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 빠오 족이 있다. 빠오 족 선교는 지금부터 100년 전, 1907년 3월 미국에서 온 윌리엄 헥켓 Hackett 선교사로부터 기원한다. 그는 빠오 족과 어울려 살면서 40년 동안 복음을 증거 했다.
그는 자기 스스로 “나는 빠오 족이다!” 라고 말하며 빠오 족과 동화되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핍박이 일어나서, 헥켓 선교사는 강제로 추방당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본국에 되돌아가지 않고, 산 속으로 도망 다니는 생활을 10년간 계속 했다.
미얀마는 산이 많아서, 깊은 산속에 숨으면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 도피 생활 10년 만에, 결국 그는 붙잡혔다. 그래서 40년 사역기간과 합해서 선교 사역 50년 후에, 그는 미국에 되돌려 보내졌다.
그러나 그는 미국에 돌아가서도 결코 미얀마를 잊지 못했다. 그래서 미국을 순회하면서 미얀마에 대해 설명하고, 기도회를 만들고, 선교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다가 그는 81세에 소천 하셨는데, 운명 당시 그의 마지막 유언은 “빠오 족을 잊지 말라!”였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이 지금도, 미얀마 빠오 족을 계속 방문하며 돌아보고 있다고 한다.(아래 인터넷 기사)
제가 미얀마를 방문해서 여러 부족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여러 부족들이 미지근하게, 신앙이 꺼져가고 있었는데, 유독 빠오 족 교회를 방문했을 때는 신앙이 살아있는 생동감을 느꼈다.
나는 거기서 ‘왜 빠오 족은 신앙이 뜨거울까?’ ‘이것이 윌리엄 헥켓의 믿음의 영향이 아닐까?’ 라고 혼자 생각해 보았다.
강인한 생명력!, 핍박가운데서도 굴복하지 않고 견디는 그 믿음!, 헥켓 선교사가 전해준 그 초기 신앙이 종자 믿음이 되어서 1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열정이 빠오 족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고 지속됨을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국교회는 초기 신앙의 조상들에게 많은 빚을 졌다. 새벽기도의 전통, 핍박을 이기는 신앙, 순교하는 신앙 등 아름다운 신앙적 전통을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주셨다.
이제 세계에 남은 미전도 종족을 향하여 윌리엄 헥켓 선교사가 빠오 족을 선교한 것처럼 한국 크리스천들이, 그들 미전도 종족들에게 아름다운 종자 믿음을 전해주는 그런 시대적 사명을 오늘 우리 세대가 충실히 감당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어렵게 찾은 윌리엄 헥켓 선교사의 아들에 관한 자료다.
요약하면,
빌 헥켓(아들)은 버마에서 선교 사역하던 부모로 인해, 버마 랑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유년시절을 버마에서 보냈다. 나중에 미국으로 건너와 대학을 마치고 후에 1953년 코넬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앞서 그는 메리언과 만나 결혼했다. 그들은 1941년 선교사로 지명되어 버마의 Shan州 Taunggyi로 가서 그곳의 빠오 부족 가운데 살면서 사역했다. 물론 근처의 다른 8개 부족 사역도 겸했다.
빌 헥켓 선교사는 그곳에 ‘농촌기독교센터’를 짓고서, 그 센터를 중심으로 신앙, 교육, 의료, 농업 사역을 했다.
그는 버마 침례교 총회의 농업부문 의장이었으며, 총회 위원으로 수 년 동안 봉사했다.
메리언 사모는 빠오 언어를 마스터하고, 신약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과거에 그녀는 하트포드 대학과 코넬 대학에서 헬라어, 음성학, 신약학을 전공했었다. 문자가 없었던 빠오 족에 문자를 만들며 신약을 번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신약의 약 3/4을 번역했으며, 그 중 절반은 지금 이미 인쇄,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