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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충돌

LNCK 2023. 7. 8. 13:47

권위의 충돌 [마가복음33] - - YouTube

*위 동영상 8분부터 녹취

 

◈권위의 충돌                 막11:15~12:12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셔서 하신 두 번째 사건 : 성전 청결

첫번째 사건은 '무화과 나무 저주' 였고요.
세번째 사건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찾아와서 
예수님과 권위에 대한 주제로 논쟁을 벌이는 사건입니다. 

왕께서 임하시면 반드시 일어나는 현상이 있는데 
그것은 왕 없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던 그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키는 거에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임하시기 전까지 
우리가 살아 왔던 옛 삶의 패턴들이 있습니다. 

옛 삶의 기준들이 있고, 옛 삶의 가치관들이 있습니다. 
왕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들어오셔서, 내 삶 가운데 들어오셔서 
내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우리 안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옛사람과 새사람 사이에 충돌이 일어납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선포하시는 새로운 삶의 권위와 질서들과, 
우리가 예전에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마음대로 살아 왔던 그 삶 사이에 
즉 옛 권위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왕이 오시기 전까지 내 나름대로 살아 왔던 권위와 질서, 내가 생각하는 진리, 
또 내가 살아가는 법.. 그것들과 

왕께서 오셔서 새롭게 세우시는 진리, 삶의 질서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왕이 오기 전까지는,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사실은 내가 왕이 되어 살았던 거지요. 

그런데 이제 그 인생 가운데, 진짜 왕께서 들어오신 거예요. 
그래서 새 왕의 새로운 명령과 새로운 법들을 선포하십니다. 
당연히 충돌이 일어나지요. 

▲예루살렘 입성하신 예수께서, 가장 먼저 들리신 곳은 성전이었습니다. *월요일
성전에 들어가 보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막11: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권위의 충돌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 곳이 있는데, 그것은 성전입니다. 
사람에게는 나름대로의 성전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도 성전이 있습니다. 

이 성전은 인간의 영이 있는 곳으로 
사실은 하나님이 거하시기 위해서 마련해 주신 장소라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고전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성전이래요. 우리 안에 깊은 곳에 보면 성전이 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지요. 

우리 안에 '영'이 있고, 그 영 안에 성령, 하나님의 영께서 거하신다는 거예요. 
원래 인간을 그렇게 만드셨다는 거에요.

영은,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하는 인간의 가장 깊고 근원적인 곳입니다. 
영의 존재를 규정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내 속에 영이 있다는 증거는) 영은 갈망합니다. 갈망하게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성령 뿐만 아니라 다른 세상의 영들을 얘기합니다. 

영이 우리 안에 자리 잡게 되면 
가장 먼저 행하는 영의 본질적인 역사가 뭔가하면, 갈망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 영은 즉 갈망 입니다. 

그 갈망 왜 일어나는지는 설명이 잘 안 돼요. 
그냥 그게 영의 본능에에요. 

수학에도 보면, 좋은 논리적으로 증명해 들어가다가
마지막에 더 이상 증명되지 않는 것을 '공리'라고 하죠.
그냥 그렇게 정한 거에요. 그냥 그게 본질적인 거에요. 

그와 마찬가지로 영은, 갈망이 그 본질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정말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봤을 때 
'야 저거는 영인 거 같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이단에 빠진 사람이라든지, 
아니면 김일성을 숭배하는 그 북한 공산주의라든지, 
그런 것들을 보면, 밖에서 보는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죠.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그것이 절대적인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영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영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어떤 갈망을 주는 것, 
그것이 인간의 삶을 시작하게 하는 거에요. 

이 이야기를 뒤집어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인간, 아무것도 갈망하는 것이 없는 인간이 있다면 
그 사람의 삶이 과연 영위될 수 있을까요? 없어요.

인간을 움직이게 하고, 살아가게 하고, 
뭔가를 행하게 하는 동기는.. 무언가를 향한 갈망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면은 '갈망'인데,
영은 갈망을 일으키는 것이에요. 무언가를 향한 갈망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인생은, 그 갈망을 좇고, 추구하고, 이루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돈에 대한 갈망을 일으키는 영이 있으면,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돈을 좇고, 돈을 추구하고, 돈을 벌어서 행복하고, 
돈을 잃으면 슬퍼하고... 그렇게 인생이 이루어집니다. 

또한 영이 성공을 갈망하는 영이 그 속에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인생은, 성공을 좇고, 성공을 추구하고, 성공을 즐거워하고 
실패하면 슬퍼하고... 하는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결국 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것을 규정하고 결정하는 것은 
자기 속에 있는 영 spirit 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왕께서 입성하시면 가장 먼저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 '성전'입니다. *영이 거하는 곳

왕께서 들어오셔서 물어 보시는 거예요. 
'너의 근원적인 갈망은 뭐냐?' 
'너를 살아가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무언가를 추구하게 하고, 
무언가를 이루어 가게 하는 근원적인 갈망은 뭐냐?' 

'너는 무엇을 위해 사는 존재고 
너는 무엇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너는 무엇에 만족을 얻는 거지?' 이것을 물어 보시는 거예요. 

기억하십시오 왕께서 입장하시면 가장 먼저 충돌이 일어나는 곳은 
이 성전입니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들 이전에, 
이 성전(영이 거하는 곳)에서 먼저 충돌이 일어나는 거예요. 

▲35년 전에, 제 인생 가운데 예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고성준 이라는 '성' 가운데로 예수께서 입성하여 들어오셨습니다. 

그전까지 제 성전 안에 거하던 갈망은 
좋은 대학, 성공적인 학자.. 라는 그런 영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고, 유능한 학자가 됐으면 좋겠고, 
세계적인 과학자가 됐으면 좋겠고... 그 갈망이 늘 제 안에 있었어요. 

아마 그게 제 안에 있던, 제 성전 안에 있던 근원적인 갈망이었어요.
물론 교회는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삶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고 
또 학자로서 성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도 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게 해 달라고.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는, 훌륭한 학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런대 대학교 1학년 때, 제 삶 가운데 예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제 성전에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거니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제일 먼저 하셨던 게 뭐냐면 
제 안에 다른 갈망을 팔고 있던 장사치 들을 다 내쫓으신 거예요.

제 안에서 다른 갈망들을 팔고 있던 매매하는 장사치 들을 
상을 뒤집어 엎으시고 다 내쫓으셨습니다. 

물론 이 '성공'이라는 다른 갈망을 팔고 있던 장사치들은 
그 이후로도 호시탐탐 제 삶 가운데 다시 들어오려고 기회를 엿봤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성공적으로 장사를 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35년 전에 제안에 예수께서 들어 오셨을 때 
제 성전 안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사실이에요. 

제 안에 갈망하는 것이 달라졌어요. 
그때 이후로 갈망하는 것이 달라졌어요. 

그날 이후로 제 안 깊은 곳에 있는 성전에 
자리잡게 가장 근원적인 갈망은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오직 예수로 바뀌었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예수를 이롭게 하고, 예수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나의 모든 기쁨이고, 나의 모든 행복이고, 삶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제 영혼, 성전 안에 들어오셨을 때 
상을 뒤집어 엎으시고 
다른 갈망을 팔던 장사치들이 다 내쫓으시고
새롭게 심어놓으신 갈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제게는 빌1:20~21절이 내 평생에 고백이 되었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제 안에 입성하신 예수께서, 제 성전 안에서 다른 갈망을 팔던 장사치들의 
상을 둘러 엎으시고 내쫓으신 거예요. 

그리고 드디어 원래대로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주셨던 목적, 
제 안 깊은 성전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 졌습니다. 할렐루야! 

제 성전 안에 성령께서 거하시기 시작하신 거예요. 

▲여러분의 성전은 어떻습니까? 
그 성전 중앙에 누가 좌정하고 계십니까? 
예수께서 여러분의 성전에 좌정 하셨습니까? 

아니면 혹시 다른 갈망을 파는 장사치들이
열심히 다른 갈방을 팔고 돌아다니지는 않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6~17절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을 지나다니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어요. 
예수께서 우리 성전 가운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지나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아무나 '다른 갈망'이라는 물건을 
막 팔고 다니도록 하락하지 않으신다는 거예요. 

이 성전은 무엇을 위해 지음받았나요?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장소로 지음 받았어요. 

예수님은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이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면한다는 뜻이에요. 
우리 안에 있는 깊은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고 대면하는 장소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 곳에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거하셔야 되는 거예요. 
그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다는 거예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은, 만민이 기도하는 성전입니다. 
그 깊은 성전의 지성소에서 각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 하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창조하셨어요.

우리 가장 깊은 곳에 는 하나님이 계셔야 해요. 
그래서 예수께서 내 속에 들어오시면, 한 가지를 금하십니다. 
'다른 물건을 파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다른 갈망이 우리 성전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다른 욕망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그것을 가지고 '강도의 소굴'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성전을 더럽힌다는 거에요.

우리 성전 가운데는 오르지, 예수만이 거하셔야 되는 곳인줄 믿습니다. 

▲성경은 성전안에서 다른 영이 만들어내는 갈망을 
그들의 '신'이라고 얘기합니다. 빌립보서 입니다. 

빌3:19 '그들의 신의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들의 신은 배요'
배를 부르게 해 주는 것을 신으로 섬긴다는 거예요. 

꼭 밥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배고픔, 욕망, 갈망, 원하는 것을.. 
그게 그들의 신이라는 거예요. 

성경이 얘기하고 있는 신, 우상은 뭐냐면 
금송아지 만들어 놓고 무슨 불상 만들어 놓는 게 우상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배고픔, 갈망, 우리의 배, 
우리 성전 안에 있는 다른 갈망.. 그게 너희가 섬기는 신이라는 거에요.

우리가 돈을 갈망하는 것이 있으면, 돈이 우리의 신이고요. 
우리가 자식들에 대한 집착이 있으면, 자식이 우리의 신이고요. 
우리가 명예에 대한 갈망이 있으면, 명예가 우리의 신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가 우리의 신(하나님)이라는 건 무슨 뜻이겠습니까? 
우리 안에 예수를 향한 갈망이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것이 우리가 예수를 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신은,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갈망 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추구하고 사랑하는 신! 
그것은 우리 성전 안에 어떤 갈망이 있느냐? 
그것이 우리의 신을 결정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 신을 섬기고 계십니까? 
예수가 여러분의 신 이십니까? 

그 얘기는, 여러분 안에 어떤 갈망이 있으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만족하게 합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시간을 뺏고 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신이에요.

막11장 에 등장하는 사람들,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또는 바리새인들
그들의 신은 돈, 그리고 명예 이런 것들이었어요. 

돈을 벌기 위해서 성전에서 부지런히 다른 무언가를 팔고 있었습니다. 
또 종교지도자 라고 하는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파는 것들을 허락하고, 거기서부터 뭔가 뒷돈을 받았던지 했겠지요. 

여러분의 성전에는 누가 거하십니까? 
혹시 여러분의 성전에, 다른 갈망을 파는 장사치는 없습니까? 

여러분의 갈망은 오직 예수뿐이십니까? 
아니면 예수 말고도 또 다른 갈망이 공존하십니까? 

죄송하지만 또 다른 갈망이 공존하고 있다면, 
그게 여러분의 '신'이에요, 그게 여러분이 섬기는 우상이에요.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셔서 하신 세 번째 사건 : 종교권력 과의 충동

막11: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충돌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안에는 예수 외에 다른 갈망이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명예, 존경, 사람들의 인정... 
이런 것들에 대한 갈망, 

또 성전을 이용해 누리던 부를 향한 갈망,
그리고 이 다른 신들이, 결국 예수와 충돌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다른 신을 섬기는데, 어떻게 예수가 충돌하지 않겠어요?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길 때, 그것은 반드시 예수와 충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음 날이 되었습니다. 종려주일에 입성하시고, 이제 화요일이죠.

27~28절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그들이 예수께 묻습니다.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그 권위를 네게 주었느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누리고 있던 권위와 질서가 있었는데 
'너는 누구기에 지금 들어와서 우리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거냐?' 
이런 도전이죠. 충돌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충돌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이어지는 12장에서 예수께서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막12:1~12절을 각자 찾아서 읽어봅니다.

이 비유는, 예수의 권위에 도전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너희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 줄 알아? 이거 하고 있는 거야!' 
라고 설명해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이 비유가 자가들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인줄' 알았죠. 12:2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의 내용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12:1~12
아주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권위의 충돌에 대해서 몇 가지 중요한 진리를 가르치는데요. 

▲1. 첫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는 거예요. 

왕이 포도원에 보내서 이것저것 해라, 소출을 보내라 
농부들이 그러면 보내든지 안 보내든지 둘 중에 하나지요. 

우리 삶 가운데 예수의 권위가 들어오게 되면, 두 가지 선택이 있다는 거예요. 
왕이신 예수의 권위 앞에 복종할 것인지, 
아니면 그 권위에 대적할 것인지... 
두 가지 선택이 있다는 것을 이 비유가 알려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는 이 비유를 통해서 
'너희는 지금 대적하고 있는 거야, 너희는 지금 거부하고 있는 거야, 
너희는 성전에 다른 갈망을 가지고 있고, 다른 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참 신이신 하나님의 권위에 대적하는 자야!'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예수 외에 다른 갈망을 가진 사람, 
예수 외에 다른 소망을 가진 사람, 다른 기쁨을 가진 사람은 
결국 예수와 충돌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예수 외에 다른 갈망이 있다면, 
그 얘기는, 다른 영이 있다는 거에요. 다른 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참 신이신 하나님과 
다른 신을 동시에 섬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누구든지 그 안에, 그 성전 안에 
예수 외에 다른 갈망, 소망, 삶의 기쁨이 있는 사람은, 
결국 예수와 충돌하게 되어 있다는 거에요. 중간은 없다는 거예요. 

오직 예수, 예수만이 소망, 기쁨이시고, 예수만이 나의 생명이시고.. 이거 든지,
아니면 예수를 대적하든지.. 둘 중 하나 라는 것이 본문의 메시지입니다. 

예수와 충돌했던 사람들은, 예수를 잡아죽였던 사람들은 
머리에 뿔 달린 사악하고 특별한 종자들이 아니었어요. 

예수와 충돌했던 사람들, 예수를 잡아죽였던 사람들은 
그저 그들의 삶 속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었던 어떤 다른 일들이 있었던 거예요.

머리에 뿔달린 사악한 빌런들이 아니고 
그냥 자기 삶 속에, 주인이 뭐라고 얘기 하는데 
'아 그거 말고, 내 나름대로 하고 싶은 게 있어' 이게 있었던 사람들이에요.

주인이 '이렇게 하라'고 얘기 하는데 
'아 그거 말고 난 이거 해 보고 싶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아 그거 말고, 이 포도원은 내 맘대로 좀 해 보고 싶어' 
이 마음이 있었던 것 뿐이라는 거에요. 이게 시작이었다는 거에요. 

예수를 대적하게 되는 시작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 말고 
다른 갈망들이 있는 거에요. 

성경에서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포도원은 
삶의 유업, 기쁨, 소망, 삶의 터전, 내 인생.. 이런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농부들이 포도원을, 그냥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거에요. 

나에게 주어진 내 인생이 포도원, 
그런데 원래 내 인생의 주인은 누구에요? 하나님이시죠.

원래 포도원을 누가 만든 거에요? 하나님이 만드신 거거든요.
그 포도는 누가 심으신 거에요? 하나님이 심으신 거죠.

그런데 그 하나님이 주신 것을 그냥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거죠.
그 수출도 내가 마음대로 누리고 싶고, 
포도원에서 가꾸는 것도 내 방식대로, 내 마음대로 해 보고 싶고... 

이 다른 갈망, 다른 소원... 
그것이 결국 주인을 대적했다는 거예요. 

대적함의 시작은,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성전의 다른 갈망을 가지는 거예요. 

그것은 다른 영이고, 
그리고 그것은 다른 신이에요. 

▲2. 두 번째 메세지는 뭐냐면 
이 충돌은 중간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거에요. 
결국 끝까지 간다는 거에요.

주인은 여러분 종을 몇 번씩 보냅니다. 
주인이 종을 2번, 3번, 4번 계속 보내면
'아이고, 이거 계속 하면 안 되겠구나, 주인이 굳은 의지가 있구나!'
그래도 농부들은 자기 맘대로 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결국 여러분, 이 대적은 끝까지 간다는 거예요.
결국 주인의 아들을 죽이는 데까지, 즉 예수를 죽이고 대적하는 데까지 
끝까지 간다는 거예요. 

권위의 충돌은, 처음부터 대놓고 예수를 대적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외에 다른 갈망이 있는 것 뿐이에요.
예수 외의 다른 소망과 기쁨이 있는 것으로 출발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이 성전에서 일어난 작은 충돌, 작은 엇나감,
예수 외에 또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이 있는 작은 엇나감이
결국 예수를 대적하고 죽이는 데까지 멈추지 않는다는 거예요. 

웬줄 아십니까? 영의 충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본질은, 영의 충돌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냥 조금 삶의 실수가 있고, 조금 삶이 부족하고 연약하고... 
이런 것하고는 다른 얘기에요. 

맞아요. 여러분, 우리 삶이 연약하고 부족해서,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해요.
그것과, 내 성전안에 다른 갈망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에요.

우리 삶의 연약함이나 실수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하나님 앞에서 성숙해져 갈 수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 안에 다른 갈망이 있는 거, 
예수외에도 다른 기쁨의 근원이 있고, 
예수외에도 내 인생에 해보고 싶은 다른 갈망들이 있는 것,

이것은 여러분, 다른 영이 있다는 거에요.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는 거에요.
이것은 하나님과는 공존할 수 없는 거예요. 결국 충돌하게 된다는 거예요. 

혹시 오늘 여러분 안에, 예수가 불편한 것이 있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여러분 안에, 예수가 불편한 것이 있는 분 없습니까? 

뭐 대놓고 대적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데 
자꾸 예수께서는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불편해요...

교회를 안 다니겠다는 거는 아니에요.
분명히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있어요.

근데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는 좀 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자꾸 불편해요. 

'나는 목사님이나 셀리더나 주변에 보면 열심 있는 사람들처럼 
오직 예수! 예수 외에 아무것도 없어요!... 나는 그렇지 않은 거 같아요..'

나는 예수를 배격하지도 않고, 안티 기독교인도 아닌데,
예수가 내 삶에 전부는 아닌 것 같아!

예수만이 내 삶에 유일한 소망이고, 
예수만이 내 삶의 유일한 기쁨이고.. 
이거는 아는 것 같아...

내 안에는 그거 말고도 다른 갈망도 있는데... 
그래서 약간 불편함... 여러분 속에 혹시 그런 불편함이 있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조심하십시오. 거기서부터 시작된다는 거예요. 
다른 영이 있다는 거예요.
다른 물건을 파는 장사치가 우리 성전 안에 왔다 갔다 하고 있다는 거에요.

한 번 예수 믿고 거듭났다고 해서 너무 안심 하지마십시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거듭나고, 제 안에 하나님께서 임하셨고 
정말 오직 예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 장사치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할 때쯤 되니까, 미래에 대한 걱정이 생기는 거에요. 

'그래도 미래에 대한 대비는 해야 되지 않을까? 
내 앞가림은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갈망이 제 안에 들어 오기 시작했어요. 

한편에서는 염려였고,
또 한편에서는 그래도 세상에서 뭔가를 원하는 것을 이루어 보겠다는 갈망...

제 안에 갈망은 초지일관 똑같았거든요.
뛰어난 학자가 되고, 좋은 대학 교수가 되고, 뭐 이런 거였죠.
그게 어느 순간에 들어 와 있더라고요. 

저는 잘 몰랐어요. 예수 안 믿겠다는 것도 아니고, 
뭐 교회 안 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도 계속 사랑했고... 

교회도 일주일에 7일을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4학년 쯤 되니까 '조금 줄여야 되지 않을까?' 
뭐 그렇게 시작된 거였어요. 
그리고 2년이 지났는데, 여러분 제가 주일 날도 교회 잘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다른 갈망은 여러분 우리를 끝까지 끌고 갑니다. 
중간에서 타협하지 않아요. 멈추지 않아요. 
결국 예수를 떠나는 데까지, 결국 예수를 대적하는 데까지.. 그렇게 끌고 가요. 

혹시 여러분 안에 불편함이 있으시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작은 불편함. 

'나는 오직 예수는 아닌데.. 다른 것도 조금 있는데..' 
그런 불편함이 있다면, 여러분 가볍게 보시면 안 됩니다. 

결국 그 다른 갈망이, 끝까지 갈 거에요. 왜? 
영의 충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안에 다른 신이 거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에요. 

▲3. 이 비유의 셋째 교훈은, 그렇게 대적하는 자에게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9절 '포도원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내 안에 내가 하고 싶은 갈망이 좀 있다는데 그게 어쨌다고?' 
결국 심판이 있다는 거예요. 
왜요? 창조주를 대적하는 거거든요.

예수는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창조주 이십니다. 
만물이 그분께 속했고, 우리의 인생 역시 그분 것입니다. 
우리의 포도원은 그분 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께 대적하면, 그 끝에 가면 심판이 있어요. 
결국 심판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 이후에도 심판이 있습니다. 
진멸 한다고 했어요. 

죽음 이후에도 심판이 있지만, 살아있는 동안에도 심판이 있는 거 아십니까? 
포도원을 뺏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주신대요. 

이 포도원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모든 선한 것, 기쁨, 
풍성함, 삶의 유업을 뜻합니다. 

그런데 심판의 내용은 뭐냐면, 우리 삶의 포도원을 빼앗긴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시고자 계획했던 
충만하고 풍성한 삶의 유업들.. 
우리 삶가운데 누리고 기뻐할만한 선물들, 복된 것들.. 다 준비하고 계셨는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는, 그것을 다 놓쳐버리게 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이 추구에서 얻으려고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것을 주시는 분이세요. 

사실은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더러 '나를 따라오라' 그러는 거에요.
오직 예수를 갈망하는 자는, 
선과, 의와, 축복에 이르러요. 

오직 예수 를 갈망하고 추구하는 자는 
예수께서 주시는 삶의 모든 풍성함 들을 누리게 되어 있다는 거죠.
포도원을 유업으로 주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 외에 다른 선과 악의 기준을 추구하는 자들은 
결국 그것이 선이 될지, 의가 될지.. 아무도 몰라요. 
오히려 불의한 것으로 끝나버릴 거예요. 

마찬가지로 예수의 다른 것들을 갈망했던 자들은 
그래서 다른 복을 얻게 되느냐? 그렇제 않다는 거예요. 

오히려 포도원을 다 빼앗겨버리고, 자기 인생이 황폐해지는 거예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에게 포도원을 주실 수 있는 분,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분이 우리 창조주이시고,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심판 아래 있는 여러분들 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마치는 말
혹시 여러분 안에, 오직 예수 말고, 
다른 갈망들이 있어서, 
그것으로 인해 불편함이 있으시다면 
오늘 예수께서 여러분의 성전 안에 들어오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셔야 합니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장사치들을 내쫓아 주셔야 합니다.

내가 예수의 사람이냐/ 아니냐는 
내 속 성전에 어떤 영이 거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내 속에 어떤 뜨거운 갈망이 있냐는 거에요. 

오직 예수에 대한 갈망으로 충만하다면.. 당신은 예수의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만이 나의 소망이고 
예수님나 나의 기쁨이고 
예수만이 나의 모든 삶의 이유, 삶의 목적이라면,
거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포도원의 풍성한 삶을 누리실 것입니다. 

아니면.. 그 포도원을 빼앗기실 것입니다.