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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하고 건강한 삶의 열쇠, 공경

LNCK 2023. 5. 19. 22:30

2023.05.07 - 풍성하고 건강한 삶의 열쇠, 공경 - YouTube

◈풍성하고 건강한 삶의 열쇠 공경   엡6:1~4, 눅2:51~52    

◑나의 '마음의 회개'

14년 전, 제가 첫번째 안식년을 가졌을 때였습니다. 
북미권의 한 사역단체의 <사역자 훈련학교>를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저를 소개해야 했습니다. 
"저는 사역자입니다" 이렇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당시 젊다 못해 어려보이는 저였습니다. 
그래서 어김없이 이런 질문이 돌아왔어요. 
"풀타임인가요, 파트 타임인가요?" 

그 곳 문화에서는, 사역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지 않으면 
풀타임 사역을 할 수가 없는 문화였습니다. 

"저는 풀타임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담임하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오, 이렇게 젊은데, 풀타임으로 교회를 담임하고 있다고요?"
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답 속에서, 은근히 저의 에고가 위로를 얻고 또 으쓱해지는 응답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어느 한 어느 날 또 다시 저는 대답했습니다. 
"저는 풀타임 사역자입니다" 라고 대답했는데, 
그 순간에 성령께서 제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영준아, 너는 더 이상 풀타임 사역자가 아니어야 한다. 
너는 먼저 풀타임 남편, 풀타임 아빠가 되어야 한다' 

회개는, 나쁜 행실을 버리고 좋은 행실을 갖는 '행동의 회개'가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길을 바꾸는 '마음의 회개'가 있습니다. 
그렇게 저의 '마음의 회개'가 시작되었습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지어졌습니다. 
성경은 자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지어졌습니다. 

인간의 죄성으로 깨어진 하나님의 형상은, 바로 '사랑 받고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저는 설교하고 사역하는 '풀타임 사역자'가 되기 이전에, 
풀타임으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로서 

그리고 그 컨텍스트는 무엇보다 가정, 
'풀타임 아빠'로서 '풀타임 남편'으로서 부름받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제 마음의 회개'를 하게된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이렇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저는 풀타임 남편입니다. 풀타임 아빠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의미를 깨닫고, 제게 웃음을 짓곤 했습니다. 

성공과 명예와 나의 에고(자아)를 추켜세우는 일에 골몰하던 일에서 
돌이켜 '사랑 받고 사랑하는 존재'로 돌아오는 일, 
그 마음의 회개의 여정이 벌어져야 할 곳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가정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마음에, 변혁이 일어날 용광로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장인 것입니다. 

딤후3:1~2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사람은 이미 주어진 것(가정같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아직 손에 잡히지 않은 것, 손에 잡힐 듯 말듯한 것에 골몰하려는 
마음의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TV예능에서 이런 농담이 나오는데, 정말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주었어요.
'당신이 이상형은 어떤 사람입니까?' 라고 물으니 
그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내 이상형은 처음 만나는 여자입니다.' 

이미 내게 주어진 것보다, 아직 주어지지 않은 것을 향해 달려가는 본성을 
잘 드러내주고, 그 본성을 희화화하는 농담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 있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이 가정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의 남편, 우리의 부모, 우리의 자녀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가정)을 우리는 당연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지 아니하며, 

-아직 주시지 않은 명예와, 
-손에 잡힐 듯 말듯한 부와, 
-새로 건설해야 할 것 같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골몰하려는 우리의 본성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춘기가 되면, 가족보다는 학교 친구들을 관리하는데 
더 열을 올리기 마련입니다. 

청년이 되면 진학과 취직에 목을 맵니다. 
그리고 연애와 자신의 진로에 대해, 모든 것을 쏟아붓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청년이 가정을 돌보지 않습니다, 부모를 투명인간 취급합니다)

성경은 말세가 되면 뭐라고 얘기합니까? 
'부모를 감사하지 않는 풍조'가 강해질 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말세' 라는 말은, 한 사회가 무너지는 시기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이 무너지는 징후가 나타난다면 
그것을 미연에 막고 싶지 않겠습니까? 

내 삶에 시한폭탄이 장착되어서 째깍거리고 돌아가고 있다면 
제거하려 하지 않겠습니까? 
그 시한폭탄의 이름이 뭡니까? 
바로 '부모를 감사치 않는 일'이라고 합니다. 딤후3:2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시하는 겁니다.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가치에 맞게 대우하지 않는 겁니다. 

말세가 될수록, 망조가 들수록, 그 시한폭탄이 가지는 째깍거림이 
더욱 강해질 거라는 겁니다. 

그 시한폭탄이 방치될 때, 그것은 한 사회를, 한 공동체를 
아니 한 개인을 날려버리는 붕괴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현재 자녀가 부모에게 무관심하면, 결혼해서 자기 가정을 이루어도 무관심하게 됩니다 

며칠 전에 저희 아이들이 캐나다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곳에서 바로 제가 과거에 있었던 <사역자 훈련학교>에
14년 만에 저희 아이들이 가게 됐어요. 

3개월간 그곳에서, 오대양 육대주에서 온 다양한 또래 아이들과 
말씀을 듣고 배우고 예배하고, 또 사역에 대해서, 선교에 대해서 훈련하는 
3개월간의 시간을 도미토리에서 함께 가지며 보냈습니다. 
얼마나 흥분되고 흥미롭겠습니까?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만나고요. 같이 먹고, 예배하고, 교제하는 게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뭡니까? 

한국의 가족(부모)에 대해서 약간 소홀해지는 겁니다. 

처음엔 우리 부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니 얼마나 정신이 없겠나?' 하고 
1~2주 동안 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리고 다음 1~2주 동안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는 데는 
굉장히 중요한 그 타이밍들이 있으니까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그럴 수 있다... 라고 제 마음을 달랬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연락 안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앞으로 펼쳐질 40년 동안 (부모가 살 기간)
이 환경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제 애들이 대학에 가고, 특별히 유학을 가고 
그곳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되고요. 또 취직을 준비하게 되고요. 
연애도 하게 되고요. 결혼 준비도 하게 되면요. 
이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환경이 더 나아지길 기다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녀의) 마음인 것입니다.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새로운 것만을 향해 돌진하고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는.. 

이미 주어진 것(가정)은 가볍게 여기고, 우선순위에 뒤처지게 만드는 
마음의 죄성 자체가 문제인 것입니다. 

환경이 바뀌길 기다리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발견되는 이 시한폭탄을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않는 것)
대면하고 제거해야 할 문제임이 명확했습니다. 

그래서 화상통화 시간 약속을 잡고요. 
이제 제 아이들과 화상으로 부딪치기 시작했습니다. 

"너희가 마음속으로 (부모를) 중요히 여기는 것을 내가 짐작한다. 
너희가 부모를 좋아하고 그리워할 거다. 

근데 중요한 건, 부모에게 텔레파시 기능이 없다. 
너희가 말하는 것, 너희가 표현하는 것이 
부모가 경험하는 내용이며 

두번째로 너희가 (부모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표현하는 것이 
너희의 미래의 내용이 된다..'  

하나님은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도록 구약에서 말씀하셨어요. 왜요?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그 우선순위에 맞는 선택을 하고 
다른 일을 희생해서라도 그 우선순위지키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형성되는 거에요. 

마음은 감정만이 아니에요. 
마음은 내가 사는 우선순위의 결과로서 맺혀지는 성향이에요. 

여러분, 문자를 보내면 읽씹 과 안읽씹이 있어요. (읽고 씹고, 안읽고 씹음)  
저희 아이들과 저의 컨택 포인트는 오직 핸드폰 '문자' 에요. 

거기서 (부모가 보낸 문자를 자녀가) 읽씹 또는 안읽씹을 경험한다면 
그 아이들의 마음속에 아무리 그리움이 있던, 무엇이 있든, 
부모는 거대한 빈 공간을 경험하는 겁니다. 

진짜 무서운 건 뭡니까? 그 우선순위와 그 라이프 스타일은 
그들의 미래를 빚어나가는 끌과 칼이 될 거라는 겁니다. 

(자녀들이) 점점 가정이 뒷전으로 밀리고 
눈앞의 급한 일만 추구하는 (장래에 자녀가) 풀타임 사역자, 풀타임 부장, 
풀타임 비즈니스맨이 되고, 

아주 아주 파트타임 아빠, 아주 아주 파트타임 엄마, 
아주 아주 파트타임 남편이나 아내가 될 거란 사실입니다. 
(*현재 부모에게 그렇게 대하면, 장래에 그런 어른이 될 겁니다)

그것은 제가 그렇게 변화되고 떠나야 했던 
제 '마음의 회개'의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풀타임 사역자이기 이전에, 먼저 풀타임 남편, 풀타임 아빠가 되어야 했죠.

그렇게 아들 둘과 화상대화를 하는데, 이들은 묵묵히 제 말을 들었어요. 
'묵묵히 듣는다'는 건, 지금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표시인 거거든요. (빨리 끝내주세요)

저는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어요. 근데 한 장면이 딱 생각났어요. 

「어떤 TV프로그램을 보니까, 
요즘 개 키우고 고양이 키우는 사람을 '집사'라고 그러잖아요. *돌보는 일꾼

그러니까 '집사'가 출근을 해요. 
이 강아지가 주인을 너무 좋아하잖아요. 
그러니까 주인공에게 막 달려가서 문 앞에서 꼬리를 치고 막 뛰어오르고 난리를 쳐요. 

주인이 출근해야 되니까, 문을 닫고 나가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개가 혼자 그 자리에 계속 머물며 주인이 퇴근하길 기다리죠.
 
저녁에 '집사'가 돌아와서 삐삐삐 도어락을 누르는 소리가 나요. 
개가 일어나서 펄쩍펄쩍 뛰어요. 주인이 들어와서 그 개를 껴안아요. 

근데 CCTV를 보면, 개는 그곳에서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렸던 거에요. 
그 CCTV를 보고, 주인이 울어요.」 그 TV장면이 제게 딱 생각이 났던 거에요.

"얘들아 우리는 너희를 공항에 보낸 그날부터 
그 강아지처럼 (요즘 댕댕이 라고 하죠) 너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엄마는 그 댕댕이처럼, 마음의 현관에서 꼬리를 치고 너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문자를 하나 보낼 때, 그것이 읽씹 이든 안읽씹이든 
그것에 답이 올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한 시간에도 몇 번씩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그 댕댕이가 부모 마음에 있다. 

그 댕댕이를 찍은 CCTV를 보고 주인이 울더라. 
너희가 우리 마음을 알면 너희가 회개할 거다." 

제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화상통화인데 애들이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 마음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어요. '먹혔다!' 

문제는 뭐에요? 그 얘기가 저한테도 먹혀버린 거예요. 
저도 울고, 아이들도 울고... 
제 마음속에 댕댕이가 들통난 거예요. 

제가 왜 울었을까요? 저의 삶의 히스토리가 또 보였어요. 
가족이 뭡니까? 
가족은, 하나님이 서로를 향한 마음에 댕댕이를 넣어두신 관계이에요.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아빠라는 존재에게는 댕댕이들이었어요. 
뛰어오르고, 할딱거리고, 놀아달라고, 선물 한번 사 달라고 
극장 한번 가자고, 놀이터 가자고... 

근데 그때 당시에 아빠는 풀타임 사역자였어요. ('풀타임 아빠'였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아이들의 꼬리가 다섯 살까지 흔들리다가 그 꼬리가 지쳤어요. 

풀타임 사역자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게임이나 하자' 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게임을 하게 되는 거예요. 

신혼때 제 아내의 마음은, 저를 향해 땡땡이 였어요. 
'남편아, 날 사랑해 줘! 남편아, 나를 예뻐해 줘'

근데 저는 풀타임 사역자였어요. 
아내의 꼬리는 몇 년 만에 지치고, 
아내의 마음은 몇 년 만에 현관 앞에서 내려앉았어요. (포기한 댕댕이)

감사한 것은, 제가 늦게라도 돌이켜서 (14년 전에)
그 댕댕이들에게 눈을 맞추고, 용서를 구할 기회가 있었다는 겁니다. 

다시 그 마음을 내게 돌려달라고.. 
내가 가족을 나의 가장 귀한 사람으로 여기고 
내 인생의 가장 귀한 자원으로 여기고 살아가겠노라고... 

'나의 이제 남은 여정은 나의 에고가 아니라, 풀타임 사역자가 아니라
나를 향해 댕댕이처럼 사랑해주는 마음을 가진 이 가족들에게 응답하는 
헌신된 여정을 보내고 싶다. 기회를 달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도록 지어졌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자산은 
그 마음속 댕댕이들입니다. 

여러분의 아빠, 여러분의 엄마, 
여러분의 남편, 여러분의 아내, 
여러분의 아이들이 여러분을 향해 가지고 있던 

혹은 이전에 가졌으나 실망하고 방으로 들어가버린 그 댕댕들이 회복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성공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비전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낙원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말세에 사랑이 식어지리라..' 

'얘들아, 너희 인생이 무너질 징조는 이거야. 
네 주변에 진심으로 너를 향해 댕댕이의 마음을 가진 이들의 마음이 
식어지는 거야, 그거는 망조다!'

길조는 이겁니다. 그 마음들이 돌아오는 겁니다. 
그 마음들이 정말로 나 스스로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으로 관리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24:12
여러분 안에 이 시한폭탄이 제거되기를 바랍니다. 
'잡지 못하는 것'을 향해 달리느라 
이미 주신 '최고의 자산'을 다 망가뜨리는 어리석음이, 그 죄성이, 
우리 안에 제거되기를 바랍니다. 

그 시한폭탄이 우리 안에 무력화되기를 바랍니다. 

◑배은망덕의 죄

딤후3: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왜 무정해질까요?
원통함을 풀지 않아서 무정해집니다. 

수많은 영성가들이 '인간의 원죄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했어요. 
-인간의 원죄는 인간의 교만이다. 
-인간의 원죄는 인간의 불신이다. 

그런데 가장 많은 영성가들이 이야기하는 '인간의 원죄'가 뭔지 아세요? 
그것은 배은망덕입니다. 
배은망덕 - 이것은 인간이 가진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배은망덕이란, 내가 받은 은혜와 덕을 쉽게 망각하는 성질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고통과 피해는 잘 기억하고, 
세어보고, 저장하고, 묵상하는 본성입니다. 

십계명은 두 부분을 나눠져 있습니다. 
앞부분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뒷부분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 있어서의 죄에 관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뒷부분의 첫 계명이 바로 '부모를 공경하라' 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살인하지 말라'도 5계명 뒤에 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도 뒤에 있습니다. 

어떻게 이것보다 가장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가 나옵니까? 그 이유는, 
모든 죄의 뿌리가, 내가 받은 것은 생각지 않고 
받은 사랑은 다 잃어버리고 
받은 상처와 결핍과 고통만을 카운트하는 
배은망덕의 본성에 있기 때문에, 5계명이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본성이 가장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장소가 
바로 '부모 - 자식 관계' 임을.. 십계명은 엑스레이 찍듯이 찍어 보여주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 - 자식 사이는, 우리의 배은망덕의 본성이 
할례되어지고 즉 제하여지고, 성화되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인생의 원초적 전쟁터라는 겁니다. 

여러분 진짜 중요한 영적 전쟁터는, 저 10/40창에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중요한 영적 전쟁터는, 정부나 사창가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영적 전쟁터는 부모 - 자식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바로 배은망덕을 대면하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가족들에게 식어지고 점점 멀리 떠나는 이유는,
원통함을 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받은 사랑과 은혜는 당연시하거나 잊어버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와 고통만을 마음에 품는 성질, 즉 배은망덕 때문입니다. 

배은망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자리가 바로 가정입니다. 
그리고 이게 원죄라는 말은 뭔지 아세요? 
아담으로부터 이 죄가 모든 인류에게 유전됐다는 겁니다. 
우리 모두가 대면하고, 제거하고, 돌이켜야 할, 우리 모두의 과제라는 겁니다. 

제가 14년 전, 첫번째 안식년 동안 
그 <사역자 학교>에서 "아버지의 마음"이란 강의를 듣고 있었습니다. 
바로 '마음의 회개'를 통과하는 기간이었습니다. 

나는 '풀타임 남편, 풀타임 아빠'가 아니라 
왜 나는 '풀타임 사역자'로 살아왔는지 
제 삶의 히스토리를 대면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왜 성취가 가족 위에 있는지, 
왜 에고(자아)가 사랑 받고 사랑하는 일보다 더 위에 있는지를 
대면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이라는 강의시간에 
설교 후 기도 시간에 갑자기 제 마음속에 비전이 열렸습니다. 

「그 비전 속에서 저는 아름다운 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실이 너무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정말 편안하고 깔끔하고 심지어는 호화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거실에 사람들이 들어와서 오래 거하지 않는 겁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되었어요. '왜 사람들이 이렇게 잠깐 있다가 떠나는가?' 

그 거실에 제가 들어가 보니 악취가 가득했어요. 
그 악취는 바로 지하실에서 나는 악취였는데 
지하실로 내려가니, 어두운 지하실에 아주 오래된 냉장고가 한쪽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유효기간이 지난 썩은 음식들이 
악취를 풍기고 있는 겁니다. 그 유효기간을 확인했을 때 
저는 이 모든 비전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그 유효기간은 바로 저의 유년시절이었어요. 저희 청소년기였습니다. 
저의 청년기였습니다. 
그때 받았던 결핍을, 제가 마음속으로 카운트하고 있는 거예요. 
품고 있는 겁니다. 

그때 경험했던 고통과 거절과 (부모 사랑의) 부재를 마음속으로 붙들고 있는 겁니다. 
유효기간이 지나도 한참 지나서 다 썩도록 말입니다.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 대상은 나의 부모님이었습니다. (배은망덕 설명 중)

다 지난 듯한 시간 속에 남겨진 그 음식물 쓰레기들은
나의 오늘 나의 거실을 악취로 가득 채웠고 
그곳에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에 있어서 내 스스로 성장하지 못하며 
항구적이고 건강하고 미래를 만들어가는 관계들을 설정하지 못하게 하는 
찰나요, 자극적이요, 손익분기점에 기초한 관계들, 
다시 말해 항구적이지 않은 관계들만 설정되는 라이프스타일의 근원이었던 거에요. 

제가 이전에는 비전을 잘못했었겠어요. 
'아, 내가 과거에 부모님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내가 이렇게 오늘의 삶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과 
오늘의 관계에 대해 부정적인 라이프스타일을 가졌구나' 라고 해석했어요.

뭐가 잘못됐는지 아세요. 그 냉장고의 이름은 '배은망덕'이었어요. 
(*오늘날 내적치유 상담하면서, 유소년기에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다 부모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보다 근본원인은 자녀의 '배은망덕'이 문제라는 거죠)

왜 그 냉장고에 '내가 받았던 사랑'이 들어있지 않냐는 거예요. 
그 냉장고에 왜 내가 받았던 축복과, 내가 받았던 돌봄과, 
나와 함께 있어 주셨고, 기도해주셨던 시간들은 담겨져 있지 않냐 이거예요. 

어떻게 이 땅에서 가장 나를 사랑하고 축복하는 존재로 세워진 부모를 
내 삶에 가장 큰 상처를 준 존재로 남겨 놓았냐? ... 이거예요. 

그게 부모의 부족 때문이냐고요,
아니면 나의 배은망덕의 본성때문이냐고요? 

그 냉장고는 매우 편집적(내 위주로 취사선택)이에요. 
내가 받은 상처, 손해,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위주로 편집되어 적립한 거예요. 

내가 받은 사랑, 내가 받은 축복, 내가 받은 은혜를 적립하지 않는 거예요. 
인간은 기억모체에요. 우리는 과거에 벌어진 사건을 편집해서 적립해요. 

나는 악취나는 지하실 냉장고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것은 부모가 나에게 준 고통이 아니라, 
나의 배은망덕이고,
나를 향했던 부모의 가슴을 찢은 나의 배은망덕한 공격성이었던 거에요. 

그날, 그 냉장고 문이 열리고 
화염방사기 같은 불길이 그 안으로 들어와, 그 썩은 음식물들을 태워내는 걸 봤어요. 
너무 감사했어요. '내 삶이 이제 새롭게 되겠구나!'」 

근데 동시에 마음속으로 너무 아쉬운 거예요. 왜요?
'하나님 서른이 넘어서 왜 이제 입니까?'
'지난 세월의 손실은 어떻게 하고요?'

'왜 내가 결혼 전에 이것을 해결했어야 되는데' 
'아이들을 낳기 전에 이것을 해결했어야 되는데' 

하나님은 이미 해결하기 원하셨어요. 
중요한 건 내가 해결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는 그 문제들을 청산하고 싶었어요. 그 손실을 복구 받고 싶었어요. 
나는 그 데이터들을 삭제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책임을 떠넘기고 싶었던 거예요. 

제 마음속 지하실에는 '배은망덕의 냉장고'가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내가 받은 피해를 세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입은 고통만을 카운트하는 이 편집적 삶에 대해 
그치기로 결정합니다.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카운터하는, 이 불공평한 죄성에 기초한 
편집적인 사고방식을 포기하기로 결정합니다. 

'주님,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는 delete 하고,
부모님으로부터 받았던 사랑과 돌봄과 은혜를 기억하겠습니다!
이제 새로운 데이터들을 다운로드 받겠습니다'

우리는 배은망덕의 알고리즘은 씻어내야 하는 거예요. 
저의 그 선택으로, 주님께서는 그 성령의 불로 
제 안에 있었던 수많은 악취나는 것들을 태워낼 수 있으셨던 거예요. 

그렇게 '마음의 회개'의 과정을 통과하며. 제 마음속에 지하실이..
거실에서의 소셜 스킬 말고요. 즉 사람들 대하는 스킬 말고요. 
거실은 얼마나 매력적인지.. 이런 거 말고요. 

제 지하실(내면 세계, 무의식)이 변화되기 시작했어요.
이제 새로운 알고리즘이 역사하기 시작했어요. 

희한하게 받은 사랑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받은 삶, 받은 축복들이 이제 보이기 시작하는 거에요. 
어쩜 그게 그렇게 거짓말처럼 안 보였을까요? 

제 아내와 제가 미국에서 일을 보고 
일주일 정도의 일정이라서, 이것 저것 할 일이 많았어요. 

하루는 운전을 여러 시간 하고 가는데,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난거에요. 
그래서 아내가 '여보, 집에 있는 애들 줄 선물 좀 사러 가요'
저는 '여보, 그런 시간 없어!'

그러다가 무슨 생각이 딱 떠올랐어요.
제가 어릴 때, 저희 아버지는 출장을 자주 다니셨어요.

출장을 가면, 하루 정도는 쉬는 날이 주어지죠.
그러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지역 관광을 다니는데, 
저희 아버지는 관광 대신, 한 번도 빠짐없이 장난감 시장에 가셨어요. 

일본에 있는 장난감 시장, 미국에 있는 장난감 시장
그리고 트렁크(가방)를 큰 걸로 사서, 하루 종일 장난감을 사서 채우셨어요. 

그리고 그 무거운 가방을 끌고, 비행기를 타고, 
그때 저희 집이 울산이었거든요. 서울에서 울산까지 또 오시고 
그걸 끌고 집으로 들어오시면, 저희 삼형제가 와~하고 달려들어서 
아빠를 지나치고 트렁크를 열고, 일주일 동안 파티가 벌어졌어요. 

그때 우리 삼형제는, 그게 당연했던 거예요. 
우리는 편집증적이에요. 이게 기억이 안 났었던 거예요. 
그리고 늘 상처받은 것만 기억하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그날 운전하다가, 그게 생각이 나는 거예요. 
'여보, 우리 아버지가 그때 출장 다녀 오실 때마다
이만한 트렁크에 장난감을 가득 채워 가지고 오셨어!' 하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는 거예요. 

왜요? 내가 너무 배은망덕한 거예요. 
내가 이것은 세어보지 않고, 너무 아픈 것만 세고 살았던 거에요. 

그날  10시간을 운전하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부모님이 나에게 어떻게 해주셨는지,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어떻게 내 인생에 함께 해주셨는지, 어떻게 지지해 주셨는지, 
어떻게 축복하셨는지,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얘기하기 시작하는데 

예전부터 차를 타고 가면, 저희 대화가 깊어지는 시간이거든요. 
그러면 맨날 옛날에 있었던 트라우마, 옛날에 있었던 상처,
옛날에 겪었던 결핍으로 인해서 
내 인생과 내 인격이 얼마나 부정적으로 형성되었는지를... 나누곤 했죠. 

다 그때 받은 상처 때문이라는 거예요. (이게 배은망덕이었던 거죠)

여러분 삶에는 상처와 결핍과 부정적인 일들이 있어요. 앞으로도 있을 거에요. 
중요한 건 뭐에요? 우리가 어떻게 그걸 넘어서냐 에요. 
배은망덕은 그 일에 있어서 백전백패하게 만드는 최악의 영성이에요. 

그런데 그날은, 그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걸 꺼내고 꺼내니까.. 왜 이렇게 많아요?
내가 아기 때, 우리 부모님이 나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까지 나와요. 
그러니까 너무 눈물이 나와서 운전을 제대로 못하겠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오늘의 영성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배은망덕의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속엔 '공경과 감사의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회개하라.' 

그 나무뿌리는 버린 바로 원죄, 배은망덕의 나무뿌리 입니다. 
도끼로 그 나무를 찍어내라 이겁니다. 

그리고 이 마음에 새로운 나무를 심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네 마음에 새로운 편집을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너의 마음에 데이터를,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채워가라 이겁니다. 
공경과 감사의 나무를 키우라 이겁니다. 

과거의 사건이 나의 오늘을 결정지을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토양 안에 어떤 나무를 키우냐가, 나의 오늘과 미래를 결정짓습니다.
  
◑공경을 통해, 호의의 용량을 늘이라

엡6:1~3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위 말씀은, 부모 편드는 게 아니고, 자녀 편을 드는 말씀입니다. 
'이게 네가 잘 되는 길이야, 네가 건강하게 사는 길이야, 네가 뻗어나갈 수 있는 길이야!' 

왜 부모를 공경하면, 땅에서 잘 되고 건강하게 살아갈까요?
여러분 여기에는, 은혜와 자비의 원리가 숨어있어요. 
은혜와 자비의 연장선에 있는 게 호의 favor 입니다. 

은혜와 자비는, 우리의 천로역정 인생길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뒷바람이에요. 
호의는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뒷바람이에요. 아멘!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은, 그들이 똑똑한 만큼 잘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세상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죠. 

하나님의 자녀들이 잘 되는 길은, 그들이 잘 생긴 만큼 잘 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자녀도 잘 되는 길은, 잘 들으세요,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호의 만큼 이에요. 
내가 소유할 수 있는 호의 favor의 용량만큼 잘 되는 거예요. 

눅2:51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예수께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받들어 섬겼대요.

52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영어로 '호의가 더 커져 가더라'

예수님이 호의를 담으실 수 있는 용량 capacity 이 자랐대요.
어떻게요?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에게 순종하며 받드시니
이어지는 구절에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그분들의 부족보다, 그분들이 가졌던 원래적인 사랑을 주목하여 보는 거예요. 
그분의 실수보다, 그분들이 원래는 축복하고 싶었잖아요. 
원래는 잘하고 싶었잖아요. 근데 한계가 있고 죄가 있고 연약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한 부분들이 있잖아요. 

근데 배은망덕으로 그걸 보는 게 아니라, 공경하셨다는 거에요. 
그랬더니 호의를 받으셨다는 거죠. 호의를 담는 용량이 커졌다는 거에요.

부모-자식 관계, 가정은.. 제가 감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딸들에게 가장 중요한 학교입니다.
무슨 학교? 공경을 키워 졸업시키는 학교에요. 

여러분 다른데는 낙제해도, 이건 낙제하시면 안 돼요. 
다른 데는 때려쳐도, 이건 때려치시면 안돼요. (부모를 공경해서 부모의 호의 받는 것)

왜요? 이게 번영과 건강에 가장 중요한 키가 되기 때문이에요.

우리의 삶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father figure, mother figure 와의 관계에요. 
이분들은 '어머니 아버지의 연장선에 있는 인물들'을 얘기합니다. 
아버지 같은 분, 어머니 같은 분!

즉, 부장님, 사장님, 선생님, 교수님, 목사님 같은 분들이죠.
크리스천은, 
father figure, mother figure 로부터 받는 호의 만큼 
뻗어나갈 수 있다는 거에요. 진짜 중요해요. 

우리가 그 분들을 (부모님처럼) 공경할 때, 
그 분들이,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주는 거예요.

그 분들은, 어느 일정 선이 넘으면
자신에게 있는 것들을 물려줄 사람을 찾게 돼 있어요. 

이건 인간 안에 있는, 본성이에요. 하나님 주신 본성이에요. 
그걸 물려줄 사람을 찾아요. 나눌 사람을 찾습니다. 계승자를 찾습니다. 

교수님들은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물려줄 학생을 찾아요. 
선배들은 자신의 비밀과 인프라를 나눠줄 후배를 찾아요. 

'그런 건 나는 모르겠고, 내 능력으로 가겠다'
그건 교만이죠.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에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도 호의 favor로 성장하셨어요. 눅2:41~42
여러분이 부모를 공경하시고, 
부모 연장선상에 있는 분들을 공경하셔서
사람에게도 호의 favor를 받는 수혜자들이 되어서
여러분의 미래가 더욱 뻗어나가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제가 최근에 다리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교회에 왔는데, 몇몇 나이드신 성도님들이 저를 보시고 우시더라고요. 저는 '우리 교회는 호의 favor가 역사하는 교회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잘 해서 이 교회를 목회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호의로 잘 봐 주시니, 제가 이 교회를 목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각자의 인생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 호의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처럼! 그렇게 하려면 우리가 어른들을 '공경'해야 된다는 거죠. 눅2:5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