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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 느부갓네살

LNCK 2023. 6. 20. 10:23


◑내 종 느부갓네살      렘43:10      설교 중 일부 녹취 

▲느부갓네살 왕이 하나님의 종?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종>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불러오리니 
그가 그의 왕좌를 내가 감추게 한 이 돌들 위에 놓고 
또 그 화려한 큰 장막을 그 위에 치리라’  렘43:10 

성경은, 렘43:10절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으로 부르는데...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할 때, 2가지 의미가 있다. 
1)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일하는 ‘종’이 있고 
2) 구원받은 백성은 아니지만, 단순하게 하나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종’이 있다. 

본문에서 느부갓네살을 ‘내 종’으로 부르신 것은, 후자의 경우다. 
그가 구원 받은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역자가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심부름하는 역할로서의 ‘종’이었다. 

   성경은 바사 왕 고레스를 ‘내 목자(사44:28)’로, ‘기름 부음 받은 자(사45:1)’ 
   부른 적이 있는데.. 같은 의미다. 

느부갓네살이 수행한 그 ‘심부름’이란 
유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땅은 물론이고, 
더 멀리 애굽과 에티오피아까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었다.  

느부갓네살이 애굽까지 와서 
바로 왕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할 것을.. 예레미야가 예언하고 있다.  렘43:10~11 

그렇게 함으로써, 애굽이 섬기던 모든 우상들을.. 하나님은 그렇게 심판하셨다. 
애굽도, 유다와 마찬가지로,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다. 

그런 방식으로 느부갓네살은, 비록 악인이었지만, 
‘내 종’(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하나님은 불의한 자(바벨론/느부갓네살)를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 땅에서 수행해 나가실 때도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종, 의로운 사람만 들어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불의한 자(본문의 느부갓네살)를 통해서도,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이 땅에 이루어 가신다. 

   공산주의에 민감한 사람들은, 듣기 싫은 내용이겠지만, 
   20세기 초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마르크스-레닌의 공산주의 운동도 
   당시 찌들어가던 러시아 정교회를 심판하기 위한 도구로 
   하나님이 일으키신 ‘불의한 도구’였다고 본다. 

   그러나 그 공산주의의 죄악이 관영했을 때, 
   하나님은 또 70년만에, 러시아 공산주의를 망하게 하시고, 동구권도 다 독립했다. 
   (1917~1989, 볼세비키 혁명부터 ~ 베를린 장벽 붕괴까지 약 70년) 

▲러시아 공산주의가 ‘하나님의 도구’였다는 것은, 
오늘날 서구 기독교 국가들의 상태를 볼 때.. 그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1989년, 동서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시작된 구소련연방의 붕괴, 
그리고 공산주의의 붕괴 이후로 
서구권 기독교 국가들은 급속히 물질주의로 더욱 타락하고 있다. 

그래도 공산주의가 존재했을 때는.. 
뭔가 정신을 차릴 만한 ‘도구’가 있었는데,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했을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은 마치 ‘(후천년설의) 천년왕국’이 온 것처럼 환호했다. 
이제는 온 세상에 평화가 넘쳐날 것을 기대했다. 

   물론 그 기대는 10년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2001년 911사태가 터지면서, 
   서구는 ‘동서 냉전시대’에 못지않은, 
   ‘문명의 충돌시대’ 즉 회교권과의 갈등이 시작되게 되었다.

소련 공산주의가 무너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후로 세상은 ‘자본주의 천국’이 되다시피 했다. 
개인적 빈익빈 부익부가 가속되고, 
국가간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도, 
역사이래로 지금처럼 그 간격이 크게 벌어진 때도 없다. 

▲냉전붕괴 이후,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에 승리한 다음부터.. 
교회도 급속하게 자본주의화 되고 있다. 

물론 교회라고, 시대 흐름에서 벗어나서, 완전히 자유할 수는 없고, 
세상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세상 환경에 동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복음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분,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이것은 모두 기독교 복음의 적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모두 반기독교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극단적 자본주의, 물질만능주의에 빠질 때, 
   그것은 말세에 기독교의 적이 될 수 있다. 

   공산주의는 
   기독교를 죽이고, 감옥에 가두고, 핍박하는 형식으로 
   기독교를 대적했지만, 

   장차 극단적 자본주의는   
   물질주의화, 맘몬우상 숭배화, 풍요와 쾌락으로 타락시키는 방식으로, 
   기독교를 유혹할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서구교회는 
   <공산주의의 핍박>을 이겨내야 했지만, 

   앞으로의 교회는 
   <자본주의의 타락>의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에 있다. 


*과거 냉수한그릇창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