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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변형의 용광로

LNCK 2023. 5. 24. 11:01

산위의마을교회 주일설교 2023.05.14 - 결혼 : 변형의 용광로 - YouTube

◈결혼, 변형의 용광로             엡5:25

엡5:32~33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오래전에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팀이, 기독교 영성가들의 신비체험에 대해 
매우 인상적인 연구를 했습니다. 그들은 약물을 투여해서 인위적인 방식으로 
기독교 신비가들과 비슷한 (신비) 체험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똑같은 뇌파를 만들고요. 신비 체험과 똑같은 상태를,  
약물을 투여서 만들 수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 자체로는 진짜 기독교 신비체험과, 
약물을 투여한 이런 인위적인 체험사이에 구별이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유일한 구별점이 여기 있었습니다. 
그것은 신비체험 이후였습니다. 

약물 투여는, 인격성장과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조작된 체험은, 동일한 뇌파와 동일한 희열을 가졌지만 
인격성장과 변화를 동반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굉장히 유명한 명제가 나오게 됐습니다. 
"거짓 신비체험은 이렇게 구별될 수 있다. 
거짓 신비체험은 집에 가서 설거지를 하게 만들지 못한다." 

바로 참 신비와, 거짓 신비를 가르는 기점은 '가정에서의 열매'라는 겁니다. 
그의 라이프스타일, 가정에서의 라이프 스타일에 의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엡5:1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있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함은 거짓 신비체험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 거짓 신비체험을 경계하면서, 진정한 신비체험의 시금석을 제시하는 바울은 
그래서 (엡5:18절에 이어서) 느닷없이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복종해라. 
남편들이여, 아내들을 보호하고 사랑해라' 

성경충만의 결과를, 느닷없이 결혼이라는 상황으로 끌고 오는 겁니다. 
세계선교도 아니고요. 인류 변혁도 아니고요. 결혼

▲저는 오래전에 세계적으로 관심과 동시에 논란을 동반했던 
성령운동의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장로교 신자로서 굉장히 부정적인 선입견과 인식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는데 
그럼 저의 가드 guard를 다 내리고, 마음을 열고 감화되게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뭐냐면 그곳에 있는 능력도 아니고, 절묘한 말씀도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모여있는 사역자들은 한결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습으로 젖어 있었습니다. 

알 수 없지만 그것보다 강력한 설득력은 저에게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이야기하는 지점입니다. 

그곳에 계신 하나님은, 그들로 집에 가서 설거지하게 만들어주는 하나님이었어요.
더 좋은 남편, 더 좋은 아내를 향해 
한 걸음씩 내어딛게 만드는 하나님 이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잡신이 아니심을, 
우리가 믿는 복음이 자기 최면이 아님을, 
이 세대에 어떻게 입증할 겁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위대한 일을 이룸으로요? No 
건강하고 사랑넘치는 결혼관계의 회복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이 시대에 시위하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Yes 

그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복음의 진정성을 시위하는 
가장 성경적인 방법입니다.   

엡5: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젊은 나이, 아니 어린 나이에 교회를 개척했던 저의 마음은 
굉장히 큰 비전과 야망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건강하고 강력한 교회를 일으켜, 이 한국 땅에 부흥을 임하게 하겠다!'
그 중요한 일을 품은 제게, 당시 신혼이었던 제 아내는 차선으로 밀려나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자기가 차선이기를, 온 존재로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자연히 갈등이 일어났어요. 

저는, 남편의 큰 뜻을 돕지 않으려는 아내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아니 큰 뜻을 앞에 두고, 소꿉장난을 하자는 거냐?' 

그러나 성령께서는 저를 멈춰세우시고, 저를 경책하셨습니다. 
'아들아 너는 유능하고 유명한 목사가 되려 한다. 
그런데 네가 섬겨야 할 대상은, 바로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의 아내일진데 
그리스도의 신부된 교회에게 필요한 건 유능한 목사나 유명한 목사가 아니다. 
좋은 남편이다. 

나는 네가 유명한 목사가 아닌, 좋은 남편이 되길 바란다. 
그래야 나의 아내된, 나의 신부 된 나의 교회를, 너에게 맡길 수 있지 않겠느냐'

그 뒤로 제게있어서 결혼은, 그리스도의 신부를 섬기는 
좋은 남편으로 변형되어져 가기 시작하는 
진정한 저의 신학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그냥 '아버지'만이 아니라 
'장인 아버지' 이실 때가 있습니다. '장인 하나님' 말입니다. *아내를 아끼는 하나님

야망과 큰 뜻을 향해 당신의 딸을 옆으로 밀쳐놓고 달려가려는 저를 멈춰 세우고, 
'OO야, 그게 아니야, 내가 너에게 맡긴 내 딸을 먼저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우기 바래!' 

그 결혼이라는 하늘의 신학교에서 
이 장인 하나님은, 저의 삶의 범사에 동행하셨습니다. 
정말 임마누엘 이세요.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제 아내에게는 '시아버지 하나님'으로 동행하고 계신 줄을 
저는 믿습니다. 

▲모세는요.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부르심입니까. 
그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모세 가족은 애굽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부르신 하나님이 모세의 길을 막으시는 겁니다. 
그리고 그 아내 십보라로 하여금, 모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합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모세는 '할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자각했습니다.

그 둘째 아들 엘리에셀의 할례가 행해지자, 하나님이 모세를 놓아주어 
그 부르심을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주1)

신약에서 할례는, 마음의 변화 transform를 의미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돌 같은 마음을 벗겨내고 부드러운 속살을 드러내는 행위' 
이것이 '마음의 할례'입니다. 

모세는요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입양되어서 바로의 양아들로 자라났습니다. 
의붓 형과 경쟁적인 관계안에 자라났고요. 
그 권력다툼에서 지면 죽게 되는 것이, 왕족입니다. 

그러던 중 자신의 이스라엘 백성임을 알게 되고 
자신의 백성을 향한 애정으로 말미암아 그 백성을 보호하다가 
애굽사람을 살인합니다. 살인하면, 마음에 어떤 감각이 죽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동족을 보호했는데 
이제 동족은 그를 배신해서 그를 밀고 하려고 합니다. 

그는 도망쳐서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이로 살았습니다. 
그럼 버림받고, 배신당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야인이었습니다. 

그 수많은 일들 속에, 그의 마음은 돌처럼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에 앞서 
그 마음을 할례 하셔야 했습니다. 

돌 같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 섬세한 마음, 
그 마음을 회복시키셔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의 아내 십보라를 사용하셨습니다. 
모세의 아내를 통해, 모세의 돌 같은 마음을 할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내를 통해 할례되어졌을 때 
비로소 그 가정은, 자신의 부르심, 하나님의 백성을 섬기는 일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모세가 그 길에 만났던 하나님이 
제가 만났던 '장인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들을 통해, 남편을 통해, 나의 마음을 할례 하신 하나님, 
내 마음에 깊은 것들을 드러내신 하나님, 
내 마음에 뒤틀린 삶이 역사들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기어이 그 깊은 속살을 드러나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신 하나님.

벧전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유업'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위 본문에 '함께 이어받을 자'
유업, 또는 기업은, 
하나님이 우리 각자를 향해 가지고 계신 계획이고, 또한 땅입니다. 

모세의 유업은 출애굽의 지도자로서의 삶이었습니다. 

저에게 유업은, 산위의마을 교회와 기타 사역들입니다. 

또 하나님은 여러분 각자를 향해 유업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유업을 우리에게 주시는데, 어떻게 주신다고요?
'우리의 배우자와 묶음으로 주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 유업중에 첫번째 유업으로 배우자를 주신대요. 
저에게는 하나님께서 유업을 주시기 전에, 먼저 아내를 주신 거예요. 
그리고 아내와의 관계를 통해, 그 유업에 합당한 자로 빚어가시겠다는 거에요. 
그러면서 베드로전서는 이렇게 말해요. 
'아내는 더 약한 그릇이다.' 

여러분 '더 약한 사람'은, 그 사람의 본질을 드러내는 엑스레이 입니다. 
아내는 육체적으로 더 약하기 때문에, 남편이 무시하면 무시되고요. 
억압하면 억압되고요. 방치하면 방치되고요. 밀어놓는 놓으면 밀쳐집니다. 

더 강한 사람, 더 높은 사람에게는 감히 그렇게 못하지만 
더 약한 아내에겐 그 마음속에 있는 본질이 벌컥벌컥 솟아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성들이여, 우리의 본성을 드러내는 엑스레이가, 바로 아내와의 관계임을 
나의 됨됨이의 현주소가 아내와의 관계임을 
우리는 말씀 앞에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약한 그릇'이란 말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약하다 열등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더 약하다' 라는 표현은 '더 정교하다, 더 민감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여자는 힘에 있어서는 더 약하지만, 더 정교하고 더 민감합니다. 

여러분 아이폰10이 나오면요. 
그 다음에 업그레이드 해서 아이폰13 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남자를 지으시고요. 
남자의 갈빗대를 떠나서 여자를 지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아이폰10 입니다. 무겁고 투박합니다. 
여성들은 아이폰13 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걸 느끼고요. 
우리가 잡아내지 못하는 걸 잡아냅니다. 

그래서 겉으론 더 약해 보이는 여자이지만 
남자보다 더 나은 관점과, 내가 캐치하지 못하는 걸 캐치한다는 걸 인정하고
여성을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땅을 아담으로 하여금 다스리게 해놓고 
딱 아담을 지어놓고 보니까, 
(제가 이건 좀 회화적으로 표현하니까 이해해 주세요.) 
아담 혼자 안 되겠는거에요. 뭔가 성글고, 뭔가 투박하고 우악스러워요. 
'아무래도 아이폰13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자를 지으셨어요. 

그래서 둘이 한 몸이 되어, 땅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남성과 여성의 원팀은, 하나님의 맡기신 땅을 다스리는 가장 결정적인 키입니다. 

하나님은 여성의 자손을 통해 마귀의 머리를 밟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에 빼앗긴 이 땅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대사들은
회복된 남녀의 연합을 통해 이 땅에 역사합니다. 

즉 우리에게 겉으로 약해보이는 여성들을 맡기심을 통해 
우리의 본질을 드러내시고
그들을 경청하고 존중하게 하심으로, 변화 transform 의 길을 걷게 하시고요. 

그렇게 아름다운 원팀을 이루게 하심으로 비로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돌파구를 여신다는 겁니다. 아멘! 

바로 그 정밀한 작업들을 해 가시는 하나님을, 
도우시는 하나님, 여호와이레
치유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라파
저는 '장인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장인 하나님은 언제나 동행하십니다. 
아내와의 관계 안에 저의 딱딱한 마음을 드러내시고 
남편과의 관계 안에 우리의 딱딱한 마음을 드러내시고 할례해 나가십니다. 

우리의 선택은 '그 주권 앞에 겸손할 것인가, 저항할까?' 입니다. 

결혼 초에 컴퓨터를 이렇게 검색하다가 자극적인 콘텐츠가 스쳐지나갔습니다. 
제가 영적인 컨디션이 아주 안 좋았어요. 
그날따라 그 자극적인 콘텐츠의 끌림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때 십보라를 통해 할례의 칼을 들고 모세를 만나신 장인 하나님이 
그곳에 감동하셨습니다. '아들아, 그것은 내 딸 OO를 존중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너에게 내 딸의 순정을 맡겼다. 
너는 그 순정을 지키고 보호하고 존중해야 한다.' 

무감각한 정욕의 문화에 할례의 칼을 대신 겁니다. 
그 앞에 '예, 하나님' 하고 마음을 낮출 때 
우리의 마음속에 부드러움이 회복됩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 '다 이렇게 산다고요. 그리고 내가 뭐 바람을 피는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돌같이 마음을 하면, 마음은 높아집니다. 

한번은 제가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집에 왔는데 아내가 의도치 않게 저를 자극했습니다. 활화산이 터져 나왔어요. 
제가 막 신경질을 부렸습니다. 

근데 신경질을 다 부리고 정신이 들만할 때, 장인 하나님이 그곳에 계셨습니다. 
'얘야, 너는 지금 너의 감정을 아내에게 배설하고 있는 거다. 
그런 방식으로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 

네가 어려운 날을 지냈고 양해와 이해와 도움이 필요하다면 
너는 개방하고 너 자신이 겸손해야 한다. 
이렇게 아내에게 너가 감정을 배설하고자 하는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너는 많은 영혼들에게 너의 감정을 배설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너를 신뢰할 수 없다.' 

다시 십보라를 통해 할례의 칼이 임할 때 
제 마음을 낮추고 부드럽게 해야 했습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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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출4:25, 둘째 아들 엘리에셀의 할례를 가리킨다. 
'아들'은 단수를 가리킨다. *벤
그러므로 모세나 첫째 아들 게르솜은 이미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 십보라는 여행 직전 둘째 아들 엘리에셀을 낳았으며, 
여행 동안 할례 연한인 8일을 넘겼는데도, 모세가 할례를 등한시하자
이런 위기가 가정에 찾아온 것으로 여기고, 십보라가 둘째의 할례를 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모세가 할례의 중요성과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각성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