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내가 아뢰기 전에,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내 존재 속에 깊이 들어와 계시면서 나와 아주 내밀한 대화를 원하십니다.
'기도를 할 때는 가급적 진솔한 기도를 하라' 말이 있는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묵상도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과 자꾸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하나님과 관계가 자꾸 내밀한 관계로 기울수록 언어가 줄어들어요. 이상합니다. 그건 뭐 경험해 보면 압니다." (아래 강의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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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시작) 여러분 부부끼리나 또 부모와 자녀들 관계에, 친구들 관계에서 소통이 안 될 때는, 문제가 해결되질 않습니다.
소통이 돼야 되는데... 그런데 소통이 안 될 때는,
자기는 한 꺼풀 (방어막) 딱 치고 서로 남의 약점만 집어내고, 자기 변명만 하기 위한 그런 대화는.. 아무 유익이 없지요.
그러나 진정마음과 마음을 열고 소통이 이루어질 때는 어떤 문제도 다 풀리게 됩니다.
이 소통이 단절될 때는 자꾸 소외가 되고 그리고 고독해지고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에서도, 소통(기도에 비유)이 원활하게 잘 돼야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지만 이제 소통이 안 될 때는, 자꾸 겉돌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입니다!)
▲제가 성장과정에서, 청소년 시절에 저희 또래들이 가질 수 있는 문제보다 조금 다른.. 도덕적이고, 또 신앙적인 문제를 제가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인격의 가장 깊은 곳에 담겨져 있었던 건데 그것을 부모에게도, 친구에게도, 또 선생님에게도 얘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었고
또 제가 용기를 내서 잠깐 얘기를 비추면, 상당히 피상적인 답변, 또 제 문제에 대해서 아무런 해답을 주지 못하는.. 그런 답변들이 돌아왔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까?' 해서 제 혼자 철야기도도 해보고, 산기도도 해보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제가 새벽기도도 나갔습니다. 새벽기도 나간 것은, '훌륭한 사람 되려면 새벽기도도 해야 된다'는 그런 들은 풍월이 있어서 나갔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에 나가나, 뭐 철야를 하나 그 기도가 다 피상적이었죠. 어른들 기도를 흉내내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제가 학생 때, 밤에 한 11시 쯤에 조용히 교회당에 가서, 밤새도록 제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가서 밤새우는 건 문제가 아닌데, 그 대여섯 시간 동안 무슨 말로 기도를 채우느냐가 굉장한 스트레스가 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그냥 어른들 흉내내며 했던 거죠. -성령을 충만히 주십시오. -좋은 사람 되게 해주십시오. -시험을 이기게 해주십시오. 그런 걸로 자꾸 반복해서 (시간을 채우는) 기도를 했던 거죠.
그러다가 새벽 4~5 시쯤 되면, 동이 훤하게 트기 시작하면 이제 그때는 일어나는데, 밤새 기도를 드렸지만 제 내면의 문제는, 문제 그대로 있었어요.
그리고 기도는 공전하는(헛도는) 기도, 제 내면의 문제는 하나도 변화되지 않고, 상관도 없는... 그런 기도를 드렸던 거죠.
하나 변화된 것은, 밤새도록 소리를 질렀으니까 목이 좀 쉰 것입니다.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요.
그리고 학교에 가도 도덕시간이나, 일반 사회 과목에서도 전혀 해답을 얻지 못하는... 그런 문제가 학생 시절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것이 이제 불면증도 가져오게 됐고 그리고 또 정신과 치료를 받기 위해서 (병원에) 가보기 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뭔지를 몰랐고, 누가 제게 가르쳐 주지도 않아서 그랬던 거죠)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입니다!
그런데 제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차츰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해답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아하, 하나님은 나와 깊은 대화를 하기를 원하시는구나!' '문장을 지어낸 이야기를 듣길 원하시지 않는구나!' 하는 걸 제가 알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때 부터 선생님이나 또 부모에게도 할 수 없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문제를 제가 하나하나 격식을 갖추질 않고, 솔직하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기도를 어떻게 합니까?' 하고 물으면 어른들이나 또는 목사님이 가르쳐 주시기를 -먼저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다음에는 자기 죄를 회개하고 -감사하고, 간구하라... 이렇게 형식적인 순서를 얘기 해 주셨지만,
저는 그런 격식을 다 무시하고 하나님 앞에 하나하나, (내 내면 속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시작을 했습니다.
'제게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이런 죄책감이 있습니다. 또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는 걸 하나하나씩 기도의 시간이 흐름과 아울러 아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존재속에 들어와 계시기 때문에 사실 저보다도 하나님이 (저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고 가서 제물을 바치고, 자꾸 소리를 지르고, 악을 써야 그 멀리에서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신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아니고, 기독교 영성에서는 하나님은 나보다 더 가까이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은 내가 아뢰기 전에, 내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십니다. 마6:8
이 70억의 인구 중에, 나보다도 내 문제를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께 가서, 우리는 진솔하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 존재 속에 깊이 들어와 계시면서 나와 아주 내밀한 대화를 원하신다는 거죠.
▲여러분 영어 단어 가운데 인티밋 intimate 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를 남녀부부간의 관계에 종종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내밀한 결합'
지난 기독교 역사를 보면, 우리 하나님과 대화속에 종종 그런 단어를 씁니다. 하나님과 내밀한 intimate 대화를 성인들이 나눈 것이죠.
기독교 역사에서 성인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즉 책을 읽어보면 그 성인들이 하나님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에서 내밀한 대화를 나눈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 그때는 서로가 속에 어두운 것은 다 감추고, 이제 좋은 면만 보여주는 거죠. 처음부터 다 까서 보여주면, 결혼이 성사 안 될 수도 있죠. 처음에는 그렇게 하죠. 어두운 것은 다 벽장 속에 감추어 두죠.
그리고 결혼을 하고 나면, 차츰 하나씩 드러내 보여주게 됩니다.
만약 결혼 후에도, 그걸 계속 숨기면 결혼 생활이 겉돌게 됩니다. 그리고 자꾸 서로가 외식적인 요구를 하게 되고 그러니까 나중에는 결혼 생활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온전하 결합이 안 되고...
그러나 이제 데이트를 할 때, 또 결혼하고 나서 계속 대화 속에서 그 심리적인 어떤 관계가 형성되고, 감정의 교류가 형성이 되고 또 사고의 교류가 형성이 되면서 점점 영혼과 영혼의 친밀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영혼과 영혼의 친밀한 만남 속에서 남녀가 온전한 하나됨, 일치를 이루는 걸 또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는 그런 내밀한 일치의 관계까지 발전해야 하는데, 기독교 영성에서는 '연합'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의 진솔한, 숨기고 싶은 얘기까지 다 드러내면서, 비로소 그 일치와 연합의 관계에 이르게 된다는 거죠. 그게 없으면 내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속에서 그런 대화를 배워야 됩니다. 기도할 때, 피상적인 대화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꾸 하나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득을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설득당하는 하나님, 헌금 많이 내서 설득할 수 있는 분이라면, 그런 (무능한) 하나님을 뭐하러 믿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설득하는 분이 아니고 일단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의 여정이 시작됐을 때는 그때부터는 우리가 하나님께 길들여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길들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손에 길들여져 가는 과정이라는 걸 늘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면서 하나님과 내밀한 대화부터 시작이 돼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깊은 문제들, 자녀의 문제도 좋고, 남편의 문제도 좋고 이미 내가 결론을 딱 내서 자기 가치관과 자기 관점에서 결론을 딱 내가지고 '주시렵니까, 안 주시렵니까?' 하면 안 됩니다. 결론을 내서 요구하면 안 됩니다.
제가 과거의 약국에 가서, 처방전 제도가 생기기 전이었죠. 약사에게 말했습니다. '활명수, 훼스탈, 진통제 좀 주십시오' 하면
약사가 '선생님 약사이십니까, 혹시 의료계에 있습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제가 '아닙니다' 하면,
약사는 '이 다음에 약국에 오실 때는 증상만 얘기해 주십시오. 보태지도 말고요.'
이 약 달라, 저 약 달라.. 미리 결론을 내서 약국에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환자는 증상만 얘기하고, 약사가 약을 알아서 조제해 주겠다는 말이죠.
우리가 약사한테나 의사한테 얘기할 때도 언어로 자꾸 자기가 손상이 될 수 있는 걸 감추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의 어떤 어두운 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확실한 진단이 안 됩니다. 그러면 치료가 어렵게 되죠.
△여러분 어떤 자매가 남편하고 싸워서 저한테 상담하러 왔을 때 그 부인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 언어가 전부 다 자기를 포장하는 말이기 때문에 들으면 들을 수록 '그 남편, 죽일 놈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다음에 남편의 얘기를 또 들어보면 '이 여자가 죽일 여자예요'
그건 우리가 의도적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처음보는 목회자한테, 자기 속깊은 얘기를 다 털어놓지는 않죠.
처음에는 말해도 될만한 얘기만 합니다. 그렇다 보니, 상담 내용 자체에 모순된 얘기가 많죠.
그렇지만, 듣고 또 듣고... 시간이 지나서 서로 신뢰가 쌓일 때 비로소 자기 비밀한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때 이제 만남이 이루어지고, 해답이 비로소 찾아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대화도 그런 걸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라도 처음에는 인간의 문제는 언제나 다 그대로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 달라진 것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여정에서, 점차 친밀해지면서 그 문제들을 바르게 보게 됩니다. 자기 속깊은 얘기가 점점 더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남편, 부모가 아니라) 자기가 어떻게 잘못 했는지도 알게 되고 그러면서 또 한 백 그램 짜리 문제가, 한 삼십 그램으로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문제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해도. 하나님이 앞서서 우리의 문제를 다 치워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의 삶을 인도해 가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 문제는 우리가 성숙해지면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우리 내면 속에 깊이 임재해 계시는 그 하나님께 상당히 내밀한 intimate 대화를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게 될 때는, 대화의 목소리가 크기보다도, 상당히 작아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이런 문제가 참 고통스럽네요.'
그래서 자기 내면의 고통에 문제에 색깔을 그대로 내보이도록 기도하십시오. 채색하지 말고요...
그리고 '누구를, 지금 저 친구를 죽이도록 죽이도록 밉습니다.' 그걸 그대로 보이도록 기도하십시오.
'사랑하게 해주세요. 성령충만해 주세요.' 그런 기도는 처음에는 효력이 없습니다. 일단 그대로 내보여야 됩니다.
'지금 이런 문제가 나를 몹시 괴롭힙니다. 보시옵소서. 아버지에게는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있다는 걸 제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해답을 저에게 주세요. 당신이 주시는 해답은, 혹시 제게 손해가 되더라도 제가 받아들이겠나이다.'
그런 결단이 필요해요. 처음에는 그런 결단이 잘 안 나옵니다. '그러다가 손해보면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지만 그런 것들을 자꾸 우리가 하나님께 아뢰고, 진솔하게 내보이도록... 자기 내면의 색깔을 그대로 보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주님, 저를 보십시오. 제게 이런 고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내보이면서, 조용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그리고 당장 해답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걸 가지고 하루 종일 하나님께로부터 분명히 해답이 올 거라고 믿고, 하나님을 믿고 하루를 살아가면... 이상하게 그 문제가 또 풀리게 됩니다. 그런 경험들이 자꾸 쌓이게 됩니다. 주1)
▲'언어가 없는 대화'도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그런 대화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그 대화를 나누면,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언어가 있는 대화 -그리고 언어가 없는 대화 언어가 있는 대화도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데 그 기도를 통해, 말을 한다고 하는 자체는 생각이 포함되는 거예요. 감정이 포함되는 거예요. 의지가 포함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대중 앞에서 주일에 대중기도를 인도할 때 진솔한 기도를 그대로 하면 안 됩니다. 뭐 '죽이고 싶습니다' 그러면 안 되고
그 대신에 한 주 전에, '하나님 다음 주에 내가 어느 모임에서 대중 앞에서 기도를 인도하게 되는데 어떤 내용의 기도를, 전체를 대신해서 간구해야 할지, 나에게 알려주십시오' 하면서 적어야 됩니다.
그날 아침에 그냥 허겁지겁 해서 기도하면 안 되고요.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거나,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거나 할 때는 가급적 처방을 가지고 투쟁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 아들 때문에 제가 지금 몹시 초조합니다. 막 죽을 지경입니다.' '우리 남편과 관계가 지금 매우 냉전이 계속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 원인을 하나님께서 밝혀 주십시오' 그렇게 우리가 진솔하게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그분의 지혜와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겠다고 하는 것을 마음에 생각하면서 그런 진솔한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관계가 깊어지면.. 자연스럽게 '언어가 없는 대화'로 발전하게 됩니다...
△제가 과거에 교회 1부 예배를 마친 다음에 어느 자매가 와서 '목사님, 기도를 어떻게 하는지,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그래요. 그래서 그 자매 얘기를 잠깐 들어보니까 기도 문장 꾸미는 걸 몰라서 묻는 게 아니고 매우 답답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자매님, 오늘부터 시작해서 한 2주 동안 평생 자매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라도 얘기하지 못한 얘기를 하나 하나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진솔하게, 꾸미지 말고, 채색하지 말고 아뢰십시오' 그랬어요.
그렇게 하고 2주 후에 다시 만납시다. 2주 후에 다시 만났어요.
이 자매가 얼굴이 환해가지고 저한테 와서 '아 목사님, 저는 이제는 기도할 줄 알아요!' 그래요. 그 말이 얼마나 통하는지요. '기도할 줄 알아요!' 하는 말이 확 통함을 주더군요.
우리는 이제 그런 기도를 배워야 돼요. 제가 모새골에 들어온 분들에게 그걸 많이 강조합니다.
'꼭 응답 받아야 되겠다. 뭐 해답을 얻어야 되겠다' 그걸 다 내려놓고 '진솔한 기도를 해보라'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진솔한 기도를 하려면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과 관계를 위해서는 나만이 홀로 있을 수 있는 무슨 골방이라든지, 그런 공간이 필요하죠.
옆에서 남편이 다 들으면 어떻게 해요? 안 되죠. 그러니까 그런 장소가 필요합니다.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우리가 은밀한 자기 내면의 문제를 아뢸 수 있도록...
그렇게 진지하게 하나님께 질문을 할 때 하나님도 거기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또 성경공부 시간에, 설교를 통해서 해답을 주시곤 합니다. 그게 기도 입니다.
우리가 또 간구하고 싶은 내용, 그런 걸 하나님께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기도는 주로 이제 언어가 있는 거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가 포함되고 그 기도는 때때로 이제 전도가 이루어지고 합니다.
전도라는 건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기도내용이) 뒤바뀔 때도 있고
그 기도의 내용이 완전히 180도 바꾸어 질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런 기도를 우리가 자꾸 해가게 되면 하나님과 관계가 자꾸 진솔한 관계가 되고 자기 내면의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가시게 됩니다. ▲그 다음에 '묵상'은 기도와는 조금 반대로.. 이것도 역시 수동적인데..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날 석장 넉장 읽으면 안 되고 한 문단, 또 한 문장을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고 '하나님 오늘 무엇을 말씀하길 원하십니까 나에게 무엇을 주시길 원하십니까?'
그렇게 내면으로 기대하면서 여러 번 읽고 거기서 혹시 감정으로나, 이성으로나, 직관으로 느껴지는 걸 가지고 하나님과 내밀하게 침묵으로 이렇게 대화하는 그런 과정인데
그러나 묵상은, 언어가 많이 사용되질 않습니다. 묵상은 언어가 있는 기도를 쭈욱 하다가도 그 기도가 거의 끝나는 시간에, 하나님 앞에서 조용히...
말이 있는 대화의 기도를 한 10분 했다고 하면, 그 기도가 진솔한 기도가 끝난 다음에 그것보다 한 20분 동안 조용히 그 하나님을 향해서 머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묵상은 하나님 앞에서 머무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조용히 그 말씀을 자꾸 음미 하면서 '이것을 통해서 당신이 뭘 말씀하십니까?' 이게 기다림, 묵상입니다. 그런 것을 묵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가 있는 대화부터 시작이 되어야.. 묵상이 이루어집니다. 묵쌍 기술부터 배우려고 하면 안 되고 그런 관계성 속에서 자연스럽게 되는 거니까 여러분들이 묵상 훈련도 필요합니다.
조용히 제가 오늘도 여기까지 차로 오면서 묵상하며, 기도하며 왔지요. '오늘도 가서 어떻게 말씀을 제가 강의할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하면서 계속 묵상 속에서 왔습니다.
여러분들도 어떤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 이 문제를 아룁니다. 인도해 주십시오' 하고 조용히 묵상가운데서 해답을 기다릴 수가 있습니다.
먼저 말이 있는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묵상도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 부부관계도 통하지 않을 때는 자꾸 말이 많아져요. 관계가 멀면, 얘기가 많아지는 경향도 있어요.
그러나 영혼이 서로 만나고 이렇게 일치를 이룰 때는 말 없이 10 분간 가만히 쳐다봐도, 서로 지루하지 않지요.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과 자꾸 가까워질수록 이상하게 하나님과 관계가 자꾸 내밀한 관계로 기울수록 언어가 줄어들어요. 이상합니다. 그건 뭐 경험해 보면 압니다.
처음에는 말이 많은데 자꾸 하나님과 관계에서 그분을 신뢰하고 내 미래가 그분의 사랑 가운데 있다는 걸 믿고 전 세계의 미래가 그분의 사랑 속에 있다는 것을 믿으면 자꾸 그분의 대한 신뢰가 깊어질수록 대화가 많이 줄어들어요. 그건 참 이상합니다.
그리고 대화 없이도 한 10분, 또는 한 30분 조용히 그 분의 현존가운데 머물 수도 있습니다. 이걸 이제 묵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 시간 이후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대화의 삶, 그걸 여러분들이 좀 기억을 하시고 그 훈련을 조금씩 해나가십시오.
그래서 또 묵상도 자연히 더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훈련을 하시면, 여러분들이 하나님과 소통이, 내면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강의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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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그런 걸 우리가 신앙적으로 노트에다가 가끔 적어 놓으면 이 다음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멘토링 해주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은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가운데서 나이가 들수록 자기 스스로가 깨달은 바를 기록해 놓은 잠언이 많아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