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우연한 작용에 의하여 복잡하지만 조화로운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더 어려운 믿음입니다.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이 세상이 복잡한 세상이지만, 너무나 조화로운 이 세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
만물을 창조하시며, 만물을 유지하시며 또한 만물을 심판하실 하나님이 계시다는 믿음이.. 오히려 더 (믿기) 쉬운 믿음입니다.
물론 성경 말씀이, 우리가 궁금해하는 모든 질문에 다 대답해 주지는 않습니다.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창조의 세계에 대하여 유한하고 제한적인 지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창조론이) 모순처럼 보이고,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성을 뛰어넘는, 우리의 이성으로 측량할 수 없는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창조) 영역에 대하여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장세기 1장, 2장의 기록이 창조에 대한 모든 기록을 빠짐없이 기록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믿기에 충분한 내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창조론에서) 우리가 알 필요가 없고, 또 알려주어도 알 수 없는 내용은 생략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일례로, 복음서에서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다 기록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우리가 믿기에 충분한 말씀을 복음서에 기록해 주셨다고 했기에
마찬가지로 창조에 대한 기록을 주실 때 창조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다 기록으로 남겨주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창1장, 2장의 기록만으로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창조의 섭리를 큰 윤곽에서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분명히 믿어야 하는 것은, 창1장은 문학적인 풍유나, 비유나,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 그분 자신이 증언하신 역사적인 계시인 것입니다. 창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증명하려 하지 않고, 설명하려 하지 않고, (단호히) 선언하는 것은 이 선언을, 우리 인간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모든 세상과,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2절부터는 그 하늘과 땅의 창조에서 이제 땅의 창조에 초점을 두고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특별히 인간이 거주하는 '지구의 창조'에 초점을 두고 땅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그래서 창1:1절에 '하늘과 땅'이라고 할 때 그 '하늘'은 보이지 않는 모든 세계, 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영적 세계에 대한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요.
'땅'은 보이는 세상, 곧 지구를 중심으로 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의 창조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6일간의 창조를 하신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진리를 계시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단 한순간에 어떤 플래시가 터지듯이 단 한순간에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지 않으시고 6일이라는 날로 나누어서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가 질서 있게, 체계 있게 하나님의 설계에 따라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6일간의 창조'라고 했으니 그것은 진화론이 말하는 것처럼, 아주 오랜 세월에 걸친 창조가 아닙니다.
진화론은 아주 작고 미세한 어떤 미생물에서부터 출발해서 그것이 점점 분화하고 진화해서 수많은 종류로 그렇게 번성하고 확대되었다고 말하고, 거기에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렸다고 말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오랜 세월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변이와 변형들이 일어나서 종과 종을 뛰어넘는 그런 변이가 일어나지 않으면 단 하나의 종의 기원으로 이 수많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종류가 분화될 수 있다고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6일간의 창조를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종류들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고 그것을 6일 동안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6일간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창조에, 숨어있는 질서가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이며 또한 우리도 그 질서에, 그 패턴을 따라 살아가야 함을 우리에게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첫 3일은, 형태를 조성하는 창조입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말로 말하자면 플랫폼을 만드는 창조입니다.
나머지 3일은 그 플랫폼 안에 존재하는 피조물들을 창조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첫째 날과 넷째 날이 서로 짝을 이루고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이 짝을 이루고 셋째 날과 여섯째 날이 짝을 이룹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첫째 날과 넷째 날의 창조를 살펴보았고, 오늘은 둘째 날과 다섯째 날을 묶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이 여섯째 날의 창조에도, 그 각 3일도 일정한 흐름이, 질서가 보여집니다.
하늘에서 시작해서 땅으로 내려가는데 그래서 세 번째 날은, 땅이 식물을 내고, 여섯째 날은 땅이 동물을 내는 것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정교한 창조의 질서가 숨어 있습니다. 이것은 큰 윤곽을 말하는 거죠.
이걸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이 전체의 창조의 윤곽이, 이렇게 질서 있게 창조되었으므로 세부적으로 들어갈수록,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신비로운 조화와 체계와 질서가, 그 속에 숨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미생물에 이르기까지, 이 전체 6일간의 창조에 이 하나님의 시스템, 하나님의 질서, 하나님의 패턴을 가지고 들어가 보면 놀라운 하나님의 설계가 그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오늘은 둘째 날과 여섯째 날의 창조에 대해 살펴봅니다.
1:6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물 가운데 공간이 생겨 물과 물이 나누어지라 하셨습니다' *우리말성경
물을 나누셔서 그 물 가운데 공간이 생기도록 하셨고 그 공간을 하늘이라고 칭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면밀히 읽는 분들은, 이런 질문을 틀림없이 할 것입니다. 그것은, 첫째 날에는 빛이 있으라 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셔서 낮과 밤을 창조하심으로, 시간을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둘째 날에는 '물을 나누시는' 것부터 시작이죠. '물이 있으라' 라고 해서 물을 창조하신 게 아니라 물을 나누심으로 창조했는데 '그 물은 그러면 어디에 있었던 것이냐?' 라는 질문이죠.
2절에 물이 나오는데,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었으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있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고 했죠.
6일간의 창조 시작 이전에 물이 수면에 운행하고 있었고,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덮고 있었던 형태가 없고 비어 있던 땅과 더불어 "수면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2절은 3절과 어떤 관계가 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앞서 설명해 드린 대로
1:1절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고 했는데 이것은 창조 전체를 요약하는 말씀이고 선언임과 동시에 2절 이하의 창조의 배경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1절은, 2절 이하에 나오지 않는 창조의 사건들이 있었음을 말하는 것이고 2절 이하에는, 보이지 않는.. 천사라든지 영적 세계의 창조는 말하고 있지 않죠. 그것은 하늘의 창조에 들어가 있는 거죠.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을 때 그것은 보이지 않는 세상과 보이는 모든 세상의 창조를 총괄하여 설명하셨는데
2절부터는, 그중에 땅의 관점에서, 특별히 지구의 관점에서 이 창조를 살펴보자면.. 하면서 2절이 시작이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1절과 2절 사이에는 어떤 긴 기간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서술의 관점으로 주제가 바뀐 것이죠.
'구약과 신약 역사를 통해서 영적 세계가 있구나 사단이 존재하는구나, 천사도 존재하는구나 영의 세계, 천군 천사가 존재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 창조의 세계까지 우리에게는 다 알려주지 않으셨다는 거죠.
그것은 1절에 다 포함이 되어 있는 것이고 2절에서는 땅의 관점에서 그 하늘과 땅 중에, 땅의 관점인데 특별히 지구의 관점에서, 이 지구의 환경이 어떻게 창조되었는가에 초점을 두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형태가 없고 아무 질서가 없었을 그때에 물로써 존재하던 그 상태로부터 '빛이 있으라' 창조하시고 두 번째 날에 '물과 물을 나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이, 2절 이하의 창조의 배경이 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장 칼뱅도, 1절의 하늘과 땅의 창조 안에 그 1절의 창조는 모든 창조 요약이면서 동시에 2절에서 '물'이라고 호칭하는 이 원물질의 창조가 포함된다.. 해석했죠.
빛의 창조 이전에 하나님께서 창조.. 지구보다 더 큰 창조,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모든 세상의 창조, 그래서 지구의 창조 이전의 지구의 상태.. 그것은 이 '물로서의 지구'였다는 거죠.
여러분,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물은 화학적으로 H2O이죠. 단순한 물질이 아닙니다.
물 자체로도 여러가지 화학적으로 융합된 형태이지만, 안전한 물질 중에 하나죠. 마셔도 되고.. 물론 그 물에 익사되면 안 되지만 그 물을 우리가 섭취하고, 물 속에 수영도 하고, 물이 많이 흐른다고 해서, 사람의 피부에 닿아서 우리 피부가 녹습니까?
물처럼 안전한 게 없는 거죠. 그 부력으로 인해서 수영도 할 수 있고, 배도 다닐 수가 있고...
고대 서양 철학사를 읽어봐도 언제나 최초의 원물질이 뭐냐 할 때 반드시 나오는 게 '물'이에요. '물이냐 불이냐 흙이냐?'
그런데 물을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물보다 더 기초적인 물질이 있죠. 수소나 산소나 만일 그러한 작은 원소로부터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했다면 지구는 매우 위험한 행성이 되는 거죠.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만약 산소로 시작했다면, 어떠한 환경의 변화에, 지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버리는... 작은 불꽃에도, 운석이 떨어져도.. 지구 전체가 불타 버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물을 기초로 하여 시작한 안전한 환경이 되었다는 것이죠.
여기에 진화론이 해결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있는 겁니다. 진화론은 언제나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열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 오랜 시간 동안 그렇게 발전한다고 가르치는데
태초부터 이 지구의 창조의 기반이 된 것이 물이라는 것은 그것은 단순한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복잡한 화학 등식을 가진, 기초적이지만 절대 단순하지 않는 물질로부터 시작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완벽한 설계를 가지고, 안전한 물질을 가지고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물을 '분리시켰다. 나누셨다' 첫째날은 빛과 어둠을 나누심으로, 낮과 밤을 창조하신 것처럼 이 '나누는' 것도 하나님의 창조의 중요한 방법이었습니다.
물을 위/아래로 나눔으로써 공간 위의 물과/ 공간 아래의 물로 나누셨고 그 사이, 윗물과 아랫물 사이의 공간을 궁창, 그것을 하늘이라 부르셨습니다.
창조과학을 연구하는 분들은 이 공간 위의 물이, 바닷물처럼 출렁이는 그 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증기 같은.. 그러나 언제든지 액체와 될 수 있는 그런 기체 상태로 일종의 짙은 수중기 상태로 존재하는.. 그러한 일종의 덮개와 같은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영어로 표현하면 Canopy effect 라고 말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창2:5~6절에, 홍수 이전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 온 지면을 적셨더라'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다..' 비가 내리려면 기압골이 형성돼야 되는데 이 수증기 덮개가, 전체 지구 전체가 온화한 기압의 상태이고 생명체가 거주하기에 가장 좋은 환경의 상태를 유지하였기 때문에 추위와 더위가 없었고, 북극과 남극이 없었던 그러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이전에, 사람들의 연령이 구약의 기록이 되었는데 수백 년씩 살았죠. 9백살 대까지 산 사람도 있고,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나요?
죽음이 선언되었지만, 그 인간이 거주하기에 최적의 상태의 덮개 효과 Canopy effect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 때, 이 공간 위에 물이 하늘이 열리며 쏟아내렸다. 그런 홍수가 내리는 비 정도가 아니라 40일 동안 하늘이 열림으로써, 이 공간 위에 있는 물이 쏟아져 내렸다는 거예요.
모든 수증기가 쏟아져 내림으로써, 이 우주 속의 지구는, 매우 취약한 환경에 처해 있어서 햇빛이 그대로 우리에게 비취게 되고 이 덮개 효과가 없어짐으로써, 북극과 남극이 생기게 되고 추위와 더위가 생기게 되는 큰 격변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거죠.
창조를 믿지 않는 과학자들도 인류 역사에 어느 순간에 '대격변'이 일어남으로 이러한 긴 협곡이라든지, 산의 융기 또는 침하 등 뭔가 이 지구상에 불균형이 일어나는, 균형이 깨지는 그런 격변이 있었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합니다.
이것이 여러 번의 격변이냐/ 단 한 번의 격변이냐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 공간 위의 수증기 대가 '덮개 효과'가 있었다.. 라는 것은 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될 수 있고 성경에 그것이 기록되었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그리고 공간 아래의 물은, 셋째 날에 그것을 한 곳으로 모아 바다를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은 물과 물을 나누어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창공)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흔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이 가진 하나님의 흔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입니다.
왜 하나님의 하늘을 만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죠.
하나님이 계신 하늘은, Heaven이라는 보이지 않는 하늘입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하늘sky을 만드심으로 하늘의 하나님의 영광을 일부 보여주신 거죠.
첫째 날 창조에서 빛을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빛이시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 빛은 다른 빛이죠.
태양 빛과, 그리고 태양을 발광하게 하는 빛을 창조하신 빛과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로서의 (이상 3개의) 빛은 다른 빛이지만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신 것처럼 하늘의 하나님께서, 하늘을 만드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인류학을 엔트로폴로지 라고 하는데, 헬라어 엔트로포스 에서 나온 말입니다. 엔트로포스는 직역하면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거예요.
참된 인간은 위를 바라보는데, 하늘을 바라보는 거예요. 하늘을 바라볼 때, 사람은 겸손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 하늘을 바라보면, 눈에 보이는 하늘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눈에 보이는 하늘 sky, 계속 그 하늘을 향하여 가게 되면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끝없는 우주, 그것은 바로 무한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의 흔적인 것입니다. 천문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우리가 속한 이 태양계만 봐도 태양계는 큰 은하계의 한 부분이죠. 지극히 작은 별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속한 은하계도, 천억 개 이상의 은하계가 있는데 그 천억 개의 은하계도, 각기 그 안에 1천억 개 이상의 별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10의 11 자승의 은하가 있고, 각각의 은하가 다시 10의 11 자승의 별을 가졌으니 우주에는 10의 22 자승의 별이 있다는 거예요.
성경은 분명히 이 무한한 하늘, 하늘을 넘어선 우주를 바라보면서 '너희들을 위하여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구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너희가 이처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해 주는 겁니다.
사람들은 이 하늘과 우주를 바라보며 오래 전에는 이 우주가 정지 상태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과학이 발달할수록 '이것이 움직이고 있구나, 지구도 회전하고 있고, 태양계 자체도 움직이고 있고, 이 행성이 다니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이건 어떻게 된 건가?' 라고 오늘날의 과학적으로 정설로 받아들여고 있는 건 빅뱅 이론입니댜.
이것은 엄청난 대폭발이 아주 오랜 과거에 있어서 대폭발로 인해서 이 행성들이 다 쏟아져 나와서 질서를 이뤘다고 말하는 거예요. 거의 정설처럼 되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도 잘 알 겁니다. 그러나 빅뱅-대폭발로 인해서 지금 수많은 은하계가 이렇게 분리되어 나왔다고 할 때, 해결할 수 없는 것은 '폭발 이전에 뭔가 엄청난 덩어리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었는가?' 그걸 설명해 주지 못합니다.
대폭팔로 이 모든 우주가 존재했다고 말하지만 그 폭발 이전에 그 상태는 어떻게 된 거냐고 말할 때는.. 그걸 모르는 거예요.
그리고 폭발이라고 하면, 질서에서 무질서로 가는 게 맞는 거지 폭발해서 점점 더 질서 있게 갔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떤 폭발이라고 하면, 좀 더 무질서로 파편이 튀는 건 아니겠습니까?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가 우주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겸손해져야 한다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창1:1절은 분명하게 말씀하는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구를 창조하셨다.'
인간이 처음으로 우주선을 타고 달을 여행했던 때가 1968년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그때 우주선을 타고 달 표면에 갔을 때 달이 사람들이 거주할 수 없는 곳이라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지구에 제일 처음 교신했던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 그 내용은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저 아득히 먼 달 표면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지구가 얼마나 예쁜지 달에 비해서 이 지구가 얼마나 예쁜지요...
어린 시절 동화를 보면, 달에 가면 토끼가 방앗간에서 절구질을 할까? 뭐 그런 걸 생각하고 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그런 도저히 살 수 없는 그 달의 환경을 보면서 '지구가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그런 곳'인지를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는 고백을, 우주비행사들이 했다는 겁니다.
하늘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나타냅니다.
▲2.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의 하늘을 창조하심으로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일깨우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하늘이, 사실은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실제로 그 하늘을 바라보며, 인간의 상상력이 발전하며 그것이 문명을 만든 겁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은 창조력이 부족하고 창조력이 없을 때 문명은 발전하지 않는 거죠.
인간의 과학 문명이 급속도로 발전하게 된, 몇 가지 중요한 기구의 발견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당연코 망원경이죠.
저 멀리 보이는 별이 반짝이는 점과 같아 보이는데 망원경이 발견되면서, 그것이 지구보다 수십~수 백 배나 큰 행성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다.. 라는 걸 깨닫게 되었죠.
그러면서 인간의 엄청난 문명이 발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창조하심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너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하늘을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결국 이 하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는 진정한 하늘을 바라보는 창조적인 상상력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의 창조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 안에 있는 엄청난 잠재력과 능력을 계발시켜 주시고자 했던 거죠. ▲3. 세 번째는 이 지구의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생명력을 공급해 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런 질문을 했을 겁니다. '하늘이 왜 파랄까?' 어린 자녀들이 질문하죠. '아빠, 엄마 왜 하늘은 파래요?'
저 하늘에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면, 밤에는 파란색은 없어지고 전부 까만색이 돼버리는데 왜 하늘이 파랄까?
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하늘에, 공기가 있기 때문에 파란색으로 보이는 거죠. 신비롭습니다.
그 파란색을 보려고 하늘 높이, 구름 높이 (우주로) 올라가 보면 실제로는 암흑과 같이 어둠이지 않습니까?
그 파란 하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우리에게 하고 계십니까? 이 대기권, 건조한 순수한 대기권에는 여러 가지 기체들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질소가 78%, 산소가 21%, 기타 1% 적어도 지상 80Km까지는 일정한 비율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 비율이 깨지면 엄청난 문제가 생기죠.
그러니까 이 파란 하늘이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라 지상에 있는 생명체에 생명을 공급하는 중요한 영양 공급원이었던 거예요.
예를 들어, 비가 오고 나면, 모든 식물들이 그냥 푸르게 변하고 싱싱하게 되죠. 저는 그저 빗물을 먹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죠. 공기 가운데 대기권 안에 78%나 되는 이 질소들이 물과 함께 빗물로 내리면서, 식물에게 비료를 준다는 거예요.
저는 이번에 설교 준비하면서, 한국창조과학회의 여러 웹사이트를 보면서 이걸 알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것이 필요한 영양분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만일 질소가 아닌, 산소가 80, 90% 된다면, 한 번 화재가 나면, 이거 끌 수가 없는 거예요. 전 세계가 막 활활 타오르게 되는 거죠.
그런데 하나님이 적절한 비율로 질소가 가장 많게 하시고 그 다음에 산소가 있게 하신 창조.. 그게 얼마나 놀랍습니까.
또 천둥, 번개가 치면 사람들은 싫어하죠. 번개가 치면 '누가 또 저주받을 사람이 있나?' 그렇게 생각하고 두려워하지만 이 번개가, 하나님이 식물들에게 주시는 특별 양식이라는 겁니다.
이 번개는 열이 있기 때문에, 열과 물과 질소가 함께 화학작용을 하면 영양분이 더 듬뿍 주어진대요.
그래서 욥기 36장에 '하나님이 번개의 빛으로 먹을 것을 넉넉하게 공급하신다'는 말씀이 나오는데 '욥이 과학을 알아서 그랬을까?' 놀라운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번개는 뭐냐? 하나님이 식물들에게 특식을 주시는 날이에요. 공기 중에 있는 이 질소에 열을 가함으로써 영양이 부족한 땅에 특별 양식을 공급하시는 날이, 그게 번개치는 날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거대한 폭발로 인해서, 그 파편들이 흩어지면서 저절로 이런 대기권이 형성됐습니까? 진화론의 딜레마가 바로 이 공기, 대기입니다.
진화론은, 이 생물체가 어떻게 됐는가를 가지고 막 설명하지만 '대기가 진화되었다'는 말은, 한 번도 저는 못 들었어요.
그러면 대기는 원래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앞으로 최후의 심판이 있기까지는, 대기권의 화학 비율이 바뀌지 않을 거예요.
이 만일 최후의 심판이 있다면, 이 대기권의 화학 요소가 바뀌는 것이 될 수 있어요. 만일 이것이 질소가 줄어들고, 산소가 더 많아진다면 지구 전체가 불덩이가 되어 타버릴 수 있다.는 거죠.
마지막 최후의 심판이 "불의 심판"이라고 했는데, '화학적 변화가 대기 중에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가끔 운석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때가 있죠. 그런데 그 공기충이 없다면, 지구에 엄청난 데미지를 주었을 거예요.
역사적으로도 많은 운석이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졌는데 그 운석이 그 정도 피해만 준 것은 공기층이 쿠션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비도 마찬가지로, 톡톡톡 떨어지는 빗방울도 계속 떨어지면 콘크리트도 이렇게 파고 들어가잖아요. 근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만약에 공기층이 그것을 쿠션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빗방울 맞고 죽는 거예요. 이 빗방울을 우리가 자유롭게 하늘을 보고 찬양할 수 있는 건 공기층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에요.
저는 이 자연, 동물, 식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하게 됐어요. 하나님의 창조의 그 손길이 들어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운석을 연구하는 어느 해외학자가 TV 다큐멘터리에 나와 가지고 운석을 다 설명하고 난 다음에 운석이 참 신비롭다는 거예요.
그런데 결론이 뭐냐면, 운석을 연구해 보면 거기에 단백질 찌꺼기가 발견됐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분의 결론은 뭐냐면 이 운석의 단백질로부터 시작해서, 전 인류 지구의 생명체가 존재하게 되었다.
아 그렇게 결론을 내는데, 얼마나 화가 나는지요. 저분이 얼마나 유명한 대학에 학문적인 업적을 가진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무 근거 없이, '운석의 단백질로부터 지구의 생명체가 시작됐다'고 결론을 내리는 거예요.
항상 진화론은, '오랜 세월'이라는 걸 갖다 붙이면 다 통과돼요. 왜? 듣는 사람이 그렇게 오래 살아보질 않았으니까요.
오랜 세월 동안 어떤 작용이 있을 거라고 말하면, 다 통과되는 거예요.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아주 오랜 세월이 아니라 6일간 창조했다.'
질서를 따라, 계획을 따라, 하나님의 지적 설계에 따라 창조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그리고 저등한 것에서 고등한 것으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지만 그 대기 중에 과학적 요소까지도 다 고려한 하나님의 완벽한 설계에 따라 창조되었다.. 는 것입니다.
도리어 인간의 타락으로 그 완벽한 보시기에 좋았던 하나님의 창조가 깨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 하나님의 흔적을 보존하고 계셨고, 우리 인간이 거주하는 환경을 남겨주셨다는 거예요. 기회를 주신 거예요.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는 겁니다.
◑이제 다섯째 날 창조를 살펴봅니다.
이렇게 물을 나누고 공간(궁창)을 창조하셨고 이 물에 거하는 물고기와 하늘에 나는 새들을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창1:20~21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여기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종류대로" 입니다. 진화론이 설명할 수 없는 건, 환경은 설명할 수 없어요.
생명체들을 갖고는 변이와 오랜 시간 동안 진화됐지만 이 대기의 창조는 어떻게 말하며, 이 빛은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이 안 됩니다.
생명 자체를 가지고는, 진화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자체는 설명해 주지 못해요. 왜요? 그 환경은 처음부터 완벽해야 했기 때문에요.
또 하나가 "종류대로"입니다. 수많은 종류가 한 가지 종에서부터 기원해서 퍼져 나갔다고 주장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종류대로" 존재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성경을 믿는 과학자들도 같은 종 내에서의 변이는, 충분히 일어나고, 일어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추위와 더위, 또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적응하려다 보면 그 생명체의 변이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거죠.
그러나 문제는 뭐냐 하면, 종류와 종류를 뛰어넘는 변이가 가능하냐는 거죠. 그러려면 증거가 있어야 되는데, 화석이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종과 종을 뛰어넘는 화석은 발견된 일이 없어요. 도리어 많은 화석들은, 오래전부터 원래 종류가 구별된 종류라는 거죠.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에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나 네안데르탈 인, 이런 유인원의 역사를 보면 '참 왜곡된 것을 배웠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왜요? 어떤 뼈가 발견됐는데, 그 뼈 한 쪽을 가지고 사람의 얼굴, 머리 털까지 다 상상해서 그려내더라고요. 그건 상상이지 과학이 아니죠.
진화론에 근거해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대부분이고 창조를 믿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소수이기 때문에 그 소수자들을 사이비 취급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겁니다.
진화도 믿음으로 출발하는 거예요. 과학이라는 자체가 가설을 세우고, 어떤 믿음에 근거한.. '그럴 것이다'라고 가정을 세우고 그것을 증명하는데 어떤 표본을 정하고, 어떤 실험으로, 어떤 방법으로 연구 하냐에 따라서 자신이 세운 가설을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그것이 확실하다고 증명해도, 그것이 진짜인지 그건 알 길이 없는 거예요.
"종류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제가 다섯째 날의 창조 '물고기류와 조류를 같은 날에 창조하신 것이 참 신비롭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진화론이 생길 것을 미리 아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섯째 날에 물고기류와 새조류를 함께 창조하신 것은 이 종류 간의 변이가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하늘 나는 새들이 어느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우리는 이렇게 매일 그냥 하늘 나는 힘든 날개짓 하며 살아야 되냐? 저 물고기를 보니까, 그냥 물에 몸을 맡기고 그냥 편안하게 다니는데... 우리도 물속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
그래서 파이오니어의 기질을 가진 새가 물속으로 다이빙을 했어요. '나는 앞으로 물속에 살겠다' 바로 익사했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 생각을 가진 또 하나의 새가 또다시 다이빙하고 계속해서 다이빙을 계속한 결과, 어느 새 우연히 그 물속에서 견딜 수 있는 폐가 생겨난 거예요. 그러나 잠시밖에 못 견뎠어요.
그러나 포기하지 않는 새들은 계속해서 다이빙을 시도했고 어느 날 물속에도 존재할 수 있는 넓은 폐가 생겼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역으로, 물속에만 다니던 물고기들이, 하늘을 보면서 '아, 저렇게 자유롭게 나는 새들이 부럽다'
날고 싶어서 물 위를 박차오르며 계속 뛰어올랐지만 다시 떨어지고 그러다가 어떤 새는 육지로 튀어나왔어요. 바로 일식당으로 팔려갔죠.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하늘을 날고자 하는 새들은 계속해서 물 위를 튀어오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오른쪽 날개가 펼쳐 나가기 시작한 거예요.
끊임없이 날고자 하는 그 물고기의 간절함에 응답함으로 몸통 좌우로 날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이'라는 건 그렇게 일어나야 되는 건 아니겠습니까?
육지의 생물과 물속의 생물도 마찬가지고 종류와 종류 간에 변이가 일어날 만한 상황과 환경이 왜 필요하냐 이거죠.
물고기는 원래 물속에 살도록 창조되었고 새들은 뛰어다니는 게 아니라 하늘을 날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날개로 다니는데 하늘 나는 새가 힘 있게 달리는 사자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달리고 싶다' 그래서 그 새다리로 그러다가 다리가 부러져버린 거예요.
'아니야 달릴 수 있어' 계속해서 새다리를 가지고 달리고 싶어서 달리다가 결국은 다리가 굵어지고 굵어져서 달릴 수 있는 새가 나왔다... 이런 '변이'의 이유가 없는 거예요.
물속에 살아도 충분하고, 하늘을 날아도 충분한 그러한 동물들이 왜 변이를 해야만 하냐고요? 라고 질문할 때는, 진화론이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가장 심각한 거는 '우리의 조상이 원숭이였다'는 거죠.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면서, 저는 유심히 꼬리를 봅니다. '꼬리가 짧아지고 있나 (진화가 일어나고 있나?)'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원숭이의 유전자가 어떻고.. DNA가 어떻고 그랬더니 결국은 뭐 인간과 가장 흡사한 개체이다... 여러분 개도 해부하면 인간의 신체 조직하고 비슷해요.
과거에 해부학이 없었을 때는, 인체의 해부를 공부할 때 개를 해부해서 공부했다고 그러잖아요.
그럼 우리도, 사람이 개로 바뀌는 겁니까? 그렇게 '오랜 시간(진화론의 주장)'이라는 뒤에 숨어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변이가 일어나서 이 다양한 세상이 존재했다고 믿는 것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종류대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 그 싸움이에요.
아무리 과학의 발전해도, 이 우주에 존재하는 만물의 신비는 다 알 수가 없어요. 발견할 뿐이고 깨달아 갈 뿐이에요. 그 기원은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을 질서 있게 그리고 설계대로 조화 있게 창조하신 분이 있고 이 만물은 그분의 흔적이라는 것, 무한한 우주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흔적이에요.
하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흔적이라는 것, 모든 것이 하나님의 흔적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열등한 것을 고등한 것으로 진화한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처음부터 만물이 조화 있게.. 열등한 것은 열등한 종류대로 고등한 존재는 고등한 존재로 단순한 존재는 단순한 존재로 복잡한 존재는 복잡한 존재로
그리고 각기 그 종류대로 물고기는 물고기답게 새는 새답게 창조하셨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창조를 믿고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참 아름다워라'를 우리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맺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