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재료 막10:29-30 출처휘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10:29~30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심으로
<사랑의 재료>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사랑하는 데에 재료가 필요하냐?
사랑하는 데에 재료가 필요합니다.
위 본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리는’
것이 바로 사랑의 재료입니다.
사랑은 표현해야 사랑이 될 수 있고 또 그 표현된 사랑이
지속되고 공고하게 다져지려면 반드시 그 재료가 필요합니다.
재료가 투입되지 않는 사랑은 거짓이고 일종의 속임입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섬길 때,
같은 전도사님이, 하루는 넥타이를 받았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넥타이가,
백화점 가판대에서 파는, 좀 싸구려 넥타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선물해 주신 분이 고맙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썩 고맙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교육전도사 때, 남자 혁대와 지갑이 들어있는 세트를 선물 받았습니다.
기분 좋게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상자는, 아무개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 오픈 기념식에 나눠주던 것이었어요.
그러니 교육전도사인 제게 선물해주신 분이, 제법 자산가로 알려져 있는데,
자기가 공짜로 선물 받은 것을, 제게 선물로 전달해 준 것입니다.
물론 고맙기도 하지만,
그게 과연 저에 대한 아낌과 사랑의 표현일 수 있을까요?
사랑이라는 건 정성스러운 재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랑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의례적인 허세가 돼버리고 말아요.
▲우리 삶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귀중한 기간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천국에 가면, 하나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께 반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경악할 정도로 놀라자빠지는 황홀경에 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 지상에서 살 동안에,
얼마나 사랑을 표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고도 반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찬양하지 않을 사람은 없어요.
장동건, 배용준을 보고 ‘야, 잘생겼다!’라고 하는 게 사랑은 아니잖아요?
그런 것과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사랑을 보일 수 있는 chance가
바로 육체로 이 땅을 살고 있는 삶의 첫 번째 의미요, 메인 목표라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때 재료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읽지 않은 부분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9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게 다 뭐예요?
사랑의 재료라는 거예요.
사랑의 재료가 어떤 겁니까?
형제, 자매, 부모, 자식, 전토, 전토라고 하는 것은
아마 그 당시에 재물을 대표하는 것일 거예요.
그러고 보면 이 세상에서 내 마음에 가장 귀중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다 망라하신 겁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내 마음에 가장 소중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다 버리는 것이 하나님 사랑의 표현이고,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나
다 하나님 사랑을 위한 재료의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들을 가지고 그들과 더불어 재미있게 행복하게 잘 먹고 잘사는 게
이 땅에서의 삶의 목적이 아니고
그렇게 소중한 것들을 전부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는 하나의 재료로 사용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내게 이 땅에서 허락하신 소중한 것들의 의미라는 거예요.
삶의 의미가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고
삶에서 주어진 모든 소중한 것들이
다 그 사랑을 표현하는 사랑의 재료들이라는 얘기에요.
국회의원 사무실 오픈 기념으로 받은 기념품을 가지고 선물하는 게 사랑이 아니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백화점 앞 가판대에 무더기로 놓고 파는 넥타이 하나 골라서
목사님께 드리는 것, 이것은 그만큼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 재료만큼 사랑한다는 것을 보이고 있는 거죠, 정성이라는 게 없는 겁니다.
▲본문은 ‘그 진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까다롭습니다.
더 좋은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사랑의 재료>라는 의미로, 본문을 해석해 봅니다.
우리가 집과 형제자매 부모 자식 전토를 버린다, 이게 인생의 의미입니다.
‘사랑의 재료’로 쓰는 거예요.
자, 이제 가만히 아브라함의 생애를 한번 살펴보세요.
‘아브라함! 아브라함!’ 하지만 믿는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에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브라함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까?
전토를 버렸습니다, 집을 버렸습니다,
친척을 버렸고, 아내를 버리고 자식을 버립니다.
하나님 사랑을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게 바로 믿음의 조상이고,
믿는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삭이 하나님 사랑의 재료가 되는 거예요.
아브라함에게 자기 목숨보다 더 소중한 그런 이삭이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하나님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겁니다.
하나님 아버지, 집도 귀중합니다.
형제와 자매 부모 자녀 다 귀중하고 내 재물, 피와 같고 살과 같습니다.
그렇게 소중하니까 그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재료로 삼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