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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서 행하신 일 1

LNCK 2023. 6. 14. 16:57

고향에서 행하신 일 1 [마가복음16] - - YouTube

◈고향에서 행하신 일 1            막6:1~13            

막6:1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서 고향으로 가시니 제자들도 따르니라' 

위 구절에 보면, 예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예수께서 고향으로 가셔서 행하신 일들이 막6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부터 두 번(16강, 17강)에 걸쳐서 6장 말씀을 통해서 
특별히 고향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려고 합니다. 
'고향'이라는 단어는 좀 특별한 애정이 있는 곳이죠. 
누구에게든지 '고향' 그러면 특별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 그러면.. 아주 친밀한 사람들이고 
또 그래서 가장 좋은 것들을 그 사람들한테 주고 싶고.. 
뭐 하나라도 좀 더 해주고 싶고 그런 곳이 고향 아닙니까? 

요즘은 다 도시화가 되면서, '고향'이라는 개념이 많이 흐려지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지에 나와있다가 고향 사람 만나면 
그냥 조금이라도 더 잘 해 주고 싶죠. 일반 사람들에 비해서.

본문 막6장에 보면, 예수께서 고향에서 행하셨던 일들이 쭉 기록되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6장에 기록된 일들은 
'예수님의 애정이 담긴 어떤 일들'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래서 고향 사람들에게 하셨던 일들은 
오늘날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예수께서 가장 행하시고 싶은 일이기도 할 겁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당신의 자녀들, 백성들에게 
특별한 애정과, 특별한 사랑이 있으시기에 
가장 하시고 싶은 일들을 하시고 싶을 텐데 
그렇다면 그 일들은 무엇일까요? 

막6장에 기록되어 있는 이 일들이 
예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행하시고 싶어 하시고 
또 행하시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본문 막6장에서, 약 5가지 일들을 행하신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처음 두 가지를 오늘 살펴보고   *16강
나머지 세 가지는 다음 주에 계속 이어서 살펴봅니다. *17강

◑1. 고향에서 예수께서 첫 번째 하신 일은 <가르치심>

막6: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많은 사람이 듣고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이 어디서 이런 것을 얻었느냐 
이 사람이 받은 지혜와 그 손으로 이루어지는 이런 권능이 어찌 됨이냐' 

예수께서 고향에서 가장 먼저 하셨던 건 뭐냐면 가르치시는 거였어요. 
예수님께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하신 것은 뭐였냐면, 
말씀을 가르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인이 된다고 했을 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은 '말씀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께로부터 듣고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예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질서를 부여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에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래서 죄의 본질은 뭐냐면 
하나님, 창조주로부터 듣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죄의 시작이에요. 

창조자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이 땅의 질서, 삶의 방식들이 있는데 
그걸 듣기 싫다는 거에요. 

그냥 내가 생각하는 방식,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고 싶다고 하는 것이 
죄의 시작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시고 싶었던 일, 
고향에 가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시고 싶었던 일은 뭐냐면 
'진리를 가르치시는' 거였어요.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 해야 될 첫 번째 일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인 줄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가르치심에 보면, 6장에서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6:2절에 보면, 두 가지 특징은 뭐였냐면 
-지혜가 있고 
-권능이 있었다..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들이 '그 지혜와 권능으로 인해서 놀랐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이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였습니다. 

인간은 과연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야 되는지.. 그 지혜, 
또 남편은 아내를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창조주께서 정하신 질서, 지혜 

또 아내는 남편에게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순종해야 되는지.. 하는 지혜 
자녀는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하는 지혜 
부모님은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사람은 권위 아래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윗사람은 어떻게 대해야 되고, 아랫사람은 어떻게 품어야 되는지.. 
이런 창조주 하나님(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십니다.

권위를 무시하는 반골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처리하시는지.. 
또한 인간의 죄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인간의 영원한 삶과 미래는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이 지혜가 예수님의 가르치심 안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지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창조주의 그 지혜,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지혜가 있으십니까? 
그런데 어떤 자연인도 태어나서부터 이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는 자연인은 없어요. 

우리는 우리를 만드시고 창조하신 분으로부터, 이 지혜를 들어야 해요. 
'듣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 지혜가 있으십니까?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부터,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분의 지혜를 배워야 됩니다. 

▲또한 뿐만 아니라 지혜와 더불어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능"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권능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 그 지혜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을 때 
거기에 뭔가가 일어나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권능이라고 하는 것은 
그 지혜의 말씀을 따르면 
그 따르는 사람에게는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능력이 있다는 거예요. 

이것이 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과, 세상 가르침의 근본적인 차이였습니다. 
세상의 가르침은 단순히 지식을 주는 거예요. 

그 지식을 안다고 해서, 우리 안에 어떤 권능이 경험 되어지거나 
권능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다른데 
이분의 가르침은, 그 가르침을 믿고 따라가는 자들에게 
뭔가 역사하는 능력(권세, 권능)이 있어요. 참 신기한 능력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이 그랬듯이, 제 인생도 마찬가지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제가 지혜를 가지고 태어난 것도 아니고요. 
태어날 때부터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질서인지'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전혀 모르고 태어났고, 저도 그 가운데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이 '지혜 없음'으로 말미암아 
즉 창조자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모르고 삶으로 말미암아,

제 삶 가운데도 많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문제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고, 낙심도 있었고, 욕심도 있었고, 
또 사람들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되는지 모르니까 (그런 지혜가 없으니까)
친구들 사이에, 사람들 사이에, 많은 문제들이 있었고 
그런 문제들이 제 인생 가운데 여러 상처들도 주고, 또 고통스럽게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런 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아무도 제게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다 라는 거에요. 

우리 삶에 있어서 진짜로 중요한 진리들은 
다 그냥 어깨너머로 대충 배운 거에요. 

'우리 엄마 아빠를 보니까 저렇게 하네' 
'친구들이 보니까 이렇게 하네' 
'선생님은 이렇게 하시네' 

특별히 요즘은 TV, 인터넷, 유튜브 등을 보고 배웁니다.
이 미디어 이 미디어를 보고 그냥 배우는 거예요. 

'아 결혼해서 저렇게 사는 거구나, 아 자녀들은 저렇게 키우는 거구나'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살고 그렇게 자녀를 키우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인생이 망해요. 

그렇게 미디어 보고 배워서 자녀 키우고, 그렇게 부부관계 맺어 보십시오 
인생이 고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은 그렇게 창조하신 게 아니거든요. 

근데 저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도 그렇고 
배우지 말아야 될 것으로부터 배웁니다. *과거에 그랬죠.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거예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거예요.
어떻게 관계 맺는 것이 옳은 것인지 자기도 몰라요.

또 부모 자녀의 관계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지,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전혀 몰라요. 
전혀 모르면서, 그냥 모르는 자가, 또 다른 모르는 자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죠.

뭐 이러다. 보니까 여러분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그 삶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제 삶에도 
많은 관계적인 문제들, 많은 고통의 문제들, 참 많은 문제들이 있었어요.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20살 되던 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거듭나게 됐습니다. 
참 감사한 게 뭐냐면, 제게 복음을 전했던 그분들이 
제가 예수 믿고 나서 제일 먼저 저를 지도한 것이, 성경 말씀을 읽힌 거였어요. 
저는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성경 말씀을 읽힌 거였어요. 
그래서 매주 한 번씩 만나가지고서, '성경 어디까지 읽고 오자' 
그래서 성경 읽고, 또 읽고, 참 많이 읽혔어요. 

그래서 제가 대학 다닐 동안 정말 여러 번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정말 여러 번 성경을 통독하고, 묵상하고, 읽고 하는 것이.. 그때 시작이 됐어요. 
35년 전에, 

참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게, 이 말씀을 읽기 시작하면서 
제 안에 놀라운 지혜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아,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었구나' 
'아, 사람을 만날 때 이런 진심을 가지고 만나야 되는구나' 
'아, 사람은 뭔가 기대하는 존재가 아니고, 사랑해야 되는 존재구나' 

'정말 가치 있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희생하고 섬기는 것이구나' 
'정말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은, 십자가 지는 삶이구나!' 

이런 말씀의 지혜가 제 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났냐면, 제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권능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게 됐어요. 

저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계신 수많은 사람들의 동일한 고백일 거라고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동일하게 고백하고 있는 내용 아닙니까? 

말씀에는 능력이 있다고.. 
그 말씀을 취하고, 그렇게 따라가는 사람들에게는 
삶이 새롭게 되는 권능이 있다고.. 

저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도 
말씀은 동일한 권능을 가지고 일할 것입니다. 
동일한 권능을 가지고 일할 것입니다. 

이 권능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도 동일하게 임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자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3절입니다. 
3절에 보면 참 이상한 반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3절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 

3절에 정말 이상한 반응은 뭐냐면, 
이 지혜와 권능이 있는 말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다는 거예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거예요. 

왜 배척했을까요? 이유가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이 사람은 야고보와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이 사람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느냐?' 
이 말을 하면서 예수를 배척했다는 거예요. 무슨 말입니까? 

'내가 예수를 잘 안다'는 거예요. 어릴 적부터 봐왔으니까, 그를 잘 안다는 거죠.

△오늘날에도
'내가 예수를 알아' 
'기독교? 내가 알아! 기독교는 이런 거고 저런 거고' 
교회? 교회는 내가 잘 알아. 교회는 이런 거고 저런 거고' 

뇌피셜들.. 요즘 중딩 고딩들이 하는 말입니다.
*뇌피셜 : '뇌'와 '오피셜(Official, 공식 입장)'의 합성어로,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공식적으로 검증된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주장.

내가 다 안다는 거죠.
'저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 예수가 아니야?' 

여러분 정말 아십니까?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그렇게 잘 아는 여러분의 삶은 어떠십니까? 
그렇게 잘 아시는 여러분의 삶은 안녕하십니까? 자녀와의 관계는 어떠세요? 
남편과는? 아내와는? 직장에서는? 

아니 조금 더 미래는? 아니 미래까지 갈 것 없어요. 
내일 무슨 일어날지 아세요? 미래는 죽음 이유는? 
뭐 죽음까지 갈 것 없고, 언젠가 여러분이 죽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여러분, 대책이 있으십니까? 감당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잘 아신다면서요? 잘 아신다면, 
그 아는 것이 정말 여러분의 삶을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이 인간의 교만이, 우리 인생을 무너뜨리고 비참하게 만들어요. 

▲제게 작년에 있었던 간증 하나 할게요. 
제가 작년에 건강검진을 했는데, 폐 엑스레이를 찍었어요. 
결과를 보니, 폐에 이상한 게 있다는 거예요. 
폐에 이상한 게 찍힌다고, 빨리 큰 병원을 가보시는 게 좋겠다고... 

그래서 서울대학병원을 갔습니다. 
서울대학병원에 가서 그 사진을 가지고 의사한테 보여주었더니 
의사의 표정이 좋지 않아요. 

이렇게 사진을 보더니 '이거 아무래도 날짜를 잡아야겠습니다.' 
외과 의사와 수술 날짜를 잡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안 좋은 겁니까?' 그랬더니 
'수술해 봐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보니까 
이게 결국엔 '암 같아 보인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외과와 만나는 날을 예약을 하고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나오는데...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잖아요. 

저는 이제껏 한 번도 제 몸에 칼을 대 본 적이 없거든요. 
큰 수술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외과 의사랑 날짜를 잡자는 거예요. 

제가 집에 와서 다 이렇게 서치를 해봤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까 
그 엑스레이가 안 좋게 시키멓게 찍혔는데 
그 사이즈가 얼마라고 의사가 얘기해줬거든요. 

근데 그 사이즈를 이렇게 찾아보니까, 그 사이즈면 초기는 아니에요. 
그 사이즈면 굉장히 불안한 사이즈로 이미 큰 거예요. 

그러면 굉장히 이게 가슴 철렁해야 되잖아요. 
근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는데 
너무 완벽한 평안이 있는 거예요. 너무 완벽한...

이건 뭐 설명할 수가 없는데, 완전한 평강과 기쁨이었어요. 
평안이 그냥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를 쫙 덮는 거예요. 
걱정은, 정말 1도 안 되고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어떡해요? 어떡해요?' 그러는데 
저는 뭐 걱정이 1도 안 되고 
'아니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최악의 상황이 뭘까?' 생각해 보니, 
최악의 상황은 천국이지 뭐에요?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도 천국인데.. 할렐루야! 이것보다 어떻게 더 좋아요? 
제 안에 정말 걱정이 하나도 안 되고요, 완벽한 평강과 완벽한 평화가 
위로부터 쫙 저를 덮는데... 제가 중요한 걸 하나 알게 됐어요. 

'아, 적어도 내가 죽음에 대해서는 대책이 있구나...' 
이 대책이 여러분, 어디서부터 온 건지 아세요? 

예수님의 가르치심에서부터 온 거에요. 
그 말씀을 내가 취했을 때 
그리고 그 말씀이 인도해 왔던 제 30년 이상의 삶, 그 경험에 비춰봤을 때 
그 말씀이 제 인생 가운데 행했던 권능들을 봤을 때 

죽음이라 찾아와도..  그 다음에는 기쁨과 천국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니까,
제 안에 '내가 그것을 맞이할 준비가 다 돼 있는 거구나!' 그걸 알려주셨어요. 

이제 나중에 이제 수술 날짜 구체적으로 잡기 전에 
CT 다시 찍어야 된다고 해서
그래서 CT 찍으러 갔더니, 별거 없다고 그냥 가라 그래서 집에 왔습니다. 

어디서 뭐가 어떻게 찍힌 건지 나도 몰라요. 
그런데 CT 찍어보니까, 아무것도 안 잡힌다고.. 그냥 가시라고.. 

하나님께서 아마 저에게 가르쳐주시고 싶으신 게 있으셔서 
그 기간을 지나게 하셨던 것 같아요. 

아마 한 달 이상을 '그런 수술을 해야 된다'라는 그 상황 가운데 있었는데 
하여튼 그 기간 동안은요,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특별한 평강이 있었던 기간이에요. 

평안하고.. 아~무 염려도 없고.. 
'야 이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하는 게 이런 거구나' 

이 권능이 없이 과연,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죽는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저도 죽고, 여러분도 죽고.. 다 한 번은 죽어요. 
한 번은 반드시 맞닥뜨려야 되는 순간이 오는데 
여러분은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그 순간에 대한 대책은 있으십니까? 

없으면 예수께 배워야 되는 거예요. 
'내가 안다'라는 생각들을 내려놓고 
예수님이 말씀을 배워야 되는 거예요.

▲4~5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자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은 '오, 저거 무슨 가르침이지? 권세가 있고 지혜가 있네!' 
하면서 듣고 따랐어요. 

그런데 아는 사람들.. 고향 사람들, 친척들 
'내가 알아, 저 사람 어떤 사람인 줄 알아, 
목수야, 마리아의 아들이야, 야고보와 시몬의 형제야, 내가 알아'
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다는 거예요. 
배척했다는 거예요. 

혹시 여러분, 우리 안에도 '아는' 사람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알아요. 

예수에 대해서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 
기독교에 대해서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 
교회에 대해서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엄마 뱃속에서부터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고향과, 자기 친척과 집안 사람들이, 혹시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까? 

너무 많이 알고, 빠삭하게 알아요. 그런데 삶에 아무 권능은 없어요. 
그럼 여러분, 예수님을 아는 게 무슨 소용이에요? 
어차피 삶에 아무 권능도 없고 대책도 없는데... 

6절 '그들이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이에 모든 촌에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더라'

예수께서 이상하게 생각하셨대요. '이들이 왜 안 믿지?' 

여러분, 우리는 이런 미련한 사람들이 되지 맙시다. 

◑2. 두 번째로 고향에서 하신 두 번째 일은 "제자들을 파송" 하셨어요

막6:7~10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시고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배낭이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어디서든지 
누구의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병행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눅9:1~2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예수님이 고향에서 두 번째로 하신 일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파송하시는 거예요. 
첫째 일은, 가르치시고 
두 번째 일은, 파송하셨어요. 

파송하셨는데 무엇을 위해서 파송하셨냐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자들을 고치라'고 파송하셨어요. 

예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을 다 전인적으로 고치셨어요. 
그러니까 파괴되고 고통 가운데 처한 삶을 회복시켜 주신다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하셨던 일들은 파송하신 것인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일을 위해서 
사람들을 파송하셨다는 거죠. 

그리고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병을 고칠 능력과 귀신을 제어할 권위를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눅9:1~2

그 우리가 말이에요. 우리 삶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삶에 대해서 몰라요. 인생에 대해서 몰라요. 지혜가 없어요. 
그래서 예수께 말씀을 배워야 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따라가기로 한 사람들에게도 
역시 해결되지 않는 '안다'는 병이 있어요. 

두 번째 '안다'는 병은 뭐냐면 '내가 누군지에 대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거죠.
'나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이런 존재야!' 

'나는 내가 알아!' 이 생각 혹시 여러분 안에도 있지 않으세요? 

'아휴 그건 뭐 선교사님들이 하는 일이고 
아휴 그건 뭐 성령충만한 분들이나 하는 거지 
나하고는 상관없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든 자들을 내가 고쳐? 
어휴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나는 못해!' 

이게 얼핏 보기엔 겸손 같아 보이는데요. 
이거 뿌리에 들어가 보면 겸손이 아니고 교만인 거 아십니까? 
무슨 교만? '나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 하는 교만이죠.

예수께서 뭐라 그러셨냐면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병 고칠 수 있는 권세를 주셨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아유, 나는 내가 알아요. 나는 못 해요!' 여러분 엄청난 교만 아닙니까? 

우리를 만드신 분 앞에서 말이에요. '나는 내가 알아요' 이러고 있는 거란 말이죠.

△아이폰을 제가 지금 쓰고 있습니다. 
지금은 스티브 잡스가 죽었지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들었죠. 

근데 스티브 잡스가 와가지고서, 만약에 아이폰에 대한 설명을 합니다. 
'아이폰은 이런 겁니다'

근데 제가 그 앞에서 '에이, 그런 말하지 말아요. 
이게 내 휴대폰인데, 내가 잘 알죠!' 
그러면 여러분 얼마나 이상한 얘기에요? 

우리를 만드신 분이 우리에 대해서 '너는 이런 존재야' 라고 말씀하시는데 
'너는 이런 건 할 수 있어, 내가 그렇게 하라고 너에게 권위와 권능을 줬어!' 

근데 그 앞에서 우리가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못해요. 나는 내가 잘 알아요' 이게 여러분, 겸손일까요, 교만일까요? 
교만이에요. 

말씀을 무시하고 '나는 내가 안다'라고 하는 병이 
우리 인생을 꽉 사로잡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내가 스스로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도록 
그 존재에 걸맞는 삶을 살지 못하도록, 우리를 꽉 옥죄고 있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에게, 자유와 해방의 역사가 있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 잘못된 거짓에 꽉 묶여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그래서 '나는 못해요, 난 상관없어요. 아니요, 아니요' 하는 분들은
성경 말씀,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올바로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이 땅에 고통받는 앓는 자들을 치유할 수 있는 
그런 권능과 권위를 주셨어요. 저와 여러분은 그런 존재예요. 

안 믿어지시고 안 느껴지신다고요? 여러분의 느낌을 신뢰하지 마세요.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예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잖아요. 
이것이 진리예요. 이것을 여러분 믿으셔야 돼요. 

그것을 믿었을 때 그 가르치심, 그 말씀의 놀라운 권능이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흘러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또다른 병행 구절을 보겠습니다.
마10:12~15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병을 고치고 또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뿐만이 아니라 
어떤 권능을 우리에게 주셨냐면, "축복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어떤 존재냐면, 축복권이 있어요. 
누군가를 축복할 수 있는 권위가 있다는 거예요. 

반대로 저주할 수 있는 권도 있어요. 저주권도 있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어떤 존재냐면 
사람을 축복할 수 있는 권위를 하나님께서 제자인 우리에게 위임해 주셨어요. 

우리가 그 축복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눠줄 수 있는 존재인데 
만약에 당연히 나눠줘야 될 축복을, 우리가 홀드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사람들이 축복을 못 누리는 거죠. 

그래서 저와 여러분에겐,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권세를 주셨냐면 
축복하고/ 저주할 수 있는 권세를 주셨어요. 마치 예수님 같은 권세이죠.

저와 여러분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중하고 특별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그렇게 만드셨고, 선택하셨고, 세상에 보내셨어요.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 잘 안다'라고 생각하는 교만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 지혜로 취합시다. 

내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든지 
내가 과거에 어떤 실패의 경험들을 가지고 있든지 
그거 다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이 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를 붙잡으세요. 
그래야 우리 삶 가운데 나에게도 축복이 누려질 수 있고요. 
나에게도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고요... 

▲이제 말씀을 정리합시다. 
창12:3절에 보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죠.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 아브라함의 놀라운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는 축복입니다. 
이 아브라함의 놀라운 권위가 저와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는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진리를 확장하고, 사람들을 치유하는 일들을 행하게 하실거래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실거래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그 말씀을 따랐습니다. 
나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께서 말씀하신 나를 진짜로 받아들였어요. 
그랬더니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막6:12~13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

진짜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거예요. 

내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내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말씀을 단순하게 믿고 따라갔더니 
예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축복들이 나를 통해서도 흘러가더라는 거예요.
그 일이 진짜로 일어나더라는 거에요. 
이게 여러분 말씀의 능력인 줄 믿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고향에 가셔서 정말 사랑하는 그 고향 사람들에게 
-첫 번째로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 
-두 번째로는 그들을 파송하셨어요. 

왜?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 아셨거든요. 
세상 속으로 파송하셨어요. 이들이 어떤 존재인 줄 알셨거든요. 
이들을 통해서 놀라운 축복들이 흘러가고 
이들을 통해서 치유가 일어나고 회복이 일어날 것을 아셨거든요. 
그래서 보내셨어요. 

그렇게 여러분,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상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고 소망입니다. 

교회야말로 세상을 회복하고 해방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물론 세상은 이걸 몰라요. 이 지혜의 말씀을 세상은 배척합니다. 

▲지난 한 주 동안 제가 참 마음에 볶였어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분노가 막 올라오는 것들을 보면서 
제 안의 마음이 참 여러 가지로 복잡하고 또 마음이 힘든 그런 시간들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자기들이 교회에 대해서 너무 잘 안 대요. 
'교회는 이런 거야, 교회가 사업하는 곳이야, 
교회가 왜 예배를 강행하는 줄 알아? 사람 안 나오면 돈이 안 돼서 그런 거야' 

교회가 그동안 잘못해왔던 것들이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비난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것들은 억울한 것도 참 많아요. 

근데 제가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안에 참 위로가 됐던 게 뭐냐면 
예수님도 배척당했더라고요. 누구한테 배척당했냐면 
자기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 고향 사람들에 의해서 
예수님도 배척당하셨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마음을 편안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예수님도 당하셨는데 우리가 어떡하겠어요?' 

세상이 우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는 것은 
그냥 너무 신경쓰지 맙시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있어요. 
'예수님께서 우리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을 더욱 알아갔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 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