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링과 여의사 눅5:17~26 출처휘발, 2006년 경 설교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께 도달한 중풍병자와 그를 도운 네 친구들의 믿음!
여기에 뜻 밖에도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의 선언이 주어집니다.
우리는 흔히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요.
그 집에 모인 사람들이 많아서, 예수님 앞에 갈 수 없는데,
꼭 예수님께 병 고침을 받아야 되겠다는 확고한 결심과 의지를 가지고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심지어는 지붕까지도 뜯어내는 그런 과감한 결단력과 행동으로 옮기는 자세,
이것이 바로 <병고침을 받는 믿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니에요.
이 본문은, 병고침 받으러 왔다가,
영생의 주님을 만난 것이.. 본문의 주된 포인트입니다.
(※ 이 해석적 차이 때문에, 이 설교문을 스크랩 했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예수님으로부터, 죄사함이 선언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병고침 때문에 예수님께 나왔다가,
병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된 관심으로 바뀌었습니다...
▲도입 예화/ 스케일링 하러 치과에 갔다가.. 목적이 바뀌어 결혼하게 된 연예인
탤런트 김상경 씨는 스케일링을 하기 위해,
동네의 치과를 찾아갔습니다.
거기서 치과 원장을 만나, 치료 스케줄을 잡고, 서로 명함을 주고받고 나오는데,
그 여의사가 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는 거예요.
이렇게 만나서 식사를 하고, 이 여의사도 이분이 나의 운명이라고 생각을 해서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김상경 씨는 환자로 병원을 찾았다가, 여의사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부터는 김상경 씨는 스케일링 따위는, 안중에 둘 필요가 없습니다.
아내가 다 알아서 스케일링을 해줄 겁니다.
신자에게도, 이와 비슷한 과정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중풍병자는, 치료를 위해서, 예수님을 찾아갔다가,
죄사함을 얻게 되고, 예수님과 영적으로 결혼하게 되었는데요...
▲본문에,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 들것에 실려서
예수님이 계신 집으로 오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몰려와 있습니다.
누가는 간단하게 씁니다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한 내용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이 중풍병자가, 병고침만을 받을 목적이었다면,
꼭 지붕을 뚫지 않더라도,
군중들보다 훨씬 더 부지런히, 일찍이 나와서
지금 집안에 계신 예수님 바로 앞에 당도한 병자들 틈에 끼었을 것이에요.
그런데 무리하게 지붕을 뚫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예수님도,
그들에게 다 죄 사함의 선언이 주어진 게 아니고,
(복음서에 많은 경우가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데)
그 모든 병 고침의 경우마다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선언해주신 게 아닙니다.
병자들이 불쌍해서, 그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천국을 가리키시기 위하여 기적을 행하시고 병자를 고치셨지만,
모든 사람에게 <죄 사함의 선언>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죄 사함의 선언은,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되는 것이지요.
▲자, 그 <죄 사함 받는 믿음>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죄라는 건, ‘하마르티아’ 과녁을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오답이다, 정답이 아니다’ 라는 뜻이죠.
그러므로 ‘죄 사함 받는다’는 뜻은
‘네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행위는 정답이다, 이제는 빗나가지 않았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볼 때,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모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누가는, 역사의 모든 사람을 내다보며 이걸 쓰고 있는 것이니까,
유대인이라는 한계 안에서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또한 어떤 경우에 있든지 간에,
중풍병자 같은 경우든/ 돈 문제의 경우이든/ 가족 간의 인간관계 문제든지..
어떤 경우에도 정답은 하나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겁니다.
공자에게 나가도 답이 없고, 부처에게 나가도 답이 없고,
베스트셀러를 읽어도 답이 없습니다.
베스트셀러일수록 매력적인 오답 덩어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현들이 누구입니까? 매력적인 오답을 뱉어내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예수님께 나가는 것만이 정답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다 예수님께 나왔어요,
많은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병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정답을 맞혔다’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나가는 게 정답이라고 말해놓고 보니까,
병자들만 온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온 유대 각처에서, 예수님께 나왔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21
이것도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거예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가르치는 스승들입니다.
그러면 이들이 다 정답을 맞힌 겁니까?
죄 사함이 선언되지 않고 있고,
오히려 죄 사함을 선언하는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나오는 것만이 모든 경우 모든 문제에 대해서 유일한 정답인데,
그렇게 예수님께 나오는 것만으로도 정답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답을 맞힐 수 있습니까?
▲중풍병자와, 그를 메고 온 친구들의 마음의 변화가, 어떻게 변했는지요?
그 집 안에, 사람들이 가득 차있습니다.
그 집에 딱 도착하자마자, 누가가 쓴 것처럼,
‘사람이 가득 차있으니,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침상 채로 내려 보내자!’
이랬겠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중풍병자와, 네 친구들,
다섯 명 전체가 다 이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요?
상황을 알아봤더니, 사람들이 가득 들어 차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몰려들었는데, 가만 알아보니
지금은 병 고치는 타이밍이 아닌 겁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타이밍입니다.
누가가 기록하기를, ‘하루는 가르치실 때..’ 라고 합니다. :17
이들이 와서 알아보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병을 고치셨다면,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할 거예요.
병자들이 고침 받은 대로, 한 명씩 집밖으로 나왔을 겁니다,
그 뒤에 다른 병자들이 예수님 앞으로 오기 위해서.
혹은 병자들이 움직이기 힘들다면, 예수님께서 움직이시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 하시면서 안수하시고, 병을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 고치는 것이 문제였다면.. 그 자리에서 기다리면 되는 것이었을 겁니다.
굳이 애써서 지붕을 뜯어서, 아래로 달아내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중풍병을 앓고 있던 사람에게
잠깐 기다리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자기 (치료)순번을 기다리면 되는 거니까요.
▲그런데 지금 상황을 알아보니, 병을 고치는 타이밍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계시는 타이밍>이었습니다.
병을 고치는 거라면 기다리면 되지만,
지금 뭔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예수님이라면,
이 순간을 놓치면, 그 설교를 들을 기회는,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이 가르침과 이 말씀은,
이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이들은 결심합니다.
말씀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놓칠 수 없다는 생각을 하는 그 찰나에
이들의 마음속에서 주관심사가 완전히 바뀌어버립니다.
중풍 병을 고치겠다고 온 이 마음의 관심이, 예수님 자신에게로 옮겨갑니다.
(앞서 스케일링 하러 왔다가, 관심이 여의사에게 옮겨진 예를 들었습니다.)
여기에서 ‘마음의 화살’이 제대로 방향을 잡게 되는 거예요.
과녁에 적중되었습니다.
그들은 지붕을 뜯어냅니다.
왜요? (병고침의 목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놓치는 것이니까.
이제 중풍병(예에서 치석)을 제거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제는 스케일링을 하는 여의사가 마음의 관심이 돼버립니다.
‘여의사가 내 운명이다..’ 이렇게 되어버린 겁니다.
▲지금 이 여의사만큼은 내가 놓쳐서는 안 되겠다는 김상경 씨의 마음의 변화,
스케일링을 하러 갔다가, 스케일링만 하고 나오면 되는 것이 대부분 환자의 모습인데,
이 김상경 씨는 스케일링이 문제가 아니라
이 의사가 내 운명이라고 마음이 바뀌어버린 이 상태가
곧 예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아내는 <과녁을 명중한 마음의 화살>입니다.
(오답이 아니라) 정답인 믿음의 상태라는 겁니다. ☞오답 컨닝 오답을 피하는 길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20
이게 바로 죄 사함을 끌어내는 빗나감이 없는 마음의 상태요,
이것이 바른 믿음이라는 거예요.
▲믿음이 뭡니까?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내 삶을 향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서 죄를 지은 결과가 뭡니까?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당면하고 있는 인생의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 이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죄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오답입니다,
베드로가 평생의 고기잡이의 경험으로부터 나온 결론이
예수님을 만나면서 오답이 되는 것처럼.
지금 내 인생의 상황, 이 경우, 이 문제를 보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그 내용을 듣지 못하고, 캐치하지 못하고,
내가 생각하고 내가 답을 내려고 하는 것,
이게 바로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이며, 과녁을 빗나가는 것(오답, 죄)이라는 겁니다.
▲죄 사함을 얻어내는 믿음이 뭐라고 했습니까?
지금 내 삶의 현장에서 말씀하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의 결심
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공생애를 한 마디로 말하면,
바로 이 믿음의 점철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당면하고 있는 모든 관계, 사건, 상황, 이 모든 것에서,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한, 안간힘으로 공생애를 관철하십니다.
이것 이외에는 하신 것이 없어요,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놓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이 태도가 마리아와 마르다의 비교에서 마리아에게서 나타날 때
예수님께서 당신을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하는 마르다보다
당신의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턱 받치고 예수님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 마리아를 예뻐하신 이유가 되기도 하지요.
▲지금 계속해서 하나님은 이 땅에 있는 나를 향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된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가 살다가 우리 인생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가 어떤 것이든 간에.. 예수님을 떠올려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니까요.
좋아요! 그래서 예수님을 찾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교회를 가서 기도를 하던 가정에서 기도를 하던,
짬을 내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를 하던…
여기까지는 좋아요.
▲그런데 본문에 많은 병자들과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이들은 여전히 빗나가는 상태에 있었다는 것이에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율법사들은 예수님을 마음 안으로 모셔 들이려고
예수님 앞으로 나간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오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잡으려고 나갔고,
다른 모든 병자들은 여전히 스케일링만 끝나면
예수님을 떠날 마음으로 그 앞에 나가 있는 겁니다.
스케일링(치유)이 주관심사가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런 상태로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는 겁니다.
▲돈 문제 때문에, 예수님 앞으로 나와 기도를 하지만,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려면
돈 문제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사라져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돈 문제 때문에 급해서, 예수님께 나와서 기도하게 되는 이유가 뭡니까?
돈 문제가 이렇게 된 것이 잘못되었다는 내 생각과,
내가 내린 결론이 있기 때문에 나온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이 결론(내 오답)을 고집하고 있는 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자식을 쳐다보면서, 자식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내 오답)을 내리고 있는 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께 하나님께 나와서
‘스케일링’만 하고 돌아갈 마음자세로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이렇게 사는 거예요.
치석이 생길 때마다 나와서 고치지마는,
절대 그 의사 자신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충치가 생겨도 오고, 스케일링 할 때도 오고, 임플란트도 할 때도 오지만,
그 의사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100년을 믿는다고 해도
예수님께 나와도 죄 사함을 끌어내지 못합니다.
다 빗나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예수님 자신에 관심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지 않으니까,
하나님 자신에게 집중되지 않으니까.. <빗나간 믿음>이라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적중한 믿음이고, 죄 사함을 끌어내는 믿음입니까?
빗나가지 않은 믿음, 정답인 믿음.
지금 여기서 나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 마음,
이 다급한 심정, 지금 놓치면 지금 이 경우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놓쳐버린다는 이 절박함과 다급함을 가지고
주님을 향해 쇄도하는 믿음. (필요한 경우, 지붕도 뜯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언제나 십자가를 통해 들려집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이 세상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이 죽고, 내 답이 죽으니까…
내 답이 내 속에서 들리고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은 들릴 수 없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 생각이 죽고, 내 답이 죽을 때,
말씀하시는 주님이 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놓치지 말자는 거예요.
십자가를 놓치지 않는 것이, 오늘 중풍병자가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내려가려는 행동과 똑같은 것이라는 얘기죠.
십자가를 통하여, 내가 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생각과 내리는 답이 죽을 때,
들리지 않을 때, 관심 밖으로 밀려날 때,
그때 예수님 자신이 나의 관심이 되고,
예수님 자신이 나의 관심이 되면
여의사가 나의 아내가 되었을 때에
스케일링 따위는 그 예수님이 알아서 해주시듯이
예수님이 나의 관심이 되었을 때에
인생의 치석들, 건강문제, 돈 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
모든 문제들을 내 신랑 되신 주님께서 다 알아서 때를 따라서 제거해주실 것입니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이 믿음,
이게 바로 정답의 믿음이고, 여기에 죄 사함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는 단지 치석일 뿐입니다.
거기에 집중하지 마시고
의사이신 예수님 자신을 내 운명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기어코 주님의 입에서, 나를 향하여, 죄 사함의 선언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시는
그런 적중하는 믿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