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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창조되다

LNCK 2023. 6. 1. 21:17

내일이 창조되다 (창세기 1:3-5, 1:14-19)│2023.05.14 - YouTube

◈내일이 창조되다             창1:3~5

성경은 모든 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선언합니다. 
성경은 창조를 증명하려 하지 않고, 선포합니다. 

그 선언은, 오직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창조를 직접 행하시고, 목격하신 하나님만이 
증거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1:1절 말씀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으로 영감된 책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최초의 증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그리고 그 창조를 우리에게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주셨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창조의 기록은, 설화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며, 계시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창조가 가능하냐?' 과학적 질문으로 탐구해 보지만 
그 어떤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로도, 창조는 다 이해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이해 할 수 없고, 또 알지 못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것은 교만에서 나온 어리석음 일 뿐입니다. 

과학은 깨달은 것보다, 깨닫지 못한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줄 뿐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창조가 이루어졌는가?' 보다, 
'왜 이 창조가 이루어졌는가?' 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기에, 충분한 설명을 주지 않는 거 같지만 

'왜?' 라는 질문은, 우리에게 충분한 설명을 해줍니다. 

창조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창조된 모든 피조물에, 하나님의 흔적을 새겨 주셨습니다. 
그 피조물의 종류에 따라, 중요성에 따라, 영향력에 따라 
하나님의 흔적을 아주 적게 남겨 주시기도 하시고,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 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 흔적을,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도 더 많이 하나님의 흔적을 넣어주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사탄이, 보이는 세상 가운데 지음받은 인간을 
타락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인간의 그 영향력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나라를 대적할 힘, 영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 나라를 대적할 수 있는, 그런 영향력, 또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되, 
그 하나님의 흔적을 모든 피조물에 넣어 두신 것은 
모든 피조물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할 영광을 드리지 않고 

도리어 피조물들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흔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도리어 피조물을 신처럼 섬기는 어리석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모든 창조의 절정이 인간 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이하의 피조물들, 인간이 다스려야 될 피조물들을 
인간이 신으로 섬기는 어리석음에 
인간들이 스스로 빠져 버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 창조의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절정이 인간임을 다시 깨닫고 
또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이 소명을 깨닫고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 올려야 될 우리 인간의 소명을 다시 회복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6일간의 창조>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한셔서, 하루에 창조하지 못하시고 
6일간에 나누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힘에 벅차서, 6일 동안에 창조를 이루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창조를 통하여, 우리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의 패턴을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또한 6일간의 창조를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지혜로우시며
이 만물에 하나님의 질서가 얼마나 오묘하게 나타남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과학은, 하나님께서 이 피조물에 심어두신 그 질서, 그 패턴을 
발견해 갈 뿐입니다. 그것을 찾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깨닫지 못한 오묘한 질서와, 그리고 지혜를 
이 모든 피조물에 넣어 주셨습니다. 

특별히 6일간의 창조를 큰 그림으로 조망해 보면 
첫 번째 3일간의 창조는, 아무것도 없고 형태가 없었던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형태를 만드시는 창조를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 유행하는 말로는 '플랫폼'을 만드셨죠. 
그리고 나머지 사흘, 4~6번째 날까지는 
그 플랫폼 안에 존재하는 그러한 피조물들을 만드시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 날은 빛을 창조하시고 
그리고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 낮과 밤을 창조하셨습니다. 

넷째날은, 첫째날과 짝을 이룸으로써 
넷째 날에는, 발광체를 창조 하심으로써 
첫째날에 만들어진 그 플랫폼에 
넷째날에 만들어진 해와 달과 별의 광명체들로 그 내용을 채우셨죠.

두 번째 날에는 물을 나누셔서 
공간 아래 물과 공간 위의 물로 나누고 
그 공간을 '하늘'로 칭하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그 플랫폼인 하늘에는 새들, 아래 물에는 물고기들을 창조하셨습니다.

세 번째 날에는 하늘 아래 물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하심으로 
드러난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 라고 칭하심으로 
그 땅 위에 식물을 나게 하시는 창조를 하셨습니다. 

여섯째 날은 그 땅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들 
그리고 마지막 인간을 창조하심으로 
셋째날에 창조와 짝을 이룹니다. 

오늘은 첫 번째 날 창조와, 네 번째 날 창조를 함께 묶어서 
말씀을 전하겠고, 남은 2주일에도 그렇게 짝을 이루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 가운데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창조하신 것은 <빛>입니다.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이 빛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는 빛이 아닙니다. 

태양은 네 번째 날에 가서야 창조됩니다. 
그러므로 이 빛은 태양이 있기도 전에, 먼저 존재하는 빛이므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태양의 빛이 아니라 
도리어 태양을 빛나게하는, 태양의 불타오르면서 
그 태양이 열과 빛을 발할 수 있도록, 태양에 빛을 부여하는 빛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제일 먼저 빛을 창조하셨을까요?
모든 피조물에는 하나님의 흔적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첫 번째 창조된 빛이, 왜 첫 번째 피조물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그분의 속성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요일1: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약1:17절에도 '빛들의 아버지이시라' 즉 빛의 근원이시라는 뜻이고요.
딤전6:16절에 '가까이 갈 수 없는 빛'으로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신약성경에 '하나님은 무엇이다' 라는 속성을 말할 때 
요한일서에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사랑보다 요일서에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입니다. 
그 빛이신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상 가운데 빛을 창조하심으로 
앞으로 창조될 모든 만물이, 생명이 유지되도록 하는 
생명의 근원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가지 빛이 존재하는 거죠. 
-네번째날 창조된 태양빛을 통한 빛
-태양이 존재 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빛이 있습니다. 태양을 빛나게 하는 빛,
-요일1장 과 약1장 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속성으로서의 빛

이 빛은 모든 생명이 유지되는 에너지의 근원입니다. 
빛이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농작물이 자랄 때도 햇빛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동물들이 빛을 받음으로써, 그 몸 안에 영양분이 생성되는 것은 상식입니다.
비록 노아의 홍수 이후로 생태계가 파괴되므로 
그 빛이 우리에게 때로 해로울 수 있지만 

여전히 그 빛은, 우리에게 에너지의 근원이 되고 
많은 영양소를 만들어 주는 신비가 아니겠습니까. 

현대의학에서는 이 빛을 연구해서 
많은 광선으로 이것을 다시 조작해서 
사람의 몸을 치유하는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늘 익숙해진 엑스레이 부터, 방사선 등 여러 광선들이
다 빛의 종류들 아닙니까. 

빛을 연구하고, 빛을 우리 인간이 조정함으로써 
사람의 생명, 몸을 꿰뚫어 보기도 하고 
또 그 몸에 연약함을 치유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게 다 빛이 가져다주는 축복입니다. 

인간이 발견하고 적용하는 빛도, 이렇게 생명을 살리고 고치는 능력이 있는데,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비춰주시는 빛이 있다면 
우리에게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겠습니까? 
그래서 때로 '치료의 광선'을 하나님께서 비추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셔서 
앞으로 창조될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을 지탱하는, 그 플랫폼을 먼저 만드셨죠. 
그리고 넷째 날에 태양을 만드심으로 
그 빛이 직접 인간에게 비쳐지지 않고, 
그 발광체들을 통하여 전해지도록 하나님은 계획하신 것입니다. 

또 한가지, 하나님께서 <빛>을 가장 먼저 창조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든 만물이 하나님 앞에 다 밝히 드러난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 입니다. 
히4:13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 앞에 숨을 수 없다. 
그분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어둠을 밝히는 목적으로만 빛을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출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드러난다. 
모든 것을 보고 계신다. 모든 것을 알고 계시며, 
그래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라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빛을 가장 먼저, 하나님을 닮은 피조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빛을 어둠과 나누심으로써 낮과 밤을 창조하셨습니다. 
이 창조의 역사에서 반복되는 하나님의 행위는 '나누다' 라는 겁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 낮과 밤을 창조하셨고 
낮과 밤이 창조되므로 우리에게 시간이 창조된 겁니다. 

첫째날은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두 번째 날에는 물은 나누셨고 
셋째날은 땅과 바다를 나누셨습니다. 

나누심으로 목적하신 건 뭘까요?  다양성입니다. 
그런데 그 다양성은 분열이 아니라, 대립이 아니라 
하나됨 속의 다양성이라는 거죠.  왜요? 
본래는 하나였지만 나눠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빛과 어둠을, 서로 서로 만날 수 없는.. 
상극의 반대의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혼돈을 주게 되는 것이 바로 이원론입니다. 
뭐 플라톤의 이원론은 말할 것도 없고 
초대교회 많은 성도들을 이단으로 빠지게 했던 것이 마니교 이단인데,

성 어거스틴도 한 때 마니교에 빠져서 8년 동안 해맸어요.
그 마니교의 근본적인 세계관은 뭐냐면 
빛과 어둠의 세계가 원래 영원부터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 팽팽한 세력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것이다.. 라고 그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선과 악이 서로 대결하는 것이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어둠은 원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밤은 원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빛과 어둠을 하나님이 나누셨고 
어둠도 하나님의 영역이고, 밤도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은 빛으로만 일하지 아니하시고, 어둠을 통해서도 일하시고 
낮을 통해서만 일하지 않고, 밤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인데 

타락한 인간이, 이 어둠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 거예요. 
밤에 주로 범죄 하지요. 요즘은 대낮에도 많이 범죄 하지만 
전통적으로 밤에 사람들은 잘못을 많이 범합니다. 
왜요? 사람 눈에 잘 띄지 않으니까, 하나님도 모르신다고 생각하고 
어두움을 사단의 영역처럼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이 일반입니다.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께는 똑같은 것입니다. 

근데 사람들은 밤과 어둠을 더 자신들의 세상으로 만들려고 
그렇게 죄악을 범하는.. 그러한 밤으로 만들어 버렸죠.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 다양한 세상을 만드셨어요. 
여러분, 빛만 있다면 이 세상은 이처럼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빛과 어둠이 명암 아닙니까? 

   우리가 거리를 측정하고 입체감을 느끼는 것도, 다 명암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저는 그림에는 문외한이지만, 그림을 그릴 때 제일 첫 번째 가르치는 게 뭐냐면
   명암을 가르칩니다. 

   명암이 있어야 거리감이 생기고, 입체감이 생겨나기 때문이에요. 
   모든 예술이 바로 이 빛과 어둠의 대조를 생겨나는 것이죠. 

   이 자연의 아름다운..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예술작품도 
   이 빛과 어둠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에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쉬도록.. 하나님이 계획하신 거예요. 
어둠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쉼을 통해서 회복을 가져다 주는 거죠. 

그런데 인간들은 타락한 이후로, 
낮에 일하지만, 밤에도 일하는 거에요. 

그래서 인공조명을 만들어서, 밤도 낮인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게 만드는 거죠. 
제가 '조명을 다 없어야 된다'는 원시 사회를 추구한다는 게 아니에요. 
지나치게 인간이 밤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일 수 있다는 거예요. 

밤이 오면 인간은 수동태가 되고 
어둠 속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되는데 
밤도 낮처럼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동물들도, 이 밤을 없애고, 잠은 안 재우고, 
양계장 같은데 보면 밤에도 불을 다 켜 놓죠. 

왜냐면 낮인 것처럼 해야, 닭들이 계속 알을 낳는 거예요. 
어떤 의미에서 좀 학대죠.
쉼이 없이 돌아가는 이 세상을 사람들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인공조명 아래 두고, 어두운 밤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면 
인간은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미국의 어느 주에 있는
자연속의 치유 하는 그런 어떤 공동체에서는 
해가 지면 무조건 쉬게 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어둠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겁니다.
놀랍게도 그게 자연치유를 가져다 준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처럼 하나님은,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다양한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시고 
낮과 밤을 통하여,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쉼을 통하여 
이 시간의 흐름 속에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말씀하셨습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는 뜻이죠.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 는 말씀과 함께 나오는 것이 
'그대로 되었다'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대로, 그리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졌고 
하나님은 창조된 모든 것을 주목하여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날입니다. 

빛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낮과 밤을 창조하심으로 
시간이 창조되고, 새로운 날이 창조된 것입니다. 

◑이제 그 플랫폼에 하나님께서 넷째날의 창조를 통하여 
그 낮과 밤을 주관할 해와 달과 별들을 창조하십니다. 

이 광명체에 주어진 책임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규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그런 계절을 우리에게 허락하시기 위함이죠. 

1:14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 공간에 빛들이 생겨 낮과 밤을 나누고 
절기들과 날짜들과 연도들을 나타내는 표시가 되게 하라' 

낮과 밤을 깨닫게 할 뿐만 아니라 
해와 달, 별들을 통하여 
이제 시간의 흐름만 아니라, 공간의 흐름까지 경험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모든 피조물의 조화를 위해서 이지만 
핵심은 인간들을 위해서 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내일' 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이 창조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데 이 해와 달과 별들을 보면서 
   광렬하게 타는 그 태양빛을 보면서 태양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태양을 신처럼 섬기죠. 
   밤에 달을 보고 그 신비함에 매료되어 그래서 달을 섬깁니다.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태양 신을 많이 섬겼죠.
   또 지금까지 이슬람권에 있는 중동의 나라들은, 달을 섬깁니다.
   그리고 그 나라들의 국기를 보면 항상 초승달이 있어요. 
   그렇게 달을 신으로 섬기는 그런 문화 예요. 

해와 달과 별들이 왜 만들어졌습니까? 
인간들이 그 표시를, 이 시간에 흐름을 깨닫고 

날과 그리고 날짜들의 분별을 위해서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작품인데도 
인간은 해와 달과 별을 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고 
도리어 태양을 섬기고, 달을 섬기고, 별을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져 버렸죠.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것이 넷째 날이었습니다. 

모든 창조의 날의 반복되는 표현을 한 가지 주목해야 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6일의 창조는 
하나님이 시간이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능력이 부족해서 6일간에 나누어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패턴을 가르쳐 주신 겁니다. 
우리가 어떤 패턴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알려 주신 거예요.

하나님이 6일 동안 일하시고, 제7일에 안식하심으로
우리가 7일의 사이클로 사는 삶의 구조가 됐는데 

6일간 일하고, 7일째 하루는 안식, 쉼의 시간이 있어야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패턴이죠.

그리고 그 매일매일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패턴으로 
우리의 삶이 유지된다는 것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날'이 도대체 몇 시간이냐? 그것을 따집니다. 
알 수 없는 것을 따지는 거예요. 

초대교회의 신학자 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날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일하신 시간이기 때문에.. 
그리고 '날'이라 칭하신 것은, 우리의 삶에 패턴을 알려 주시기 위한 것이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이 날의 시간을 알기 원하는 사람에게 
창1장의 기록을 가지고 천문학 같은 학문을 연구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다른 곳에 가라고 하셨죠.

이렇게 말한 것은, 성경이 과학적이지 않다.. 는 뜻이 아니라 
과학적인 질문을 답변하기 위해 준 게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지식이 없는 모든 사람에게
창조를 설명하는 표현으로 기록 돼 있기 때문이라는 거죠.

더 초점을 둬야 되는 것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라는 표현입니다. 

말씀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만드신 분에게 
이 '날'이 얼마나 긴 시간이냐?..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아닌 것은, 진화론자들이 말한 것처럼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려서 창조하신.. 이 '날'이 오랜 세월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하나님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진화를 사용하셔서
창조했다고 말 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틀린 말입니다. 
진화론을 일종의 도피 매커니즘, 이스케이프 메커니즘 이라고 말해요. 
왜 그렇습니까? 

믿음으로 받아 드려야 되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 이라는 것으로 도피하기 때문이죠.

여러분 창조냐/ 진화냐 하는 것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과학적 자료에 근거한 판단이 아니라 
믿음의 선택입니다. 

진화론도 믿음입니다. 왜요? 
생명의 기원, 만물의 기원에 대해서는 진화론은 답변하지 못합니다.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죠.  '아주 오랜 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서 이렇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셨다.' 
창조는 하나님의 창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진화는, '오랜 시간'이라는 변명 뒤에 숨는 도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이 창조의 질서와 패턴을 통하여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는 '매일'이 우리에게 주어져있다..라고 설명해 주십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생각할 거예요. 
'아침이 되며 저녁이 되니' 라고 표현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하루로 계산합니다.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창조의 질서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 저녁이 앞섭니다. 
왜 그럴까요? 

저녁은 밤입니다. 밤은 어둡기에 우리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습니다. 
밤은 쉬어야 되는 때입니다. 

우리는 아침에 일하고 저녁에 쉬는 인생을 '하루'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너희는 저녁에 쉼부터 출발하여 일하는'게 하루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녁에 우리가 쉴 때 하나님은 뭐 하십니까? 여전히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쉼이 필요 없고, 하나님은 주무시지도 않으시는 분이에요. 

우리가 잘 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자신을 위해서 일하십니다.
우리가 아침에 나 혼자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가 잠들어 있을 동안에, 먼저 시작하신 하루를 
우리는 아침에 깨어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침에 낄 때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며 시작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거에요. 
나를 위해 밤마다 일하시는 하나님,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따라 
제가 아침마다 그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며 
그 창조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믿고 
우리는 아침마다 순종하며 뒤따라 나아가는 겁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매우 단순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우리는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고, 60분으로 나누고, 초로 쪼개 가지고 
시계를 보며 조바심을 가지고 살아가지 않습니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여유가 없어졌고, 
이 시간 속에 우리가 얽매여 사는 인생이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매일 아침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도하여 시작하는 하루가 아니라 
저녁에 내 인생을 앞서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시작하는 
아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매일이 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에 가득한 하나님의 흔적을 보고 
하나님을 날마다 찬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게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이 찬양을 함께 부르고 말씀을 맺겠습니다.

적용)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밤'을, 원래 창조의 목적(쉼)대로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