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진행자) : 수요일마다 우리는 존 파이퍼 목사님의 설교 1.200편 중 몇 편을 선정해서 들려드립니다.
아래 설교는 ‘음욕이라는 불신앙과의 싸움’ battling the unbelief of lust 이란 설교에서 존 파이퍼 목사가 전한 내용 중 일부입니다. 25년 전 설교인데, 본문은 살전4:1~8 절입니다. *1988.11.13.
그는 ‘성적인 죄가 왜 불신앙인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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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파이퍼 : 저는 ‘순종을 위한 싸움은 없어도 된다. 구원 받는 데는 오직 믿음만 필요하니까’ 라는 오늘날 만연된 교리를 탐구해 보려고 합니다.
이 논리는 굉장히 속기 쉬운 말인데요. 제 주장은 이것입니다.
‘순종의 싸움은 구원받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the battle for obedience is absolutely necessary for salvation 왜냐하면 이 순종의 싸움은 믿음의 싸움이니까요.
하나님께, 말씀에 순종하려는 싸움은 천국에 도착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 순종의 싸움이 바로 불신앙과의 싸움이고, 믿음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따로 두 개의 전투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번의 믿음의 고백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행위로 상급을 받는 것은 서로 별개가 아니며, (동전의 양면과 같아요) 그래서 단 하나의 전투만 있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여정을 시작하게 하며 또한 목적지에 도착하게 하는 전투입니다. 이 순종의 싸움은 본질적으로 믿음의 싸움이지, 행위의 싸움이 아닙니다.
우리 믿음이.. 탐욕, 부적절한 수치심, 염려, 음욕, 시기심 등의 악의 뿌리를 제거하지요.
하나의 전쟁만이 있으며 이것은 믿음의 전쟁입니다.
이제 음욕의 뿌리는 불신앙인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살전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위 구절은, 아내를 취할 때나 성생활을 할 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라’라고 가르칩니다.
이 구절에서, 음욕의 뿌리가 무엇이라고 암시하나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음욕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색욕을 따른다고 말씀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음욕의 근본 원인입니다.
여기서 안다/모른다..는 지식이나 지적동의를 뜻하지 않죠. 반대로 ‘인격적인 친밀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회당에서 만난 귀신들린 자의 놀라운 지식을 아시죠?
막1:24에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셨는데, 그의 입에서 ‘놀라운 지식’이 흘러나왔습니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도 아직 제대로 몰랐던 지식입니다.
결국 그 귀신들린 자는.. 지식적으론 예수님을 ‘알았지만’ 정말 존재론적으로는, 예수님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럴 수 있다는 거죠.
본문 살전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에서 ‘모른다/안다’는 사실이,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누가 색욕을 따른다면, 이방인 불신자, 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라는 거죠.
어떤 신자들은, 신학 지식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도 바로 이방인처럼 색욕을 따를 수 있습니다.
저는 예전에 전문적인 신학모임에 참석하곤 했습니다. 한번은 세인트루이스에서 모였는데, 거기에는 지독하고 끔찍한 윤락가가 있지요. 그런데 신학연구모임에 왔다가 또 거기로 관광 가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은 *head knowledge 경건의 능력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욕을 품을 때,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행한다'는 말의 의미는 뭔가요?
여기서 ‘안다/모른다’는 고후4:6절에서 묘사한 지식인데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고후4:6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 즉 하나님의 위대하심, 크신 위엄, 그 찬란한 영광과 아름다움.. 그의 능력, 지혜, 공의, 선하심.. 이런 것을 아는 지식이죠.
그 하나님을 제대로 알면 그 앞에 서기 위해서, 그분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더러움을 피하게 되는 것이죠. 머리로만 아는 지식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이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은 할렐루야 찬양을 들으면서도.. 지루해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일몰 때 그랜드 캐니언 앞에 서서, 그 장관을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삶의 사소한 문제로 불평합니다. 그야말로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지식은, 우리를 매료시키고, 붙들어주며, 겸손케 하고, 황홀케 하며, 깨닫게 하며, 기쁨을 주는 지식으로서.. 믿음의 지식입니다. *knowledge of faith
이 지식은 우리를 음욕에서도 자유케 합니다. 이 지식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지식(앎)=믿음=순종
벧전2:11을 기억하십니까?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그저 '믿으라'가 아니죠)
당신이 ‘음욕’이라는 적과 어떻게 싸우는지에 당신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위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렀습니다. 정욕과의 싸움은 성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왜냐면 그 싸움은 불신앙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The battle against lust is absolutely necessary for our salvation because that battle is the battle against unbelief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