 금했다고 예수님께 와서 보고를 하게 될 때에, 예수님께서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이름을 유통시키는 과정에 있어서 제자들이 오해하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자기들을 통하지 않으면, 예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반드시 쇼핑몰과 같이 중간유통과정이 있듯이, 12제자는, 자기들을 거쳐야만 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내 이름을 널리 전파하기 원한다면, 가급적 직거래를 하도록, 도와주어라..’는 뜻입니다. 12제자의 중간유통과정이 없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이 모양이 교회가 조직으로 변하면서 나타나는 아주 특징적인 증상입니다.
*조직이 나쁘다는 ‘조직 무용론’이 아니라, ‘조직’은.. 원래 목적이 복음을 더 잘 전파하기 위한 조직인데, 그 ‘조직’이.. 조직을 위한 충성만 강조하고, 복음의 본질 전파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조심하자는 취지입니다.
실제로 <교회 조직>은 번듯하게 ‘OO교회’로서 서 있는데, 그 안에 본질인 복음이 미약한 공동체들이 여럿 있습니다. 기독교가 줄어들고 있다면.. 그런 이유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교인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교인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을 내 것으로 만들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교인 사이에서, 그 교인으로 하여금 먼저 조직에 순응하도록 요구합니다. 충실한 조직원이 되도록 가르치는 거예요.
조직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가르치고, 조직을 위한 충성과 봉사를 요구하고, 조직원이 되도록 그래서 이 조직원이 되지 아니하면 신앙인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가 하는 일은, 한 사람이 교인이 되었을 때 그 사람과 예수님이 직접 둘이 만나도록 돕는 것이고, (직거래 하도록) 그 이외의 것은 교인에게 요구해서는 사실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하면 딱 떠오르는 게 여러분 뭡니까? 새 신자 과정을 통하여 그 다음에 구역장 권찰 교육을 받고, 그래야 집사 직분을 받게 되고, 구역장이 돼서 열심히 일하고, 권찰이 돼서 일하고, 제직회원으로 일하고, 제직회 부서의 뭐 부장님으로 차장님으로 일하고… 전부 이런 생각으로 교회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직접 만나서, 내가 예수님과 한 팀이 되면 되는 것을, 그 예수님과 이 사람이 한 팀이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커미션을 교회 안에 조직화 되어 있는 그 조직 속에서, 조직을 위해서 제공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에 의해서 금해진 사항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라고 하는 곳은 어떤 곳이냐? 12제자를 예수님께서 부르신 이유는, 12명이 똘똘 뭉쳐서 하나의 조직과 그룹이 되어서, 예수님의 이름을 특허를 낸 것처럼 독점하라고 12제자를 부른 게 아니라, 12명 모두가 다 각자가 예수님과 한 팀이 되라고 부르신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의도대로 교회가 형성이 되려면 마차 ‘바퀴 살’ 같아야 된다는 얘기에요.
마차 바퀴 살이 20개건 30개건 40개건, 절대로 바퀴살끼리 붙어서는 안 됩니다. 바퀴살들은 다 떨어져 있어야 되고, 각자 모두가 다 축에 붙어야 됩니다,
가운데 축에. 바퀴살이 100개라도, 100개 모두가 다 서로 붙으면 안 되고, 서로 붙어 가지고 12명이 서로 붙어 가지고 한 그룹을 이루어서는 안 되는 것이고, 다 떨어져 있는 채 오직 바퀴 축을 향하여 붙어있어야 그것이 교회의 모습이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바퀴 축에 목사님도 붙어있고, 장로님도 붙어있고, 권사님도 집사님도 새 신자도 다~ 각자가 바퀴 축에 붙어 있을 때, 교회라는 바퀴가 완전히 형성이 되고 굴러갈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를 생각하면, 당회 제직회 행사 뭐 훈련과정 이런 것이 아니라, 10명, 100명, 1000명으로 이루어진 교회가 있다 그러면, 내가 다니는 교회를 생각할 때, 목사님부터 새 신자까지, 지금 방금 들어온 새 신자까지 모두가 다 각자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바퀴 축에 연결된 바퀴살 같이 예수님과 한 팀을 이룬, 요 팀들이 10개, 100개, 1000개로 산재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면 되는 것이고,
무질서하게 산재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있는 그런 아름다운 질서 잡힌 모습으로 교회는 존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조직을 원치 않으시는 거예요.
▲초대교회에서 7집사를 뽑고, 교회를 조직화 되려 그럴 때, 초대교회를 흩어버리십니다. 연이어서 핍박이 일어나, 예루살렘 교회가 외형적으로 흩어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님들도, 조직을 위한 봉사자로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모습으로는, 철저하게 사도들이 했던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는, 그 사도보다 더 사도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