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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시는 하나님

LNCK 2023. 7. 1. 13:26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시는 하나님          이사야29:9~14     *편집자 묵상글


▲깊이 잠들면, 아무리 깨워도, 쉽게 못 깨어납니다. 
한 번은 외국에서, 어떤 남편이 저녁 식사 후에 
잠시 바깥 산책을 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열쇠를 집에 놓고, 가벼운 차림으로 산책을 나갔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있던 아내가, 그만 초저녁에 잠이 깜빡 들어 버렸습니다. 
남편이 돌아와서 아무리 대문 밖에서 초인종을 눌러도.. 
아내는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할 수 없이 옆집에 가서, 전화를 빌려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댔지만, 아내는 여전히 깊이 잠을 잤습니다. 

나중에는 옆집사람과 함께 아파트 대문을 쿵쾅거리며, 
아내 이름을 합창으로 불러댔습니다. 

워낙 안 일어나기에 
혹시 ‘안에서 죽었나?’ 아니면 '어디 잠시 나갔다가 못 돌아오나?'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깊이 잠들었던 아내는, 전혀 일어날 줄 몰랐습니다. 
아무리 잠이 깊이 들어도, 바깥에서 대문을 쿵쾅거리며 
자기 이름을 계속 부를 정도면 
깨어나야 정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30분 정도나 길게, 해프닝이 벌어지다가, 
결국 아내는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냐?’는 식으로 의아해하며 대문을 열어주었습니다. 

남편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내를 야단치려다가, 불현듯 생각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시니...
아무리 깨워도 쉽게 못 깨어나는구나!'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무딘 심령을 예리하고 날카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사야서를 통독하다가 갑자기 멈춘 이유는, 
하나님이 반대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겠다’고 하시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잠시 묵상해 보았습니다. 

결론을 먼저 밝히면,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은 멀어질 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사, 
내 심령을 ‘무디어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29:13 

▲10절,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너희에게 부어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그가 선지자들과 너희의 지도자인 선견자들을 덮으셨음이라’ 

세상에 이럴 수가, 
하나님은 잠든 영혼을 깨우셔야 하고, 
감긴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신데, 

위 구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영혼을 잠들게 하시고, 
선지자, 지도자들을 덮어서 보지 못하게 하시겠다니 
왜 하나님은 역행하시는 것일까요?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하나님이 보내셨다고 합니다. 
이런 것은, 상식적으로 마귀가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하나님이, 이런 영을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런 영이 만약 오늘날 나에게 보내지면, 큰일 나지 않습니까? 

▲11절, ‘그러므로 모든 <계시>가 너희에게는 봉한 책의 말처럼 되었으니 
그것을 글 아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이 봉해졌으니 나는 못 읽겠노라 할 것이요’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이 보내진 결과, 
즉, 선지자와 지도자들을 잠들게 하시고, 눈을 감기신 결과 
사람들은 <계시=성경>을 통 풀어내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성경책에 무슨 잠금장치가 되어있다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글을 모르는 문맹이나, 소경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성한 눈으로 뻔히 성경책을 쳐다보지만, 
깨달음이 오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책이 그에게는 그야말로 ‘봉한 책’(잠긴 책)과 같습니다. 

12절, ‘또 그 책을 글 모르는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나는 글을 모른다 할 것이니라’ 

11절은 <글 아는 자> 
12절은 <글 모르는 자>가 대비되어 있습니다. 
‘글 아는 자’와 ‘글 모르는 자’가 피차일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전문적으로 배운 자’와 
‘성경을 전문적으로 못 배운 자’가 모르기는 피차일반이라는 것입니다.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이 임하면, 뭘 좀 배운 사람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안 배운 사람과 똑 같다는 것을.. 우리가 경험해 봐서 잘 알지 않습니까! 

▲13절,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주님이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신 이유가 여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입>으로는 주님을 섬기지만, <마음>은 멀리 떠났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상상해 봅니다. 
<마음>없이 <입>으로만 주님을 섬기더라도, 
그냥 못 본체 넘어가시면 되는데, 
꼭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쌤통나신 것입니까? 

<마음>이 떠난 선지자, 선견자, 지도자들이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일은 
<입술로> 구구절절 청산유수처럼 쑈하는 것은, 
하나님이 결코 허락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없이 <입술로만> 할 바에는, 아예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사 
다 잠 재워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성령의 능력 없는 사람이, 
마음의 진정성 없는 사람이 
<입술로만> 교묘하게 능력을 전달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만> 전달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의 역사를 따라서, 
자기도 자고, 남도 재우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더 큰 외식의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시는, 일종의 은총입니다.)

오늘날 영적 양식이 없어서 주린 것 같고, 
신령한 생수가 없어서 갈한 이유는 
하나님이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셨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백성들이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고, 
<마음>이 떠나있기 때문이며, 
그렇게 될 때... 내 영혼이 점점 무디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 영혼이 무디어지고, 
계시(성경)를 읽어도 ‘봉한 책’처럼 깨달음이 없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깊이 잠들게 하는 영을 보내셨기 때문이고, 
그 이유는, 내 <마음의 진정성>이 사라지고, <입술>만 떠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술로 떠들기는 떠드는데, 
‘글을 아는 자’나 ‘글을 모르는 자’가 피차일반인 것처럼 

계시의 책이 봉해져 있고, 사람들의 눈이 감겨져 있어서 
아무도 깨닫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읽기는 읽어도, 깨달음이 안 오는 것입니다.

14절,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그래서 점점 더 ‘영적 빈곤의 악순환’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사소한 실패로 인해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영적 침체는 점점 무겁게 중첩이 되어, 심한 좌절감으로 자기 목을 죄어 옵니다.

급기야 그는 “나는 위선자다” 하면서 자학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게 분명해. 나를 떠나신 거야!” 
하면서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84년 9월 새벽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버리신 게 분명해, 제발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는 기도로 몸부림쳤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느니라. 
네가 나를 배신하여 등을 내 보일 때도, 
나는 너의 등을 바라보면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느니라. 

맹세코 너에게서 눈을 뗀 적이 없느니라. 
언제나 너를 밀어 주었느니라. 
언제나 다시 일어서라고 했느니라.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너를 항상 바라보았느니라.”

그는 영적 음성과 더불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바로 최용덕 집사입니다.

그가 영감을 받아 적은 시는 <나의 등 뒤에서> 라는 곡으로 태어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

*냉수한그릇창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