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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구원 후에, 잘 믿어야

LNCK 2023. 6. 3. 13:25

 

◈은혜로 구원 후에, 잘 믿어야..    엡2:1~10      설교 스크랩

 

◑1. 우리나라 축구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를 꼽게 될 경우,

그 첫 번째는 말할 것도 없이, 차범근 선수를 지목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이의를 달 사람은 거의 한 사람도 없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그만큼, 차범근 선수는, 우리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뛰어난 축구선수인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기 전,

유럽 사람들이 한국(KOREA)은 몰라도 ‘차붐’은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인이 유럽을 여행하는 중에, 사람들이 한국을 잘 모를 경우,

‘차붐의 나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은 금방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알아차리곤 했다는 것입니다.

 

차범근 선수는, ‘분데스리가’에 진출한 외국인 중에서,

최다출장과 최다 골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308경기에 출전했고, 98골을 기록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기록입니까?

 

이 기록은, 그 후, 다른 선수에 의해서 갱신되었습니다만,

프랑스에서 발행되고 있는 풋볼 잡지는 1989년도에 차범근 선수를

‘세계 4대 축구인물’로 선정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풋볼’ 지(誌)는 차범근 선수를

‘20세기 최고의 축구선수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차범근 선수가 유럽에 처음 진출해서 몇 해가 지난 후에는

아주 큰 위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차범근 선수가 차츰 높은 수준의 기량을 보이면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게 되자,

많은 선수들로부터 질투와 시기를 받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위기는 1981년도에 찾아왔습니다. 상대선수의 태클로 말미암아,

요추 뼈가 부러지는 엄청난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진단 결과, 6개월 동안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프로선수에게 6개월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차 선수가 속해 있는 구단에서는, 6주가 지날 경우,

더 이상 월급을 지급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차 선수로서는, 아무런 대책도 세워놓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일을 당하자,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구단 측 변호사는 ‘가해자를 법적으로 고소하는 길밖에 없다.’고 조언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그런 문제가 생겼을 때,

법적인 고소를 하는 일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차 선수는 결코 쉽사리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고소를 하지 않을 경우, 빈털터리 신세가 되어 우리나라로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가해자 선수를 고소를 하는 것은,

그의 신앙적인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차범근 선수는 이런 내용으로 TV방송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방송이 나가자, 독일 사람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왜냐하면, 차범근의 그런 태도와 그 표현 자체가,

엄격하기로 소문난 독일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날, 차범근의 집 앞에는 아주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수많은 독일 팬들이 몰려들어서 꽃을 들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일 언론에서는 연일 차범근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 이후로, 독일 사람들은 ‘차붐을 좋아한다.’고 하는 표현 대신에

‘차붐을 사랑한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차범근 선수를, 단지 훌륭한 축구선수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인품을 지닌 사람으로서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가해자 선수를 고소하지 않을 경우,

당장 생계가 막막한 형편 속에서,

과연 고소를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지 말입니다.

 

그야말로, 아주 큰 꿈을 품고서 정든 조국을 떠났는데,

이제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돌아가야만 한다고 생각했을 때,

고소를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결정이었겠습니까?

 

고소를 포기하는 것은, 곧 돈을 포기하는 것이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적인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결정했습니다.

 

요컨대, 돈과 명예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더 소중하게 여겨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는 돈과 명예보다 훨씬 더 값지고 위대한 것을 얻게 되었습니다.

차갑고 냉철한 독일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일인들은 차붐을 거론하면서 존경을 표시한다고 합니다.

 

그 당시, 차범근 선수가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었더라면,

그런 결정을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를 경우, 생활이 궁핍하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서 고국으로 돌아와야 했으니,

참으로 고민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용기를 내어 믿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독일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고,

그 이후로도 계속 독일에서 활약할 수가 있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사단은, 지금도 주님을 대항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활동하고 있다(엡2:2)’고 하면서,

‘우리도 옛날에는 그들처럼, 우리의 욕망과 악한 생각이 이끄는 대로 끌려 다니면서,

악한 일만 저질렀다.’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전히 사단의 지시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서 말하기를

‘죄에서 헤어나지 못해서 영원한 멸망을 코앞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풍조에 젖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는 죄가 가득 차 있어서, 사단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란,

‘예수를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서 하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부인하거나,

또는 그 뜻을 따르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권력이나 재물과 같은 것들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서,

그런 것들을 열심히 추구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비록 교회를 다닌다고 할지라도, 세상 명예나 권력,

또는 재물을 얻기 위해서, 교회를 그 방편으로 삼는다면,

그들도 결국은 바울이 말하는 ‘세상사람’에 속한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다기보다는,

자신의 세상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다니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반면에, 차범근 선수처럼, 세상적인 재물이나 권력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재물이나 권력은 물론이요,

때로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기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바로 진실한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자마자, 금방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차범근 선수처럼, 그런 선택을 확실히 할 수 있으려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말씀과 기도’를 통한 믿음의 훈련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오스카 와일드가 쓴 <그날 이후>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에는, 예수께로부터 직접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예수님이 땅에 내려오셔서 그들을 만나보시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상에 내려오신 주님은, 제일 먼저 어느 술주정꾼을 만났습니다.

거의 폐인이 되어서, 그는 손발을 심히 떨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형제여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되었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술주정꾼은 주님을 가만히 보더니 “저를 고쳐주신 분이군요!

제가 절름발이로 있을 때, 당신은 제 다리를 고쳐서 건강한 다리로 만들어주셨지요.

 

제가 절름발이로 있을 때에는, 구걸하며 살아도 부끄럽지 않고,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발로 걸어 다닐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얻어먹을 수도 없고, 마음에 맞는 직장도 없고 해서,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이처럼 되었답니다.”하고 깊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예수님은 깊이 근심하면서 이번에는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한 불량자가 선창에서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대낮에 이게 무슨 짓이오?”하고 야단쳤습니다.

 

그랬더니, 그가 금방 예수님을 알아보고서는

“예수님이 아니십니까? 전에, 제가 앞을 못 보던 소경이었을 때,

당신은 진흙을 발라 제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고, 온 세상이 저의 세상이 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정작 눈을 뜨고서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속이 상하여 아무나 붙들고 화풀이를 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이런 생활이 상습적인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하고 흐느껴 울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예수를 믿고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더욱 온전하게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그 받은바 은혜가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악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는 ‘신앙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훈련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면, 신앙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즐거운 일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믿음생활을 충실히 하려면, 많은 노력과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춥다고 해서 기피하거나, 사는 것이 고달프다고 해서 믿음생활을 소홀히 할 경우,

높은 경지의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숙한 믿음을 갖지 못하고 있을 때에,

차범근 선수와 같은 그런 일을 당할 경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한다고 하는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조금 바쁘거나 춥다고 해서 교회출석을 소홀히 하는 사람이,

과연 차범근 선수처럼 그런 결단할 수가 있을까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4. 우리가 성경을 봐서 잘 알고 있듯이, 과거 이스라엘백성은

하나님께 베푸시는 놀라운 은총과 기적을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다른 민족은 단 한 번도 경험해볼 수 없었던 놀라운 기적을,

이스라엘 백성은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만 불편하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신하기를 식은 죽 먹듯이 했습니다.

민21장에도,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과 모세에게 불평을 늘어놨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돔 족속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내주지 않자,

이스라엘은 어쩔 수 없이 홍해 길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고생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불만과 불평을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이려고 합니까?

여기는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이 지겨운 만나도 신물이 나서 정말 못 먹겠습니다.”라고 하면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사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고 감사할 일인데,

이제는 지겨워서 먹을 수 없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하고 딱한 일입니까?

 

▲어쩔 수 없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징계하시기로 했습니다.

백성들이 사는 곳에 불뱀을 보내셔서, 그들이 뱀에 물려 죽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냥 내버려두면, 백성들이 모조리 불뱀에 물려 죽을 판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염치 불구하고 모세에게 찾아가서 간절하게 부탁했습니다.

“우리가 함부로 입을 놀려서 원망함으로써 당신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용서하시고, 제발 우리를 위하여

뱀들이 사라지게끔 해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해주십시오.”

 

그래서 모세는 우글거리는 불뱀을 없애 달라고 여호와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들게끔 그 뜻에 따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원망과 불평을 더 많이 하면서 살고 있는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자원이라고는 거의 없는 이 땅에 태어나, 그것도 반 토막 난 이 나라에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각기 자기가 잘나서 잘사는 줄 알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너무나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주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 경우,

그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은,

은혜 중의 은혜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당시, 주님께로부터 고침을 받게 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총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수많은 병자가 있었을 텐데,

 

주님을 만나 고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은총이요,

정말 기막힌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건강하게 된 이후, 얼마나 값진 인생을 살았을까요?

오스카 와일드의 추측에 의하면, 그렇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고침을 받기 이전보다, 훨씬 더 불행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그 반대로만 살아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도 불뱀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징계하실 지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을

코앞에 두고 살았다(엡2:1)’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적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넘치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몸부림쳐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 은혜에 보답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다.’라고 하면서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도, 우리가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엡2:8)’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믿음생활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는 믿음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열심히 주님을 믿고 있습니까?

차범근 선수처럼, 그런 결단을 내린 적이 있던가요?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여 옳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목적으로 그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끝끝내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외면하거나 왜곡할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오늘 드리는 이 말씀을 절대로 가볍게 듣지 마십시오.

아무튼, 선택은 우리 각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서 자신의 인생과 운명이 갈리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구리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불뱀에 물렸던 사람들이 그 구리뱀을 쳐다볼 경우,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장대에 매달았던 그 구리뱀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 중에는 불뱀에 물리고서도

구리뱀을 외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불뱀에 물린 사람이, 단지 구리뱀을 쳐다본다고 해서

어찌 나을 수 있겠느냐고 하면서,

이론적으로 따지고 의심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처럼 똑똑한 체 하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더욱 겸손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영원한 죽음과 심판 앞에서

결코 잘난 체하거나 우쭐대지 말고,

겸손히 그리고 열심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합시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박종화 목사 설교 스크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