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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라

LNCK 2023. 6. 8. 15:32

 주일예배설교  2021 05 30 - YouTube
*3:47초부터 녹취
◈성령께서 일하시게 하라         합3:2~3, 눅24:49            ▣ 부흥 관련글 모음

하박국이 기도합니다. 합3:2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어쩌면 이 기도는, 하박국의 소원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을 감동시켜서, 이 기도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수년 내에 주의 부흥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수년 내에 주의 부흥을 이루라'  이것이 하박국서의 명령이죠.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주여, 수년 내에 부흥을 이루어 주소서!'
이러한 기도제목을 갖고서, 또 그렇게 기도들을 하는데 
이 부흥이라는 것은 간단합니다. 숫자가 많아지는 것에 국한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의 연장이에요. 

여기서 부흥 Revival 은,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는 현장, 
그곳이 아골 골짜기가 됐던, 광야와 같은 곳이 됐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둠 속에 함께 하셨고 
하나님이 광야속에서 일하시면 부흥이 일어난단 말이에요. 

죽은 자들이 살아나는 부흥, 약한 자들이 강해지는 부흥, 
하나님을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을 되찾는 부흥...

'부흥'이라는 말을 성경적으로 묵상을 하면, 정말로 은혜가 되는 거에요. 
그래서 부흥은, 교회의 사이즈가 넓어지는.. 
그런 이상한 부흥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교회 안에 영적인 부흥, 질적인 부흥이 일어나서 
-여러분 교회에 진리가 부흥돼야 되고 
-또 예배가 부흥돼야 되고 
-특별히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의 부흥이 반드시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나, 
하나님의 일 하심을 어느 곳에 가든지 나타내는 나, 

그래서 그것이 '세계가 하나님의 교구' 라는 말들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도가 가는 곳에서, 하나님이 일 하셔야 되죠. 

그래서 여러분 "부흥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우리는 이렇게 정의할 수가 있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일 하시면 그 밖의 일들은 모두 따라오는데,
반대로 우리는 여러분 객체를 목적으로 기도한단 말이에요. 

'하나님, 객체의 부흥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타락이 오는 거에요. 
사람이 많아야 되고, 돈이 많아야 되고, 
명예의 부흥, 외적인 부흥, 썩어질 것의 부흥...

이렇게 어느 순간부터 부흥이 오염되고, 타락 돼서, 엉뚱한 부흥을 외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아휴 우리는 부흥 안 됐어요. 우리는 겨우 30 명 밖에 안 돼요.' 

그렇지만 30 명의 영혼이 얼마나 소중합니까? 
30 명의 영혼이, 하나님이 원하는 부흥을 이루면 
세속적인 신자 3천명의 모임보다 더 압도적인 은혜가 있는 거에요. 
 
'나는 돈이 없어서 부흥이 안 됐어요' .. 부흥을 오해하는 겁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 여러분 부흥을 오해하면 안 돼요. 

물론 여러분, 부흥의 하나의 열매가 
부흥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한쪽 단면인 것이지, 그게 부흥의 전부는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부흥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주가 되시고, 하나님이 힘이 되시고 
내가 했던 일들이, 하나님의 일로, 
내가 살아갔던 현장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으로 바꿔놓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부흥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도 몇 명 모이는 게 뭐가 중요합니까? 
여러분 우리 교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흥'이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교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교회 

그래서 참되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이 
저와 또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2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말은 '몇 년 안에' 라는 말인데,

그 의미는 '속히' 부흥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속히 부흥을 이루소서!'
하박국은 '빨리 우리에게 부흥이 일어나길 원합니다. 
하나님이 빨리 우리나라에 오시옵소서' 

'하나님이 빨리 우리 모임속에 오시옵소서. 
오셔서 하나님의 힘으로 나라가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힘으로 교회가 끌려가게 하시고, 
하나님의 힘으로 우리가 살아나게 하시옵소서!' 
이것이 본문 기록의 원뜻 입니다. '속히 부흥을 이루소서!' 

여러분 그러나 우리 한국은 '급속한 부흥' 속에서 살아왔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속히, 급속' 이런 개념에 대해 좀 염려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그래서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속히' 가 아니라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부흥을 허락해 주소서..
라는 의미로 살짝 바꾸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부흥이 있는 곳에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에 
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이런 부흥이 
대한민국의 교회들과, 우리 교회와, 여러분의 가정속에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속히 부흥을 이루셨기 때문에 
이제 정체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는 거예요. 아니 어쩌면 퇴보됐죠. 
이 퇴보된 부흥속에, 다시 한번 부흥이 일어나게 하옵소서! 

여러분의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도 퇴보됐단 말이에요.
첫사랑도 소멸됐고, 사명도 약해졌고, 눈빛도 많이 흐려지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시 한번 나에게 부흥을 이루어주옵소서!'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전폭적 순종

여러분 부흥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정 먼저는 '주님의 전폭적 순종처럼,  나도 전폭적 순종이 있어야 된다' 는   
원리가 적용되어야 돼요. 

여러분 부흥의 근본은 예수님이시죠. 
그 예수님께서 하신 전폭적인 순종이 있었습니다. 

'전폭적 순종'의 뜻이 뭐냐면 
'나 하나가 죽어야, 
나 하나로 인하여 궁극적으로는 가정/공동체/사회/국가의 운명이 
'나 하나에게 달렸다' 라는 믿음을 가져야 돼요. 

부흥은 여러분, 목사님이 혼자 알아서 할 일이 아니에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에클레시아 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몸된 교회 들입니다. 

그 하나의 몸된 교회들이 모여서, 바로 여러분 건물이 된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한사람 한사람의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제쳐놓고 하나님은 나에게 관심이 있는 거에요. 

하나님은 나에게 초점을 맞추시고 
'나는 너를 통해서.. 나의 부흥이 다시 한번 일어나길 원한다.' 
하나님은 그러한 마음을 품고 계심을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나는 소중한 겁니다. 주님 앞에서. 
그리고 중요한 것은, 나 하나에 의해서 부흥이 달려있다는 거죠. 
롬5:19 '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을 보세요. 고뇌의 기도뒤에 주님은 결정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제가 전폭적으로 순종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신성을 갖고 계셨으나, 이 땅에 사시면서는 인성이 있으셨죠. 
인성이 작동되는 순간에, 죽음이라는 것은 고통스러운 거에요. 

여러분,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당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 아무것도 아닌 사람한테, 침 뱉음을 받고, 채찍에 몸이 찢겨야 되고... 

이것은 인성이 작동될 때는, 참 수용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그래서 '이 잔이 내게서 넘어가면 안 될까요?' 기도하신 거죠. 

왜 피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고뇌속에서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이 땅에 왜 왔을까? 내가 이 땅에 온 목적이 뭘까?' 

'저들을 살리려고 내가 왔지 않는가? 
저들을 살리려면 나 하나가 죽어야 된다. 
십자가에서 나의 자존심, 나의 모든 걸 포기해야만 
저 철없는 제자들이 살고, 그리고 고통 당하는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나를 내려놓고 내가 십자가에 죽어야 된다!'
이렇게 주님은 전폭적 순종을 하셨지요.


'예, 제가 죽겠습니다. 저들을 위해서 나 하나 포기하겠습니다' 
그게 십자가의 현장이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정하신 말씀에, 예수님이 전폭적으로 순종하셨습니다. 
부분적이 아닙니다. 전폭적 순종을 받아들이심으로써 
그 심정을 결정하심으로써, 
여러분,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 
인류는 혜택을 받고 산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깨달을 것은 '나 하나의 전폭적 순종'을 통해서, '나 하나의 십자가 짊'을 통해서
우리 가정, 공동체에도 부흥이 일어난다는 거죠.

주님은 이런 사람을 찾으시는 거죠.
'나는 너에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나는 너를 통해서 부흥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이 주님의 마음을 깨달아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은 '너 하나가 대충 신앙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깨달아야, 네가 정말로 교회를 위해서 죽는다면 
너희의 교회는 내가 원하는 그런 질적 영적 부흥이 일어날 거다..' 
라는 음성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순종을 하기는 해도, 전폭적으로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부분적으로 순종하지요.
그런데 우리를 전포적으로 순종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으라  

눅24:49 'you are to stay in the city until you are clothed with power from on high'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중요한 명령 하나를 던지십니다. 

'너희의 생각 갖고는 안 된다. 마음으로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지만..
마음은 원하지만, 현장 속에 노출돼 있는 너희들은.. 순종이 힘들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옷입듯이 입혀져야 받아야 된다

현장을 바라볼 때는 두려움이 올 수밖에 없고 
현장을 바라볼 때는 
이전에 고백했던 호언장담을 (베드로처럼) 뒤집을 수 있는, 
변질시킬 수 있는 세상의 무서움이, 너희의 목에 칼로 겨누어질 것이다...  

그래서 마음으로는, 기도할 때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지요. 
예배드릴 때, 은혜 받으면, 뭐든지 다 하고 싶지요. 
그러나 삶의 현장에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여기서 '성'은 예루살렘 성을 말하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믿음의 성'입니다. 

성을 떠나서 개척을 하고, 
성을 떠나서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야, 나는 학벌도 있어, 준비도 된 것 같아, 
나는 후원자들도 있어, 잘 될 거야'... 이렇게 성령 없이 하는 사역, 그거는 세상의 방식이죠. 

여러분, 믿음의 사람들은 후원의 줄이 달라져요. 
믿음의 사람들을 후원의 주체가 달라져야 됩니다. 
나의 후원은 오직 예수죠. 나의 힘은 오직 예수죠.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뭡니까? 
'객체인 나의 열정, 객체인 나의 인맥, 객체인 나의 후원자가 
내 인생을, 내 개척을, 내 선교를 잘 되게 할 것 같아...' 
그게 세상의 방식, 옛사람의 방식이죠.

그러나 새 사람을 입었으면, 이제는 내 주체가 객체로 밀려버리고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체가 돼야죠. 

그러니까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성경대로 '위로부터 힘이 올 때까지 기다려라'

성급하게 나갔다가 망신당하지 말고 
위로부터 내려오는 성령의 힘 
즉 '죽어도 살수 있는 힘, 망신당해도 웃을 수 있는 힘, 
어려워도 할렐루야 외칠 수 있는 힘'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되요. 

그건 여러분, 훈련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신앙생활 30 년 해도.. 어려울 때 할렐루야 소리가 안 나와요. 

위기를 만나서도 '나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계속 믿을 거에요'

이건 성령의 능력으로 입혀져야 나오는 고백이죠.
그게 아니면,
현실적 위험이 오면 거의 '아휴, 내가 죽으면 안 되지' 하고 베드로처럼 배신합니다. 

이게 현실이에요. 오늘날에도 현실적으로 이런 일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죠.

위로부터 능력이 와서 나의 비겁함을 감춰주시고.. 하셔야 됩니다. 
내 두려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감춰지는 거에요. 

죄가 없어집니까? 주님께서 눌러 주시는 거죠. 
인간이 예수 믿는다고 완벽하게 의롭게 됩니까? No 
의롭다 함을 '입는' 겁니다. 죄가 여전히 내 속에 있어요. 
예수님이 의의 힘으로 내 죄를 막아주시는 것 뿐이지, 
예수 믿는다고 죄가 싸그리 살아집니까? No 그러면 천사가 되는 거죠. (그렇게 안 돼요)  

인간은 아닙니다. 죽을 때까지 죄와 싸우면서 살지만, 
위에서 힘을 주셔야.. 내가 승리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립니다. 
"위로부터 내 God 가 능력을 입혀질 때까지" 
목사들이여, 개척하지 마십시오.
선교사들이여, 급하게 선교지로 떠나지 마십시오. 

어느 교회에서 후원금 지원한다고 약속했다고, 
그것만 믿고 떠났다가는 큰일 납니다. 

장로님, 권사님, 안수집사님들, 은혜 받았다고 
'이제 돈벌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그게 나의 힘 갖고는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주님이 신신당부 합니다. 
'위로부터 능력이 덮힐 때까지 절대 떠나지 말라'

눅24: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지금 사기가 올랐을 것 같아요. 
부활의 주님을 만나 뵈었잖아요.
속에서 뭐가 될 것 같은 착각이 오는 겁니다. 

그렇지만 이 때는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았잖아요.
그 성령이 너희에게 오실 때까지 
'너는 절대로 성을 떠나지 말고 여기서 기다리라' 라는 말씀을 
우리는 잊어버리면 안 돼요. 

▲오늘 제자들이 여러분 그 말을 듣고 '예' 하고는
마가의 다락방에 가서 열흘 동안 기도하며 기다리는 겁니다. 
'오늘이 그 약속 날인가? 내일이 그 약속 날인가?' 

여기도 재미있는 사건이 많았겠죠. 열흘 동안 다 버텼겠어요?
남은 사람이 120 명 이겠죠. 

더 많은 사람들이 합류했다가 들랑달랑도 했겠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주님의 약속을 기다렸던 120 명에게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행전의 그 유명한 2:1~4절이 시작된 거죠. 

위로부터 성령님을 그들에게 부어주시는 현장을 우리는 알지 않습니까. 
여러분 성령이 모든 자들에게 가득 임하심으로 
4절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입을 여는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거는 단순히 뭐 '성령이 방언하게 하신다'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면 안돼요. 
그 말은 맞지만, 여러분 성령이 나에게 힘으로 오시는 순간부터 
어떤 현상이 시작되는구나를 말해주는 겁니다. 그 현상이 뭐냐?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어떤 말에 성령의 권위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방언은 '언어 방언'이죠.
내가 말하면 설득력이 빈곤해요. 
그렇지만 내 똑같은 말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하면... 권위가 생기는 겁니다.

나의 이 설교원고를 성령이 장악하시고 
나의 가르침을 성령이 말하게 하심으로 바꿔주시면 
똑같은 내 말인데 말에 파워가 다른 겁니다. 그 말에 생수가 흐르는 거에요. 

찬양인도자가,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찬양을 인도하면, 그 찬양에 생수가 흐르는 거에요. 

제가 강단에 서기 전에, 그냥 오지 않습니다. 
많은 시간을 쭈그리고 앉아서 '오늘도 제가 설교합니다. 하나님, 
저는 보잘 것 없잖아요. 그러나 여기 찾아오신 분들이 그냥 가면 되겠습니까? 
제 말이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이 되게 하셔서 
좀 깨닫게 하시고, 이해하게 하시고, 동의하게 하시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입을 열 때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겠습니까? 
행2:4절은 그런 의미입니다. (방언도 중요하지만, 그 방점은 '말의 능력'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자녀를 훈육할 때도, 그냥 엄마의 사랑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여러분의 말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가 
엄마의 말에 더해 진다면.. 거기에 파워가 나타나는 거고,

나의 노래와 찬양 속에, 성령이 기름을 부어 준다면 
그 찬양에는 다윗의 수금 속 찬양처럼
사울의 악신을 떠나게 하는 힘이 생기는 거에요. 

그렇게 해서 전폭적으로 성령을 신뢰했더니 
기절초풍할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행5:12절에 보면, 사도들이, 학벌도 없는 분들이에요. 
그들이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설교했을 때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그러나 성령이 부어지지 않으면
'이래서, 저래서 안 될 것 같아요. 무서워서 못할 것 같아요.' 합니다. 실제로도 아무 역사도 안 일어납니다.

▲히13:8절에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랬습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과거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어요.
 
우리 할머니들 시대에, 텐트를 치고 가마니 깔고 거기서 부흥집회를 했으며,
이게 우리나라 기독교의 역사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증인입니다. 
정말 예루살렘에 삼천 명씩 회개하고 돌아왔던 그 역사가 우리나라에도 있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불교를 버리고, 우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에클레시아, 하나님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이 너희 속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부흥을 우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 소중한 분들이 여기 얼마나 많이 모였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의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작은 하나님인가요?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에클레시아 (각자 교회)는 무능력한 교회인가요? 아닙니다.

목회자들은 이렇게 합리화시키죠. '성도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
아니에요. 목사가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 

여러분, 성도는 목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옵니다.
목사의 성령의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목회자의 믿음이 없어서 그래요. 

예를 들면, 장로님, 권사님들이 이런 말을 잘 합니다.
'우리 아들/딸이 믿음이 없어요!'

장로님, 죄송한데.. 그건 아들이 아니라, 장로님의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권사님, 죄송한데.. 그건 따님이 아니라, 권사님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예외도 있겠지만) 그 자녀를 뒤집어 엎을 수 있는게 부흥의 힘인데, 
엄마의 잔소리로, 아빠의 아버지의 (혼적인) 잔소리로만 
애들을 제압하니.. 그게 됩니까?

부모에게 '성령의 나타나심'이 나타나고

그 가정에 하나님의 부흥의 힘이 임해야만
그 부흥의 능력으로, 성령의 권위로 자녀들이 변화되는 거에요. 

우리는 여러분 '믿음으로 양육한다' 하지만 
여러분 부흥의 힘, 성령의 힘으로 양육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가정에, 우리 각자에게..  염려는 큰데, 걱정은 태산같은데.. 
여러분 기도의 힘은 너무나 초라한 겁니다. 

성령은 뭡니까? 태산 같은 걱정을 덮는 능력이 부흥이요, 성령의 힘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무능함을, 할 수 있는 유능함으로 성령은 덮으시는 거예요. 
이렇게 덮으시는 게 뭡니까? 부흥입니다. 

여러분 권사님들이 부흥돼야 돼요. 장로님들이 부흥돼야 돼요. 
여러분 내 안에서 부흥이 시작될 때 '우리 애들이 말을 안 들어 먹어요'
이런 소리가 안 나옵니다. 애들이 부모의 영적 권위에 복종하는 거죠.

여러분 지금도 부흥을 시작이 됩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여러분 '다시 한번 우리 가정에, 다시 한번 나에게 
부흥이 시작되게 도와주소서!' 이렇게 반드시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 지성의 벽이 너무 높아요. 
과학의 벽이 너무 높아요. 
기술이 벽이 너무 높아서 
이 세상 것들에 매료되어 있어요.

우리는 세상 것들에 매료되어서 
세상의 힘에 재미를 느껴서 
세상의 힘으로 살고 있어요. 전폭적인 헌신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아도 세상에 매력에 푹 빠져서 별 불편 없이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부흥은 일어나지 않는 거죠.

우리는 여러분 지성이 커졌어요. 아는 것이 많아졌어요. 
여러 지식을 습득해서 판단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졌어요. 

그리고 여러분 개인의 독선과 그 독선이 만들어낸 집단적 이기주의가 
여러분 강력하게 교회를 저항합니다. 그래서 부흥이 더 일어나지 않고 있죠.

그래서 오늘날 우리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고 있지 않는 이유는,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순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필요할 때만 예수 찾고.. 힘들 때만 예수 이름 부르면서,
평소에는 내 힘으로, 세상의 매력에 푹 빠져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연약함을 우리가 정리할 수 있다면, 
여러분 하나님은 전폭적인 헌신자, 전폭적인 간구자에게 
전폭적인 부흥의 은혜를 부어 주심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