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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사역

LNCK 2023. 6. 27. 08:13

◈예수 그리스도의 선지자 사역          마23:33~39       출처 분실  

◑선지자를 싫어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렇게 선지자들이나 예언자들을 핍박하면서도 
그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면 또한 살수가 없는 것이 유대 백성들입니다. 

민중의 성격은 성경이나 우리 현실이 똑같습니다. 
얼굴을 보아야 살고 소리를 들어야 살 수 있는 것이 민중의 성격입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 항상 보여져야 하고 무슨 소리인가 항상 들어야 살아갑니다. 
그것이 문화를 만들고 사회 풍토를 조성합니다. 
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 민중은 불안해 합니다. 

▲1960년대는 세계적으로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 시절 미국에서는 히피족 문화가 생겨 온 나라의 젊은이를 휩쓸었습니다. 

젊은이들이 갈 곳이 없으니까 히피족 문화로 선풍을 일으켰고, 
중국에서는 홍위병이 생겨 중국 역사를 뒤바꿔놓았습니다. 

그때 당시 영국에서는 비틀즈 음악이 세계 젊은이들 가슴에 불을 질렀습니다. 
비틀즈가 나타났다 하면 세계 어느 도시나 공항 주변의 교통이 마비될 만큼 
열광적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세계 젊은이들은 비틀즈 음악이 ‘젊음에의 구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들은 조용히 어디론가 사라지듯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들 중에 제일 유명했던 존 레논이 
뉴욕의 자기 집 근처에서 피살당해 죽었습니다. 

뉴욕 타임스지가 
“왜 죽였을까? 그가 뭘 잘못했다고?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이유는 한가지다. 
네가 왜 노래를 부르지 않느냐? 노래 안 부르면 죽어라! 
그래서 그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열성 팬이 죽인 것이다.” 
이렇게 신문에 났습니다. 

선지자도 비슷하게 마찬가집니다. 
백성들은, 선지자의 음성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듣기 좋아합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잠잠하면, 도리어 선지자를 나무라고 죽이려 듭니다. 

대언을 해도 선지자를 싫어하고 
대언을 안 해도 선지자를 싫어합니다. 
그럴 바에야 대언하고 욕먹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는 항상 민중 앞에 보여 졌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없으면 그 민중은 살 수가 없었습니다. 

출애굽기 성경에 제일 많이 나오는 똑같은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여 가로되”라는 말입니다. 
항상 보고 싶어 하면서도 항상 원망했습니다. 이것이 선지자입니다. 

어느 날 모세의 얼굴이 민중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시내 산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날마다 그의 얼굴을 보면서 그의 소리를 들어야 사는 민중은 일주일이 지나니까 
“어떻게 된 거야? 왜 안 보이는 거야? 왜 무슨 소리를 안 하는 거야?”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열흘이 지나니까 수군수군 거립니다. 
한 달이 지나니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안 되겠어! 죽었나봐!” 
“그럼, 어떻게 해야 돼?” “보이는 것을 만들자!” 
그래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다!” 
보여야 할 예언자가 안 보이기 때문에 나온 현상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중간기 역사가 있습니다.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연결되는 중간 부분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중간기 역사는 학자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400년을 잡고 
어떤 사람은 300년을 잡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 나라에 예언자가 끊어졌습니다. 
아무도 안 나타나고 아무 소리도 안 들렸습니다. 그래서 암흑기 역사라고 말합니다. 

선지자의 출현이 없는 시기였습니다. 
이 암흑스러운 역사 안에서 사람들은 다 지치고 지쳤습니다. 
날마다 때리고 죽이고 원망하면서도 선지자가 없으면 못사는 것입니다. 

왜 예언자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는가? 
왜 우리 앞에 예언자의 얼굴이 나타나지 않는가? 
그러다가 어느 날 약대 털옷을 입은 야생마 같은 사람이 광야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소리를 발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게 무슨 소리야?” “선지자가 나타났어!” “뭐라고?” 
온 예루살렘 광야의 외치는 소리를 들으려고 다 앞으로 나왔다고 했습니다. 

“당신 누구야?” 
“회개하라!” 예루살렘에서 그가 베푼 세례를 다 받았습니다. 

마3:5절에,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왜 나갔습니까? 예언자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언자의 소리가 들리니까! 

“그렇게 듣고 싶었던 예언자의 소리가 마침내 우리 앞에 들린다.” 다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자가 하는 설교를 들어보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사람들을 보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했습니다. 예언자입니다.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 가슴에 원망스러운 말만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 소리를 들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게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약대의 털옷을 입은 험상궂은 모습에서 무슨 아름다운 것이 있어 
서로 보려고 온 나라 백성들이 소리 나는 곳으로 향해서 갔겠습니까? 
이것이 광야에서 예언자가 외치는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통해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선지자의 사역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하는 사람들은 항상 설교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선포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을 유지시키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선지자의 사역은 위험이 따릅니다. 
예수님이나 세례 요한이 선지자 사역에 제일 먼저 한 설교의 첫 제목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입니다. 

사람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거부 반응의 소리가 
“너 죄 있으니까 회개하라.”라는 소리입니다. 
비록 잘못한 것이 있다하여도 그 소리는 듣기 싫어합니다. 

누구든지 싫어하는 소리를 누구에게나 해야 하는 것이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이 그렇게 심한 갈등을 가졌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은 스데반의 설교입니다. 열심히 선지자 사역에 충실하였습니다. 
설교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옳은 말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이여 회개하라”라는 주제였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돌멩이를 들고 와서 
설교한 사람을 쳐서 현장에서 죽여 버렸습니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는 바리새인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때부터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죽일 기회를 찾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셨는가? 무슨 일을 잘못을 했길래? 

이 선지자 사역 성격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이 땅에는 지난 2000년 동안 끊임없이 순교자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왜 그렇게 거룩하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을 죽입니까? 선지자 역할 때문입니다. 

▲폴 틸리히는 독일에서 태어난 목사로 미국에서 활동한 신학자인데, 
1965년 10월 22일 죽으면서 “미국을 위하여 이 소리를 발한다.”라는 
예언자의 소리를 남기고 죽었습니다. 

“앞으로 이 미국은 네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로마같이 망한다. 

①이기주의, 에고이즘이다. 
미국 사람들은 이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의 위대성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공헌하는데 있고, 
함께 사는 사회를 창조하는데 미국이 힘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기주의로 변해가고 있다. 이기주의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②두 번째는 맘모니즘, 물질만능주의이다. 
학교의 정서 교육인 도덕, 윤리, 음악은 시간 낭비라고 해서 다 없애버렸습니다. 
생산성 교육에만 치중을 하였습니다. 결과는 GNP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회는 더 악해졌습니다. 가정의 평화는 깨졌습니다. 

우리나라도 똑같이 가고 있습니다. 
요즘은 GNP 성장에만 모두다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GNP가 이만큼 올라서 북한보다도 15배나 높아졌는데 
지금 경제 성장에 따라서 우리나라 이혼율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불과 얼마 안에 50퍼센트 가까이 이혼율을 달성할 테니 두고 보십시오. 
이것이 물질 만능 주의입니다. 

③휴머니즘, 인본주의이다. 
미국 대학의 99퍼센트가 휴머니즘 교육 철학입니다. 
공립학교에서 어떤 어린이 한명이 “나는 기도하기 싫다.” “어? 그래?” 
그거 하나 때문에 그 어린이 한명이 재판을 걸고 대법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없애자.” 성공했습니다. 휴머니티입니다. 

④그 다음에는 헤도니즘, 향락주의의 극치이다. 
인생의 목적이 향락의 극대화로 가치관이 변했다. 
앞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미국은 망한다.” 

이것이 폴 틸리히가 외친 예언자의 소리입니다. 
예언자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 사회도 망하고 교회도 망합니다. 

▲얼마 전 우리 한국 사회에 예언자의 소리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강원용 목사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것입니다. 
저는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 동양 철학을 그분에게 배웠고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 소리들이 다 예언자의 소리입니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그런 소리를 들어야만 사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는 그런 예언자들의 소리가 다 배척을 받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이유도 바로 이 선지자 사역의 성격 때문에 
그렇게 잡혀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선지자 사역 성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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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회 숭실대 베어드 강좌에서               스크랩

‘한국교회의 위기와 목회자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김명혁 목사가 강연한 자리에서 
약함ㆍ착함 ㆍ이웃 돌아보는 긍휼한 마음 강조 

기독교가 가진 가난하고 소박한 모습 잃어버려 
‘한국교회의 위기와 목회자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20일 오후 5시 숭실대 베어드홀에서 개최된 제10회 베어드 강좌에서 
김명혁 목사(강변교회 원로 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두 가지 심각한 문제를 ‘세속화’와 ‘분열화’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교회가 경제성장과 물량화, 기업화의 세속적 경향을 따라서 
너무 부요해지고 강해졌다”면서 “한국교회가 성장위주로 치닫다 보니 
기업화와 개 교회주의로 전락하게 됐고 
그 결과 무수한 분열을 초래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수만 여명이 시청 앞에 모여 세력을 과시하는 모습이라든지, 
작은 교회들을 잡아먹는 ‘지교회’, ‘지성전’이 유행하는 기업화된 모습은 
본래 기독교가 가졌던 가난하고 소박한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것이다. 

그는 아울러 한국교회는 각종 프로그램과 카리스마, 아부성 발언에 
사로잡혀 있음을 지적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예배는 어느덧 감정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각종 음악 
및 율동 프로그램에 사로잡혀있다”면서 
“영성보다 감성에 치우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김 목사는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진실한 삶 보다는 
유명한 목회자의 유명 카리스마에 사로잡혀있다”면서 
“그것이 설교의 카리스마이든지 방언의 카리스마이든지 치유의 카리스마이든지 
뒤집어짐의 카리스마이든지 코미디의 카리스마이든지 정치력의 카리스마이든지 
경제력의 카리스마이든지 반공의 카리스마이든지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많은 목회자들이 앞서 간 신앙 선배들처럼 삶으로 설교하기 보다는 
말과 제스처로 설교하는 듯하다”면서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위해 죄와 허물을 지적하는 책망보다는 
아부성 발언에 사로잡혀 있다”고 덧붙였다. 

목회자의 사명은 약함과 착함, 주변성의 삶과 사역 이루는 것이다.
 
김명혁 목사는 오늘날 상당수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문제점으로 

△자기들의 권위를 지나치게 내세우며 성공과 명예를 쫒는 점, 

△심오한 지식과 유창한 설교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점, 

△현세적인 정치 사회 경제적인 발전과 성공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점, 

△다분히 각종 유행 프로그램에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점, 

△책망이 없는 아부와 희생이 없는 탐욕으로 치닫는 점 등을 꼽았다. 

이에 그는 오늘날의 목회자가 본받아야 할 모델로 바울의 삶을 제시하며, 바울은 

△자기의 약함과 궁핍을 내세웠고 

△말과 논리의 어리석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멸시와 조롱의 대상인 십자가만을 증거하고 자랑했으며 

△사랑과 눈물과 책망과 희생으로 목회했으며 

△양 무리의 사정을 깊이 성찰한 목회자였음을 상기시켰다. 

이어 그는 성 프랜시스, 길선주 목사, 손양원 목사, 한경직 목사 등의 삶을 
예로 들며 이들의 목회적 삶과 사역에 나타난 중요한 원리는 
약함과 착함, 주변성의 삶과 사역이라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한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약해지는 대신 너무 강해졌고, 
착해지는 대신 너무 유능해졌고, 

주변성을 지니는 대신 너무 ‘나’ 또는 ‘우리’ 중심적이 된 것”이라며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는 목회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이 먼저 좀 약해지고, 착해지고, 주변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밝혔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위대해져서 거의 우상화하게 됐으며 
그래서 복음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실망과 불신을 받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인간과 모든 민족의 특성은 자기중심적이고 민족 중심적인데 비해 
기독교 복음의 특성은 주변 지향적이고 이방 지향적”이라며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프란시스와 같이 
가난과 고통까지도 사랑하는 주변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며, 

한경직 목사와 같이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품는 
약하고 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펀 글) 

 
김명혁 목사는 먼저 “교회가 ‘경제’를 우선적 가치로 삼는 것 자체가 큰 위기”라며 
“경제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교회가 가장 마지막에 꼽아야 할 가치이지 가장 앞세울 가치는 아니다” 라고 지적했다.

김 목사는 그 예로 얼마 전 정부를 위해 기도하는 모임에 참석했을 때 
목회자들이 첫번째 기도제목으로 ‘경제’를 걸어놓았었다는 일화를 들었다. 

그는 “목사들이 오히려 대통령을 경제만 앞세우도록 부추긴다. 
언제부터 교회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김명혁 목사는 “공교롭게도 교회가 경제를 앞세우자 경제 위기가 닥쳤다”며 
“어쩌면 하나님께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치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