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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려면

LNCK 2023. 6. 19. 08:18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려면    행22:6~16    2010.03.14. *냉수한그릇창고 글

아래 내용은 이론적으로는 너무 간단하고, 쉽습니다. 전혀 어려울 게 없습니다. 
그런데 내가 체험적으로 알기에는, 
바울처럼 하루 만에 되는 사람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게 10~30~50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1.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기 위하여 <하나님의 빛>이 필요합니다.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행22:6~7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큰 빛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오정쯤이라고 성경은 소개하고 있습니다. 

낮 12시는 태양의 빛이 가장 빛날 때입니다. 
그러나 그 태양빛으로는 사람의 시력을 잃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쓰러지는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큰 빛으로 쓰러지고 시력을 잃은 것을 보면 
태양빛이 아닌 다른 큰 빛이었던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하게 주시는 신비로운 빛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기록이 나옵니다. 
3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셨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1:14절 이하를 보면 또, 하나님이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신 기록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창1:16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먼저 특별한 빛을 만드신 후에 
해와 달과 별과 같은 자연의 빛을 만드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빛은 바로 ‘자연의 태양빛’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특별한 빛’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특별한 빛을 받을 때에 우리는 
사울이 바울 되는 것과 같은, 참 변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받았던 이 하나님의 특별한 빛을 
우리도 받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내게도 그 빛이 임할 것입니다. 
일생에 몇 차례, 계속해서 임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특별한 빛을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게 주실까요? 

▲1. 그저 은혜로 주십니다. 
사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정통 히브리 사람이었고, 이스라엘의 최고의 학문을 배운 사람입니다. 

당시는 그리스 철학과 문화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 문화의 핵심인 헬라어가 바울은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나면서부터 받은 로마 시민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에 쓰기에 정말 좋은 재목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같은 자격을 갖춘 사람은, 
바울 말고도 당시에 수두룩하게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그 은총의 빛을 받은 것은, 오직 은혜로, 그 특별한 빛을 비침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모태로부터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 주신 분께서, 
그 아들을 이방 사람에게 전하게 하시려고, 
그 아들을 나에게 기꺼이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갈1:15~16  

▲그러면 하나님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만 택하시거나, 부르실까요? 
그게 로또 수준의 확률이라면, 나는 은혜로 선택받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벧후1:10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는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살전1:4 

이런 구절들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을, 다 은혜로, 불러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몸의 지체의 각 부분 중에,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부분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몸의 지체는 모두 다 각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작은 발가락 하나만 다쳐도, 제대로 정상적으로 걸을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도바울이라서 중요했지만, 
나는 사도바울이 아니라도,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로서 
얼마든지 중요합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자기의 부르심을 깨달았고, 
나는 특별히 안 부르신 것 같고...  그렇다기 보다는 
하나님이 안 불러 주시는 것보다, 
사람들이 그 부름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백 배로 더 많다고 봅니다. 

아무리 불러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합니다. 
아무리 빛을 비추어도, 
사람들이 그저 우연이거나, 그냥 자기 눈이 잘못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빛에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빛의 비춤이 필요한데, 
   그 빛의 비춤은, 은혜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나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의 모든 지체는, 각각 나름대로 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2. 주의 일에 열심히 봉사하며, 사모할 때.. 그 빛과 음성을 주십니다.
사도바울은, 다메섹 도상 말고도 그 이후에도, 
계속 신비한 체험이 몇 차례 더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특별한 빛을 비추어 특별한 영적 체험을 하게 하시고 
나를 변화시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쓰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이렇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느니라” 사60:1 

하나님의 빛이 내게 임하면,  
우리가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사람은 
바로 일어나 빛을 발할 일꾼이 된다는 것입니다. 

◑2. 주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여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행22:7~8 

빛으로 인해 쓰러진 사울에게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 음성의 내용은 세 가지였습니다. 

▲1. 책망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책망의 음성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사실 책망의 음성은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바로 잡으실 주님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책망할 때는 그가 바뀌고 변화되어 
더 좋은 길에 서기를 바랄 때입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는 책망할 것도 포기합니다. 
그냥 방치하고 그냥 놔둡니다. 이제는 그에 대한 기대나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책망이 없다고 자신이 잘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책망의 음성을 듣기를 사모하고 기다려합니다. 

   제가 잘 아는, 목사님 두 분은, 실제로 하늘의 음성을 몇 차례 들은 분이었습니다. 
   약 십년에 한 번꼴로, 하늘에서 신기하게 음성이 들리는데, (물론 한국어로) 
   내용은 ‘책망의 음성’이었다고 합니다. 
   (좋게 말해서 못 알아들으니까, 직접 책망하시는 걸까요?) 

여러분! “주여 제게 책망하여 주옵소서!” 간구하시고 기도하셔서 
주님의 책망의 음성을, 사울처럼 들으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책망’에 무게를 두셔야지, ‘음성’에 무게를 두지 마십시오. 
혹시 ‘음성’을 못 들어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책망 받고 고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음성'을 못 듣는 사람은, 내가 하나님께 받은 다른 은사가 있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은사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2. 확증의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행22:8 

이 엄청난 빛과 두려운 이적의 원인이 
바로 자신을 부르시기 위하여 전능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아들 예수님이 행하셨다는 확증을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어떤 위기와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그것을 이기고 극복하는 최고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가끔 하게 되는 <신비적 체험>이 좋은 이유는, 
자신의 신앙에 큰 확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환란과 고난의 날이 연속될 때도, 
<신비적 체험>이 있는 사람은..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불러서, 분명한 사명을 맡겨주셨다는, 확증이 있기 때문입니다. 

▲3. 해야 할 사명을 알려주셨습니다.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행22:10 

내가 왜 이런 이적을 네게 행하였는지를 
다메섹에 들어가면 예수님이 사람을 보내어 알려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정말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 와서, 그의 보이지 않는 눈을 뜨게 해 주었고, 
그가 할 사명을 정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이 음성이 사울이 바울 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이런 음성을 여러분도 꼭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을까요? 
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통성기도도 많이 하시고 조용한 묵상 기도도 많이 하십시오! 
그러면 그 묵상 기도 시간에 하나님이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성경을 많이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의 귀로 들려주시는 음성이 아니라 
내 마음으로 들려주시는 음성을 주십시다. 

   말씀을 통해서든지, 기도를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요동하지 않습니다. 
   지금 요동하고 있습니까? 마음에 안정이 되지 않으십니까? 
   일을 중단하시고, 기도와 말씀의 깊은 곳으로 빠져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기도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 외에는,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3. 도움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빛과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울은 
다메섹으로 들어가 직가라는 거리의 한 집에서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아나니아 라는 사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본문은 그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가 기도와 말씀읽기와 묵상의 삶을 사는 경건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그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 듣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런 사람이 사울을 찾아와 그를 위하여 기도하니 눈이 떠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내가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고 
저 의인 Jesus Christ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행22:13-15 

▲아나니아는 기독교 2천년 역사의 최고의 인물인 바울을 만들어낸 
최고의 도움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내 주변에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 곁에 내가 있으면, 
바로 내가 사울이 바울 되는 변화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주변에 아나니아 같은 사람이 있으면 
그를 가장 가까이 하여야합니다. 

그리고 나도 아나니아 같은 사람이 필요하듯이 
다른 사람도 그런 사람이 필요한 것을 아시고 
여러분이 그들에게 아나니아 같은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동안, 세상적인 일이 가장 중요한줄 알고 
그런 사람들을 가까이 하려고 애썼습니다. 

물질이나 건강이나 미모나 지식을 추구했고 
그런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가면 그게 다 그거입니다. 
50이 넘으면 잘생긴 사람이나 못생긴 사람이나 같아진다고 합니다. 
미모의 평준화입니다. 

60이 넘으면 많이 배운 사람이나 적게 배운 사람이나 같아진다고 합니다. 
건망증이 심해지고 깜박깜박 하는 것이 비슷해진다는 뜻입니다. 지식의 평준화입니다. 

70을 넘기면 부자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같아진다고 합니다. 
돈이 있어도 쓰기 힘든 나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평준화입니다. 

80이 넘으면 건강한 사람이나 병약한 사람이나 같아진다고 합니다. 
건강의 평준화입니다. 

90을 넘으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같아진다고 합니다. 
살아도 죽은 사람과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생사의 평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같아질 것을 모르고 
지식과 미모와 물질을 추구하여 그런 사람들과 가까이 하는 게 
제일 중요한줄 알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 평준화가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경건과 영적인 삶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은 이 세상에서 끝이지만 
경건과 영적인 삶은 이 세상을 마치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계속 쓸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평준화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생긴 사람, 돈 많은 사람, 얼짱 몸짱인 건강한 사람을 찾지 말고 
아나니아 같이 경건한 사람,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할지를 정확하게 알려주고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아 
그와 함께 동행해야 사울이 바울 되는 변화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마치는 말 : 신앙생활에, 체험도 있고, 신비도 있습니다. 
모두 이성적으로 가능한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고 신념입니다. 

우리가 볼 때 절대 불가능 하지만 
우리는 못해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이 사랑하는 일꾼에게 주시는 특별한 빛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책망의 음성, 확증의 음성, 사명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와 말씀읽기와 묵상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을 도와줄 아나니아 같은 좋은 동역자들을 꼭 만나셔서 
사울이 바울 되듯이 변화하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를 부흥시키는 좋은 일꾼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최상익 목사 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