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공식 마5:13, 겔22:30 김성덕 목사 설교스크랩
▲한 사람이 변화시키는 원리
<솔로몬 애시>라는 미국의 심리학자가 ‘사회적 동조성’에 대해 실험했다.
실험 대상자 7명에게 카드 1장을 보여주고
책상 위에 있는 모양이 다른 4장의 카드에서
같은 모양의 카드를 찾게 하는 것이었다.
이때 7명 중 6명에게는 미리 틀린 답을 말하기로 서로 약속하고,
나머지 한 사람(피 실험자)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했다.
6명이 모두 일치해서 틀린 답을 말하자,
나머지 한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카드가 정답임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고 당황한 기색으로 결국 잘못된 카드를 선택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6명 중 1명이라도 정답에 동조했을 때,
그는 자기 생각대로 정답을 고수하더라는 점이다.
신앙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비록 그리스도인들이 소수일지라도, 한 사람일지라도,
개개인이 분명한 목소리로 진리를 말하고 행할 때
동조자들이 나타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진리의 편에 서서 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로 인해 점차 진리를 좇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성경에 한 사람이 없어서 멸망했다는 말씀이 더 생동감 있게 다가온다. 겔 22:30,
◑1. 너희는 세상의 소금
▲소금은 소중한 것
지금 소금은 쉽게 구할 수 있어서 하찮게 여기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던 당시의 소금은 매우 귀했다.
주로 걸어서 팔레스틴을 횡단하던 사람들에게
소금 섭취는 일사병을 막아주는 필수품이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소금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까지 일어났으며
소금을 구하기 쉬운 곳(소금 광산 옆)에 대개 고대 국가들이 건설되었다.
소금을 지배하는 것이 곧 백성을 지배 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월급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Salary라는 말은
원래 소금이라는 단어 Salt에서 나온 말이다.
옛날 로마 군인들이 월급을 소금으로 받았기 때문에
소금은 바로 현금과 같은 것이었다.
▲칭찬을 받든지, 박해를 받든지 하라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칭찬을 받든지 박해를 받든지, 둘 중에 하나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세상의 부패에 동화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이 싫어하든지
아니면 바르고 정직하며 섬기는 삶을 통해
칭찬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소금은 갈증을 유발시킨다.
소금의 역할에 대해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윌로우크릭 교회 <빌 하이벨스> 목사는
소금은 우리의 인체에 갈증을 유발시키듯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라면 목적의식을 가지고 성령으로 조율될 때
반드시 그들 주변 사람들에게 영적인 목마름을 유발시킨다는 것이다.
아주 의미 있는 표현이다.
▲맛을 잃은 소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3
어떻게 소금이 그 맛을 잃게 될까?
오늘날 우리가 먹는 소금을 생각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소금을 얻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닷물을 통하여 얻는 천일제염이나 물을 끓여 얻는 재제염이 있는가 하면
암염(巖鹽)이라는 소금을 함유하는 바위에서 채취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바닷물을 이용하는 방법으로 소금을 얻는데 반하여
이스라엘 지방에는 사해 근처에서 나는 암염으로부터 주로 소금을 얻었다.
암염 속에 들어 있는 소금 성분을 식용으로 하기 위해서는
암염 덩어리를 물에 담그면 그 물에 소금 성분이 추출되어 나오고
그것을 반복하고 농축하여 식용으로 사용하게 된다.
이렇게 암염에서 소금 성분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에는 점토와 석회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땅바닥에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이 맛 잃은 소금이다.
거룩과 사랑이 빠진 신앙은 마치 맛 잃은 소금 같은 신자가 되고 만다.
▲성도가 세상에 쉽게 동화되는 이유
염전을 하시던 장로님의 이야기다.
어느 날, 장로님이 염전 일을 하다 실수로 소금 가마니를 바다에 빠뜨리셨다.
금세 건졌는데, 커다란 가마니 속 소금이 거의 다 녹아버려 있었다.
소금이 물에 잘 녹는 건 알았지만,
김장때 배추를 절이기 위해 소금을 물에 녹일 때면
물을 힘껏 휘젓고도 한참을 기다려야만 겨우 녹는데,
소금이 가득 찬 가마니를 즉시 건졌는데도, 소금이 많이 녹아 없어져 있었다.
장로님은 매우 의아해했지만, 금방 이유를 깨달았다.
소금은 애초에 바다로부터 취한 것이기 때문에
담수에서와 달리 금세 녹아버린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다. 바다로부터 취한 소금은 순전하게 구별되었다가도,
바다를 만나면 금세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취한 존재다.
따라서 세상과 섞이기 시작하면 금세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의 깊음이 필요하다.
항상 세상의 유혹들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자신의 구별됨을 순전하게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빛을 원하는 세상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님 돌아가셨다.
복음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된 주민들이
선교사의 묘지에 이렇게 비문을 새겨놓았다.
[당신이 올 때는 어두움이더니 당신이 떠나간 지금 우리는 빛이니이다.]
이 세상은 빛을 원하고 있다. 빛의 자녀를 원하고 있다.
애굽이 요셉을 원했듯이
페르시아가 에스더를 원했듯이
바벨론이 다니엘을 요구했듯이
세상 속에서 빛을 발하는 하나님의 일군들을 원하고 있다.
대구가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를 절실히 원하고 있다.
이 세상의 빛이 되는 내일 교우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가로등이란 글이 있다.
가로등, 밝은 대낮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두워지면 밝게 살아나 밤거리를 밝혀준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서서,
자기 곁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친구처럼, 연인처럼, 희망처럼 빛이 되어준다.
가로등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란다.
▲‘노인들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소오 엘리저는
1990년에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던 이탈리아 여인이다.
엘리저는 중국에서 선교하던 중에 폐병이 걸려 본국으로 소환되었다.
그녀는 하나님께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이라고 원망하지 않고
“나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고 되물었다.
이후 그녀는 농장에서 일을 하면서 중국 선교를 도왔다.
그런데 추수를 하다 그만 탈곡기에 손이 들어가 오른손을 잃었다.
이때도 엘리저는
“주님, 오른손이 없는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했다.
기도의 응답으로 엘리저는 양로원을 세웠고
버려진 수천 명의 노인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노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엘리저는 불행한 환경을 극복하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며 인생을 보냈다.
이제 우리의 기도도 “왜 나에게 이런 일이?”가 아니라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로 바뀌어야 한다.
“주여, 무엇을 원하십니까?”
이 기도에 주님은 이렇게 응답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
▲세상에 빛이 되는 실제적 사례
두 농부가 한 동네에 살고 있었다.
한 농부는 교회 집사님이고, 다른 농부는 불신자였다.
그런데 집사님의 논은 지형상 항상 물이 고여 있도록 된 논이고,
불신자의 논은 지형상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불신자는 밤중에 몰래
집사님의 논에서 논 뚝을 삽으로 헤치고 자기 논으로 물을 끌어다 채웠다.
집사님은 아침에 논에 나갔다가 자기 논의 물이 다 빠지고
옆의 논에 물이 차있는 것을 보고 그 불신자에게 따졌다.
그러나 불신자 이웃은, 자기가 물을 끌어간 것이 아니라
물이 저절로 흘러 들어온 거라고 잡아뗐다.
집사님은 화가 나서 불신자의 논에서 물을 퍼 밤새 자기 논에 다시 채웠다.
그런데 그의 마음에 평안이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제가 당연히 취할 권리를 취했는데도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왜 너는 왜 정당한 것만 주장하느냐?
네 논의 물이 필요한 이웃에게, 왜 스스로 물을 대주지 못하느냐?’
집사님은 회개했다.
그날 저녁에 집사님은 자진해서 자기 논의 물을 불신자의 논에 대주었다.
밤에 자기 논에 물을 대려고 나왔던 불신자는
이미 물이 찬 것을 보고 금방 영문을 알아차렸다.
다음날 그는 집사님에게 용서를 구하고 예수님을 영접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롬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