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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의 부서짐, 하나님의 축복

LNCK 2023. 5. 23. 11:40

◈자아의 부서짐, 하나님의 축복          창32:24~29       

*하나님이 뭔가를 명하셔도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야곱)은
그 명령대로 행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자아의 깨어짐'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얍복 강가에 야곱만 홀로 남았습니다. 야곱이 홀로 남은 이유는 
이제 20년 만에 하란의 라반 집을 떠나서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는데, 
강 건너편에, 형 에서가 4백인의 군사를 거느리고, 
자기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죠. 

주님이 분명히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명하셨습니다.
창31:3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주님이 야곱과 함께 해 주신다는 거예요. 
근데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얍복강을 못 건너 가는 거예요. 창32:24

주의 음성을 들었는데도, 주님이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는 데도,
그 직접 그 음성을 들었는데도... 그런데 지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못 건너 가는 거예요. 자아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었죠.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해도 (자아가 깨어지지 못해서)
우리가 못 하는 일들이 많다는 거예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내 판단, 내 감정' 그런 거에 계속 묶여 있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왜냐면 우리 자아가 처리/깨어지기 전에는 
주님의 음성마저도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결국에는 우리 감정, 우리의 생각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야곱처럼! 

▲하나님은 야곱의 자아를 깨뜨려 주십니다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 하고 있는 거예요. 
야곱에게는, 잠재의식 같은 게 있어요.

쌍둥이 형 에서와
어머니의 태아 속에서부터 다투었고, 서로 씨름을 했잖아요.
그런데 결국 져서,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와서 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 에서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그는 태생적으로 '이길 수 없는 사람'을 만나도록, 주님이 세팅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에서를 만난 것이고, 라반을 만난 것이고,
지금도 '씨름하는 사람'(주님의 명을 받은 천사)을 만나서 씨름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의 두 아내, 레아와 라헬은 얍복강을 먼저 건너갔습니다.

'어떻게 될 건가?' 지켜보려는 속셈이었겠죠.
그리고 자기만 남은 거예요.

자기가 맨 앞서 가야 되는데.. 못 하는 거예요.
이 본성의 추함!
자기가 맨 마지막에 가는 거예요. 
대열의 맨앞에서 형 에서를 만나지 못하는 거예요.

이럴 때 주님께서 그의 자아를 깨뜨려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밤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는데' 

(*여기서 '어떤 사람'을 나의 강적, 또는 내 삶에 찾아온 위기로 보는 적용 가능, 그걸로 깨어지니까요!)

야곱은 지금 에서를 만나야 되는데 
하나님은 야곱에게 '어떤 사람'을 만나게 했습니다. 
야곱은 그를 정말 '어떤 낯선 사람'으로만 알고 있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인줄 몰라요.

그래서 야곱이 씨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이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어요. 오늘날 말로는 고관절이죠.
*허벅지 뼈와 골반 뼈 사이의 연결 관절

그래서 야곱은 고관절 뼈가 어긋나서, 잘 걸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본격적으로 야곱을 축복하시기 위해서, 그를 준비시키십니다.

그 준비란, 우리의 부서짐, 깨어짐이에요.

우리가 부서지지 않으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도, 그 뜻을 이루지 못해요. 
우리 인생은 성실하고 열심히 살 수는 있어도, 자아가 깨어지기는 쉽지 않아요. 

이것이 야곱의 지금까지 평생의 삶이에요. 
열심히는 살았지만 부서지지/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어떤 사람과 왜 씨름했을까요? 

아마 그 사람은 야곱을 떠밀어서, 강을 건너가게 하려 했을 거고, 

야곱은 안 건너가려고 몸부림쳤을 거고
그래서 씨름(레승링)이 벌어졌을 거예요.
해도 해도 안 되니까, 고관절을 부러뜨려서라도 질질 끌고 건너가게 하려는 거죠.

▲그때 야곱이 구하는데요. 축복이에요. 32:26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야곱은 처음엔, 이 상대방이 그저 '낯선 사람'으로 여겼을 거예요.
그런데 씨름은 밤새도록 벌어집니다. 4~5시간 이상 새벽까지 지속되었죠.

차츰 야곱이 씨름을 하는 중에 깨닫게 되는 거죠.
'이 분이 천사 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인가 보다' 그래서 그에게 축복을 구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에 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하고, 뭐하러 씨름을 밤새 하겠어요?
씨름하면서 서로 말도 주고 받았겠죠. '건너 가라' '못 건너간다'

32:26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나이다'

그렇게 간절히 축복을 구했더니, 갑자기 그가 '네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묻는 거에요. :27
몰라서 물었던 것은 아니죠. 야곱의 이름이 '발꿈치 잡는 자, 밀어내고 대신 차지하는 자'임을 드러내는 거죠.

그러면서, 그 어떤 사람은
'이제는 네 이름이 야곱이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28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이라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28

이때 '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되죠.  이것이 축복입니다!
여러분, 축복은 이렇게 부서짐으로 말미암은 변화입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축복이 시작될 수 있다는 말이에요. 

바꾸어 말하면, 진정한 깨어짐이 없이는 축복이 아닌거죠. 축복은, 주님이 우리를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부수는 거예요. 지금 야곱은 자기가 여차하면 도망갈 수단 (다리)이 부서져 버린거죠.

축복은 뭐냐면, 내 뜻대로, 내 판단, 내 감정대로 살지 않도록 만드시는 부서짐, 깨어짐!
이게 축복이에요. 

이때부터 그는 다리를 절었어요. 그게 축복이에요. 
그는 이제 (자기 뜻대로) 도망도 못 가요. 
이제는 (자기 뜻대로) 도망할 수 없는 인생이 축복입니다. 

우리가 뭔가 우리의 판단, 우리의 감정, 우리의 계획과 뜻대로 사는 것, 
그것은 축복이 아니에요. 

우리는 많은 삶을 내 판단, 내 감정, 내 뜻대로 사는 것 자체가 
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아닙니다.
내 판단, 내 생각, 내 뜻을 따르는 길을 버리는 것이 축복입니다.

▲축복은 부서짐, 깨어짐을 통해 옵니다.

29절에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소서!'
자기가 지금 씨름하고 있는 그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제는 궁금하구요. 

근데 그 어떤 사람은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누군지는 말 안해 줘요. 
그렇지만 야곱은, 그 분이 하나님이시란 걸 알았죠. :30

다만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거기가 어딥니까? 
거기는 그가 (야곱이) 부서진 곳이에요. 

지금 야곱은 다리가 아플 거예요. 
왜냐면 고관절이 위골 되었어요. 요즘 말로 탈골 또는 골절된 거죠. 
정상적으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된 거예요. 

근데 거기서 주님이 야곱에게 축복했습니다. 

야곱은 일평생 구한 것이 축복이었잖아요. 자기 형에게,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 자기 방법으로 축복을 취하려고 했죠. 
뭐냐면 장자권을 팥죽을 주고 살려고도 했죠. 자기 방법이었죠. 

여러분, 우리가 축복을 얻으려고 하는 모든 시도와 방법, 
그것은 연단을 통한 깨어짐, 부서짐이 필요하다는 싸인이에요. 

축복은 깨어짐, 부서짐의 계기를 통하여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이런 날을 주세요.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아무리 가까운 사람, 친한 사람,
나를 도울 수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은.. 나만 홀로 남아요. 

주님이 우리를 홀로 남게 하시는 것, 
거기가 주님께 눈물로 축복을 구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이런 날을 주세요. 
그때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우리는 환경 앞에서, 내 경험, 내 감정대로 행하고 마는 우리 자신'을 주님이 알게 하세요.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부수세요. 깨뜨리세요.
어떤 낯선 사람을 보내십니다. 어떤 낯선 환경을 보내기도 하시죠.

고관절,
이 뼈는 인간의 뼈 중에 가장 두꺼운 곳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게 있어요.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주님은, 그 어떤 사람과 씨름을 하게 하셔서, 우리를 부수어 주십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을, 주님이 제거하세요. 
그때 주님은 제거함과 동시에,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축복은 뭐냐면, 새 이름을 얻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으로부터 새 이름을 얻을 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 누구입니까?  
30절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 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존되었다 함이더라' 

그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었어요.
처음에 시작은 그그 씨름하던 그가 그냥 '어떤 사람'인 줄 알았어요. 

근데 결국 알게 된 것이 
축복을 구했더니 주님이 주시는 것은 새 이름이에요. 
그런데 그 새이름은, 하나님을 대면할 때 주어지는, 또는 받게 되는 거죠.
그때 알게 된 게,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였구나!'

여러분, 야곱이 씨름했던 하나님, 그분이 누굽니까? 
내가 대면한 하나님이죠! 그 하나님 대면을 통해서, 그는 새 이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역 이름을 브니엘이라고 불렀어요.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죠.

캄캄해서 몰랐죠. 캄캄해서 그가 낯선 사람과 씨름했는데요. 
그 캄캄함 속에서 그가 씨름한 대상이 그분이 하나님이세요.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세요. 

야곱은 얍복강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거예요. 
놀랍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현현된 거예요. 
사람이시면서 하나님이신 분, 그 분을 만난 거예요.

그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그는 새 이름을 받게 되었어요!  새이름을 받게 되는 게 축복이었죠!

▲그제야 야곱의 인생 길에 해가 돋았어요.
31절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를 말미암아 절었더라 '

20년 전에 도망갔을 때는 그때가 밤이었어요. 
그때 주님이 밤에 만나 주셨죠.
그가 도망갈 때 돌베개를 베고 자는데, 하늘에서 사닥다리가 내려온 거예요. 
밤중에! 

여러분, 밤중에 본 환상, 그 환상은 소망이 되지만 
현실은 고달프고 어려워요.

환상을 봐도 소용 없어요. 언제까지?
우리가 깨어질 때까지! 

그가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그는 절었어요. 
근데 해가 돋았어요. 

그 인생에 가장 어려웠을 때처럼 보이지만, 그 때 오히려 해가 돋았어요. 
여러분, 우리가 깨어진다면, 그때부터 내 인생 길에 해가 돋아요!
그게 축복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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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이 낮은 관계로, 자아가 죽은 포레스트 검프
어렸을 때 같은 초등학교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바보라고 놀릴 때
도망을 가다가.. 너무 급한 김에 정신없이 뛰다보니까
다리에 낀 보철이 다 떨어져 나가고
그냥 기적같이 맨발로 뛰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그 후로 날마다 뛰게 됩니다.

근데 커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동네 친구들이 돌을 던지면서 놀리고
이번에는 트럭을 타고 쫓아오며 괴롭힐 때, 검프가 막 뛰어서 도망가다가
너무 가까이 다가오니까.. 급한 김에 미식 축구장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근데 운동장에서 미식 축구선수가 공을 잡고 막 뛰는데
검프는 도망가느라고 뛰는데, 더 빨리 휭~ 하고 뛰니까
코치가 보고 있다가 ‘쟤는 누구냐?’ 그랬더니
옆에 있던 감독이 ‘이 동네 유명한 바보’라고 합니다.

검프를 불러다가 미식축구를 시킵니다.
가만히 서있는 바보한테 쿼터백이 공을 안겨주고 ‘뛰어!’ 그러면
검프가 그냥 뛰는데
아무도 못 쫓아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삽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합니다.

    이 글의 주제는,
    자아가 죽고, 자기 힘이 다 빠지고, 바보처럼 사는데..
    그러면 전혀 안 풀릴 것 같고, 삶이 엉망일 것 같은데..
    이상하게 검프의 삶은, 오히려 기적적으로 술술 풀려나갑니다.

    검프가 자기 다리의 보철을 벗게 된 것도,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이었습니다.
    검프가 달리기를 잘해서 대학축구팀에 발탁된 것도,
    친구들의 괴롭힘 때문이었습니다.

    검프는 능력이 안 되어서, 재주가 모자라서
    계속 수동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신기하게 오히려 삶이 풀려나가더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때,
    세상에서는 바보처럼 살게 되지만
    오히려 검프처럼, 비로소 인생이 술술 풀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군대에서도,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검프.
대학을 졸업할 때, 군인 모병관이 나와서,
직업을 찾는 아이들에게 군인모집광고를 합니다.

그걸 보고 검프는 군대에 들어갑니다. 뭐 자기 꿈이 없어요.
그냥 그때 그때마다 자기 앞에 주어진 그 일을 하는 거예요.

    어릴 적 여자친구는 자기 꿈을 가졌습니다.
    유명한 포크 송 가수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길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어떤 길로 접어듭니까?

    버클리 대학에서 히피운동이 일어날 때는 히피와 동참하고
    그러면서 마약에 손대고
    이 남자 저 남자를 떠돌아다니다가, 완전히 인생의 바닥을 기게 됩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나는 꿈이 없습니다.’ 꿈을 가질 수 있을 만큼 지능이 없습니다.
근데 이 사람이 인생을 어떤 식으로 살았는가를 대표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한 장면이 나와요.

군에 들어갔을 때 훈련을 시키는 한 상사가 와가지고 포레스트 검프에게 묻습니다.
‘검프! 너는 왜 육군에 들어왔냐?’

그 때 검프가 상사의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한 말이
‘나는 상사님이 시키시는 일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목에서 하나님을 연상하셔야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뭐라고 대답했겠습니까?
미국을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인생의 경험을 위해서 왔습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전 단계로 왔습니다.

그러나 검프는 말합니다.
지금 내 앞에 서있는 당신이 시키시는 그 일을 하기 위해서
나는 군데에 들어왔습니다.

이때 상사가 한 말이 있습니다.
‘너는 천재다. 검프야. 너는 아이큐 지수가 160이다.
내가 이제까지 상사노릇을 하면서, 너처럼 탁월한 대답을 하는 놈은 처음 봤다.’
이런 얘기를 해요.

여러분, 이거에요. 아이큐 75가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지금 눈앞에 보이는 상사(하나님)가 시키시는 일을.. 무식하게 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