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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LNCK 2023. 6. 3. 11:51

  
◈교회 -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엡1:11-14           

에베소서14강, 김성수 목사, 스크랩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는 비전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한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허락하셔서 
그 뜻의 비밀을 알리셨고, 그 비밀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 
곧 죄 사함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위대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시는 목적’을 위해서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는 그 계획은 바로 조화의 회복임을 말한 다음에 
계속해서 그 통일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 땅에서 실현이 되어 가고 있는지 
상세한 국면으로 우리를 데리고 들어갑니다.

▲여러분, 사도가 지금 이 편지를 1차적으로 어디에다 쓰고 있습니까? 
에베소 교회에 쓰고 있지요? 이 편지는 회람 서신입니다. 

소아시아의 이방 교회들이 회람해서 볼 편지이면서 
첫 번째로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쓰고 있는 편지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에베소는 이방인들의 교회입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다소 사람 사울 같은 유대인이 
이방의 에베소 사람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놀라운 일입니다. 

바로 이 일이,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펼쳐 나가고 이행해 나가는 
구체적인 행위이기에, 사도는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통일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고 있는 예증인 것입니다. 

그 예증은 바로 이렇게 ‘교회’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많은 면에서 하나님의 장엄하고 범 우주적인 계획 
곧 모든 영역과 모든 국면에서 조화를 회복하려는 계획에 대한 최상의 예증입니다.

▲사도는 본문엡1:11절에서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음’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13절에서 ‘너희도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믿어 성령의 인 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와 ‘너희’가 누구인지 알아야 이 구절들을 풀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와 ‘너희’가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일단 ‘너희’는 
이 편지의 수신자인 에베소 교회와 이방 교회들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12절이 그것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엡1: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2절에서는 ‘우리’를 ‘먼저 믿었던’ ‘먼저 소망했던’ 자들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먼저 믿고 소망했고 그리고 이방인들이 믿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도 그 복음 전파의 순서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듯이, 그리고 유대인들이 구약시대를 통하여 메시야 오시기를 
고대하였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우리’는 유대인임을 1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이렇게 ‘우리’와 ‘너희’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평소에 전혀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을 두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로마서를 읽으면서 너무나 확실하게 확인한바 아닙니까? 

그런데 왜 굳이 이곳에서만 이렇게 ‘우리’와‘너희’를 강조해서 구별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지금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었음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10절의 ‘통일’이 시작되었음을 강조하여 알리기 위해 
굳이 ‘우리’와 ‘너희’를 갈라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 전체의 대 주제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신약성경 전체의 대 주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3장에서 더 정확하게 그 주제를 설명합니다.
(엡 3:5-6) “지나간 다른 세대에서는,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 주지 않으셨는데, 
지금은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6 그 비밀이라는 것은,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한 몸이 되고, 함께 약속을 받은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모두 통일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목적의 가시적 실현 아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여러분이 알다시피 구원 받기 전에 이방인을 개 취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말 편협한 유대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방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그 놀라운 일을 
강조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제 이 땅의 교회는 그 하나님의 궁극적 계획(이방인+유대인)의 일부가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그 점을 주목시켜 줍니다.
(롬 1:5-6) “우리는, 그 이름을 전하여 모든 이방 사람으로 하여금 
믿어서 순종하게 하려고, 그를 통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6 여러분도 그들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롬 10: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갈 3:28-29) “28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29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하여 있으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을 따라 유업을 이을 사람들입니다.”

(엡 2:11-14)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13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 2:19) “19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이것은 모든 육신적이고 물질적이며 민족적인 개념들을 털어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계산되는 것은 오직 아브라함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씨앗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영적인 새 나라가 있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새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폐하여 졌습니다. 

하나님은 그 위대한 목적을 위해 잠시 동안 유대인들을 사용하신 것뿐이었습니다. 

▲유명한 탕자의 비유에서 우리는 기독교를 줄곧 오해해 왔습니다.
세상에서 허랑 방탕하게 삶을 소비하고 있는 둘째 아들을 
언제까지라도 두 팔 벌려 기다리시는 아버지, 
그리고 언제든지 뉘우치고 돌아가기만 하면 용서를 받게 되는 죄인, 
이것이 기독교입니까?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면서 문밖에서 기다리고 계신 분이신가요? 
그런 수동적인 하나님에게 우리가 어떻게 은혜를 읽어낼 수 있습니까?

그리고 죄인들은 어느 정도 놀다보면 스스로 뉘우칠 수도 있는 것입니까? 
정말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죄는 반드시 벌해야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속성이며 구원의 순서입니다. 

문 밖에서 기다리시다가 그냥 두 팔 벌려 받아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인 ‘공의’가 무너집니다. 

그래서 그 벌을 예수님이 받으셨지 않으셨습니까? 
이 탕자의 비유는,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죄인과 세리들과 친구가 되신 
예수님께 원망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수군거림을 들으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눅15:1-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 가까이 
몰려들고 있었다.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죄인들을 맞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구나" 하였다.”

그렇지요? 즉,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고 있었고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비유 속에 넣어 그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구원에 있어 장자의 자리에 설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다는 것이지요. 

그 장자가, 탕자인 동생이 아버지로부터 후대를 받는 것을 못 마땅히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경고하시는 비유인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 나름대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있었고 
이방인들은 이방인들대로 자신들을 보는 방식이 있었습니다. 
그 둘 사이에는 막힌 담이 있었어요.

유대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율법으로 말미암아 선민이라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고, 
그들은 그 율법을 지켰는지 안 지켰는지 보다는 
그 율법이 자기네 민족에게만 주어져 있었다는 것으로 자기들을 추켜세웠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가리켜 ‘율법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세상에 하나님도 없는 사람들’이라고 조롱했습니다.

헬라인들은 나름대로 학식과 지적인 능력을 크게 물려받은 사람들입니다. 
불과 주님 오시기 오 육백년 전에 인류 4대 성인으로 불리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불과 300년 전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나름대로 인생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논리를 정교 화시키고 유토피아를 위한 그들 나름의 계획을 묘사했었습니다. 

그들 나름대로 이지의 역사에 놀라운 꽃을 피웠었지요. 
어떤 민족도 그런 일을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들은 독주자들이었고 독특한 민족이었습니다. 
헬라인들에게 있어서 유대인들을 비롯한 다른 이방인들은 야만인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은 서로 충돌하고 싸웠던 견원지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헬라인의 철학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의 가르침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꿇어앉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한 곳을 바라보게 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그렇게 된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나요? - 복음으로만!

요즘 교회들이 기독교의 교훈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기독교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르쳐 세상을 순화하려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편만한 인간들의 난제에 
그리스도의 교훈을 적용시켜 풀어보려 애를 씁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행실을 기대하는 것만큼 큰 이단은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외식을 조장하는 것이거나 개 발에 땀나기를 기다리는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새로 지어지지 않으면 
절대 선한 일을 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절대 하나가 된다거나 통일을 이룰 수 없는 자들입니다.

▲(엡 2:8-10) “8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살아나지 않고 선한 행동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구원의 공식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독교를 공격합니다. 
‘난 당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다. 당신들의 하나님이 살아있고 
그 메시지가 바른 것이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타락할 수가 있는가? 
그리고 이렇게 전쟁과 기아가 끊이지 않는가?’ 

성경은 그들이 묻는 것처럼 세상이 그런 식으로 나아지게 될 것이라고 
한 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습니다. 더 악해질 것이라고는 말한 적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새로운 관계를 이루는 새로운 나라의 백성들 사이에서만 
영원한 행복과 기쁨과 안식이 충만히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세상은 죄로 말미암아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썩어 가는 호수가 되어 버렸기에 
스스로 깨끗해 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왜 얼마 전에 일어났던 
911테러 사건 같은 것을 막아주지 않으셨냐고 흥분을 합니다. 

여러분, 9.11테러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인가요? 아닙니다. 인간들이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서는 남의 생명도 초개처럼 여기는 죄인들이 
싸 놓은 더러운 배설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가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뉴스에 나와서 ‘거기서 죽은 사람들 중에 분명 하나님의 백성들도 
끼어 있었을 것인데 왜 하나님은 그들을 살려내지 못했냐?’는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뭔가?’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뭐긴 뭡니까? 천국 간 거지. 
참 답답합니다. 왜 천국은 좋은 곳이라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들 합니까? 
정말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기독교인들이 알긴 아는 것일까요? 
그런데 왜 그 천국으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데 그렇게 흥분을 합니까? 
왜 그리스도인들이 천국 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 맘대로 안 되는 이 죄의 몸을 벗어버리고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 품으로 
가는 것이 왜들 그렇게 무섭습니까? 

▲얼마 전에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신문에 보니까 어떤 집사님이 그 불타는 지하철 속에서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할렐루야 나 지금 천국 간다.’라고 외치고 죽었답니다. 

그런데 그 기사 아래 붙은 댓글들이 전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장황하게 쓰여 있었지만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예수에 미친놈‘입니다. 

맞습니다. 우린 미친놈들입니다. 예수에 미친놈들입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게 된 미친놈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 말씀하신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를 몸으로 살아내는 미친 사람들인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 받지 못한 죄인들이 불타는 지하철에서 죽은 것이 처참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르는 소치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그 처참하게 찢긴 몸으로 다시 일어나 
그보다 억만 배 큰 고통 속으로 들어가 버릴 것입니다. 

9.11은 순간에 끝나버린 고통이지만 그 지옥의 고통은 영원히 끝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세상은 변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실체를 로마서가 잘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롬 3:10-18) “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 3:23)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은 절대 스스로 선한 것을 내어 놓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유대인이 헬라인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헬라인도 유대인보다 나을 것이 없습니다. 
모두다 멸망 속으로 달음질쳐 가는 자들일 뿐입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스프링복스 떼들의 행진이 화제입니다. 
그들은 먹이를 찾아 옮겨 다니는데 그렇게 거대한 무리가 되면 

뒤에 있는 양들이 앞에 있는 양들이 먹이를 다 먹고 갈까봐 
머리로 앞에 있는 양들을 열심히 민다고 합니다. 

앞에 있는 양들은 뒤에 있는 양들에게 밀려 서서히 달리게 되고 
앞에 있는 양들이 달리면 뒤에 있는 양들이 그 앞선 양들을 따라 잡으려고 
함께 뛴다는 것이지요. 결국 먹이는 둘 다 못 먹고 열심히 뛰기만 하는 것입니다. 

앞선 양이나 뒤를 따르는 양이나 자기들이 지금 어디로 가는지 왜 뛰는지도 모릅니다. 
그냥 다른 양들이 뛰니까 뛰는 것입니다. 그러다 강이나 절벽을 만나면 
앞선 양들은 얼떨결에 뒤에 있는 양들에게 밀려 떨어져 죽고, 
뒤를 따르던 양들은 앞을 보지 못해 떨어져 죽어 모두가 몰살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유익을 위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무조건 달리기만 하는 죄인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복음이 들어 왔습니다. 헬라인들에게 복음이 들어 왔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한 자들이 되었고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는 민족과 학식과 재산과 외모에 관계없이 동일한 방법으로 
조화 속으로 통일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빌 3:4-14) “4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5 나는 난 지 여드레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6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습니다. 

7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나에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은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오물로 여깁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인정받으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의를 가지려는 것입니다. 

10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12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사로잡으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좇아가고 있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입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14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을 받으려고,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민족, 학식, 명예, 열심 모두 다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모두 오물 같은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같은 성령을 받았으며 우리 모두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오직 그 길만이 우리를 통일시키고 
조화시킬 수 있는 길입니다. 

전에는 나를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죄인들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화해하고 통일 된 자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의 ‘그 안에서 우리가, 
그 안에서 너희가’가 전하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비로소 14절에서 다 함께 통일 된 ‘우리’가 되는 것입니다.

▲(엡 1:14)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우리가 받은 상속에) 보증이(담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교회가 세상에 기독교 윤리를 제시하고 그것을 실천하게 하면 
세상의 난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중생, 거듭남이 없으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중생 , 거듭남, 새로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다고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합니다. 

먼저11절을 보시면,
(엡 1:11)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기업이 되었다는 단어가 ‘클레로오’인데 그 단어는 동사이며 수동태입니다. 
‘할당을 받다. 상속을 받다, 특권을 부여받다’의 뜻이 있습니다. 보세요. 수동태입니다. 

우리는 상속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행한 대가로 되어진 것이 아니기에 
수동태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는 14절에서 너희도 기업, 분깃을 받은 자 되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즉, 우리도 그리고 너희도 같은 분깃을, 기업을, 상속을 얻었고 같은 후사가 되었다
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은 같은 상속자

유대인들과 헬라인들 이방인들이 같은 기업을 상속받고 같은 후사일 뿐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후사가 되었다는 것이 바로 놀라운 복음입니다. 

▲잘 보세요. 성경은 우리를 예수와 공동상속자라는 명칭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롬 8:17)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표준새번역]

우리는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누어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한 엄청난 상속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와 공동 상속자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며 천사들과 세상을 판단 할 것입니다. 
우리 새사람들만이 거하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우리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나라를 바라보며 가는 자들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교육을 얼마나 받았는가, 잘 생겼는가, 못 생겼는가, 
부자인가 가난한가, 흑인인가 백인인가’의 저급한 구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돈과 지위와 인기 때문에 전쟁하고 분열하는 것이 없는 나라입니다. 
통일되고 조화되어 삼위일체 하나님처럼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인 나라, 
거기가 하늘나라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고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늘에 있는 ‘기업’ 
‘그 상속’만을 바라보며 가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않습니다. 
벌써 이 땅에서 그 나라를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