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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

LNCK 2023. 6. 3.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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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꿇고 비는 기도             엡3:14~21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는, 엘리야의 갈멜산 꼭대기 기도처럼 
이것은 간절한 기도의 자세를 말한다.(왕상 18:42)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엡3:16

어느 장로님이 암으로 계속 투병 중에 있었다. 
그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 장로님의 병상에 가서 
에드워드 페이슨 이라는 미국 목사님의 글을 하나 읽어 드렸다; 

페이슨 목사님은 44세 되어 하나님의 부름(소천)을 받은 분이다. 
그가 병상에 있을 당시 자신의 누이에게 보낸 편지 중 한 토막이다; 

   「하나님은 내가 받을 축복을 하나씩 차례로 빼앗아 가셨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사라지고 없어졌을 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 오셔서 대신 그 자리를 채우셨다. 
   비록 지금 나는 불구가 되어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 생에 있어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행복하다. 
   죽음의 강이 내 앞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죽음의 강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면 
   한발로 뛰어 넘을 수 있는 조그마한 개울일 뿐이다.」 

우리는 예수 믿고 겉사람도 건강하게 살아야 되겠지만 
신앙의 본질은,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는 것이다. 
딤후2:1절에 내 아들아 은혜 속에 강해야 한다 라고 권면했다.
성령, 은혜 받으면.... 속사람이 강건해진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17

브라이언 카바노프가 쓴「마음의 정원」이란 책에 보면 
우리 마음은 정원과 같다고 한다. 

정원에는 잡초가 나기도 하고, 좋은 꽃이 자라기도 하는데 
이상하게 잡초는 심지 아니하여도 잘 나고, 가꾸지 않아도 잘 자라지만 
좋은 꽃은 씨를 심어도 잘 나지 않고, 잘 자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잡초와 꽃이 함께 있으면 
잡초는 무성해지는 반면, 꽃은 시들시들하다가 죽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잡초를 제거하고 김을 매주어야 
땅에서 오는 좋은 양분을 흡수하여 꽃이 잘 자랄 수 있다. 

우리 마음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못된 생각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무성하게 잘 자란다. 
그러나 좋은 생각, 착한 마음은 보전하려고 애를 써도 
어느 사이에 시들어 버려서 욕심이 들어오고 화를 내고 시기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마음을 예수님이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 
바로 이런 뜻에서 바울이 말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17
오늘도 마음의 정원을 정성껏 가꾸는 하루가 되자!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엡3:18~19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오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종교재판소는 
이단 색출이라는 빌미로, 고발자나 재판 절차를 비밀에 붙인 채, 
고문과 위조를 일삼은 것으로 유명하다. 

종교재판 중에서도 15세기 스페인의 종교재판이 가장 악명 높다. 
당시 스페인 종교 재판은 적어도 30만 명 이상을 화형 시켰다. 
지구가 둥글다고 했던 갈릴레오가 
발언을 취소하고 살아 나온 곳도 바로 스페인 종교재판소다. 

그러니 감옥 안 죄수들의 참상이 어떠했겠는가. 
시간이 지나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가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을 침략했을 때, 
종교재판소가 사용하던 감옥의 문이 열렸다. 
신앙 때문에 투옥 당한 죄수들의 흔적이 드러난 것이다.
특히 지하에 있는 한 감방이 인상적이었다. 

작고 음침한 감방 벽에는 
한 신실한 크리스천이 긁어서 새겨놓은 십자가가 있었다.
그 십자가는 네 마디의 스페인어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십자가 위에는 “높이”, 십자가 밑에는 “깊이”, 
왼쪽에는 “넓이”, 오른쪽에는 “길이”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난의 현장에서도
이 죄수는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을 깨달았고, 
그것을 증언하고 싶었던 것이다. 
십자가는 바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통로였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는 무엇을 말할까? 
사랑의 범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범위는 한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전 세계 모든 시대, 
모든 종족과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다 품고도 남음이 있는 사랑이다. 
그리스도께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는 무엇을 말할까? 
그리스도의 사랑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창세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현재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선물로 주셨다. 
영원토록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란 무엇을 말할까? 
이는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사랑하시되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하신 사랑의 깊이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기까지 참으신 그리스도의 사랑이야말로 
바다보다 더 깊은 사랑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는 무엇을 말할까? 
이는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 살아계시며, 
우리를 위해서 중보의 기도를 감당하시고,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직분을 감당하고 계시는 사랑이다. 
그래서 장차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신다. 

젊은이들이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랑을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사랑에 눈이 어두워진 사람을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에 빠지면, 우리를 이길 자가 세상에 아무도 없다. 
아무리 우리의 인생의 짐이 무거워도 그 무거운 짐 앞에 꺾이지 않는다.

아무리 내 마음이 고통스럽고 비참해도 
그 비참한 운명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믿고 경험하는 사람은 
그 사랑의 힘에 꽉 붙들려서 절대로 쉽게 꺾이지 않는다. 
도리어 넉넉히 이긴다.  롬8:35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9

핸드폰에서 충만의 교훈을 배운다. 
핸드폰은 매일 밧데리를 충전시켜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늘 하나님 가까이 가서 그분의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를 다시 충전시키지 아니하면
절대로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핸드폰 빈껍데기만 가지고 다녀봐야 아무 소용없다. 
충전을 시켜야 된다. 
기도로 충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