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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이란?

LNCK 2023. 7. 7. 19:47


◈화평이란?           마5:9, 골1:20           냉수한그릇창고 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화평을 이루신 예수님 

▲1.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 
위 구절과 똑같은 단어가 쓰인 구절이 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1:20  

마5:9절에 쓰인 화평이란 단어와, 
골1:20에 쓰인 화목이란 단어가, 헬라어로 동일하다는 뜻.     주1) 

본문 마5:9절의 화평이란 말이, 
그저 간디 같은 평화전도사가 주창하는 ‘평화’란 뜻이 되겠지만, 
궁극적으로 골1:20절에 나온 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를 의미한다. 

이 평화는, 사람이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의 화목케 하시는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이다. 

▲구약에서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예언되었다. 
이사야9:6에, 예수님은 ‘평강의 왕 prince of peace’으로 예언되었다. 

미가서5:5에도,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하며, 
예수님 자신이 ‘평강/평화의 왕’이 되실 것이 예언되어 있다.    *화평=평강=평화=peace

이렇듯 우리가 ‘평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먼저 주님의 공로로, 우리를 하나님과 평화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가 빠진 화평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의 평화전도사들이, 정말 무슨 평화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평화에 기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화평’은 아니다. 

오직 참된 화평은, 우리 주님만 이루실 수 있으며, 
또한 실제로 십자가에서, 참된 화평(하나님과 죄인사이의 화평)을 이루셨다. 

◑화평케 하는 일을 부탁하시다 

본문 마5:9은, 화평(평화)케 하는 일을 부탁하신다는 뜻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마5:9 

성경 다른 구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평케 하는 일을 부탁하셨다. 

고후5:18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성경에 나오는 ‘화평. 평화’가 
세상의 ‘평화전도사들이 외치는 평화’와 다른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십자가의 화평을 바탕으로, 
세상에서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예수님도 자신이 화목케 하시는 제물이 되신 이후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일’을 부탁하셨다. 

다시 말해서, 참된 평화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복음 없이, 그저 세상에서 외치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다. 

일례로, 사람들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 
최근에 ‘테러와의 전쟁’도 그랬다. 
그런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닌 것이다. 

세상은, 또는 거짓선지자는 평강, 평강을 외치지만, 렘6:14, 8:11 
예수와 복음이 빠진, 참된 평화는 세상에 없다는 것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십자가에서 참된 평화를 이루셨고,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이, 자기가 십자가에서 죽는 방식으로..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사야에서 하나님과 화목한 세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사11:6-8 

하나님께서 꿈꾸는 세상은 이처럼 화목할 수 없는 관계들이 
화해하고 공존하는 세상이다. 

결국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나냐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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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아이(Peace Child)

선교학 연구의 세계적 필독서 돈 리처드슨의 [화해의 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보면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돈 리처드슨’이 아푸아 뉴기니 정글 지역에 복음을 증거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두 부족 사이에 늘 전쟁이 있어서, 한 시도 평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사위부족이라는 부족이 사는 지역에 갔는데 이들은 식인종들이었습니다. 
사람을 잡아먹고 거짓말을 잘하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하려 해도 그들이 귀를 막고 듣지 않습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어느 날 아침은 가방을 싸 가지고 그 동네를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언가 마을이 시끄럽습니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사위 부족 가까이에 있는 해남 부족이라고 있는데 
그 해남 부족과 사위 부족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전쟁을 치를 판입니다. 

싸우면 양측 다 큰 피해를 입을 게 뻔했습니다. 
그래서 서로 화해의 의식을 채결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의식이 아주 놀라운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위 부족 추장의 6개월 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들을 해남 부족 추장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해남 부족 추장의 아들로 바칩니다. 
그 바치는 의식을 통해서 화해가 성립되어집니다. 

그래서 그 아이를 ‘피스 차일드, 화해의 아이’라고 부릅니다. 
두 부족이 화해를 위해서 사위 부족 추장의 아들이
해남 부족 추장의 아들로 입양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해의 아이입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선교사님이 마음에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이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 독생자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위 부족을 향해서 이제 그는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들을 사랑하십니다. 
얼마 만큼 사랑 하냐면 화해의 아이를 주실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화해를 위해서 화해의 아이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이렇게 설교했더니 그제야 사위 부족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기들도 해남 부족과의 싸움 속에서 추장의 아들을 그들에게 내어줌으로써 
화해가 성립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행복도 넉넉한데 있지 않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부부가 서로 애써서 도와가며 살려고 애쓰지만
좀 여유가 있는 집들은, 심심해서 싸우다가 심심해서 이혼하더라고요.
부자치고 무사한 가정이 별로 없어요.

넉넉한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불화가 많고, 문제가 많고, 이혼이 많은가요?
병도 많습니다. 왜 이렇습니까?

아무리 부자이면 뭘 합니까?
건강을 잃으면, 부부간 화평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말씀이
‘사람은 생명(행복, 영생)이 소유의 넉넉한데 잇지 아니하니라’ .. 진리입니다.

복권 당첨된 사람들 조사해보면, 다 망하고, 다 이혼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강남 아주머니들 모아놓고, 어떤 교수가 세미나를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100억짜리 로또에 당첨되었으면, 뭘 하겠습니까?’ 물었더니
60%가 ‘이혼부터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행복한 부부, 남편이 휘파람을 부는 이유

자기 집 안팎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예쁜 장미꽃을 재배하는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특이한 점이 있는데, 늘 휘파람을 불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집 안에서도 또 집 밖에서도.. 계속해서 휘파람을 불면서 일을 하였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 새로운 사람이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가만히 보니까
이 장미꽃을 키우는 남자가 쉴 새 없이 휘파람을 부는 것입니다.

이웃집 부인은 ‘혹시 내게 마음이 있어서 휘파람을 부는 것 아냐?’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지요.


물론 이웃집 부인은, 자기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휘파람을 분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오해는 풀었지만, 너무나 궁금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왜 당신은 그렇게 휘파람을 계속 불어대는 거죠?”

그러자 남자는, 자기 집으로 그 이웃을 데리고 들어갔지요.
집 안에는 이 남자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었어요. 남자는 말했지요.
“제가 왜 항상 휘파람을 부는지 궁금 하시다고요?
그 이유는, 제가 집 안에서나 집 밖에서 일할 때
아내는 저의 휘파람 소리를 들어야, 
함께 있는 것으로 알고 안심하기 때문이랍니다.”

맞습니다. 이 휘파람 소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신호였던 것이지요.
그리고 집안의 맹인 아내는, 이 신호로 인해 안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 사이에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신호가 있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기 위한 신호를, 지금도 계속해서 보내고 계십니다.
   나의 일상 삶 안에서,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또한 내가 기도하고 묵상하는 가운데에서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신호를 우리들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신호를 듣고, 보는 사람은 평화를 느끼고 안심하게 됩니다.
   바로 주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심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요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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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마5:9, 화평하게 (에이레노포이오스, 형용사)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골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에이레노포이에오, 동사) 

두 구절은 같은 단어가 쓰였다. 
이 단어는 에이레네(peace)+포이에오(make)의 합성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