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면, 오늘 본문에 나와요. 본문에 엄청나게 그야말로 하나님의 자기 자랑이 나타납니다.
사40:18 '너희들이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 사40:12~13 '내가 천지를 지을 때 하늘을 펴고, 땅을 짓고 바닷물을 만들고 할 때 누가 나를 가르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한 사람이 있느냐?' 한번 읽어보세요, 하나님의 자기 자랑이 엄청납니다.
그런데 그 자기 자랑의 내용이 다 뭐냐면,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거에요. 하나님은 전지하신 분이시고, 전능하신 분이시고, 무소부재하신 분이시고, 말씀만으로 무에서 천지만물을 이끌어 내신 분이시고, 역사의 유일한 절대 주권자 되시고, 생사화복의 주관자 되심 이라는 등등의 속성들을 막 본문에 보면 쏟아 놓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의 위대하고 무한한 속성들을 하나님이 이사야의 입을 통해서 자랑하듯이 막 늘어 놓으시는 이 말씀이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냐면
1백 여년 이후에 이제 바벨론에 의해서 남유다가 멸망할 것, 그리고 포로로 잡혀갔다가 칠십 년만에 돌아오게 되는 것
그러니까 지금 이사야 당대로부터 160 여년은 지나서 있어야 될 일을 내다보면서 예언적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자랑하듯이 늘어놓고 계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포로에서 귀환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게 참 기가 막힐 노릇아닙니까. 그렇게 위대하신 속성을 갖고 계셔서 전지하시고, 전능하시고, 당할 자가 없으시고 열방, 즉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나라들을 통 속에 한 방울 물처럼 여기시는 그런 분이 :15
아니 왜 이 이 선민의 나라를, 아무리 못돼먹었다고 해도, 다른 나라도 못되먹은 건 마찬가지고 바벨론도 못되먹은 건 마찬가지인데
바벨론을 통해서 망하게 하시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셨다가, 이제 포로에서 해방돼서 나오게 될 것을 예상하시면서, 돌아오게 될 그 사실을, 이사야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그렇게 잡혀갔다 돌아오는 자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을 이렇게 자랑하시느냐? 이겁니다.
그러면 화나잖아요. '그렇게 위대한 속성이 있는데, 나를 그렇게 내팽기셨단 말인가?' 이런 불평이 안 나오게 생겼습니까?
도대체 무슨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일까요? 왜 갑자기 하나님은 160년 정도가 지나야 있어야 될 포로귀환 얘기를 하시면서 당신이 속성을 이렇게 막 자기 자랑처럼 늘어놓으시는 것일까요?
남유다 사람들에게, 아직도 망하려면 1백년이 넘게 남았어요. 이사야가 히스기아 왕 때 활동한 선지자니까요.
그러면 히스기야 시대 사람들에게, 지금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160년 뒤에 포로 귀환이 일어나는데, 바벨론 포로사건은, 선민들의 영적인 상태의, 비유적 사건입니다.
바벨론 포로가 아니더라도 선민들은, 하나님이 보실 때 가슴을 치시고 아파하실 만큼 매일 포로로 살고 있는 거예요. 바벨론 포로가 아니라 세상에 포로로!
근데 세상에 포로 된 자로서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과는 무관한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현 세상에 포로가 되어 살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니까 바벨론 포로사건을 일으키셔서, 드러내 보여주신 겁니다.
겉모습으로 알 수 있게끔 드러내 보여주시느라고 바벨론 포로사건을 만드신 거예요. 이스라엘이 세상에 포로 된 상태를 모르고 살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바벨론 포로사건은 160년 뒤에 이제 그들이 돌아오는 일이 일어나게 되지만
그러한 바벨론 포로사건으로 비유될 수 있는 '세상에 포로 됨'은 이사야 선지자 때나, 또 바벨론 포로사건이 진짜 일어났을 때나, 예수님이 오셨을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거에요.
바벨론 포로로 비유될 수 있을 만큼 지금 2018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여전히 세상에 포로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면 세상에 포로가 되어 있던 자들을 해방시키는 그 사건을 염두에 두시고, 왜 하나님은, 당신의 속성을 이렇게 막 얘기하시는 거냐고요?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에 포로 된 것과, 당신의 속성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어차피 당신의 위대하신 속성, 여러 열방을 통 속에 물 한 방울처럼 여기시고 모든 정말 위대한 사람이든, 뭐 벼슬아치든, 왕이든, 그 모든 사람들을 풀의 꽃처럼.. 사막의 바람이 한번 불기만 하면 다 시들어 죽는 풀의 꽃처럼 여기시는 그런 분이
당신이 속성을 얘기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어차피 포로로 잡혀가게 할 텐데...
하나님의 위대한 속성, 전능하시고, 전지하시고, 사랑이 많으시고 그런데 어떻게 내 삶의 변화는 정말 그렇게 그렇게 인색하시냐.. 이거에요.
요즘 내가 돈이 없으면, 조금만 그 위대하신 능력의 뭐 1억분의 1만 활용을 하셔도 내가 이렇게 돈 때문에 쪼들리지는 않잖아요.
내가 육체의 병이 걸렸어요. 뭐 의사들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처음 보는 병이고, 정말 의사가 손도 쓸 수 없을 만큼 발전된 말기 암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그 창조적인 능력의 1억분의 1이라도, 1천억분의 1이라도 활용해 주시면, 그까짓 병 안 낫겠습니까?
근데 뭐가 그렇게 인색하신지 몰라요. 근데 그렇게 인색하신 분이, 뭐가 자기 자랑을 이렇게 막 늘어놓으시는지요? 본문 사40장에서.
나는 전능하고, 능력이 많고, 무한하고, 말씀만으로 천지를 다 만들어 냈고 그 천지를 만들 때에 필요한 그런 지혜는, 누구한테 빌려온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의 지혜로 한 것이고...
열방 이라고 대단한 나라가 있는 것 같아도 지금 미국과 중국과 일본과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어도 그 나라들은 물통에 있는 물 한 방울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이렇게 자랑하면 뭐 해요?
하나님이 전혀 그 능력을 1억분의 1도 활용을 안 하시고 내 삶의 변화를 갖고 가져다 주시지 않으시는데...
그런데 왜 하나님은 자기 속성을 말하시는 걸까요? 왜 세상에 포로 된 자들이 지금 겨우 풀려나고 있는 상황에서 당신의 속성을 자랑하실까요?
▲(여기서부터 설교의 반전) 그 답은, 다시는 세상에 포로 되지 말고 살라는 겁니다.
근데 우리는, 세상에서 내 삶의 여건을 변화시켜 주기를 바라잖아요. 내 삶의 여건과 형편이 나아져야, 행복하다고 느끼잖아요.
그럼 여전히 내가 세상에 포로된 거라는 증거예요.
세상에 프로가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세상을 이겨야 돼요.
세상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의 가치로 가진 것이 없어도 하박국 선지자가 6번 반복으로 '없음'을 얘기하지 않습니까?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 소출이 없고, 밭에 뭐 곡식이 없고, 외양간에서 우양이 없고... 6번이나 없다고 얘기를 해요.
그렇게 다 없어도.. 그러니까 세상에서 좋다고 여기는 것들은, 하박국에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래도 여호와 하나님만 있으면 나는 기쁘다!' 이게 세상을 이기는 거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포로가 되지 않는 거고요.
내가 '포도나무에 소출이 많아야 행복할 텐데' 하고 전전긍긍하고 걱정 근심하고 있으면, 이 세상에 포로된 거라는 거에요.
'내 자식이 잘돼야 행복할 텐데' .. 이게 세상에 포로된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의 조건, 어느 삶의 영역이든지 간에 그 조건과 상황이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나는 무조건 하나님으로 행복하다' .. 이게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의 좋은 것들을 다 갖기를 원하시는게 아니에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우려면, 뭐가 필요합니까? 내공이 필요한 거예요.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은 절대로 당신의 능력을 가지고, 당신의 속성들을 활용하셔서 내 삶의 외적 변화를 개선, 변화시켜 주시는 일에 아주 인색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속성을, 계속 자랑하듯이 본문에 늘어놓으시는 이유는 우리더러 '내공을 기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거에요. '나의 위대한 속성들이, 너의 삶의 형편을 변화시키지는 않아, 아직은. 왜냐? 삶의 형편을 변화시켜서, 너희가 그것으로 좋아하고. 행복해 하면 너희는 여전히 세상에 종속되고, 세상에 포로가 되어서 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러나 내가 나의 속성을 너에게 자랑하는 이유는, 내 속성으로 너희 삶의 여건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지만
내 속성이 너희 내공이 됨으로써 세상 형편이 어떻든 간에, 세상 여건이 어떻든 간에, 네가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겠다...' 라는 것이 하나님이 자기 속성을 자랑하듯이 늘어 놓으시는 이유라는 겁니다.
△예를 들면, 사40:4절에 보면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하나님이 오시면.. 하나님이 내게 오실 때, 하나님의 어떠하심,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과, 역사의 주관자 되심과 전능하신 그 존재가 내게로 올 때 그 하나님의 속성에 의해서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골짜기가 돋워져서, 깊은 골이 없어져버려요. 산의 높이가 낮아져 편평하게 되어버려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그 속성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하나님이 나한테 오시면 그 속성에 근거해서 내게 나타나는 내공은 뭐냐?
인간 세상에서 낮아지는 것, 사람들이 나를 낮은 자라고 여기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고,
인간 세상에서 높아지는 것이, 하나도 우러러 보이지도 않고.. 이게 내공 이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 마음에 내공이 생기는데 나도 낮아진 것이 두렵지 않고, 높아지기를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낮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내가 낮게 보지도 않고, 세상 사람들이 높다고 평가하는 사람을.. 내가 높게 보지도 않는 거에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보여주신 태도, 베드로가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보여주었던 태도, 사도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
이거는 예의를 벗어나지는 않아요. 무례하지 않아요. 그러나 그들이 하나도 대단한 존재로 마음에 느껴지지 않아요. 이게 '내공' 이라는 겁니다.
△근데 예수님이, 당신의 생사여탈권을 쥔 빌라도 총독을 가볍게 여기시면서 창기와 세리는.. 그 당시 유대사람들은, 그들을 사람으로 취급 안했어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이 십자가에서 죽으면서 이루실 생명의 역사를 전달해 주시고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들으실 정도로 그들을 포용하십니다. 이게 내공 이라는 거에요.
△또 사40:8절에 '우리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하나님의 영원하심, 그 영원하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육체로 사는 기간 동안이라도, 좀 뭐 1백년, 120년, 2백년을 살면서 좀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 되지 않냐? ... 이거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아요.
서른세 살에 죽고, 오십 이 안 돼서 죽고 다 그래도 이 영원하신 하나님이 내 곁에 오시면, 그 하나님의 속성이 내게 어떤 내공을 뿜어내게 하느냐?
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일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내일 아침이면 헤롯대왕이 끌어내서 목을 자를 겁니다. 잠이 와요? 내일 아침에 목이 잘릴 건데 여러분 같으면 잠이 오겠어요?
근데 천사들이 와서 옆구리를 차고 차고.. 그래서야 겨우 일어났어요. 너무 편안한 거에요. 내일 처형당할 사람이!
천사가 발로 차서 깨워서 나가는데, 감옥 문을 다 나와서 길거리에 나올 때까지도 그는 비몽사몽 간에 자고 있었어요.
길거리에 나와서야 '아이고 내가 깼네' 천사가 발로 차가지고 깨워서 데리고나가는 동안에 꿈인 줄 알았다고요. '내일 아침에 목이 잘릴 건데...' 그래도 꿈꾸며 잡니다. 이게 내공 이라는 겁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그 영원하신 속성, 그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때 삶의 변화가 특별히 달라지는 거 없어요.
다른 사람 눈에 볼 때는 아무 것도 달라지는 거 없어도 내 마음에 '내일 죽는다'고 하는 것이, 잠을 못 자게 할 이유가 아닌 거에요. 이게 내공 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보세요. 소련이 하루 아침에 없어져 버렸어요. 그 대단한 소련이! 지금 중국 뭐 미국이 대단한 나라 같고 일본이 까불고, 러시아가 또 펄떡거리고 있지만 그런 나라들도 하루아침에 없앨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나라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 큰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기대 기대를 갖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은, 선민들의 내공이에요. 우리가 내일 죽는다고 그래도 잠을 콜콜 잘 수 있는 그런 내공 있는 자가 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랬잖아요. '열방은 물통 안에 들어있는 한 방울의 물과 같다'
15절에 '보라 그에게는 열방이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리니'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 그 옛날에는 앗수르 와 바벨론이 그랬어요. 그러니까 앗수르와 바벨론을 어떻게 생각하기를 바랐던 겁니까? 이스라엘이 그들을 통 속의 한 방울 물, 저울에 올려진 작은 티끌 같이 여기길 바랐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막 이 남왕국 유다가 칭기즈칸의 나라 처럼 막 커지고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 조그마한 나라인데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심으로써 한 사람 한 사람이, 앗수르가 쳐들어온다 그래도 '물통에 물 한 방울이 까불고 있구나' 이렇게 여기길, 하나님은 원하시는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의 면적을 크게 하고, 무슨 무기가 막 철기 무기로 무장하고, 군사가 막 백만 이백만 되는 그런 강한 나라를 만들어 주시는 게 아니고
이거 강한 나라가 보면, 한 숨에 삼킬 것 같은데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으면서, 그 한숨에 삼킬 것 같은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까
아니 앗수르가 쳐들어온다고 그러는데도, 무슨 이 사람들은 자기 직장생활 그대로 다 하고 있는 거예요. 소풍갈 사람 소풍가고, 예정대로 다 하는 겁니다. 일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게 내공 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걸 원하시는 거예요.
나라가 막 미국의 두 배 되는 나라가 되는 것을.. 그렇게 만들어주시기를 원하는게 아니라,
미국의 두 배 되는 나라가 까불고 그래도 남유다, 하나님의 백성들 마음에 평강이 전혀 깨지지 않는 그런 사람들! 그런 백성들이 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고 계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러한 내공을, 자기 백성들이 갖기를 원하시는데 27절에 보면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
그러니까 왜 하나님은 그 많은 속성을 자랑만 하시고, 활용은 안 하셔서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으시냐는 거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너희가 여호와를 앙망하면,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이게 내공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내공을 갖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자 돈이 없어요. 건강이 안 좋아요. 자식이라고 있는 것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는 일마다 속을 썩여요. 직장에서도 잘렸습니다. 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그럼 이제 우리는 불행해야 됩니까?
신자들은 쉽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능력이 있으시다 하시더니.. 능력이 있으시다 하시더니.. 천지만물의 모든 물질을 소유하고 계시는 조물주라 하시더니.. 생사화복을 주관한다 하시더니..
나를 사랑한다 하시더니.. 나를 사랑해서 독생자까지 주셨다더니..
독생자는커녕, 독생자 가치의 1억조 분의 1만 내게 주셨더라도 내 형편이 이것보다는 나을 텐데...'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거에요. 환경을 보고, 삶의 여건을 보고 그러지 말고..
하나님이 당신의 속성을 다 내게 주시고 허락하시고 계시는 거에요. 단, 내 삶의 여건을 바꾸는 데는 쓰지 않으시고..
왜냐하면 삶의 여건을 바꾸어서 내가 세상을 좋아하면 그게 습관이 되면 끝까지, 죽을 때까지 내가 세상에 포로 된 상태를 못 벗어나고 세상을 이기는 자가 못 되니까!
그 모든 위대한 속성을 다 줄 테니까 그 속성을 근거로, 우리더러 내공을 쌓으라는 겁니다. 내공을!
그래서 조물주 되심의 속성을 내 마음으로 끌어들이면 내가 물질이 없고, 주님처럼 머리 둘 곳이 없이 살아요.
그래도 조물주 되신 분이 내 안에 들어오시고 그 조물주 되심의 속성이 나의 내공으로 변하면 나는 머리 둘것도 없어도.. 부족한 게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걸 원하고 계시는 거예요. 나를 재벌되게 하시는 일이 하나님께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이 진짜 어려워 하시면서, 기대하시는 것은 '네가 돈이 없는 지금 이 상황에서도 감사하고 기뻐하고 행복해 하느냐?'를 두고 보시는 거에요.
왜냐면 조물주 됨의 속성을 내가 너한테 주고 있으니까 그 속성에 근거해서 '제발 너희 내공을 키워라. 돈과 아무 상관없는 기쁨과 만족을 누릴 수 있는 내공을 키워라!'
▲이게 하도 안 되니까,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그래서 돈에 대한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요. 세상에 포로 된 상태를 내가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럼 십자가 바라보면서 한 가지만 해라.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라는 고백만 해라!
그러면 조물주 됨의 속성이 너에게 들어가서 너의 '내공'을 내가 만들어줄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세상에 포로 돼서 해방이 안 되는 우리 마음을 세상에 이거 안 돼 걱정, 저거 안 돼 걱정, 몸이 아파 걱정, 자식이 안 돼서 불만...
뭐든 세상에 노예된 상태, 내공 고갈 상태에서 불평불만, 걱정 근심만 하고 있는 나를
십자가에서 주님바라보면서 '내가 주님과 함께 나의 옛사람은 죽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을 끊지만 말라는 겁니다. 그거 한 가지만 하라는 거에요.
그러면 '여호와를 앙망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이 갖고 계신 모든 속성이 너의 내공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너 하나, 티끌보다 작은 사람의 마음이 이 세상 천하를 이기는 자가 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이 지구를 상전벽해 식으로 개벽시키는 것, 이건 너무 쉬운 일이고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너 한 사람이, 세상의 모든 가치가 하나도 없어도 조물주 되시는 분이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믿고 내공을 키워서 평강을 유지하고, 기쁘고 감사할 수 있다면 나는 하늘에서 춤을 출 것이다.. 라는 얘기를 오늘 본문이 해주고 계시는 겁니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하여 내공을 내뿜는 모습을 보면서 도저히 보좌에 앉아 있지 못하시고 일어나 주님과 함께 천사들과 함께 춤을 추시게 되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십자가 바라보면서, 세상의 포로된 나를 끊임없이 죽은 자로 고백하는 겁니다. 이게 십자가 생활화죠.
그래서 하나님을 보고, 마음의 눈에 보이는 그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의 내공으로 바뀌면서 내가 말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이 크리스천의 내공이 뿜어져 나오는 그런 삶을 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십자가 바라보며 세상에 포로되어 있는 내 마음이 죽었음을 고백함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의 속성들이 나의 내공이 되어서,
내가 입을 열 때마다, 손을 뻗을 때마다, 가는 곳마다 세상을 이기는 공력이 나타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들이 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